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vention of Hugo Cabret (Hardcover) - 2008 Caldecott
브라이언 셀즈닉 지음 / Scholastic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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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수리공인 아버지가 돌아가신뒤 시계지기 삼촌과 살고 있던 12살 소년 위고는 어느날 삼촌이 돌아오지 않자 고아원에 끌려 가지 않기 위해 파리기차역 지하방에서 혼자 살아가기 시작한다. 삼촌이 하던 역의 시계들을 돌보며 배고픔에 좀도둑이 되어버린 위고는 어느날 불타버린 박물관에서 아버지가 고치던 자동기계를 발견한다. 아버지가 남겨주신 마지막 유품이라 생각한 위고는 자동기계를 끌고와 수리를 시작한다. 모자라는 부품을 동네 만물상 할아버지에게서 훔쳐오던 위고는 어느날 할아버지에게 딱 걸리고 만다. 도망치던 위고는 아버지가 남겨주신 노트를 흘리고 말고, 그 노트를 발견한 할아버지는 그것을 어디서 났느냐면서 노발대발한다. 노트를 달라고 조르는 위고와 태워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할아버지... 노트를 받기 위해 할아버지 집까지 찾아간 위고는 할아버지의 양손녀인 이사벨을 만나게 된다. 이사벨은 자신이 노트를 찾아주겠다면서 위고를 안심시키는데... 

 영화가 만들어지던 초기 감독을 지내셨다는 조르주 멜리에스를 소재로 해서 만든 청소년용 소설이다. 영화가 꿈을 재현하는 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간파한 사람이라는 조르주 멜리에스, 그의 영화를 본 사람들은 자신의 꿈이 현실로도 재현될 수 있다는 것에 깊이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 소설 속에서도 위고는 조르주 멜리에스의 영화에 감명받은 아버지가 들려주던 영화 이야기를 늘 기억한다.그리고 노트를 달라고 쫓아다디던 그 괴팍한 할아버지가 그 조르주 였다는걸 알고는 놀라고 만다. 실제 사실과 상상력의 절묘한 조화,그리고 감동적인 몇몇 장면들과 해피엔딩으로 그럭저럭 보기엔 괜찮은 책이었다. 흑백으로 그린 사실적인 그림들이 인상적. 그리고 읽고 싶은 책이 있어 서점에서 책을 몰래 훔치는 위고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마법은 돈을 내고 책을 사는 것이라고 일러주던 거리 선배의 모습은 훈훈했다. 세상에 모든 가여운 아이들에게 이런 사소한 가르침을 주는 선배가 하나씩 있다면 세상은 더 좋아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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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도둑을 쳐다보지 마세요
이사벨 코프만 지음, 박명숙 옮김 / 예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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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별 굴곡이 없이 살아온 듯한 디안에게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로즈란 남자와 부딪히게 된 것... 영혼을 훔치는 마음 도둑이었던 로즈와의 만남으로 디안은 여지껏 느껴보지 못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된다.  냉철한 머리와 쉽사리 동요되지 않은 이성으로 쉽게 교수 자리를 꿰차면서 승승장구했던 디안 (--실은 이 캐릭터 설정에서부터 이 소설의 신빙성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녀의 행동을 보면 10대나 20대 여자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던데, 그런 그녀에게 교수라는 타이틀을 붙여 주었다고 해서 냉철한 머리나 흔들리지 않은 지성이 믿겨질리는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하이틴 로맨스 소설에 등장해야 어울릴 듯한 여자 " 교수" 주인공이 자칭 심리소설에 등장해 머리 좋은 듯 분위기 잡고 있었으니, 참으로 어색한 조화였다.)은 그렇게 자신을 타일렀음에도 로즈에게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랑이라는 도가니속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디안은 로즈에게 탁월한 능력이 있음을 알게된다. 그것은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적어 놓음으로써 그 순간과 타인의 기억을 빼앗어 버린다는 것이었다. 작가가 되기 위해  타인의 영혼을 기록할 뿐이라는 그의 말과는 달리 그와 접촉한 사람들은 그 순간의 기억에서부터 자신의 정체성까지 잊어 버리고 마는 비극을 당하게 되었다. 그린 비극을 막기 위해 디안은 로즈에게 그의 괴벽을 중지해줄 것을 요청하지만, 로즈는 그것이 작가로써의 자신의 사명이라면서 거절하는데.... 

 

 사랑을 시작했을 때의 불안감과 광기(디안의 문제) 와 모든 사물의 기록에 집착하는 작가의 페해를  (로즈의 문제) 우회적으로 다룬 심리 소설이었다. 골자를 이렇게 설명하면 아주 간단한 이야기인데도, 그걸 굉장히 별다르고 괴상하며 특출난 문제처럼 풀어냈다는 것이 이 책의 치명적인 단점이다. 뭐, 보는 각도에 따라 이 책이 다른 책과 유일하게 구별되는 점일 수도 있긴 했지만서도...  잘 썼다면 굉장한 상상력의 발현일 수도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어설프게 풀어놓는 바람에 우스개거리에 지나지 않아 보였으니 말이다. 특히나 작가란 타인의 영혼과 프라이버시는 훔치는 도둑에 불과할 뿐이라는 설정은 얼마나 그럴 듯한 소재인가? 착상은 참 괜찮았는데 그것을 깊이 있게 파고 들기엔 작가의 능력이 부족해 보인 점이 아쉬웠다.

 

자신의 사생활이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미주알 고주알 적나라하게 까발리면서 베스트셀러를 양산하는 작가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 작가들이야 돈도 벌고 명성도 얻지만, 그들의 책에 등장하는 소재감 내진 먹이감들의 기분은 어떨까? 그건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이야기거리들을 필요로 하지만 정작 그 이야기 거리의 당사자가 되어 수치심과 안전함을 잃게 되는 것들을 바라진 않을 것이다.  정신병자가 아닌 한... 그것을 타인의  영혼을 빼앗는 것과 다름없다는 작가의 생각은 일리가 있다고 본다. 아이디어는 좋았다. 그걸 설득력있게 펼쳐내지 못한 것이 아쉬웠을 뿐...쉽게 말해서 재미가 없었다.

 

지나가는 ( 마음 ) 도둑을 쳐다보지 마셔요.그와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당신은 당신의 의지와 영혼을 상실할 거랍니다...라는 뜻의 제목. 아마도 이 책에서 가장 박수를 받아야 하는 것은 바로 저 제목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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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
닉 혼비 지음, 이나경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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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에 관한 책은 대체로 안 읽는 편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재미가 없어서다. 재미가 없으면 쓸만한 정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책에서 쓸만한 정보를 얻는다는건 돌을 던져 날아가는 참새를 잡을 확률과 맞먹으니 내가 왜 그런 책들을 멀리 하는지 충분히 이해 되실 것이다. 우스운 것은 내가 이러한 확고한 견해를 갖고 있음에도 새로운 서평집이 나오면 여전히 혹시나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건 내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책에 대한 생각 때문일 것이다. 즉, 아무리 지루함이 보장된 쟝르라 할지라도 가끔은 재밌는 책이 출간되기도 하니,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 독서계에서 우연한 횡재란 왕왕 벌어지는 현실이니 말이다. 언제 재미로 무장한 책을 만날지 알 수 없다. 덤으로 왕창 왕창 쓸만한 정보가 넘쳐 난다던지, 공감 가는 말에 끄덕이느라 고개가 아플 정도라든지, 맞장구 쳐주고 싶은 마음에 작가를 만나고 싶어진다던지, 더 나아가 책을 다 읽고 나니 작가를 꼬옥 끌어안고 싶어지더라까지 되면 그야말로 대박감이라고 보면 된다. 실은 그런 책을 만나기 위해 책을 읽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 그런 책 하나를 건지기 위해 수 많은 책들을 전전하게 되는 것이고... 그런면에서 이 책의 작가인 닉 혼비는 꼭 만나서 꽈악 끌어안고 싶어지는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대박이었다는 뜻이다.

 

우선 지루한 책을 읽노라면 성격 나빠져서 싫어한다는 말에 뻑갔다.( 내가 지른 "까악 ~~~오빠! "라는 함성을 닉 혼비가 들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독서란 독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상황과 무관할 수 없지 않느냐는 문장엔 그만 열광하고 말았다. 맞는 말이다. 책이 어떻게 한 개인의 경험과 따로 떨어져서 읽힐 수 있겠는가만은 나 역시 리뷰를 쓸때면 그것하곤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 굴어야 했으니 말이다.  내 자신만의 주관적인 느낌과 의미를 뺀 리뷰를 쓴다는 것은 허전한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책이 가져다준 진짜 의미를 쓴다는 것은 내 사생활을 드러내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마치 일기처럼 말이다. 그것을 잘 알기에 닉 혼비 자신은 느낀 그대로 쓰겠다는 선언에 반색했다. 그래, 내가 염원하던 솔직하고 화끈한 리뷰를 이제 닉 혼비가 쓸 모양이다 싶었다. 나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그러니, 이 책이 나를 매혹시켰더라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내가 그렇게 쓰고는 싶었지만, 능력이 달려  못쓰는 리뷰를 그가 쓰고 있었으니까. 더군다나 안목도 출중해요, 유머 감각은 빌 브라이슨 빰 쳐요, 신선한 감각과 균형잡힌 시선에, 삐딱선 타는 모습마저 귀엽기 그지 없어요, 책에 대한 열정 그 누구 못지 않아요, 별거 없는 책에 유난 떠는 리뷰어 보길 돌 보듯 해요, 원작보다 더 장황하게  리뷰를 쓰는 리뷰어에 태클 걸어요... 평소 내가 하고 싶던 말을 어찌 그리도 조목조목 다 해 대던지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든 것은 그의 책 읽는 자세였다. 그는 남에게 나는 이런이런 책을 읽었다고 자랑하기 위해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재미를 위해, 인생을 더 잘 알기 위해, 작가로써 다른 작가를 경외하거나 한 수 배우기 위해, 자폐아인 아들을 키우면서 느끼는 고충을 해소하기 위해,  그렇게 평범한 일상으로 책을 읽고 있었다. 모름지기 독서란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책이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지, 인간이 책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모처럼 책을 제대로 대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난 것 같아 뿌듯하기 그지없었다.

 

장점이 많은 책이었으나 그걸 여기에 다 설명하긴 곤란하고, 대충 내가 느낀 것들을 적어 보자면...

 

1.왜 한동안 닉 혼비가 침체기를 겪을 수 밖엔 없었을지 이해가 됐다. 그건 그가 착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까발려 글을 쓰는 작가는 못되었던 것이다. 본인의 사생활을 있는 것 없는 것 다 까발려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하이에나 같은 작가는 다른 작가에게도 경멸인 동시에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닉 혼비 자신도 어느선까지 자신을 오픈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 같던데, 좋은 작가란 주변 사람들에겐 악몽같은 존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의 고민이 깊지 않기를 빌어봤다.

 

2. 그가 읽은 목록들중에 내가 아는 것들이 많아 반가웠다. 그가 읽은 책을 나도 읽었거나 읽는 중이란 점은 물론이고 몇 개의 책을 제외하곤 보는 느낌도 비슷하다는 것은 얼마나 신기하던지... 그의 안목에 믿음이 갔다. 재밌던 것은 지리적으로는 그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감정적인 거리는 여기 한국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가깝다는 사실이었다. 같은 책을 읽고 비슷한 견해를 갖는다는 것이 낯선 사람에게 동질감을 느끼게도 하는가 보다.

 

3.그가 읽어낸 책 목록 못지 않게 내가 환영했던 것은 그가 읽어내지 못한 목록들이었다. 한마디로 지루해서 차마 다 읽지 못한 책들...하! 나 역시도 그런 책에 대해 얼마나 할 말이 많았던고! 정작 길게 성토를 하고 싶었던 것들을 바로 그런 책들이었으니 말이다. 하여, 닉 혼비가 노발대발 화를 내며 집어 던진 책들을 바라 보는 것은 정말로 흐믓한 일이었다.' 야, 당신도 나처럼 성질 더럽군요' 하면서, 동지를 만난 마음에 눈물을 훔쳤더랬다.

 

즐겁게 읽은 책이었다. 독서에 대해 한 수 배운 책이기도 했고.닉 혼비를 새롭게 발견하게된 책이기도 했다. 책에 비교적 욕심이 없는 나이지만, 이 책은 소장하게 되서 기뻤다. 두고두고 들춰 보면서 아직 읽어내지 못한 책들을 읽을 생각이다. 그 책들을 다 읽지 못한다고 해도, 닉의 글을 내킬때마다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든든하다.  그나저나 닉 혼비는 아직도 <빌리버> 잡지에 이 칼럼을 쓰고 있을까? 난 아직도 그의 리뷰가 고픈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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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
마비쉬 룩사나 칸 지음, 이원 옮김 / 바오밥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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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계 이민 2세였던 이 책의 저자 마비쉬 룩사나 칸은 항간에 떠도는 관타나모 수감 죄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원봉사를 신청한다. 비록 흐릿하긴 하나 같은 동포로써의 연대감에 로스쿨 졸업생으로써 타국에서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인간적인 연민 때문이었다.  정당한 재판을 보장 받기 위한 변호사들과의 면접시간에 통역을 하게 된 그녀는 악질적인 테러리스트들만 모았다는 관타나모의 명성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금새 눈치챈다. 정작 만나본 죄수들은 아프간의 재건으로 돕고자 고국으로 달려온 의사에 문맹인 염소치기 청년, 몇 년 전부터 뇌졸증을 앓아 몸 놀림이 부자연스런 팔십의 노인, 영문도 모른채 아프간에서 끌려온 경찰 서장, 마찬가지로 죄명도 모른 채 잡혀 온 알라지자 방송국 기자등 알 카에다나 탈레반, 테러리스트나 정치와는 전혀 무관한 민간인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저자  마비쉬 칸은 애초에 죄가 없는 그들이 끌려 올 수 있었다는 사실에, 죄가 없다는 그들의 항변이 무참히 무시되는 것에, 기약없이 한없이 늘어나는 구속기간에, 인간성을 말살하는 악랄한 고문과 끔찍한 성 고문에, 가족들과 서신 왕래 조차 여의치 못한 것에, 인신구속의 부당성을 항의해봐도 끄떡 않는 재판부에, 자신이 사랑하는 고국 미국에선 현재 그 모든 일들이 현재 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만다. 죄수의 접견을 마치고 나오던 첫 날  '난 미국에 속고 있었어' 라고 멍하니 중얼거렸다는 그녀는 그 이후로 죄수들의 석방에 물심양면  나서게 된다. 그들에게 죄가 없다는 증거를 모으기 위해 아프간으로 날아간 그녀는 조국의 아름다움과 정겨움에 새삼 반하고 말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들을, 아버지를, 남편을 관타나모에 묶여 둔 채 불안에 떠는 가족들 생각에 마음이 편치 못하다. 관타나모의 죄수들이 실은 미국에 제시한 거액의 현상금을 타내기 위해 같은 동포들이 저지른 허위 밀고에 의한 결과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그 사실을 밝혀 내기 위해 애를 쓰지만 그 명백한 사실마저도 미국 재판부에 먹히지 않다는 것에 놀라고 만다. 미국 재판정 입장에선 무슬림은 다 무자비한 테러리스트 같아 보였고, 그들 가운데 하얀 양을 구별해 내려는 의지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무고한 이들을 위해, 갑작스럽게 닥친 모진 역경을 인내심과 의지를 가지고 꿋꿋히 견디는 죄수들을 위해 그녀는 희망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로스쿨 졸업생이 관타나모 죄수들의 통역을 도와 주면서 겪은 일들을 쓴 것으로 읽기 쉽게 쓴 점이 장점이다. 하지만 저자가 나이가 어린 탓인지 보이는 것 이상을 읽어내는 통찰력이 없던 점이 아쉬었다. 만약 베테랑 기자가 썼다면 탁월한 글이 나오기 어렵지 않는 소재였을텐데, 평면적인 서술에 그치고 말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관타나모 안에서 자행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선 방송매체에서 익히 들었던 터라 새삼스러울 것이 없었음에도, 그들의 실상을 읽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벌이는 무자비한 폭력과 만행의 정도를 가늠하는 것이 언제나 버거운 탓이었다. 왜 인간은  타인에게 친절하기 그리도 어려운 것일까? 역사가 진행되어 감에도 인간의 잔혹함과 무지는 달라지는게  없다든 사실에, 유대인의 홀로코스트나 일본인의 난징 학살이 관타나모의 죄수들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인간이란 종족에게 새삼 낙담이 되었다. 보다 문명화되고 진화된 인간을 주장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꿈꾼다는 것이 어쩜 우리들의 이상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프간 죄수들이 무척 안 됐으면서도, 한편으론 우리 신세가 아프간과 같지 않다는 것이 무척 다행스러웠다. 만약 우리나라가 아프간과 같이 무기력한 나라였다면 우리도 그들과 똑같은 대접을 받았을테니 말이다. 죄수들이 자신들을 지켜주지 못한 고국을 미국 못지 않게 증오스러워 하던 모습들이 이해 되는 순간이었다. 자기 자식을 지켜주지 못하는 부모처럼, 자기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고 팔아먹는 정부는 욕을 먹어도 싸다.

 

오래 전 미국에 <60분>이란 시사 프로에서 한국 주둔 전 미국 사령관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 근무한 느낌은 어땠냐고 여자 앵커가 묻자 그는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흑흑 대더니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 말도 마라, 너무 힘들했다. 그곳의 정세가  얼마나 위험하고 일촉즉발인지 당신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라고...하도 어이가 없어서 --당시는 우리나라가 비교적 평화로울 시기였다.---동생과 나는 크게 웃어 버렸다. 동생과 나는 " 와 ,우리가 그렇게 위험한 나라에 살고 있었군요, 왜 우린 그걸 여태까지 몰랐을까요? " 라며 서로를 위로해 주었다. 남자는 평생 세 번 만 울어야 한다더니 정말 눈물이 흔한 남자의 눈물은 가관이더라. 하지만 내가 느꼈던 가소로움은 곧바로 다른 걱정으로 향했다. 그가 꼴갑을 떨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지만 그걸 시청한 미국인들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하는...그는 너무 진심같아 보였으니 말이다. 북한이 핵을 가지고 게임을 하고 있는 지금, 과연 미국인들에게 남한과 북한 사람들이 다르다는걸 구별할 능력이 있겠는가 싶은 것이다. 미국인들에게 우리는 아프간 인들과 마찬가지로  "All the same"이 아닐런지? 가능성 없는 이야기는 아니란 생각이 든다. 죄수들의 기막힌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의 이야기가 남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역사가 증명하건데 , 거대한 힘을 가진 자가 그 힘을 제대로 쓰는 법은 대체로 없었나니...우린 그저 그 힘의 희생자가 되는 일은 없게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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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다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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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터키에도 이런 작가가 있었다니, 터키 문학계에 존경심이 생기게 만들던 작품이었다. 작가 아지즈는 조국 터키의 민주화를 위해 소심하게 글을 썼다가 그만 반역죄로 잡혀 가게 된다. 자신은 절대 감옥에 갈만한 글을 쓰지 않았다고 아무리 재판부에 항변해봐야 소용 없는 일. 징역살이에 이어 작은 소도시로 유배 되어 갈 수밖엔 없던 그가  그 당시  겪은 황당한 일들을 섬세하지만 초연한 자세로 그려내고 있던 수필이다.

 

우선 매력적으로 잘 쓴 책이라는 점을 알려 드리고 싶다. 절대 웃음이 나올 수 없는 황당하고 수치스런 상황임에도 블랙 유머로 전환해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여서 블랙 유머의 대가라는 별명이 어떻게 붙여졌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단지 '불온'문서 한 장 찍었을 뿐인데, 멀리서 나를 보고 도망가는 친구들. 나를 전혀 알지 못하는 척 시치미 딱 떼는 동창생들, 배고픔에 겨워 거리를 떠돌던 나의 초상들, 돈 한 푼이 아쉬운 그의 처지를 오히려 이용해 사기를 치던 야바위꾼들, 속이 시꺼매서 도무지 들여다 볼 수 없던 유배 문학가 선배등...걸친 옷 하나밖 아무것도 가진 없이 도착한 유배지에서 그는 휘몰아치는 광풍에 홀로 서 있는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우리에게 유려하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그런 경험을 다 겪어 내기엔 그 자신이 너무 여리고 순하고 순진하다는 사실도... 어떻게 그 세월을 견뎌냈는지 모르겠다는 그의 말은 푸념이 아니라 진실로 그래 보이더라. 그마나 다행인 것은 그의 인간성이 너무 굳건한 나머지 그런 세상의 대접에도  불구하고 그의 뿌리는 뽑히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좋은 작품은 작가의 인간성을 반영한다는 것을 굳이 상기시키지 않더라도, 그의 작품이 존경을 받는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는 것은 바로 그때문이리라.

 

터키가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작가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문학성과 인간미를 보여주던 아지즈 네신. 터키인들이 그를 가장 사랑해 마지 않는 작가로 뽑는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인의 기준에서 봐도 손색없는 풍자와 인간미, 그 모든 세상의 악덕에도 불구하고, 이런 작가 덕분에 인간의 정신이 죽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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