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 민음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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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벌어진 일이라고 참으로 믿기 힘든 사건을 소설로 쓰면서-쉽게 말하면 초현실적이라고할만큼 기괴한 이야기들-- 그것들이 다 현실에서 벌어진 일들을 소재로 한 것이라고 말하는 마르케스의 작품이다.책을 읽어가면서 이 작가는 도무지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었을까,이렇게 진짜같이 생생하게 써내려 가다니 역시 대단해 했는데 알고보니 글쎄.이 말도 안 되는 일이 마스케스의 젊은 시절 친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한다.기가 질렸다.작가가 될 운명이다보니 그의 주변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널리게 된 것인지,아님 이렇게 험한 일들을 꾸준히 경험하다보니 저절로 작가가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서도,작가라는 직업적인 면에서 보자면 소재가 달릴 염려는 없다는 면에서 마르케스는 참으로 복받은 사람이 아닌가 싶다.그렇게 철저히 환상소설처럼 보이지만--어찌보면 그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섬뜩하게도 실은 실화 소설이라는 이 작품의 해부에 들어가 보기로 하자.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는 제목 그대로 예고된 죽음이 실제로 벌어졌던 23년전 어느날의 이야기를 당시 목격했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한 소설이다.카리브해 근처의 작은 마을,외지에서 굴러들어온로만은 우연히 보게된 앙헬라에게 반해 그녀에게 구혼한다.산로만의 막가파식 파상 구혼 공세에 가난한 앙헬라의 가족들은 그녀의 의사는 들어보지도 않고 결혼을 결정해 버린다.마침내 결혼식이 있던 날,앙헬라가 처녀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된 산 로만은 아내를 친정으로 보내 버리고,앙헬라소박맞아 돌아온 것을 알게 된 그녀의 쌍둥이 형제는 "그"가 누구나며 동생을 닥달한다.말문은 연 그녀가 지목한 사람은 마을의 멋쟁이 부자 청년 나사르,쌍둥이 형제는 이를 갈며 동생의 명예를 위해 그를 죽이겠다고 칼을 들고 나선다.쌍둥이 형제들이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면서 그를 죽일거라고 죽음을 예고하고 다니는 동안,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나사르에게 이를 알리지 않는다.자신을 중심으로한 사건이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던 나사르를 그 새벽에 마을을 돌아다니다 결국 그 둘에게 살해되고,나사르의 친구이자 앙헬라의 친척이었던 "나"는 그 후 23년이 지난 후 과연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가 있었던 것인지를 되짚어 본다.왜 아무도 쌍둥이를 말리지 않았던 것일까? 그리고 마을 사람들 그 누구도 둘이 함께 있는 것도 본 적이 없었다던 나사르앙헬라,나사르를 잘 알고 있었던 나는 혹 그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것은 아닐까에 의문을 제기한다.언뜻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여러번의 우연이 합쳐져 결국 한 사람이 죽게 되는 엄청난 현실이 되어버리고 만 과정들이 생생하고 설득력있게 묘사하고 있던 소설이었다.이야기의 구성은 탄탄하기 이를데 없고,다양한 사람들의 모순없는 관점들로 인해 이야기가 마치 살아 있는 듯한데다,이야기 자체가 흥미롭기 이를데 없었다.과연 마르케스의 입담은 여전히 대단하다는걸 재확인할 수 있었던 작품으로 억지로 꾸며낸 티가 없는 거침없이 흘러나오는 풍성한 이야기가 좋다시는 분들에게 강추한다.약간 짧은 듯 싶어 아쉽긴 하지만 군더더기 없이 완벽한 소설이었다.이 책을 읽으면서 역시 이야기꾼은 타고 나는 것이지 만들어지는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같은 사건을 겪게 된다고 해도 그걸 이렇게 맛깔나게 써낼 사람은 마르케스의 유일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그의 막강한 입담이 한없이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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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원으로 놀아주기 - 우리 집은 실내 놀이터
현득규 지음 / 이밥차(그리고책)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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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만 네 살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조카는 한마디로 "놀아줘"매니아다.꿈나라로 가기 1분전까지 막강한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1초도 아껴가며 알뜰하게 노는 조카,쓰러져 잠들기전까진 눕지조차 않는 조카,어쩌다 늙은 고모가 힘에 부쳐 널부려져 있을라치면 질질 끌어가며 일으켜 세우는 무지막지한 조카와 놀다보면 그 다음날은 폭탄에라도 맞은 듯 정신이 멍해지기 일쑤다.(시사점--아이는 되도록 부모가 기운 팔팔할때 낳는게 좋다.아이랑 노는건 보통 체력 가지고는 어림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힘이 딸린다고 이 귀여운 녀석이랑 안 논다는 것은 생각 할 수 없는 일, 하여 요즘 내 고민은 어떻게 하면 조카랑 재밌게 놀것인가? 라는 것이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아이랑 무얼하며 놀아줘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것,평소 아이랑 놀아준 경험이 없다보니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그렇게 조카랑 어떻게 놀아야 할까 고민하던 내게 마치 한 겨울의 햇살처럼 다가온 책이 있었으니 바로 다름 아닌 이 책이다. 더군다나  "0원으로 놀아주기"라니,빈궁하고 조카집에 장난감이 많은 탓에 주로 몸으로 놀아줘야 하는 나로써는 참으로 눈이 번쩍 뜨이는 제목이 아닐 수 없었다.그래,이거야,내 아이디어가 부족하면 남의 아이디어라도 빌려야지.이제 이 책만 있으면 난 한동안 놀이 고민에선 해방이겠다면서 쾌재를 부르며 본 책이 되겠다.내용은 제목대로 집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가지고 아이랑 놀아주는 게임들을 친절하게 사진으로 소개한 것들이다.종이 박스나 패트병,휴지와 이불,풍선,나무 젖가락등을 이용해 놀아주는 것이니 우선 재료를 구하기 어렵지 않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음,이 재료들에 아이디어만 보태면 놀이가 된다는 말이지.당장 해 볼 생각에 열심히 읽었다. 패트병을 옹기종기 모아 놓고 볼링을 친다던지, 패트병에 구멍을 뚫고 물을 흘려 넣어 폭포를 만들어 준다는지, 막대에 인형을 달아 아이로 하여금 잡게 한다는 등 쉽게 시도 해볼 수 있는 아이디어엔 눈을 반짝했다. 다 읽고 보니 심드렁 한것들도 있었지만 꽤 근사한 아이디언데 싶은 것도 몇몇 되서 일단 시간이 아깝지는 않았다. 단지 문제라면 재밌을 것 같은 이 놀이들을 과연 아이들도 좋아할까 하는 점...아쉽게도 책을 읽자마자 시도한 패트병 볼링은 일단 조카의 심드렁한 태도 덕분에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아직 어려서 그런 것일까? 궁싯대던 나는 대형 마트에서 예쁘게 포장한 유아용 인형 볼링세트를 보고선 좌절하고 말았다. 저렇게 예쁘게 꾸민 볼링세트라면 아마 조카도 해보고 싶어 할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과연 0원으로 놀아준다는 프로젝트가 얼마만큼 아이에게 먹힐런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어쨌거나 뭐,아마추어 놀이 수준에서 벗어날 능력이 없음이 명백해 보이는 이 고모지만,그래도 열심히 놀아주려 애쓴 점만은 조카도 점수를 주겠지 싶다. 0원이건 그보다 돈이 더 들건간에 조카를 위해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도 머리를 심각하게 굴려볼 생각이다. 아이랑 놀긴 해야 겠는데 아이디어가 달린다거나 아예 막막하다시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똑같이 따라하진 않는다고 해도 응용이 가능한 아이템들도 있으니 기본을 배운다는 자세로 보심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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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지나간다
지셴린 지음, 허유영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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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좌표들이 방향을 잃은 지금,우리에겐 '어른'의 목소리가 필요하다.라고 쓰여져 있는 표지문구에 솔깃해서 보게 된 책이다.좌표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조금은 방향성을 잃고 사는 나로써는 어른의 목소리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넘치는 자유속에 무엇이 옳은 것인지도 생각해 보지도 않고 그저 떠돌기만 하는 우리 인생,따끔하고 독하게 호통을 치시는 어른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그 말이 나를 자유롭게 하고,시원하게 하며 ,잠깐이나마 올바르게 서게 하지 않을까 기대했다.진리의 한 조각이나마 절실히 그리웠던 것이다.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것은 동서 고금을 통틀어 옳은 말이니 말이다.

 

그래,그렇다면 중국의 원로학자시라는 이 책의 작가 지센린님은 나에게 진리 한조각이라도 나눠 주신 것일까? 그렇지는 않았다.중국의 스승이시라는 이 작가 분이 아흔을 넘겼다는것만은 확실히 각인시켜 주셨지만...어찌나 되풀이 강조를 하시던지 차라라 제목을 <아흔이 된다는 것은>이라고 지었다면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었을 정도니까.그래도 이제 누가 나이를 물어보면 대답하기 꺼리지는 나이에 들어선 내가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으니,아흔까지 살게되면 나이만 되뇌며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그리고 아흔이란 매직 넘버를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만능 티켓으로 쓸지도 모른다는 것을...뭔가를 배워보려 책을 집어든 나로써는 무척 씁쓸한 발견이었다.아흔이라는 나이의 무게값을 헤아리기 위해 책을 집어든 것이 아니었으니까.삶의 깊이가 배어 있는 글을 기대해서 보게된 것 뿐이지.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중국의 스승>으로 존경받는 원로학자 지센린의 수필집이다.청탁받아 간간히 쓴 글을 모아서 낸 문집이 아닌가 싶던데,드물게 눈에 뜨이는 통찰력있는 글들도 있긴 했지만,여러 매체에 쓴 글들을 모아서 그런가 중복되는 내용의 글들이 많다는 것이 우선 거슬렀다.인생의 부침이야 있었다지만 아흔을 넘겨 살고 있는 것을 대단한 훈장이라고 생각하는 뉘앙스의 문장들은 쳅터마다 읽어 보시라.슬슬 지겨워진다.더군다나 마침내 자신은 평안한 세월을 보내고 있다면서,노인성 치매가 십중팔구 태연하게 인생을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에 오는 병 이라는고 단언하시는데 참 할말이 없었다.부정확한 정보 하나가 문장 전체를 말아먹는다는걸 아흔이 되셔도 배우지 못하신 모양이다.아흔이시라지만 학계에만 있으셔서 그런지 사회 돌아가는 것에 둔하신 것도 별로였고,시대 착오적이거나 순진,엉뚱한 멘트들은 우습기까지 했다.한마디로 공감하기 어려웠다.그렇다고 위로가 되는 글도 아니었으니...조바심내지 말고 유유자적하면 살다보면 그게 다 인생을 사는 지혜다라고 말하시는 것 같던데,별로 씨알이 먹히는 소리는 아니었다.아흔이라서? 아니 그런 것은 아니었다.통찰력이 부족하셔서 그렇다.아마 통찰력이라는 놈은 오래 산다고 저럴로 생겨나는 자질은 아닌 모양이다.작가가 구사하는 흐르는듯 유려한 문장과 격이 없는 편안한 분위기를 생각하면 참 아쉬운 점이었다.내용만 알찼더라면 참 좋은 수필이 될 수 있었을텐데 싶어서 말이다.아,난 아직도 어른의 목소리가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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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의 우울
안드레이 쿠르코프 지음, 이나미.이영준 옮김 / 솔출판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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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적자로 허덕이는 동물원으로부터 분양받은 펭귄 마샤와 함께 살고 있는 빅토르는 딱히 내세울 것 없는서른 중반의 소설가다.마지막 애인이 떠나간 뒤 펭귄과 쓸쓸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그에게 거절하기 힘든 멋진 제의가 들어온다.바로 신문의 부고난을 맡아 달라는 청탁이 들어온 것,당신보다 잘 쓸 작가는 없다는 편집장의 말에 우쭐해진 그는 덥썩 제의를 받아들인다.하지만 그가 써야 하는 부고엔 이상한 점이 있었으니 바로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것라는 것,어차피 우리 모두 죽는거 아니겠느냐며 미리 조문을 써둔다고 생각하자던 빅토르는 그 고객들이 진짜로 줄줄이 <고인>이 되버리자 당황하고 만다.더군다나 자료 수집을 위해 간 지방에선 안내인이 살해되지 않나,편집장은 위험이 사라지면 돌아올거라며 외국으로 갑작스럽게 떠나질 않나,조문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는 한 독자는 돈과 함께 딸 소냐를 맡기고 사라지지 않나,연이어 수상한 일들이 벌어지면서 그의 인생도 복잡해지기 시작한다.그렇게 설명하기 힘든 일들 몇번에 펭귄과 고즈넉히 살아왔던 빅토르는 난데없이 어린 소녀를 거둬야 하는 가장에 생명의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된 신세가 되고,그런 소동 끝에 늘 그를 위로하던 펭귄마저 죽을 병에 걸리자 빅토르는 그를 남극으로 데려갈 이벤트를 준비하는데...

 

이야기가 저절로 술술 풀려나가듯 펼쳐지던 매력적인 블랙 코메디다.소련 붕괴후 이어진 우크라이나의 절망적이고 암울한 현실을 어쩜 이렇게 맛깔나게 그려내던지...부패한 정치가,사업가,그리고 그의 정부들과 무소불위의 갱단과 그의친구들...평생 타락을 향해 내달리던 사람들의 일생을 몇줄의 부고문으로 작성해내던 그는 그것이 어떤 모종의 음모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하지만 펭귄을 분양받아 살고 있던 빅토르,그의 엉뚱함과 낙천성은 어려운 일 앞에서 진짜 힘을 발휘하게 된다.그는 그것들을 "뭐,그게 어때서?"라고 어깨를 으쓱하는 선에서 받아 들이고 넘기고 마는 것이었다.다른 영화나 책에서라면 음모론을 들이밀면서 편집증에 걸린 사람들처럼 행동하고도 남을 만한 상황임에도,될되로 되라는 심정으로 지극히 낙척적으로 대처하고 마는 그의 모습은 정말로 포복절도하게 귀여웠다.모르는 사람이 딸을 맡겨도 그만,갱단들이 펭귄을 장례절차에 동원해도 그만,귀찮을법한 펭귄학자의 임종도 그만,그는 자신에게 다가온 일들을 한번도 외면하지 않는다.어떻게 해서든 상황에 대처하려는 그의 인간미가 한없이 따스하게 느껴졌는데,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건 간에 여전히 인간적인 온기를 지닌 동유럽인들의 느긋한 매력을 발견한 기분이 들어 흐믓했다.참신한 상상력과 짜낸 흔적 없이 자연스러운 전개,앙징맞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등장 인물들,그들이 나누는 매력적인 대화들로 지루할 새 없이 읽은 책이었지만,무엇보다 심장병에 걸린 펭귄이라던지,늘 우울한 펭귄이라던지,부고문을 쓰면 당사자가 죽는다든지 하는 말도 안 되는 설정들을 너무도 그럴 듯하게 그려냈다는 점이 멋졌다.작가의 으뭉스런 필력에 정신없이 빠져들어 봤던 책,얼마 전에 후속작 <펭귄의 실종>도 번역되어 나왔다는데 어떤 내용일지 자못 기대된다.빅토르는 무사할지,그리고 어쩌다 펭귄을 잃어버린 것일지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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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2 - 하 - 휘발유통과 성냥을 꿈꾼 소녀 밀레니엄 (아르테) 2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아르테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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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뭐, 이런 생뚱맞은 제목이 있나? 휘발유통과 성냥을 든 소녀라니...도무지 어떤 내용이길래 제목을 저렇게 지은걸까 궁금했다.스티그 라르손같이 영리한 작가가 아무 의미없는 명사들을 모아 제목을 지었을리는 만무하고,분명  내용과 관련이 있단  말인데,휘발유통과 성냥(성냥통이 아닌 성냥 달랑 한개!),그리고 소녀를 이러저러하게 조합해봐도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잔혹 동화라면 모를까,어떻게 저것들을 가지고 추리소설을 쓴단 말이냐, 당최 이해되지 않았다.그런데 그런 의구심은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아니,어쩜 이렇게 딱 알맞는 제목이!!! "라는 감탄사로 바뀌고 말았으니...대단한 설득력이다.책 하나 읽는동안 순식간에 작가의 의도에 휘말려 들었으니 말이다.정확히 휘발유통과 성냥을 든 소녀다웠던 책,어쩜 그래서 더 짠했던 책,왜 소녀는 휘발유통과 성냥을 들고 설쳐야 했던 것일까? 바로 그에 대한 해답이 이 책 안에 있다.

 

밀레니엄 2편으로 전편에서 미카엘의 바람끼에 실망한 리스베트 살란데르는 횡령한 돈을 들고 세계 여행을 떠났다가 1년만에 돌아온다.새로운 삶을 시작하긴 했지만 일이 없어 심심한 리스베트와는 달리 미카엘은 새로운 도전거리로 정신이 없다.러시아 소녀 인신 매매범의 정체를 연구해온 여성학자& 기자 부부가 밀레니엄에 연락을 취해온 것이다.인간으로써 소녀들에 대한 성 착취를 도저히 묵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부부는 성매매범들의 정체를 폭로하기 위한 기사를 밀레니엄에 써주기로 한다.그 기사가 보도될 시 파장을 예감한 밀레니엄 기자들이 비밀리에 기사를 다듬고 있는 동안 그 부부가 살해된 채 발견된다.근처에서 수거된 총에서 발견된 리스베트의 지문,곧 경찰은 대대적으로 리스베트의 행방을 쫓기 시작한다.언론과 경찰의 연이은 폭로로 리스베트가 정신 이상자,연쇄 살인범,폭력 전과자,동성애자,가학성애자로 보도되자, 평소 그녀를 알았던 소수의 사람들은 황당해한다.리스베트의 소재가 여전히 오리무중인 가운데,살해된 부부에 대한 의리 못지 않게 리스베트에 대한 믿음을 잃고 싶지 않은 미카엘은 직접 살인범을 잡기로 마음 먹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 하는데...

 

1편이 미카엘의 책이라면 2편은 전적으로 리스베트를 위한 책이었다.사람들 사이를 유령처럼 헤치고 다니던 연민이 차오를 정도로 천상 왕따 타입인 그녀,극한의 상처를 받고 살아서 인지 괴롭힘을 당하면 다이나마이트 격으로 되돌려주던 천재 해커 리스베트가 왜 그런 사람이 되었을 수밖에 없었는지 이 책에서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물론 설명이 잘 되었다고 해서 놀라움이 줄어드는 건 아니여서,엄청난 그녀의 과거와 그 과거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렇게 잘 살아 남았다는 것에 난 감명받고 말았다.쉴새 없이 이야기를 끌어 가는 현란한 작가의 입담과 탄탄한 구성, 점차 부각되는 리스베트의 천재성에 여성을 학대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응징하려는 사람들의 대립,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정말 가능한 것인가를 두고 벌이는 미카엘과 리스베트의 신경전,그리고 괴력을 지닌 암살범과 그를 통제하는 검은 실세 살라의 정체등 이 책을 흥미롭게 하는 요소들은 많았지만,그것들보다도 이 책을 멋지게 보이게 하는 점은 폭력에 꺽이지 않는 리스베트의 정신력이었다.혹 영웅이 필요하신가? 여기 초라한 몰골에 딱 14살 짜리 같아 보이는 한없이 삐딱한 처자 리스베트가 있다.우리의 영웅 기준으로는 영 적합하지 않아 보일지는 모르지만,그럼에도 그녀가 휘발유통과 성냥을 들고 설치는 한 난 그녀에게 지지를 보낼 것이다.여자를 증오하는 남자를 증오하는 여자,그녀의 후련하고 통쾌한 복수극에 박수를 치지 않는 여성이 과연 있을지 의문이다.이런 책 하나를 통해 여성에 대한 폭력이 일거에 사라질리는 없겠지만,적어도 그것이 끔찍한 범죄라는 공감대 정도는 생겨나길 간절히 바라보면서...추리 소설로써의 긴장감이 전편에 비해 좀 떨어지는 편이라 별점이 내려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잘 쓴 책이다.이젠 걸작이라고 평가받는다는 다음 편을 기다려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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