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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혼돈 - Quiet Chao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초췌한 모습의 남자가 벤치에 앉아있다. 실은 그는 딸의 학교 앞 벤치에서 진을 치고 있는 중이다. 다소 흐트러진 차림이지만 얼마전까지만해도 넥타이에 명품 양복에 완벽한 출근 복장으로 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도대체 그는 어떤 이유로 학교 앞 벤치를 지키게 된 것일까?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기로 하자.
별장으로 휴가를 간 피에트로 팔라리니( 난니 모레티 역)는 해변에서 동생과 공놀이를 하다 물에 빠져 살려달라는 여인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위험하다는 주위의 만류에도 물에 뛰어든 그 둘은 다행히 여인들을 구하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조차 하지 않자 괜한 일을 했다며 불평한다. 구해준 여인들의 미모가 어땠느니 저땠느니 하며 별장으로 돌아온 형제는 그 사이 피에트로의 아내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걸 알게 된다. 아빠를 발견하고 뛰쳐 나온 딸은 도대체 아빠는 어디에 있었냐고, 내가 그렇게 불러댔는데 라며 절규한다. 믿기 힘든 현실이 갑자기 자신의 앞에 뚝 떨어진 피에트로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채 멍한 표정을 짓고 만다.
아내의 장례식이 끝나고 난 뒤 딸의 첫 등교일... 딸이 한없이 안스럽기만 피에트로는 딸에게 학교 밖에서 지키고 있을테니 걱정말라고 말한다. 그리곤 그 말 그대로 하루종일 학교 앞에서 죽치고 앉아 딸을 기다리기 시작한다. 단 하루로 끝이 날 줄 알았던 그의 학교 지킴은 그 이후로도 쭉 이어져서 점차 그는 학교앞 생활에 익숙해지게 된다. 비서를 통해 회사 일을 하고, 친구들도 벤치로 그를 찾아오며, 학교 창문을 통해 딸과 손 인사를 하고, 주변 까페에서 식사를 해결할 곳도 마련한다. 매일 학교 앞을 어슬렁대면서 주위를 살피던 그는 늘 같은 시간에 지나치는 낯선 사람들에게마저 익숙해진다. 차의 삑삑대는 경적 소리를 좋아하는 다운증후군 아이를 위해 매번 신호를 보내주고, 개를 산책시키는 미모의 여성에게 반하기까지 하는 그. 괜찮다는 말에도 그의 말에도 불구하고 지인들은 그가 아내와의 사별로 정신이 완전히 나간 모양이라며 걱정하기 시작한다.
그 중 한 인물이 바로 처제 마르타다. 언니의 죽음으로 형부 못지 않게 맛이 간 그녀, 아니 그보다 더 화끈하게 맛인 간 그녀는 형부를 만나러 온 학교 앞에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옷을 벗을 만치 열정적인 여자다. 유부남의 아이를 가졌다고 고백하는 그녀는 너무도 냉정하게 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형부를 비난한다. 사랑하지 않았으니 언니의 죽음을 그렇게 침착하게 받아들이는게 아니냐고 다그치는 처제에게 피에트로는 발컥 성을 낸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피에트로의 동생도 그를 찾아 학교로 온다. 넋을 잃은거냐, 비탄에 잠긴거냐, 상심해서 이러는거냐는 동생의 질문에 피에트로는 다 아니라고 대답한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자신은 상관하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한편 저녁식사 모임에 나갔던 동생 카를로스는 할 말이 궁해지자 해변에서 여인들을 구해준 이야기를 모험담처럼 들려준다. 그의 말을 유심히 듣고 있던 엘레노라라는 여인이 통곡을 하고, 동생은 그때 해변에서 구해준 여인중 하나가 그녀임을 알게 된다. 감사 인사를 하겠다면 역시 학교 앞으로 피에트로를 찾아온 엘레노라는 자신을 구해주러 갈때 만류했던 인물이 누군지 혹 알겠느냐며 사진을 건넨다. 구조를 만류했던 남자가 사진속의 인물이며 그가 알레노라의 남편임을 알게 된 둘은 조용히 충격에 휩싸인다. 피에트로가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있던 그 순간에 한 남편은 아내가 죽기를 바랬으며, 또 그런 그녀를 자신이 구했다는 아이러니가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런걸 두고 운명의 비틀림이라고 하는 것이겠지. 후에 엘레노라가 대기업 회장의 정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불행한 부부의 숨겨진 뒷 모습을 보게 된 것 같아 찝찝해 한다. 친구인 장 끌로드의 험난한 결혼 생활마저 피에트로를 심난하게 하는 가운데, 그는 엘레노라의 매력에 잠시 빠져든다.
딸에게 책을 읽어주는 피에트로, 눈이 오던 날 기뻐 날뛰는 딸을 보고 흐믓해진 피에트로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뭘 받고 싶냐고 묻는다. 큰 선물을 하고 싶다면서... 엄마의 죽음을 조용히 당차게 이겨내고 있던 딸은 아무리 좋은 일도 두번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면서, 이젠 자신을 그만 지켜도 되니 아빠의 회사로 돌아가라고 주문한다. 영리한 딸의 말에 말문이 막혀 버린 피에트로, 그 누구의 말에도 귀 기울이지 않던 그는 그렇게 딸의 한마디에 고집을 꺾게 된다. 그가 딸의 학교를 등지고 회사로 차를 몰고 가는 장면으로 피날레를 장식하던 영화였다.
사랑하는 배우자나 형제등을 잃은 사람에게 세상은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생판 다르게 느껴지는 세상에 허둥대며 적응해나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무엇보다 상실감은 소화해 내기 쉽지 않은 감정이다. 그럴때 평소때라면 전혀 하지 않을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 어쩜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슬픔은 당신만의 것이라고 믿는 우리네 세상에선 소리높여 우는 것마저 여의치 않다. 죽은 이를 묻는 절차를 밟고 나면 남겨진 이들이 곧바로 정상적인 일상으로 되돌아 올 거라 믿지만 ,그들은 알까? 그때가 바로 남겨진 자들에게 고통과 홀로 대면해야 하는 시간의 시작임을 말이다. 그렇게 남겨진 자들은 자신들의 일상을 어떻게 살아나갈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영화는 상실의 충격에서 절절매는 한 남자를 등장시켜 죽음에 대해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비록 겉으로는 조용하고 침착해 보이지만 속은 죄책감과 고통과 불안이란 감정의 회오리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이 연약하기 그지없는 남자를 통해서 말이다.
그 남자는 학교 앞 공원 벤치에서 하교하는 딸을 기다리며 하루종일 진을 치고 산다. 그건 아무리 너그럽게 봐준다해도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이다. 비록 그것이 엄마를 잃은 딸을 위한 배려 같아 보이지만,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않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아내를 잃었다. 달랑 세명뿐인 가족이었지만, 자신의 가장 소중한 울타리에 구멍이 뚫려 버렸다. 주인공은 나머지마저 잃게 되는 것은 아닐까 불안에 떨게 된다. 그런 이유로 그는 딸의 학교 앞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적어도 지키고 있으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다른건 몰라도 사별의 고통만큼은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주인공은 그리하여 오늘도 내일도 학교 앞을 지킨다. 그런 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지인들은 그를 보면서 혀를 찬다. 아내를 잃더니 완전히 맛인 간 모양이라면서...물론 그는 그들의 반응에 상관하지 않는다. 타인의 생각에 응대할 정도로 감정의 여유가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묘미는 학교 앞에서 진을 치고 있던 그가 점차 주변의 상황을 의식하게 되면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있었다. 그를 중심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상대하던 그는 자신의 상황을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된다. 바람 핀 아내가 죽기를 바랐던 남편과 아무리 바람이 났다지만 그래도 아낸데 살릴 생각을 안 한 남편에게 충격을 먹은 아내, 건 입을 주체 못하는 아내에게 열 받은 남편과 그런 남편을 정신병자 취급하는 아내등 타인의 비참한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는 자신의 결혼을 되돌아본다. 그리곤 비록 생각지도 않게 아내를 잃어야 했지만 아내를 사랑함에는 모자람이 없었다는 생각에 위안을 얻는다. 아내가 없는 삶에 새로운 일상이 되어준 사람들에게 다정한 시선을 보내던 그는 점차 아내가 없다해도 삶이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깨달음을 얻게 한데 다른 누구도 아닌 딸의 도움이 컸다는 것은 의미심장했다. 사별의 고통을 함께 겪은 딸만이 그를 통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일도 두번은 안 일어난대, 그러니 나쁜 일이야말로 두번 일어날리 없지 않겠어? 아빠, 내 걱정말로 이젠 세상을 향해 나가...라며 아빠의 등을 떠미는 딸, 참 흐믓한 장면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이탈리아 영화로, 그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다정하고 인간적인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감독이 슬픔을 극복하는 시간을 지극히 천천히 흘려 보낸다는 점이었다. 사람들에게 슬픔이란 정면을 마주하기 힘든 감정이다. 고통에 처한 사람들에게 "빨리빨리" 회복될 것을 주문하는 것은 그만큼 그것이 불편하단 증거일 것이다. 내 마음 편하려고 네 감정을 추스리라 다그치는 우리 사회에선 "아직도? 여전히?" 고통속에서 허우적대는 사람들이 감정적인 사치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될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별의 고통은 정말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감정적 에너지다. 격하게 울지 않는다고 해도 그 속이 어떨지 짐작할 수 없는 것이며, 고통때문에 맛이 살짝 가도 괜찮다고 할만큼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놀란 것은 아내를 잃은 그에게 사람들이 시간을 준다는 것이었다. 비록 완벽한 이해를 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에게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두 공감하고 있단 뜻이다. 솔직히 그런 여유가 보는 내내 참 부러웠다. 감정을 겪어내고 이겨내는 것은 지극히 사적인 경험이며 자신이 아니면 극복해낼 수없는 것이니 말이다. 도움을 줄 수는 없지만 기다려 줄 수는 있다는 그들의 태도는 우리가 배워야 하는게 아닐까 싶었다. <아들의 방>을 감독한 난니 모레티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한번 봐도 좋을만한 영화로, 어찌된게 그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멋있어지지 싶다. 그를 좋아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인생의 불공평함을 목청 높여 주장하고 싶어졌을지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