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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라이크 미 - 흑인이 된 백인 이야기
존 하워드 그리핀 지음, 하윤숙 옮김 / 살림 / 2009년 2월
평점 :
중 3 때 선생님은 우릴 고등학교로 보내면서 서운한 마음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어른이 되더라도 기지의 눈으로 살지말고 늘 미지의 눈을 뜨고 살아라...라고. 그땐 몰랐다. 그 말이 얼마나 실천하기 어려운 말인지를...선입관 가득한 눈, 견해로 점철된 머리, 아집으로 똘똘 뭉친 가슴, 타인은 영원히 타자일 뿐이라는 냉랭한 시선, 함부로 판단내리고 시류에 휩쓸리는 조급함...아, 그렇게 살기란 얼마나 쉬운 것인지. 그땐 미지의 눈을 뜨고 산다는 것이 단순히 " 어린아이처럼 천진하"라는 말과 동의어인줄 알았다. 요즘에서야 그것이 늘 지성을 깨워 놓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란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걸 실천하며 산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란 것도...여기 그런 용감한 여정에 나선 한 사내가 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자.
흑백 차별이 횡행하던 1950년대, 백인인 존 하워드 그리핀은 미국 남부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보기 위해 흑인으로 변장해서 거리로 나선다. 물론 그건 단지 호기심 충족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백인들은 흑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모른다는 것이 차별의 주요 원인이라 판단한 그리핀은 그들에게 실상을 알려주고 싶어했다. 기득권층인 백인들이 일부러 나서서 알려고 할 리는 없고, 흑인들의 말이 백인에게 들릴 리 없으니, 그 중간에 선 그 누군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살해될 지도 모른다는 주위의 우려에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용감하게 거리로 나선 그는 생각보다 끔찍한 현실에 충격을 받는다. 단지 피부색이 까맣단 이유로 멍청하거나 가난하거나 굽신대야 하거나 섹스머신이라는 도발적인 언어폭력에 시달리거나 무조건 불신의 대상이 되는 것이 흑인들의 처지란 것을 금세 깨달을 수밖엔 없었기 때문이었다. 살해되지 않거나 맞지 않으려면 속없는 엉클 톰 아저씨의 톤으로 네네 거려야 한다는것을 파악한 그리핀은 왜 정의롭다고 자신하는 백인들마저도 흑인들의 불신을 살 수밖엔 없는지 이해하게 된다. 흑인들이 바라는 것은 정의고 이해지 은혜를 베푸는 듯한 동정이 아니었던 것이다. 인간으로써, 그리고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하는 부모로써 백인과 다를바 없는 흑인들을 보게된 그리핀은 편견이 그 둘을 갈라 놓는 한 , 구호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개닫게 되는데....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퍼붓는 모든 차별과 편견에 대한 탁월한 보고서였다. 흑인이나 백인이 똑같은 인간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시도였을 백인의 흑인 되기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실행해가는 그리핀을 보면서 존경심이 저절로 생겼다. 하지만 그가 위대한 것은 단지 구상의 참신함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편견을 가볍게 뛰어 넘을 정도로 선명한 통찰력 때문이라고 보는게 적확할 것이다. 백인과 흑인이 서로를 백안시하게 만드는 편견의 선을 어찌나 쉽게 설명해 내던지... 감탄스러웠다. 어떤 수백 마디의 말보다 더 웅변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설명하고 있던 그리핀. 개차반 미국이 그나마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어쩜 이런 소수의 사람들 덕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60년전 생명을 무릎 쓴 그의 용감한 행동이 바래지지 않게도 최근 미국은 흑인인 오바마를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뽑았다. 이젠 그리핀도 천국에서 발 뻗고 주무시지 않을까...쉽게 쓴데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많았기에 소설처럼 재밌게 읽힌다는 것이 장점이다. 그가 흑인으로 변장한 백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흑인들, 그리핀의 선의를 알아본 그들의 반응은 또 얼마나 귀엽던지... 타인을 타자시하는 굳어진 마음에 조금이나마 경종을 울리고픈 심정에서 모든 이들에게 강추한다. 나 역시도 배운게 많았기에...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스털링은 나를 매우 친근한 사람처럼 대했고, 내가 한때 백인이라는 것도 모두 잊었다. 그는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우리 처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 자신이 흑인이라고 철저히 믿는 바람에 나도 말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 같아졌다. 처음으로 친밀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흑인이며, 우리의 걱정거리를 백인이다. 어떻게 그들과 지낼 지, 어떻게 백인 앞에 머리 숙이지 않으면서 그들에게 존중받고 당당하게 설 수 있을 지, 어떻게 백인이 우리에게 없는 자기만의 특별한 권리를 하나님이 자기들에게만 주었다고 단 한 순간도 생각하지 않도록 할 수 있을지, 우리의 관심은 온통 그 문제로 향했다.--58
흑인이든 백인이든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 처음으로 사물의 통속적인 이미지와 사물 자체를 혼동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나는 그의 태도가 아이에 대한 넘치는 사랑에서 비롯되었다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향한 사랑이 너무 깊어서 이 사랑이 인류 전체로 흘러넘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능력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치유해 주는지 그 남자는 자신은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비 내리는 앨라배마의 밤, 타인에게 수없이 상처받고 지친 나 같은 사람에게 이런 사랑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그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인간이 가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자비심과 형이상학의 회복이라고 했던 자크 마리탱의 주장이 생각났다. 아니,보다 단순한 것으로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격언이 있다. "사랑하라, 그리고 너희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라." 사랑이 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 서로를 속이고 서로에게 냉담한 곳에서 살다보면 점점 더 깊이 죽음에 사로잡히며 미덕 이외에는 어떤 것도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는다.--182
"우리는 저들에게 정당한 권리를 돌려주고 정의로운 평등을 다짐해 줘야 한다.그런 다음 아무런 간섭도 하지 말고 모든 이를 그냥 내벼러 두어야 한다.우리는 온정주의를 베풀는 과정에서 편견을 드러낸다. 온정적인 태도는 저들의 존엄성을 훼손시킨다."-241
오랫동안 내 안에 들어 있던 감정의 찌꺼기들, 편견 , 부정, 수치심 , 죄의식은 '타자'가 결코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모두 씻겨 나갔다. 모든 인간은 사랑하고, 아파하고, 자신과 자기 아이들을 위한 인간적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그저 존재하고, 필연적으로 죽는, 이 모든 동일한 근본 문제에 똑같이 부딪힌다. 이는 모든 인간 안에 들어 있는 기본 진리며, 모든 문화, 모든 인종, 모든 민족이 다 같이 가진 공통적인 특징이다.--365
시력을 잃고 살았던 10년동안 그리핀은 '타자'가 된다는게 어떤 것인지를 경험했다. 시각장애가 없는 사람은 그를 장애인으로 보며, 시각장애와 관련이 없는 면에서도 열등할 것이라고 여긴다. 그리핀은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다." 시력을 잃은 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는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잃은게 없다는 점을 이해하라.그의 지성도, 취향도, 감수성도, 이상도,존중받을 권리도, 그 어느 것도 잃지 않았다.그는 늘 그랬듯이 여전히 한 개인으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