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중한 다윈씨 - 찰스 다윈의 진면목과 진화론의 형성 과정, 탄생 200주년을 맞아 다시 보는 다윈이야기
데이비드 쾀멘 지음, 이한음 옮김 / 승산 / 2008년 10월
평점 :
" 그는 대영 박물관의 직원들을 구슬려서 따개비의 표본들을 장기 대여받았고, 상상할 수 없는 온갖 경로로 다양한 사람들에게 표본을 요청했다. 심지어 후커의 남극 탐사 때 선장이었고 당시 배피니 섬 서쪽의 얼어붙은 해협 어딘가에 갖혀 있을 동료 탐험가 존 프랭클린 경을 찾기 위해 북극 탐사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던 제임스 클라크 로스 경에게도 편지를 썼다. 빙산을 피하면서 프랭클린을 찾으러 다니는 동안 북쪽의 따개비를 좀 따다 주시지 않겠습니까? 물론 바쁘시겠지만 바위를 몇 번 긁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것들을 알코올에 담가 보존하고 기부가 손상되지 않도록 주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윈은 싹싹하게 요청했다. 하지만 로스는 그의 요청을 명백하게 무시했다." --112
하긴 나라도 무시했을 것 같다. 영국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촌구석 다운(Downe)에 사는, 과학에 미친게 분명한 신사 양반이 따개비를 따달라니, 더군다나 동료를 구하러 가는 이 절체절명의 급박한 상황에 말이다. 뭐, 빙산을 피하면서 북쪽의 따개비를 따줘? 기부가 손상되지 않도록 주의해 달라고? 죽을래? 그 다음 그 편지가 어디로 사라졌을지를 안봐도 뻔하겠다. 음, 옛날엔 이런 방식으로 연구를 했었구나, 정중하게 구걸하는 식으로 말이지... 흥미로운데? 책 속에 소개된 일화를 읽으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가 존경해 마지 않는 그 위대한 다윈이 한낱 따개비를 얻기 위해 이처럼 수고를 했다니... 컴퓨터도 없고, 전화도 없고, 인터넷도 없고, 브리태니커 백과 사전마저 없던 시절, 한마디로 과학의 구석기 시절에의 낭만을 보는 것 같아 신선했다. 그리고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고 다 적응하기 마련이란 생각이 들었다. 보라, 열정과 직감과 끈기과 상상력만 있다면 인간이 못해낼게 뭐가 있단 말인가? 집안에 틀어박혀서도 얼마든지 탁월한 학설을 만들어낼 수 있다니까. 안 믿어 지신다고? 다윈이 바로 그런 경운데? 그렇다면 한때 비글호를 타고 짤짤거리고 돌아다녔던 다윈이 시골 촌에 틀어박혀 진화론을 설파하는 종의 기원을 써내게 된 과정을 한번 들여다 볼까나?
사람들은 다윈이 비글호에서 내린 것과 ( 1836년) " 종의 기원" 이란 책을 (1859년) 낸 것은 잘 알지만, 그 사이 20여년의 세월이 필요했던 것은 잘 모르지 않을까 싶다. 그는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 그건 그가 신중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변론을 위해 모든 증거를 샅샅히 파헤치는 유능한 변호사처럼 그는 자신의 학설을 뒷받침해줄 증거를 모으고 있었다. 물론 아프기도 하고, 결혼도 했으며 , 아이들이 하나둘씩 태어나는 것도 지켜 보고, 잡다한 격무에 시달리기도 했으나, 기본적으로 그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진화론이라는 당시로는 파격적인 학설을 주창하려니 일단 다른 학자들로부터의 반론에 어느 정도는 대비하려 했던 것이다. 아이디어의 참신함이나 개연성만 가지고는 학자들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갈라파고스의 섬마다 다른 종이 존재하던 흉내지빠귀들과 이구아나들, 그리고 등딱지에서 차이가 나는 거북이, 먹이에 따라 다른 부리를 가진 핀치새와 섬마다 색다른 종이 존재하는 딱정벌레들.... 서로 닮은 변종들이 나란히 발견되는 것에 흥미를 느낀 다윈은 그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같은 종에서 변종이 생겨난다는 것과 그것이 많은 세월이 흐른 뒤 자연선택에 따라 진화된다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모두는--식물이건 동물이건 척추 동물이건 곤충이건 간에--- 한 근원적인 줄기에서 나온 가지에 불과하다는 아이디어는 그를 전율하게 한다. 만물을 설명하는 이 딱딱 떨어지는 완벽한 추리에 그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찰스여, 너무 성급하게 굴지 마라. 신중하기를..."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한 따개비 연구에 8년을 보내게 된 것도 바로 그런 그의 신중함 때문이었다.
물론 그의 신중함에도 단점은 있었다. 윌리스라는 청년이 다윈에게 보낸 편지 한장으로 진화론에 대한 우선권을 빼앗길수도 있는 사태를 맞았으니 말이다. 그 사건에 대해 이 책의 저자 쾀멘은 다윈의 이름을 먹칠하게 하는 위중한 순간이었다고 떠들던데, 내가 보기엔 저자의 호들갑이지 않는가 싶었다. 당시 윌리스와 공동으로 발표된 진화론이 왜 지금은 다윈의 이름만 기억되고 있겠는가? 그건 다윈의 연구가 그만큼 완벽했기 때문이다. 윌리스의 경우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동물을 수집하다 우연히 갖게 된 생각을 적은 팜플렛에 불과했지만, 다윈은 <종의 기원>이라고 하는 탁월한 저서를 남겼으니 말이다. <종의 기원> 이야말로 사건의 핵심이였다. 시대의 근간을 뒤흔들고 인간의 사고를 재정립하게 만든 역사상 흔지 않는 위치를 점하고 있는 책이 <종의 기원>이니까. 생물학적인 가치만으로 <종의 기원>을 판단해선 안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인간이 보다 겸손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환상없이 세상을 바라보도록 만든 인물이 다윈이었다면 그 사상을 전파할 수 있도록 한 건 < 종의 기원>이니 말이다.
놀라운 것은 그런 개혁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치고 그가 너무도 겸허한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아내를 사랑하고 아이들을 끔찍하게 아꼈던 남자, 정직하 , 성실하며, 거들먹거릴줄도 허세도 모르던 사내, 장례식을 싫어하고 ,은둔을 좋아하던 한마디로 지극히 자신을 드러나지 않던 사람이었던 그가 이런 사상을 완성시켰다는 것 당최 믿겨지지 않았다. 어쩜 그것이야말로 미스테리중의 미스테리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해하기 쉽게 쓰여져 페이지가 훌렁훌렁 넘어간다는 점이나 현재 다윈니즘이 어디로 흘러가는가에 대한 브리핑이 되어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단점이라면 저자의 다른 작품인 <도도의 노래>와 중복되는 면이 있어 보인다는 것과 결론이 싱겁다는 것? 그래도 이렇게 쉽게 쓰인 다윈서는 흔치 않으니 다윈을 알고 싶으신 분들은 감지덕지하시길...^^
자연의 정해진 법칙들을 오랜 세월 연구하다보니 기적을 점점 믿지 않게 되었고, '신의 계시로서의 기독교를 서서히 불신하게 되었다.' 신앙을 잃는 과정에서 잘난 척하거나 조급해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그 일은 그의 의지에 반해 일어났다. "불신이 나를 잠식한 속도는 아주 느렸지만, 마침내 완결되었다." 사실 변화가 너무 느리게 일어났기에 그는 전혀 불안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변화가 끝난 지금 그는 전혀 회의를 느끼지 못했다. 그는 엄정하게 덧붙였다.---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