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 자폐인의 내면 세계에 관한 모든 것
템플 그랜딘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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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인을 다룬 책을 읽다보면 한번씩은 언급되는 저자가 바로 이 템플 그랜딘이다. 그녀의 대표작이라는 말에 한번쯤은 읽어야 겠다고 생각하다 , 요즘 하도 읽을 것이 없어 집어든 책. 뭐, 이미 다른 자페인에 대한 책을 많이 읽어놔서 그런가 별로 새롭다할만한 정보는 많지 않았다. 아마도 자폐인에 대해 관심이 생겼을 처음에 읽었다면 오히려 더 좋았을거란 생각이 든다. 그만큼 종합적이고 맥락을 짚어주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물을 관찰하는게 아니라 동물처럼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는 그랜딘은 동물학자로 명성이 높은 자페관련 세계적 권위자다. 자신이 천재 자폐인이기 때문에 대화나 소통이 안되는 다른 자폐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고 그들은 어떤 내면 세계를 갖고 있는지 대신 의사전달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컴푸터처럼 논리적이고 연산적인 방식으로 생각한다는 것, 그들도 사랑받길 원하는 존재라는 것, 단지 접근 방식이 다른 인간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왜냐면 그들은 갑자기 자신을 껴안거나 뽀뽀하는 것을 무서워 한다고 한다.--그들이 왜 다른 인간들과 소통하는 것이 어렵고 이해를 못하는지에 대한 개략적인 이야기를 알기 쉽게 서술하고 있었다. 자폐인에게도 내면이란게 있고 , 그들도 생각한다는걸 알려준 것이 자폐인들로써는 대단한 발전이었다고 한다. 그 외에 자폐인들만의 고통에 대해 토로하고 있었는데, 소리에 민감하다는 것, 감각 장애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소리 질르고 불편해 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 책을 보면서 알게 됐다. 자폐인에 대해 개략적인 것을 알고 싶으신 분들에겐 좋은 정보가 많지만 뒤로 갈 수록 지루해진다는 것이 별로였다. 어쨋꺼나 그녀같은 자폐인들을 기반으로 해서 더 나은 연구를 하게 되어 자폐인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도울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본다.  다행인것은 60-70년대에 비해 지금은 월등하게 자폐에 대한 이해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더 나은 연구가 이뤄지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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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도둑놀이
퍼 페터슨 지음, 손화수 옮김 / 가쎄(GASSE)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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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타임지가 선정한 최고의 소설이라는 말에 솔깃했다. 그동안 간간히 본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책들은 거의 괜찮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무지 이 책은 왜 좋다는 건지 모르겠다. 기대를 잔뜩하고 봤는데 말이다. 끝도 없이 넋을 잃게 만드는 소설이라고 하던데, 넋은 커녕 내가 제대로 해독하고 있는건지도 헷갈렸다. 제대로 해독하고 있다면 절대로 좋은 소설 측에도 끼일 수 없는 책인데, 왜 다른 사람들은 다 좋다고 하는걸까? 내가 제대로 읽고 있기는 한거야? 라면서 책을 몇번이나 들척여 봤다. 분명 글자 그대로 읽은거 맞는데, 과연 무엇을 보고 이 책에 감동적이라는 건지 모르겠다. 내 해독력에 좀 이상한 것이 생긴 것인지, 아님 그동안 너무 읽어댔던 탓에 왠만한 것에는 감동을 받지 못하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번역하는 과정에서 무언가 감동적인 요소들이 희석된 것인지, 뭐 이러저러한 해석이야 가능하겠지만 해답은 정녕 무엇인지 모르겠고, 다만 확실한 점은 내게 이 책은 전혀 감동 근처에도 못오는, 수작이라고 하기엔 한없이 엉성한 책이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스토리 자체가 한없이 진부했다. 총을 함부로 나둔 나머지 쌍동이 동생중 하나를 죽이고 만 욘, 그의 친구로 이 책의 나레이터인 트론, 아들이 죽은지 며칠 되지 않았음에도 트론의 아빠와 묘한 기류를 흘리고 다니는 욘의 엄마, 그리고 아들의 죽음에 대해 한마디로 하지 않았다는 욘의 아빠, 쌍동이 동생을 죽이고는 평생 마을을 떠나지 못한 쌍동이 형 라스, 독특한 매력과 독창적인 생각의 소유자였던 트론의 아빠, 그리고 무책임한 남편의 빈자리를 묵묵히 메워간 트론의 엄마에 대한 기억에다 트론과 라스가 60년이 흐른뒤 이웃으로 조우하게 된다는 등...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었음직한 이야기에 식상하기 그지없는 신파였다. 북유럽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면서 종종 느끼는 것인데 어딘지 유치하고 조잡하다는 느낌이 든다. 변방다운 언-엣지라고나 할까? 어쨌거나 기대한만큼 재밌지 못해서 실망한 책이 되겠다. 다른 독자분들은 나보단 운이 좋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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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아이 - 자폐 소년 노아 이야기
칼 타로 그린펠드 지음, 김수진 옮김 / 홍익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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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인 아버지, 일본인 엄마. 아무리 미국이라고는 하지만 60년대에 이국적인 조합이었던 칼 그린벨트의 부모는 두번째 아들 노아가 어딘지 이상하다는 것을 그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눈치챈다. 그 이후 미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아들의 병명과 치료를 위해 동분서주했던 두 사람은 노아의 증상이 자페이고 그를 제대로 다루는 의사나 전문가는 고사하고 제대로 된 치료 방법도 없다는 것에 절망하게 된다. 언어를 배우는 것은 물론이고 의사소통 자체가 안되는 노아를 붙들고 그린벨트 부부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노아가 10대가 되자 점차 그들은 지쳐가게 되고, 동생에게 빼앗긴 관심으로 엇나가기 시작한 칼마저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하자 부모는 무너지는데... 어쩔 수 없이 시설에 맡긴 노아 부모는 노아의 상태가 점차 악화되어가자 더욱 더 운명을 저주하게 되는데... 

70년대 미국에서 제일 유명한 자폐아 였다는 노아의 이야기를 --아버지가 노아를 다룬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함---형 입장에서 다룬 책이다. 형이지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에, 죄책감과 비난과 운명을 저주하는 마음과 압박감과 노아를 평생 돌봐야 한다는 짐에 평생 놓여나지 못했던 형의 육성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극단적인 자폐아라고 할 수있는 노아는 지금까지 평생 한마디도 못한채 시설에 갇혀 살고 있다고 한다.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라는 희망을 걸고 살았던 노아 부모님들의 한숨이 책 읽는 동안 느껴지는 것 같아 한없이 안타까웠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노아를 짐처럼 여기면서도 노아를 키우면서 겪은 비통함을 책으로 써서 먹고 살았던 부모를 비난하던 저자가 결국 자신도 동생에 대한 책을 이렇게 써냈다는 것이었다. 결국 부모를 욕하면서도 부모처럼 살게 되는 것이 자식의 운명인 것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정답일까? 아직도 난 모르겠다. 노아 같은 아이를 자식으로 두었다면 어떻게 살아야 옳은 것일까? 아서 밀러처럼 아예 시설에 줘 버리고 평생 잊고 사는 것이 정답일까? 아니면 자신의 인생을 어찌 되었건 간에 자식을 끼고 사는 것이 정답인 것일까? 자신이 힘들다고 버린 아이를 시설에서 학대한다고 울부짖던 노아 부모를 보면서 아이러니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시설에서의 학대가 옳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과연 누가 노아 같은 아이를 받아줘야 하는 것일까? 아, 정말로 대답하기 힘든 어려운 문제가 아닌가 한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애쓰시는 자폐아를 둔 부모님들께 행운을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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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 Young Author Series 1
남 레 지음, 조동섭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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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계 호주인이라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작가의 단편집. 작가 자신의 이력뿐만이 아니라 다른 다라 사람들의 정체성까지 파고드는 상상력이 돋보인다. 베트남 보트 피블이었던 아버지와의 갈등과 애정을 그린 <사랑과 명예 동정과 저존심과 이해와 사랑>, 어쩔 수 없이 거리의 청소부인 암살단이 되었지만 친구를 죽일 수 없어 고민하는 우정을 콜롬비아 빈민가를 배경으로 그려낸 <카르타헤나> 천재 첼리스트가 되어 나타난 딸을 만나기 위해 고분분투하는 노 화가의 하루를 그린 <일리스 만나기> 병으로 죽어가는 엄마와 학교 짱인 남자의 애인인 걸프렌드 사이에서 성장통을 겪고 있는 <해프리드>미일전쟁중의 히로시마에 사는 사람들의 풍경을 그린 <히로시마>남자에게 차인 고통을 달래기 위해 혁명을 위해 이란으로 간 친구를 찾아간 <테헤란의 전화> 그리고 자유를 찾아 어렵게 탈출한 보트 피플의 실상을 그려낸 <보트>등 세계 곳곳의 서로 다른 사람들의 각각의 사연과 풍경들이 탄탄한 글솜씨로 엮어져 있었다. 

단편집치고는 각각의 작품의 완성도가 높은 편이긴 하다. 특히나 자신의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 사랑과 명예와 동정과 자존심과 이해와 희생>가 괜찮았는데, 읽고 난 뒤에 여운이 찡하고 남겨질 정도로 완벽한 작품이었다. 그 외에는 그렇게 쓸 수 있다는 것이 물론 대단한 글발이라고는 생각되지만 어딘지 작위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 한계가 아닌가 한다. 정말 콜롬비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까? 전쟁중의 일본인들이 그렇게 생활했을까? 라는 의문이 들게 했으니까. 한마디로 각 민족마다의 개성이 드러나지 않았다. 상상력만으로 그려낸 한계가 아닌가 한다. 그럼에도 자신이 몸 담았던 곳만이 아닌 다른 곳에서의 상황들을 그려내려 한 도전 정신은 인정해줘야 하지 않는가 한다. 그런데 남 레, 그는 알까? 정말 좋은 소설은 진실을 쓰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단지 글발이나 상상력의 남발이나 문장력이 아닌... 어쨌거나 앞으로 지켜 봐도 좋을만한 글발이란 것에는 동의한다. 얼마나 성장하게 될지는 두고 봐야 겠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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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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쿳시, 그가 <추락>으로 노벨상과 부커상등등을 탄 것은 이해간다. 좋은 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내어 놓은 그의 책들을 보면 그에게 노벨상을 수여한 것은 실수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 책을 보면선 그런 생각이 한층 더 확실해 졌으니. 어찌된게 그에겐 작가의 생명력이라 할 수 있는 인간애가 부족해 보였으니 말이다. 물론 내가 잘못 본 것일수도 있겠지만, 그의 책을 보면 볼수록 그런 인상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도무지 왜인지 모르겠다. 부디 잘못 본 것이길 바라마지 않으면서... 

다른 책과는 다르게 세가지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 책이다. 노 작가가 쓴 세상에 대한 짤막한 견해들과 노 작가가 젊은 여인에 대한 생각,그리고 그 여인이 노인에 대해 느낀 생각들. 이야기는 이렇다. 세탁실에서 우연히 만난 필리핀 여인에게 반한 작가인 나는 그녀에게 타이핑을 부탁한다. 타이핑보단 육체적인 감상이 목적이란 것을 아는 두 사람, 모르는 척하면서 돈이라는 매개체로 인해 그들은 엮이게 된다. 노작가의 말을 받아 적으면서 차츰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보게된 여인이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서게 되고, 이에 작가는 저의기 만족한다는 결론. 

이런걸 늙은 남자의 판타지라고 해야 겠지? 젊은 여자가 그의 고상한 식견에 반해 감화를 받은 나머지 그를 진정으로 보게 된다는 것 말이다. 하이틴 로맨스를 보면서 10대의 철없는 환타지에 거북함을 느끼는 것처럼 , 이 책을 보면서는 늙어서 매력이 사라졌다고 생각한 남자의 환타지를 목격한 것 같아서 몹시 기분이 나빴다. 무엇보다 그 작가라는 분이 여자인 내가 보기엔 전혀 매력적이지 못함에도 작중에 나온 여자가 감화된다는 설정은 웃기기 까지 했다. 작가가 책 속에서 말한 것처럼 쿳시는 여자를 잘 모르지 않나 싶다. 그건 비단 이 책 속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책에서도 그간 반복되게 느꼈던 것들인데, 이참에 쿳시는 독자들의 견해를 받아들여 왠만하면 여자를 주인공으로 설정하는 우는 피하가시는게 낫지 않는가 한다. 정말 그는 여자를 모르니 말이다 .죽었다 깨나도 모르지 않을까 싶다. 그나저나 자신의 환상을 은근슬쩍 이런 책을 통해 고백하는 이 작가가 노벨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어쩜 놀라운 것일지도. 거기에 신문만 보고 사시는지 그가 세상에 내미는 견해들이란게 어찌나 공감이 안 가던지,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사는지 이젠 잘 모르시는 것이 아닐까 싶은 부분도 있었다. 무조건 냉소적이고 무조건 비판적이면 멋지고 올바른 견해라고 그는 착각하고 있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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