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한 알의 행복
루스 라이클 지음, 이혜진 옮김 / 달과소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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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상한 평만 좔좔 쏟아내는 레스토랑 리뷰는 싫다. 독창적이고 예민한 감각을 지닌 나 만의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루스 라이클은 잡지사로부터 평론을 써달라는 말에 반색한다. 평소 음식에 관한 한 남들 못지 않게 안다고 자부하던 그녀는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누구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자신한다. 하지만 편집자 콜먼, 와인 전문가와 함께 처음으로 식사를 한 루스는 어쩜 자신이 우물안 개구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움츠러든다. 로스앤젤레스로 콜먼과 출장을 간 루스는 일급 레스토랑을 전전하며 천상의 맛을 맛본다. 음식과 분위기와 와인에 취한 그녀는 순식간에 콜먼과 불륜에 빠지고 만다. 남편에게 거짓말을 하고 콜먼을 쫓아 파리로 날아간 그녀는 며칠간의 황홀한 밀회를 즐기고 돌아온다. 미술가인 남편과 점점 멀어지는걸 느끼던 그녀는 남편이 아기를 갖지 않겠다는 말에 충격을 받는다. 남편과의 관계를 정리하기도 전에 기자인 마이클을 만난 루스는 다시 사랑에 빠지고, 두 남자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 한다. 남편에게 사실을 털어놓은 루스는 마이클과 어렵사리 결혼을 하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자 불행해 한다. 그렇게 인생 고비마다 등장하는 실연과 배신, 죄책감과 우울, 그리고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과 슬픔, 아이를 잃은 분노와 좌절을  음식을 통해 이겨 나간던 루스,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와 음식 냄새가 배어있는 행복한 가정을 바라던 그녀의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 것인가?

 

음식 평론가라는 저자가 음식과 사랑, 요리사와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그녀가 추천한 요리 레시피와 더불어 적혀 있던 책이다. 책이 시작되자 마자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불륜이 저지르게 된 과정을 털어놓는걸 보곤 깜짝 놀랐다. 어? 칼럼인줄 알았는데, 소설이었나? 다시 한번 들여다보니 컬럼 맞다. 그녀의 남편도 아닌데 기분이 확 잡쳤다. 그런 이야기까지 듣고 싶었던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아무리 시대가 좋아졌기로 자신의 불륜을 쉽게도 고백하다 했더니만, 나중에 알고보니 그녀의 남편 역시 도시마다 정부를 두고 있던 사람이었단다. 참, 대단한 부부라 아니말할 수 없겠다. 예술가들은 다들 그렇게 사는게 정상인지 모르겟지만서도... 맛있는 음식에 대한 열렬한 찬사, 마치 그 음식을 먹고 있는 듯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재치있고 맛깔난 표현, 요리사들에 대한 열정등을 알게 해주었다는 점은 좋았지만 책을 읽어나감에 따라 저자가 싫어지는 바람에 애매작으로 넣은 책이 되겠다. 그리고 먹는 음식마다 등장하는 늘어지는 찬사, 처음엔 정말로 그런가보다 감동했는데, 중반쯤 되니 그저 오바가 심한 여자구나 싶어 피곤해졌다. 음식에 대한 오버 리액션은 TV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물론 그것이 " 정말 마딧떠요." 라는 혀짤배기 소리보다야 훨씬 더 낫지만서도... 중년 여성의 혀짤배기 소리만큼 오싹하게 만드는 것도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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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환상문학전집 10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안정희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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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자 지구인들은 범죄자들과 정치범들, 소위 인간 쓰레기들을 달로 보내버리기 시작한다. 한마디로 달이 간수가 필요없는 감옥이 된 것이다. 우주선이 없으니 탈출은 불가능한 일, 다 죽어도 상관없다는 마음 자세로 지구인들에 의해 버려진 달 세계인들은 그들의 예상과는 반대로 강인한 생존력때문에 살아남는다. 그들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문화를 만들어 가면서... 중력이 지구의 1/6이며 공기나 물이 없으니 과학의 힘을 빌려야 생존이 가능할 것은 당연지사, 지구인들은 달의 통제를 위해 강력한 중앙 컴퓨터를 설치해주고 간다. 세월이 흘러 가면서 그 컴퓨터는 업데잇의 업데잇을 거치다 결국 스스로 생각하고 프로그래밍하는 컴퓨터로 진화하게 된다. 어느날 우연히 컴푸터가 말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된 컴푸터 기술자 마누엘은 그에게  마이클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친구가 된다. 만물의 모든 지식을 알고 있으나 대화할 상대가 없어 한없이 외로웠던 마이클은 최초의 친구가 생겼다고 기뻐한다. 농담하는 컴퓨터가 되고 싶었던 마이클은 마누엘에게 웃기는 이야기 100가지를 프린트해서 주면서 어떤 것이 웃기는지, 그리고 왜 웃기는지 알려 달라고 주문한다.

 

한편 지구 총독부의 지배하에 있던 달 세계인들은 점차 그들의 독재에 불만을 품게 된다. 호기심에 항의 집회에 참가한 마누엘은 총독부가 집회참가자들은 잔인하게 해산시키자 분노한다. 무력 진압을 피해 도피하던 마누엘은 집회에서 발언을 했던 요주의 인물 와이오밍을 보호하게 된다. 아찔하게 매력적인 그녀와 호텔에 숨어 들은 마누엘은 마찬가지로 총독부 호위대에게 쫓기고 있던 데라 파즈 교수를 마이클의 도움으로 불러 들인다. 시국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교수는 마누엘에게 혁명에 참여해줄 것을 권유한다. 하지만 마누엘은 자신이 현실 주의자라면서 가망없는 일에 발을 담그는 일은 할 수 없다고 말한다. 혁명이 성공할 확률이 1/10만 되어도 가담하겠다는 마누엘의 말에 교수는 확률을 계산해보기로 한다. 마이클에게 확률 계산을 부탁한 일행은 그 답이 1/7이라는걸 알고는 환호한다. 이렇게 어리버리하게 혁명에 가담하게된  셋은 그들을 지휘할 자로 마이클을 지명하고, 마이클은 재밌는 게임에 참가하게 됐다는 생각에 마냥 좋아한다. 지구인들이 생각하지 못한 막강한 비밀 병기를 갖게 된 세 사람은 차근차근 혁명을 준비해 나가게 되는데, 과연 불가능해 보이는 달의 독립은 이뤄질 수 있을 것인가? 달이 독립하겠다는 선언에 지구인들은 코웃음을 치면서 진압에 나서는데...

 

첫 문장을 읽으면서부터 이 책이 1967년 작품이라는걸 되뇌고 되뇌어야 했다. 지금 쓴 작품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만치 과학에 대한 설명이 그럴 듯 했기 때문이다. 유치하지 않았다. 유치하기는 커녕 그 대범함이나 정교함이 놀라울 정도였다. 어떻게 이렇게 시대를 앞서나갈 수 있는지 놀라웠다. 업데잇을 거치다 생각할 줄 알게 되는 컴퓨터를 고안해 낸 것이라던지, 그 컴퓨터에 지극히 인간다운 개성을 불어 넣은 것이나, 달 세계란 특별한 환경에 살게된 특이한 집단을 경이로운 설득력으로 그려낸 것등 작가의 상상력에 두 손 두발을 들고 말았다.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이라는 제목을 보곤 무척 심각하고 무서운 책인가보다 했는데, 의외로 재밌고 읽기 쉬운 , 가볍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SF물이었다.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들이 재치있는데다, 귀엽고 사랑스럽고 개연성있는 개성 확실한 사람들이 주로 등장하는 바람에 읽는 동안 아주 유쾌했다. 달이라는 매서운 환경에서 살아 남으려다보니 달세계인들이라는 사람들이 <호빗트>에 나오는 호빗족만큼이나 개성이 뚜렷하다는 것도 읽는 재미를 더했는데, 환경에 맞춰 살다보니 자연스레 그들만의 문화가 생겼다는 설명이 어찌나 그럴 듯했던지  마치 실존하는 문명을 눈앞에서 보는 듯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의 묘미는 자신을 의식하는 컴퓨터인 마이클을 들어야 할 것이다. 모든 지식을 순식간에 통채로 집어 삼키는 능력을 지녔으나, 어린아이처럼 사랑스런 순진함을 지닌 그는 친구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려운 일이 있을때마다 한발 앞서 일을 해치워 나가는 그,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친구들의 혁명에 참여해 진두지휘하는 그는 참으로 듬직한 친구였다. 그렇게 다재다능에 못하는 일이 없는 친구를 둔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은... 환상이라고 해도 그런 친구를 둔 마누엘 일행들이 참 부러워 보였다. 그렇게 막강한 친구와 함께 한 혁명 과정이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보셔도 좋을 듯, 좀 두꺼운 분량이라 보기전부터 기가 질려 하시는 분들이 많을텐데, 미리 겁먹진 마시길... 확자지껄 소동이 가득한 천진난만하고 성깔있는 사람들의 혁명 성공기니 말이다. 다시 말하면 전혀 심각하지 않다. 귀여운 시트콤 정도의 내용이라 생각하고 보심 된다.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혁명을 진행하는 과정들이 다소 지루하긴 하지만 다른 부분이 워낙 재밌고 독창적이라 눈감아 줘도 될 정도의 흠이다. 이 책을 계기로 SF물에 맛을 들인 사람이 많다고 하던데 놀랄 일도 아니지 싶다. 그렇다고 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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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걸 - 에드거 앨런 포 상 수상작, 블랙 캣(Black Cat) 9
T. 제퍼슨 파커 지음, 나선숙 옮김 / 영림카디널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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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의 오렌지 산업이 막 사양길로 들어서던 1968년 미스 던스턴으로 뽑혔을만큼 아름다운 소녀 자넬이 버려진 공장에서 목이 잘린 시체로 발견된다. 그녀가 성장하는 것을 보아온 베커네 형제들은 범인을 꼭 잡겠다고 결심을 한다. 형사인 닉 베커, 목사인 데이비드 베커, 그리고 막내인 기자 앤디, 각기 다른 사연으로 자넬과 엮인 그들은 각자의 정보통에서 흘러 들어온 정보를 공유하며 살인범을 쫓게 된다. 서서히 드러나는 자넬의 실체는 다른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를 제대로 알고 있었는가라는 의문에 휩싸이게 한다. 자넬이 친 오빠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사는 것을 구해줬던 데이비드는 능력있는 목사로 성공의 가도를 걷고는 있지만 그 자신만의 어두운 비밀로 인해 발목이 잡힌 상태다. 세 아이와 아름다운 아내, 언뜻 행복한 가정생활을 꾸려 나가는 듯 보이던 형사 닉은 비서와 불륜관계를 맺고 있다. 고등학교때부터 사랑하던 여인을 보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안목을 넓혀야 한다는 이유로 떠나보낸 앤디는 새 애인이자 보스인 여인과의 관계가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렇게 각자 비밀을 갖고 있던 그들은 죽기전 자넬이 다양한 사람들과 사귀었으며 임신 상태였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용의자를 압축하기 위해 FBI프로 파일러를 만난 닉은 그로부터 자넬의 살인범은 자넬을 잘 알고 있던 사람이며 배신때문에 그녀를 잔인하게 죽였을거란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분석을 바탕으로 닉은 마약 중개상인 닉의 전 애인을 용의자로 지목하고 그의 집을 급습한다. 그의 집을 수색하던중 피가 붙은 톱을 발견한 그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그가 범인일거라 단정하게 된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뒤, 당시 하원의원이었던 스톨츠의 비서로부터 우연히 모종의 이야기를 듣게 된 앤디는 닉을 찾아가 어쩌면 그 마약상이 범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는데...

 

아름다운 소녀의 살인을 둘러싼 추리 소설이다. 콩가루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행복하게 살아보려 발버둥치는 자넬, 그런 그녀를 도와주려 하던 주변 사람들, 비밀을 갖고 있는 목사, 그 비밀을 공유하다 살인범으로 몰려 자살하게 되는 축구 코치, 지극히 인간적인 형사 닉과 우직한 그의 파트너, 세상 모든 것이 궁금한 기자 앤디와 아들이 베트남에서 전사한 이후 정신줄을 놔버린 베커 부모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살인범을 잡는 중간중간 등장해 자연스러움을 더하고 있었다. 누가 살인범인지 그녀와 관계를 한 모든 사람들을 의심스럽게 보게 만든다는 것이 묘미, 살인범이 오리무중이기에 끝까지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형사란 직업을 갖게 되면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대략 난감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인도 궁지에 몰리면 쉽사리 거짓말을 하고, 갱단처럼 진짜 범죄자들도 때론 진실을 말하니 말이다. 그 외에 뒷 배경으로 교회와 정치를 둘러싼 이야기들이나 보수 세력과 히피 세력간의 알력등이 섬세하게 그려진 점도 인상적이었다. 미국의 변화가 시작되던 1960년대의 캘리포니아 분위기를 잘 살린 듯 보이던데, 과거를 설득력있게 그리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 부분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왜 살인범이 자넬을 그렇게 잔인하게 죽였어야 했는지에 대해 공감하기 어려웠다는 것이었다. 죽은 자에 대한 설명이 많았음에도 그녀가 왜 그리 매혹적이란 것인지 그것도 영 석연치 않았고... 죽음을 당했어야 할 정도의 치명적이고 뇌쇄적인 매력을 설명하기엔 설득력이 부족했다. 하드 보일드 추리 소설이 될 예정이었으나, 작가가 넘 착한 관계로 하드보일에서 2% 부족한 책이 되버린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게 하던 책,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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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로폴리스
아냐 울리니치 지음, 노시내 옮김 / 마티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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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촌구석에서 살고 있던 사샤 골드베르크는 어느날 아버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어리둥절해 한다. 아버지의 실종 못지 않게 수상쩍은 것은 엄마의 태도, 그녀는 마치 아버지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 흔적 자체를 없애 버린다. 영문을 알 길 없는 아버지의 부재와 지적 허영심으로 가득한 엄마, 과거에 잠겨 사는 할머니, 학교에서도 적응을 잘하지 못했던 사샤는 불행하기만 하다. 미술 학원에서 만난 친구의 집에 놀러 간 사샤는 친구의 오빠를 알게 되고 열 넷의 나이에 그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가난했지만 인텔리겐차로써의 자부심만은 대단했던 엄마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을 느낀다. 낙태를 하기엔 이미 너무 늦은 시기, 사샤가 딸을 낳자 엄마는 손녀를 자신의 아이로 입적시킨다. 손녀를 키우기 위해 사서였던 직장을 때려 치운 뒤 공장에 취직한 엄마는 사샤에게 공부하러 대도시로 나갈 것을 강요한다. 하지만 이미 사샤의 마음은 공부에서 멀어진 상태, 사샤는 큐피드 코너라는 결혼상담소를 통해 얼마전까지만해도 전혀 알지못했던 남자와 약혼을 하고는 미국으로 날아간다. 마지못해 늙은 남편과 살던 사샤는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탈출을 감행하고, 이리저리 떠돌던 그녀는 결국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초청비자로 미국에 왔다 아예 눌러 앉아버린 아버지는 과거의 삶은 깡그리 잊고 새 삶을 살고 있었다. 졸지에 새 엄마와 이복동생이 생긴 사샤는 무책임한 아버지에게 실망하지만, 그나마 미국 영주권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것에 안도한다. 마침내 미국 영주권을 손에 넣게 된 사샤는 딸을 만나러 고향으로 향는데...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절망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가족의 초상을 그린 소설이다.  유대계 흑백 혼혈로 아웃 사이더로 살 운명으로 태어난 아빠 빅토르는 평생 자신의 의지로 생을 책임지려 하지 않는 사람이다. 무기력하고 수동적으로 운명에 끌려 다니던 그는 갈 곳이 없다는 이유로 사샤의 엄마와 결혼하고, 또 미국으로의 탈출 기회라는 이유로 사샤 모녀를 버린다. 그런 그의 행동은 주변 사람들의 삶을 혼돈과 절망속으로 밀어 넣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한편 자살미수로 병원에 입원한 빅토르를 만난 사샤의 엄마는 단지 그가 "페트로폴리스"란 시를 안다는 이유로 사랑에 빠지고 말 정도로 낭만적인 여성이다. 어찌보면 대책없는 여자기도 하지만...남편이 그녀를 버린 뒤, 남은 거라곤 지적 허영심이 전부인 그녀는 사샤의 성공을 강요하다 결국 딸과 영원히 멀어지게 된다. 엄마에 대한 반발로 어린 나이에 미국 신부로 미국으로 건너간 사샤는 별별 사람들을 다 겪으면서 타국에서 홀로 서기의 설움을 겪게 된다. 이렇게  다양한 등장인물이 출연해 주로 험악한 인생 역정을 줄줄이 나열하던 정신 사나운 책이었다.

 

한 소녀의 성장소설이라고 하던데, 세상이 얼마나 험악한 것인지를 알아나가는 것이 요즘 성장소설의 정의라면 모를까, 한 인간의 성장이라고 볼만한건 없지 않는가 하는게 내 감상이었다. 성장? 아무렇게나 되는데로 살아가는게 성장이던가? 그렇다보니 성장 소설에서 기대하는 감동은 커녕 비극으로 점철된, 아니 비극이 예정된 사람들의 인생 역정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짜증이 났다. 자신이 태어난 소련에 대한 경멸과 연민, 새로 적응해야 하는 나라인 미국의 풍요와 기괴함에 대한 경악, 자신의 삶이 실패라는 사실을 자존심 하나로 버티는 주인공의 엄마와 그런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 딸과의 어긋난 관계, 그리고 부재를 통해 자신의 위력을 발휘하는 아빠, 부富를 인간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부부등 작가의 눈에 비친 세상은 한없이 쓸쓸하고 비관적이며 초라하고 비극적이었고, 그녀는 이를 줄곤 비판적인 시선으로 해부하고 있었다. 문장력 하나만은 데뷔작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힘이 있었으나, 흥미롭지 않는 등장인물들, 그보다 더 흥미롭지 않던 그 등장인물들의 행보들, 거기에 아예 궁금하지도 않던 그들의 말로등 줄거리가 칙칙하다보니 읽는 것이 전혀 즐겁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든 의문인데, 왜 이민 세대 작가들의 책은 이리도 우울한걸까? 어느 한쪽을 미워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양가감정이 그들을 이렇게 분열시켜 놓는 것일까? 아님 이민이라는 자체가 작가에겐 어마어마한 중압감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생래적으로 어디에도 끼이지 못한다는 소외감이 그들을 그렇게 우울하게 만드는 것일지 궁금했다. 어느책에서나 여지없이 보여지던 그들의 짜부러지고 일그러진 세계관, 그건 그들의 눈에는 세상이 그렇게 보인다는 뜻일텐데, 결국 어느 쪽에도 마음을 두지 못하는 것이 그들을 정서불안으로 모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제목인 <페트로폴리스>는  러시아에서 추방된 시인의 시 제목으로 사샤의 부모를 엮어주는 매개체로 등장한다. 원래 시인이 그 시를 썼을 때는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었겠으나, 이 작품속에선 인텔리겐차의 지적 허영을 나타내는 장치로 쓰인다. 작가의 세계관을 단적으로 나타내 준다고도 볼 수 있겠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나 배부른 돼지나 바보인 것은 마찬가지라는... 우리 모두는 불쌍하고 불완전한 존재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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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베리 - 세미콜론 그림소설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포지 시먼스 글.그림, 신윤경 옮김 / 세미콜론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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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속에 등장하는 여인의 빨간 립스틱과 살짝 비치는 빨간 속옷이 이 책을 한마디로 설명해주는 듯하다. 내연남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선 여인의 모습, 딱 불륜녀스러운 차림 아닌가.  마담 보베리, 불륜녀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그녀의 인기는 해가 가고 달이 바뀌며, 지리상의 위치가 변해도 끄떡없어 보인다. 다시 해석하고 또 해석하며 재해석을 해도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알랭 드 보통이 그러했고, 줄리언 반스가 그러하더니, 이젠 만화가인 포지 시먼스도 나서 그녀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어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음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것을 보면 그녀에게 특별한 매력이 있는 가 보다. 아님 안나 까레니나와 더불어 대표적인 불륜녀의 원형을 제공하고 있기에 아직까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것일 수도... 하긴 예전에 바람이 난 유부녀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적이 있었는데 ,어찌나 마담 보바리와 똑같던지 플로베르의 통찰력과 관찰력에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난다. 궁금한 것은  과연 플로베르는 마담 보바리를 썼을 당시 자신의 책이 이렇게 생명력이 길거라고 짐작했을까 라는 점이다.  대단히 특이한 양반이었으니 " 물론이다." 라고 대답했다 한들 놀랍지 않겠으나, 나는 아직까지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궁금해 한다는 것이 뜻밖이다. 그건 어느면에서는 우리가 플로베스 시대 사람들과 비교해 한치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바람둥이 애인에게 차인 뒤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젬마는 친절한 이혼남 찰리 보바리를 만나 동거를 시작한다.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결혼 생활은 곧 권태로 이어지고, 탈출구를 모색하던 젬마는 프랑스 프로방스로 이사를 모색하게 된다. 신선한 공기와 색다른 문화, 정겨운 시골 풍경등 영국과 다른 생활에 흡족한 기분을 느낀 것도 잠시, 그녀는 다시 지루한 일상에 허우적대며 불행속으로 푹 잠기게 된다. 그때 나타난 젊은 프랑스 청년 에르베의 등장은 젬마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게 된다. " 진짜 좋아하지 않고 비밀만 잘 유지된다면 바람 피우는 것도 괜찮다." 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된 불륜은 점점 그 대담함의 도를 넘게 된다. 이런 그녀의 변화를 눈치챈 빵가게 주인 주베르는 그녀의 운명이 "마담 보베리의 " 그것과 같아질까봐 노심초사하게 된다. 한편 바람을 피우면서 흥청망청 돈을 써댄 젬마는 빚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자 어쩔 줄을 몰라한다. 결국 에베르에게 이별을 통고받고, 불륜을 눈치챈 남편마저 영국으로 떠나버리자 젬마의 인생은 통제불능 상태가 된다. 그때 과거 그녀를 차버린 바람둥이 애인이 나타나 새로 시작하자고 그녀를 유혹한다. 과연 젬마는 마담 보베리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빵가게 주인 주베르는 그녀가 자살하면 어쩌나 노이로제에 걸리기 일보직전인데...

마담 보봐리를 현대적인 시선으로 해석한 책이다.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 에 들어있던 인간에 대한 톡쏘는 듯한 통찰력이나 사회를 분석해내는 관찰력등이 생략되어 있긴 했으나, 마담 보봐리란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현실적이고 설득력있게 그려낸 만화책이었다. 하긴 책에서나 가능한 나레이션을 만화책에서 기대한다는 것이 무리일 것이다. 그런면에서 보면 만화로 그려질 수 있는 상상력의 최대치를 그려낸 것이 아닌가 한다. 심리적인 면에서 완벽한 마담 보바리였으니 말이다. 권태로운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륜을 저지르고, 불륜으로 인해 외줄을 타는 듯 아슬아슬한 생활을 즐기다,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파국을 맞게 되는 젬마의 인생 역정은 어쩜 그리도 친숙하게 들려 오던지...너무 현실적이다보니 오히려 담담해 보이는 면이 있었다. 작가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자의 심리에 대해 참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모르긴 몰라도 남자가 분명하지 싶다. 여자라면 자신의 동족을 이렇게나 까발리진 못했을테니 말이다. 심약해서도 그렇지만 통찰력이 부족해서도 못한다.

이 책을 읽고서 든 생각 몇가지를 써 본다면...



첫째는 불륜은 습관이다. 운명이 아니라...지루한 일상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밟게 되는 정식코스라고나 할까?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그리고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사랑 때문에 불륜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불륜에서 사랑이 차지하는 비중은 역설적으로 적다. 그들이 무엇을 주장하건 간에 실제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은 미성숙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나 자존감 내진 공감 능력이 떨어지거나,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나르시스트이거나, 뉴스의 촛점이 되고 싶어하는 경계성 인격 장애인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불행한 결혼 생활은 불륜의 충분조건이 될 지언정 필수조건은 아니다.

둘째, 불륜에서 가장 역겨운 것은 정사보다 배우자를 배신하는 심리 과정이다. 물론 남자들은 정사를 더 역겹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서도...


셋째,  이 책에서 마담 보베리보다 더 불쾌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빵집 주인 주베르였다. 그는 자신을 대단히 친절한 사람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젬마의 안위가 걱정이 되서 그녀의 주변을 돌 뿐이라고 강변하며, 젬마와 에베르의 관계를 제일 먼저 눈치채고 그들의 정사를 엿보는데다, 에베르와 젬마의 정사는 불륜이지만, 자신과 그녀의 정사는 황홀한 사랑이라고 상상하던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남의 사랑은 불륜이고 내 사랑은 로맨스라는 정서를 대변하던 사람이었는데, 차라리 솔직하게 바람피우는 사람이 정신적으로 더 건강해 보인다. 자신은 관음증 환자가 아니라고 우기는 관음증 환자, 도와 주는 척 하면서 묘하게 사태를 더 어렵게 몰고가는 사람, 난 이런 사람이 더 얄밉다.
  

네째, 어째서 찰스 보베리 같은 사람들은 젬마 같은 여자와 결혼을 해서 무기력하게 끌려 다니는 것일까? 그들에겐 젬마 같은 여자를 불러 들이는 특별한 취약점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젬마 같은 여자들이 아니면 매력을 못 느끼는 것일까? 혹, 젬마 같은 여자랑 결혼한 남자는 자동적으로 찰스처럼 무기력해 질 수 밖엔 없는 것일까? 함께 살려니 말이다. 어느것이 원인이고 결과인지 도통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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