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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베리 - 세미콜론 그림소설 ㅣ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포지 시먼스 글.그림, 신윤경 옮김 / 세미콜론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표지속에 등장하는 여인의 빨간 립스틱과 살짝 비치는 빨간 속옷이 이 책을 한마디로 설명해주는 듯하다. 내연남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선 여인의 모습, 딱 불륜녀스러운 차림 아닌가. 마담 보베리, 불륜녀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그녀의 인기는 해가 가고 달이 바뀌며, 지리상의 위치가 변해도 끄떡없어 보인다. 다시 해석하고 또 해석하며 재해석을 해도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알랭 드 보통이 그러했고, 줄리언 반스가 그러하더니, 이젠 만화가인 포지 시먼스도 나서 그녀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어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음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것을 보면 그녀에게 특별한 매력이 있는 가 보다. 아님 안나 까레니나와 더불어 대표적인 불륜녀의 원형을 제공하고 있기에 아직까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것일 수도... 하긴 예전에 바람이 난 유부녀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적이 있었는데 ,어찌나 마담 보바리와 똑같던지 플로베르의 통찰력과 관찰력에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난다. 궁금한 것은 과연 플로베르는 마담 보바리를 썼을 당시 자신의 책이 이렇게 생명력이 길거라고 짐작했을까 라는 점이다. 대단히 특이한 양반이었으니 " 물론이다." 라고 대답했다 한들 놀랍지 않겠으나, 나는 아직까지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궁금해 한다는 것이 뜻밖이다. 그건 어느면에서는 우리가 플로베스 시대 사람들과 비교해 한치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바람둥이 애인에게 차인 뒤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젬마는 친절한 이혼남 찰리 보바리를 만나 동거를 시작한다.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결혼 생활은 곧 권태로 이어지고, 탈출구를 모색하던 젬마는 프랑스 프로방스로 이사를 모색하게 된다. 신선한 공기와 색다른 문화, 정겨운 시골 풍경등 영국과 다른 생활에 흡족한 기분을 느낀 것도 잠시, 그녀는 다시 지루한 일상에 허우적대며 불행속으로 푹 잠기게 된다. 그때 나타난 젊은 프랑스 청년 에르베의 등장은 젬마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게 된다. " 진짜 좋아하지 않고 비밀만 잘 유지된다면 바람 피우는 것도 괜찮다." 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된 불륜은 점점 그 대담함의 도를 넘게 된다. 이런 그녀의 변화를 눈치챈 빵가게 주인 주베르는 그녀의 운명이 "마담 보베리의 " 그것과 같아질까봐 노심초사하게 된다. 한편 바람을 피우면서 흥청망청 돈을 써댄 젬마는 빚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자 어쩔 줄을 몰라한다. 결국 에베르에게 이별을 통고받고, 불륜을 눈치챈 남편마저 영국으로 떠나버리자 젬마의 인생은 통제불능 상태가 된다. 그때 과거 그녀를 차버린 바람둥이 애인이 나타나 새로 시작하자고 그녀를 유혹한다. 과연 젬마는 마담 보베리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빵가게 주인 주베르는 그녀가 자살하면 어쩌나 노이로제에 걸리기 일보직전인데...
마담 보봐리를 현대적인 시선으로 해석한 책이다.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 에 들어있던 인간에 대한 톡쏘는 듯한 통찰력이나 사회를 분석해내는 관찰력등이 생략되어 있긴 했으나, 마담 보봐리란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현실적이고 설득력있게 그려낸 만화책이었다. 하긴 책에서나 가능한 나레이션을 만화책에서 기대한다는 것이 무리일 것이다. 그런면에서 보면 만화로 그려질 수 있는 상상력의 최대치를 그려낸 것이 아닌가 한다. 심리적인 면에서 완벽한 마담 보바리였으니 말이다. 권태로운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륜을 저지르고, 불륜으로 인해 외줄을 타는 듯 아슬아슬한 생활을 즐기다,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파국을 맞게 되는 젬마의 인생 역정은 어쩜 그리도 친숙하게 들려 오던지...너무 현실적이다보니 오히려 담담해 보이는 면이 있었다. 작가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자의 심리에 대해 참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모르긴 몰라도 남자가 분명하지 싶다. 여자라면 자신의 동족을 이렇게나 까발리진 못했을테니 말이다. 심약해서도 그렇지만 통찰력이 부족해서도 못한다.
이 책을 읽고서 든 생각 몇가지를 써 본다면...
첫째는 불륜은 습관이다. 운명이 아니라...지루한 일상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밟게 되는 정식코스라고나 할까?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그리고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사랑 때문에 불륜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불륜에서 사랑이 차지하는 비중은 역설적으로 적다. 그들이 무엇을 주장하건 간에 실제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은 미성숙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나 자존감 내진 공감 능력이 떨어지거나,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나르시스트이거나, 뉴스의 촛점이 되고 싶어하는 경계성 인격 장애인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불행한 결혼 생활은 불륜의 충분조건이 될 지언정 필수조건은 아니다.
둘째, 불륜에서 가장 역겨운 것은 정사보다 배우자를 배신하는 심리 과정이다. 물론 남자들은 정사를 더 역겹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서도...
셋째, 이 책에서 마담 보베리보다 더 불쾌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빵집 주인 주베르였다. 그는 자신을 대단히 친절한 사람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젬마의 안위가 걱정이 되서 그녀의 주변을 돌 뿐이라고 강변하며, 젬마와 에베르의 관계를 제일 먼저 눈치채고 그들의 정사를 엿보는데다, 에베르와 젬마의 정사는 불륜이지만, 자신과 그녀의 정사는 황홀한 사랑이라고 상상하던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남의 사랑은 불륜이고 내 사랑은 로맨스라는 정서를 대변하던 사람이었는데, 차라리 솔직하게 바람피우는 사람이 정신적으로 더 건강해 보인다. 자신은 관음증 환자가 아니라고 우기는 관음증 환자, 도와 주는 척 하면서 묘하게 사태를 더 어렵게 몰고가는 사람, 난 이런 사람이 더 얄밉다.
네째, 어째서 찰스 보베리 같은 사람들은 젬마 같은 여자와 결혼을 해서 무기력하게 끌려 다니는 것일까? 그들에겐 젬마 같은 여자를 불러 들이는 특별한 취약점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젬마 같은 여자들이 아니면 매력을 못 느끼는 것일까? 혹, 젬마 같은 여자랑 결혼한 남자는 자동적으로 찰스처럼 무기력해 질 수 밖엔 없는 것일까? 함께 살려니 말이다. 어느것이 원인이고 결과인지 도통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