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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거대한 기차 - '칭짱 철도 건설' 프로젝트에 가려진 통일 제국을 향한 중국의 야망
아브라함 루스트가르텐 지음, 한정은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승객을 위해 산소 호스가 지급되는 열차가 있다고 한다.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칭짱 철도다. 비행기를 타면서도 한번도 산소 마스크를 사용해본 적이 없는 나로써는 그 이야기에 켁켁 웃고 말았다. --원래 기발한 이야기를 들으면 난 그렇게 반응한다.--단지 땅위만 오고 가는데 산소 호흡기가 필요하다니 재밌지 않는가? 하지만 그 철도가 놓여진 곳은 가장 높은 곳이 해발 약 5072미터 높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우리나라 백두산의 두배 높이 더 된다. 평균 해발고도 4500미터, '하늘 길'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소가 희박할 거라는 것은 당연지사, 어쩜 놀라운 것은 열차 안에 산소 호스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철도를 건설해 냈다는 점일 것이다. 중국 대륙에서 티벳에 이르는 길, 희박한 산소 덕분에 숨 쉬기도 버겁다는 곳, 현지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면 고산병에 걸려 곧바로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곳에 철로를 개설하고 열차를 운행하고 있다니, 말만 들어도 기가 질린다. 언젠가 스위스의 알프스 산악지대에 철도가 올라가는 것을 보곤 인간의 힘은 얼마나 대단한가--다른 말로 하면 인간은 얼마나 극성맞은가?--생각한 적이 었었는데, 이 철도 역시 그에 못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중국 사람들이 누군가? 6.25를 몸으로 겪으신 할머니는 중국인들을 가리켜 떼놈이라고 부르곤 했다. 떼거지로 뭉쳐 다니면 그 누구도 당해낼 자가 없다는 뜻이었다. 이 책은 바로 그 떼놈들이 티벳을 어떻게 왜 삼키려 애를 쓰고 있으며 그 과정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를 칭짱 철도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중국과 티벳의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관계를 한 서양 기자 개인의 시선에서 분석하고 있던 책이라고 보심 되겠다.
칭짱철도는 2006년 7월 1일 개통되었다고 한다. 워낙 외지고 고산지대에 위치해 있어 강한 집념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티벳이 이제 중국에서 열차를 타면 직행으로 갈 수 있는 곳이 된 것이다. 티벳 인들은 아마도 그런 가능성을 예전에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길이 열린다면 ,정말 친한 벗 혹은 최악의 벗이 우리의 방문자가 되리라" 는 티벳 고대 격언이 있다고 하니 말이다. 쿤룬 산맥이 버티고 있는 바람에 천혜의 금단의 땅이었던 그곳이 이제 개나 소나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되어 버렸다니 과거와는 다른 패러다임으로 사회가 돌아갈 거라는 것은 안봐도 뻔 한 일, 이 책의 저자는 과연 그 철도가 티벳인들에게 축복일 것인가 저주가 될 것인가를 묻고 있었다.
우선 철도를 개설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는 것을 저자는 설명하고 있었다. 그 철도는 40여년전 중국 공산당이 티벳을 합병한 이래 줄곧 품어온 꿈이었으나 여러가지 사정으로 말미암아 좌절되었다고 한다. 정치적인 점도 있긴 했으나 무엇보다 철로를 개설하기에 적합한 지반인가 라는 연구가 미흡했었던 것이다. 지반이 무너지는 곳에 철도를 건설했다간 대형 사고가 날 것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그런 우려는 2001년 오랫동안 티벳 고지를 떠돌며 연구 한 연구원의 야심찬 발언을 계기로 불식되면서, 칭짱철도 건설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서양 사람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전광화석의 속도로 철도 건설이 이뤄져 2006년 개통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인간이 해냈다기엔 너무도 위대한 업적이라 저자 자신도 책 제목을 "China's Great Train" 으로 짓고 있었다. 중국인들이 정치, 경제적인 음흉한 속내를 가지고 건설된 철로긴 하나 대단한 일을 해 냈다는 것은 틀림없으니 말이다. 철도가 개통된 이후 예상했던 대로 티벳에는 많은 변화가 도래했다고 한다. 더 많은 관광객, 새롭게 지어지는 호텔, 대박을 바라고 들어온 많은 한족 상인들, 중심 시가지에서 밀려나가는 티벳 원주민들, 그리고 중국의 강력한 통제정책에도 불구하고 꺼질줄 모르는 민주화 자유화 독립에 대한 티벳인들의 열망등... 저자는 여타의 것들을 현지에 잠입해 몰래 보고 듣고 취재하면서 과연 앞으로 티벳이 어떻게 나아갈지 점쳐본다. 그리곤 그도 짐작할 수 없다고 고백하고 있었다. 철도가 가져온 경제적 이득이나 개방이 티벳인들의 민주화를 앞당길지, 아니면 영원한 종속민으로 남게 되는 계기가 될지 신이 아닌 이상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아마도 그건 흑심을 가지고 철도를 건설한 중국 정치인들도 알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는 사실, 그 주사위로 인해 앞으로 어떤 일일 벌어질지는 두고봐야할게 될 일 일 것이다. 인간인 우리가 미래를 통제할 수는 없는 것이고, 티벳과 중국이란 관계는 워낙 변수가 많아서 추측이란게 금물이지 않겠나 라는게 이 책을 읽고 난 내 소감이었다.
언젠가 중국 사람들이 티벳에 집착하는 이유가 궁금했던 나는 동생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아니 왜 한쪽 구석에 몰려있는 쬐그만 나라에 그 난리를 피는거야? 숨쉬기도 힘들다매? " 동생 말이 " 바로 그 쬐끄만 땅 밑에 엄청난 광물이 숨겨져 있거든 ." 그렇다. 땅 밑에 너무 많은 보물이 숨겨져 있으면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고생을 한다. 티벳인들이 고문을 당하고 검열과 죽음과 잔인한 진압을 당하는 것도 다 그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이 나쁘다고? 물론 나쁘긴 하다. 그런데 그런 나라가 한둘이냐? 미국은 안 그랬나? 소련은? 중국이 잘 하고 있다는게 아니라, 결국 힘의 논리가 지배되는 세계에서 힘이 약한 자가 고생을 한다고 떠들어봐야 별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앞으로 티벳인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어떻게 헤쳐 나가게 될지 나 역시도 걱정이 되긴 하지만 이 저자가 생각하는대로 중국의 중화주의란 사상때문에 이 모든 일이 벌어진거라는 것엔 동의할 수 없었다. 그리고 중국인들은 가해자고 티벳인들은 철저히 피해자라는 시각도. 물론 그렇긴 하지만 그런 역학관계가 설정된 것은 역사가 시작된 이래 그들만이 아니었다. 그러니 넘 억울해 하지 마시길. 달라이 라마가 현명한 해결책을 언젠가는 내어놓기를 바랄 뿐이다. 자주 독립만을 외치고 있을때는 아닌듯 하니 말이다. 중국, 특히 티벳에 집착에 가까운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한번 봐도 좋을 듯하나, 기자로써의 시선이 다소 티벳쪽에 편향되어 객관성을 잃어버린 점, 정치서인지 역사서인지 여행서인지 헷갈리는 서술, 중국과 티벳에 대해 서양인들보단 우리들이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점, 기차를 중심으로한 미시사란 점등을 감안해 애매작으로 넣었다. 저자가 엄청난 열정을 기해 만든 책이라고 하던데, 이런 평가를 내릴 수밖엔 없어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