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성경 1
리하르트 뒤벨 지음, 강명순 옮김 / 대산출판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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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성경은 한 수도사의 전설로부터 시작한다.세상의 모든 지식을 습득했으나 곧 사형에 처해질 운명에 놓인 수도사는 자신의 지식이 사장될 것을 우려해 자신에게 하룻밤만 유예를 달라고 수도원장에게 간절히 부탁한다. 청이 받아들여지긴 했으나 하룻밤만에 책을 완성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절망한 수도사는 악마를 불러내 계약을 맺는다.자신의 영혼을 가져가는 대신 책을 완성해 달라고...그렇게 악마의 도움으로  탄생한 책이 바로 <악마의 성경>이다.그 책을 읽게 되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얻게 된다는 소문이 돌자 그를 차지하려는 세력이 생겨나게 되고,이에  악마의 성경을 숨기고 있던 수도원의 참사회원 일곱 명은 무슨 일이 생겨도 그 책을 지키겠다고  맹세를 한다.

 

카톨릭과 프로테스탄스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던 16세기 말 유럽,카톨릭 교단은 악마의 성경의 사본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되고는 경악한다.사라진 사본이 프로테스탄스의 손에 들어가면 기독교 사회의 분열을 막을 수 없을거라 판단한 추기경들은 비밀리에 예수회 소속 신부인 크사비에르 신부를 불러 원본을 찾아 줄 것을 요청한다.원본에는 사본의 저주를 풀어줄 암호가 적혀 있었다.크사비에르가 원본의 행방을 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반대 진영에서는 주교의 조카인 젊은 키프리안 클레슬에게 도움을 청한다.하지만 그는 연인 아그네스와 도망가는 일이 급선무라면서 거절한다.부모가 정해준 남자와 결혼해야 하는 아그네스는 어린 시절 들었던 무덤속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몰라 혼란스러워 한다.과연  사생아인 그녀의 태생의 비밀은 무엇이며 악마의 성경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종종 읽느라 곤혼스러운 책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이 책이 그랬다.유치하지,시덥잖게 야하지--성에 관련된 묘사가 쓸데없이 비열하기만 했다는 의미다.--중세가 배경이라고 분위기는 있는데로 잡고 있지,인물에 대한 묘사는 천박하기 그지없지,아그네스와 키프리안의 사랑이야기는 진부하다 못해 조잡하지...반드시 읽어볼 가치가 매우 없구나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끔 참으로 구색 골고루 갖춰주신 책이었다.특히 심하게 불쾌했던 것은 제목에 악마가 들어 있음에도 악마의 악마성은 전혀 부각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말하자면 하나도 안 무서웠다는 뜻이다.악마라는 거창한 인물을 등장시켰으면 이름에 걸맞게 설득력있는 악을 보여줘야지 말이야,악마가 별 힘도 못 쓰면서 그저 무서워 해야 한다는 식으로만 나가다니,실망이었다.실재하건 실재하지 않건 간에 악마의 성경이 인간을 죽이고 세상을 멸망시킬 책처럼 보이게 하는데는 실패한게 아닌가 한다.

 

그나저나 인간보다 존재감 없는 악마라니...이렇게 악마를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진짜 악마가 있다면 이 작가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하지 않을까 싶었다.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내 기꺼이 재판정에 출석해서 얼마든지 증언해 주겠구만,불러 줄려나 의문이긴 하다.2권이 전혀 안 궁금하던,실은 1권도 간신히 읽은 책으로 근사한 제목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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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일주
마이크 혼 지음, 이주희 옮김 / 터치아트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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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쓰려 검색을하니 이 작가의 다른 책 <불가능의 정복 (20,000km 북극 도보 일주 성공기) <Conquerant de l'impossible>가 보인다.한숨이 나왔다.도무지 이 사람 피속엔 어떤 유전 인자가 들어 있길래 적도를 일주한 것도 모자라 북극도 도보로 걸어보자는 환상적인 생각을 해낸 것일까. 가장 먼저 머리속에 떠오르는 말은 자살 충동인데 멋진 아내와 귀여운 두 딸을 둔 성실한 가장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는 점만 뺀다면 참으로 그럴 듯한 설명이 아닌가 한다.

물론 그건 웃자고 하는 말이고,아마 이 사람보다 더 험난한 여행을 잘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망망대해 쪽배타고 가기,정글 맨몸으로 걸어가기,산악 자전거로 고산 넘어가기,자전거로 대륙 횡단하기를 한꺼번에 해내는 능력이 되는 사람은 거의 드물테니 말이다.거기에 남보다 탁월하다는 이유로 남들이 상상도 못하는 일을 벌이고 다니는 무모함도 한 몫 했겠지만서도...

 

실은 이 책도 내 기대와는 전혀 다른 책이었다.난 배불뚝이 지구의 중심,적도를 여행한다는 말이 문자 그대로 직접 걸어가는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그냥 적도의 곳곳을 비행기도 타고 기차도 타고 버스도 타고 하면서 간간히 내려 토착민들과 사귀고 이야기를 들어 주면서 적도 아래에선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고 풍경은 어떤지 보고 하는 정도일거라고만 생각했었다.다정하고 인간적인 시선으로다가...그런데 마이크 혼 이사람,알고보니 무지막지한 사람이더마.이 사람의 목표는 그야말로 적도를 발로 뛰겠다는 생각뿐이였다.말하자면 인간은 애초에 그의 관념 안에 들어 있지 않았었던 것,단지 있는 거라면 죽지 않고 적도를 일주 하겠다는 것 정도?그러다보니 당연하게도 다정한 시선은 끼여들 여지가 전혀 없었다.

 

그리하여 그가 여행한 적도 4만 킬로 미터의 여행을 간략(?)하게나마 견적 내어 본다면 바로 이렇다.

*대서양--두어번 바다에 빠져 죽을 뻔함.당시는 심각했지만 앞으로의 여정에 비교하면 애교 수준임.

*아마존 정글--이름 모를 독사에 물려 나흘동안 사경을 헤멤.콜롬비아군,게릴라,마약 카르텔 셋 다에게 붙잡힘.

*태평양--쪽배 타고 2달간 혼자 표류함,바람이 불지 않아 노를 저어 갔을 만큼 지루했지만 그래도 죽은 고비는 안 넘겼음.

*인도양--거대한 싸이클론 두개를 맞이하여 그야말로 간신히 살아남.

*아프리카--각 나라의 반군,게릴라,정부군,세관원,경찰,경비대,아프리카 거지 등등에게 계속적으로 붙잡혀 시달림.뇌물은 기본이고,사형 선고는 옵션!인간이야말로 최악의 동물이라는 확신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됨.

 

이리하여 장장 17개월만에 적도 일주를 끝낸 작가 마이크 혼,죽지 않고 여행을 끝냈다는 것에 책을 읽는 나마저도 놀랠 정도였으니 정말 생고생의 절정을 제대로 음미하게 해주던 책이 아니었던가 싶다.가끔은 귀엽고 성실하고 장난스러웠던 점도 있긴 했었지만은...그래도 그의 너무도 고통스럽던 여행 덕분에 한가지는 확실하게 건졌으니,적도는 지구의 중심이고,위도 0도라는 것! 왜냐면 " Latitude zero"즉 위도 0호가 그가 타고 대양을 누빈 쪽배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내 이젠 절대 헷갈리지 않으리다,위도와 경도,으핫핫하...켁켁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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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선 여행 - 과학의 역사를 따라 걷는 유쾌한 천문학 산책
쳇 레이모 지음, 변용란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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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선을 따라 여행을 하고 쓴 기행문인줄 알고 집어 든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기행문이 아니란 걸  눈치 못 챈 채 아니,왜 여행 떠날 생각을 안 하는거야? 이라면서 투덜대다가 하도 여행을 안 떠나 길래 이상해서 표지를 들춰 보니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과학의 역사를 따라 걷는 유쾌한 천문학 산책"이라고...엥? 뭐야? 그럼 여행이라는 말은 은유적인 것이었어? 그리하여 작가가 여행을 안 떠났다는 사실에 몹시 실망해서 본 책이 되겠다.읽으려 찜해 두었던 "적도 일주"( Latitude zero /마이크 혼 작) 와 헷갈린 모양인데,덕분에 어이없게도 난 내가 아직도 적도와 자오선을 구분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내가 길치인 건 하나도 이상할게 없으니 천부적인 자질 결여에서 기인한 것이 분명하다.

 

표지 설명 그대로 자오선을 따라 연관되어지는 과학의 역사를 들려 주고 있는 책이다.작가는 경도 0도 0분을 가리키는 영국의 그리니치 기념비에서 자오선이 어떻게 영국으로 지나게 되었는지부터 설명하고 있었다. 1884년 당시 프랑스의 거센 항의가 있었음에도 영국이 기준선으로 선정된 것은 그리니치 왕립 천문대만큼 우수한 천문대가 없었다는 것과 기타 여러가지 합리적인 이유가 작용했다고 한다.그렇게 기준선이 설정되고 난 뒤 세계 공통의 지도를 만들어 지기 장장 100여년이 지난 현재, 작가는 과거 천문학자들이 어떻게 이 지구를 관측하고 추리했었는가라는 역사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지금이야 지구가 공전은 물론이고 자전까지 하고 있으며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지구가 생물체라면 얼마나 어지러울까라는 상상을 하며 킥킥댄다.--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고,우린 태양에 비해 엄청나게 작다는 사실 정도야 기본 상식으로 알고 있지만,과거 인간 본위,신 본위의 시대를 거쳐야 했던 과학자들에겐 그 사실을 발견하고 받아들이기까지 무척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만 했다고 한다.

 

과학자들의 천재적인 발견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박해한 것은 비단 천문학자뿐만이 아니다.자오선 근처에서 다운 지역에서 살았던 다윈 역시 본인이 내어 놓은 학설 때문에 한때 곤혹을 치뤘다고 하니 말이다.

 

그렇게 자오선을 중심 축으로 지리에 관련된 이야기와 그 지역에 연상되는 과학 역사를  읊고 있었는데 결국 작가가 말하려는 골자를 추리자면 , 인간의 인지사史의 확장 경로를 보여 주려 한게 아닌가 싶었다. 고대 내(I)가 세상의 전부이던 시절부터 시작, 세계로 ,지구로,천천히 나아가 태양계,그리고 최종적으로 거대한 우주에까지 인식의 확장을 넓혀 가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었으니까.앞으로 어디에까지 우리의 인식이  확장될 건가 하는것은 아마도 미래에 달린 문제이리라...

 

과학사중에서 자오선에 관련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 내려 한 아이디어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지만,새롭다고 할만한 이야기가 별로 없었다는 것이 점수를 깍아 먹고 있었다.아직까지 갈릴레오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말했던 사실에 흥분하는 사람이 있을까?다윈이 우리는 원숭이의 후예일지도 모른다 라고 말했을 때 그럴 리가 없다 라고 발끈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되겠어.그렇게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의 짜집기 같다는 것 외에 그가 다룬  과학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그다지 통찰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읽는 재미를 앗아가고 있었다.그러게 여행을 떠나시지 그러셨어요?라고 중얼대면서 책을 덮었으니,아무래도 이번 주엔 "적도 일주"를 집어 들어야 겠다.고등학교때 문과출신이거나 과학 초보자들에게 과학 상식을 알 수 있는 책이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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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괴 랩소디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소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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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어요,직장 없어요,마누라 없어요,자식 없어요...있는거라곤 전과 기록뿐이여요.이라는 찬란한(?) 이력서의 소유자 38살의 히데요시는 홧김에 회사 사장을 폭행하고 뛰쳐 나온 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 시작한다.이제 갈 곳 마저 없다면서 처량한 신세를 한탄하던 그는 자살하기로 마음을 먹지만,어디 죽는건 쉽나? 자살하기도 마땅찮아 우울해 하고 있던 터에 천진난만한 6살짜리 아이 덴스케를 만난 그는 덴스케의 집이 부자라는 걸 알게 되고는 어차피 죽으려는 마당에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며 유괴를 계획한다.마침 덴스케도 집이 갑갑해 가출했다면서 히데요시와 함께 도망가는 것을 적극 찬성하는 통에 히데요시는 지지리도 운이 없던 자신의 인생이 이제서야 핀다면서 감격에 젖는다.

 

덴스케의 집에 협박전화를 한 그는 어렵사리 돈을 요구하고, 돈 받을 일만 남았다며 희희낙낙하고 있는 사이 덴스케의 집에선 난리가 난다.그런데 실은 어쩌다 우발적 유괴범이 된 히데요시가 반드시 알고 있었어야만 하는 사항이 있었으니,그것은 바로 덴스케의 아버지가 유명한 야쿠자 두목 시노미야 라는 것! 어떤 멍청한 놈이 경찰보다 무섭다는 야쿠자의 아들을 유괴했느냐면서 부하 야쿠자들이 설쳐대는 가운데 아버지 시노미야는 묵묵히 이를 갈면서 아들을 온전히 찾아오겠다고 다짐을 한다.그렇다면 이 운이 지지리도 없다 갑자기 운세 펴주신 사내의 유괴 일지는 이제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 것인가?대충 험난할 것이 짐작되시는겨?

 

세상에서 가장 재수 없는 유괴범이라는 말에 재밌을 것 같아 집어든 책이다.아무리 잔인한 소재라고 해도 작가가 다루는 방식에 따라 따스하고 가족적이고 인간애를 자극하는 작품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니까.읽어보니 역시나 작가도 그런 뜻으로 이 책을 쓰려 했다는걸 짐작할 수 있었다.유괴된 아이는 애초에 죽이는 것이 낫다는걸 알면서도 맘이 약해 죽이지 못하는 히데요시나 야쿠자의 아들임에도 천진하기가 천사못지 않은 엉뚱한 덴스케,그리고 잔학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면서도 아들이라면 벌벌 떠는 야쿠자 두목 시노미야.그렇게 지극히 귀엽고 인간적인 주인공 셋을 통해  별 무리없이 가족적인 따스한 정서와 감정선을 자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이 책은 시한 폭탄을 들고 있는 듯 안절부절 못하게 만들던 책이었다.아무리 이야기를 귀엽게 풀어가고 인명피해 없는 유괴사건이라고 해도 소재가 유괴라는건  여전히 끔찍했기 때문이다.거기다 곳곳에 등장하는 지극히 일본인 다운, 도를 넘어선 유머 감각에는 좀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잔혹 동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일본인의 정서는 보통 그런 모양이니,어쩜 일본 사람들에게는 재밌게 웃을 수 있는 심각하지 않는 소설일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하지만 한국의 정서를 가진 나로써는 것도 아이들에 대한 범죄라면 단박에 심각해지는 나로써는 미소 짓기가 매우 어려웠으니...그러니 말하건데 유괴범은 전혀 우습지 않다는 것이다.그리고 부탁건데 아덜은 그냥 행복하게 두란 것이지!! 유괴범을 미화하는건 절대 사절이랑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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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상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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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표지에 씌여진 "움베르도 에코의 최후의 걸작"이라는 문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왜냐면 전혀 걸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실은 수작이라고 하기에도 어쭙잖은  범작이었다.그렇다 보니 에코를  좋아하는 독자로써, 그가 이런 책으로 최후를 장식한다 것은 실망을 넘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기에 최후라는 말 역시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하기로 한다.비록 책을 쓴다는 것이 엄청난 에너지가 드는 일이고,더군다나 그처럼 꼼꼼하게 책을 쓰는 작가라면 더욱 더 힘이 들기야 하겠지만서도,'눈먼 자들의 도시'를 쓴 주제 사라마구도 80이 넘는 나이에도 탄탄한 작품을 쓴다는걸 감안하면 에코가 못할 것도 없지 않는가라는 근거 있는 낙관론에 희망을 걸어 보기로 한다.그럼 그럼,에코님이 이 책으로 끝을 내신다는건 절대 곤란하다.장미의 이름으로를 먹칠해도 분수가 있지 말이야,물론 그보다 먼저 자신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이겠지만...

 

성공한 고서적상 잠바티스타 보도니(=일명 얌보)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나보니 기억을 잃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자신과 관련된 개인적인 기록은 말끔히 삭제되었음에도 문자로 읽은 것들은 놀랄정도로 선명하게 남아 있더라는 점,덕분에 갓 태어난 아이처럼 모든 것을 새로 배워야 하는 처지에 놓였음에도 걸맞지 않게 시도때도 없이 튀어 나오는 풍부한 백과사전적인 지식은 그를  곱배기로 곤혹스럽게 한다. 개인적인 기억을 되찾기 위해 어린 시절  성장했던 시골집 솔라라로 향한 얌보는 그 곳에서 어린 시절의 장난감, 판화, 만화, 동화, 통속 모험소설, 고전소설, 대중가요, 교과서, 파시스트들의 정치 선전 등 온갖 것들을 찾아낸다.이 모든 잡동사니들을 본인이 자란 현대 이탈리아의 가장 파란만장한 시대에 맞춰 보던  얌보는 점차 자신의 성장사를  복원해 나가기 시작하는데...

 

얌보의 기억 되찾기 프로젝트라는 가면을 쓰고 있긴 하지만 올곧이 에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여주지 않는가 싶던,마치 자서전을 읽는 듯한 소설이었다.파시즘과 2차대전의 이탈리아를  다양한 텍스트를 들이대며 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었는데,시시콜콜한 이탈리아 미시사를 보는 듯 세세하기 그지 없어 종래는 지루해지는 것이 탈이었다.선동이 난무하고 황당무계한 모험소설이 주류인 그의 어린 시절의 텍스트를 들여다 보는건 그가 의도한 만큼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기 때문이다.이태리 사람이라면 혹시 그 당시를 되돌아 보는 것이 흥미로울지도 모르겠지만은 외국인이 보기엔 한 시대를 책 하나에 담았다는 의미 외에 다른 의미를 찾기란 조금 어려워 보이던 책이었다.

 

자서전적이라는 점에서 작년에 읽은 가브리엘 마르케스의<이야기 하기 위해 살다>가 연상이 되던데,두 작품을 비교해 보니 왜 한 작가는 노벨상을 타고 다른 작가는 타지 못했는지 확연하게 이해가 된다.쪽수만 놓고 보자면 비슷한 두께를 자랑하는 책이었음에도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다루는 둘의 시선이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마르케스가 사회 돌아가는 상황과 사람들에 날카로운 응시를 하고 있었기에 현란하달만치 정신 사나웠던 반면 ,에코의 관심은 그저 책,책,책& me였기에 아무리 풍부한 텍스트를 다루고 있다고 해도 생명력이나 통찰력,인간적인 온기라는 면에서 많이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다.쉽게 말하면 유치했다.지루할 지도 모른다는 각오는 했지만 유치할 줄은 몰랐기에 내겐 다소 충격이었다.책만 너무 읽으신 듯 보였다고나 할까?도무지 현실성은 어디다 버리셨을까 안타까웠다. 물론 무수히 많은 책에서 걸러 낸 짜집기 문장들이 책 속에서 적절하고도 매끄럽게 녹아 있는 걸 보는건 분명 마법을 보는 듯 매혹적이긴 했다.하지만 명문장들만 모아 놨다고 해서 이야기가 저절로 구성되는건 아니지 않는가? 안정효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속의 주인공처럼 말이다.멋진 문장에 시시한 이야기,참으로 부조화스런 이야기 전개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대해 영어판 번역자 제프리 브룩은 이 소설은 에코가 지성이 아닌 가슴으로 쓴 소설이라고 말을 했다고 하는데,공감 가는 말이다.거기에 한마디 덧붙이자면  에코의 가슴은 별볼일이 없었다는 것이다.이제 와서 빈약한 가슴을 보강하시기엔 너무 늦은 듯하니 ,그저 예전처럼 해박한 지성을 과시하는 유머 넘치는 글을 써주심 어떨까 싶었다.그의 탁월한 지성이 돋보이는 멋진 작품을 나와주길 기대해 보면서...

 

팁1---이 책을 읽으려면 이 책속에 언급된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을 하는 것 같던데,그럴 필요는 없지 않는가 한다.그 책들 몰라도 쉽게 술술 읽힌다.

팁2--이 책을 보면서 프루스트가 얼마나 천재인가 다시 한번 깨달았다.어린 시절의 기억을 다루는 점에서 둘이 비슷했지만 인간을 이해하는 깊이나 통찰력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그에 버금갈 만한 천재는 앞으로 영원히 나오지 못하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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