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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
닉 혼비 지음, 이나경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서평에 관한 책은 대체로 안 읽는 편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재미가 없어서다. 재미가 없으면 쓸만한 정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책에서 쓸만한 정보를 얻는다는건 돌을 던져 날아가는 참새를 잡을 확률과 맞먹으니 내가 왜 그런 책들을 멀리 하는지 충분히 이해 되실 것이다. 우스운 것은 내가 이러한 확고한 견해를 갖고 있음에도 새로운 서평집이 나오면 여전히 혹시나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건 내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책에 대한 생각 때문일 것이다. 즉, 아무리 지루함이 보장된 쟝르라 할지라도 가끔은 재밌는 책이 출간되기도 하니,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 독서계에서 우연한 횡재란 왕왕 벌어지는 현실이니 말이다. 언제 재미로 무장한 책을 만날지 알 수 없다. 덤으로 왕창 왕창 쓸만한 정보가 넘쳐 난다던지, 공감 가는 말에 끄덕이느라 고개가 아플 정도라든지, 맞장구 쳐주고 싶은 마음에 작가를 만나고 싶어진다던지, 더 나아가 책을 다 읽고 나니 작가를 꼬옥 끌어안고 싶어지더라까지 되면 그야말로 대박감이라고 보면 된다. 실은 그런 책을 만나기 위해 책을 읽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 그런 책 하나를 건지기 위해 수 많은 책들을 전전하게 되는 것이고... 그런면에서 이 책의 작가인 닉 혼비는 꼭 만나서 꽈악 끌어안고 싶어지는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대박이었다는 뜻이다.
우선 지루한 책을 읽노라면 성격 나빠져서 싫어한다는 말에 뻑갔다.( 내가 지른 "까악 ~~~오빠! "라는 함성을 닉 혼비가 들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독서란 독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상황과 무관할 수 없지 않느냐는 문장엔 그만 열광하고 말았다. 맞는 말이다. 책이 어떻게 한 개인의 경험과 따로 떨어져서 읽힐 수 있겠는가만은 나 역시 리뷰를 쓸때면 그것하곤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 굴어야 했으니 말이다. 내 자신만의 주관적인 느낌과 의미를 뺀 리뷰를 쓴다는 것은 허전한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책이 가져다준 진짜 의미를 쓴다는 것은 내 사생활을 드러내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마치 일기처럼 말이다. 그것을 잘 알기에 닉 혼비 자신은 느낀 그대로 쓰겠다는 선언에 반색했다. 그래, 내가 염원하던 솔직하고 화끈한 리뷰를 이제 닉 혼비가 쓸 모양이다 싶었다. 나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그러니, 이 책이 나를 매혹시켰더라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내가 그렇게 쓰고는 싶었지만, 능력이 달려 못쓰는 리뷰를 그가 쓰고 있었으니까. 더군다나 안목도 출중해요, 유머 감각은 빌 브라이슨 빰 쳐요, 신선한 감각과 균형잡힌 시선에, 삐딱선 타는 모습마저 귀엽기 그지 없어요, 책에 대한 열정 그 누구 못지 않아요, 별거 없는 책에 유난 떠는 리뷰어 보길 돌 보듯 해요, 원작보다 더 장황하게 리뷰를 쓰는 리뷰어에 태클 걸어요... 평소 내가 하고 싶던 말을 어찌 그리도 조목조목 다 해 대던지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든 것은 그의 책 읽는 자세였다. 그는 남에게 나는 이런이런 책을 읽었다고 자랑하기 위해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재미를 위해, 인생을 더 잘 알기 위해, 작가로써 다른 작가를 경외하거나 한 수 배우기 위해, 자폐아인 아들을 키우면서 느끼는 고충을 해소하기 위해, 그렇게 평범한 일상으로 책을 읽고 있었다. 모름지기 독서란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책이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지, 인간이 책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모처럼 책을 제대로 대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난 것 같아 뿌듯하기 그지없었다.
장점이 많은 책이었으나 그걸 여기에 다 설명하긴 곤란하고, 대충 내가 느낀 것들을 적어 보자면...
1.왜 한동안 닉 혼비가 침체기를 겪을 수 밖엔 없었을지 이해가 됐다. 그건 그가 착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까발려 글을 쓰는 작가는 못되었던 것이다. 본인의 사생활을 있는 것 없는 것 다 까발려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하이에나 같은 작가는 다른 작가에게도 경멸인 동시에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닉 혼비 자신도 어느선까지 자신을 오픈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 같던데, 좋은 작가란 주변 사람들에겐 악몽같은 존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의 고민이 깊지 않기를 빌어봤다.
2. 그가 읽은 목록들중에 내가 아는 것들이 많아 반가웠다. 그가 읽은 책을 나도 읽었거나 읽는 중이란 점은 물론이고 몇 개의 책을 제외하곤 보는 느낌도 비슷하다는 것은 얼마나 신기하던지... 그의 안목에 믿음이 갔다. 재밌던 것은 지리적으로는 그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감정적인 거리는 여기 한국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가깝다는 사실이었다. 같은 책을 읽고 비슷한 견해를 갖는다는 것이 낯선 사람에게 동질감을 느끼게도 하는가 보다.
3.그가 읽어낸 책 목록 못지 않게 내가 환영했던 것은 그가 읽어내지 못한 목록들이었다. 한마디로 지루해서 차마 다 읽지 못한 책들...하! 나 역시도 그런 책에 대해 얼마나 할 말이 많았던고! 정작 길게 성토를 하고 싶었던 것들을 바로 그런 책들이었으니 말이다. 하여, 닉 혼비가 노발대발 화를 내며 집어 던진 책들을 바라 보는 것은 정말로 흐믓한 일이었다.' 야, 당신도 나처럼 성질 더럽군요' 하면서, 동지를 만난 마음에 눈물을 훔쳤더랬다.
즐겁게 읽은 책이었다. 독서에 대해 한 수 배운 책이기도 했고.닉 혼비를 새롭게 발견하게된 책이기도 했다. 책에 비교적 욕심이 없는 나이지만, 이 책은 소장하게 되서 기뻤다. 두고두고 들춰 보면서 아직 읽어내지 못한 책들을 읽을 생각이다. 그 책들을 다 읽지 못한다고 해도, 닉의 글을 내킬때마다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든든하다. 그나저나 닉 혼비는 아직도 <빌리버> 잡지에 이 칼럼을 쓰고 있을까? 난 아직도 그의 리뷰가 고픈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