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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거짓말을 하는가? - 거짓말을 사랑한 어느 심리학자의 고백
로렌 슬레이터 지음, 이상원 옮김 / 에코의서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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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목이 인상적이다. 왜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가가 아니라 "나는 왜 거짓말을 하는가" 이니 말이다. 그렇담 작가는 본인 스스로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고백할 생각인 것일까? 호기심이 생겼다. 우린 자신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에 수치심을 느끼는게 정상이니 말이다. 자신이 기억을 왜곡시켜서라도 자신이 거짓말장이가 아니라고 하는게 보편적인 인지과정일텐데, 만천하에 자신은 거짓말장이였다고 외치다니....작가의 솔직함에 놀랐다. 자신이 타고난 거짓말 장이라는 걸 고백한다는건 굉장히 힘들지 않을까 했지만 그건 내 기우였다. 이 작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백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건 작가가 자신은 특별한 상황에 처해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던 때문인 듯 했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거짓말을 하게 된 것일까?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들자면 관심을 받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도무지 얼마나 관심이 고팠길래 그녀는 프로 거짓말장이가 된 것인지 들어보기로 할까?
무심한 남편이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와의 불행한 결혼 생활을 완벽주의로 대응하던 나르시스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저자는 심각한 간질에 시달리면 어린 시절을 보낸다. 완벽주의자였던 엄마는 딸의 심각한 간질발작을 그 누구보다 부끄러워 하고 곤혹스러워 했다고 한다. 딸이 아픈게 아니라 자신을 골탕먹이려 한다고 생각한 엄마는 결국 딸을 방기하기에 이른다. 보다 세심한 보살핌과 민감한 보호가 필요한 시기에 딸을 버려 버린 것이다. 따스한 손길이 그리웠던 십대 시절의 작가는 자신을 그나마 살뜰하게 보살피는 병원에서 눌러 살기 위해 발작을 위장한다. 그것이 그녀를 상습적인 거짓말로 내몬 시초였다고 한다. 처음의 시도가 먹혀 들어가자 그녀는 곧 강박적인 거짓말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거짓말 성향은 그녀의 천재적인 상상력과 결합해 그녀를 파괴적인 일탈로 내몰다, 17살의 나이에 중년의 어느 섹스 중독자와 불륜에 빠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자신이 발작하는 모습에 식겁하는 중년 애인의 모습에 저자는 처음으로 자신의 모습을 되돌이켜 보는데....
간질에 대해 비교적 무심했는데, 이렇게 무서운 병인줄은 처음 알았다. 그냥 가끔 통제가 안 되는 치유 가능한 질병일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개인의 삶을 다분히 비참하게 만들만한 파괴력이 충분한 병이었다.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며, 심지어는 거짓말 성향조차 간질의 전형적인 증상이라니 놀랠 놀자다. 그렇다면 인성을 결정하는 것은 뇌의 작용이 맞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인성마저 변하게 만드는 간질, 과연 뇌는 얼마나 놀라운 기관인지...본인으로썬 통제가 불가능한 병을 앓으면서 외로워지고, 외로워지자 관심이 그리워 거짓말을 하게 되고, 관심이 그리워 50줄의 중년 작가와 섹스를 하는 그녀를 보자니 무척 가여웠다. 이젠 과거를 훌훌 털고 새 삶을 살고 있다는 다행이다. 천재적인 머리를 가졌다고 하더니만, 그래도 자신의 비참한 과거를 되돌이켜 보면서 분석을 할 정도로 똑똑했기 때문에 지금 행복한 삶을 살게 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비록 병때문이긴 했지만 왜 어떤 사람들은 그리도 태연히 거짓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통로를 제시해준다는 점이나--거짓말을 왜 하는지는 본인이 제일 잘 알테니까--, 저자가 엄마와의 애증관계를 토로하던 장면들이 신선했다. 나르시스트 엄마를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지 이 책에서도 다분이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어쩜 나르시스트 완벽주의자 엄마에겐 가장 끔찍한 딸이 바로 이 저자같은 사람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시당한 기억들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으면서 , 또 그런 학대를 참아넘길리 없는, 화끈하게 폭로하는 입담을 가진 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