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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레이철 커스크 지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고등학교 시절 난 어른이 되면 징징대는걸 그만 두게 될 줄 알았다.징징대고,투덜대고,절망하고,비참해하고,남과 비교해 모자란 자신을 못마땅해 하고,질투하고,궁색해하며,무엇보다 불안해하는 자신의 데몬과 싸우는 그런 일들은 없어질 줄 알았다.어른이 된다는 것이 신천지는 아니래도 어쩡쩡한 감정과 싸우지는 않을거라 생각한 것이다.종종 선생님들이 우리들을 보면서 "너희들은 지금 얼마나 복받은줄 모른다.너희들이 책임 질 일이 있냐,뽀송뽀송한 피부가 대단한 줄 알기를 하냐"라고 말할때마다 난 그걸 칭찬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내가 뭘 갖고 있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대단한 것이 아닌 것이고,또 그땐 커간다는 정신적 고통이 너무 컸기에 그런 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이제 길거리를 가다 웃고 떠드는 아이들의 뽀얀 속살을 보면 왜 그때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하셨는지 이해가 된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들을 부러워 하냐고 묻는다면,천만에 절대 "NO!"다.난 그 시절을 살아봤다.어떤 줄 잘 기억하고 있다.밝게 웃고 떠들고는 있지만 그들 각자 내면은 어떤 지옥을 경험하고 있을 지 잘 안다.그래서 가끔 난 그들을 향해 속으로 중얼거린다.헤이...잘 버텨 보라고,적어도 크면 지금보다는 나을거야.늘 지금 같을거라고 속단하진 마.
그런데 커보니 여전히 징징대는 어른들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아마도 징징대는건 나이와는 상관 없는 모양이다.이 책에 나오는 어른들 역시 징징대는데 하루의 모든 시간을 허비한다.대단한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보다 날씬해야 하는데,보다 행복할 줄 알았는데,남의 남편이 더 좋아 보이는데,내 수준에는 저 친구들은 어울리지 않는데,왜 저 여자는 저렇게 한심할 정도로 착한데,왜 아이는 늘 내 차지인데,왜 남편은 내 마음을 몰라주는데...끝없는 불만들이 이어진다.과거보다 잘 사는 여자는 그 사람대로 불안감에,잘 못 사는 못하는 또 그녀만의 자괴감에 시달리며 철저히 자신들을 들볶고 있었다.이 책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건 바로 그것이 현대 30대 여성들의 표본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현모양처 신드롬에 가려진 여성들의 실체라고.그건 그들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고 또 그것이 그들 탓이 아니라는 것이다!흠,과연 그럴까?
이 책에서 가장 우습게 느껴지던 것은 아이들을 하나 둘씩 낳은 여자들의 자신들이 더 이상 쭈쭈빵빵이 아닌 것을 혐오한다는 것이었다.이봐요?정신 있나요?어떻게 이십대때의 몸매와 피부를 30대에도 유지하길 바란다는 것이죠?그리고 그건 결혼 여부와는 상관없는거 아닌가요?당신이 천천히 나이 들어간다는 것의 문제지.피부가 늘어지고,머리가 빠지고 흰머리가 생기고,몸은 불어나고...그건 세월이 흐른다는 뜻일뿐이다.자신이 어쩌지 못하는 상황을 자신의 불만과 연계하는 그들이 참 철딱서니 없어 보였다.더군다나 내가 불행한 것은 다 남편 탓이라고 하는 건 또 어떤가?남자건 여자건 인간으로 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로 없었다.남편이 그렇게 싸가지가 없으면 안 살면 된다.나이 먹는 것이 싫으면 것도 안 살면 된다.30대가 그렇게 불만인 그들이 노년은 어떻게 받아들일런지 참 궁금했다. 난 그들이 행복의 지표처럼 여기는 20대의 싱싱한 몸매보다는 지금의 차분한 현명함이 좋다.사랑을 받는데만 혈안이던 시기가 지나간 것에 감사한다.이젠 사랑을 베풀어도 될만큼 시야가 넓어진 것도 맘에 든다.여전히 징징대긴 하지만,젊은 시절만큼 불행하진 않다는것 정도는 알고 있다.그래서 전반적으로 이 책은 별로 공감되지 않았다.물론 설득력있게 쓴 책이긴 하지만,뭐...그들의 불만에 동조해야 할 정도로 한가하진 않은 모양이다.한가한 분들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