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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 - 로마 최초의 황제
앤서니 에버렛 지음, 조윤정 옮김 / 다른세상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표지의 문구가 의미 심장하게 다가온다."내가 발견한 로마는 진흙으로 되어 있지만,내가 남기는 로마는 대리석으로 되어 있을 것이오."라...자부심이 느껴지는 말이다.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자의 말이며,세계 곳곳을 둘러 보아 견문이 넓어진 자의 말이기도 하고,인간의 미래가 간혹 퇴보도 있을 수는 있겠으나 결국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걸,그리고 그렇게 발전된 미래에도 자신이 한 일의 의미가 퇴색하진 않을 거라는걸 짐작하고 있던 자의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바로 그가 이 책의 주인공 아우구스투스다.로마 최초의 황제라는 닉네임이 붙는 사람...
난 아우구스투스를 대단한 인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증조부 카이사르의 그늘에 가려진,그의 암살로 인해 어부지리로 권좌를 물려 받은 기회주의자 쯤으로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래서 이 책을 통해 그가 기회주의자라기보다는 현명하게 위험한 시대를 헤쳐 나간 영리한 사람이라는걸 알고는 놀랐다.그는 증조부의 선례를 보고 친구에게 암살당하지 않으려면 독재는 피해가야 함을 깨달은 자였고,시행 착오를 통해 천천히 목표를 이뤄나간 사람이었으며,인내를 가지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말보다는 행동으로 자신의 의중을 알린 사람,정치판에서는 연기가 필요하다는걸 간파하고 있던 사람이었다."나는 인생이라는 소극에서 내가 맡은 역활을 충분히 잘한 걸까?" 라고 반문했다는 그의 말에서 짐작할 수있듯이 어쩜 그의 인생은 그가 힘들게 연기해낸 한편의 드라마가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면 로마 최초의 황제라 불리는 아우구스투스, 그의 일대기는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
당시 로마의 시대상황을 배경으로 그가 권력을 잡게 된 사정과 내전을 이끌게 된 과정,그리고 마침내 정적을 처단해 권력과 권위를 한손에 얻은 프린켑스로 등극, 실질적으로 로마의 일인 통치자가 되는 과정들이 마치 드라마처럼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던 책이다.기원전 44년 카이사르가 암살되자 하루 아침에 권좌에 오르게 된 그는 평소의 소심함을 뒤로 하고 결단력있게 자신의 행운을 거머쥔다.열일곱의 나이라는 것이 무색하게도 당차게 거센 로마 원로원들과 다른 정적들에 맞서 현명하게 싸워 나간 그는 정치적 혼란을 가라앉히기 위해 피할 수 없었던 내란과 살생부 소동,그리고 영토 확장을 위한 끊임없는 전쟁, 음모와 암살,타협과 반목속에 오랜 세월 핏바다 속을 거닐어야 했지만, 마침내 기나긴 정권 장악기가 지나 로마에도 평화가 도래하자 비로서 본인의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다.기본적으로 투쟁가나 쌈닭보다 차분한 통치자가 적성에 맞았던 그는 적법하지 않은 법령들을 폐지하고,나라를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고심하며, 기근이 들었을시엔 기꺼이 사재를 털어 시민을 위해 나눠주는 등 현명한 군주의 모습으로 거듭났다고 한다.더불어 여자라면 마다하지 않았다는 끊임없는 여성편력과 아그리파와의 우정,안토니우스와의 기나긴 애증사,섹슈얼리티의 대명사 클레오파트라,그리고 그의 핏튀기는 가족사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는데,500여 페이지속에 겹치는 사건 하나 없는걸 보면서 당시 로마 사람들의 얼마나 파란만장하게 살았는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이 책을 보면서 내가 느낀점 몇가지 요약하자면...
1.통치에 자신있는 군주는 언론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는 사실이었다.아우구스투스 시절에도 언론의 자유라는 개념이 있었고,이를 통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는 아우구스투스의 자신감과 유연함에 고개가 숙여졌다.
2.이 책은 기본적으로 사실에 입각해 쓴 책이다.뭐뭐 ~~카더라...라는 야사를 최대한 배제하고 사료중 객관적인 진실이라고 확신하는 것만 골라 쓴 덕분에 로마를 다룬 다른 책에 비해 다소 밋밋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독살설이라든지,중상 모략이라든지,자극적이고 원색적인 장면이나 표현들이 기대하고 이 책을 집어 들으셨다면 아마 실망하실지도 모른다.하지만 그것이 이 책의 신중함과 진실성을 보여 주는 것 같아 난 좋았다.예를 들면 <나는 황제 클라우디스다.>에서 독살맞은 마녀로 묘사되던 아우구스투스의 아내 리비아가 이 책에서는 지극히 현명하고 정많은 여인으로 묘사되던데,도무지 같은 사람이 맞나? 할 정도였다.결국 어떤 것이 더 사실에 맞을까 결정하는것은 독자의 몫이긴 하지만 이 작가의 말마따나 가장 그럴 듯하지 않은 것들은 배제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싶다.
훌렁훌렁 페이지를 넘기면서 이렇게 쓰기도 쉽지 않은데 감탄했을 정도로 쉽게 쓰여진 역사서다.하지만 아우구스투스라는 인물을 통찰하기엔 작가의 상상력이 부족했다는 점이 좀 눈에 거슬렸다.등장인물에 대해 뚜렷한 그림을 그리지 못한 채 책을 쓴 탓인지 인물들에 대한 묘사에 일관성이 없었고,그 일관성 없음은 곧 혼란과 짜증을 불러왔기 때문이다.개연성있는 완벽한 심리 묘사만 갖춰줬다면 탁월한 인물 역사서로 손색이 없었을텐데 싶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