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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난 못 - 잃어버린 자폐증의 역사를 찾아 떠난 아버지의 여행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네모난 못을 둥근 구멍에 박는다고 해보자. 우선 망치질이 힘들 것이다. 억지로 끼워 넣는다고 해도 주위에 흠집이 생길 수 있다. 여기까지가 보통 우리의 생각이 미치는 부분이다. 그런데 만약 그 네모난 못이 당신에게 아주 소중한 것이라면? 못이 망가질까 걱정되지 않을까? 이 책의 저자 폴 콜린스는 네모난 못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망치질을 안하겠다고 나선 사람이기도 하다. 사회속에서 함께 살아 나가기 위해선 억지로라도 둥근 구멍에 끼워 넣어야 한다는 통념에 반발하면서 말이다. 그건 사회야 어찌되었던 간에 그에겐 그 네모난 못이 너무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네모난 못이 그의 아들 모건이니까.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대걔 두 갈래의 길을 걷게 되는 것 같다. 한쪽은 아이 입장에서 다시금 세상을 보게 되는 것이고, 다른 한쪽은 아이가 세상에 맞추지 못함을 비난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어느쪽을 걸어가건 간에 부모가 그것을 의식적으로 택하는건 아니라는 것이다. 저절로 그렇게 된다. 마치 물방개를 물에 풀어 놓으면 뽈뽈 대며 헤엄쳐 가는 것처럼.... 어떤 사람에겐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그렇게도 어렵지만, 또 어떤 사람에겐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여서, 보고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이로움마저 느끼게 한다. 이 책의 저자인 폴 콜린스처럼 말이다. 아들 모건을 사랑한 나머지 의사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말을 하기전까진 자폐아인줄도 몰랐다는 남자, 아들이 자폐아라는 말을 듣고는 무슨 수를 써서든 고쳐주고 말겠다고 다짐한 남자,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고는 이젠 세상을 바꿔 놓으려 하는 남자이니 말이다. 그는 말한다. 그래, 내가 갖고 있는 것은 네모난 못이야, 하지만 그게 당신들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내 못을 둥굴게 깍으려 한다면, 그래서 내 못이 다치기라도 하는 날엔 난 절대 가만 있지 않을거라고... 겨우 못 하나 때문에 온 세상을 상대로 싸우려 하다니, 너무 무모해 보여서 눈물이 나오려 한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난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왜냐면 그가 옳기 때문이다. 외롭지만 옳은 길을 가고 있다는걸 알기에 박수를 보낼 수밖엔 없었다. 그리고 그런 길을 흔연히 선택한 그의 용기에 감동했다. 사랑이 없다면 갈 수 없는 길임을 잘 알기에 말이다.
두 살때부터 글을 읽고 암산을 해 내던 아들 모건이 자폐아라는 진단을 받자 콜린스 부부는 절망한다. 상호 작용은 커녕 한번도 엄마 아빠라고 부르지 않던 것, 어른과 눈을 맞추지 못 하던 것,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불러도 대답 않던 것등이 다 자폐의 증상이었던 것이다. 한번 보기만 해도 이상하다는걸 눈치챈다는 자폐를 그는 곁에 두고서도 전혀 몰랐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자신이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있던 <야생 소년 피터>가 자폐아동에 대한 과거 사례라는걸 알고는 망연자실한다. 인정만 안 하고 있었을 뿐, 그 역시도 아들이 뭔가 이상하다는걸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서둘러 자폐아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다. 전문가를 찾아가고, 역사적 아웃사이더로 남아있는 과거 자폐인들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그들이 과연 어떤 오해와 성공속에서 살게 되었는가 하는 걸 작가의 상상력으로 그려보기 시작한다. 교도소 사람들이 장애인 안내견을 훈련 시키는 곳에도 찾아가서 안내견이 자폐인에게 미칠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했던가? 다행히도 앎이 늘어나면서 그의 불안과 절망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한다.
역사적으로 사회가 자폐아를 가혹하게 대했을 거라는건 쉽게 짐작이 되실 것이다. 한때 그들은 인간과 동물의 중간 단계라던가, 아님 정신 이상자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근대에 들어서 의학이 발전하면서 자폐에 대한 근본적인 연구가 시작되긴 했지만 그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시작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자폐는 부모의 냉정한 양육 태도에서 유발된 것이라 믿었다니 말이다. 아이가 아픈 것도 억장이 무너지는데 그게 다 당신들 탓이라고 비난을 받았다니, 부모 입장에선 얼마나 억울했을지 가슴이 아프다. 아직까지는 자폐를 유발시키는 원인을 정확하게 알아내진 못했으나, 어느정도는 부모에게 물려 받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말하자면 부모에게 자폐 성향이 있다면 아이가 타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수학이나 공학, 물리학, 미술, 음악에 천재가 있는 집안은 특히나 그렇다. 모건의 경우를 따져본 작가는 자신과 아내의 집안이 자폐 지뢰밭이라는걸 알고는 깜짝 놀란다. 모건은 운이 나빠서 어쩌다 자폐아가 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집안의 성향에 충실하게 태어난 것 뿐이지...
강연 차 마이크로소프트 회사에 들린 폴 콜린스는 그곳엔 프로그래밍에는 귀재지만 굳이 사람을 사귈 필요를 느끼지 않는 사원들이 많다는걸 알게 된다. 현대판 사방트들( 천재 자폐인)의 아지트가 바로 실리콘 밸리였던 것이다. 비단 현대인만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이나 아이작 뉴튼, 미켈란젤로, 글렌 굴드, 앨런 튜링등 역시 사방트였다. 그들의 비범한 천재성과 괴팍한 성품을 생각하면 아귀가 탁탁 들어맞는 이야기다. 한 자폐 아동은 자신의 상태를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내 머리는 디지털 컴퓨터 같아요. 켜지거나 꺼지거나 둘 중 하나죠. 정보는 옳거나 그른 거구요. 다른 사람들의 머리는 아날로그 컴퓨터라 전압량이 늘어났다 줄었다가 하기도 하고, 불분명한 논리에 따라 움직이지만 말여요. " 자폐를 정신 이상이 아니라 극단적인 남자 뇌의 발현이라고 이해하는 요즘에는 그들의 재능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에 주목하고 있다고 한다. 디지털을 아날로그로 바꾸려는 불가능한 프로젝트에 매달리기보단 그것이 훨씬 더 현명한 일 같지 않는가.
어느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던 저자는 다짜고짜 사람들을 붙잡고 알 전구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한 사내를 만나게 된다. 사람들이 그를 멋쩍게 외면하는 걸 본 저자는 성당으로 가 펑펑 울고 만다. 언젠가 다른 사람들이 모건을 잔인하게 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 타인에게 홀대하는 장면을 보는 것만큼 가슴 아픈 일이 있을까? 아들이 외로운 아웃 사이더의 운명이라는걸 받아들인다는게 얼마나 어려울지 가슴이 먹먹해졌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멈춰 서 있지 않는다. 모건이 의사표현을 하도록 도와주는 일만으로도 그의 머리는 꽉 차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모건에게서 "아빠!" 라는 소리를 듣고는 감격하고 마는 그, 읽는 나도 그만 흐믓해졌다.
자폐나 장애에 관한 책은 수없이 많다. 좋은 책도 있고, 최소한 좋은 의도로 쓰인 책도 있으며, 일부는 경솔한 책도 있고, 가식과 나르시즘때문에 불쾌한 책도 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 책은 아주 아주 좋은 책이었다. 이토록 영리하게 아들의 자폐에 대처하면서 담담하고 명료하게 글을 써 내려가는 사람의 글은 읽어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감동적이었다. 사랑은 때로, 이렇게 사람의 심금을 울리기도 하나니... 모건이 언젠가는 자신이 대단히 멋진 아버지를 두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날이 있기를 바라본다. 아니 그렇지 않다해도 상관없다. 내가 아니까. 그가 삶의 험난한 장애를 만나 절망하고 있는게 아니라 앞장 서서 길을 개척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는 개척자다. 내가 만나 본그 누구보다 우아한 인생의 개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