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를 훔친 남자
후안 호세 미야스 지음, 고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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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소설은 옆집 남자 마누엘이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아이가 없는 적적함을 메꿔주던 친구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훌리오와 라우라 부부는 경악한다.그리고는 2년동안 그와 친구 사이로 지냈으면서도 그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워 한다.돈 많은 외교관의 아들로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사는데 지장이 없던 마누엘,소설을 한권도 내지 않은 소설가라고 자신을 소개하던 마누엘,영화 세트 제작을 하는 훌리오를 은근히 무시하던 마누엘,보란듯이 세련된 자신의 취향을 과시하던 마누엘을 훌리오는 무척 부러워했었다.간신히 연락이 닿은 마누엘의 아버지는 훌리오에게 마누엘의 아파트 열쇠를 맡긴다.아들이 언제 깨어날지 모르니 그때까지 봐달라고 부탁 하면서...새해 전날 아버지 집으로 간 홀리오는 의붓 동생의 딸인 일곱살 난 훌리아와 놀다 자신이 늘 아이를 원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다.하지만 아내 라우라는 상상 임신이라는 판정을 받고 ,설상가상으로 훌리오는 영문도 모른 채 아내에게 쫓겨나고 만다.달리 갈 곳이 없던 그는 별다른 생각없이 마누엘의 집으로 숨어 들어간다.정확히 자신의 집과 반대구조라는 마누엘의 집에서 마누엘의 옷을 입고 마누엘의 향수를 뿌리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는 재미에 푹 빠진 훌리오는 어느날 마누엘의 컴푸터를 열어보고 숨이 멎을 정도로 놀라고 만다.과연 마누엘의 컴푸터에 어떤 비밀이 들어있었기에 그가 그토록 놀란 것일까?....

 

군더더기 하나 없는 잘 짜여진 소설이었다.착하지만 갑갑할 만큼 고지식한 남편,그런 남편에 염증을 느끼던 아내,언제나 남의 떡이 더 맛있는 마누엘...겉으로는 우애 넘치는 건전한 사이지만,속을 알고보면 기묘하기 짝이 없는 이 세 사람의 동거를 너무도 설득력있게 그려내는 작가의 상상력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불륜을 저지르는 연인들과 배신 당한 자의 내면을 완벽하게 재현해 낸 점이나,훌리오가 의붓 조카인 훌리아를 위해 만들어 낸 "그림자 나라"란 연작 동화의 높은 완성도,등장인물 모두의 개연성 넘치는 개성들과 모순 없는 성격 묘사로 짧은 책임에도 짧다는 느낌을 받게 하지 않았다.무엇보다 중반에서부터 터지는 반전이 주는 긴장감과 박진감이 엄청나다.혹 이 책을 어쩌다 집어 드시게 된다면 초반이 좀 심드렁하게 느껴지시더라도 중반까지는 참고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책이 재밌어 지니 말이다.후안 호세 미야스...표지에 스페인의 인기작가라고 써 있어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는데,정말 이야기를 풀어내는 재주가 비상하다.후속작을 기대해봐도 좋을만한 작가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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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천주의자의 딸 - 유도라 웰티의 소설
유도라 웰티 지음, 왕은철 옮김 / 토파즈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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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했던 엄마가 시력을 잃고 서서히 죽어가고 있을 때 아버지는 자신을 낙천주의자라고 선언한다.아내를 사랑하고 인생을 사랑한 그는 모든 것이 괜찮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하지만 어디 현실이 인간 마음대로 되던가...4년동안 발악하다시피 투병을 한 엄마는 증오속에 눈을 감고,이제 그 아버지마저 수술을 받고 병실 침대에 묶여 있다.아버지의 낙천주의 때문에 힘들어 했던 그녀는 이제 반대로 아버지에게 낙관을 들이민다.다 괜찮아 질거라고...과연 낙천주의자의 딸 답지 않는가?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있던 로렐은 아버지의 건강이 심상찮다는 말에 한걸음에 달려온다.일년 반전 70대의 아버지는 딸보다 어린 페이와 재혼함으로써 모두를 놀라게 했었다.눈 수술을 받고 회복중인 아버지를 간병하던 로렐은 천박한 계모 페이와 사사건건 부딪힌다.하지만 괜찮아지실거라는 희망을 뒤로한 채 아버지는 결국 사망하고, 로렐은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고향집으로 향하게 된다.그곳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오래된 이웃들과 그녀의 과거들이었으니,로렐은 장례식을 치르는 그 짧은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을 지켜 보면서 자신이 그동안 잊고 살았던 것들에 대해 회상하게 된다.갑작스런 죽음이 몰고 온 허식에 찬 말들,졸지에 과부가 되었다는 사실에 분노를 참지 않는 계모 페이,단체로 도착한 페이의 가족들,그들을 지켜보면서 혀를 차는 이웃들까지...로렐은 이미 자신의 소유가 아닌 어린 시절의 집을 돌아보면서 비로서 과거를 재조명하게 된다.직선적이었던 엄마의 발병,아내가 힘들게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했던 아버지,그런 아버지 비겁함 때문에 엄마의 죽음을 감당해야 했던 시절의 아픈 기억들.그리고 신혼때 전사해버린 남편 필과의 추억,모두를 경악케한 설명 불가 커플 페이와 아버지...회상이 돌고 도는 가운데 로렐은 자신이 얼마나 과거와 절연되어 있었던가를 깨닫는다.아버지를 죽게 만든 장본인이 페이가 아닌가 의심하던 로렐은 결국 불가피하게 그녀와 맞서게 되는데...

 

한 판사의 장례식을 중심으로 아버지의 죽음으로 뜻하지 않게 고향집에 돌아온 한 여인의 내면을 설득력있게 그려내고 있던 소설이다.극적인 사건은 없지만 지적인 대화와 섬세한 내면 묘사를 통해 사랑하는 아버지의 죽음을 지키내는 딸의 어려움을 잘 표현하고 있었는데,특히 죽음과 상실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너무도 쉽게 설명해 내던 것과 이음새없이 매끄럽게 흘러가는 전개과정이 인상적이었다.언뜻 쉬워 보일지 모르나 실은 그것이야말로 거장들이나 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마치 잔잔한 영화 한편을 보고 있는 듯했던 소설로 아마 저자의 자전적 소설이라 더 현실감 있었지 않나 싶었다.1973년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여성분들에게 더 알맞는 소설이 아닐까 한다.

 

<밑줄 그은 말>

 

"나는 낙천주의자일세"

"저는 그런 동물들이 지금도 살고 있는 줄 몰랐습니다."

매켈바 판사(아버지)가 냉소적으로 말했다."어떤 것의 마지막을 보았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말게나."

                                                                          ---P.18

자신을 낙천주의자라고 했던 그는 단 한 번도 희망을 얘기한 적이 없었다. 이제, 그것을 그에게 들이미는 사람은 그녀였다. 그리고 그것은 잘못된 희망일지도 몰랐다. --- p.45
우리는 죽어가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짐을 지우는가. 그들이 더 이상 느끼지 못할 때, 우리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붙들 수 있는 작은 것들을 들이대면서 말이다. 기억의 영원성, 해악에 대한 경계, 자신감, 희망, 서로에 대한 믿음 등 들이댈 수도 없고 붙들 수도 없는 것에 집착하면서 말이다. --- pp.206~207
사랑하는 사람들보다 오래 사는 것에 대한 죄의식은 당연히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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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 서평을 써주세요

1 .서평도서의 좋은 점--박경리님의 일화를 적은 수필

2.한핏줄 도서 --김훈님의 다른 수필집들,밥벌이의 지겨움,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강산 무진,너는어느쪽이냐고 묻는 말에 대하여,자전거 여행등...

3.서평 도서와 동일한 분야의 추천도서--수필만을 대상으로 하는거라면,무진 기행(김승옥님)

4.이 책을 권하고 싶은 대상--평소 김훈님을 좋아하시는 남성분들.

5.마음에 남는 책속 한 구절--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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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 서평을 써주세요
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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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김훈님을 아는 사람들은 그가 굉장히 속정이 깊은 멋진 사람이라고 한다.된사람,난사람,든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는 인격이 든 사람이라고.잘못 된 것이 있으면 면전에서 말은 거칠게 할 지언정 뒤에서 험담하거나 음모를 꾸미지는 않는 사람,선배로써의 무게 중량이 제대로 나가는 사람이라니,평을 종합해보면 뚝배기처럼 우직하지만 인간성 하나는 끝내주는 사람인 듯하다.예전에 그의 책<강산 무진>을 별로라고 했더니 그걸 본 한 이웃이 무척 서운해 하면서 "당신이 그 사람을 알게되면 그의 책이 달라 보일것"이라는 말을 해 주었다.그 이후 난 정말로 그를 좋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아직까지도 작가로써 그는 좋아지지 않는다.아마 <칼의 노래>를 아직 읽지 못해 그런 모양이다.어쨌거나 이 멋진 책 <바다의 기별>이 도착했을때,표지를 쓰다듬으면서 이번에는 그를 좋아하게 될 수 있게 되길 바랐다.결론만 말하자면 이번에도 실패였다.안타까웠다.
 
내게 좋은 글을 판단하는 기준이 있다면 그건 풍부한 사고를 쉬운 언어로 풀어 낸 것이다.우리가 느끼긴 하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것들을 정확하게 풀어 내 주거나,더 나아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표현해 준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하루키의 수필이 잘 읽히는 이유는 그가 적확하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을 포착해 내고,그걸 떠벌리는데 별로 무게를 잡지 않기 때문이다.게다가 그 균형감각이라니...그는 사고의 비약을 멈춰야 할때는 알아차리는데 귀신같이 능수능란하다.마치 줄 위를 걸어가는 서커스 단원처럼,휘청대면서도 결코 실수를 하지 않는다.얼마전에 읽은 김용준의 <근원 수필>은 또 어떤가.절묘한 균형 감각과 담백한 문체,그리고 본인의 개성을 넘치지 않게 드러내는 것들이 보기 좋았다.한마디로 수필에서 균형 감각을 잃는다거나 무게를 잡는 것은 자살행위다.그런데 이 짧은 수필집 안에서 김훈님은 균형 감각은 고사하고 어찌나 무게를 디립다 잡고 있던지 보는 내가 다 불편할 지경이었다.왜, 왜, 왜 짐을 내려 놓지 못하는 것일까? 분석해보고 싶은 사항이었다.왜 그냥 쉬운 우리 말로 글을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것일까? 사고가 풍부해서라는 말은 안 해도 된다.그렇게 풍부한 내용이 담긴건 아니었으니까.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했다는 말을 절벽 같은 치매감 이라고 표현하는걸 보고서는 난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다음을 보자.
 
"모든,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모든,품을 수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모든,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려지지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모든,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사랑은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의 이름이라고,그 갯벌은 가르쳐주었다.내 영세한 사랑에도 풍경이 있다면,아마도 이 빈곤한 물가의 저녁 썰물일 것이다.사랑은 물가에 주저앉은 속수무책이다. "
 
이 한 문장안에서 공감할 수 있는 구절이라고는 한마디도 없었다.우선 사랑을 죽어버린 추상명사로 만들어 버리는 그가 한없이 비루해보였다.나같이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사랑은 닿을 수 있는 것이고,품을 수 있는 것이다.만져지기도 하며,불려진다.아무리 생각해도 머리속에서 닳아 사라지지 않는 것이고,다가오는 것이며,다가오지 않을 때라도 떠나지 않는 것이다.사랑은 그래서 내게 살아 펄펄 뛰어 다니는 동사다.평범한 인간이라도 별로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는 사랑에 대한 정의를 저렇게 고급스럽게 박제하는 그가 작가로써 난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다.그나마 <1975년 2월 15일의 박경리>와 <무너져 가는 것에서 빚어지는 새로운 것>은 괜찮았지만,뭔 말을 하려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거나(말과 사물),별로 공감이 되지 않는 이야기 전개 (고향과 타향),현실을 제대로 통찰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하는 감상 나부랭이들,본질을 왜곡하는 사고의 비약,별로 알고 싶지 않은 창작의 과정과 쓸데없는 비장함등...참 매력없는 수필들이었다.어쩜 그는 기자가 더 맞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삶에서 비켜서서 그저 관찰만 하면 되고 삶의 냄새나 통찰력이 별로 필요없는 분야니까.김훈님은 이 수필 속에서 "사실만을 가지런하게 옮기는 문장"이나"이념이나 추상이 얼씬거리지 못하는 자리에서,삶의 구체성이 뒤엉켜서 들끓고,힘찬 무질서들로 생동하는("46)문장을 좋아한다고 밝혔다.나도 마찬가지다. 재밌는 것은 이 수필집안에서 그 어떤 것들도 찾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언젠가는 그의 이름이 박힌 유려하고 참한 수필집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후세대들이 읽어도 여전히 사랑받을 수 있는 매력적인 완성품으로...독자들이 기대하는 것은 결국 완성품이지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작품이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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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1 0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네사 2008-12-01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감사합니다.제가 실수를 했네요.맞습니다.김용준님이여요.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제 블러그에서 검색해보고 쓴 거라 맞게 쓴 줄 알고 있었거든요.세상에...
지적 안 해주셨으면 아직도 맞게 쓴 줄로만 알고 있었을 겁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__^
참,고쳤어요.

2008-12-03 1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네사 2008-12-03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좋은 책이라고 칭찬하는 글보다 실은 이런 글을 쓰기가 더 어렵거든요.잘못 생각하고 있는건 아닌가 싶어 걱정도 되구요.
공감해 주신다니 다행이네요.
 
폭력의 기억,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 - 어린 시절의 체벌과 학대가 이후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보고서
앨리스 밀러 지음, 신홍민 옮김 / 양철북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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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오프라쇼에 7년간 계부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다는 18살 청년이 나온적이 있었다.그때  생모 역시 아들과 함께 쇼에  출연했었는데,그녀는 자신은 전혀 그런줄 몰랐다면서 아들에게 한없이 미안해했었다. 계부는 당시 소아 성추행죄로 감옥에 들어앉아 있었고,일찍 철이 든 듯한 아들은 엄마의 흐느낌에 이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할때니 그럴 필요없다면서 엄마를 다독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그건 엄마 잘못이 아니었으니 너무 미안해 하지 말라고 두둔하면서...


놀라운  반전이 전해진 것은 그 뒤 몇 개월이 지나서였다.쇼에 나와 용서해 달라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던 그 엄마가 감옥에서 나온 계부와 결혼식을 올렸다는 것이었다.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하던 아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면서 어떻게 이 현실을 받아 들여야 하는지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이었다. 그가 한없이 안스러워 보이던 그때 오프라와 정신과 의사가 내린 처방은 정말 후련했었다.정신과 의사는 "당신의 엄마는 이제 엄마로써의 자격을 잃었다.계부를 선택하므로써 아들을 버린 것이니까.엄마도 어른이니 무슨 선택이건 할 수 있지만 그에 대한 결과 역시 책임을 져야 한다.그러니 더 이상 엄마에게 미련을 버리고 난 이제부터 고아라는 생각으로 앞으로 나아가라고"조언을 해줬다. 만일 용서한다는 맘에도 없는 제스쳐를 했다간 당신의 정체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거라고 충고를 해주면서.보는 사람들 모두 박수를 쳤고 나는 그만 크게 감명을 받았다.와,저렇게 조언해줄 수도 있구나,우리나라 같으면 "그래도 엄만데..."라면서 과거는 잊고 가족으로써 잘 살아보라고 조언했을 것이 뻔했을테니 말이다.그게 당사자에겐 얼마나 가혹한 일이고 보는 이로 하여금 얼마나 답답하게 하는지 생각해보지도 않으면서. 원래 남의 일이란게 엄청 쉬워 보이는 거 아니겠나.

폭력의 기억(부제--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어린 시절 학대를 받은 아이들이 성장해서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보고서다.본인도 어린 시절 엄마에게 가혹한 학대를 당했다는 작가는 학대당한 아이들의 상처를 더 덧나게 하는 것으로 십계명중 4번째 계율인 "부모에게 효도하라"를 들고 있었다. 부모가 어떻게 자식을 대했건간에 자식은 그저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며 보살펴 드려야 한다는 말이 그들을 옥죄고 있다는 것이다.여기서 잠깐 생각 해보기 바란다.만약 타인이 당신을 상습적으로 구타하고,강간하며,추행하고,욕설을 퍼붓고,모욕을 가한다고 해도 그를 사랑해야 한다고 한다면 당신은 어떤 기분일지. 나라면 차라리 미치는 쪽을 택할 것이다. 제 정신을 가지고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명령이니까. 하지만 그것이 가족간에는 통용된다는 것이 바로 이 작가가 제기하는 문제의 핵심이다. 아마도 당신을 잘 가르치려 그런 것일거라고(구타의 경우) 당신이 유혹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라고(근친상간이나 강간의 경우) 그냥 입이 좀 거칠었을뿐 본심은 나쁜 사람이 아닐거라고, 당신을 사랑하면서도 그 방법을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 ( 폭언과 모욕의 경우)... 사람들은 갖가지 변명들을 생각해 내면서 부모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희생자인 아이들에게 이해할 것을 주문한다. 부모에 대한 분노? 절대 안 된다. 몸에 안 좋으니까. 용서 하라고, 그들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기에 그랬을 뿐이라면서 당신 자신을 위해서도 용서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어찌보면 그럴 듯하게도 들리기도 한다.내가 그 폭력의 피해자가 아니라면 무슨 말인들 못하겠는가?


이 책의 저자에 의하면  하지만 그것은 함정이라고 한다.어린 시절의 학대를 이성이 이해한다해도 몸은 결코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하면서...용서하려는 이성과 분노하려는 몸(무의식) 사이의 갈등은 결국 당신의 몸을 망가뜨릴 것라는 것이 이 작가가 주장하는 것의 핵심이다.

 한마디로 혈육의 연은 끊을 수 없는 거라고 말하는 세상의 도덕론에 속아 넘어가지 말라는 것이다.그녀는 그 예로 자신의 학대의 기억을 고스란히 문학속에 남긴 작가들의 예를 들고 있었다.하지만 그 예들이 아니라도 그녀의 분석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설득력 있는 설명이지 않는가 싶다.

팁1--어린 시절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그들이 살아가면서 느낄 정체성의 혼란과 까닭없는 분노,우울,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조그만 단서를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팁2--다만 이 책이 다소 편향되어 있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겠다.어린 시절 학대를 받고 자라서인지 작가 앨리스 밀러는 온 세상을 학대의 징후로만 해석하고 있었다.카프카의 아버지가 학대자라는 사실은 유명한 것이지만,프루스트의 엄마가 학대자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은 지나쳤다.프루스트의 천식이 엄마의 학대때문이라고 하던데,그건 아니다.그는 그저 몸이 약했을 뿐이고,때론 유전자의 영향이건  체질 때문이건 다양한 이유로 사람들은 병에 걸린다.모든 질병을 학대의 탓이라고 돌리는건 좀 과했다 싶었다.이 작가를 보면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일생을 좌우하는 잣대(치우치면 편견)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것 같아 씁쓸했다.만일 자식이 다양한 세상에서 다양한 사고를 하면서 살기는 원한다면.부모들이여,제발 자식을 학대하지 마시라.어떤 이유를 대건 그건 끔찍한 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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