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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항해 - 캡틴 쿡의 발자취를 따라서
토니 호위츠 지음, 이순주 옮김 / 뜨인돌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내가 역사상 그 누구보다 도 멀리 ,
인간에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한계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야망' 때문이었다. --캡틴 쿡의 일기중에서--
고래잡이, 선교사 , 공산품, 문자 해독력, 권총, 럼주, 매독, 천연두, 문신 (tattoo), 터부( taboo), 생물 다양성이라는 개념...두서없이 늘어놓은 이 단어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18세기 영국의 탐험가인 쿡 선장이랍니다. 어느 한가한 여름날, 아무 생각없이 쿡 선장의 항해 일지를 들춰보고 있던 토니 호위츠는 뜻밖에도 그에게 흥미를 느끼게 됩니다. 지극히 건조하고 간결한 필체로 적어 내려간 쿡의 일지속에는 그의 상상을 자극하는 이야기들이 빼곡히 적혀져 있었거든요.
타히티 섬의 관능적인 여인들과 섬뜩한 인간 제물 의식, 그리고 종교 의식 같은 난잡한 성행위, 독이 든 생선을 먹고 죽을 뻔 했던 일, 남극에서 수많은 펭귄들의 음울한 소리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던 선원들, 산토끼와 비슷하게 생긴 머리를 빼곤 그 어떤 것과도 닮지 않아 36킬로그램짜리 '쥐'로 분류 해야 했던 재색 털을 가진 동물, 사람 잡아 먹은 듯한 시뻘건 입을 하고 호전적인 춤을 추던 새비지 섬 전사들과 선장 일행을 신의 사절로 오해한 하와이 섬 사람들, 억센 선원들을 통제해야 하는 것에 대한 남다른 고충등을 읽은 토니 호위츠는 자신의 나이 또래의 이 사내에게 존경심과 더불어 호기심이 생겨 버립니다. 영국의 최하층 가난뱅이로 태어났으나 역사상 그 누구보다 더 멀리 나아간 쿡이란 사람은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궁금해진 토니 호위츠는 그 길로 쿡 선장이 갔던 발자취를 따라가 보기로 합니다. 그렇게 "쿡 선장 따라잡기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죠.
우선 쿡이 타고 갔던 인데버호의 복제선을 타고 일주일동안 항해한 그는 "멀미를 하면 죽을 것 같지만 죽지는 않는다"는 안내문의 문구가 사실임을 알게 됩니다. 타히티로 날아가서는 타히티인들이 여전히 성을 광적으로 팔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죠. 하지만 "쿡 (cook) 선장을 아느냐 "는 질문에 말없이 코카 콜라(coke)를 건네 주더라는 일화에서 알 수 있듯 그곳에서 쿡은 이미 잊혀진 사람이었습니다. 호전적인 전사들 덕분에 새배지 섬으로 명명된 뉴에이 섬에 당도한 호위츠는 그들이 실제로는 소심한 사람들이었다는 말에 실소합니다. 쿡을 극단적으로 거부했던 그들이 이젠 일주일에 한번 오는 정기선 비행기에 누가 올까 섬 마을 사람 전체가 구경 나오는 곳으로 변했다니 참, 재밌는 역사의 아이러니죠? 쿡 선장이 유난히 다정한 사람들이었다고 강조한 퉁가 섬에 들린 저자는 그들이 이젠 굉장히 퉁명스러워졌다는 사실에 실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실망도 배역을 잘못 맡은 듯한 퉁가왕을 만난 것으로 만회해 버리고 말죠.
"바다를 잘 아는 사람만이 쿡과 그의 업적을 이해할 수 있다는 "영국 제독 넬슨의 말에 따라 친구인 뱃사람 로저를 여행에 동참 시킨 토니 호위츠는 캡틴 쿡 협회 회장 클리프 손턴과 함께 하와이로 향합니다. 2월 14일 쿡의 기일을 맞아 추모식을 거행하기 위해서죠. 1779년 쿡이 사망한 지점에 도착한 그들은 쿡의 마지막을 재현해 보면서 어떻게 해서 매사에 초연하고 절제심이 강했던 쿡 선장이 하와이인들에게 맞아 죽게 되었는지 추측해 봅니다.
쿡 선장 한 사람에 대한 상반되고 다양한 견해들로 머리가 피곤해진 저자는 가장 상식적인 선에서 해답을 구하려 노력합니다. 그때 한 하와이 사람이 이런 말을 들려줍니다. 쿡 일행이나 그들을 맞이한 섬 사람들이나 양측 모두는 서로간의 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간과한다는 것이었죠. 저자는 그 말이 가장 그럴듯하지 않는가하고 되묻습니다. 인간의 본성이란 서로를 이용하기보다는 이해하려 하는 것이 먼저인 법이니까요. 비록 그들의 만남이 비극으로 끝이 났다고 해서 만남 자체를 오해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그렇게 18세기 쿡의 일지를 들고 떠났던 토니 호위츠의 21세기 세계 여행은 끝이 납니다. 무모해 보이던 그 여정을 통해 그는 잊혀진 영웅이며 여전히 미스테리로 남아있던 쿡 선장을 잘 이해하게 되었죠. 당시로썬 죽을 날자를 받아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40대의 나이에 3번이나 세계 일주에 나선 용감한 사람, 세계 지도의 2/3을 완성시킨 천재적인 지도 제작자이자 , 성실하고 꾸밈없으며 가정적이고 열정적이었던 사내였던 그를 말입니다. 균형잡힌 시선과 유머스런 입담,그리고 성실한 조사로 쿡이란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려낸 작가 토니 호위츠에게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