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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계절 1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
도나 타트 지음, 이윤기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맨처음 받아 들고는 한참 읽겠네 했다.두 권의 만만찮은 두께의 책,게다가 역자인 이 윤기 님이 까다로운 번역을 고쳐야 할 것을 생각하니 징글징글해서 재간 요청을 고사했었다고 하신다.긴장을 했다.장미의 이름을 떠올리면서...그런데,이틀만에 다 읽었다.궁금해서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간만에(?) 재밌는 책이라고 쓰고 싶지만 이 블러그에서 너무 우려 먹은 탓에 남발하는 것 같아 포기한다.어쨌거나 재밌었다.흥미진진,긴장도 100%에 분위기 확실하게 잡아주는 제대로 된 스릴러물.작가가 29살에 데뷰작으로 이걸 썼다고 하던데,그보단 8년간에 걸쳐 썼다는 세월을 더 눈여겨 봐야 할 것이다.그 정도로 공을 들인 소설이 분명했으니까.
햄든 대학의 대학 1년생인 리처드는 그리스어를 배우기 위해 줄리언 교수의 수업을 듣기로 결정한다.제자 달랑 여섯명의 선택된 자들만 모인 수업,고대 문학을 배운다는 공통점으로 뭉친 패쇄적인 그룹에 합류한 가난한 촌뜨기 리처드는 주눅이 든다.하지만 부유하고 우아한 친구들은 그를 친절하게 받아 들이고,차츰 그들과 한패가 되면서 그는 친구들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갈등하게 된다.대단한 부자고 천재지만 예민하고 냉정한 헨리,이복 쌍둥이 남매 커밀러와 찰스,동성애자인 프랜시스,부자라지만 알고 보면 막무가내 빈대 버니,그 속에 끼인 리처드는 차츰 그들 패거리에게 말 못할 고민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는데...
소설은 화자인 리처드가 버니의 죽음을 알리는 것으로 시작한다.그의 죽음에 자신이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면서...살인자의 고백이라,그는 라스꼴리니코프처럼 우리 앞에 대오각성하고 참회하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단지 어떻게 자신이 살인에 가담하게 되었는지 우리에게 설명할 뿐이다.그리고 그의 담담한 어조를 따라 가다 보면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살인자가 된 리처드를 이해하게 된다.나라도 그 수밖엔 없었을 것이다.이 부분에서 얼마전에 본 영화 심플 플랜 (A Simple Plan)을 생각나게 했다.처음엔 명쾌한 계획이었고,간단해 보였으며,다른 사람에게 해가 될거라 생각되지 않았고,그렇게 끔찍하지 않았다.하지만 눈을 뭉친 공처럼 굴러 갈 수록 일은 커져만 갔고 걷잡을 수 없이 꼬여간다.일의 수습을 위해 최선의 선택들을 하다 결국 친구까지 죽이게 되는 그들,너무 시달린 나머지 죄책감 마저 없었다.그래서...얄미운 친구를 영원히 잠재운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과연 그들은 평온한 삶을 되찾을 수 있을까?
상상력? --만점이다.햄든이란 가상의 대학이 내 눈앞에 실재하는 듯 생생하다.리처드 일당이 벌이는 이야기는 또 어떠한가?이야기 전개에 무리가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바람에 마치 진짜 살인자의 고백서를 읽는 듯했다.
통찰력? --물론 <장미의 이름>에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하지만 29의 나이에 이런 통찰력이라니... 기대 이상이었다.사람의 심리를 묘사하는데 모순이 전혀 없다.작가를 가리켜 천재라고 하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인간의 악을 이처럼 자연스럽게 이해한다니.부럽기 이전에 섬뜩 했다.그녀가 어떻게 성장했을지 (이 책은 15년전에 나온 것이다.)궁금하면서도 꺼려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소설적인 재미--완벽하다.지루할 틈이 없으니까.다음 장면에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계속 보게 하는 긴장감과 흥미로운 묘사,분위기 압도하는 장면들,적절한 대사,매력적인 사람들과 다양한 인물군상들이 대한 보고까지...다빈치 코드보다 훨씬 격이 있고 재밌었다.헛점을 발견하기가 매우 힘든 책이었다.
물론 걸작이라고 칭하는 책들에 비해 무게감과 균형감은 좀 떨어진다.인간의 내재된 악을 고발하느라 선은 도외시 하지 않았는가 싶다.하지만 그녀가 이 책을 썼을때가 29이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헛점이라고 떠들만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싶다.그보단 장점들이 훨씬 더 많은 책이었으니까.스릴러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