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주자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안재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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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이 책의 리뷰를 쓰길 오매불망 기다렸다. 헛점 투성이에 유치하고 멍청하며 웃기는 내용에다 말도 안 되는 군발이 정신에 람보도 울고 갈 과대망상에 유아적 영웅주의에 정치적으로 불건전한데다 편견을 유발하는등, 총체적으로 너무도 완벽하게 끔찍했던 책이라 한마디 꼭 하고 넘어가고 싶었던 것이다. 

세상에...아직도 이런 책이 나온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을만큼 시대착오적인 책이었다. 람보도 이렇게 유치하진 않았다. 람보도 이렇게 노골적이진 않았으며, 람보도 이렇게 모순 투성이는 아니었던데다,...하여간 이 책의 주인공에 비하면 람보는 대단히 다분히 필사적으로 인간적이었다. 

뭐,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저자 참 대단한 사람이긴 하다. 람보를 비교적 무난한 인간적 영웅으로 보이게 만들 정도의 형편없는 주인공을 만들어낸 것을 보면 말이다. 그거 아무나 못한다. 그런 면에서 박수를... 박쑤까지 받으셨으니, 이젠 책을 그만 내셨음 하고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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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를 수 없는 나라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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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때 저자가 쓴 책이라고 한다. 우선 장점을 들자면 얇다. 문장이 참 훌륭하다. 내용은 프랑스 루이 16세 시절 베트남으로 선교 사업을 떠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갖은 고생끝에 프랑스에서 이역만리 베트남에 떨어져 드디어 그들의 선교 사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아 갖은 고생끝에 다들 죽거나 살해되거나 비참하게 자살하거나, 아름답게 자살하거나로 끝을 맺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역자는 21살의 나이에 썼다고 보기엔 문장에 대단하다고 극찬을 하고 있더라.  순결하고 우화적이고 담담하고, 깊고 넓은 침묵과 희열에 가까운 해맑은 슬픔과 적요함...등등의 단어로 도배를 하면서 넌지시 카뮈가 연상되더라는  말까지 하고 있던데, 그건 좀 지나친게 아닌가 싶었다.

 

물론 아름다운 문체긴 했다.  하지만 이 책이 얇은 것은 작가가 스물 한 살로 어린 나이로 삶의 경험의 깊이가 얇음을 반영하는게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역자 생각대로 작가가 삶의 깊이를 무리없이 축약해낼만큼의 천재라서 아니라... 한마디로 저자가 나이가 어려 아직 모르거나 확신이 없기에 대충 얼버무릴 수 밖엔 없었던 부분을 가지고, 마치 나이든 현자들이 하는 것처럼 담담하게 생략한 것이라고 오해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역자가 칭찬하던 다음의 문장을 보자. 

 

"수사의 얼굴을 서서히 초췌해져갔다. 도미니트 수사의 뚱뚱하던 배가 들어갔고, 수염엔 이가 끓어서 면도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카트린느 수녀는 아름다웠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꾸만 그녀의 몸으로 갔다. 그 노인이 말했었다. "각각의 존재는 하느님의 집이지요." 온갖 고난에 부대꼈지만 대책이 없었다. 푸른 대나무에서 떨어진 벌레들이 스물스물 기어다닌 곳에는 살이 썩었다. 그걸 치료하는 법을 배웠다. 새벽에 메콩강의 미지근한 물에 들어가 목욕을 했다. --127 

 

이 문장의 핵심은 "각각의 존재는 하느님의 집이지요" 다. 어쩜 그 말은 정말로 엄청난 깊이를 함축한 핵심적인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아귀에 안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전혀 이 문장과는 상관이 없는, 동 떨어진, 사오정의 말하는 듯한...하지만 사람들을 그걸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뭔가 대단한 의미가 있는 말일거야, 그렇지 않아? 각각의 존재는 하느님의 집이란 말 대단히 멋있잖아... 그런데 내가 묻고 싶은건 왜 이 말이 거기에 걸리냐는 것이다. 이것뿐만이 아니라 다른 문장속에서도 이런 말들이 간간히 눈에 뜨였다. 어떤 기분이었는가 하면, 용하다고 소문난 처녀 점쟁이를 만난 기분이었다. 누구에게나 통하는 하지만 달리보면 누구에게나 의미없는 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선교를 위해 멀리 베트남까지 온 선교사들 대부분은 다들 비참하게 죽는다. 단 한 쌍, 선교 사업의 본질을 잊고는 살림을 차린 수사와 수녀 커플만이 살아남는데, 작가는 그 둘을 죽이려 군인이 출동했으나 그들이 전혀 선교사같지 않았기에 죽이지 못하고 떠났음을 알려준다. 다시말해 그 둘은 다른 선교사들과는 달랐다는 것이다. 육체를 서로 나누는 법이 없이 눈이 매섭고 말씨가 공격적인 남자들과 여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태연하고 창백하며, 벌거벗고, 땀과 정액에 축축히 젖어 있었기 때문에 그 둘을 죽일 수 없었다고 말이다. 아마도 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말에 무척이나 의미를 두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혹적이지 않는가? 종교라는 광기에 사로잡혀 이국만리까지 선교에 나선 사람들이 거반 다 죽었는데, 그 중 종교를 배신한 두 사람만이 살아남았다는 말이니 말이다. 정신보다 강한것은 육체다라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던데, 아름다운가? 일리가 있는 통찰인가? maybe....Or n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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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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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오래전에 한번쯤은 읽어봤을텐데도 기억이 전혀 남아있지 않는 작가가 내겐 파트릭 모디아노이다. 본 것은 같은데, 기억은 나지 않고, 기억이 남지 않았다는 말은 별로 인상이 깊이 않았다는 뜻이고--난 한번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면 썩은 고기를 만난 하이에나처럼 달려든다. 그건 거의 본능이다.제어가 안 되는---아무리 어린 시절에 봤다고는 하나 언제 읽었건 인상이 깊지 않았다는건 지금 봐도 별로 인상에 안 남을 거란 의미고...이런 저런 추론의 연상에 의해서 늘 따돌림을 받던 작가가 바로 파트릭 모디아노였다. 책을 고르면서 한쪽에 몰려있는 그의 작품들을 지나면서 늘 찜찜해하던 기분을 이참에 일소해 보고자 그의 걸작이자 대표작이라는 이 책을 골랐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제목만으로도 벌써 군침이 돈다. 제목을 듣고 연상되는 정도로만 이 작가가 글을 써준다면 대박일텐데, 라는 심정으로 집어들었다. 또 솔직히 그렇지 않겠나 추측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한마디씩 했다면 뭔가 있을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그래, 지금이야.난 이제 파트릭 모디아노의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시기가 된 거라구!  

그런데 아니었다. 내가 상상하고 추측하며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물론 좋지 않은 쪽으로 아니여서, 도무지 어떻게 이 책이 콩쿠른지 콩쿨인지 하는 상을 탔다냐, 심히 실망이었다. 

내용은 뭐, 자신을 찾아가는 한 기억상실자의 이야기다. 전쟁중에 기억을 잃어버린 주인공은 그동안 흥신소에서 탐정으로 일했었다. 남의 기억과 추리와 궁금증을 풀어주며 생활을 하고 있던 그는 사장이 은퇴를 하자 이제 자신의 일을 봐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한장의 부고를 시작으로 자신을 알만한 사람들을 수소문해 다니던 그는 점차 그가 함께 다니던 사람들의 일단을 찾아내게 도니다. 손에 잡힐 듯 그들의 이야기를 짜맞춰나가던 그는 결국 자신이 누군인지, 그와 함께 다디던 친구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자신이 왜 기억이 상실된채 발견되게 된 것인지 알아내지를 못하는데... 자살했다는 옛애인과 페드로라는 남미인, 드니즈라는 모델과 프레디, 과연 그는 누구일까? 자신도 자신이 누군질 모르면서 그가 누군지 알겠냐고 찾아다니는 이 남자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어린 아이의 슬픔의 덧없음과 같이 우리네 인생 또한 기억속에서 빨리 지워져 버린다는 철학을 담고 있는 무게 디립다 잡고 있는 소설이었다. 2차대전을 배경으로 전쟁을 피해 도망다니던 사람들이 뿔뿔히 흩어지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결코 알지 못한 채, 단지 한 사내만이 남아 그 과거를 추적한다. 왜냐면 그 사건이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군더더기 없는 정도가 아니라 단지 핵심만으로도 상황을 짐작하게 하는 매력적인 문체가 인상적이었다. 어찌나 가볍게 장면에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던지, 더구나 얼마나 정확하게 문장들을 구사해내던지 문장 자체만으로 상을 주었다고 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다만 , 이야기 자체가 그다지 재밌지 않았다. 자신을 찾아가는 주인공, 작은 단서, 실마리를 가지고 끈기 하나로 자신이 누군지 찾아가는 그의 이야기, 중반까지는 재밋었다. 신비롭고, 희한하고, 흥미롭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 궁금하고... 하지만 그 추척이 결론은 없고 변죽만 울리는채 한없이 계속하려나보군이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읽기가 싫어졌다. 말하자면 집중력을 잃어버렸다고나 할까? 더 이상 계속 봐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뭐, 어차리 그 고생을 하고도 결국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는거 아냐?  장난하나? 라는 생각... 자신이 누군지 몰라도 좋다. 그래도 뭔가 건질만한게 있지 않을까 싶어 끝까지 읽긴 했지만 역시나, 분위기만 디립다 더 잡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난 묻고 싶은게, 이런 작품을 보고 도무지 뭘 얻으란 것이냐? 문장 잘 쓴다는거? 기억은 덧없다는거, 인생 자체가 덧없다는 거? 사람은 함부로 믿으면 안 된다는거? 세상은 어차피 덧없는 거라는거? 전쟁통에는 잘 살기 어렵다는거?.......얻는거 없었다. 고로 나의 아심찬 파트릭 모디아노 프로젝트는 이 책 하나로 끝내기로 했으니, 어허라...아마도 예전에 내가 이 책을 읽었던게 맞지 싶다. 단지 기억에 남을 만치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래, 그런 것이다. 기억은 덧없는 것일지 모르나, 인상은 영원히 남는 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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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려 본 슬픔 믿음의 글들 208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강유나 옮김 / 홍성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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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다는 소식을 난 병원 엘리베이터 안에서 들었다. 갇힌 공간에서 전해지던 그 뉴스의 비현실적인 느낌과 충격은 아마 내가 살아있는 한 영원히 기억되지 싶다. 처음엔 멍했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세상이 전과는 똑같을 수 없다는 생각에 상실감이 밀려 들었다. 어떻게 세상이 같을 수 있을까? 앞으로 수십년간은 마치 사라지지 않는 화면의 배경 소음처럼 우리 주변에 계셔줄 줄 알았는데, 그 느물대시던 농담을 질릴때까지 들을 수 있을 줄 알았건만, 그렇게 한순간에 끝나 버렸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겨지지 않았다. 가족이 아닌 내가 이럴진대 과연 가족들의 심정은 어떨지 싶어 먹먹했던 기억이 난다.  그분들은 어떻게 이 시련을 견뎌 나가고 계실까, 부디 강하시기만을 빌 뿐이다. 시간을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 여정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아내를 암으로 잃은 C.S 루이스는 아내의 부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몰라 절절맨다. 날카로운 지성과 명민한 두뇌의 소유자였던 그는 슬픔을 분석해보기로 한다. 물론 그건 자신의 머리가 좋다는걸 자랑하기 위함이 절대 아니었다. 그보단 감당하기 힘든 상실감과 슬픔을 어떻게 해서든 이해해보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기독교 신자임에도, 믿음이 아내 조이를 잃은 슬픔을 이해하고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걸 알게 된 그는 과연 어떻게 죽음과 이별을 받아 들여야 하는지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놀랐던 것은 그가 내뱉은 문장의 진실함과 정확함 때문이었다. 다음을 보자.

 

"슬픔이 마치 두려움과 같은 느낌이라고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무섭지는 않으나, 그 감정은 무서울 때와 흡사하다. 똑같이 속이 울렁거리고, 안절부절 못하며, 입이 벌어진다. 나는 연신 침을 삼킨다. 어떤 때는 은근히 취하거나 뇌진탕이 일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세상과 나 사이에 뭔가 보이지 않는 장막이 드리워져 있다. 다른 사람이 뭐라 말하든 받아들이기 힘들다. 아니,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게다."

 

"만사가 재미없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곁에 있어 주기를 바란다. 집이 텅 빌때마다 무섭다. 사람들이 있어주되 저희들끼리만 이야기하고 나는 가만 내버려 두면 좋겠다."

 

어떻게 저런 느낌을 잡아내고 표현해 낼 수 있는지, 꼭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문장을 되풀이 해 읽어 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잃어본 사람들은 안다. 저 말이 얼마나 군더더기 없는 진실인가 하는 것을... 이 책의 전반적인 느낌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사별로 인한 슬픔을 헤아리는데 이보다 더 정확한 문장들은 본 적이 없다는 것, 위로가 됐다. 오래전에 이 책을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싶었다. 그랬더라면 나와 같은 슬픔을 겪는 것이 비단 나만이 아니란 사실에 마음이 놓였을 것이다. 적어도 흔하게 주어지지 않는 위안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사람들은 슬픔에 대해 많은 말들을 하지만 그 실체를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서, 정작 위로가 필요할 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사람들 속에 남겨진다는 것은 대단히 비참한 일이다. 그럴땐 차라리 동병상련을 겪은 경험자의 충고가 더 낫다. 솔직히 말해 루이스의 충고라면 다른 말은 필요 없을 정도다. 무엇보다 그가 믿음직스럽게 느껴지던 것은 거짓된  감정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회피하지 않는 점이었다. 고통을 똑바로 직시하는 루이스를 보면서 미소가 지어졌다. 역시 그답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렇게 저자는 슬픔을 분석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분이셨지만, 그것보다 더 명징하게 가슴을 울려오던 것은  아내 조이를 생각하는 그의 마음이었다. 어떤 남편이 아내를 그렇게 잘 알고 사랑할 수 있겠느뇨. 최근에 읽은 해롤드 블름의 책을 보니 그는 루이스를 멍청한 작가로 이해하고 있더라. 물론 다른 시각에서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여인을 그토록이나 잘 헤아리던 사람을 보면서 그가 멍청하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때론 세상을 다 이해한다해도 한 인간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이 사람 아니겠는가. 비록 커다란 세상을 파악하진 못했을지라도,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에 대해서만큼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기억해내던 그를 보면서 존경심에 고개가 숙여졌다. 그 둘은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들인지... 지성적이고 선한 사람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모습처럼 흐믓한 것도 없으니 말이다. 우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에 분노하고  미쳐 날뛰며 고통에 몸부림치지만, 실은 그렇게 사랑할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실한 사랑은 흔한 것이 아니고, 인생은 영원할 수 없는 것이니까. 어쨌거나 만약 최근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상실감에 고통스러운 분들이라면 한번 읽어 보심도 좋을 듯 싶다. 솔직하고 처절하게 고통을 받아들이는 저자의 모습에서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을테니 말이다. 살아갈 용기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버텨낼 용기, 견뎌낼 용기는 얻어가실 수 있지 않을까 추측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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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해부
로렌스 골드스톤 지음, 임옥희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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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천한 집안에서 태어난 에프라임 캐롤은 외과의가 되면서 신분 상승을 위한 기반을 다지게 된다. 현대적인 의학을 도입하려 하는 오슬러 교수 밑에서 해부학 실습을 배우던 캐롤은 시체 안치실에 들어온 미모의 여성 시체에 주목하게 된다. 그녀를 보고 놀란 동료 의사 터크는 갑자기 캐롤에게 친절하게 굴기 시작하고, 영문도 모른 채 매력적인 동료에게 끌려 다디던 캐롤은 며칠 뒤 터크가 독살된 채 발견되자 경악한다. 터크가 불법의 은밀한 낙태 시술로 돈을 벌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캐롤은 그 죽은 미모의 여성이 사건에 관련되어 있음을 짐작하게 된다. 그 여성의 뒤를 쫓던 캐롤은 오슬러 교수로부터 천재 외과의 윌리암 홀스테드를 소개받는다. 의료계에 수천 수만의 생명을 건질 수 있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소유자인 홀스테드는 그 일에 너무 몰입했던 나머지 마약 중독자가 되어 있었다. 그의 재능을 안타깝게 여긴 오슬러는 어떻게 해서든 그를 재기 시키려 노력을 하고, 캐롤에게 이에 동참해 줄 것을 당부한다. 살인 사건의 단서를 쫓던 캐롤은 모든 의혹의 화살표가 홀스테드를 향해 쏠리는 것에 당황한다. 그가 살인범임을 직감한 캐롤은 경찰서에 알리겠다고 나서지만, 오슬러는 과연 한 사람의 목숨이 천명의 사람과 비교될 수 있겠는가 그를 설득하기 시작하는데... 과연 캐롤이 가야 할 방향은 어디일까? 양심을 따르는 진실의 손가락일까? 아니면 성공이 보장되는 공공의 이익일까?...

 

역사에 픽션을 가미한 팩션이다. 1890년대 미국의 의료계 실상들을 꼼꼼하게 밑그림으로 그려서는, 마치 실제한 사건을 파헤친 것처럼 느껴지던 생생함이 돋보인다. 오슬러 박사나 수술용 장갑을 처음 쓰기 시작함으로써 사망율을 대거 낮췄다는 홀스테드 외과의, 존 홉킨스 병원의 개원을 둘러싼 이야기나 마취에 마약이 쓰이게 된 과정들, 표지 그림인 < 그로그 박사의 임상 강의>를 그린 토마스 에이킨스가 관련 인물로 등장하는 등 당시 시대상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정말로 소설속에 나오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내진 그런 일이 일어났을때 과연 사람들이 이 소설속 등장인물들처럼 행동했을 것인지가 의문이긴 했으나 그럭저럭 재밌었다. 추리 소설적인 면에서 보자면 그다지 인상적이라곤 할 수 없는 내용이지만, 빠른 전개와  토마스 에이킨스의 아찔하게 매혹적인 그림들, 과거 무지했던 의료계의 실상을 알게 해준다는 점등이 그 헛점을 잘 메우고 있지 않나 싶다. 그런데 추천 집단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는... 분명히 재밌게 읽기는 했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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