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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이언 매큐언 지음, 이민아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아내는 변호사,딸은 갓 등단한 유망한 시인,아들은 재능 넘치는 음악가로 남 부러울 것이 없는 삶을 꾸리고 있는 헨리는 직장에서도 인정받는 유능한 신경 외과 전문의다.2003년 3월 이라크 전쟁 반대 데모가 예정 되어 있는 어느 토요일,그의 평범한 일상은 불량배의 차에 접촉사고를 당한 뒤 예기치 못했던 방향으로 치닫는다.막가파 불량배들이 그를 쫓아와 집을 점령한 것,평생 그 누구도 때려본 적이 없는,환자를 살리기 위해 머리만 써온 헨리는 과연 집에 침입해 가족을 위협하는 괴한들을 물리칠 수 있을까?.연약해 보이는 그의 가족들과 그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시대의 최고 지성이라고 하는 이언 매큐언의 신작이다.쓸데 있는 말이 별로 없다는 것만 빼면 너무도 훌륭한 글솜씨었다.군더더기 없이,정확한 속도로,막힘없이 흘러가는 문장들,탁월했다.말이 어찌나 많던지..그럼에도 거침 없이 술술 넘어가 금방 읽힌다.무거운 소재를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다루던 유능함,아마 작가는 자판기 앞에 앉기만 하면 저절로 글이 따따따따 써지는 글쓰기의 달인이 아닐까 싶다.처음부터 끝까지 한치의 흐트러짐 없는 품격을 유지하던, 꽉 짜인 소설이었다.그리고 딱 여기까지가 내가 이언 매큐언에게 감탄한 부분이다.
그리하여 감탄하지 않은 부분을 열거하자면...
<줄거리>별 볼일 없다.누가 봐도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뇌 전문의 헨리와 누가 봐도 좌절 인생인 깡패 박스터의 충돌,충격 받아야 할까?의외의 사건인가? 전혀.
<폭력 수위정도> 이 정도면 온화하다.한대 맞고,칼로 위협 당하고,욕설 좀 들은 걸로는 박진감 넘치는 폭력이라고 하긴 멋쩍지 않은가.
<등장인물>헨리와 그가 사랑해 마지 않는 그의 가족들,내겐 별로 사랑스럽지 않았다.등장인물중 매력적인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그건 이미 실패한 소설이다.
<불필요한 수술과정들>2년 동안 전문의들을 달달 볶으며 취재했다더니 수술장면들과 의학 용어들이 넘쳐 난다.톰 행크스가 "아폴로 13"을 찍으면서 진짜 우주 비행사다워 보이려 끊임없이 질문해대다 결국 관계자들을 진저리치게 했다는 일화가 떠올랐다.이 작가도 얼마나 열심히 파고 들었으면 주인공 헨리는 진짜로 뇌전문의 같아 보인다.생각도 그렇게 하고,사물도 그렇게 보며,행동도 그렇게 한다.그런데 이 책은 의학서적이 아니란 말이지.왜 독자들이 수술 과정들을 자세히 알고 싶어할 거라고 믿었는지 모르겠다.전혀 알고 싶지 않던데.
<이라크 전쟁을 지지할 것인가 ,반대할 것인가?>로 고민하던 작가.이 시대의 작가로써 전쟁에 대해 한마디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꼈을 것이란 것은 이해한다.그리고 그가 폭력에 반대한다는 것도 충분히 알겠다.그런데 결론이 뭐냐고요? 그리고 전쟁이 주인공이 불량배에 얻어 터진 것과 비교가 된다고 이 작가는 생각하는 모양인데,거시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모자랐던 것이 아닐까 싶다.
<결말의 난데없음>죽어가던 깡패를 살려내고 하루를 마감하는 주인공,폭력에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응대해야 뜻으로 내린 결론일까?난데 없는 선한 사마리아인 식의 결론이 생뚱맞아 보였다.모든 이슈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겠다는 작가의 욕심이 소설의 줄거리에 맛깔나게 용해되지 않은 듯 보이던,한마디로 글은 넘치도록 잘 쓴 책이지만,재미는 전무했다.이 리뷰를 이토록 길게 쓰면서 내 뇌리에 떠나지 않는 생각은 그냥 재미 없음.이라고 쓰면 안 될까였다.그걸로 충분할텐데 하면서...
<결론>그리하여 앞으로도 난 쭈욱~~ 이언 매큐언을 안 좋아해도 되겠다는걸 확인했다.그리고,그것이 그나마 이 책을 읽고 나서 건진 유일한 소득이다.인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