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비 Young Author Series 2
크리스 클리브 지음, 오수원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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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에서 탈출한 리틀비는 영국 난민 수용서에 2년을 보낸 뒤 간신히 풀려난다. 영국에서 아는 사람이라곤 달랑 두 명뿐인 리틀비는 어렵사리 걸어 그들을 찾아간다. 그녀가 만나려 하던 사람은 칼럼니스트 새라 부부, 그들은 삐걱대는 결혼을 어떻게든 붙여보고자 나이지리아로 여행을 떠났다가 우연히 살인자를 피해 도망치던 리틀비 자매와 만나게 된다. 둘을 살리고 싶다면 손가락을 내 놓으라는 살인자들의 말에 부부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그 날 이후  남편은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해 버린다. 두 가정의 비극이 만나는 지점에서 두 여인은 서로를 위해 힘을 내기로 하는데...

 

집단 살인, 집단 강간, 삐걱대는 결혼, 결혼생활에 비하면 오히려 정상적이여 보이는 불륜, 자살 기타등등 자극적이란 소재는 모아모아 풀어놓고 있는 소설이다. 이래도 감동 받지 않을래! 라는 듯 너무 인위적인 장치들로 이끌어 가는걸 읽으려니 끝내 반발심만 생겼다. 초반 리틀비가 난민촌을 벗어나는 장면에서 부터 그래도 신선했는데, 나이지리아에서 부부와 만난 사연들이 밝혀지는 순간부터 맥이 풀어져 버렸다. 아무래도 억지로 이야기를 꾸며 내려니 무리수를 둔 듯 싶다. 하여간 너무 감상적인 소설은 개연성이 떨어져 보인다. 이것이 진실이라면 오히려 담담하게 서술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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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지 않은 아이들 - 자폐증의 치료와 교육을 위한 어느 아버지의 보고서
로이 리처드 그린커 지음, 노지양 옮김 / 애플트리태일즈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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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폐증 치료와 교육을 위한 어느 아버지의 보고서라는 부제에서 보듯 딸을 자폐아로 둔 아버지가 쓴 글이다. 첫째 딸 이사벨이 자페아 판정을 받자 비로서 한번도 아이가 자기와 눈을 마추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아버지 로이 그린커는 아내와 함께 이사벨의 치료를 위해 백방으로 나선다. 대대로 정신과 의사 집안답게 무지를 싫어했던 그는 자폐아에 대한 망라적인 공부를 시작한다. 최근 자폐아들이 늘어난 배경과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최신 이론, 그리고 자페아를 힘들게 키우는 세계 여러나라 부모들의 모습등 자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망라적으로 서술한 책이다. 자폐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는 유용하지만, 좀 지루한 점이 흠. 아마도 교수 출신이라 서술 하는 방식이 딱딱해서 그런게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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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메리지
앤 타일러 지음, 민승남 옮김 / 시공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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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타일러는 내가 좋아하는 여류작가중 하나로 이 책의 원서를 구입한게 거반 3년은 넘은 것 같다. 그걸 아직까지 못 읽었으니 뭔가 이상하다 하던 차에 역서가 나왔다길래 읽어봤더니 단박에 이해가 갔다. 다른 책에 비해 재미가 없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이 자신의 책들중에서 가장 자랑스럽다고 했다던데, 도대체 어떤 의미에서 그런 말을 한건지 모르겠다. 작품의 질로만 따지자면 다른 책들이 훨씬 더 좋았는데 말이다. 개인적으로  <우연한 여행자>나 <때로는 낯선 타인처럼> < 종이시계> <바너비 스토리> < 홈시크 레스토랑> <Saint, maybe> 등이 짜임새 면이나 유머 감각이나 완성도 면에서 더 낫다. 자랑스럽다는 점이 힘들게 썼기 때문이라는 건지, 아님 새로운 시도를 해 봤기 때문인지, 것도 아님 나름 결혼의 속 사정을 개연성있게 파악했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열혈팬으로서는 좀 실망스러웠다. 책 팔아 먹기 위해 그런 멘트를 날리신 분은 분명 아니여 보이던데, 무슨 의미였을까? 어쨌거나 내용을 살펴보면...

 

2차대전 당시 첫 눈에 반해 결혼에 이른 마이클과 폴린을 가르켜 마을 사람들은 완벽한 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의 속내는 그렇지 않았다. 일렁이는 일말의 불안을 감추고 한 결혼, 둘은 결혼만 하면 잘 되 가겠지 라는 생각으로 결혼을 한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후, 남편은 자신들의 결혼이 <아마추어 메리지>임을 씁쓸하게 자인한다. 소심해 보일 정도로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남편과 성질 나면 불물 안 가리는 다혈질 아내, 아이 셋을 낳고 부부가 되기 위해 그 많은 세월을 노력했으나 결국 남는 것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부부라는 허울과 아내의 무참한 언어 폭력으로 인한 상처들뿐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해나 용서, 그 누구보다 잘 앎으로써 보듬어 주는 관계가 아닌 , 원수보다 더 지겨운 상대가 되어버린 아내를 버거워 하던 그는 부부싸움 끝에 평소처럼 "나가라"고 소리치는 아내를 향해 "정말? 정말 그래도 돼? " 라고 되묻는다. 과연 그들이 결혼에서 프로가 되는 길을 가능할 것인가?

 

인간관계에서의--특히 결혼-- 미묘한 갈등을 잘 잡아내던 작가의 특기가 이 책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 가장 재밌던 장면은 아내의 히스테리에 질린 남편이 결국 아내를 떠나자 아내가 보인 반응이었다. 남편이 배신을 해서 자신을 버린거라 떠들고 다니던데, 안타까운 것은 실제로 인간관계를 이런 식으로 맺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는 점이다. 부부나 친구, 부모 자식간이란 이유로 자신이 어떤 짓을 해도 상대가 버릴리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이다. 무시나 경멸, 모욕 주기, 분통 떠뜨림, 냉대, 불륜을 포함 학대하기등,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막 대해도 무사한 인간관계가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 사랑이란 이름으로, 결혼이란 이름으로, 내가 상대를 학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아, 물론 이 책은 단지 결혼에서의 성격차에서 비롯된 비극으로 생각해도 된다. 해석의 여지는 열려있고, 그걸 다 쓰기엔 여력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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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인의 비정상적인 죽음 - 황제의 정치 보복에 죽어간 불세출의 문인 36인
리궈원 지음, 김세영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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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투박하긴 하지만 제목이 이 책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중국 " 문인 " 의  "비정상적인 죽음 ". 처음 집어들었 땐 참 촌스러운 제목이네, 이런 책에 뭐 볼게 있겠어, 아마 연대별로 사건만 나열하다 말겠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마침 읽을만한 것이 없기에 허실삼아 읽어보기로 한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이었던지...연말이라고 다들 올해의 베스트 텐을 뽑느라 바쁘던데, 내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올해 베스트 오브 베스트에 뽑고 싶을 만치 수작이다. 작가가 10년을 고심해 쓴 책이라고 하는데, 중국의 무구한 역사에, 그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우뚝 선 천재 문인들과 그들의 광기 서린 통치자가 빚어낸 드라마틱한 이야기들,  작가 개인의 경험에서 우러난 통찰력, 중국 역사를 배경으로 일관된 주제를 아우르는 집중력,  명쾌한 논리, 허를 찌르면서도 경치게 웃기는 삐딱한 문장들, 대륙적인 깊이에, 현실을 꿰뚫어 볼 줄 아는 현명함에다, 중국 천재 문인들의 좋은 문장들을 골라내는 안목까지...책 한 권을 읽으면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감동과 재미, 그리고 정보의 기대치를 월등히 넘어서는 매력적인 책이었다. 그러니 내가 어찌 반하지 않고 배기겠는가. 한방에 갔다. 개인적으로 난 중국 작가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아니 신뢰한다고 보면 되겠다. 워낙 인구수가 많아서 그런지, 아니면 인문적인 전통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중국 출신 출신 작가들의 작품을 읽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수작을 종종 만나게 된다.  무엇보다 깊이가 다르다. 그에 비하면 일본 작가들은 얄팍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늘 한 수 배우는 기분이 들고,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며, 에밀레 타종 소리를 바로 앞에서 들은 듯 멍한 감동에 젖어 들기 일쑤다. 하여간 올해가 가기 전에 이런 수작을 만나게 되서 무척 반가웠다. 횡재한 기분이 들 정도로 의외의 수확이었으니까.

 

왜 비정상적인 죽음이냐고? 제 명에 자연사 하지 못했으니 그렇다. 그렇다면 왜 제 명에 못 죽었는데 라고 물으신다면 간단히 말해 입을 다물고 있지 못해서 그런거라 보심 된다. 입을 다물고 있는게 뭐 그리 어렵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을텐데... 그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당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고, 이 책에 나오는 중국의 문인 36인은 소위 시대를 뛰어 넘는 불세출의 천재들이라, 보여도 너무 잘 보였다는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보이는게 있으니 말하고 싶은건 인지상정!  그것이 자만이건 순정이건 애국심이건 광기건 울분이건 간에 말이다. 하지만 설마 말 좀 거슬리게 했다고 날 어쩌겠어? 라는 안이한 생각은 곧바로 잘못된 생각이었음이 판명되었으니... 여기서 가장 비극적인 점을 꼽으라면 바로 회복이 불가능하단 점일 것이다. 날아간 목을 다시 붙일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런 과정들이 중국  3 천 년 역사를 통해 꾸준히 반복되고 있었다니, 생각을 넓혀 보면 그것은 비단 중국에만 있는 일은 아니지 싶다.  <유토피아>의 토마스 모어 경이나 정몽주도 그런 경우니 말이다.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보편성에도 불구하고, 중국에는 그들만의 특출난 문인 학대 드라마가 존재했었으니, 그것이 바로 이 책을 쓸 수 있는 기발한 착상으로 연결된다. 이 책의 작가인 리궈원은 그것을 새롭고 맛깔나게 조명해 낸 것이고... 하여 작가에 의해 엄선된 중국 역사에서 비정상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문인들의 이름을 열거해 보면 이렇다.

 

사마천, 이백, 이사, 혜강, 이후주, 왕안석, 이 청조, 고계, 장거정 ,서 위, 이지 ,도융, 진자룡, 공자진 등 비교적 낯 익은 이름이 반갑게 (?) 들어있었다. 그 특별한 사람들 중에서도 인상적인 작가들을 추려 본다면, 궁형의 고통을 사기를 쓰는 에너지로 승화시킨 사마천, 젊은 혈기에 분수도 모르고 날뛰었다가 조조에게 죽음을 당했다는 예형, 광기가 지나쳐 목이 달아났다는 사령운, 천재적인 재능에도 불구하고 관직에의 미련을 못버렸다는 이백, 시인으로 살았더라면 확실히 명줄 길어졌을 황제 시인 이 후주컴플렉스 덩어리인 황제 (명태조인 주원장)를 만나는 바람에 이른 죽음에 이를 수밖엔 없었던 고계, 봉건시대에 공산주의를 실현하려다 위아래 협공으로 죽음에 이른 하 심은, 책만 읽던 백면 서생이 황제의 신임을 얻은 관계로 군정을 돌보다 아예 나라를 말아먹은 방효유등을 들 수 있다.  대충의 면면들이 이러할지니 흥미진진한 이야깃 거리가 널려 있음을 짐작하실수 있으실 것이다. 36명 작가 문인들의 이야기 자체도 물론 대단히 드라마틱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이 책를 돋보이게 하던 것은 작가 자신의 목소리였다.

 

1960년대 홍위병이 난리를 치던 문혁 시절, 단지 소설을 쓴 지식인이라는 이유로 <우파>로 몰려 22년간 곤혹을 치른 작가답게 그는 지식인의 한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권력에 조롱하고 저항하는자, 화를 면치 못할 운명이리니... 정의? 표현의 자유? 그런거 믿고 까부는거 참 위험하단 말이지. 문학은 길고 권력은 짧다? 그게 무슨 소용 있냐고 그는 되묻는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더 낫다고 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엔 없었다. 물론 진실이란 이름하에 꼿꼿이 핏대를 세우며 목청을 높이는게 뭐 그리 잘못된 일이겠는가 만은, 정치적인 맥락에서 보자면 황제가 바란 것이 그게 아니란 건 뻔한 거 아니겠는가. 비록 모양새는 안 좋다고 해도 비굴한 삶이 죽음보다는 낫다는 작가의 견해에 난 반박할 수 없었다. 그의 삶이 증명하듯이 실제로 문인은 힘이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 이유 중 하나로 정치와 문학이 전혀 별개의 재능이라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던데 일리있는 분석이지 싶다. 아무리 문학의 천재라 한들 정치에 능하기 어렵고 , 아첨만을 원하는 통치자에게 진실을 들이민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오히려 까닥 잘못 했다간 소인배의 손에 목만 달아나기 쉽상이지, 그것이야 말로 낭비가 아니겠는가라는 작가의 생각에 나 역시도 동조한다. 다만 불행한 점이라면 아마도 역사가 되풀이 되는 한, 그러한 낭비는 계속되지 않을까 라는 점이다. 역사가 꾸준히 증명하고 있 듯, 인간은 과거를 통해 그리 잘 배우는 편이 아니니 말이다.

 

어쨌거나 작가의 통찰력과 식견에 마냥 공감해가며 신나게 읽은 책이 되겠다. 특히 공감가는 문장중 몇 개만 적어 놓으니 맛뵈기로 음미해 보시길...

 

이른바 대중 운동이라는 것은 알고 보면 대중을 운동시키는 것의 다른 이름이다. 이 욱이 일개 시인에 불과했다면 그의 변태심리고 기껏해야 몇 명 머리가 빈 여자들에게 먹히는데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존귀한 천자였고, 그런 그가 유례없는 전족의 명을 내리자마자 아첨꾼들이 호응하고 어용 문인들은 치켜 세우기 바빴다. 그러니 가련한 백성들이 이 명령을 천둥처럼 느끼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260

 

무릇 한가지에 너무 집착해 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쉬지 않고 생각하는 것을 의학적으로 '정신병' 이라고 한다. 왕 안석은 소인이거나 위선자나 기인이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사람임에 틀림없다. 

 

명 태조는 사람 죽이는데 취미가 있었으며 특히 문인에 대해서는 아예 대놓고 열을 올리는 수준이었다. 아마도 농민의 편협한 생각에 비롯된 , 지식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타의식과 의심 때문이었을 것이고, 혹은 천민 출신이었던 그가 용상에 오르면서 의식 저변에 깔려 있던 열등감이 발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중이나 소도둑이었던 자신의 과거를 입밖엔 꺼내는 자는 어느 누구도 용서하지 않았다. 피비린내나는 탄압과 광적인 살인이 그에게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발산하는 길이었다. --369

 

중국의 선비는 몽둥이로 머리를 치거나 채찍으로 엉덩이를 갈기지만 않으면 감지덕지해 마지 않는 가련한 존재다. 혹 그를 귀한 손으로 대접이라도 하면 금세 자신을 알아주는 지기라도 만난 양 목숨까지 바치려 드는 것이 그네들이다.... 따라서 황제가 되었다 하여 소인이 아니란 법 없고, 앙심을 품지 말라는 법 없으며, 사소한 원한으로 보복하지 말라는 법 없다... 하지만 천재가 살인마 황제를 만나면 그것이 어느 시대건, 어느 사회가 됐건, 설령 폐하의 심기가 유난히 좋아서 친근하게 그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함께 현대 시가와 민간 문학의 발전 전망을 논하고, 사우나와 술집 아가씨들이 중국 작가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논한다고 해도 걱정할 것은 없다. 놀이가 끝나고 나면 결국 가게 되는 길을 똑같다. 결국 침묵하지 않으면 허리가 잘리게 되어 있고, 허리가 잘리고 싶지 않으면 침묵하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것이 주 황제의 논리이자 고금의 수많은 통치자들이 받들어 모셨던 신조다.--375

 

항상 하는 말이지만 중국의 지식인 가운데 군자도 많지만 소인도 적지 않다. 점잖은 척, 고상한 척 하면서 남을 짜증나게 하는 사람들, 남이 가진 것을 질투하면서 남이 없는 것은 비웃고, 자기가 못하는 일은 남도 못하게 하며, 자기가 얻지 못하는 일에 대해 남은 생각조차 못하게 하는 사람들, 남의 결점을 들춰 내 잘난 척하고 반박은 거절하는 이들, 겉으로는 점잖은 척 하면서 속으로는 음흉한 마음을 품고 있는 자들, 소인의 마음으로 군자의 심정을 판단하고 진부한 말로 남의 말을 편집하는 자들을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것이다.--557

 

 그렇게 보면 불안하고 뒤숭숭한 시대에는 훌륭하고 뛰어난 작가들이 많이 나오고, 평범한 시대에는 엄살을 부리며 유난을 떠는 작가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이런 점에서 타락한 시대에는 당연히 배꼽 아래 정사를 다룬 외설 작가들이 나오게 되어 있다. 문학이라는 것이 우환 속에 자라나고, 안락함 속에 죽어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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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은 날 수 없어 맹앤앵 그림책 7
캐서린 쉴리 지음, 레베카 엘리엇 그림, 임숙앵 옮김 / 맹앤앵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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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태어난 쿠엔틴과 빌리는 친한 친구 사이다. 함께 놀고 놀리면서 우정을 다져나가던 두 펭귄은 자라나면서 점차 성격이 판이하게 드러난다. 이지적인 쿠엔틴은 세상 모든 것이 궁금한 조용한 아이가 된 반면, 행동파인 빌리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통에 어른들에게 야단을 맞는다. 어느날 쿠엔틴은 펜귕은 날 수 없기 때문에 새가 아니라는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된다. 한편 꾸중을 듣는 것에 신물이 난 빌리는 집을 나가버린다. 거대한 폭풍이 몰려오자 빌리의 엄마는 빌리를 찾아 헤매고, 빌리가 어디있는지 아는 쿠엔틴은 위험을 무릎쓰고 그를 찾아 나서는데...

얼핏 분간이 안 되실텐데, 왼쪽의 둥그런 머리의 펭귄이 쿠엔틴이고, 오른쪽에 뽀족 머리를 한 펭귄이 빌리다. 성격이나 관심,그리고 재능이 전혀 다른 둘도 절친한 친구가 될 수 있고, 더 나아가 서로의 부족한 면을 보완해주는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낼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던 동화책이다. 거창하게 말하면 다중지능에 대한 유아용 버전이라고나 할까. 공부를 잘하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보면 좋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이 다른 동화책과 차별되는 점이라면...

1. 그림이 귀여움을 넘어 깜찍하다.

2. 이 세상엔 불필요한 재능은 없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3. 아이들 모두는 그저 다를 뿐이다. 더 나은게 아니라...

4. 삐진 나머지 가출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최초의 동화책으로,  조카에게 읽어주다 뜨끔했다. 내가 읽는걸 듣고 있던 엄마는 경악하더라. 과연 유아들에게 집을 나가도된다는 것을 알려 줘도 되나 고민했는데,  의외로 조카는 아무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아마도 누가 쿠엔틴이고 누가 빌리인지 구별하는 것에 정신이 팔려 그런게 아닌가 한다. 나중에 정신을 차려지면, 왜 집을 나가?라고 물을지도 모르니 미리미리 대답을 준비해야 겠다. 충고 받습니다.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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