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기별] 서평을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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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김훈님을 아는 사람들은 그가 굉장히 속정이 깊은 멋진 사람이라고 한다.된사람,난사람,든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는 인격이 든 사람이라고.잘못 된 것이 있으면 면전에서 말은 거칠게 할 지언정 뒤에서 험담하거나 음모를 꾸미지는 않는 사람,선배로써의 무게 중량이 제대로 나가는 사람이라니,평을 종합해보면 뚝배기처럼 우직하지만 인간성 하나는 끝내주는 사람인 듯하다.예전에 그의 책<강산 무진>을 별로라고 했더니 그걸 본 한 이웃이 무척 서운해 하면서 "당신이 그 사람을 알게되면 그의 책이 달라 보일것"이라는 말을 해 주었다.그 이후 난 정말로 그를 좋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아직까지도 작가로써 그는 좋아지지 않는다.아마 <칼의 노래>를 아직 읽지 못해 그런 모양이다.어쨌거나 이 멋진 책 <바다의 기별>이 도착했을때,표지를 쓰다듬으면서 이번에는 그를 좋아하게 될 수 있게 되길 바랐다.결론만 말하자면 이번에도 실패였다.안타까웠다.
내게 좋은 글을 판단하는 기준이 있다면 그건 풍부한 사고를 쉬운 언어로 풀어 낸 것이다.우리가 느끼긴 하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것들을 정확하게 풀어 내 주거나,더 나아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표현해 준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하루키의 수필이 잘 읽히는 이유는 그가 적확하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을 포착해 내고,그걸 떠벌리는데 별로 무게를 잡지 않기 때문이다.게다가 그 균형감각이라니...그는 사고의 비약을 멈춰야 할때는 알아차리는데 귀신같이 능수능란하다.마치 줄 위를 걸어가는 서커스 단원처럼,휘청대면서도 결코 실수를 하지 않는다.얼마전에 읽은 김용준의 <근원 수필>은 또 어떤가.절묘한 균형 감각과 담백한 문체,그리고 본인의 개성을 넘치지 않게 드러내는 것들이 보기 좋았다.한마디로 수필에서 균형 감각을 잃는다거나 무게를 잡는 것은 자살행위다.그런데 이 짧은 수필집 안에서 김훈님은 균형 감각은 고사하고 어찌나 무게를 디립다 잡고 있던지 보는 내가 다 불편할 지경이었다.왜, 왜, 왜 짐을 내려 놓지 못하는 것일까? 분석해보고 싶은 사항이었다.왜 그냥 쉬운 우리 말로 글을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것일까? 사고가 풍부해서라는 말은 안 해도 된다.그렇게 풍부한 내용이 담긴건 아니었으니까.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했다는 말을 절벽 같은 치매감 이라고 표현하는걸 보고서는 난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다음을 보자.
"모든,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모든,품을 수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모든,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려지지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모든,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사랑은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의 이름이라고,그 갯벌은 가르쳐주었다.내 영세한 사랑에도 풍경이 있다면,아마도 이 빈곤한 물가의 저녁 썰물일 것이다.사랑은 물가에 주저앉은 속수무책이다. "
이 한 문장안에서 공감할 수 있는 구절이라고는 한마디도 없었다.우선 사랑을 죽어버린 추상명사로 만들어 버리는 그가 한없이 비루해보였다.나같이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사랑은 닿을 수 있는 것이고,품을 수 있는 것이다.만져지기도 하며,불려진다.아무리 생각해도 머리속에서 닳아 사라지지 않는 것이고,다가오는 것이며,다가오지 않을 때라도 떠나지 않는 것이다.사랑은 그래서 내게 살아 펄펄 뛰어 다니는 동사다.평범한 인간이라도 별로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는 사랑에 대한 정의를 저렇게 고급스럽게 박제하는 그가 작가로써 난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다.그나마 <1975년 2월 15일의 박경리>와 <무너져 가는 것에서 빚어지는 새로운 것>은 괜찮았지만,뭔 말을 하려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거나(말과 사물),별로 공감이 되지 않는 이야기 전개 (고향과 타향),현실을 제대로 통찰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하는 감상 나부랭이들,본질을 왜곡하는 사고의 비약,별로 알고 싶지 않은 창작의 과정과 쓸데없는 비장함등...참 매력없는 수필들이었다.어쩜 그는 기자가 더 맞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삶에서 비켜서서 그저 관찰만 하면 되고 삶의 냄새나 통찰력이 별로 필요없는 분야니까.김훈님은 이 수필 속에서 "사실만을 가지런하게 옮기는 문장"이나"이념이나 추상이 얼씬거리지 못하는 자리에서,삶의 구체성이 뒤엉켜서 들끓고,힘찬 무질서들로 생동하는("46)문장을 좋아한다고 밝혔다.나도 마찬가지다. 재밌는 것은 이 수필집안에서 그 어떤 것들도 찾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언젠가는 그의 이름이 박힌 유려하고 참한 수필집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후세대들이 읽어도 여전히 사랑받을 수 있는 매력적인 완성품으로...독자들이 기대하는 것은 결국 완성품이지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작품이 아니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