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2 - 상 - 휘발유통과 성냥을 꿈꾼 소녀 밀레니엄 (아르테) 2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아르테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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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뭐, 이런 생뚱맞은 제목이 있나? 휘발유통과 성냥을 든 소녀라니...도무지 어떤 내용이길래 제목을 저렇게 지은걸까 궁금했다.스티그 라르손같이 영리한 작가가 아무 의미없는 명사들을 모아 제목을 지었을리는 만무하고,분명  내용과 관련이 있단  말인데,휘발유통과 성냥(성냥통이 아닌 성냥 달랑 한개!),그리고 소녀를 이러저러하게 조합해봐도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잔혹 동화라면 모를까,어떻게 저것들을 가지고 추리소설을 쓴단 말이냐, 당최 이해되지 않았다.그런데 그런 의구심은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아니,어쩜 이렇게 딱 알맞는 제목이!!! "라는 감탄사로 바뀌고 말았으니...대단한 설득력이다.책 하나 읽는동안 순식간에 작가의 의도에 휘말려 들었으니 말이다.정확히 휘발유통과 성냥을 든 소녀다웠던 책,어쩜 그래서 더 짠했던 책,왜 소녀는 휘발유통과 성냥을 들고 설쳐야 했던 것일까? 바로 그에 대한 해답이 이 책 안에 있다.

 

밀레니엄 2편으로 전편에서 미카엘의 바람끼에 실망한 리스베트 살란데르는 횡령한 돈을 들고 세계 여행을 떠났다가 1년만에 돌아온다.새로운 삶을 시작하긴 했지만 일이 없어 심심한 리스베트와는 달리 미카엘은 새로운 도전거리로 정신이 없다.러시아 소녀 인신 매매범의 정체를 연구해온 여성학자& 기자 부부가 밀레니엄에 연락을 취해온 것이다.인간으로써 소녀들에 대한 성 착취를 도저히 묵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부부는 성매매범들의 정체를 폭로하기 위한 기사를 밀레니엄에 써주기로 한다.그 기사가 보도될 시 파장을 예감한 밀레니엄 기자들이 비밀리에 기사를 다듬고 있는 동안 그 부부가 살해된 채 발견된다.근처에서 수거된 총에서 발견된 리스베트의 지문,곧 경찰은 대대적으로 리스베트의 행방을 쫓기 시작한다.언론과 경찰의 연이은 폭로로 리스베트가 정신 이상자,연쇄 살인범,폭력 전과자,동성애자,가학성애자로 보도되자, 평소 그녀를 알았던 소수의 사람들은 황당해한다.리스베트의 소재가 여전히 오리무중인 가운데,살해된 부부에 대한 의리 못지 않게 리스베트에 대한 믿음을 잃고 싶지 않은 미카엘은 직접 살인범을 잡기로 마음 먹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 하는데...

 

1편이 미카엘의 책이라면 2편은 전적으로 리스베트를 위한 책이었다.사람들 사이를 유령처럼 헤치고 다니던 연민이 차오를 정도로 천상 왕따 타입인 그녀,극한의 상처를 받고 살아서 인지 괴롭힘을 당하면 다이나마이트 격으로 되돌려주던 천재 해커 리스베트가 왜 그런 사람이 되었을 수밖에 없었는지 이 책에서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물론 설명이 잘 되었다고 해서 놀라움이 줄어드는 건 아니여서,엄청난 그녀의 과거와 그 과거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렇게 잘 살아 남았다는 것에 난 감명받고 말았다.쉴새 없이 이야기를 끌어 가는 현란한 작가의 입담과 탄탄한 구성, 점차 부각되는 리스베트의 천재성에 여성을 학대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응징하려는 사람들의 대립,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정말 가능한 것인가를 두고 벌이는 미카엘과 리스베트의 신경전,그리고 괴력을 지닌 암살범과 그를 통제하는 검은 실세 살라의 정체등 이 책을 흥미롭게 하는 요소들은 많았지만,그것들보다도 이 책을 멋지게 보이게 하는 점은 폭력에 꺽이지 않는 리스베트의 정신력이었다.혹 영웅이 필요하신가? 여기 초라한 몰골에 딱 14살 짜리 같아 보이는 한없이 삐딱한 처자 리스베트가 있다.우리의 영웅 기준으로는 영 적합하지 않아 보일지는 모르지만,그럼에도 그녀가 휘발유통과 성냥을 들고 설치는 한 난 그녀에게 지지를 보낼 것이다.여자를 증오하는 남자를 증오하는 여자,그녀의 후련하고 통쾌한 복수극에 박수를 치지 않는 여성이 과연 있을지 의문이다.이런 책 하나를 통해 여성에 대한 폭력이 일거에 사라질리는 없겠지만,적어도 그것이 끔찍한 범죄라는 공감대 정도는 생겨나길 간절히 바라보면서...추리 소설로써의 긴장감이 전편에 비해 좀 떨어지는 편이라 별점이 내려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잘 쓴 책이다.이젠 걸작이라고 평가받는다는 다음 편을 기다려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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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의 철학자들 - 위대한 경제사상가들의 생애, 시대와 아이디어
로버트 하일브로너 지음, 장상환 옮김 / 이마고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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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을 얻어야 마땅한 위대한 일을 했음에도 수줍고 폭력적이지 않은데다 사람들 앞에 나서길 꺼렸다는 이유로 역사 교과서 한쪽 귀퉁에서 이름만 나열될 뿐인 경제학자들을 모아모아 신나게 떠벌리고 있는 책이다.궁금하실까봐 대충 이름을 열거해 본다면 아담 스미스,멜서스와 리카도,생시몽과 푸리에와 밀,마르크스와 베블렌,그리고 마샬과 케인스와 숨페터등으로, 당대의 사회 현상을 분석하고 파악하며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던 경제학계의 천재들을 망라했다고 보시면 된다.세속을 지배하는 법칙을 연구하던 학자들이라...평소 그들의 인생과 사상이 궁금했음에도 도무지 알기 힘들었던차라 서문을 읽는 것만으로도 무척반가웠던  책이다.그런데다 예상을 뛰어 넘게도,철학처럼 고상한 형이상학을 읊어대지는 않았기에 다소 저급하게 평가받는 그들의 면면을 들여다 보는 것은 너무도 흥미로웠다.아니,경제학자들이 이렇게 독창적이고 매혹적인 인물들이었더란 말이냐,하면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면 본 책이 되겠다.아,하일브로너의 부러운 글발이여...어쩌면 이다지도 쉽게 쓴단 말이더냐.사회를 바라보는 선명한 통찰력에 반박할 틈이 없는 놀라운 균형감각,지식을 배열하는 매끄러운 유려함에 유머 감각 빛나는 재치 있는 서술,경제학자 답게 딱 들어맞는 군더더기 없는 표현에다 직선적이고 현실적인 설명에 그만 확 반해버렸다.29살 대학원생이던 하일브로너가 이 책을 쓴다고 하자 지도 교수가 "그건 자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네"라고 정색을 했다가 세 꼭지를 읽고 난 뒤 "이건 자네가 꼭 해야 할 일이네"라고 했다는 일화는 절대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그만큼 잘 된,탁월한 저서었다.미국 고등학교 학생들의 필독서라고 하던데,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좀 두려워 해야 하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경제를 통찰하는 눈을 가진 집단과 아닌 집단이 부딪혔을때 끝장이 나는 것은 당연히 후자이니 말이다.2006년 청소년 도서도 뽑힌 책이라는데,솔직히 말해 이거 우리나라 청소년이 읽어도 이해 못한다.청소년들이 읽으면 굉장히 좋겠다는 의미에서 뽑힌 것이라면 모르지만,자칫 잘못했다간 아이들에게 열등감만 심어주는게 아닐런지라는 노파심이 생겼다.어쨌거나 이 책을 읽고 든 생각들을 간단히 적어보자면...

 

1.부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부자란 사기를 남들보다 먼저 얼마나 안 들키고 하는가에 달려 있다.사기에 재능이 없는 분들은 그들의 봉이나 되지 않는걸 다행으로 생각하시라.

2.미국 초기 개척자들이 부자가 된 과정을 개미 투자자들은 꼭 한번 들여다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역사는 돌고 돈다.놀라운 것은 그때 먹혔던 사기 방식이 지금도 그대로 쓰여지고 있으며 여전히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3.시대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천재의 몫이고,우리가 과거보다 나은 삶을 사는 것은 어느정도는 그들 덕이다.감사해야 할 일이다.

4.하지만 천재 경제학자들의 비관적인 전망은 늘 현실화되지 못했다.(이론적으로는 옳았지만) 왜냐면 현실을 이끌고 가는것은 우리 대중들인데,다른건 몰라도 생존 본능에 있어서만큼은(생존력)우리를 따라올 자가 없기 때문이다.다시 말하면 우리가 공멸하게 될 정도의 상황으로 우리를 내몰지는 않을거란 뜻이다.

5.천재들의 개성과 일화는 아무리 들어도 여전히 흥미롭고 새롭다.거기에 인간성까지 갖춘 천재들을 보게 되는 것은 같은 인간으로써 흐믓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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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아 54
에프라임 키숀 지음, 이용숙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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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프라임 키숀이라는 작가 이름만으로 고른 책인데,심장에 무리가 가는게 느껴질 정도로 심각하게 재미가 없었다.농담 아니다.진짜로 심장이 발딱 들고 일어나 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지루한 책을 읽느냐고 항의하는데,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을 정도로 한심했다.내가 주로 자기전에 책을 읽는걸 감안하면 실은 이런 책이야말로 내겐 담배보다 더 해로울 것이다.화를 내면서 잠자리에 들게 뻔하니까.그나저나 키숀 아저씨...그렇게 재기 넘치는 책을 쓰시던 분이 어쩌다 이런 졸작을 남기게 된 것인지 안타까웠다.유작이라고 하는데,아마 이 책을 쓰는 동안 작가도 나만큼이나 성에 안 찼던게 아닐까 싶다.어떻게 해도 더 나아질 길이 없는 책을 붙잡고 있으려니 모르긴 몰라도 그의 "심장"에 무리가 간게 분명하다.그러게 졸작은 아무나 쓰는게 아니라니까.더군다나 키숀처럼 명민하고 유머 감각 넘치시던 분이라면 더욱 더 그렇다.어쨌거나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과거 그 분의 멋진 책들을 생각해보면 이런 작품은 나오지 않았어도 좋았을거란 생각이 든다.이젠 그의 명성을 회복할 방법이 더이상 없으니 말이다.

 

<줄거리>아내에게 얹혀 사는 볼품없는 삼류 배우 칼 뮐러는 싸다는 이유로 드라마에 캐스팅 된 후 난데 없이 일약 스타가 된다.비루하게 살았던 54년을 일거에 보상이나 하려는 듯 갑자지 터지는 운세에 그는 표정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 한다.그의 이름을 연호하며 싸인을 부탁하는 팬들에,갖가지 스캔들을 제조해내는 기자들과 돈을 싸들고 기다리는 광고주와 제작자,그리고 비서일을 자처하며 기뻐하는 아내까지...그는 난생처음 성공했다는 기분을 만끽하게 된다.하지만 점차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사람들이 광분하자 그는 스타가 된다는 것이 보기와는 다르다는걸 알게 된다.그렇다고 그가 굴러 들어오는 호박넝쿨을 찼을리 만무,스타가 된 그에게 평소 그가 흠모해 마지않던 섹스심볼 여배우가 대쉬를 해오자,그는 그 수많은 눈들을 제끼고 어떻게 하면 그녀와 잘 수 있으려나 머리를 열심히 굴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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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자오선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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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살 소년이 가출을 한다.이름도 모르는 엄마에 알콜 중독자 아빠...과거건 가족이건 고향이건 그를 묶어 두는 것 하나 없던 그는 정처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때는 1850년대 미국, 살아남는 것만이 유일한 미덕인 시대,총에 맞고,싸움도 하고,술 먹고,끝내 살인을 저지르며 점차 어른의 세계에 적응하던 소년은 우연히 글랜턴 대위가 이끄는 무리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마치 그가 떠난 목적이 그들과 합류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무리에 녹아들던 그는 난생 처음 소속감 비슷한 것을 느끼게 된다.미쳤지만 상황 판단 빠른 전직 대위 글랜턴,전진 신부 토빈,싸우다 친구가 된 토드빈,흑인 존슨과 천재 싸이코 패스 홀든 판사...주정부로부터 인디언 학살 허가를 받아 머리가죽 사냥을 떠난 그들은 살육이 계속되면서 피맛에 굶주린 광기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게 된다.가는 도중 만나는 이가 누구건 ,그들이 인디언이건,멕시코 원주민이건,이민자들이건, 미국인이건 거침없이 닥치는대로 죽이고 강간하는 글랜턴 일당들,하지만 정작 그들을 끔찍스럽게 만드는것은 살인 자체에 있지 않았다.그 학살의 잔인함에 있지. 다음을 보자.



"산 자나 죽은 자나 가릴 것 없이 머리채를 움켜쥐고 두개골에 칼날을 박아 피투성이 머리 가죽을 하늘 높이 쳐들고", "벌거벗은 몸을 조각조각 썰어 팔다리와 머리를 떼어 내"거나 "벌거벗은 아기 발꿈치를 차례로 쥐고 머리를 돌덩이로 짓이겨…… 아기의 정수리 숨구멍으로 시뻘건 구토물 같은 뇌수가 콸콸 쏟아"지게 하며 "죽은 갓난 아기들을 나무에 매달아 놓는" 등 차마 읽기가 버거울 정도의 섬뜩한 묘사가 문단을 가득 메운다.그렇게 가는 곳마다 무소불위의 폭력을 휘두르던 홀든 판사 무리는 강의 이권을 독차지 하려다 인디언의 습격을 받아 대부분이 살해되면서 와해된다.그리고 30여년이 흐른 뒤,학살의 과거를 뒤로한 채 떠돌던 소년은 우연히 판사와 조우하게 되는데...

정처없이 떠돌던 소년이 묵시록적인 예언을 실현하듯 설치고 다니는 용병 무리에 합류하게 되면서 목격하게 된 학살을 나직한 목소리로 그려낸 소설이다.건조하면서도 유려한 문체,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울만치 세심하게  박혀있던 어휘의 향연,섬뜩한 폭력마저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의 서늘하고 격정적인 묘사,지성적이라고 아니 말할 수 없는 냉정하고 이지적인 서술태도,개성 뚜렷한 등장인물들,숨이 턱턱 막힐 듯 다가오는 사막의 정경,그리고 그 모든 것을 매끄럽고 담담하게 쏟아내는 풍부한 이야기거리..이 작품의 명성을 확인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책이었다.85년에 쓴 작품이라는데 탄탄한 구성과 깊이 면에서는 오히려 최신작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나 <로드>가 소품이라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다.다만 보도 듣도 못한 섬뜩한 폭력을 읽어 낼 만한 강심장이 필수적임을 강조하고 싶을 만치 폭력 수위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점이 좀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문젠 그것이 바로 이 책의 가장 커다란 미덕이자 차별되는 특징이라는 것이다.왜냐면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학살들이 과장된 허구가 아니라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그렇다.우린 잊고 살았지만,미국은 실은 학살이 남긴 피웅덩이 위에 세워진 나라라는 것을 작가는 이 작품 하나를 통해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지구상에 역사가 시작된 이래,대량 학살이 없던 시대가 과연 있었을까? 아마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피해자가 아닌 당사자에 의해 그 역사가 이처럼 처절하게 고발되는걸 본 것이 있던가? 없다.코맥 매카시,그가 처음이지 않는가 한다.자신의 치부를 고발할 정도의 객관적인 지성이라니,거기다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탁월함까지...씁쓸함과 함께 존경스러운 마음이 드는건 어쩔 수 없었다.미국의 문학이 경박스럽다고 여기시는 분들은 한번 이 책을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마음에 안 들지는 모르지만,적어도 그 깊이에는 고개를 숙이게 될 터이니 말이다.
 
<추신>
1.이 책의 백미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쉬거의 전신이라고 할만한 홀든 판사의 개성에 있다.혹 전쟁이 시작되면 강간이나 연쇄살인이 사라진다는걸 알고 계시는지? 이 책을 보면 단박에 그 이유를 짐작하게 되실 것이다.연쇄살인범,소아 강간범,엽기적인 살인마가 각광받는, 그들이 타인보다 월등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할 수 있는 합법적인 장이 마련되기 때문이다.책 중반이 되어서야 위의 모든 것을 갖춘 홀든 판사가 슬그머니 등장하는데,그때부터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책에 활력이 붙는다.그러니 초반에 지루하다고 책을 내던지진 마시길...작가가 조금씩 살을 붙여나가는 판사의 모습을 천천히 따라가보면 작가가 창조해낸 희대의 캐릭터를 만나는 희열을 만끽할 수 있으실 테니 말이다.그 과정에서 당신이 생각하는 악이란 것이 얼마나 치졸했는가도 알게 될텐데 그건 말하자면 덤이다.
 
2.홀든판사와 (타락한)전직 신부의 대립구도를 눈여겨 보시길.작가가 말하려는 것이 여기에 담겨져 있다.
 
3.끔찍하게도,홀든 판사는 실존 인물이라고 한다.그리고 그가 그 수많은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아무런 판결도 받지 않은 채 유유히 사라진 것도 사실이라고...이 책의 결말을 가지고 독자들이 매카시는 도통 희망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투덜대던데,그가 보여주기 싫었던 것이 아니다.다만 거짓말을 할 수 없었던 것 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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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시스터즈 키퍼 - 쌍둥이별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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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에 걸린 케이트를 위해 맞춤 아기로 태어난 안나는 이번에는 신장을 기증해 달라는 엄마의 요구에 변호사 켐벨을 찾아간다.제대혈부터 골수 이식까지 태어나면서부터 줄곧 언니의 생명줄 노릇을 했던 그녀가 이젠 신장을 줄 수 없다면서 부모를 고소한 것이다.고소장을 받아든 엄마는 분노하면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과거 변호사였던 경력을 되살려 자신의 변호에 나선다.엄마의 간곡한 호소에도 안나의 마음은 흔들릴 기미가 없고 그들의 재판은 곧 언론의 관심을 끌어 모으게 된다.딸을 살리는 것 외엔 다른 것은 안중에도 없는 엄마,포기하지 않으려는 엄마가 버거운 아빠,실질적인 부모의 부재를 마약과 술,방화,절도등 일탈로 앙갚음하는 오빠,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장기 기증자라는 감옥 안에 살고 있는 안나,그리고 죽음에 한 다리를 걸친 채 위태롭게 살고 있는 케이트...십여년에 걸친 케이트병치례는 사실상 가족 구성원들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딸이 죽는건 못보겠다는 엄마를 그 누가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이젠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고 싶다는 열 세살 안나의 바람은?그 누구의 손도 들어 줄 수 없는 가족들의 절절한 사연이 펼쳐지는 가운데 솔로몬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그들,과연 타협을 모르는 잔인한 병마앞에서 가족이란 이름으로 버텨 내고 있던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 될 것인가?

 

맞춤 아기에 대한 논란 때문에 본 책은 아니다.그 보다는 맞춤 아기로 태어난 자신의 운명에 저항하기로 한 열 세살 소녀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집어 든 책이다.처음엔 그깟 신장하나 못 줄게 뭐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13년동안 안나가 언니에게 준 것들의 목록을 보니 쉽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안나 역시 백혈병 환자 못지 않게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녀 나이 이제 겨우 열 셋,내가 그녀라고 해도 "Enough!"이라고 외칠 것 같다.하지만 그렇다고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걸다니...가족끼리 "말"로 해결해도 될 일을 거창하게 소송으로 해결하려는 것을 보니 역시 소송의 나라다운 전개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기 기증을 둘러싼 가족들의 드라마가 소송으로 비화된 사건들은 언제나 언론의 주목을 받기 마련이다.생명과 관련된 절박한 상황도 상황이지만,소송으로 번질 정도가 되었다면 그 이면엔 복잡하게 얽힌 가족사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기증자가 버려진 이복 동생이였다든지,판단 능력이 없는 정신 박약아 형이라든지...하지만 확자지껄한 소동과 논란만 요란한 채 정작 그에 대한 판결이 없는 것은 수혜자가 소송이 진행되는 도중 사망하기 때문이다.그만큼 장기 기증은 촌각을 다투는 문제이고,소송이 걸릴 정도의 불화라면 이미 게임 끝이라고 보면 된다.그렇다면 왜 작가는 이 발칙한 소녀에게 소송을 걸게 한 것일까? 설득력있는 이유가 있어야 했다.장기 기증이 학대에 가까울만치 가혹한 것이었다든지,아니면 가족내에서 안나의 위치가 단지 기증자로써의 의미밖에는 없었다든지...처음부터 소설은 그런것들을  부각시키면서 독자들의 화를 돋운다.그래,인간이 실험실의 돼지도 아니고 말이야,아무리 부모라도 그러면 안 되지.안나가 가엾어지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안나의 결정을 지지해주고 싶어진다.하지만 작가는 마지막에 전혀 다른 결론의 반전을 준비하고 있었다.안나가 정말로 이 소송을 했어야만 했던 이유를 불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소설은 분위기가 싹 바뀐다.고발 소설에서 감동적인 가족 소설로 탈바꿈한 것이다.참 일관성있는 소설 구도라고 아니 말할 수 없겠다.가족애를 강조한 결론에 그럼 그렇지..라고 고개를 주억거리긴 했지만,왠지 찝찝한 기분이 드는건 어쩔 수 없었다.속은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언니를 위해서였다면 왜 진작에 안나는 엄마와 상의하지 않은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다.가족간의 대화로도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를 거창한 소송으로 비화하다니...결국 백혈병이라는 자극적인 소재에 장기 기증을 둘러싼 논란을 최대한 드라마틱하게 부각시키기 위해 작가가 억지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었다.그것이 소설로써는 재밌을런지 모른다.하지만 현실에서 이렇게 된다면???

 

우리는 불타고 있는 건물에 뛰어들어 누군가를 구해낼 의무는 없다.그러나 건물 안의 사람이 당신의 아이라면 모든 게 달라진다.
맞는 말이다.내가 여기에 덧붙일 말이 있다면 건물안의 아이를 살리고 싶다면 우선 이성을 차리는게 좋을 거란 것이다. 만약 당신이 울고불고 질질 짜면서 내가 얼마나 그 아이를 사랑했는데 하는 감상을 남발한다면 그동안 건물은 홀라당 다 탈 것이기 때문이다.감상 사절이란 말이다.사실 가족안에 병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사자들이 느끼는 체감 드라마는 차고 넘친다.거기에 다른 드라마를 덧붙일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멍청한 인간이거나 철저히 현실을 외면하는 나르시스트임이 분명할 것이다.이성을 차리고 상대하기도 버거운 병마를 두고 눈물선을 자극하는 가족주의 표방 멜로 드라마를 만들어내고 있는 작가가 참 가벼워 보인 것도 그 때문이다.진짜로 환자와 환자 가족을 위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면 이런 소설이 나오진 않았을 테니까.현실은 이보다 더 무자비하기에 드라마나 감상이 끼여들 틈이 없다.결국 소재를 제대로 팔기 위해 머리를 짜낸 소설로 로맨스류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싶었다.읽기에 편하고 감동적인데다 낙관적이지만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똑같았으니까.탄탄하니 재밌는 소설이긴 했다.시간 때우기용으로는 괜찮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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