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아, 거짓말의 기억 디 아더스 The Others 3
로사 몬테로 지음, 송병선 옮김 / 푸른숲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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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들지는 않지만 습관처럼 결혼 생활을 유지해 나가고 있던 루시아는 휴가를 맞아 남편과 여행을 가기로 한다. 비행기를 타고 떠나기 전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간 남편이 왠일인지 돌아오지 않는다. 결국 비행기를 놓친 루시아는 도대체 남편이 어디로 증발한 것인지 기가 막힌다. 경찰에 신고를 하긴 했지만 그들 역시 난감해 하기는 마찬가지, 루시아는 귀신에 홀린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서 그녀를 맞이하고 있던 것은 한 통의 협박편지, 내용은 몸 값을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난 돈이 없는데...를 외치던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은행 비밀 계좌에 돈이 있으니 가져다 달라는 전화를 받게 된다.

 

남편이 사라진 것도 모라자 이제 남편을 구해야 하는 입장이 된 루시아는 자신은 그런 일을 해낼 수 없다며 벌벌 떤다. 그런 그녀를 안심시킨 것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노인 펠릭스, 한때 무정부주의자이자 투우사 였다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루시아를 기꺼이 도와준다. 처음엔 그런 그를 마뜩잖아 하던 루시아도 자신의 처지가 처지인만큼 그의 도움을 받아 들이기로 한다. 거기에 하는 일 없이 빈둥대던 아드리안이라는 청년마저 남편 구하기 프로젝트에 참가하기에 이른다.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전혀 낯선 존재들이었을 셋은 똘똘 뭉쳐 사건을 헤쳐 나가게 된다. 남편 구하기 프로젝트가 길어짐에 따라 루시아는 점차 자신의 현실을 돌아보게 되는데...

 

공허한 결혼 생활을 마지못해 유지하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있던 여인이 남편의 실종 사건을 겪게 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는 로드무비 형식의 소설이다. 공항에서 실종이 된 남편이라..어딘지 식상하지 않을까 했는데, 이야기 전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 책의 작가인 로사 몬테로는 얼마전 읽은 < 데지레 클럽>의 작가이기도 한데, 역시나 예사롭지 않은 상상력에 이야기를 잘 꾸며 나가는 재주가 있는 여성이지 싶다. 전혀 다른 종류의 이야기를 시침 뚝 떼고 써내려 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얼핏" 남편 구하기 "식의 추리 소설이나 모험 소설이 아닐까 싶으실텐데, 그보다 본질은 여성 자신이 자신을 탐구해 나가고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간다는 페미니스트 성격이 짙지 않는가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건데, 남미 여자들 참 기가 세다는 것이다. 본 받고 싶었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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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코브 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 디 아더스 The Others 1
크리스토퍼 무어 지음, 공보경 옮김 / 푸른숲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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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벅적한 휴가철을 보내고 비로서 조용한 가을을 맞이하고 있던 휴양지 코브 마을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진다. 주부 베스가 목을 매달아 자살했다는 것, 8년동안 사건 사고 없이 한가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던 마을 사람들은 술렁이기 시작한다. 아무도 자원하는 사람이 없어 어거지로 순경이 된 시오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딘지 석연치 않은 베스의 주변, 시오는 자살로 사건을 마무리 지으라는 상사의 명령을 무시하고 조사를 시작한다. 평소 베스가 항 우울제 처방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오는 마을의 정신과 주치의 밸러리를 찾아간다. 베스가 자살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은 밸러리는 마을 사람들에게 항우울제 처방 대신 위약을 투약하기로 마음 먹는다. 곧 마을은 우울한 사람들로 넘쳐나고, 마을 사람들의 우울함을 먹고 사는 술집 주인 메이비스는 갑작스런 호황에 쾌재를 부른다. 그녀는 장사를 위해 우울한 노래만 불러대는 블루스 가수 캣 피쉬를 고용하고, 갑작스럽게 우울하고 염세적인 그림을 그리게 된 전직 교사는 각광을 받게 된다.

 

한편 코브 마을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 우울에 반응하는 바닷 괴물이 깨어나 마을로 들어온다. 가리는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던 괴물은 왕년의 포르노 스타이자 현재 마을의 왕따신세인 몰리의 집까지 오게 된다. 괴물이 사람을 집어 삼키는 것을 목격한 몰리는 자신이 드디어 정신줄을 놓았구나 걱정하기 시작하는데...

 

정신과 주치의가 항 우울제 처방을 금지했다. 그렇게 된다면 그것에 의존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 라는 지극히 단순하게 보이는 상상력으로 시작하는이 소설은 의외로 가지를 잘 펼쳐 나가는 나무처럼 이야기를 잘 풀어나가고 있었다. 우울을 먹고 사는 바닷 괴물이라는 설득력없는 캐릭터를 가지고 어떻게 이야기를 끌어 가겠나 싶었는데, 왠말씀~~~! 이야기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생동감 넘치다 못해 마치 한 마을의 소동을 눈앞에서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하지만 작가가 바닷 괴물이라는 괴상한 캐릭터만으로 이 책을 승부한 것으로 보심 곤란하다. 바닷 괴물 못지 않게 기괴한 개성들을 자랑하는 마을 사람들의 각각의 개성들이 확연히 녹아있는 소설이었으니 말이다. 일단 재밌고, 흥미진진했으며, 인물 하나 하나에 대해 성격을 불어넣는 작가의 솜씨가 초짜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특히나 우울증에 대해 심도있는 조사를 해서 책 속에 풀어넣었다는 점이 맘에 든다. 겉핥기가 아닌, 우울증에 대한 최신 보고서로써도 손색이 없는 책이었으니 말이다. 적어도 책을 쓴다 하면 이 정도는 조사를 해야 되나보다 싶게 꼼꼼하고 방대한 조사도 그랬지만 우울증에 대한 편견을 없애주는 깨인 시각도 작가로써의 책무를 다하는 듯해서 좋았다. 곳곳에 박혀 있는 유머는 덤, 우울한 코브 마을이라고 해서 비관적인 책이라고 생각하심 오해다. 비틀어진 유머가 일품이니 말이다. 하니 행여 우울해질까 걱정할 필요없이 보셔도 되겠다.그러게 모두 괜찮은 결말이라고 하질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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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이 공짜! 그림책 도서관 44
엘리스 브로우치 글, 데이비드 스몰 그림, 정선화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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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분들은 어쩌려는가 모르겠는데 나는 흔히 제목을 보고 책을 고른다.  세련된 제목을 지을 정도로 편집자가 신경을 쓴 책이라면 일단은 재미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별로 흥미가 당기지 않는 책이었다. 그림도 별로 뚜렷하게 다가오지않고 말이다. 그냥 시험삼아 내용을 읽어봤는데. 이거 왠일... 재밌지 뭔가. 딱 조카 취향이라는 생각에 당장 빌려왔다. 

조카에게 읽어주니 그야말로 대박이다.  

이렇게 몰입해서 들은게 언제인지 싶을 정도로, 아니 녀석이 제일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녀석의 반응은 대단했다. 어찌나 재밌게 듣는지, 책을 읽어 내려 가는데 끽소리 한번 없다. 물론 공룡이 공짜! 라는 말에는 침을 꼴깍하고 집어 삼켰었지만서도 말이다. 

내용은 심플하다. 하긴 동화책 내용이 복잡해서 뭐에 쓰겠는가 만은... 

금요일이 엄마 따라 마지못해 쇼핑에 나선 나는 빵가게 들렀다 그만 깜짝 놀라고 만다. <도넛 한 상자에 공룡이 공짜>라고 쓰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장난감 공룡을 말하는 것이겠지 하던 엄마와 나는 빵가게 주인 아줌마가 공룡을 가져가라면서  함박 웃음을 짓자 어리둥절해진다. 그리고 나타난 진짜 공룡!!!!!!!!!!!!! 나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른다. 엄마는 패닉 상태에 빠져서 어쩌다 이런 행사가 벌어진 것인지 궁금하다. 가관인 것은 병원에 들른 나에게 간호사 아줌마가 한 말, 주사 한방 맞으면 공룡 두개를 공짜로 준단다...세상에. 이런 일이...급하게 나는 주사를 맞겠다고 선언하지만 안타깝게도 예방주사는 이미 지난번에 맞았단다. 하는 수 없이 공짜 공룡 한개로 만족했야 했던 나는 엄마를 보면서 머리를 잘라야 한다고 선언한다.  

이발사 아저씨는 풍선을 주시지? 라고 희망찬 과거를 회상하던 엄마는 이발사 아저씨가 익룡을 데리고 오자 경악한다. 그동안 공짜로 받은 공룡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짜 공룡 세마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엄마에게 나는 발에 매달리며 애원을 한다. 집에서 기르면 된다고.... 과연 나의 소원은 이뤄질 것인가? 집으로 공룡을 데려간 나는 새 날을 맞은 듯 희희낙낙 하는데... 

 와, 이런 상상력이 가능했다니... 감탄할 정도로 대단한 상상력이다. 공짜로 아이들에게 공룡을 선물할 생각을 해내다니 말이다. 오죽햇으면 왠만한 일엔 나보다 조숙한 여섯살짜리 조카가 내게 이렇게 묻더라. 도대체 이런 일이 언제 일어난 것이냐고? 어제? 나를 쳐다보는 눈길을 보니 이런 횡재를 자신이 놓쳤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믿겨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눈길 속엔 이게 단지 동화일 뿐이라고, 이런 일은 벌어진 적이 없다고 말했다간 연약한 동심에 크게 상처를 입힐 거라는 무언의 협박이 담겨져 있었다. 아...너무도 일어나길 바라다 보면 일어나지 않음을 잘 알면서도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로구나, 그때 깨달았다. 녀석은 마녀가 있다는 말도, 인간이 날 수 있다는 말도 믿지 않을만큼 분별이 가능하지만서도, 공룡을 공짜로 준다는 말에는 현실 감각을 상실해 버렸으니 말이다. 

내용이 재밌어서 조카도 좋아한 책이 되겠지만 읽어주는 나 역시도 재밌었다 .무엇보다 흥분한 조카를 보는 덕분에 더 읽는 보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 책을 어떻게 읽어주라고, 평생의 조언자가 될 거라고 말은 많이 하지만서도, 정작 책을 읽게 되는 동력은 그것이 나에게 어떤 영양가 있는 조언을 해 주어서는 아닌 것 같다. 살아가다보면 물론 책 속에서 지혜를 구해야 할때도 있지만서도 ,그것보단 일차적으로 책이 재밌어서 읽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면에서 공룡을 좋아하는 남자 아이들에겐 그야말로 하늘이 보내주신 동화책이 아닐까 한다. 주저없이 부모님들에게 강추~~~! 내 개인적으로는 아직 어린 아이인 조카를 발견할 수 있어 감동적인 책이 아니었을까 한다. 아마도 언제까지 기억에 남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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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 손턴 와일더의
손턴 와일더 지음, 김영선 옮김 / 샘터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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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지어 지금도, 나를 빼고 나면 에스테반과 페피타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카밀로 홀로 그녀의 피오 아저씨와 그녀의 아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이 여인 홀로 자신의 어머니를 기억한다. 그러나 곧 우리는 죽게 될 것이고, 그 다섯 사람에 대한 모든 기억은 지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우리 자신도 한동안 사랑을 받다가 잊힐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 사랑이면 충분하다. 사랑을 하고 싶은 모든 충동은 그런 충동을 만들어낸 사랑에게 돌아간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위한 땅이 있고 죽은 사람들을 위한 땅이 있으며, 그 둘을 연결하는 다리가 바로 사랑이다. 유일한 생존자이자 유일한 의미인 사랑! "


아마도 이 책을 고전으로 만들게 한 명문장이 아닐까 싶어 옮겨 보았다. 언뜻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실텐데,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을 하자면 위 문장에 등장하는 에스테반과 페피타, 피오 아저씨와 카릴로의 아들, 그리고 백작부인의 어머니인 마리아, 위 다섯 사람은 1714년 7월 페루의 산 루이스 레이 다리를 건너다 사망한 사람들이다. 한 세기 전에 만들어져 날마다 수 백명의 사람들이 지나 다닌 다리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다리가 붕괴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던 사람들에게 그 사건은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특히나 죽은 사람이 ' 나' 일수도 있었다는 자각은 리마 사람들에게 공포와 동요를 몰고 온다. 성대한 미사가 올려지고 회개의 공물이 물밀들이 밀려온다. 그런 소동 가운데서 유난히 침착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주니퍼 수사다. 때마침 다리가 무너지는 광경을 목격한 그는 "왜 다른 사람이 아니고 그들이었을까?" 라는데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것이 하느님의 예정된 조화 내진 계획이었을 것이라고 확신한 그는 다리를 건너다 사망한 다섯 사람들의 인생을 조명해 보기로 한다. 그들의 사망이 우연이 아닌 "신의 섭리 "라는 확신이 그로 하여금 개인들의 비밀스런 삶을 추적하게 만들기에 이른 것이다. 말하자면 그 사건이야말로 '신의 의도'를 밝혀낼 수 있는 실험실로 그에게 안성맞춤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그가 밝혀낸 ' 신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고 그는 증명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가 6년동안 각고의 노력을 거쳐 만든 책은 광장에서 불태워지고 마는데...

 

그렇다면 여기서 주니퍼 수사가 밝혀낸 사망자들의 삶을 들여다 보기로 하자. 후작 부인인 마리아는 자신이 갖지 못한 미모를 타고 태어난 딸을 맹목적으로 사랑한다. 자신의 사랑이 딸에겐 집착으로 느껴질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마리아의 행동은 결국 딸을 숨이 막히게 한다. 자신을 되도록 멀리 데려다 줄 남자를 구해 결혼한 딸은 그제서야 안도한다. 그러나 스페인으로 시집을 갔다해도 편지를 통해 여전히 자신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엄마가 딸은 성가시기만 하다. 냉정하게 거리를 두는 딸이 한없이 얄밉고 서운하던 마리아는 딸이 아기를 가졌다는 소식에 반색을 한다. 하지만 딸에게 달려갈 수 없는 것이 자신의 처지,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울적한 마리아는 자신이 보낸 길고 세련된 편지가 실은 딸에 대한 강박적인 사랑의 수단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고아로 자라난 페피타는 수녀원장이 자신의 가능성을 알아봐주자 감격한다. 하지만 자라는 동안 사람들에게 주로 질타와 무시를 당해왔던 페피타는 수녀원장의 호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용기를 내서 수녀원장에게 자신의 뜻을 밝히려 결심한 그녀는 마리아 부인과 함께 다리를 건너게 된다. 쌍둥이 고아였던 마누엘과 에스테반은 서로에게 텔레파시가 흐른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다. 상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 채던 둘은 마누엘에게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면서 사이가 벌어진다. 에스테반의 반발로 여자를 포기한 마누엘은 얼마있지 않아 죽고 만다. 쌍둥이 한쪽을 잃어버린 에스테반은 마치 죽은 것이 자신인양 절망한다. 자살하고 싶어하는 그에게 선장은 죽지 않은 자는 그저 앞으로 나가는 수밖엔 없다고 조언한다. 열살 이후로 자신이 재능만으로 세상을 살아온 피오 아저씨는 카밀라를 만나면서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다. 이성적인 사랑이 아니라 순수하게 성장의 가능성을 사랑했던 피오 아저씨는 곧 카밀라는 리마의 최고 여배우로 만든다. 카밀라가 자신의 재능을 낭비하지 않고 올바르게 살기를 바랐던 피오는 그녀가 방탕한 삶을 살아가자 실망한다. 페루 총독의 정부가 된 카밀라는 흥청망청 살아가다 천연두에 걸려 미모를 잃게 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미모덕이라고 생각해온 카밀라는 이제 그 누구의 사랑도 믿거나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하지만 카밀라에 대한 사랑은 변함없던 피오 아저씨는 그녀를 만나 설득하기 시작하는데...

 

<변신 인형>(왕멍 저)이란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난다. 칠순이 넘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 내 인생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내 인생의 화양연화는 이제 올 것이다" 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음, 그 나이 정도 되면 포기할 때도 됐는데 말이다. 실제로 대부분은 포기를 하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칠순의 아버지처럼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라라고 주장하면서 포기를 모르는 의지의 인간을 만나면? 철 좀 들라고 말해주고 싶다. 인생은 매일 다른 버전으로 들려주는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니 말이다. 물론 자신의 인생이 드라마 주인공처럼 풍성하고 다채로우며 성공적이고 사랑으로 가득한 삶이되길 바라는 맘은 이해한다. 하지만 현실은 환상과는 억만년만큼 차이가 있다. 우리에게 죽음이란 한계가 있고, 우린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한 가지 인생만을 살 뿐이다. 비록 그것이 안타깝게 끝이 나건 애절하게 끝이 나건 중간에서 끝이 나건 사랑에서 실패한 채 끝이 나건 간에, 삶이 무한할 거란 추측은 착각일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죽음이라는 화두 앞에서 한계가 지어지고 만다.

 

내 가까운 지인의 죽음은 엄청난 비극이지만, 백 단위로 표시된 죽음은 그저 숫자일 뿐이라 하질 않나. 마찬가지로 나의 실패한 삶은 내 자신에게는 비극일지 모르나, 전세계 인류와 그 전에 죽은 선조까지 합한다면 역사가 흘러가는 자연스런 과정일뿐이다.. 그런면에서 붕괴된 다리를 우연히 건너는 바람에 죽게 되었다는 다섯 사람 역시 역사적인 면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티클만큼의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을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못하다. 그들은 왜 그들이 죽을 수 밖에는 없었는지 생각을 하게 된다. 전혀 그들과 관계없는 주니퍼 수사 같은 경우는 자신의 논리에 그들을 끼워 맞추길 바라고. 신의 의지이자, 어떤 예정된 계획으로서의 인간의 삶을 증명하기 위해서 말이다. 무언가 뜻이 있을거야. 그렇게 우주가 신이 무위적일리는 없지 않아? 라고 그들을 말한다. 만일 그렇다면 인생은 너무 허무한 것이니 말이다. 허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인생은 우연이 아니여야 할 듯 싶다. 그렇다면 현실은?

 

이 책의 저자가 말했듯이, 우리는 본능적으로 안다. 주니퍼 수사의 열정이 비록 가상하기는 하나 ,그의 결론을 우리가 받아들이긴 힘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다리는 그저 우연히 붕괴된 것이고, 죽은 다섯명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 역시 그저 우연이었을 뿐이다. 가뭄과 수해가 평등하게 배분되지 않듯이 그저 인생이란 공정하지고 평등하지도 않은 것이다. 모든 것이 신의 예정일 뿐이라고 믿는다고 해서 딱히 손해될 것은 없겠지만서도, 마음 속으로는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렇다면 우연의, 무작위적인, 신이 아무것도 예정하지 않은 이런 인생을 사는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나보다 먼저 죽은 사람은 내 기억속에서나 존재한다. 내가 죽으면 그 기억마저 사라질 것이다. 그러는 나는 과연 이 역사속에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 역시도 죽은 다음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이렇게 펄펄 살아서 내 개성과 열정을 토로하고 있지만서도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삶은 아무것도 아닌 것일까?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기에?

 

그에 대한 작가의 답이 바로 맨처음 옮겨놓은 문장이다. 그래, 우리에겐 사랑이 남는다. 우리가 살아있었다는 증거로 말이다. 그것이 비록 어떤 역사서 속에서나 편지나 일기에 적혀 있지 않다고 해도, 사랑만은 우리의 영혼 속에는 남는다. 우리가 사랑했던 기억과 우리가 사랑한 사람들에 대한 추억이 말이다. 비록 그것이 성공한 것이었건 올바르지 못한 것이었건 간에 상관없다. 찬찬히 들여다보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것만이 남데, 라고 말하는 저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떡일 수 밖엔 없었다. 통찰력있는 견해이자, < 우리 읍내 > 라는 탁월한 희곡을 쓴 작가가 내뱉을만한 지혜다. 어떠신가, 당신이 보기엔? 내 보기엔 꽤 설득력있는 주장 같아 보이는데 말이다. 만일 당신에게 인생에 이보다 더한 것이 있다고 생각되신다면 소설을 써보기실 권해본다. 신선한 주장으로 각광을 받을수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비교적 얇은 책이지만 얄밉게도 자신이 하고픈 말만 조리있게 군더더기 없이 서술한 책이라서, 다른 두꺼운 책들보다 훨씬 더 양질의 영양가를 보장하고 있었다. 다만 그가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들이 쉽게 얻어지는 지혜가 아니라서, 독자에 따라 어떻게 읽힐런지는 장담 못하겠다. 독자 각자 , 자신의 경험에 비춰 살뜰하게 읽으시면 되겠다 싶어 추천작으로 넣는다. 깔깔대고 웃기는 책은 아니라 재미는 원하시는 독자라면 실망하실지도 모르지만서도, 그것이 아니라면 인생에 한번쯤은 해봄직한 의문에 함께 질문하고 답해 나가는 과정을 경험하실 수 있을 거라 본다. 75년전에 쓰여진 책이라고 하는데, 참...요즘 작가 중에서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다. 놀라웠다. 그건 그간 눈부시게 발전했다는 과학이며 광범위한 교육이 결국 인간의 지성엔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런면에서 보자면 우리는 인간이란 향기에서 과거보다 뒤쳐지고 있는게 맞지 싶다.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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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우의 성
와다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들녘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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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덴쇼 18년 (1590년), 전국 통일을 눈 앞에 두고 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마지막까지 반기를 들고 있는 간토지방을 평정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간토 지방의 제왕인 '호조' 가문의 비호를 받으며 100여년간 평화롭게 영지를 다스리고 있던 오시성의 나리타 가문은 그 소식을 듣고 고민에 휩싸인다. 호조를 배신하고 히데요시에 항복을 할 것인지, 아니면 명분을 쫓아 전쟁을 할 것인지가 문제였던 것이다. 무사 가문의 정신이나 충정을 생각하면 전쟁을 불사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겠으나, 성주와 대신들은 분함을 참으며 실리를 따르기로 한다. 성주가 자신이 호조성에 들어가 있는 동안 항복해 줄 것을 당부한 사이, 히데요시의 오른팔이라고 불리는 이시다 미쓰나리가 대군을 이끌고 와 성을 포위한다. 무훈을 세워 히데요시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생각이던 이시다는 뜻밖에도 오시성 사람들이 항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오자 호적수를 만났다며 기뻐한다. 오라, 내 뜨거운 맛을 보여주마, 라며 시작된 전투는 하지만 어째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엉뚱하게 전개되 가는데....

 

자, 이제 오시성의 사정을 들여다보자. 성주인 사촌으로부터 항복할 것을 위임받았던 나리타 나가치카는 농민들에게조차 얼간이(노보우)라고 불리면서 희희낙낙하는 천하 태평한 자이다. 농삿일이 재밌다며 꼬박꼬박 거들러 가지만 제대로 하는 것이 없에 네살짜리 꼬마아이에게조차 구박 받는 그를 사람들은 격의없이 대한다. 그런 그에게 아무리 바보라도 항복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싶어 맡긴 임시 성주 자리에서 그는 사고를 치고 만다. 모두가 경악하게도 항전을 선언해 버린 것! 2만 2천명 대 5백, 말도 안되는 숫적 열세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어차피 승산이 없었다. 하지만 약자를 짓밟는 세력에게 물러설 수 없다고 외치는 노보우, 그의 말에 중신과 무사들은 갑자기 힘을 얻고 당당해진다. 당장 전투 태세에 돌입한 무사들은 성 주변의 농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처음엔 우리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거절하던 농민들도 총사령관이 노보우라는 말에 도와줘야 한다면서(?) 달려온다. 농민들의 가세로 전투력이 4배(2천 정도) 늘어난 오시성은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다는 듯 기세가 등등해진다. 하지만 전쟁이 어디 기세만으로 이길 수 있나? 라는 비관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첫번째 전투에서 오시성 사람들은 대승을 거둔다. 작은 고추라고 얕잡아 봤다가 큰 코 다친 이시다 사령관은 째째하게 싸우느니 통 크게 수장으로 나가자고 결심한다. 사람들을 동원 임시둑을 만드는 거대 공사를 진행한 이시다 진영은 드디어 둑을 무너뜨리고, 물밀들이 밀려오는 물 앞에서 오시성 사람들은 두려움에 떤다. 단 한 사람, 얼간이 노보우만 빼고 말이다. 수장전략은 실패할 것이라면서 마냥 태연한 노보우의 속셈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오시성 사람들의 운명은?

 

대략 2만대 2천이라는 숫적인 열세에도 꿋꿋하게 대군을 맞이해서 잘 싸워준 오시성 사람들의 기개와 무사 정신을 그려내고 있는 소설이었다. 과장해서 말하면 일본판 적벽대전이라고나 할까. 물론 아주아주 많이 과장을 하고, 일본과 중국의 스케일의 차이도 고려해야 하며, 무엇보다 나관중과 와다 료라는 작가의 역량은 비교에 넣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를 달고 말이다. 저자는 아마도 과거 무사 정신을 낭만적으로 회상하는 사람인가 보았는데, 17세기 이야기라고 해서 고리타분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현대적인 해석이 더해져서인가 아니면 기본적으로 인간이라는게 달라질게 없어서인가 현대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특히나 등장인물들이 개성적이라는 점에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얼간이라고 불리면서도 전혀 노여움을 타지 않는, 모든 면에서 무능해 보이지만 진짜 나서야 할 때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줄 아는 나리타 나가치카는 새로운 리더상을 제시하고 있었고, 그의 소꼽친구 단바는 평소 무능한 친구가 한없이 못미더워했지만 결국 자신보다 그릇이 큰 인물이라는 점에 고개를 숙인다는 것이 멋졌다. 꼬꼬마 시절부터 무사기질을 보여주던 이즈미는 단바와 최고 무사 자리를 경쟁하다 드디어 진짜 전투를 하게 되서 신이 난 인물이고, 자칭 전술의 천재지만 체력이 약해 실기 한번 치뤄보지 못한 풋내기 무사 유키에나, 모두들 나가치카를 얼간이라고 부를 때 그의 진면목을 알아봐준 성주의 딸 가이히메 역시 틀에 박힌 성격이 아닌 본인 고유의 성정이 살아있어 마치 살아있는 사람들을 보는 듯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재밌었던 것은 농민들이었다. 자신들이 죽을지도 모르는 전투를, "우리가 도와주지 않으면 얼간이는 아무것도 못해..."라는 마음으로 나섰다고 하니 이 얼마나 감동적인가. 인간의 마음은 과연 무엇으로 움직일까? 그건 돈일 수도 있고, 폭력일 수도 있으며, 간계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위에서 아래를 다스린다는 종속적인 사고관은 인간의 마음을 진심으로 움직이게 하지 못한다. 단지 이해관계가 달렸을 때 잠시의 복종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면에서 얼간이는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고, 그것이 가식이나 허례가 아닌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기에 힘이 있었다. 바로 그것이 그가 오합지졸을 이끌고 대군을 상대로 당당하게 싸울 수 있는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작가가 과거의 잊혀진 전투를 굳이 재조명해서 보여주려 한데는 그것을 보여주려 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근대 일본사史인데다 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 나랑 뭐 관련이 있겠어? 재미 있겠어? 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괜찮았다. 전쟁에 관심 있으신 분들에겐 흥미있는 책이 되지 않을까 한다. 딱히 전쟁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뭐 읽는데는 상관없지만서도. 이 전투는 백년 뒤에도 후손들이 언급할 것이라고 그들은 말했다던데, 삼백년이 지난 후에도 그들을 기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뿌듯해할까 싶다. 하긴 그들의 기개와 기상 ,꺽이지 않는 절개, 종속이 아닌 평등,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목숨을 걸고 보여주었으니 그래도 되지 싶다. 문득 책을 보니 표지에 이런 말이 쓰여져 있다.

" 애초에 저 성을 총칼로 빼앗으려 한 것은 실수가 아니었을까? "

그렇다. 실수였다. 하지만 인간의 정신은 수치로 환산하기 어려우니, 히데요시와 미쓰나리의 실수는 봐줄만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착오와 실수들이 역사를 재밌고 풍성하게 만들어 주니 말이다.

 

장점이 많은 책이긴 했지만, 소설적인 면에서는 작가가 간간히 흥분하고 오바하는 문장들을 사족처럼 끼워넣은 것이 별로였다. 본격 소설이라기 보다는 드라마나 영화 대본으로 쓰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올해 영화로 만들어져서 개봉된다고 한다. 과연 배우가 주인공인 얼간이를 어떻게 연기해 낼지, 다른 등장인물들이 책 속의 유머와 비장미를 어떻게 살릴런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영상으로 만들면 이야기가 더 풍성해 보이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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