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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좋은 의사를 말하다
아툴 가완디 지음, 곽미경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의사의 선택은 어쩔 수 없이 불완전할 수밖에는 없지만 사람들의 삶을 바꾼다.현실이 이러하다보니,남들이 다 가는대로 가장 안전한 길을 택하는,그저 하얀 색 가운을 걸친 기계 톱니바퀴의 톱니가 돼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하지만 의사는 그리해서는 안 된다.사회에서 위험과 책임을 떠 안은 사람은 그리해서는 안 된다.--296
엄마가 종종 아픈 바람에 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양한 의사를 상대해야 하는 편이다.덕분에 의사의 자질에 대해 의사나 환자보다 더 예민하게 되었는데--내가 이런 종류의 책을 자주 읽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평소 가장 싫은 의사를 꼽으라면 윗 문장에 나오는 의사라고 생각하던 참이라 작가의 말에 크게 공감을 했다.그래,바로 그렇다. "가장 안전한 길을 택하는 톱니들"이 가장 문제다.
거만한 의사,위선적인 의사,우물안 개구리 의사,돈만 밝히는 의사,의사라는 직업 자체를 혐오하는 의사,무능한 의사,책임을 회피하는 의사,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의사,의사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바보인줄 아는 의사,자신이 꽤나 대단한 사람인줄 아는 의사,실수를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은폐하는 의사등 모두의 경우를 골고루 한번씩 겪어 봤지만 그럼에도 가장 안전한 길을 택하는 의사가 질이 가장 나빴다.왜냐면 그들은 아예 대화 자체를 거부하기 때문이다.나는 어떤 경우에도 움직일 생각이 없으니 시간 낭비하지 말라는 표시를 인사를 하기도 전에 알려주는 그들을 보면서 섭섭하기도 했지만,한편으로는 그들이 딱하게 생각되기도 했었다.왜 저러고 살까.조금만 머리를 굴리면 훨씬 더 풍부하고 존경받는 삶을 살 수도 있을텐데...그래도 다행인 것은 드물지 않게 괜찮은 의사를 만난다는 사실이다.그런 사람들을 분석해 보면서 난 그것이 머리의 문제라기 보다는 유연성의 문제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놀라곤 했었다.역시 성격이 관건이었던 것이다.그리고 이 책을 보면서 정말 다행이네 싶었던 것도 그걸 의사 본인들이 자각하고 있다는걸 알게 되었단 사실일 것이다.그들이 문제를 파악하고 있다면 해결책은 어디선가 나오지 않겠나 했다면 너무 낙관적으로 들릴려나 모르겠지만서도,우선 속은 시원했다.
이 책의 작가는 의사란 모름지기 사회에 책임을 다해야 하는 위치라고 주장하면서, 인간적인 좋은 의사란 어때야 하는가 그 모델을 보여주려 동분서주하고 있었다.그 자신이 의사기 때문에 더욱 더 사명감을 느끼는 것 같던데,그는 이라크 야전병원과 인도 소아마비 발생지,사형장의 의사들과 의료 소송 법정을 둘러 보면서 사회에 필요한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한 조건과 그것을 힘들게 하는 여타 조건들에 대해 자신이 고민한 바를 풀어 놓고 있었다.냉철하면서도 인간적인 따스함이 느껴지던 많은 의사들의 면면들을 보면서 가슴이 훈훈해지는 기분이었는데,요즘 같은 이기적인 시대에도 여전히 타인을 위해 고민하고 수고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싶었다.
이 책을 보면서 의사들에게 우리가 만일 그들에게 존경을 보낸다면 그건 그들이 많은 돈을 벌어서도,지식이 많아서도,멋진 차를 몰고,대단한 지위에 있어서도 아니란 것을 알아줬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사회 시스템이 불량하거니 미비할 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마지막 보류가 <인간>이라는 사실에 새삼 감격해서는 아직까지 내 주변에 존경을 보낼만한 의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기도 했고.
오,제발,바라건데 우리나라가 앞으로 의사와 환자사이에 불신과 냉소의 벽만 더 높게 키우는 사회로 더 나아가는 일은 없게 되길 기도할 뿐이다.지금도 우린 충분히 멀리 있다.가까워 져도 나쁘지 않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