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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동안의 과부 1
존 어빙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동화작가라는 외관 아래 숱하게 여자들을 울리고 다니는 비열한 바람둥이 남편 테드를 묵묵히 참으며 살아온 마리온은 교통사고로 아들 둘을 눈앞에서 잃고나자 비탄에 잠긴다.이혼이 흔하지 않던 50년대,혹시 부부 관계가 회복되지 않을까 딸 루스를 낳지만 둘의 관계를 점점 멀어져 간다.불행했던 마리온이 테드의 조수인 16살의 에디와 불륜에 빠지자, 테드는 기다렸다는 듯 이혼을 요구하고,남편이 바라는 것이 딸의 양육권이라는걸 알아 챈 마리온은 어느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 후 32년이 흐른 뒤 작가가 된 루스는 편집자 앨런이 청혼을 해오자 어쩔 줄 몰라한다.딸을 버리고 떠난 뒤 연락 한번 없는 엄마와 끊임없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오던 아버지,흔치 않는 조합의 부모를 둔 그녀였으니 결혼에 회의적인 것도 당연하지 않겠는가.두려움에 쩔쩔매던 그녀는 평생 마리온과의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에디를 만나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게 된다.에디로부터 마리온이 딸에게 자신의 슬픔을 전염시킬까봐 두려워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루스는 새삼 엄마를 그리워한다.루스의 신작 발표회 날,절친한 친구 해나가 아버지와 섹스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길길이 날뛰며 화를 낸다.아버지에게 상처를 입히려 처음 본 남자에게 다가간 루스는 성폭행을 당하고,그 사실을 알게 된 테드는 딸의 상처에 고통스러워 한다.아물지 않은 상처와 혼란을 뒤로하고 유럽으로 간 루스에게 한 과부가 편지를 보내 온다.자신을 "만년 과부"라고 밝힌 그 독자는 1년차 과부의 심경 변화를 그린 루스의 최신작을 읽었다면서 결혼도 못한 루스가 어찌 과부의 슬픔을 알겠느냐며 너도 한번 과부가 돼 봐야 그 마음을 알거라고 악담을 퍼붓는데...
원제가 A Widow for One Year 우리나라 말로 하면 <1년차 과부>정도가 된다.끔찍한 사고로 아들을 잃은 뒤 마음을 닫아 버리는 마리온,평생 여자들을 농락하면서 죄책감 모르고 살다 사랑하는 딸이 성폭행을 당하자 망연자실하는 테드,어린 시절의 부모에 대한 기억때문에 사랑에 냉소적인 루스,그리고 연상의 여인만 쫓아다니는 에디...이 네 명의 주인공들 모두 우리 주변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공감하기 어렵지 않던 소설이었다.책속에서 작가가 주인공들을 어찌나 고생시키던지 통속적인 해피엔딩이 감지덕지할 정도였는데,극한의 고통속에서도 사랑을 찾아 헤메던 그들의 이야기가 손에서 뗄 수 없을 만치 흥미진진했다.
존 어빙의 책을 처음 보시는 분을 위해 팁을 드리자면 우선 그의 책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가아프가 본 세상>이나 <사이더 하우스>에서 익히 보았듯이 그의 성에 대한 묘사는 보통의 수위를 훌쩍 넘기다 못해 끝장을 보고야 말기 때문이다.게다가 그가 다루는 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성이다.우리가 쉬쉬하고 언급하길 꺼리지만 실은 아름다운 성보다 더 흔하게 존재하는 부작용들,예를 들면 성폭행,낙태,성의 착취,불륜,매춘,근친상간등이 정면으로 다뤄진다.어린시절 의붓아버지에게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그에겐 성을 낭만적으로 묘사할만한 여유도,이유도 없었던 것이다.마치 두려워하는 대상을 이기기 위해 현실을 똑바로 바라 봐야 했던 아이같다고나 할까? 성(sex)만이 아니라 고통이나 감정들 역시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다.그렇다보니 그의 책은 힘들고 불편하다.그럼에도 읽을 가치가 있는건 그의 진실을 찾아가는 고집과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통쾌함 그리고 현실을 직시하는 냉철한 태도때문일 것이다.늘 약자편에 선다는점 또한 듬직하기 이를데 없고...작가 자신은 본인이 지성인이 아니라고,이야기를 짓는 목수일 뿐이라고 한다던데,이야기를 잘 짓는 목수임에는 틀림없다.샘물에 봇물 터진 듯 쉴새없이 이야기가 흘러 나오고 있으니까.하지만 그가 지성인이 아니라는 말엔 동의 못하겠다.위선적이지 않은 삶,허영에 들뜨지 않는 삶, 허위가 없는 삶을 위해 전심을 다해 생각하는 그가 지성인이 아니라면 그 누가 지성인이겠는가? 통속 소설의 모든 것을 갖추었지만 그럼에도 생각할 거릴 던져주는 결코 만만치 않는 작가, 존 어빙,막강한 이야기의 힘을 느껴보고픈 분들에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