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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okseller of Kabul (Hardcover)
Seierstad, Asne / Little Brown & Co / 2003년 10월
평점 :
오랜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책 장수라...책이 팔리기는 할까? 망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래도 꽤 책이 팔린다는 말인데, 전쟁상황속에서도 어떻게 책이 소비된다는 말일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기대하며 책을 집어들었다.
종군 여기자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는 카불을 취재하면서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때 만난 사람이 바로 책장수 술탄 칸,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는 흔쾌히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그는 그녀에게 자신의 가족들을 취재할 것을 허락한다.
장사꾼이기는 했지만 그외에도 술탄 칸은 여러모로 매력적인 사람이었다.책을 생명처럼 아끼고,진보주의자에 ,개방적이고,여성해방에 대해서도 우호적이며, 아프가니스탄의 재건을 바라는 애국자에, 과거 정권들의 책 검열에 맞서 감옥에도 다녀온 투쟁가이기도 했던 그는 문맹률이 세계최대라는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비교적 드문 존재임이 틀림 없었다.
그를 설득해 그의 대가족( 술탄의 어머니, 두 아내, 아이들, 동생들, 조카까지 13명)과 함께 생활하는 된 작가는 이때가 아니면 언제 이런 기회를 잡으랴는 마음으로 결혼식장으로, 경찰서로, 감옥으로, 순례지로, 시장으로 ,서점으로 부르카를 입고 부지런히 쫓아 다닌다.
그리고는 그것을 마치 영화속의 들고 찍는 사진기로 찍은 것처럼 우리앞에 카불과 카불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의 현재를 생생하고 현실감있게 들려주고 있었다.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을 꼽자면 우리가 당최 알기 어려운 이슬람 가정의 내밀한 초상을 솔직하고 설득력있게 그려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경탄스런 글솜씨에 놀라운 통찰력까지 갖춘 작가는 매서운 눈초리로 술탄 가족을 해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매력적인 술탄에게 맞춰진 촛점은 곧 여성들에게로 옮겨 간다. 남성우월주위가 너무 뿌리깊어서 의문조차 제기하지 못하는 곳에서 살고 있는 그녀들.서양에서 여성들의 자유로움에 익숙한 작가는 곧 그녀들의 억울한 사연에 기가 막혀한다.그리고 자유를 빼앗기고, 하녀 취급을 받으며, 첩으로 팔려가고,살해되며,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마저 박탈당하면서도 여전히 노래를 하고 있는 그녀들의 인내심과 강인함에 고개를 숙이고 만다.
그런 과정들을 통해 작가는 매력적이고 호탕하며 개방적인 술탄도 집안에선 그저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가부장일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당연하다는 듯 두 아내를 거느리고,아들을 하인처럼, 동생을 하녀처럼 부리며 살고 있는 그를 보자니 울화통이 터진 것이다.
자신의 변덕과 의지에 따라 가족과 친척들의 운명을 좌지 우지 하는 것을 당연시 하는 술탄의 독재에 질린 가족들은 결국 뿔뿔히 흩어지고 만다. 하지만 가족들의 눈물과 고통은 몰라라하고 술탄은 그것을 "다른 가족들의 배은망덕"으로 몰아붙이고 만다. 그런 그를 보면서 오스네는 톨스토이의 저 유명한 구절을 떠올린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다. 그러나 불행한 가정을 각자 나름의 사연으로 불행하다."
타인에게 그토록이나 뻔히 보이는 불행의 이유를 술탄만은 볼 수 없었다는 것만큼 커다란 불행은 아마 없을지도 모르겠다. 불행의 원흉인 그가 볼 수 없으니 , 사태가 나아질 수 없을테니 말이다.
여성들에게 자유나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나라,
여성들에게 체념이 ,포기가 ,절망이 더 익숙한 나라.
부르카를 쓰고 다니지 않으면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나라.
권력을 잡기위해서 수천명의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다 라고 생각하는 나라.
가난때문에 도둑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의 현실이 눈물겨운 나라.
병사가 '우린 무기에 대해서는 빠삭하게 알지만 전화에 대해선 완전 깡통'이라고 말하는,
지난 30여년간 줄곧 퇴보만 해온 나라, 아프가니스탄.
팍팍한 현실을 진부하거나 지루하지 않고 경쾌하게 그려낸 작가의 글솜씨는 경탄스러울 정도였다.이 책이 나온 다음 술탄은 명예 훼손으로 이 작가를 고발했다고 하던데, 과연 지금은 해결이 되었으려나 모르겠다.
끝으로 어차피 이뤄지지 않을 테니 꿈이 없다고 말해 왔다던 ,희망이 곧 악몽이었기에 미래를 꿈꾸지 못했던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에게 보다 나은 미래가 주어지고,모든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소망하는대로 그들에게도 봄이 찾아 오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