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 미닛 룰 모중석 스릴러 클럽 22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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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강도는 2분안에 돈을 들고 튀어야 한다는 철학의 소유자 맥스 홀먼은 한때 FBI를 따돌리며 신출귀몰한 솜씨를 자랑하던 전직 은행 강도였다. 하지만 그의 화려한 강도 행각도 마지막 은행을 털때 심장마비에 걸린 노인을 돕다가 그만 멈춰 버린다. 그의 온정에 감동을 받은 FBI요원의 요청으로 다행히 10년 징역으로 그친 그는 성실하게 그 시간을 채워 나간다. 마침내 내일이 출소 시간, 감옥에 있는 동안 성실하게 살 것을 다짐하던 그는 그간 못 만난 경찰관 아들을 만날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하지만 그의 기대가 어긋나게도 바깥에선 아들의 사망 소식을 전해 준다. 아버지의 출소 하루 전날 사망했다는 아들소식에 맥스는 그만 무너져 내린다. 아들이 어떻게 죽게 된 것인지나 알고 싶은 그는 아들이 다른 경찰관 네명과 함께 있다 총기로 살해 되었으며, 그들 모두 부패와 관련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절대 자신의 아들이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한 맥스는 아들 리치의 의혹을 벗겨주기 위해 전면으로 나서기로 한다. 하지만 갓 출소한 전직 은행 강도에게 무슨 권한이 있겠는가. 아들 리치의 상사마저 그를 방해하는 가운데 그는 점차 경찰 내부로 의혹의 눈길을 보내게 된다. 결국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겠다는 생각에 그는 오래전 자신을 잡았던 FBI 요원을 찾아 가는데...  

인간애를 가진 은행 강도라...한때 누구나 손가락질 하는 개차반이었지만, 아들의 명예 회복과 살인자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에는 감동을 받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진한 부성애에 지고 만 것이다. 전과자라는 열악한 환경과 경찰관인 아들 동료들의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몸을 다 바쳐 살인범을 찾기 위해 다방면으로 활약하는 주인공의 활약이 대단하다. 개과 천선한 전과자라는 어색하고 믿겨지지 않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읽다보면 주인공의 열정에 져서 어느새 감화가 되어버린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라. 의외로 탄탄한 이야기에 속도감 있는 전개가 마치 영화를 보는 듯 생생하다. 실제로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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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인 - 미국을 움직이는 아홉 법신(法神)의 이야기
제프리 투빈 지음, 강건우 옮김, 안경환 감수 / 라이프맵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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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중반이후부터 현재까지의 미 연방 대법원을 해부한 책이다.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로 대별되는 대법원 판사들의 면면들과 그들의 이념 대립, 그리고 그들의 판결이 불러온 파장들을 이해하기 쉽게 서술한 것이 특징. 연방 대법원은 미국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엄청난 힘을 가진 기관이다. 더군다나 그들의 힘이 판결이라는 논리와 이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가장 큰 존경과 지지를 받게 된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이성적으로 돌아갈 것 같은 곳에서도 비이성적인 것들이 만연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판사 역시 인간이고, 인간이란 자신의 한계에서 벗어나기 힘든 존재이니 말이다. 

이 책을 보면서 비교적  독립적이라는 연방 대법원이 요즘엔 대통령의 입김에 많이 좌지우지 하게 된다는걸 알고는 조금 실망했다.--이럴때 보면 난 아직도 순진하다.--법에 의한 판결이라고는 하나, 법이라는게 귀에 걸며 귀걸이, 목에 걸면 목걸이 식의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한게 당연하니 말이다. 공정하고 공평한 법 해석이 아니라, 자신의 당파와 이념에 의해 결론을 만들어 내는 판사들을 보면서 , 미국이 이러할진대 우리는...이라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아직까진 보수와 진보 진영이 4:4로 1명의 중도파에 의해 한쪽으로는 치우치지 않는다고 하던데, 과연 그 대립이 깨져 보수 진영이 대법원을 장악한다면 미국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게 될지 섬뜩하기만 했다.  

길게 써도 되는 책이나, 그럴 생각이 나지 않는 관계로 줄여 본다면... 

그간 관심이 가던 판사들에 대해 한꺼번에 알수 있어 좋았는데,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판사를 들라면 수터와 오코너 판사였다. 그들의 매력은 오래도록 인상에 남을 듯... 

반대 의미에서 인상적이었던 판사는 당연히 토마스판사. 임명때 그렇게 요란하게 등장하더니, 지금도 역시 그다지 좋은 판결을 내놓고 있지는 못한 듯해 마음이 안 좋았다. 언젠가 시사 주간지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 기억이 난다. 토마스 대법관은 자신이 백인인줄 아는 흑인이라고. 동감한다. 자신의 과거를 송두리째 뒤업는 판결만 속속들이 하는 보수권력의 개. 사생활적인 면에서는 친근한 분이라고 하나, 대법관으로써, 과연 그의 판결이 미래에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안 봐도 뻔하다. 참, 대대로 욕을 먹을 짓을 꾸준히 해대는 그대는 고집불통쟁이 우후훗~~~~! 어쩜 연방 대법원 판사의 최대 자질은 세상에 대한 유연한 사고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를 보면서 했다. 

연방 대법원의 속내가 궁금하신 분들은 보셔도 좋을 듯. 칭찬 일색의 미화가 아닌, 있는 그대로 서술하려는 작가의 통찰력과 대범함이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었다. 다만 간간히 번역이 그다지 매끄럽지 않다는 인상이었고, 법 전공자가 아니라면 다소 지루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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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야마구치 마사야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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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가 쓴 것이지만 무대는 미국 북동부 툼스빌이라는 마을이고 등장인물 역시 대부분 미국인인 특이한 소설이다. 마을 이름에 걸맞게 (무덤 마을이라는 뜻) 대대로 장의업을 해서 살아온 발리콘 성에 일족들이 모여든다. 이유는 일가를 세운 스마일리 할아버지의 죽음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유산이 어떻게 분배되어질 것인가가 궁금한 가족들은 할아버지의 죽음만을 기다리며 성 안으로 모여든다. 미국 전역에 시체들이 되살아난다는 기괴한 사건들이 연일 뉴스를 장식하지만, 오보일거라 생각했던 스마일리의 손자 그린은 초코렛을 먹고 자신이 죽자 당황한다. 죽은 것보다 더 당황스러운 것은 자신이 되살아났다는 것, 하여 장의사 기술을 활용 자신을 살아있는 사람으로 변장시킨 그린은 누가 자신을 죽였는지 밝혀 내기로 한다. 사상 최초로 좀비 탐정이 탄생 한 것! 그러나 아무리 죽었다고 한들,탐정 노릇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기만 한데...

 

탁월하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색다른 책이었다. 도무지 이런 상상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을 정도로 말이다. 으스스한 첫 문장부터 사람의 혼을 쏙 배놓더니만, 작가가 일본 사람이 맞는지 몇 번을 확인해봤을만큼 자연스럽기만 한 미국 문화에 대한 서술 역시 기가 죽었다. 요즘 워낙 좀비들이 설치는 판이라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는 상상력이 대단하지 않게 느껴지실지 모르겠는데, 살아난 좀비들이 생존시와 별 다르지 않는다는 발상은 그 자체로 흥미로웠다. 우린 대개 죽은 자에게 살아 있을때는 없던 파워가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무서워 하지 않는가. 그러나 저자는 달랐다. 그저 죽었다는 것일뿐, 인간 자체가 달라지지는 않을거다라는 발상의 전환이나 통찰력이 돋보인다. 사람의 상식을 뒤업는 화려한 상상력에 단지 상상력에 그치는 것이 아닌 꼼꼼한 조사--저자는 죽음에 대해 그야말로 물샐틈없는 조사를 한 듯 했다. 하여 소설을 보면서 죽음에 대해 전면적인 고찰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이 책의 특징이기도 하다--ㅡ를 통한 성실한 글쓰기가 이 책의 가치를 높이고 있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마무리가 다소 허무하다는 것? 첫 장부터 하도 박진감 있게 끌고 나가고, 뭔가 있을 듯한 분위기를 팍팍 풍기고 있어서 대단한 결말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관계한 모든 인물들이 살아있는 시체들이었다는 결말에 풀이 죽고 말았다. 물론 마무리까지 완벽하다면야 좋았겠지만서도, 그건 독자의 욕심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탁월한 상상력을 볼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풍성한 눈요깃 감이었으니 말이다. 그저 일개 독자인 나로써는 흔치 않는 작가의 재능 발견에 감지덕지할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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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자서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8
제임스 웰든 존슨 지음, 천승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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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 too, sing America  

                                                                                                 by Langston Hughes

 

                         I am  the darker brother

                    They send me  to eat  in the kitchen

                    When company comes,

                    But  I laugh,

                    And  eat  well,

                    And  grow  strong

 

                   Tomorrow,

                   I'll be at the table

                   When company comes,

                   Nobody 'll dare

                   Say  to  me

                   "Eat  in the kitchen ."

                   Then.

 

 

                  Besides ,

                  They'll see how beautiful

                  I am .

                  And be ashamed

                  I, too , am America

 

 한 15년전쯤 타임지 표지에 실렸던 랭스턴 휴즈의 시가 생각 나 적어 보았다. 이 시를 처음 봤을 당시 난 아득한 감동과 함께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이렇게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인종을 영원히 눌러 죽일 순 없을 거라고... 이 지구상에서 무엇보다 강인한 것이 인간의 생명력이니 말이다. 2010년 현재, 미국은 그 당시론 상상할 수도 없었던 흑인을 대통령으로 선출했고, 오프라 윈프리가 세계 영향력 1위 인사로 이름이 올라가는걸 보면 과거보다는 흑인 차별이 많이 완화된 것 같아 보인다. 그렇게 점진적으로 인종 차별이 시정되어 갈 수 있었던 역사 뒤에는 바로 차별철폐의 야만성을 폭로하던 작가들이 있었기에 그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한다. 랭스턴 휴즈나 이 책의 저자처럼 말이다. 처음 책을 들었을때는 아무리 차별을 고발하고 있다고는 하나, 1917년에 쓴 글이라고 해서 조금은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았을까 했다. 읽어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뒤떨어지기는 커녕 오히려 지금 시대를 여전히 앞서가는 사고들에 깜짝 놀라 버렸다. 도무지 어디서 이런 탁월하고 선명한 논리를 생각해 내는지 이런 작가들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무지와 편견과 비논리와 시대의 미숙한 사고를 뛰어 넘는 그들의 차분한 응대 자세, 평범한 우리들은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만약 내가 1920년대 미국에 살고 있는 흑인이었다면 과연 이런 논리를 생각해낼 수 있을까? 아니, 아마 못했을 것이다. 분노에 펄펄 뛰면서 억울함이나 주장하고 다녔겠지. 물론 분노를 터트리는 것도 때론 도움이 된다. 하지만 분노는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고 두려움은 보다 큰 두려움만 양산할 뿐이다. 집안이건 나라건 간에 머리 좋은 어른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 아니겠는가. 차분하게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사람, 그들의 통찰이야말로 사태를 보다 성숙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밑거름이니 말이다. 

 

남부 백인 귀족과 그의 흑인 하녀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주인공은 엄마가 죽자 홀로 세상에 남겨진다. 대학에 진학하기로 했던 계획은 동료가 돈을 훔쳐 가는 바람에 사라져 버리고, 그는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담배 공장에 취직하게 된다. 잘 돌아가는 머리와 손재주로 여행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모이자 그는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뉴욕으로 간다. 도박장을 기웃대다 돈을 탕진한 그는 자신의 특기인 피아노 실력으로 재즈바에서 연주를 하게 된다. 그의 실력에 반한 백만장자의 요청으로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난 그는 파리의 정취에 흠뻑 취하게 된다. 파리의 한 극장에서 자신의 아버지와 이복 동생을 보게 된 그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동생을 동생이라 부르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새삼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흑인들만의 고유한 음악을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그는 백만장자에게 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백만장자 친구는 백인으로도 살 수 있는데 --그는 피부색이 백인에 가까운 흑인이었다.--굳이 흑인의 정체성을 알려가면 살아야 하겠냐며 그를 말린다. 하지만 이미 그의 결심을 굳어진 상태, 흑인들의 전속 민요들을 채집하려 남부를 돌아 다니면서 그는 흑인 차별의 현실을 목격하고 그것을 정당화 하는 백인들의 논리를 듣게 된다. 우연히 KKK단이 흑인을 산채로 불태우는 광경을 보게 된 그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야만에 대해 절망하게 되는데...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다음의 문장을 들 것이다 . 주인공이 남부로 향하는 기차 위에서 흑인 차별에 대해 두 백인이 건네는 대화를 엿들은 것인데, 흑인은 열등한 인종이니 차별받아 당연하다는 텍사스인의 주장에 대해 상대가 반박한 논거다.

 



 


 


 


우리는 위대한 인종이죠. 오늘날 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인종임(앵글로 색슨족을 말함.)에 틀림없소.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과거 인종들의 더미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오늘날의 이 지위를 덜 오만하게 즐길 줄 알아야 할 거요. 우리는 그저 게임에서 승자의 순서를 누리고 있을 따름이요. 그리고 그 상태에서 오랫동안 익숙해진 게 사실이지요. 하지만 인종적 우월성이란 역사의 시기 문제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155


 


 


 


 게임에서의 승자의 순서를 누리고 있는 중이라...어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행태를 이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권력이나 부, 천재적인 머리, 하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마구 짓밟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오만이 있다. 단순하게 찰나적으로만 판단한다면 그들의 주장이 맞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엔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다. 그건 바로 그들의 지위가 단지 게임에서 승자의 위치에서 온 우연이라는 점과 그 게임의 운이란게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게임의 룰이 바뀌었을때 당신의 위치가 과연 다시 승자의 위치를 점하고 있을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 누구도 미래를 점 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강자로 거들먹 거릴 수 있는 현재가 단지 당신이 운이 좋았을 뿐이며, 미래엔 당신의 운명이 약자가 될지도 모른다는걸 깨닫게 된다면, 우린 현재를 보다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 외에 흑인의 생명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문장도 만났다. 바로 이것이다.



 


 


 


 그 후로 나는 마음껏 웃을 수 있는 능력이 미국의 흑인들을 구원하는데 중요한 몫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능력이 미국 흑인이 인디언의 운명을 따르지 않게 하는데 큰 역활을 한 것이었다.--57


 


 


 


 자신의 동족이 단지 피부색이 까맣다는 이유로 산채로 불 태워지는 현실을 목격하면서도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웃을 수 있는 능력, 즐겁게 살려고 하는 노력들 말이다. 인간이 어떻게 해야 인간적일 수 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저러한 이론을 내 놓는데, 내 짧은 생각엔 이렇다. 재밌게 사는 것이야말로 인간미를 위한 최대의 투라자고. 웃음 없이 사는 사람이야말로 어쩜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존재일지 모른다고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흑인들이 자신들의 고통을 극복하는 방식을 보면서 내가 추론해낸 가장 근사한 깨달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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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을 안고 튀어라 J 미스터리 클럽 1
다카무라 가오루 지음, 권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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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스의 산>을 쓴 저자의 데뷔작이란다. 다른 리뷰어들의 말을 들어보니' 난해하다, 어렵다. 집중이 힘들다'고 토로 하길래,굉장한 수작이라 읽기가 힘든가보다 하고 집어든 책이다. 몇 페이지 읽어보니 금세 왜 리뷰어들의 그런 불평을 해댔는지 이해가 됐다. 그건 이 작품이 잘 되서는 아니었다. 단지 이 책이 신인 작가의 야심만 가득찬 어설픈 작품이라서 그런 것일뿐...한마디로 맛깔나게 요리된 작품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물론 작품안에 자신만의 개성을 녹여내는것엔 성공을 했지만 전체적으로 과대망상에, 오버 감정에, 디립다 무게 잡는 주인공들에 매끄럽지 못한 전개에 금방 읽기가 싫어지더라. 다들 읽기 어렵다고 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읽기 어려운게 아니라, 읽기 싫어졌다는게 정답이겠지만서도. 하긴 이렇게 재미 없고 매력없는 글을 뭐하러 읽겠나? 박사 학위를 준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니라면 차라리 잠을 자거나, 지나간 월드컵을 보거나, 아니면 1박 2일 재방송을 보는 게 더 낫다. 특히 가장 웃겼던 점은 재일 한국인이 등장인물로 나오는 점이었다. 북한 간첩 출신이나라 뭐라나...이름도 그렇고, 등장 하는 폼도 그렇고, 북한과 우리나라에 대해 별로 알지 못한 채 쓴 듯 영 어설퍼 보인다. 적어도 책 하나를 쓸 생각이었다면, 적어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름을 어떻게 짓는가 정도는 공부해야 하는게 아닐까. 일본식의 괴상한 한국 이름들에 웃을 수 밖엔 없었다. 더불어 일본 사람들이 막가파인 북한을 막연히 두려워 한다는 풍문을 확인했다고나 할까. 작가에게 북한 사람들 그렇게 무지막지 하지 않다고, 넘 무서워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정확하지 않는 것은 언제나 옥의 티처럼 튀게 마련이고 비웃음을 사기 쉽상이다.

하여간 리뷰어들이여, 자신감을 갖자. 당신이 읽기 어려운 책이 진짜 수작이지만 어려운 것일 수도 있지만, 그냥 잘 쓰지 못한 책이여서 읽기 싫은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책으로 묶여져 나왔다고 해서 그게 다 좋은 작품이라는 편견은 버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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