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스플랫은 큰 선물이 좋아! 고양이 스플랫 시리즈 3
롭 스코튼 지음, 이정아 옮김 / 살림어린이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햐흐로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4살인 조카는 아직까진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즉, 선물 받는 날이라는 걸 전혀 모른다는 뜻이다. 아직 알지 못하는 명절을 굳이 알려 줘야 할까 고민이 되긴 하지만서도, 어쨋거나 조만간 파악을 해낼 것이 분명하기에 고른 선물이 되겠다. 조카가 좋아하는 동화책 시리즈중 하나인 스플랫의 최신작이다. 스플랫은 큰 선물이 좋아!!! 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에 선물 이야기다.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아둥바둥대다 유치원에 홀딱 빠져 버린 스플랫, 같은 반 여자 친구에게 반해버린 스플랫에 이어 산타에게 선물을 받고 싶어 갑자기 착해진 스플랫의 이야기다. 줄거리만 들어도 대충 짐작이 가시겠지만 아기들이 딱 관심 있어할만한 줄거리들이다. 1년 동안 착한 일을 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다는 말에 마냥 자신감을 내 비치던 스플랫은 동생의 한마디에 그만 기가 죽고 만다. 오빠가 정말 그렇게 착하게 군 것 같아?라는 말에 찔려 버린 것이다. 이제라고 착하게 굴어야 겠다고 동분서주 나선 스플랫. 역효과만 나는 것이 어쩜 당연한지 모르겠다. 착하게 굴기엔 너무 늦은게 아닐까 하면서 조마조마 가슴을 조리던 스플랫은 그래도 혹시나 하면서 산타를 기다린다. 산타는 다녀가셨지만 정작 자신의 선물이 보이지 않자 스플랫은 울상이 되고 마는데... 과연 올해 스플랫은 선물을 받게 된 것인가? 

이 책의 묘미를 들자면 단연코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그림에 있다. 이렇게 귀엽고 개성 넘치는 고양이 보신적이 있으신가? 한번만 봐도 빠져들만큼 매력적이다. 어른들 눈에 인상적이니, 아기들 눈엔 한결 더 눈에 확 뜨일 것은 당연지사. 또또 시리즈와 더불어 조카가 제일 좋아하는 시리즈중 하나가 되겠다. 보고 또 봐도 볼때마다 새로운 점을 발견하게 될 만큼 섬세하게 배경을 그려 놓은점도 만족스럽다. 한마디로 꽤나 공들여 섬세하게 그려낸 개성 넘치는 일러스트들이 돈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동화책을 몇 백권정도 뒤적대어 봤지만 이 정도의 선명함으로 그련낸 동화책은 드물지 않는가 한다. 내 생각엔 이 책이 올타임 베스트 셀러가 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었으니 한번은 이런 책을 읽어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해서 강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1마리 고양이와 아기 공룡 11마리 고양이 시리즈 6
바바 노보루 지음, 이장선 옮김 / 꿈소담이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1마리 고양이들은 먹을 것을 잡으러 나갔다 진흙탕에서 첨벙대고 있던 아기 공룡을 만나게 된다. 첨벙대면서 신나게 놀고 있는 아기 공룡을 첨벙이라 이름 붙인 11마리 고양이들, 그 후 절벽에 떨어져 울고 있던 공룡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첨벙이가 절벽에서 올라오지 못해 울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고양이들은 힘을 합해 첨벙이를 끌어 올린다.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숲속으로 허겁지겁 달아난 첨벙이는 얼마후 그들을 찾아온다. 계곡에서 울고 있던 때보다 훨씬 더 커버린 첨벙이는 고양이들을 등에 태우고 신나는 시간을 보낸다. 그 후 사소한 계기로 사이가 틀어져버린 고양이들과 첨벙이... 고양이들은 1년이 지나도 보이지 않는 첨벙이가 궁금하지만 잘 지내고 있을거라 생각하고만다. 그러던 어느날 첨벙이는 아가 공룡 셋을 데리고 고양이들 앞에 나타나는데... 

 111마리 고양이 시리즈중 하나로 귀여운 고양이와 점점 커가는 아기 공룡의 우정이 설득력있게 그려지고 있던 동화책으로 인간처럼 생각하고 단체 생활을 하는 11마리 고양이들과 진흙탕에서 첨벙대고 노는 것에 맛을 들인 아기 공룡이 만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는 상상력이 인상적이다. 조카에게 읽어줬더니 아주 좋아하면서 이 책을 <첨벙이>라고 불러댄다. 첨벙이라는 의성어가 귀에 쏙 들어오는 모양이다. 첨벙이 읽어달라고 이 책을 집어 오는걸 보면 글을 모르는 녀석이 어떻게 그렇게 잘 집어 오는지 신기하다. 단순하지만 재밌는 이야기여서,  4살 정도의 꼬마 아이라도 이해하기 쉽다는 것이 장점이다.  단 일본 색이 좀 난다는 것과 고양이들이 자신을 속인 아기공룡에게 복수를 한다는 설정이 좀 섬뜩하긴 했다. 아가들에게 이런걸 읽어줘도 되는가 약간 걱정이 되었을 정도로...익숙해지면 별게 아니라고 생각되질지 모르겠지만, 아기들에게 처음 뭔가를 주는 입장에선 이런 저런 상황들을 그냥 들려 줘도 되나 걱정이 되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다행이라면 마지막 장면이 고양이와 공룡이 화해해서 신나게 노는 장면이라는 점. 복수씬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만 않는다면, 친구들끼리 다툼이 있다해도 서로를 염려하는 마음만 있으면 여전히 화해할 수 있다는걸 보여준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다. 어느것을 더 강조점으로 봐야 할지 읽어주시는 부모님들이 판단하시길. 그림이 귀여워서 그런가 아기들은 좋아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얀 이빨 2
제이디 스미스 지음, 김은정 옮김 / 민음사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2012년이 지구의 종말이라는 유언비어가 요즘 시중에 떠도는 모양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 놈의 종말은 어쩜 그리도 자주 임박해주시는지, 1999년 그 떠들썩했던 종말 해가 지나간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 종말론이 고개를 들고 당당히 나와주는걸 보면 종말론을 외치는 사람들이야말로 무안이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양반들인가보다. 아님 과거에서 전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바보들이거나, 정말로 간절하게 종말을 원하는 사람들이거나.

 

갑자기 종말론을 들고 나온 것은 이 책이 그것과 관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중 하나인 클라라가 남편 아치를 만나게 된 데는 여호화증인의 종말론이 큰 작용을 했으니 말이다. 소설의 시작은 이렇다. 잘못된 결혼이라는걸 알면서도 30년을 참고 살아왔던 아치는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자 자살하기로 결심한다. 비통한 마음으로 자동차 배기 가스를 마시던 아치는 정신이 혼미해지기도 전에 정육점 주인에게 딱 걸려 버린다. 장사에 방해되니 다른 곳에 가서 죽으라는 주인의 말에 아치는 그것이 더 살아보라는 신의 계시라고 해석해 버린다. 새로운 삶을 받았다고 기분이 고조 된 아치는 파티에 가서 운명처럼 열 아홉의 클라라를 만난다.

 

자메이카 영국 이민 2세대인 클라라는 극성맞은 여호와 증인 신도인 엄마와 함께 종말론 팜플렛을 뿌리러 다니느라 학교에선 왕따 신세다. 종단에서 강력하게 도래를 확신하던 1975년 1월 1일의 종말 시간이 무사히 지나간데다 엄마에게 세뇌당한 남자 친구마저 신도가 되자 클라라는 자신이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넘었다고 생각한다. 엄마에게서 벗어나겠다는 절체절명의 욕구는 클라라로 하여금 파티에서 만난 아치와 결혼하게 하는 동인으로 작용한다. 그렇게 특이한 인연으로 재혼을 하게 된 아치와 클라라는 아이리라는 딸을 낳는다.

 

아치와 2차 세계대전 참전 동지인 사미드 익발은 방글라데시 출신의 이슬람 주의자다. 사미드는 자신이 고향에선 영웅의 자손이며 인텔리였다는 사실을 들어주는 사람마다 되풀이하지만 영국에서 그에게 주어진 현실은 고작 음식점 웨이터에 불과하다. 집안끼리의 정혼에 의해 어린 알사나와 결혼한 사마드는 아치에게 젊은 아내의 장점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다.  알사나는 아들 쌍둥이를 낳고 사미드는 그들에게  마기드와 밀라트란 이름을 붙여 준다.

 

고집센 잔소리꾼인 알사나는 늘 허황된 꿈속에 사는 남편이 불만이다. 독실한 이슬람 주의자를 자처하던 사미드는 아이들 학교 선생과 불륜에 빠지고 그 죄책감을 더는 방편으로 아이 하나를 고국으로 보내기로 한다. 누구를 보낼까 고민하던 그는 총명한 사미드를 아내 몰래 보내 버린다. 후에 이를 알게된 알사나는 펄펄 뛴다.

 

네 주인공들의 자식들인 아이리와 밀라트와 마기드, 동갑으로 어린 시절부터 삼총사처럼 몰려 다니던 그들은 마기드의 갑작스런 부재에 어리둥절해한다. 남겨진 둘은 고등학생이 되고, 타고난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고 있던 밀라트는 이국적인 외모로 여자들의 인기를 독차지한다. 그를 짝사랑하는 아이리는 밀라트의 관심을 받으려 애를 쓰지만 밀라트에겐 그녀가 친구일 뿐이다. 학교에서 대마초 검거를 한다는 말에 밀라트에게 경고를 하려던 아이리는 함께 교장에게 붙잡힌다. 그 사건으로 인해 둘은 운명적으로 살펜가에 연결된다.

 

대대로 천재 집안인 살펜가 사람들은 바보들이라면 한시도 참아주지 못하는 엘리트주의 맹신자다. 평소 자신들의 똑똑함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던 살펜가의 여주인 조이스는 빈민가 출신의 말썽장이 밀라트와 아이리를 받아 들인다. 자신의 집과 너무도 다른 살펜가의 문화적 환경에 밀라트와 아이리는 충격을 받는다. 둘을 제대로 교육 시켜 보겠다는 살펜가의 의지는 그 둘의 생부모들과 갈등을 빚게 된다. 한편 납치되다시피 방글라데시로 출국해야 했던 마기드는 종교 지도자가 되라는 아버지의 뜻과는 달리 지극히 이성적인 엘리트로 변신해 돌아온다. 냉철한 과학자로 유전자 조작 쥐를 통해 생명공학을 연구하던 마커스 살펜는 연구하던 쥐를 공개함으로써 자신의 연구 성과를 보여주려 한다. 공개 세미나가 임박해오자 동네 깡패에서 극단적인 이슬람 주의자로 변신한 밀라트와 그를 사랑하는 아이리, 아버지를 경멸하는 마기드, 살펜가에 반발하는 익발 가족과 유전자 조작을 반대하는 여호와 증인 신도와 동물 보호 단체들이 몰려들어 긴장감이 고조된다. 그 와중에 울려 펴지는 총성, 과연 그 공개 세미나장에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대충 줄거리만 써도 이 정도니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이 책속에 포진해 있을지 짐작이 되실거라 본다. 정신이 아득할 정도의 현란한 이야기들을 어찌나 구성지게 들려 주던지, 홀딱 반하고 말았다. 여자 살만 루시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단한 통찰력과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써의 자질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던데, 놀라운 것은 이 책이 25에 쓴 그녀의 데뷔작이라는 점이다. 환생한 노인네가 아니라면 도무지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인지 불가사의할 뿐이다. 문장이야, 뭐 천재적인 머리를 타고 태어났다면 쓰는 것이야 가능하겠지만 런던의 거리 구석구석을 파헤치던 그 통찰력은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놀라운 재능을 가진 작가가 발굴된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도 공감가고 생각할거릴 주는 대목들이 많았기 때문에 일일히 거론하긴 그렇고, 가장 공감가는 문장 하나를 꼽자면 이렇다.

 

이런 국수자의들의 공포, 즉 감염, 침투, 혼혈을 두려워 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이민자들의 폭소를 자아낸다. 이들의 두려움은 이민자들이 두려워하는 융해나 소멸에 비하면 그야말로 시시한 땅콩에 불과하다. 심지어 침착한 알사나 익발에게도, 어느날 밤 밀라트가 사라라는 어떤 여자 아이와 결혼하여 마이클이라는 아이를 낳고, 이 아이가 루시라는 여자와 결혼하고, 결국 벵골 사람의 유전자는 완전히 희석되어 알아볼 수 없는 증손자를 알사나에게 안겨 주는 환영이 찾아왔다. 이후로는 정기적으로 땀에 흠뻑 젖어 잠에서 깨곤 했다.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비이성적이면서도 가장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자메이카에서는 이것이 문법에 존재한다. 인칭대명사를 선택할 필요가 없는데, 너나 나 혹은 그 사이에 구별이 없고 오로지 순수하게 동질적인 일인칭만 있다.---101(2편)

 

이 창래의 <영원한 이방인>에 보면 한국에선 내노라 하는 엘리트였던 아버지가 미국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자존심을 상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실패한 인생임을 자처하며 서글퍼하는 아버지를 아들은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영원한 이방인>이 아무리 네이티브 스피커라 한들 미국에 완전히 동화되지 못하는 이방인으로써의 동양인의 애환을 그린 것이라면, 이 책의 저자는 동화를 두려워하는 이민자들의 공포를 그려내고 있었다. 정반대의 역발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난 그녀의 문장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왜냐면 나라도 그랬을 것 같기 때문이다. 외국에 산다고 해도 자국민의 모든 것이 다 우월하다고 생각할리는 없으니 말이다. 단지 내가 살기 위해 머무는 곳이 바로 그곳일뿐, 내가 가진 주체성을 잃고 싶지 않을 터였다. 말하자면 그들의 것을 빼앗을려는 생각보단 내 것이 사라질까가 더 고민되었을 것이란 뜻이다. 그런 이민자의 고충을 이민자가 아닌 사람에게도 설득력있게 설명해내던 것이 작가의 통찰력이었으니, 내가 그녀에게 반한 것도 무리는 아니지 싶다. 여자 작가로썬 보기 드문 유머 감각에 선명한 통찰력, 어디로 풀려갈지 감을 잡히지 않는 신선한 이야기들, 개성과 개연성을 두루 갖춘 등장인물들,  짜임새 있는 구성과 두 세번 들여다 보게 하는 촌철살인의 문장등... 흠 잡을만한 여지가 없는 완벽한 책이었다. 만약 흠이 있다고 해도 장점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참, 서두에 언급한 종말론을 까먹을뻔 했다. 이 책을 보니 종말론은 예언이 빗나갈때마다 여호와 증인의 고참들이 모여 다시 종말일을 결정한다고 한다. 이번엔 틀림없다고 자신하면서...하니 지구의 종말이 진짜로 실현되기전까진 우리 지구인들은 끊임없이 종말론에 시달려야 하는 운명이라 보면 되겠다. 보너스로 책에 수록된 농담 한마디...0이 8에게 뭐라고 했게?  벨트 좋은 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얀 이빨 1
제이디 스미스 지음, 김은정 옮김 / 민음사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2012년이 지구의 종말이라는 유언비어가 요즘 시중에 떠도는 모양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 놈의 종말은 어쩜 그리도 자주 임박해주시는지, 1999년 그 떠들썩했던 종말 해가 지나간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 종말론이 고개를 들고 당당히 나와주는걸 보면 종말론을 외치는 사람들이야말로 무안이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양반들인가보다. 아님 과거에서 전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바보들이거나, 정말로 간절하게 종말을 원하는 사람들이거나.

 

갑자기 종말론을 들고 나온 것은 이 책이 그것과 관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중 하나인 클라라가 남편 아치를 만나게 된 데는 여호화증인의 종말론이 큰 작용을 했으니 말이다. 소설의 시작은 이렇다. 잘못된 결혼이라는걸 알면서도 30년을 참고 살아왔던 아치는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자 자살하기로 결심한다. 비통한 마음으로 자동차 배기 가스를 마시던 아치는 정신이 혼미해지기도 전에 정육점 주인에게 딱 걸려 버린다. 장사에 방해되니 다른 곳에 가서 죽으라는 주인의 말에 아치는 그것이 더 살아보라는 신의 계시라고 해석해 버린다. 새로운 삶을 받았다고 기분이 고조 된 아치는 파티에 가서 운명처럼 열 아홉의 클라라를 만난다.

 

자메이카 영국 이민 2세대인 클라라는 극성맞은 여호와 증인 신도인 엄마와 함께 종말론 팜플렛을 뿌리러 다니느라 학교에선 왕따 신세다. 종단에서 강력하게 도래를 확신하던 1975년 1월 1일의 종말 시간이 무사히 지나간데다 엄마에게 세뇌당한 남자 친구마저 신도가 되자 클라라는 자신이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넘었다고 생각한다. 엄마에게서 벗어나겠다는 절체절명의 욕구는 클라라로 하여금 파티에서 만난 아치와 결혼하게 하는 동인으로 작용한다. 그렇게 특이한 인연으로 재혼을 하게 된 아치와 클라라는 아이리라는 딸을 낳는다.

 

아치와 2차 세계대전 참전 동지인 사미드 익발은 방글라데시 출신의 이슬람 주의자다. 사미드는 자신이 고향에선 영웅의 자손이며 인텔리였다는 사실을 들어주는 사람마다 되풀이하지만 영국에서 그에게 주어진 현실은 고작 음식점 웨이터에 불과하다. 집안끼리의 정혼에 의해 어린 알사나와 결혼한 사마드는 아치에게 젊은 아내의 장점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다.  알사나는 아들 쌍둥이를 낳고 사미드는 그들에게  마기드와 밀라트란 이름을 붙여 준다.

 

고집센 잔소리꾼인 알사나는 늘 허황된 꿈속에 사는 남편이 불만이다. 독실한 이슬람 주의자를 자처하던 사미드는 아이들 학교 선생과 불륜에 빠지고 그 죄책감을 더는 방편으로 아이 하나를 고국으로 보내기로 한다. 누구를 보낼까 고민하던 그는 총명한 사미드를 아내 몰래 보내 버린다. 후에 이를 알게된 알사나는 펄펄 뛴다.

 

네 주인공들의 자식들인 아이리와 밀라트와 마기드, 동갑으로 어린 시절부터 삼총사처럼 몰려 다니던 그들은 마기드의 갑작스런 부재에 어리둥절해한다. 남겨진 둘은 고등학생이 되고, 타고난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고 있던 밀라트는 이국적인 외모로 여자들의 인기를 독차지한다. 그를 짝사랑하는 아이리는 밀라트의 관심을 받으려 애를 쓰지만 밀라트에겐 그녀가 친구일 뿐이다. 학교에서 대마초 검거를 한다는 말에 밀라트에게 경고를 하려던 아이리는 함께 교장에게 붙잡힌다. 그 사건으로 인해 둘은 운명적으로 살펜가에 연결된다.

 

대대로 천재 집안인 살펜가 사람들은 바보들이라면 한시도 참아주지 못하는 엘리트주의 맹신자다. 평소 자신들의 똑똑함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던 살펜가의 여주인 조이스는 빈민가 출신의 말썽장이 밀라트와 아이리를 받아 들인다. 자신의 집과 너무도 다른 살펜가의 문화적 환경에 밀라트와 아이리는 충격을 받는다. 둘을 제대로 교육 시켜 보겠다는 살펜가의 의지는 그 둘의 생부모들과 갈등을 빚게 된다. 한편 납치되다시피 방글라데시로 출국해야 했던 마기드는 종교 지도자가 되라는 아버지의 뜻과는 달리 지극히 이성적인 엘리트로 변신해 돌아온다. 냉철한 과학자로 유전자 조작 쥐를 통해 생명공학을 연구하던 마커스 살펜는 연구하던 쥐를 공개함으로써 자신의 연구 성과를 보여주려 한다. 공개 세미나가 임박해오자 동네 깡패에서 극단적인 이슬람 주의자로 변신한 밀라트와 그를 사랑하는 아이리, 아버지를 경멸하는 마기드, 살펜가에 반발하는 익발 가족과 유전자 조작을 반대하는 여호와 증인 신도와 동물 보호 단체들이 몰려들어 긴장감이 고조된다. 그 와중에 울려 펴지는 총성, 과연 그 공개 세미나장에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대충 줄거리만 써도 이 정도니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이 책속에 포진해 있을지 짐작이 되실거라 본다. 정신이 아득할 정도의 현란한 이야기들을 어찌나 구성지게 들려 주던지, 홀딱 반하고 말았다. 여자 살만 루시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단한 통찰력과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써의 자질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던데, 놀라운 것은 이 책이 25에 쓴 그녀의 데뷔작이라는 점이다. 환생한 노인네가 아니라면 도무지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인지 불가사의할 뿐이다. 문장이야, 뭐 천재적인 머리를 타고 태어났다면 쓰는 것이야 가능하겠지만 런던의 거리 구석구석을 파헤치던 그 통찰력은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놀라운 재능을 가진 작가가 발굴된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도 공감가고 생각할거릴 주는 대목들이 많았기 때문에 일일히 거론하긴 그렇고, 가장 공감가는 문장 하나를 꼽자면 이렇다.

 

이런 국수자의들의 공포, 즉 감염, 침투, 혼혈을 두려워 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이민자들의 폭소를 자아낸다. 이들의 두려움은 이민자들이 두려워하는 융해나 소멸에 비하면 그야말로 시시한 땅콩에 불과하다. 심지어 침착한 알사나 익발에게도, 어느날 밤 밀라트가 사라라는 어떤 여자 아이와 결혼하여 마이클이라는 아이를 낳고, 이 아이가 루시라는 여자와 결혼하고, 결국 벵골 사람의 유전자는 완전히 희석되어 알아볼 수 없는 증손자를 알사나에게 안겨 주는 환영이 찾아왔다. 이후로는 정기적으로 땀에 흠뻑 젖어 잠에서 깨곤 했다.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비이성적이면서도 가장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자메이카에서는 이것이 문법에 존재한다. 인칭대명사를 선택할 필요가 없는데, 너나 나 혹은 그 사이에 구별이 없고 오로지 순수하게 동질적인 일인칭만 있다.---101(2편)

 

이 창래의 <영원한 이방인>에 보면 한국에선 내노라 하는 엘리트였던 아버지가 미국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자존심을 상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실패한 인생임을 자처하며 서글퍼하는 아버지를 아들은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영원한 이방인>이 아무리 네이티브 스피커라 한들 미국에 완전히 동화되지 못하는 이방인으로써의 동양인의 애환을 그린 것이라면, 이 책의 저자는 동화를 두려워하는 이민자들의 공포를 그려내고 있었다. 정반대의 역발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난 그녀의 문장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왜냐면 나라도 그랬을 것 같기 때문이다. 외국에 산다고 해도 자국민의 모든 것이 다 우월하다고 생각할리는 없으니 말이다. 단지 내가 살기 위해 머무는 곳이 바로 그곳일뿐, 내가 가진 주체성을 잃고 싶지 않을 터였다. 말하자면 그들의 것을 빼앗을려는 생각보단 내 것이 사라질까가 더 고민되었을 것이란 뜻이다. 그런 이민자의 고충을 이민자가 아닌 사람에게도 설득력있게 설명해내던 것이 작가의 통찰력이었으니, 내가 그녀에게 반한 것도 무리는 아니지 싶다. 여자 작가로썬 보기 드문 유머 감각에 선명한 통찰력, 어디로 풀려갈지 감을 잡히지 않는 신선한 이야기들, 개성과 개연성을 두루 갖춘 등장인물들,  짜임새 있는 구성과 두 세번 들여다 보게 하는 촌철살인의 문장등... 흠 잡을만한 여지가 없는 완벽한 책이었다. 만약 흠이 있다고 해도 장점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참, 서두에 언급한 종말론을 까먹을뻔 했다. 이 책을 보니 종말론은 예언이 빗나갈때마다 여호와 증인의 고참들이 모여 다시 종말일을 결정한다고 한다. 이번엔 틀림없다고 자신하면서...하니 지구의 종말이 진짜로 실현되기전까진 우리 지구인들은 끊임없이 종말론에 시달려야 하는 운명이라 보면 되겠다. 보너스로 책에 수록된 농담 한마디...0이 8에게 뭐라고 했게?  벨트 좋은 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리 젖 짜는 사람 - 다마스쿠스에서 온 이야기들
라픽 샤미 지음, 이상훈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한 손 가득 별들이> 와 <1001개의 거짓말>의 저자인 라픽 샤미의 신작이다. 생각보다 얇길래 실망했는데 다행히도 내용은 충실했다. 쉽게 쓰여져 있으면서도 마음을 울리는 글들, 여전히 라픽 샤미답다. 어떻게 보면 우화 같고, 또 어떻게 보면 생활에서 우러나온 이야기 같고... 우화와 현실을 절묘하게 융합해서 글을 써내는 재능은 아마도 < 아라비안 나이트>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옛날 이야기를 좋아하는 빵집 아들인 나는 칠순이 넘어 세상사에 통달한 살림 아저씨에게 늘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댄다. 긴 생애동안 별별 것들을 다 경험한 아저씨는 그 세월만큼이나 지혜도 늘어서 , 내가 실망했을때나 세상사에 불만이 많을때  웃음이 필요할때도 나를 위로하고 다독일만한 이야기를 재치있게 해 주신다. 가난과 거친 아버지, 자주 바뀌는 정부들과 비밀경찰들이 판을 치는 가운데에서도 살림 아저씨의 지혜와 엄마의 자애스러움이 나를 보호하는 가운데, 한가롭게 흘러가는 나의 어린 시절이 다마스커스 거리 풍경과 더불어 펼쳐지고 있었다. 라픽 샤미가 다른 책에서 들려주고 했던 어린 시절의 다른 변주로, 마치 할머니가 잠자리에서 들려주고 또 들려주던 이야기처럼 친근하고 정겨웠다. 해학과 유머, 그리고 휴머니즘과 인간을 바라보는 편협하지 않는 시선이 읽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한다.. 제목인 파리 젖짜는 사람은 군대에 끌려 가지 않으려 미친 척 하기 위해 고안해 낸 저자의 직업으로  <캐치 -22>가 연상되는 제목이다. 두 작가가 만나면 아마도 소울 메이트를 만난 듯  반가워 하지 않을까 싶다. 다른 듯 보이나 생각은 똑같으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