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래의 발소리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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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으스스하고 그로테스크한 면이 매력인 미스테리 단편집이다. 첫번째 단편인 <방울벌레> 에서는 11년전 저지른 살인으로 매장한 시체가 폭우로 드러나면서 내가 범인으로 지목되면서 시작된다. 네가 한 살인이지 않느냐고 추궁하는 형사들에게 나는 줄기차게 사고사였음을 주장한다. 정황상 모든 것이 나를 살인범이라고 가리키는 가운데, 하지만 형사들조차 왜 내가 내 학생증이 들어있는 자켓을 시체와 함께 묻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데...두번째 <짐승>은 수제 집안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로 떨어져버린 재수생의 이야기다. 재수를 하게됨과 동시에 식구들의 멸시를 한 몸에 받고 있던 나는 죄수들이 만들어 판매한 의자를 우연히 망가뜨리게 된다. 의자다리에 이상한 글자가 쓰여져 있는걸 본 나는 호기심에 인터넷을 통해 그 글을 쓴 죄수를 찾아보게 된다. 그가 가족들을 살해했으며, 그 글이 그것에 대한 글이라는걸 추리하게 된 나는 부쩍 호기심에 몸이 단다. 결국 나는 무슨 계시라고 받은 듯 죄수 가족들을 찾아 나서는데... <요이기츠네>는 고등학교 시절 호기로 강간을 하려다 엉겹결에 살인을 저지른 내가 20년후 당시의 나와 마주친다는 설정이다. <통에 담긴 글자>는 아내와 딸을 교통사고로 잃어버린 뒤 정신줄을 놓아버린 친구로부터 추리소설 원고를 받게 된 내가 그의 원고를 훔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 작품을 가지고 성공적인 데뷔를 한 나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친구의 질책을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의 집에서 저금통을 훔쳤다는 어리숙한 도둑의 방문에 나는 어리둥절해 진다. 과연 그 도둑의 정체는 무엇일까? < 겨울의 술래>는 방화로 얼굴이 뭉개져버린 내가 나를 사랑한다고 달려온 남자친구에게 모종의 요구를 하는 것으로 그리고 마지막 단편인 < 악의의 얼굴>는 자신을 이지메하는 동급생 S를 없애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나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미치오 슈스케라는 작가 책은 처음 읽었는데, 아마도 미스테리쪽에서는 알아주는 작가로 주로 독자들의 뒷통수 때리는 반전으로 유명한 사람인가 보았다. 그런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는 이 책속에서도 변함이 없어서, 비록 단편들이라고는 하나 장편 못지 않은 알찬 구성과 빈틈없는 이야기 전개, 그리고 허를 찌르는 반전등이 인상에 남았다. 속도감 있는 이야기 전개에다 독자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결말들을 별 힘들이지 않고 만들어 내는걸 보면 상상력이 대단하지 싶다. 처음엔 책이 얇아서 실망했는데, 여섯편의 이야기가 워낙 출중하다보니 나중엔 얇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군더더기 없는 서술에 짜임새 있는 이야기, 무엇보다 분위기 으스스한 스토리들이 고만고만한 미스테리물과는 달리 차별되어 부각된다. 한마디로 말해 뻔한 미스테리물은 아니였단 말씀, 독창적이란 면에서는 인정을 해줘야 할 듯 싶다. 각 작품마다 완성도가 고르다는 것도 맘에 들긴 했지만, 이야기 자체가 다소 엽기적이기 때문에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호불호가 선명하게 갈리지 않을까 한다. 일본에 종종 벌어지는 엽기적인 사건들을 기억하시는가 ?어떻게 저런 일이 벌어질 수 있지? 라고 생각하게 되는 병리적인 현상을 지극히 당연하게 서술해나가는 작가의 통찰력은 놀랍기만 했다. 어떻게 범인들의 변태적인 심리를 이토록이나 잘 안단 말이냐? 싶어서 말이다. 하여간 독특하고 참신한 미스테리 물을 읽고 싶다시는 분에게 추천. 금방 읽히는 것도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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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바위 - 영험한 오하쓰의 사건기록부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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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가 <영험한 오하쓰의 사건기록부>이다. 제목만 보면 무슨 말인지 모르시겠지만 사실 제목안에 책 내용이 다 담겨져 있다고 보면 된다. 흔들리면서 우는 바위가 등장하면서 시작하는 소설은 시체와 그 시체를 둘러싼 순간들을 파악해내는 신기를 가진 아가씨 오하쓰가 살인사건을 어떻게 해결해 가는지 기록하고 있다. 

남들은 보지 못하는 신비한 것들을 보는 능력을 가진 오하쓰는 동네 어린 아이들의 살인을 먼저 목격하면서 흥미를 갖게 된다. 어린 아이가 죽어 나가는 상황이니 살인범을 더 잡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 경찰 보조격인 오빠와 그리고 지체 높으신 집안 자제인 우쿄노스케와 함께 살인범을 찾아나가기 시작한다. 살인범의 뒤를 쫓던 일행들은 백년전 일어난 <아코 사건>과 연결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사무라이 47인의 전설과 < 아코 사건>을 무리하게 연결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은 추리 소설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싶었던 책이다. 그럼에도 미미 여사가 누군가. 썩어도 준치라고 하더니, 이야기의 조금 무리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속도감있게 흡입력있게 읽는데는 지장이 없었다. 아마도 미미 여사는 왠만한 소재를 갖다 준다고 해도 맛깔난 이야기로 탈바꿈 하는데 어려움이 없는 듯. 부러운 재능이다. 대중소설가로써 대단한 자질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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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완 - 0.1%의 가능성이 모든 것을 바꾼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차익종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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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베스트 셀러였던 것이 2년전이니 좀 늦게 읽은 감이 있다. 그럼에도 안 읽은 것보다는 나을 듯 싶어 읽게 된 책, 무엇보다 저자의 다른 작품인 < 행운에 속지 마라>에 감동을 받았기에 나심 니콜라스의 다른 책들도 읽고 싶어졌다. < 행운에 속지마라>정도의 참신성이라면 읽을만한 가치가 있을 거라는 생각때문에.... 

이 책을 단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면 , 모든 것은 운이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닐까 한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제로 벌어지는 것이 이 인간 사회이며, 또 놀랍게도 아무리 황당한 사건이라도 해도 왕성항 적응력의 소유자들인 인간들은 재빠리 적응해 살아간다는 이야기였다. 그 외에 지적속물들에 대한 따끔한 그리고 신랄한 비판도 빼놓지 않고 적어놓고 있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보단 속이 시원했다고 말하는게 맞겠지만서도. 

지적속물주의자들...헤롤드 볼룸을 위시해서 고매하고 정통하며 목에 힘 빳빳히 세우면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고 계시는 분들을 가차없이 까발려 주는 통에 읽는 재미가 있는 것이 장점, 게다가 모든 것은 운이라는...그러니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서 넘 자책하지 말라는 메시지에도 조금 위안을 받았다. 불가능이 가능해지는 세상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사회라를 통찰은 그의 견해지만 왜 아직까지 몰랐던고 싶을 정도로 옳지 싶다. 

 그외엔? 솔직히 <행운에 속지마라>보라는 그다지 재밋게 읽지 못했다. 아마도 그가 비슷한 말을 되풀이 하고 있는 통에--그는 자각하지 못하고 있겠지만서도--한번 읽었을때는 통쾌하고 신선하지만 두번째 읽게 되면 식상하게 되는게 아닐까 싶다 . 어쟀거나 한때 유명한 책을 읽어봤다는 점에서< 나도 읽었다!>를 외치고 싶고, 생각컨데 이 책을 읽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았을지는 아마 별로 없을 거라 본다. 지적 속물주의자에 대한 통찰은 물론 속이 시원하긴 했으나, 그외엔 그다지 삶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는 없다는 생각이다. 그래, 모든 것은 운이고. 미래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건 알건 모르건 간에 삶에 그다지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지.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데? 라는 질문에 대해선 대답을 못하기 때문이다.  

하긴 미래를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삶을 어떻게 살면 좋은건지 그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그런 것을 기대하고 이 책을 집어든 자체가 좀 어불성설이지. 그냥 심심풀이로 읽기엔 좋다. 어떤 심오한 사상을 얻고자 읽은 사람이라면 잠시는 모르겠지만 긴 안목으로는 별 재미를 못 보실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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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서른 살
멜리사 뱅크 지음, 심혜경 옮김 / 예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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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서툴다라는 단어가 시선을 잡아끈다. 나이 서른을 넘겨서 자신이 서툴다고 말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은 용감해 보여서다. 우리나라 같이 전형적인 삶을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이라고 인정하는 사회에서는, 제 나이에 대학가고 ,직장 잡고, 결혼을 하고, 적정수의 아이를 낳아 정신없이 양육하고... 다른 사람들에 비해 뒤처지지만 않는다면 속내야 어찌되었든지 간에 어른 대접을 해주는게 보통이다. 서툴다니 용서할 수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내 주변 사람들의 경우를 보면 실은 전혀 어른스럽지 않다고, 시간과 상황에 밀려 어른 취급을 받는 것이 때론 어리둥절할때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말한다. " 진짜론 나, 겉만 어른이고 속은 얘야, 그래서 아직도 때때론 세상 돌아가는 것이 이해가 안 가고 어렵기만 해. " 라고. 그들의 은밀한(?) 고백을 들으면 난 도무지 언제쯤 이 삶이란 것에 완벽하게 적응이 되려나 궁금해진다. 완벽한 어른이자, 프로 생활인으로, 어떤 일이 벌어져도 꿈쩍하지 않고, 실수란 내 사전에 절대 등재될 일이 없으며, 인간 관계나 가족관계나 사회생활에서 늘 어떻게 행동해야 옳은지 정답이 딱하고 나오는 그럼 사람말이다. 아마도 그런건 환상이나 드라마속에서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그렇게 보자면 인생이란 언제나 서툰것이 맞는게 아닐까 싶다. 스무살이건 서른살이건 마흔살이건 쉰 살이건 간에 말이다. 이 책은 자신이 그렇게 서툰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자각에도 좌절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다. 그녀가 바라보는 그녀의 인생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주인공 제인의 십대시절부터 삼십대까지 다룬 이 책에는 다섯가지 사랑이 등장한다. 처음 등장하는 오빠와 그의 연상의 연인, 그리고 제인의 대학시절 풋 사랑 상대인 제이미, 스물 여덟살이나 연상이지만 치명적인 매력으로 그녀를 매료시켰던 중년남 아치, 그녀가 유방암을 앓고 있을때 그녀를 지켰던 남자친구,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가 자신의 자존심을 접고 <연애 가이드>를 참조하도록 만든 사태의 책임자인 만화가 로버트까지... 호화로운 휴양지에서 백일몽을 꾸던 소녀가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성숙해가게 되는지,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었다.

 

첫번째 십대 시절 목격한 오빠와 연상녀의 사랑을 보면서 제인은 사랑이란 인간성이라는 것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는 것임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오빠의 완벽한 여자친구처럼 보였지만 결국 그와 쿨하게 헤어지는 모습을 본 그녀는 환상이 아닌 현실속의 사랑을 처음 접하게 된다. 자신 역시 대학에서 만난 제이미와 완벽한 관계라고 자부하지만, 제이미의 전 여자친구와 휴가를 보내면서 실은 그것이 허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대학 졸업후 출판사 부편집자로 취직이 된 제인은 아찔한 매력의 중년 남성 아치를 만나게 된다. 능력있는 편집자인 아치를 통해 그녀는 자신이 아직 얼마나 애송인지 깨닫게 되고 여러면에서 그의 도움을 받는다. 둘의 사랑은 진지하기 그지없지만 주변 사람들의 환영까지는 받지 못한다. 특히 언제나 자신을 감싸주던 아버지의 배려가 담긴 침묵이 그녀를 망설이게 하는 가운데 아버지의 백혈병 발병은 그녀를 한걸음 더 성숙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사랑하지만, 사랑한다해도... 아치와 평생을 함께 할 수는 없다는 한계를 인정한 제인은 그와 결별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보이는 반짝이는 남자친구를 만난 제인은 자신이 유방암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런 그녀를 헌신적으로 간병하는 남자친구, 하지만 제인은 병마를 이겨가는 과정속에서 그와의 사랑이 관성과 의무에 기인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나보다 더 너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라는 그의 말을 가슴 아프게 새기면서도 이별을 택한 제인은 완전히 자신감을 상실해서 자신에게 묻게 된다. ' 사실 나는 사랑할 수 없는 여자인 것은 아닐까' 라고. 그렇게 자신의 사랑 능력에 대해 체념과 회의에 빠져 있을 즈음, 친구의 결혼식장에서 로버트를 만난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 그를 잡아야 겠다고 다짐을 하게 되는데...

 

일반적으로 칙릿이라면 생각하게 되는 달콤하고 허무맹랑한 사랑이 아니라, 비교적 현실적인 사랑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맘에 든다. 주인공이 모든 것을 잘하고 뛰어난 여자가 아니라 현실을 접하면서 해결책을 하나하나 찾아 나가는 현실적인 캐릭터라는 점도. 덕분에 그녀의 인생 역정을 따라가면서 감정 이입해 책을 읽기가 어렵지 않았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스물 여덟이나 연상인 남자친구를 대하는 제인 가족들의 반응이었다. 만약 우리나라라면 히스테리에 가까운 반응이 나와주는게 보통일텐데, 그들은 지극히 이성적으로 제인과 아치를 대하고 있었다. 못마땅하지만 그건 내 결정이 아니라 네 결정이고 네 삶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딸을 우리나라 부모님들보다 덜 사랑하는 것이냐고 한다면 그건 아니라고 본다. 단지, 걱정을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달린 차이일뿐이지. 의사였던 아버지가 제인에게, 아치를 사위로 환영할 수 없었던 것이 나이가 아니라, 그가 자신의 건강을 제대로 돌보고 있지 않기에 언젠가 네가 그의 간병인이 되서 인생을 낭비할까봐 걱정이 되었다고 말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 감명깊었다. 아버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현실적인 걱정이 고작 스물 몇을 먹은 딸에게 먹히지 않을 거란 것을 말이다. 더군다나 이제 사랑에 빠져 그것만이 전부인줄 아는 시기에 말이다. 그런 그녀를 향해 멍청하다고 소리를 지르는게 아니라, 차분히 현실을 겪어 보고 결정을 내리도록 한 아버지의 인내가 참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아마 그런 아버지를 둔 딸이라면 어떤 경우에서고 자신의 길을 찾아나설 수 있지 않을까 안도감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렇다. 스물에 모든 것을 알긴 힘들다. 그렇다고 서른이 되면 나아지나? 그건 또 아니라고 본다. 삶에는 단계 단계마다 다른 장벽이 도사리고 있으니 말이다. 모두들 실수하기 마련이고 대부분 서툰 것이 정상이다. 이 책을 보면서 감동을 받은 것은 사랑하는 자식이 실수하는 것을 알면서도 묵묵히 지켜보는 어른이 있어서였다. 남에게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듣는 주인공이 있어서였고. 그렇다면 실수를 했다해도, 다소 서툴다해도 살아나가기 마련이니까. 정작 위험한 것은 실수할까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니 말이다. 실수 한번에 모든 것이 망가져 버렸다고 생각하는 것도 포함해서. 삶은 실수하지 않기 위한 발버둥치는 장은 아니니 말이다. 삶은 배우기 위한 장이고, 자신을 알아나가는 여정이며, 무엇보다 재미와 웃음과 사랑이 있어 견뎌나가는 시간들 아니겠는가. 그런면에서 모든 서툰 사람들에게 박수를, 언젠가는 능숙한 그들이 되기를 되는 그날까지...

 

군더더기 없이 영리하게 전개해 나간 책이긴 하지만, 중반에 전혀 연결되지 않는 등장인물들이 나온다던지--아마 연작때문에 등장한게 아닌가 싶지만서도--마지막을 다소 뜬금없이 마무리 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거슬린다. 아무리 괜찮은 남자를 백만년만에 만났다고 한들, 내내 자존적이고 독립적이었던 제인이 갑자기 자신이 칙릿의 주인공인 것을 불현듯 깨닫기라도 한 듯 난데없이 브릿짓 존스의 흉내를 낸다는 설정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영 어설펐다. 아마도 작가 자신이 어떤 종류의 소설을 써야 할지 --진지한 책인지 아니면 가벼운 칙릿인지--헷갈렸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럼에도 영리한 여성 작가 한명을 만난 듯해 기분 좋았던 책이었다. 그녀의 다음 책들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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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지레 클럽, 9월 여름 디 아더스 The Others 2
로사 몬테로 지음, 송병선 옮김 / 푸른숲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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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리뷰를 쓰려니 내가 생각하는 추천작과 강추천작의 기준은 무엇일까 의아해진다. 도무지 얼마만큼의 감동을 받아야 내가 강추천작이라고 입에 거품을 물게 되는 것인지 내 자신이 내리는 결정임에도 모호하게 느껴진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기준이란게 대충 즉흥적이고 주관적인 것이었나 생각되실지 모르겠으나, 사실 보통은 그렇진 않다.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책을 다 읽고 나면 이건 두말할 것도 없이 강추천작이야, 내진 볼 것도 없이 비추천작이네, 라는 결정이 내면의 갈등없이 내려지니 말이다. 아마도 내 안에 설정된 바(bar) 가 있어 그 정도를 갸늠하는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모든 책들이 그렇게 선명하게 각각의 범위에 착착 들어가는건 아니니, 예외란 언제나 발생하는법 아니겠는가. 어디에 넣어야 좋을지 애매한 책이 생기기 마련이다. 바로 이 책처럼 말이다.  모처럼 신선하고 잘 짜여진 책을 만나 재밌게 읽었음에도, 어째 강추천작으로는 좀 부족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무지 어디서 그 차이가 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서도, 망설여지는 나를 보자니 그 기준이란게 뭘까 궁금해진다. 언뜻 스쳐가는 생각엔 주저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해도 괜찮을 거란 확신과 관련이 있지 않는가 싶지만서도... 솔직히 이 책, 중고생들에게 필독서 목록에 넣을만한 책은 못 됐으니 말이다. 물론 그들이 읽는다고 해서 해 될 것은 없겠으나, 분명 별 재미를 못 느낄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어른들이 읽기에 적당한 책이라고나 할까. 하긴 어찌 안 그렇겠는가. 인생을 어느정도 산 사람들이나 공감을 할 수 있는 패배자들의 인생 이야기니 말이다.


 

소설은 어떤 미친 여자가 한 신사 양반을 4층에서 내던졌다는 기괴한 사건 기사로 시작한다. 여기서 작가는 어떻게 왜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되었는가 추적하게 되는데 , 그 중심에 서 있는 곳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인 <데지레 클럽>이다. 한때 창녀들의 보호소 역활을 했던 그곳은 8년전 한 양아치가 인수를 함에 따라 영락해가는 클럽으로 모습이 바뀌었다. 날마다 추함을 더해가는 클럽에서 아무도 듣지 않는 볼레로를 불러대는 가수 벨라는 남자라면 신물이 나는 50대의 여인이다. 인생을 낭비해 버렸다면서 이제 남은 것은 죽음뿐이라고 생각했던 그녀 앞에 포코라는 클럽의 은둔자가 나타난다. 늙고 추레한 알콜 중독자의 모습에 경계를 하던 벨라는 그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는 가슴이 설레인다. 과거 암살자였으며 용병이었고 쿠바 클럽의 지배인이었다고 주장하는 포코는 벨라에게 볼레로가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쿠바로 떠나자고 제안을 한다. 한편 44살이 되도록 처녀인 채 살아가던 안토니아는 착한 성처녀의 이미지를 버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매번 실패를 거듭하던 그녀는 아파트 관리인의 조카 21살 다미안을 알게 되면서 드디어 사랑에 눈을 뜨게 된다. 나이차 만큼이나 기괴하기만 한 둘의 사랑은 중력을 이기지 못하는 대포알처럼 파국으로 치닫는다.  한편 안토니아의 오빠로 파렴치한 바람둥이로 한평생을 살고 있는 안토니오는 50줄에 들어서 정력이 떨어지자 공포에 떤다. 결국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한 그는 18살의 섹시한 바네사에게 청혼을 한다. 클럽에서는 창녀처럼 남자에게 당당하게 군림하나 실은 비루한 청소부일뿐인 바네사는 점잖은(?) 안토니오가 청혼을 해오자 환호한다. 하지만 그녀의 결혼은 그녀를 오매불망 쫓아 다니는 광기어린 사랑의 주인공 포코로 인해 물거품이 되고 마는데...

 

정말 실패자들을 이렇게 한자리에 모아놓기도 힘들겠다 싶을 정도로 온갖 종류의 실패자들이 다 나와주시는 책이다.  원작 그대로 영화로 만든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개성 뚜렷한 인물들에 무리 없이 흘러 가는 이야기 전개가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던데, 특히나 인물들의 성격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나돌아 나닌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생동감 있었다. 입체적이고 신빙성 있는 이야기 전개 역시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니라 어느 변두리 망해가는 클럽을 둘러싸고 일어났음 직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게 했는데, 물론, 이야기 자체로만 본다면 늘상 듣는 사건들과는 전혀 거리가 먼 특별한 이야기 였음에도 그랬다. 왜 그런거 있지 않는가. 그렇게 색다른 분위기의 장소라면 왠지 그런 일들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이야기 말이다. 아마도 그만큼 작가가 이야기를 재치있게 잘 풀어냈다는 뜻이겠지만서도...

 

거기에 단지 실패자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들이 왜 그런 삶을 살게 되었고, 왜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하는 그 암담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지는 애처롭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른 실패자 클럽의 책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말하자면, 애정을 갖고 들여다는 보되, 현실을 거짓으로 덧칠하지는 않았다고나 할까. 삶의 희망? 욕망? 행복? 그런 것들이 더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살다가 예기치 않는 만남으로 다시 꿈을 꾸게 된 소박하기 그지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좌절하게 되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비록 그들의 꿈이 현실과 마찰하면서 파열하는 모습이 안스럽기는 했지만 어쩌랴. 그것이 인생인 것을... 재밌는 것은 처음 도입부에 등장한 비정상적인 사건이 책을 다 읽을 무렵엔 너무도 정상적이여 보인다는 것이었다. 하하하...그러니까 인간이 미친다는 것은 알고보면 그다지 특이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니까. 압력 밥솥에 압력을 가하면 증기가 솟아 오르듯, 인간의 정신에 가해지는 압력이 극에 달하게 되면 그 누구라도 그렇게 폭발하고 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여 어느 끈적끈적한 늦은 여름 저녁 무렵, 자신의 불행과 전혀 상관도 없는 동창생 안토니오를 4층 창문으로 내 던져버린 벨라가 이해를 넘어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는 것이지. 그래, 적어도 그렇게 화끈하게 분노를 발산했으니 이젠 제 정신으로 돌아와 선량한 벨라로 살고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보면서 리뷰를 마치려 한다. 1983년에 쓰인 책이라는데 지금 시선으로 봐도 공감이 가는 저자의 페미니스트적인 시선이 놀라웠다. 결국 페미니스트의 뼈대는 휴머니즘이라는 뜻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이데올로기로써가 아니라, 그저 인간의 조건으로써 말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나저나 이 책의 작가 로자 몬테로, 처음 만나는 작가인데 사람을 통찰하는 면이 예사롭지 않다. 만약 그녀의 다른 책들이 이 정도의 깊이를 지녔다면 다른 책들도 기대해 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읽기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을테지만서도...

 

※<밑줄 그은 말>

 " 그건 아주 오래전이에요. 내게도 아직도 시간이 있을 때였지요. 이제는 시간이 없어요. 내 시간은 끝났어요. 이제는 시간도, 낮도, 아침도, 밤도없어요. 모두가 똑같아요. 이것이 가장 참기 힘든 거여요. 가끔씩 나는 내가 미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거야 말로 위대한 진실이여요 포코씨."

위대한 진실. 벨라는 한번도 그렇게 예쁘고 멋지게 말하겠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도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그녀에게도 시간은 이미 끝나있었다. 그게 언제인지, 어떻게 끝났는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기억이 없었고, 하루 하루가 똑같은 나날이었으며, 일주일이 다른 일주일과 뒤섞이고 있었다. 몇 년 전부터는 이미 미래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그런데 지금 포코가 그런 사실을 너무나 잘 표현했던 것이다. 마치 그녀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이상했을 뿐만 아니라 늙고 추하며 역겨운 냄새를 풍기던 포코가 말이다. 마치 그녀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그녀는 위 언저리가 근질근질하고 무릎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41

 

너무 많은 시간을 바깥에서 보내야 하는 조종사의 아내들이나, 전업주부라는 직업 이외에는 별 다른 일이 없는 편안한 중년 부인들, 아파트와 결혼 생활의 고독속에서 지겨워 하며 불만이 가득한 여자들의 경우는 특히 그랬다. 목록 선택은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거의 모든 여자들이 한숨을 내쉬고 몸을 떨면서 그에게 굴복을 했다. 모두가 부유한 집에 사는 화려한 여자들이었다. 자존심이 강하고, 실크 옷에 명품 스카프를 두르고서 남편이 면세점에서 사다준 향수를 뿌리는 여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상의 여왕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불행한 여자들이었다. 훌리아처럼 처음에는 차갑고 거만하지만, 결국에는 재산과 사회적 지위와 은 재떨이와 조잡한 취향으로 가득한 화려한 집을 잊어 버리고 그의 발밑에 쓰러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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