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자 펠레 레인보우 북클럽 10
마르틴 안데르센 넥쇠 지음, 정해영 옮김, 최창훈 그림 / 을파소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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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죽은 뒤 여덟살 된 아들 펠레를 키울 것이 막막해진 라세는 아들을 데리고 고향 스웨덴을 떠나 덴마크로 건너온다. 항구에서 갈 곳을 물색하던 라세는 늙은이와 어린 아들을 기꺼이 받아주려는 농장이 없다는 사실에 기가 죽는다. 하는 수 없이 스톤 농장에 일자리를 얻게 된 부자는 곧 자신들이 박한 임금과 열악한 노동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억센 농부였던 콜레르가 일궈낸 스톤 농장의 현재 소유주는 콩스트루프로 그는 콜레르 가문의 외동딸과 결혼함으로써 마을의 제 1의 지주가 된 사람이다. 마을의 유명한 말괄량이었던 콩스트루크 부인은 잘생긴 외지인 콩스트루프에게 반해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했으나 ,안타깝게도 그 결혼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늘 바람을 피고 돌아다니는 남편에게 절망한 아내는 알콜 중독자가 되어 밤마다 곡을 하고, 펠레는 돈이야 많지만 불행한 안주인이 안스럽기만 하다.

 

그렇다고 펠레가 남 걱정이나 하며 살 만한 처지인가 하면 그것은 아니었다. 힘에서건 서열에서건 농장에서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 부자에겐 하루하루가 고난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농장에서의 잡다한 심부름과 소몰이를 해야 하는 펠레를 이미 늙어버린 아버지가 언제나 보호한다는건 무리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두 부자를 견디게 하는건 둘의 끈끈한 사랑이다. 가난하고 무식하고 가진것은 없지만 펠레만큼은 번듯하게 키우고 싶어하는 라세는 펠레가 학교에 들어가자 마냥 뿌듯해 한다.

 

펠레의 삶 역시 점차 범위가 넓어진다. 펠레의 첫 친구로 농장 주인의 사생아인 천덕꾸러기 루드, 아이를 열 셋이나 낳으면서도 언제나 낙척적인 칼레 삼촌,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알게 된 바다 친구들과 교장 선생님, 비열한 견습감독과 인부들을 부리는데 이골이 난 농장 감독, 그리고 그런 감독을 견제하던 자신만만한 에릭과  농장 사람들의 경외를 받는 처지임에도 늘 비극적인 기운을 몰고 다니는 주인내외 부부등 펠레는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드라마에 저도 모르게 휘말리게 된다. 그들의 비극에 학을 떼던 펠레는 견진성사를 받고 나자 아버지에게 함께 농장을 떠나자고 설득한다. 평소 큰 세상으로 나아가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팠던 이 소년의 꿈은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척박하고 비극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마을에 소박하고 원초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려낸 소설이다. 87년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에 받은  영화 < 정복자 펠레>의 원작으로, 원작 역시 영화 못지 않은 감동을 자아내고 있었다.

 

" 아들아, 나는 늙었으니  넌 네 세상을 찾아가거라" 라면서 펠레의 등을 떠밀던 라세, 그가  떠나가는 아들에게 손을 흔들던 마지막 씬의 감동이 지금까지 선명하다.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을 것만 같던 애틋한 부자가 가난 때문에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이별을 하던 그 모습은 어찌나 안타깝던지.. 억세거나 미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 농장의 척박한 삶, 삶이 힘든 나머지 타인에게 다정은 커녕 갈구기에 바쁘던 사람들이 그럼에도 서로를 돌봐주는 모습이 애잔하고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비극적인 운명을 타고 난 사람들 속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던 펠레가 과연 그의 꿈대로 세상을 정복했을지 궁금하다. 아버지의 사랑과 희생이 그를 세상으로 보냈으니, 적어도 아버지의 삶보다 나은 삶을 살지 않았을까...그랬음 하고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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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wl Babies (Boardbook + Audio CD 1장 + Tape 1개) - 문진영어동화 Best Combo (Board Book Set) My Little Library Boardbook Set 43
마틴 워델 글, 패트릭 벤슨 그림 / 문진미디어(외서)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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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물건을 살때의 최대 단점이라면  실물을 보지 않고 물건을 사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요즘 조카가 너무 좋아하는 동화 <엄마를 기다리는 아기 올빼미들> 이란 번역서를 사주고 싶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인터넷 서점에선 당최 살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고른 원서, 어제 주문하고 오늘 온 택배를 반가운 마음에 풀러 보는데 아무래도 좀 이상한 것이었다. 이것보다 커야 하는데, 동화책이 원래 보통 어른책보다 큰 법 아닌가? 그런데 작았다. 작아도 넘 작았다. 머리속에서 기대하던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지만, 뭐, 일단 모든 것을 좋은 쪽으로 해석하는 내 기질상 괜찮을거라 다독였다. 책이 아무리 작다고 해도 내용만 제대로 박혀 있음 되지, 뭘 그래, 하면서... 그런데 막상 풀러보니 나의 낙천성으로도 해결이 안 될만큼 작았다. 아.이게 뭐야?

 

아이들 낱말 카드 정도의 딱 내 손바닥 만한 크기, 보드 북이라고 해서 페이지가 두꺼운 책이라는 의미인줄 알았는데, 이거 페이퍼 백으로 살걸 그랬나 후회가 됐다. 글자보다 그림이 중요한 것이 동화책의 특성, 이 정도의 크기라면 큰 사이즈의 동화책에서 볼 수 있었던 섬세한 표현은 물건너 갔다고 보면 된다. 우선, 경악스럽게도 그림이 위 아래로 잘려 나갔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거기에 한술 더떠  번역서엔 존재하던 페이지가 몇장 생략되어까지 있더라. 하필이면 빼버린 그 그림이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었으니 그걸 확인한 내가 마침내 내가 비명을 질러댔던 것도  이해되시리라 본다.  ( 올빼미 아기들 삼 남매가 숲속에 앉아 엄마를 기다리는 모습을 먼 거리에서 찍은 것인데, 아기들이 얼마나 무서울지 잘 표현한 그림이었다. ) 한마디로 실망 실망 또 실망...이걸 내가 왜 그렇게 고민하며 샀을꼬 뒤늦게 후회 막급이었다.  

 

그리곤 왜 번역서를 살 수가 없는거야? 불똥이 엄한데로 튀었다. 굳이 영어를 가르칠 생각이 없는데도, 이 원서를 산데는 번역서를 살 수가 없었던 까닭도 있었기에 하는 말이다. 당장 번역서 출판사에 전화를 해서 항의를 하고 싶었다. 책을 냈으면 팔아야지 말이야, 대표적 인터넷 서점 두 곳에서 안 팔면 어디가서 사라는 거야? 꼭 전집으로만 팔아야 돼? 누군가에게 화풀이 하고 싶은 기분이 모락모락 피어 올랐다.

 

아....그나저나, 조카에게 좋은 선물을 하고 싶었는데, 기분이 더럽다. 책을 고르는데 있어 완벽성을 자랑하던 나였는데, 오늘 안으로 기분이 정상으로 회복될지 의문이다. 여지껏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면서 이렇게 실망한 적은 없었는데, 참 아쉽다. 그러니, 혹 덜컥 책을 사시려고 하시는 분들은 꼼꼼하게 책 크기등을 확인하시고 사실 것을 조언드리는바다. 나처럼 비명 지르고 싶지 않으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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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스케 사건 해결집 - 나누시 후계자, 진실한 혹은 소소한 일상 미스터리
하타케나카 메구미 지음, 김소연 옮김 / 가야북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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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에도 시대, 나누시인 아버지의 뒤를 이어 (우리나라로 치면 사또 정도?) 마을을 다스리게 되어 있는 마노스케의 활약을 다룬 사건 해결집이다. 한때 성실하고 참하기로 이름이 높았던 마노스케는 열 일곱이 되면서 허허실실 한량이 되고 만다. 미래 자신들의 나누시가 그렇게 실없는 사람이 되고말자 마을 사람들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본인인 마노스케 역시 마을을 잘 다스릴만한 능력이 자신에게 있는가 고민하는 가운데, 마을 사람들은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들을 들고 그에게 찾아온다. 예습삼아 바람둥이 친구인 세이주로와 고지식의 대명사인 요시고로와 함께 사건을 해결하고 다니는 그, 한없이 애매해 보이는 사건들도 그에게 맡겨져 버리면 순식간에 그 전말이 들통나고 마는데...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사건들을 해결하는 과정들을 보여주던 명랑 추리 소설이다. 언뜻 멍청해 보이지만 실은 꾀돌이인 마노스케가 사람들의 불안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펼쳐 보이는 과정들이 꽤 재밌었다. 흥미로웠던 점은 에도 시대 미혼모를 처리하는 일본인들의 방식이었다. 어른들끼리 모여 괜찮은 혼처를 의논해 시집을 보내던데, 특히 아이를 귀여워 해줄만한 자리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여 보였다. 진짜로 그랬는지 아니면 소설속의 설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모자의 복지를 염두에 둔다는 점이 보기 좋더라. 어른다워 보였다고나 할까? 아직 치기어린 젊은이인 마노스케가 어른들의 연륜에서 배어나는 지혜를 접하면서 합리적인 결정을 배워 나가는 장면들도 인상적, 킬링타임용 책으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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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감정 사용법
프랑수아 를로르.크리스토프 앙드레 지음, 배영란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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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언젠가 미국에서 4년남짓 살다 온 언니가 이런 말을 한적이 있었다. 예전엔 몰랐는데, 이제 보니 한국 사람들은 다들 화가 난 표정이라고...생판 모르는 타인에게 상냥하게 굴면 위신이 깍인다고 생각 하나봐? 라고 묻는데 순간 아니라고 반박하고 싶었던 기억이 난다. 이러저러 주절주절, 그래도 정이 깊지 않느냐는둥, 그래도 우린 위선적인 친절을 베풀지는 않는다는둥 둘러대긴 했지만 어느정도는 언니의 말에 공감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왜 그렇게도 화가 나 있을까? 난 그것이 우리가 다들 불행하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너도 나도 불행해서, 기회만 되면 남들을 더 불행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마음자세로 똘똘 뭉친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기 보단 가면을 쓰고 사는게 올바른거라 생각하고, 더 나아가 가면을 쓰지 않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우지 못했다는걸 감안하면 앞으로도 쭉 이런 굳은 표정들이 대세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비약일지도 모르겠지만서도...

 

서두가 약간 빗나갔다. 쏘리~~~! 본론으로 들어가서, 내 감정 사용법이라는 희한한 제목의 책이다. 내 감정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그것도 모를까봐? 하시는 분들, 아마 속으론 켕기실거다. 실은 내 감정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자신도 잘 모르기 쉽상이니 말이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개성이라, 마치 드라마 주인공처럼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감정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아서 이게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종잡을 수 없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것이 나은 것일까? 이 책에 의하면 감정도 적당히 표출하는것이 건강에도 좋고 인간관계를 맺는데도 좋다고 한다. 무엇보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하는데, 왜냐면 감정이란 이유가 있어 저절로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회피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란다. 말하자면, 자신의 내면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는지 제대로 듣지 않으면 자신이 골탕을 먹을 거란 말씀! 인간의 희노애락을 비롯해서, 분노는 터트려줘야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다든지, 두려움은 위험한 상황을 알리는 바로미터라든지, 질투는 나의 가치를 높이고 더 나은 배우자를 찾게 만든다든지, 시기심은 더 높은 이상을 위해 필요한 자질이라는 등 감정을 적절하게 일상에 적용하는 방법들을 제시해주고 있었다. 탁월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지만, 유명한 소설이나 영화, 개개인들의 사례를 통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 점이 장점이다. 그러니, 혹 자신의 감정이 어떤 의미인지 잘 파악이 안 되는 분이나, 내 감정이 타인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몰라 안절부절 못하시는 분들, 이 책 표지에 쓰인 것처럼 감정에 조정당하는게 아니라 감정을 조종하며 살고 싶다시는 분들은 참고서 삼아 보심 좋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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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한 다윈씨 - 찰스 다윈의 진면목과 진화론의 형성 과정, 탄생 200주년을 맞아 다시 보는 다윈이야기
데이비드 쾀멘 지음, 이한음 옮김 / 승산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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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대영 박물관의 직원들을 구슬려서 따개비의 표본들을 장기 대여받았고, 상상할 수 없는 온갖 경로로 다양한 사람들에게 표본을 요청했다. 심지어 후커의 남극 탐사 때 선장이었고 당시 배피니 섬 서쪽의 얼어붙은 해협 어딘가에 갖혀 있을 동료 탐험가 존 프랭클린 경을 찾기 위해 북극 탐사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던 제임스 클라크 로스 경에게도 편지를 썼다. 빙산을 피하면서 프랭클린을 찾으러 다니는 동안 북쪽의 따개비를 좀 따다 주시지 않겠습니까? 물론 바쁘시겠지만 바위를 몇 번 긁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것들을 알코올에 담가 보존하고 기부가 손상되지 않도록 주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윈은 싹싹하게 요청했다. 하지만 로스는 그의 요청을 명백하게 무시했다." --112

 

하긴 나라도 무시했을 것 같다. 영국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촌구석 다운(Downe)에 사는, 과학에 미친게 분명한 신사 양반이 따개비를 따달라니, 더군다나 동료를 구하러 가는 이 절체절명의 급박한 상황에 말이다. 뭐, 빙산을 피하면서 북쪽의 따개비를 따줘? 기부가 손상되지 않도록 주의해 달라고? 죽을래? 그 다음 그 편지가 어디로 사라졌을지를 안봐도 뻔하겠다. 음, 옛날엔 이런 방식으로 연구를 했었구나, 정중하게 구걸하는 식으로 말이지... 흥미로운데? 책 속에 소개된 일화를 읽으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가 존경해 마지 않는 그 위대한 다윈이 한낱 따개비를 얻기 위해 이처럼 수고를 했다니... 컴퓨터도 없고, 전화도 없고, 인터넷도 없고, 브리태니커 백과 사전마저 없던 시절,  한마디로 과학의 구석기 시절에의 낭만을 보는 것 같아 신선했다. 그리고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고 다 적응하기 마련이란 생각이 들었다. 보라, 열정과 직감과 끈기과 상상력만 있다면  인간이 못해낼게 뭐가 있단 말인가? 집안에 틀어박혀서도 얼마든지 탁월한 학설을 만들어낼 수 있다니까. 안 믿어 지신다고? 다윈이 바로 그런 경운데?  그렇다면 한때 비글호를 타고 짤짤거리고 돌아다녔던 다윈이 시골 촌에 틀어박혀 진화론을 설파하는 종의 기원을 써내게 된 과정을 한번 들여다 볼까나?

 

사람들은 다윈이 비글호에서 내린 것과 ( 1836년) " 종의 기원" 이란 책을 (1859년) 낸 것은 잘 알지만, 그 사이 20여년의 세월이 필요했던 것은 잘 모르지 않을까 싶다. 그는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 그건 그가 신중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변론을 위해 모든 증거를 샅샅히 파헤치는 유능한 변호사처럼 그는 자신의 학설을 뒷받침해줄 증거를 모으고 있었다. 물론 아프기도 하고, 결혼도 했으며 , 아이들이 하나둘씩 태어나는 것도 지켜 보고, 잡다한 격무에 시달리기도 했으나, 기본적으로 그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진화론이라는 당시로는 파격적인 학설을 주창하려니 일단 다른 학자들로부터의 반론에 어느 정도는 대비하려 했던 것이다. 아이디어의 참신함이나 개연성만 가지고는 학자들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갈라파고스의 섬마다 다른 종이 존재하던 흉내지빠귀들과 이구아나들, 그리고 등딱지에서 차이가 나는 거북이, 먹이에 따라 다른 부리를 가진 핀치새와 섬마다 색다른 종이 존재하는 딱정벌레들.... 서로 닮은 변종들이 나란히 발견되는 것에 흥미를 느낀 다윈은 그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같은 종에서 변종이 생겨난다는 것과 그것이 많은 세월이 흐른 뒤 자연선택에 따라 진화된다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모두는--식물이건 동물이건 척추 동물이건 곤충이건 간에--- 한 근원적인 줄기에서 나온 가지에 불과하다는 아이디어는 그를 전율하게 한다. 만물을 설명하는 이 딱딱 떨어지는 완벽한 추리에 그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찰스여, 너무 성급하게 굴지 마라. 신중하기를..."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한 따개비 연구에 8년을 보내게 된 것도 바로 그런 그의 신중함 때문이었다.

 

물론 그의 신중함에도 단점은 있었다. 윌리스라는 청년이 다윈에게 보낸 편지 한장으로 진화론에 대한 우선권을 빼앗길수도 있는 사태를 맞았으니 말이다.  그 사건에 대해 이 책의 저자 쾀멘은 다윈의 이름을 먹칠하게 하는 위중한 순간이었다고 떠들던데, 내가 보기엔 저자의 호들갑이지 않는가 싶었다. 당시 윌리스와 공동으로 발표된 진화론이 왜 지금은 다윈의 이름만 기억되고 있겠는가? 그건 다윈의 연구가 그만큼 완벽했기 때문이다. 윌리스의 경우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동물을 수집하다 우연히 갖게 된 생각을 적은 팜플렛에 불과했지만, 다윈은 <종의 기원>이라고 하는 탁월한 저서를 남겼으니 말이다. <종의 기원> 이야말로 사건의 핵심이였다. 시대의 근간을 뒤흔들고 인간의 사고를 재정립하게 만든 역사상 흔지 않는 위치를 점하고 있는 책이 <종의 기원>이니까. 생물학적인 가치만으로 <종의 기원>을 판단해선 안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인간이 보다 겸손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환상없이 세상을 바라보도록 만든 인물이 다윈이었다면 그 사상을 전파할 수 있도록 한 건 < 종의 기원>이니 말이다.

 

놀라운 것은 그런 개혁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치고 그가 너무도 겸허한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아내를 사랑하고 아이들을 끔찍하게 아꼈던 남자, 정직하 , 성실하며, 거들먹거릴줄도 허세도 모르던 사내, 장례식을 싫어하고 ,은둔을 좋아하던 한마디로 지극히 자신을 드러나지 않던 사람이었던 그가 이런 사상을 완성시켰다는 것 당최 믿겨지지 않았다. 어쩜 그것이야말로 미스테리중의 미스테리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해하기 쉽게 쓰여져 페이지가 훌렁훌렁 넘어간다는 점이나 현재 다윈니즘이 어디로 흘러가는가에 대한 브리핑이 되어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단점이라면 저자의 다른 작품인 <도도의 노래>와 중복되는 면이 있어 보인다는 것과 결론이 싱겁다는 것? 그래도 이렇게 쉽게 쓰인 다윈서는 흔치 않으니 다윈을 알고 싶으신 분들은 감지덕지하시길...^^

 

자연의 정해진 법칙들을 오랜 세월 연구하다보니 기적을 점점 믿지 않게 되었고, '신의 계시로서의 기독교를 서서히 불신하게 되었다.' 신앙을 잃는 과정에서 잘난 척하거나 조급해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그 일은 그의 의지에 반해 일어났다. "불신이 나를 잠식한 속도는 아주 느렸지만, 마침내 완결되었다." 사실 변화가 너무 느리게 일어났기에 그는 전혀 불안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변화가 끝난 지금 그는 전혀 회의를 느끼지 못했다. 그는 엄정하게 덧붙였다.---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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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lph 2010-01-31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중했다기보다는 발표를 망설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진화의 증거는 너무도 확실하지만..신의 존재를 정면으로 뒤업어야 하니, 겸손하고, 보수적인 다윈씨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 다원이 없었더라면, 그래도 누군가, 월레스 등,에 의하여 진화론은 곧 발표되엇을 터, 이 그시기에 영국 지식인 사회에서 신이 모든 것을 수일안에 창조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비밀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다윈의 업적도 동시대 지성의 커다란 파도를 타고 이룩한 것..

이네사 2010-02-01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어보니 단지 발표를 미루고 있있던 것은 아니지 않나 싶었습니다. 이 리뷰에서도 말했듯이 반박에 대비해서 완벽한 변호체계를 마련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 해요. 완벽주의자였다고나 할까요.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직관이라는 이름으로라도 어떤 학설을 주장했겠지만 그는 그것만으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과학자적인 견지에선 그가 옳죠. 과학계에서도 사기꾼이 좀 많습니까? 그런걸 보면 확실한 것에도 완벽한 증거와 논리체계를 세우려 했던 그가 존경스러워 보이더군요. 인기에 상승하려는 사람이 아니었던건 확실한 것 같아요...

맞습니다. 어떤 학설이건 완전히 외따로 나오는건 없죠. 시대의 흐름이 그걸 원하고 있을때 터뜨려 주는 사람이 있는것일뿐. 단지 그걸 누가 예민하게 캐치하고 터뜨리는가가 관건일뿐...그런 의미에선 영웅이란 가장 천재거나 용감하거나 열정적인 바보거나. 뭐, 그런 자질이 필요한게 아닐까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