스나크 사냥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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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여사 작품중에서 최고라는 말에 솔깃해서 들여다 본 책이다 . 제목이 말해주듯, 최고작품이라고 말하긴 좀 그런 책이었다. 왜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인지, 이 책을 낸 90년대를 기준으로 나온 말이 여지껏 통용되고 있는건 아닐까 싶었다. 다른 작품들이 이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여간 기대를 많이 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해 다소 김이 빠진 소설이 되겠다. 

이야기는 실연을 당한 후 남자가 결혼을 한다는 말에 총을 들고 나선 여자가 있다. 그녀는 결혼식장에서 자살할 생각으로 총구를 막고 들어서지만, 때마침 나온 남자의 여동생이 만류로 자살 시도를 접고 만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낚시점 가게에서 일하는 아저씨의 습격을 받게 된다. 그녀에게 총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녀를 찾아온 그 아저씨는 그녀를 묶어놓고 총을 가지고 달아난다. 자신의 딸과 아내를 죽인 범인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아저씨와 함께 낚시점에서 일하던 청년은 아저씨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다. 결국 그가 총을 탈취해 달아났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아저씨를 막기 위해 쫓아간다. 결국 그와 만나게 된 청년은 그만 둘 것을 요청하지만, 아저씨의 분노는 쉽게 사그러 들지 않는데... 

뭐, 이것저것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한다면 그렇겠지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읽으면 되는 추리 소설이기도 하다. 하긴 추리 소설을 읽으면서 굳이 어떤 생각이나 통찰력, 사회를 보는 눈 들을 기를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걍 읽으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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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 재습격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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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단편집이다. 하루키의 단편도 꽤 괜찮다고 하는 말에 주저없이 선택하게 된 책, 무엇보다 빵가게 습격이라는 말에 솔깃했다. 무슨 내용일까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참신하고 귀여웠다. 뭐랄까. 진짜 배가 고플때 이 책을 읽으면 정말 장난감 권총을 갖고서라고 빵가게 습격에 나서고 싶은 생각이 들게 했달까. 

결혼 2주째. 배가 고파 잠이 깬 나와 아내는 허기에 잠 못 이루며 무언가 먹을 것이 없을까 이것저것 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무리 냉장고를 뒤져도 나오는 것은 맥주와 쓰잘데기 없는 버터뿐, 그것으로는 허기가 가시지 않는다는 판단에 오래전 배가 너무 고파서 빵가게를 습격했던 일화를 아내에게 털어놓는다. 그 이야기에 솔깃해진 아내는 이참에 함께 빵가게를 습격하자면서 나를 부추기는데... 과연 새벽녘에 우리가 습격할 빵가게는 찾아질 것인가? 찾아진다고 해도 과연 우리가 다시 빵가게를 성공적으로 습격할 수 있을 것인가?  

참으로 귀여운 아내와 남편이었다. 뭐, 어쨌거나 습격이라 당하는 입장에선 그다지 기분 좋을리 없겟지만서도, 소설이니까, 재밌게 읽었다. 돈이 아니라, 빵을 훔친다는 설정이 조금은 낭만적으로 들려오는 측면도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단지 장난으로 빵가게 습격한다면 문제가 있을 듯. 그걸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전혀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그외 <코끼리의 소멸>이라는 작품도 재밌었다. 미국대학에서 일본 문학 텍스트로 쓰고 있다고 은근히 하루키가 자랑하던데, 그럴만한 작품이지 싶다. 이야기가 신비로우면서도, 완성도가 있으니 말이다. 그외 다른 작품들은 둘에 비하면 그다지 잘쓴  작품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애매작으로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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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확실한 행복 - 무라카미 하루키가 보여주는 작지만 큰 세계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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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30대 중반 즈음 연재한 수필을 묶은 것이다. 그의 전매특허라고 해도 좋을 균형감각있는 서술이 읽는 재미를 돋우지만 , 가장 좋았던 것은 아무래도 허술해보이는 생활인이자 일상인으로서의 그를 만나게 되는 것때문이 아닌가 한다. 유명 작가가 되고 싶었을지, 그건 잘 모르겟지만 어쨋꺼나 유명인이 되어서 거들먹 거리고 싶어 작가가 된 것은 아니겠다 싶다고 할까. 유명해지기 보단 자신의 글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 재밌어서 작가가 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싶은 것이다. 

확실히 재밌는 수필이었다. 나만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그의 글을 읽다 보면 꼭 그가 나랑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는 거다. 물론 집안에 볼펜 50자루가 돌아다닌다던지, 쌍둥이 남자를 양 옆에 끼고서 파티에 나가고픈 망상은 없지만서도, 그가 하는 말엔 별로 거부감이 일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 아닐까 한다. 다른 사람들도 그와 자신을 동일시 할 정도로 그가 친근하게 느껴질까? 설마...세상에는 개성이나 성격이 다른 사람들 투성인데 말이다. 그렇다고 치면 하루키 역시 보통 사람인척 하지만 보통일리는 없는 사람이고, 나나 당신과 역시 현저히 다른 사람이지만, 글을 너무나 잘 쓴 나머지 그의 글에 마치 내가 그런 것인양 수긍하게 된다는 것이 옳은 분석일지 모르겠다. 와~~~ 써놓고 보니 하루키 이 양반 대단한 분이시구만. 

아무리 기행을 써도 왠지 기행이 아니라, 아, 맞아 그렇지.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글발이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의 글이 현걱하게 세상과 동떨어진 글이냐면 그렇지는 않을것이다. 다만, 세상의 기준이라고 하나, 그런 것들을 그냥 받아들이는게 아니라, 나는 조금 다르던데, 라고 태클을 걸수 있는 정도라는 것이지. 때론 소심하고 때론 적극적으로 세상에 말을 걸어대지만, 중요한 것은 언제나 자신의 개성이나 생각을 확실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점에서 하루키의 글이 감칠맛이 나는게 아닐까 한다. 분노하는 것이 아닌, 멍청하다고 소리 치는게 아닌, 상대방을 배려하고 관점을 이해하면서도, 나는 아니거든? 이라고 분명하게 일러주는 사람이니 말이다. 

인간미? 말해서 뭐하나. 이런 사람을 보면서 인간미 부족하다고 말한다면 그런 세상은 천국밖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천국은 나도 별로다. 심심할 것 같아서 말이다. 균형감각이야, 뭐. 이 양반은 선천적으로 타고 태어나신 분 같고. 자신의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 주는 것도 좋았다. 재즈 까페를 한 덕분에, 까페를 그만 둔 이후에도 한동안 식당에 가면 손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 했다는 일화나, 까페 아르바이트 생을 까발리는 것, 아내에 대한 소소한 일화등 그만이 아니면 들려주기 힘든 이야기가 아니었나 한다. 허술하지만 이해를 돕는 삽화 역시 좋았고, 하루키가 맥주 광이라는 사실도 이 책을 보면서 알았다. 식사와 함께 맥주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멍하니 하시나 보던데, 솔지기 부럽더라...과연 내가 맥주를 그렇게 마셔댄다면 지금의 체중을 유지할 수 있으려나 궁금해서다. 하루키를 좋아하시는분들이라면 가볍게 읽을만한 책으로 좋다. 그가 좋아한다는 아구나 재즈,두부, 이사와 아주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일상속에서 챙겨가는 모습도 흥미로웠다. 왜일까? 인생을 즐기는 사람을 보게 되면 왠지 나 역시도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은 말이다. 아마도 그래서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을 좋아하는게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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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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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까 말까 망서리다 그래도 얇잖아? 하면서 집어든 책인데, 첫 페이지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기분 좋게 만드는 천연덕스러운 문장들이 나로 하여금 하루키가 현재 일본에서 가장 잘 나가는 작가가 된 게  절대 우연이나 행운이 아니라는걸 확인하게 해 줬으니 말이다. 수필을 어쩜 이리도 유려하게 잘 쓰시는지, 근래 들어 일본 작가들의 수필을 꽤 읽은 편인데, 그들을 다 합친다고 해도 이 책에는 대적하지 못하지 싶다. 탁월하고 독창적인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너무 너무 쉽게 쓴다. 인상 한번 변하지 않으면서 툭~~툭 재기발랄한 말 한마디씩 던지고는 휘~~휘 유유자적 걸어가는 선배를 보는 듯 하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딱 군더더기 없이 힘 쫙 뺀 문장들. 이런 문장들을 보면서 하루키를 사랑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이 책에 묶인 글들은 하루키가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느긋하게 연재한 것이라는데, 오히려 아무도 읽지 않을 거야 라고 하면서 쓴 것이 주효했지 싶다. 잘 써야 겠다는 강박관념 내지는 기필코 잘 써야만 해 !!! 라는 의지가 보이지 않으니 읽는 나도 편안하고, 요렇게 새침하니 딱 떨어지는 문장들이 나온게 아닐까. 그러고보면 자의식이야말로 작가들에게 최대 강적일른지도 모르겠다.

 

 제목인 <4월의 어느 맑은 아핌에 100%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는 하루키의 광팬이던 이웃(캬누님)을 통해 한번 소개받은 적이 있는 글이다. 그런데 당시 난 그 글이 남성들이 아름다운 여성미를 향한 찬사인줄로만 알고 심드렁해했었다. 아마도 도입부만 보곤 전체를 다 읽지 않은 모양이다. 스쳐가는 이름 모를 여성에 대한 안타까운 찬탄이야 이미 차고 넘치게 들었구만, 하루키씨는 꼭 거기에 한마디 더 보태셔야 했나요 하면서 실망했더란다. 그러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고, 전문을 읽어보니 이거 전혀 다른 이야기다. 이미 넘치게 들었다는 식상한 이야기와 차원이 다른 하루키씨만의 특유한 시선으로 읽어 낸 인연 이야기, 어느 정도는 내 이야기기도 해서 공감이 100%됐다. 

 

그렇다. 하루키씨의 말처럼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100% 내 인연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게 왜 인지는 절대 알 수 없지만 ,그냥 내 자신만은 아는 그런 것들. 나는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하루키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쩜 모두에게 보편적인 경험일 수도 있겠구나 싶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쨌거나 하루키가 간파했듯이 그런 느낌들을 명쾌하게 설명해줄 만한 이론을 아직까진 들어보지 못했다. 그게 그럴만도 한 것이 나와 아주 잘 맞을 것 같은 사람을 한 눈에 알아봤다는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현재로썬 하루키씨 말대로 전생의 인연이라는 설명이 가장 그럴 듯한 답이다. 다른 적확한 이론을 발견하지 못한 현재로썬 다만 그런 느낌들이 실재한다는 것만은 분명히 하고 싶다. 비록 스쳐 지나갈 뿐인 찰나일지라도 평생 잊기 힘든 경험이라는 점도. 실은 하루키의 짧디 짧은 그 수필을 읽으면서 그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망상이라고 치부하고 잊어 버리고 있었던 순간을 떠올리게 해주어서 말이다. 하루키가 아니라면 누가 이런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마도 그래서 그가 인기가 있는게 아닐까. 우리의 잠재의식속에 숨어 있는 스쳐가는 소소한 감정들을 그만큼 잘 잡아 내서 수면위로 내어 놓는 작가도 없으니 말이다. 그것도 충분히 공감가는 필치로...

 

그 작품 외에도 깜찍한 단편들이 많았다. 아기 캥거루를 보기 위해 동물원에 간 이야기도 <캥거루 날씨> 좋았지만, 결혼식장에 가면 하염없이 잔다는 그의 일화 <졸립다.>엔 많은 남자분들이 공감하실 듯 싶다. <택시를 탄 흡혈귀>는 약간은 으스스하지만 너무도 설득력 넘치는 이야기로 난 별로 좋아하진 않았지만 다들 너무도 좋아하시는 1Q84의 도입부를 어떻게 쓰게 됐는지 짐작하게 하던 글이었다. 그외 인상적인 글들을 뽑으라면< 버트 바카락을 좋아하셔요?>가 있는데, 그의 질문에 내가 답해 보자면...하루키씨, 안 자길 잘 한 겁니다. 그녀에게 아마도 좋은 추억이 됐을 거여요. 라고 말해 주고 싶다. 지금쯤의 연륜이라면 굳이 타인의 대답이 필요없을테지만서도. < 몰락한 왕국> 역시 의미심장하게 읽혔고, 자신의 신혼 시절을 이야기한 <치즈 케이크 같은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은 그의 인간미를 읽기에 충분한 감동적인 글이었다. 하여간 수필을 이렇게 쉽게 써내려 간다는 것에 그에게 새삼 존경심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그에게 든 인상이라면 깜찍할 정도로 사랑스럽다는 것이었다. 왠지 마음껏 믿어도 상처를 받지 않을 듯한 든든한 오빠 같은 느낌이랄까.

 

요즘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걸까? 자꾸 묻게 된다. 재능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글은 어디에서 나올까? 어느정도는 작가의 기본적인 인간미가 뒷받침 되어줘야 되는게 아닐까 싶은 것이다. 예전엔 재능만 있다면 거짓으로도 얼마든지 자신을 포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 생각이 바뀌었다. 한편의 글속에서라면 그런 포장이 가능할 지도 모르겠지만, 수 많은 글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그런면에서 좋은 작가를 배출하려면 우선은 아이를 인간미 있게 키우는 것이 가장 기본중의 기본이 아닐까 한다. 엥? 어쩌다보니 이야기가 이상한데로 흘러 버렸다. 하여간 정리를 하자면 좋은 작품들이 많은 책이었다. 다만 완벽하게 다 좋은게 아닌데다 내가 100% 공감했다고 해서 당신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 추천작으로 넣는다. 그러니까 너무 남을 의식하지 않으면 또 그게 문제기도 하다. 완벽을 기하지 않기에 약간은 허술하다고 느껴진다는 것 말이다. 별로 완벽하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는다고 하신다면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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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 Confession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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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종업식 날, 1학년 담임인 유코는 제멋대로인 아이들 사이를 누비면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신이 미혼모가 될 수밖엔 없었던 사정과 딸의 아버지가 에이즈 환자라는 것, 그리고 애지중지 키운 딸이 얼마전 사고사로 죽었다는 것을... 어른이 들어도 감당하기 힘든 이야기지임에도, 별 관심이 없는 아이들은 흘려 듣는다. 산만한 아이들을 상대로 지극히 담담하게 이야기해 나가던 유코는 " 내 딸을 죽인 사람은 우리 반에 있습니다. 이제 난 너희들의 선생님이 아니니 복수를 하려고요"라고 선언한다. 그제서야 엄청난 이야기라며 조용해진 아이들 앞에서 유코는 왜 자신이 스스로 복수를 하러 나서게 되었는지 설명해준다. 그녀의 딸을 풀장에 빠뜨려 죽게 만든 두 명은 13살 형사 미성년이기 때문에, 혐의가 입증된다고 해도 반성문 한 장으로 끝이 날 뿐이라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녀를 분노하게 하는 것은 선선히 살인을 했다고 자백하면서도, 전혀 뉘우침이 없는 둘의 태도였다. "정 억울하면 경찰에 고발하던가"그것이 범죄를 주도한 슈야의 말이었고, 종범에 불과했지만 결과적으로 유코의 딸을 죽게 만든 장본인인 나오키의 엄마는 자신의 아들이 불쌍하다고 되뇌일 뿐이었다. " 생각 끝에 경찰에 맡기기 보단 내가 나서기로 했어요. " 라면서 유코는 조금전에 둘이 마신 우유에 에이즈에 감염된 피를 넣었노라고 말한다. 곧 반은 아비규환이 되어버리고...

 

봄 방학을 보낸 아이들은 새 담임과 함께 2학년을 시작한다. 하지만 중학생 다운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는 듯한 외면과는 달리 유코의 반은 안에서 곪고 있다. 자신이 에이즈에 걸린 줄 알고 광기에 휩싸인 나오키는 학교에 나오질 않고, 아무일도 없다는 듯 꼬박꼬발 출석하는 슈야를 아이들은 이지메한다. (처벌을) 또래에게 더 맡기는 것이 나았구나 싶게 그들은 잔혹하기만 하다. 영문을 모르는 순진한 새 담임은 전직 담임인 유코의 조언에 따라 아이들을 지도해 나간다. 그것이 유코의 계획중 일부라는 것은 알지 못한 채...어떻게 해서든 아들을 지키려 했던 나오키의 엄마는 아들의 광기가 도를 넘어서자 어쩔 줄을 몰라한다. 이지메를 당하던 슈야는 자신이 에이즈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실망한다. 보란듯이 에이즈에 걸려 엄마 아빠를 놀라게 할 생각이었는데 말이다. 그는 아무도 생명이 귀중하다고 자신에게 가르쳐 준 사람이 없었다는 말로 고백을 시작한다. 자신을 임신한 뒤 야망을 접어야 했던 엄마가 자신을 학대했었다는 것과 그럼에도 자신을 버린 엄마를 여전히 그리워 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외로웠다. 살의를 가지고 사람을 죽여대는 괴물이었지만, 내면은 아직도 엄마의 관심이 필요한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엄마의 관심을 받고 싶은 슈야는 이번에는 대량 학살을 하기로 마음 먹는데...

 

영화를 보는데 내내 마음이 착잡했다. 유코에게 딸은 모든 것이었다. 타인의 손가락질을 감내하면서까지 낳은 딸이니 말이다. 그녀가 바란 것은 그 딸과의 작은 행복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작은 소망과 행복을 아이들이 빼앗아가 버렸다. 그들은 살인이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는 듯 보인다. 잘못했다고 미안해 하기는 커녕 장난이었다고 실실 거리니 말이다. 그래서 네가 어쩔건대? 라는 슈아의 눈빛에는 내가 그녀라도 돌았을 것이다. 한 사람에게 전부인 것을 빼앗으면 안 된다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 더군다나 그것이 생명인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지 않는가. 그녀의 분노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아이들의 고백을 들으니, 참 딱한건 그들도 마찬가지다. 어린 사이코 패스처럼 보이는 슈아는 실은 어린 시절 엄마의 학대가 낳은 괴물이다. 사랑이 필요한 나이에 그는 학대를 당하고 버림을 받았다. 그가 유코 선생의 상처입은 마음에 전혀 공감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걸 가르쳐 줘야할 따스한 엄마가 없었으니 말이다. 얼핏 보기엔 슈야의 행동이 지극히 철면피 같아 보이겠지만서도, 어린 시절 공감을 배우지 못하면 평생 그걸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도무지 그 살인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것일까?

 

14살 이하의 아동들은 살인을 저질러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왜냐고? 아직 그들에게 판단능력이 어른만큼 완전하지 못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규정에 대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듯하다. 어리다고 봐 줘봤자, 도무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 못하는 녀석들에게 죄값을 치르지 않게 하는건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을 봐 준다고 무슨 소득이 있냐고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싹수가 노란 놈은 커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 말에 일리가 있다는 점은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과연 그 아이들을 괴물로 만든 것은 누구였을까? 그들을 키운 어른들이 아닐까. 아이들을 탓하기 전에 우린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있는가 배우고 반성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얼마전 tv에서 평범해 보이는 가정을 보여준 적이 있다. 그집 엄마가 어린 아들을 마치 인형인양 이리저리 흔들면서 패는걸 보고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가정내 폭력은 일상적이고, 지속적이며, 그리고 은밀하게 자행된다는 점에서 끔찍하다.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곪아 터지는지는 그 누가 알겠는가. 그 폭력을 멈추게 하지 못하는 한 , 나는 14살 이하 아동 처벌 금지법에 찬성표를 던질 수밖엔 없다. 아동 복지법이 우선인 것이다. 먼저 아이들을 제대로 대접한 후에, 그들의 죄를 물어도 우린 늦지 않을 거라 본다.

 

일본 사회의 병든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냉소적이고 섬뜩한 시선 역시 불편하긴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진짜 요즘 아이들은 저래? 갸우뚱했다. 우리 아이들이 요즘 저렇단 말이지. 과연 그럴까.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정말 큰일 일 것 같은데 말이다. 물론 잘 만든 영화긴 하다.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잘 풀어내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주연 배우의 연기도 좋고, 아이들의 연기를 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비록 그런 섬뜩한 연기를 잘 해내는걸 칭찬해줘야 할지 난감한 기분이었지만서도. 바라건데, 제발 저런것만은 우리나라가 일본을 따라가지 않았으면 한다. 오랜만에 보게 된 중학교 교실의 모습이 어찌나 심난하던지, 과연 우리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도 되는 것일까 걱정이 되더라. 그리고 어른으로써, 난 잘하고 있나 어깨가 무거웠다. 마지막 결말을 보면서 통쾌하긴 했지만서도, 정의가 실현된 듯한 원초적인 감정을 느끼긴 했지만서도, 그럼에도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나로 모르겠다. 어쩌면 지금의 나로써는 풀어내기 힘든 문제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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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리얄리 2011-01-27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나토 가나에의 책을 이렇게 영화로 만들었군요.
말씀하신대로 참 어려운 것 같네요. 이제 알 건 다 아는 중학생들이니 그들의 범죄를 무조건 '철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해도 그런 모습의 이면에는 어른들과 사회의 책임이 무겁게 자리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저는 마지막 장면(책과 동일한 결말이라면)에서 통쾌함보다 '또 안타까운 인간사가 반복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어요. 여러가지 일들로 키워온 마음 속의 괴물이 더 크게 자라는 또다른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요..

이네사 2011-01-27 16:28   좋아요 0 | URL
예, 미나토 가나에의 책이랍니다.

말씀하신대로 도돌이표가 될 뿐이죠. 근원적인 해결책은 아니니 말입니다.
일단 유코의 딸이 죽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회복될길 없는 상처가 시작된 것이지만서도 말여요.
통쾌하다고 햇던건, 대부분 이런 경우 냉가슴 속앓이만 하다 끝이 나잖아요. 그것과는 달리 행동에 나섰다는 자체가 대단하다고 여겨졌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다고 해도, 뭐가 달라지겟나 싶긴 햇어요.
슈야가 과연 자신의 고통을 통해 유코의 고통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될까요?
전 회의적이라고 봤거든요. 거기서 좀 작가와는 차이가 나지요.
아마 그 녀석은 결코 유코의 아픔을 알지 못할 거다. 그게 아마 더 마음을 복잡하게 만든 이유였을 거여요.

다이조부 2011-02-13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말이 궁금한데 알 수 있을까요?


이네사 2011-02-15 01:13   좋아요 0 | URL
선생님인 유코가 딸을 죽인 범인들을 궁지로 몰아서 복수를 하죠.특히나 마지막 슈야는 친구들을 죽이려고 강단에 폭탄을 설치하는데 ,그걸 슈야의 친 엄마에게 가져다 줘서 가족을 잃는 고통을 맛보게 한다는 설정이여요. 솔직히 가장 욕을 얻어 먹어야 할 사람은 슈야의 엄마였기에--아들을 잘못 키웠으니까--시원한 복수라는 생각도 들지만서도, 슈야가 그것에 고통을 입을 거라는 작가의 생각엔 갸우뚱했어요.
과연 학대를 받고 자란 아이가 자신을 버린 엄마를 그리워 할까요?
그 엄마가 죽었다고 눈물이나 흘릴까요? 그게 의문이었죠. 정 궁금하시면 책을 보심도 좋을 듯...
책과는 어떻게 다를지 저도 모르거든요.^^

다이조부 2011-02-16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 저는 책 보다 영화의 결말이 궁금했어요 ^^


영화를 보다가 끝까지 못 봤거든요. 기분이 우울해져서요. 근데 이 영화가 원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검색해
봤는데 무척 인기가 좋군요

아무튼 친절한 설명 고마워요 ㅎㅎㅎㅎ

이네사 2011-02-20 18:51   좋아요 0 | URL
아, 그 심정 이해합니다. 저도 나가고 싶었거든요. 영화관에서 본게 아니라 집에서 봤다면 끝까지 봤을까 의문이여요. 아마 저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원작은 인기가 좋지만 솔직히 영화를 보고서도 원작을 읽고픈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원래 이쪽은 별로인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