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서경식 지음, 박광현 옮김 / 창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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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아픔을 지닌 사람들은 서로에게 끌리는 경향이 있다.그러니 이 책의 저자가 레비에게 끌리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에 끌려가 인간이 겪어서는 안 될 일들을 겪고 나온 레비와 유신독재에 항의 했다는 이유로 두 형이 20여년의 세월동안 수감생활 하는 것을 고통스럽게 지켜본 서 경식.고통의 질과 양엔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만 보통 인간으로써 감내하기 어려운 시간을 보낸 것에는 마찬가지 아니겠는가.작가는 자신의 어두운 시절을 한가닥 빛으로 인도해준 레비가 87년 자살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아 그의 무덤에 찾아간다.이 책은 레비의 무덤을 찾아가는 여정속에서 레비와 그의 책에 대한 설명과 작가 자신의 삶에 대한 단상들을 잔잔하게 엮은 것이다.작가는 왜 레비는 자살했을까?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한다.삶의 긍정을 그렇게도 간절히 설파하시던 분의 자살이라니,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면서.

 작가의 의문에 난 오히려 반문을 하고 싶었다.왜 그가 자살하면 안 되는데? 자살=자기 본위이기에 레비같은 위대한 지성을 지닌 사람의 자살은 오점이라는 듯한 뉘앙스,그가 자살하지 않았다면 단순명쾌했을텐데 마치 그가 자살함으로써 그가 주장했던 모든 것을 뒤집은 것이라는 생각엔 공감 되지 않았다.레비가 자살하기 2주전 보낸 편지에 그가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싸우기 위해 무익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지만 아우슈비츠 만큼이나 상황은 최악이라고 썼다한다.그 말을 무심히 흘려 보내는 작가.내가 보기엔 그것이 그의 자살의 충분한 요인인데도 말이다.아우슈비츠에서도 살아 남았으니 겨우 우울증에 무릎을 끓었을리 없다는 태도는 사실 무지한 것이다.그리고 레비에게 너무 과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고.그는 철인이 아니다.이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냉철한 지성과 낙관주의,쾌활함,인간애를 지닌 사람이라는 것은 맞지만,그렇다고 그가 신은 아니지 않는가.레비의 책을 읽으면서 가끔 소름이 돋을 때가 있었다.어떻게 그런 상황을 회고하면서도 이 사람은 분노하지 않을까.어떻게 분노의 한자락도 내비치지 않을 수 있을까.독일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선 자신의 분노는 잠재워야 한다는걸 알만큼 성숙했던 사람,내뱉지 못하고 잠재운 분노가 어떻게 그를 갉아먹었을까 하는 것은 그만이 알 것이다.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그를 괴롭혔을까 하는 것도.단지 내가 바라는 것은 이젠 레비가 편하게 쉬셨음 하는 것이다.그리고 그건 아마 이 책의 작가 서경식님도 마찬가지일거라 생각한다.

 책의 많은 부분이 레비의 책의 부분부분에 대한 설명이다. (주기율표,이것이 인간인가?등등)난 유명작가의 책에 주석을 달아 쓴 책을 싫어한다.주석 달린 책을 읽고 있으면 왠지 내가 바보같이 느껴져서.원본을 읽어도 충분히 이해 되고 감동도 받는구만, 이렇게 주석달린 책들을 읽으면 그나마 내가 이해하고 있던 것에 확신도 없어지고,감동은 물건너 가 버린 이야기가 되버린다.주석은 어쨌거나 남의 견해가 아니겠는가? 책 하나 읽으면서까지 남의 견해를 참조해야 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좋은 책이다.하지만 레비에 대해 알고 싶다면 차라리 레비의 <주기율표>나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는 것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왜 레비가 자살했을까가 아직도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한마디 하자면,제발 이젠 그가 쉬게 두시길.그는 할만큼 했다.과거의 고통이 결국 그에게 짐이 되어 자살을 한 것이건 아니건 간에,하나님도 그의 자살에 뭐라 하시진 않을거라 본다.그러니 우리 인간은 그만 입다무는게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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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시크릿 - 세계를 움직이는 유태인.화교 부호들의 부와 성공의 조건!
마담 호 지음, 임수택 옮김 / 에이지21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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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고는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라서 부의 비밀이 뭘까 궁금해서 들여다 본 책이다.그런데 다 읽고 보니 그보단 삶을 살아가는 처세술정도로 생각되는 책이었다.
사람들은 부(Wealth)를 갈망하면서도 그것을 추구하는 것을 천시하는 경향이 있다.그건 부를 가진 사람들이 종종 행실을 원만하게 해내지 못해서 생긴 경험칙에서 파생된 것으로 그들이 이기적이고,거만하며,오만하고,물신숭배에,탐욕스럽고,속물에다 나르시스트적이라는 생각이 우리의 잠재의식속에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우린 부자가 되서 저렇게 인간성이 떨어질 바에야 그냥 인간성 나은 인간으로 살자며 자신을 위로하게 된다.(물론 어차피 부자가 될 가능성이 희박한 사람들에겐 인간성 좋다는 것이 마지막 위안처이기도 하다.)그런데 만약 인간성은 여전히 좋으면서도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준다면 어떻겠는가? 부자가 되는 것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겠지?부자가 되는 법을 알려 준다고는 하지만 정확히는 "존경받는 부자"가 되기위한 마음가짐자세를 일러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부에 대한 유대인들과 화교의 대대로 내려온 가르침들을 묶은 것으로,이 책에선 부자가 된다는 것은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설파한다.역경을 이겨내고,책에서 배운 지식이 아닌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쌓아온 상식을 바탕으로,늘 긍정적인 자세로 살다보면 저절로 부가 흘러 들어올 거라는 말,어느정도 일리 있는 말이다.긍정적인 사람들이 긍정적인 사람들과 기회를 끌어 들인다고 하는 것은 얼마전 읽은 "씨크릿"의 주요 테마이기도 했는데,시쳇말로 끼리 끼리 어울린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같은 에너지 끼리는 서로가 편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그리고 그건 기회 역시 마찬가지다.아이들을 가르쳐보면 그건 금방 알게된다.아무리 더 좋은 것을 가르쳐 주려고 해도,거부하는 아이들이 있다.그들은 선생들은 다 돈만 알고,알지도 못하면서 생색만 내며, 주제를 모르고 잘난척을 한다고 생각하고,절대 이타적인 행동을 할리가 없다고 믿는다.그들은 이 세상엔 자신을 도울 사람이 없다고 믿는데,결국은 그 자신의 믿음대로 된다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닐 것이다.그렇게 하다 결국 자신의 세계를 축소해 나가고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그걸 누굴 탓해야 할까.

이 책의 저자는 늘 깨여 있는 자세로 세상을 대할 것을 주문한다.무감동,무관심,무감각을 가진 사람들은 정확히 이기적인 사람이라면서.늘 배우는 자세로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해나가고 배워나간다면 언제나 부를 향한 기회는 찾아올 것이라고.그 외에도 여러가지 삶을 살아가는 좋은 조언들이 들어 있는 책이었다.딱히 부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도,멋진 삶을 위한 자세를 배운다는 면에서 괜찮은 책이었다.오래 묵은 지혜는 틀리는 법이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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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8일 남장체험 - 남자로 지낸 여성 저널리스트의 기록
노라 빈센트 지음, 공경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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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 책을 보려는 내가 이해되지 않았었다.참,취향도 특이하다.아직도 남자에 대해 알고 싶은게 많아서 굳이 이 책을 봐야 겠단 말이지...쫑알쫑알 불평을 늘어 놓으며 집어 들었다.글쎄,별게 있겠어? 시시할 거야,취지야 거창해 보이지만,결국 누구나 다 아는 말만 늘어 놓다 말걸?이라면서.그런데.이런, 내 예상을 묵사발로 만들었다.신선하게도.놀랍게도,그리고 고맙게도.읽어가면서 내 가슴 밑바닥에서 오랫동안 이런 책이 나오길 기다렸다는걸 느낄 수 있었다.늦은감은 있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것이 다행스럽다.그럼,어디,내가 왜 고마워 하는지 한번 들어 보실라우?

 레즈비언 노라 빈센트는 남자들의 정체가 궁금해서 남장을 하고 그들의 세계로 잠입한다.볼링팀원,스트립클럽 단골 손님,수도원과 여자와의 데이트,그리고 영업사원등으로 548일동안 남자로 살아본 그녀,자유롭고 원하는대로 사는 줄로만 알았던 남자들의 생활이 그녀의 기대와는 다르다는 것에 경악한다.허세를 부리면서,강한 척을 하며 살아가는 그들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남자로 살면 편할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로 너무도 힘들었고,그 힘듦을 하소연하는 감정의 토로마저 남자들에겐 허용되지 않았다.페미니스트들이 주구장창 읊어대는 남자가 여자를 착취하고 이용한다는 주장은 남자에겐 억울한 일이었던 것이었다! 이 책을 보면서 왜 남자들이 페미니스트들을 밉살맞은 늙은 마녀 보듯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그녀들은 자신들의 고통만을 주장할 뿐, 남자들이 자신도 고통스럽다는 항변은 꺼내지도 못하게 했으니...

작가는 남자들이 아트라스처럼 두 어깨에 세상을 올려 놓고 사느라 자신의 삶을 돌보지 못한다는 것에 안스러워한다.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 들이는 여자들을 향해 분노의 화살을 돌린다.최소한 고마워라도 해야 하는거 아니냐고.동감한다.우린 세상을 어깨에 짊어질 생각조차 안하면서 남자라면 의당 그래야 한다고 몰아 세웠으니까.그것이 당연한게 아니란 것을 알려하지 않았고, 그들에게도 힘들고 두려운 일이란 것을 짐작조차 안했다.왜 우린 이렇게도 잔인했을까.반성이 된다.물론 변명을 할 수 있다.우린 무지했다고.그리고 남자들의 가면이 너무도 완벽해서 알아차리기 어려웠다고 말이다.작가에게 고마워 하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그녀가 아니었다면 우린 여전히 남자들이 내뱉지 못하는 말들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미련스럽게도...

 548일동안 남자로 살았던 노라는 결국 그 댓가를 독톡히 치룬다.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 혼란이 온 것이다.그녀는 휴유증을 치료하면서 깨닫는다.여자로 사는 것이 그녀의 정체성이고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상상이상이었고,그 간격이 너무 커서 교차점이 없다는 것도.그리고 어느 성도 세상을 사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한다.결국 남자와 여자,우리 지구인들은 지구상에 어쩌다 떨어져 무진장 허덕해면서 살아가는 가엾은 존재들에 불과한 것이다.그리하여 결론은 남자들에게 따스하게 대하자였다.그들도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이기에.여자들처럼 말이다...

이 책을 보면서 가장 공감 가는 대목은 끔찍한 데이트 상대인 여자들을 참아 줘야 하는 남자들의 비애를 다룬 것이었다.난 왜 남자들이 자신들에게 함부로 구는,다시 말하면 남자들의 선의를 이용하는 여자들을 가만 두고 보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바본가?그런데 이 책을 보니,그들이 단지 참고 있다는 것을 알고선 미안했다.우리가 폭력적인 남자들을 참아 주는 것처럼 그들도 자신만 아는 무례한 여자들을 참아 주고 있었던 것이었구나...여자들이 이 책을 많이 읽었음 좋겠다.그래서 우리 사랑스런 남자들을 다독일 수 있는 날들이 빨리 왔으면 한다.그들이 행복해야 우리도 행복한거 아니겠는가?사랑은 이해를 바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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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 키퍼 1
킴 에드워즈 지음, 나선숙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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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당신은 가슴 아픈 일을 많이 피해 갔어요.하지만, 데이비드,당신은 기쁨의 기회도 그만큼 놓쳤어요.>

두려움이 인생을 지배하게 두지 말라고,두려움으로 인한 선택을 하지 말라고,두려움에 져선 안된다는 말을 우린 종종 듣는다.하지만 당연하다는 듯 그 말에 고개를 끄떡이는 사람도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선 어떻게 행동하게 될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여기 두려움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한 사람이 있다.그것이 자신의 평생을 짓누르는 죄책감으로 남을 것이란 것을 알지 못한 채,그것만이 가족을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한다.과연 그 결정이 그의 생각대로 가족을 보호해 줄 수 있었을까? 여기 그에 대한 해답이 있다.

 의사인 데이비드는 자신의 딸이 다운증후군으로 태어 난 것을 보자마자 시설에 보낼 것을 지시한다.남몰래 그를 짝사랑하고 있던 케롤라인 간호사는 내켜하지 않지만 아이를 데리고 시설로 간다.하지만 시설은 아이가 자라기엔 너무도 열악한 환경,갓 태어난 연약한 아이를 안고 어쩔 줄 몰라하던 그녀는 자신이 키우기로 마음을 먹는다.그리고 다른 도시로 가서,형편 없지만 둘 만의 새 생활을 시작한다.

아이가 쌍둥이었는데, 딸은 죽었다는 말을 들은 데이비드의 아내 노라는 아들 폴을 키우면서도 딸을 잃은 상실감을 주체하지 못해 한다.게다가 나날이 보이지 않는 벽을 주위에 치고 살아가는 남편은 점점 그 속을 알기 힘들게 되고,서서히 집안은 침묵과 불만과 뱉어 내지 못한 말들로 가득차게 된다.자신이 아내를 위해 옳은 일을 한거라고 믿은 데이비드는 그러나 딸을 보내 버림으로써 아들과 아내에게도 다가가지 못하는 자신을 보자 절망한다.결국 그는 말하지 못하는 고통과 죄책감,그리고  아이가 커가는 것을 보지 못한다는 그리움에 사진이란 자신만의 세계로 침잠하게 되는데...

 인간의 탄력성은 무궁무진하다.실패,실연,충격,고통,상실...사람들이 그 모든 것들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살아가는 이유는 우리의 탄력성 때문이다.우린 적응하고,살기 위해 방법을 찾으며,운이 좋으면 깨달음도 얻고,더 운이 좋으면 행복이나 기쁨까지 얻는다.아무렇지 않게 상대에게 내뱉는 "힘내라!"는 말은 그에 대한 우리의 기대이자 축복을 담은 말이 아니겠는가.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 데이비드는 그것을 믿지 못했다.아내와 아들에게 완벽하고 고통없으며 부족함이 없는 세상만을 물려 주고 싶어 하던 그,자신이 버리는 것이 자신의 혈육이고,그것이 평생 그를 따라 다닐 것이란 것을 알지 못한다.옳은 결정을 한 것이기에 어떤 고통이든지 감내할 거라 그는 확신했지만, 틀렸다.그 누구도 비밀을 간직한 채 행복할 순 없으니까.그는 불필요한 가슴 아픈 일을 피해가는 것에만 급급하느라,그 가슴아픈 일들을 겪으면서 자신이 누릴 기쁨도 있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 버린다.

 그러나 ,난 데이비드를 단죄할 수 없었다.겁장이었다고 누군가를 비난할 만큼 난 용기 있는 사람이 못된다.하지만 안타까웠다.그가 흘려버린 낭비들이,그가 겪지 않아도 되었을 짐과 고통과 죄책감이...딸도 가족이니 가족안에서 해결 하려 했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우리가 가족에게도 의지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정말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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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뜨거워 Heat
빌 버포드 지음, 강수정 옮김 / 해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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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리 작가가 주방으로 간 이야기는 흔지 않다.정신노동자와 육체노동자간의 보이지 않는 선이 엄연히 존재하기에.그나마 기억 나는 책이라곤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 유일한데,별 다섯개가 아깝지 않은 수작으로 내가 좋아하는 책중 하나다.그런데 이제 그에 못지 않는 책이 나왔으니,자랑스럽게 소개하자면 바로 이 책이다."그래,이거야!이 정도는 돼야 책이라고 명함을 내밀어도 부끄럽지 않지,"탄성이 절로 나왔다.완벽한 책이었다.한순간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으면서,탄탄한 글솜씨를 보란듯이 자랑하던.어디다 내놔도,누가 뭐라 해도 상관없다.이 정도는 돼야 읽을 맛이 나지.유머와 재치,퉁명스럽게 할말 다 하면서도 사랑스럽고,현장감,솔직함,등장인물들의 톡톡 튀는개성,통찰력,다양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객관적이고 편견없는 시선,그 시선속에 잡히는 삶의 현란한 모습들까지 담겨 있던,단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 내가 이 작가처럼 현명하고 흥미진진하게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부러웠다.

<뉴요커>의 잘 나가던 기자 빌은 뉴욕의 유명한 이탈리안 레스토랑<밥보>의 천재 요리사 마리오 바탈리를 만나자 곧 그의 요리에 대한 열정과 광기서린 매력적인 인간성에 매료된다.그래서 그길로 팬대를 쥔 채,밥보의 주방 보조로 들어가는데, 40살 중반의 나이에,무엇보다 체력이 받쳐주지 않을거란 우려를 뒤로 한 용감한 결정이었다.주방이 작아 요리사들이 숨 쉴 공간도 없다는 곳을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서는 살아남기 위해 눈치껏 요령껏 최선을 다하던 그.그가  최대 노동에 무임금,이보다 더 비참할 수없다는 노예 계약을 기꺼이 받아 들이고 서서히 몸으로 일한다는 의미를 체득하게 되는 과정들이 유머러스하게,감동적으로,설득력있게,그리고 무엇보다 주방속을 들여다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었다."이때가 아니면 언제 또 이렇게 많이 배우랴"는  정신 하나로 버티기로 일관하다 승진을 거듭,라인 하나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능력이 일취월장하게 되는데,그 짬짬히 이탈리아로,영국으로,프랑스로 넘나들며 맛의 진정성과 호기심을 충족하는 여정도 보여 주고 있었다.

 주방안의 일상들이 적나라하게 까발려 지던 책이다.자판만 두들기던 사람이 격한 노동의 현장속으로 들어갈 결심을 한 자체가 대단한 일일 것이다.하지만 작가 빌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그는 요리사들과 동화하고,이해하려 노력하다,마침내 동료가 된다.덕분에 난 주방안에 갖힌 유령같은 존재였던 요리사들을 제대로 그려 볼 수 있었다.그들도 우리와 같은 성깔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그리고,요리는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요리사가 된다는 것은 선천적인 미각과 고된 노동을 두려워 하지 않을 체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됐다.쉬워 보일지 모르는 요리 하나하나가 실은 오랜 시간을 들여 개발하고 연구해,땀을 흘려 만들어 낸 것이며,집에서는 레스토랑같은 깊은 맛을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 주방에서 갖가지 요리의 레시피를 외워 주문에 맞춘다는 것이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란 것,그리고 늦은 밤에 주문을 하는 눈치 없는 사람은 욕을 바가지로 얻어 먹는단 사실,때론 요리에 어떤 성분이 들어가는지 모르고 먹는게 약이라는 충고,주방장이 되기 위한 요리사들의 암투와 그들만의 세계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이탈리아에서 만난 푸주한 다리오를 통해 좋은 먹거리를 지키기 위해 벌이는 그들의 고집에 대해서도.작가는 이태리인들의 제대로 된 먹거리에 대한 고집에 경의를 표하면서  말한다.좋은 음식은 오랜 시간을 두고 조리한 것일 수밖엔 없다면서,패스트 푸드의 천박함에 길들어 지고 있는 둔감한 현대인들의 미각에 경종을 울린다.

 매력적인 책이다.요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의 빈틈없이 재빠른 눈에 포착된 개성 넘치는 사람들의 사연을 읽는 것만으로도 재밌을 것이라 생각된다.좋은 사진 작가는 피사체의 개성을 포착해 낸다.좋은 작가도 마찬가지다.책속의 등장인물들이 그대로 튀어 나와 쌩쌩 돌아 다니는 듯한 마법이 느껴지던 책,맛깔나다란 형용사는 이 책엔 현저히 부족하다.이 책 자체가 진부함이 전무한 책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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