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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지레 클럽, 9월 여름 ㅣ 디 아더스 The Others 2
로사 몬테로 지음, 송병선 옮김 / 푸른숲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리뷰를 쓰려니 내가 생각하는 추천작과 강추천작의 기준은 무엇일까 의아해진다. 도무지 얼마만큼의 감동을 받아야 내가 강추천작이라고 입에 거품을 물게 되는 것인지 내 자신이 내리는 결정임에도 모호하게 느껴진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기준이란게 대충 즉흥적이고 주관적인 것이었나 생각되실지 모르겠으나, 사실 보통은 그렇진 않다.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책을 다 읽고 나면 이건 두말할 것도 없이 강추천작이야, 내진 볼 것도 없이 비추천작이네, 라는 결정이 내면의 갈등없이 내려지니 말이다. 아마도 내 안에 설정된 바(bar) 가 있어 그 정도를 갸늠하는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모든 책들이 그렇게 선명하게 각각의 범위에 착착 들어가는건 아니니, 예외란 언제나 발생하는법 아니겠는가. 어디에 넣어야 좋을지 애매한 책이 생기기 마련이다. 바로 이 책처럼 말이다. 모처럼 신선하고 잘 짜여진 책을 만나 재밌게 읽었음에도, 어째 강추천작으로는 좀 부족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무지 어디서 그 차이가 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서도, 망설여지는 나를 보자니 그 기준이란게 뭘까 궁금해진다. 언뜻 스쳐가는 생각엔 주저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해도 괜찮을 거란 확신과 관련이 있지 않는가 싶지만서도... 솔직히 이 책, 중고생들에게 필독서 목록에 넣을만한 책은 못 됐으니 말이다. 물론 그들이 읽는다고 해서 해 될 것은 없겠으나, 분명 별 재미를 못 느낄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어른들이 읽기에 적당한 책이라고나 할까. 하긴 어찌 안 그렇겠는가. 인생을 어느정도 산 사람들이나 공감을 할 수 있는 패배자들의 인생 이야기니 말이다.
소설은 어떤 미친 여자가 한 신사 양반을 4층에서 내던졌다는 기괴한 사건 기사로 시작한다. 여기서 작가는 어떻게 왜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되었는가 추적하게 되는데 , 그 중심에 서 있는 곳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인 <데지레 클럽>이다. 한때 창녀들의 보호소 역활을 했던 그곳은 8년전 한 양아치가 인수를 함에 따라 영락해가는 클럽으로 모습이 바뀌었다. 날마다 추함을 더해가는 클럽에서 아무도 듣지 않는 볼레로를 불러대는 가수 벨라는 남자라면 신물이 나는 50대의 여인이다. 인생을 낭비해 버렸다면서 이제 남은 것은 죽음뿐이라고 생각했던 그녀 앞에 포코라는 클럽의 은둔자가 나타난다. 늙고 추레한 알콜 중독자의 모습에 경계를 하던 벨라는 그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는 가슴이 설레인다. 과거 암살자였으며 용병이었고 쿠바 클럽의 지배인이었다고 주장하는 포코는 벨라에게 볼레로가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쿠바로 떠나자고 제안을 한다. 한편 44살이 되도록 처녀인 채 살아가던 안토니아는 착한 성처녀의 이미지를 버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매번 실패를 거듭하던 그녀는 아파트 관리인의 조카 21살 다미안을 알게 되면서 드디어 사랑에 눈을 뜨게 된다. 나이차 만큼이나 기괴하기만 한 둘의 사랑은 중력을 이기지 못하는 대포알처럼 파국으로 치닫는다. 한편 안토니아의 오빠로 파렴치한 바람둥이로 한평생을 살고 있는 안토니오는 50줄에 들어서 정력이 떨어지자 공포에 떤다. 결국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한 그는 18살의 섹시한 바네사에게 청혼을 한다. 클럽에서는 창녀처럼 남자에게 당당하게 군림하나 실은 비루한 청소부일뿐인 바네사는 점잖은(?) 안토니오가 청혼을 해오자 환호한다. 하지만 그녀의 결혼은 그녀를 오매불망 쫓아 다니는 광기어린 사랑의 주인공 포코로 인해 물거품이 되고 마는데...
정말 실패자들을 이렇게 한자리에 모아놓기도 힘들겠다 싶을 정도로 온갖 종류의 실패자들이 다 나와주시는 책이다. 원작 그대로 영화로 만든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개성 뚜렷한 인물들에 무리 없이 흘러 가는 이야기 전개가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던데, 특히나 인물들의 성격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나돌아 나닌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생동감 있었다. 입체적이고 신빙성 있는 이야기 전개 역시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니라 어느 변두리 망해가는 클럽을 둘러싸고 일어났음 직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게 했는데, 물론, 이야기 자체로만 본다면 늘상 듣는 사건들과는 전혀 거리가 먼 특별한 이야기 였음에도 그랬다. 왜 그런거 있지 않는가. 그렇게 색다른 분위기의 장소라면 왠지 그런 일들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이야기 말이다. 아마도 그만큼 작가가 이야기를 재치있게 잘 풀어냈다는 뜻이겠지만서도...
거기에 단지 실패자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들이 왜 그런 삶을 살게 되었고, 왜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하는 그 암담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지는 애처롭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른 실패자 클럽의 책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말하자면, 애정을 갖고 들여다는 보되, 현실을 거짓으로 덧칠하지는 않았다고나 할까. 삶의 희망? 욕망? 행복? 그런 것들이 더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살다가 예기치 않는 만남으로 다시 꿈을 꾸게 된 소박하기 그지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좌절하게 되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비록 그들의 꿈이 현실과 마찰하면서 파열하는 모습이 안스럽기는 했지만 어쩌랴. 그것이 인생인 것을... 재밌는 것은 처음 도입부에 등장한 비정상적인 사건이 책을 다 읽을 무렵엔 너무도 정상적이여 보인다는 것이었다. 하하하...그러니까 인간이 미친다는 것은 알고보면 그다지 특이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니까. 압력 밥솥에 압력을 가하면 증기가 솟아 오르듯, 인간의 정신에 가해지는 압력이 극에 달하게 되면 그 누구라도 그렇게 폭발하고 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여 어느 끈적끈적한 늦은 여름 저녁 무렵, 자신의 불행과 전혀 상관도 없는 동창생 안토니오를 4층 창문으로 내 던져버린 벨라가 이해를 넘어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는 것이지. 그래, 적어도 그렇게 화끈하게 분노를 발산했으니 이젠 제 정신으로 돌아와 선량한 벨라로 살고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보면서 리뷰를 마치려 한다. 1983년에 쓰인 책이라는데 지금 시선으로 봐도 공감이 가는 저자의 페미니스트적인 시선이 놀라웠다. 결국 페미니스트의 뼈대는 휴머니즘이라는 뜻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이데올로기로써가 아니라, 그저 인간의 조건으로써 말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나저나 이 책의 작가 로자 몬테로, 처음 만나는 작가인데 사람을 통찰하는 면이 예사롭지 않다. 만약 그녀의 다른 책들이 이 정도의 깊이를 지녔다면 다른 책들도 기대해 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읽기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을테지만서도...
※<밑줄 그은 말>
" 그건 아주 오래전이에요. 내게도 아직도 시간이 있을 때였지요. 이제는 시간이 없어요. 내 시간은 끝났어요. 이제는 시간도, 낮도, 아침도, 밤도없어요. 모두가 똑같아요. 이것이 가장 참기 힘든 거여요. 가끔씩 나는 내가 미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거야 말로 위대한 진실이여요 포코씨."
위대한 진실. 벨라는 한번도 그렇게 예쁘고 멋지게 말하겠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도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그녀에게도 시간은 이미 끝나있었다. 그게 언제인지, 어떻게 끝났는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기억이 없었고, 하루 하루가 똑같은 나날이었으며, 일주일이 다른 일주일과 뒤섞이고 있었다. 몇 년 전부터는 이미 미래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그런데 지금 포코가 그런 사실을 너무나 잘 표현했던 것이다. 마치 그녀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이상했을 뿐만 아니라 늙고 추하며 역겨운 냄새를 풍기던 포코가 말이다. 마치 그녀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그녀는 위 언저리가 근질근질하고 무릎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41
너무 많은 시간을 바깥에서 보내야 하는 조종사의 아내들이나, 전업주부라는 직업 이외에는 별 다른 일이 없는 편안한 중년 부인들, 아파트와 결혼 생활의 고독속에서 지겨워 하며 불만이 가득한 여자들의 경우는 특히 그랬다. 목록 선택은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거의 모든 여자들이 한숨을 내쉬고 몸을 떨면서 그에게 굴복을 했다. 모두가 부유한 집에 사는 화려한 여자들이었다. 자존심이 강하고, 실크 옷에 명품 스카프를 두르고서 남편이 면세점에서 사다준 향수를 뿌리는 여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상의 여왕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불행한 여자들이었다. 훌리아처럼 처음에는 차갑고 거만하지만, 결국에는 재산과 사회적 지위와 은 재떨이와 조잡한 취향으로 가득한 화려한 집을 잊어 버리고 그의 발밑에 쓰러지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