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꽃밭
최인호 지음, 김점선 그림 / 열림원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꽃밭에서>란 노래가 들려오면 언제나 넋을 잃고 듣게된다.멜로디도 아름답지만,특히 "이렇게 좋은 날에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가사부분에 이르면 늘 생각에 잠기게 된다.그래,얼마나 좋을까.가슴이 설레겠지?그런데 그 가사의 원작자가 세종조 최한경이란 분이란 것을 이 책을 보고 알았다.난 이 봉조님이 쓰신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하긴 그 누가 썼던 무슨 상관이랴.시 한줄이 주는 감동은 변함없는데.조선조 선비의 멋진 낭만을 들으며 현대 우리의 천박한 심성으로는 감히 읊지 못할 선조의 풍류가 부러울 뿐이다.
그 최한경님의 연시에서 제목을 빌려 왔다는 최인호님의 글 모음집이다.<꽃밭>이란 제목에 걸맞게 책 속에 꽃이 피여 있었다.김점선님이 그림을 그려 주셨기 때문이다.남이 (그림이)아름답다고 하건 말건 내 맘에 든다고,그거면 됐다고 하시던 김점선님,내 생각도 그렇다.책장을 넘길때마다 피어 있던 꽃들,아름답다는 말은 적절치 않다.그냥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어디 꽃만 꽃이랴.사람이 그린 꽃도 꽃이다.꽃밭에 앉아서 책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그래서 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최근 10년동안 쓰신 짧은 글들,단편 소설집이라기 보단 최인호님의 현재 살아가시는 모습들의 투영처럼 보였다.다혜와 도단이 이름도 오랜만에 들었다.그들이 벌써 시집가고 장가가고,외손녀까지 보셨단다.^^ 아이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니 아내에 대한 이야기가 부쩍 많아진 것이 눈에 뜨인다.최근 전 변실장같이 철들지 않는 중년 남자들의 행태에 눈살 찌프려지는 나로써는 최인호님의 글이 단비처럼 반가웠다.어디선가는 서로를 아끼며 살아가는 부부가 있어야 희망이 있는거 아니겠는가? 천주교에 귀의하신 뒤라 종교에 대한 이야기도 있는데,남에게 설득이 어렵다는 것을 아시기에 주저하는 모습들이 재밌었다.나는 믿지만 너보고 믿으라는 것은 아냐,하시는 모습이.세월이 흘러 노인이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 나이가 되셨단다.주위 분들이 서서히 한분 두분 돌아가시니 상심도 하신다.하지만,인생의 여백이 많은 분이시니 어린왕자가 오늘 방문한다해도 대화 하시는덴 지장없지 않을까 한다.통찰력과(피카소를 거쳐간 여자들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그는 자신외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말씀엔 전적으로 공감한다.),물과 같이 욕심이 없으신 것,태양처럼 솔직하신 것,쉽게 쉽게 쓰시고,폼 재시지 않는 것,나만을 따르라는 자의식 과잉이 없는 것,여성을 폄하하시지 않는 것,선하게 살아 가시려는 시선들이 보기 좋아 보었다.이런 말을 하면 주제 넘는 이야기일테지만,난 최인호 님이 착해서 좋다.그의 아내분도 착해서 좋고,들려시는 주변 사람들이 다 착해서 좋다.안심이 된다.더 착하게 살아야 겠단 생각이 든다.혼란스런 세상이다.아니라고 부인도 해보고,원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런 것이라고 자조도 해보지만,혼란스러운건 고통스러운 거다.다들 자기 하고 싶은대로 널뛰기 하듯 그렇게 살아가는 세상,난 질서없는 세상 풍경에 신물이 난다.이럴 때 이런 책이 그래서 위안이 된다.소박하지만,거창한 인류 구원의 메시지가 담긴 것은 아니지만,그래도,그래도,그래도,위로가 된다.한 세상을 잘 살아오신 어른의 말씀이고,그림이기에...믿음직한 삶의 선배가 있다는 것은 그래서 우리에겐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