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7년, 근대의 탄생 - 르네상스와 한 책 사냥꾼 이야기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이혜원 옮김 / 까치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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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를 피해 달려라~~~라는 말이 어쩜 인간사를 한마디로 압축한 것이 될 수도 있겠다는 것이 이 책을 내려 놓으면서 든 생각이다. 인간은 얼마나 무지하고, 야만적이며, 잔인하고, 비합리적인데다, 편견에 사로잡혀 있고, 완고한지...종종 이런 저런 역사를 뒤적이다 보면 한숨이 나올 때가 부지기수다. 그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과거에 살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고나 할까. 적어도 지금은 신을 믿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고, 신이 없다고 생각한다고도 꺼리낌없이 말할 수 있으며, 지구는 해 주위를 열심히 돌 뿐이라고 주위에 소란을 벌이지 않으면서 말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리처드 도킨이 < 만들어진 신>라는 책에서 신은 없다는 과학자로써 지극히 당연한 말을 하는데도 벌벌 떤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개인이 신을 안 믿는다는 것과는 별개로 신이 없다고 선언하는 것은 전통적으로, 화형에 처해질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 책 속에서 보듯, 당연한 말을 당연하게 했을 뿐인데도, 다들 고문과 형편없는 대우속에 비극적인 최후를 보내야 했던 사람들이 비일비재했다는 것을 나는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과거의 잔재속에 살고, 그런 과거의 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이들이라면 조금은 겁을 집어 먹는게 당연하지 않을까. 내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말 일 지라도 , 그것이 아무리 진실에 근거한 것일지라도, 그것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역사가 증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보니 추측해보게 되는 것이다. 과연 과거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갔을까? 분명 지금과 똑같이 우리처럼 생각하고 지식을 키워 나갔을텐데, 그들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상식에 어떻게 도전을 했던 것일까? 거기에 대한 해답이 궁금하신 분들은 이 책을 보시면 되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이야말로 과거 합리적인 것과는 결연히 담을 쌓고 살았던 유럽 중세 시절, 근대로 향한 광명의 문을 열어 제낀 한 사내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가 누구냐고? 바로 그가 포조 브라촐리니다.  


그가 누구신지 모르시겠다고? 당연하지. 역사적인 맥락에서 보자면 그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그저 비천한 가문에서 자라나, 재능 하나만으로 교황의 비서 자리를 꿰차고 그럭저럭 죽음을 당하지 않고 78세까지 산 덕분에 한 도시의 총리도 하고, 여러 자식을 거니르고 살았던 한 사내에 불과하니 말이다. 아무도 그를 기억해야 할 필요도, 기억하고 있는 사람도 없는 그저 평범한 과거속의 한 인물이었을 뿐이다. 이 책의 저자가 난데없이 그를 무덤에서 발굴해 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책의 시초는 저자의 하버드 대학교 시절, 암울한 시간을 견디고 있던 그의 손에 우연히 한 권의 책이 들어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건 바로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라는 것으로, 그리스도가 태어나기 100년전에 쓰여진 그 책은 당시나 지금이나 깜짝놀랄만큼 위험한 사상이 들어있었다. 2천년 조금 남짓한 세월을 묵은 것이라도 여전히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통찰력이 살아있다는 것은, 단지 문장이 가진 생명력이 그만큼 탁월하단 뜻이었으니 말이다. 읽는 자체만으로도 사람의 이성을 일깨우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 책은 당시 인생이 의문과 우울 자체였던 저자에게 광명과 같은 빛을 던져 준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후에 저자로 하여금 어떻게 이 책이 중세의 암흑같은 시기를 살아남아 후대에게 전해지게 되었는지 관심을 갖도록 하기에 이른다. 그리곤 뜻밖의 사실에 저자는 놀라고 만다. 이 책을 중세의 무지와 불구덩이 속에서 건져낸 것이 바로 교황의 비서 출신의 한 필사가였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누구보다 종교의 중앙에 서 있는 교황의 최측근이, 우주는 신의 도움 없이도 움직이고, 사후 세계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렇기에 가장 좋은 것은 현재의 삶을 즐기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책을 수도원 먼지 구더미 속에서 구해내 유포시켰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이율배반적인 사건이었으니 말이다. 그것이 이 저자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루크레티우스는 과연 어떤 사람이였길래 2천년전에 저런 글을 아무렇지도 않게 써 갈겼으며, 그의 글에 동조했던 당시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사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리고 이런 불온한 사상이 담겨진 책을 열정을 담아 구출해 낸 중세 포조란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라는 상상...포조는 과연 이 책의 내용을 과연 알고 필사해 낸 것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히 고대 책에 대한 열정 때문에 내용을 알지도 못한 채 세상에 내보낸 것일까?이런 호기심은 저자로 하여금 이 책이 처음 출간된 2천년전의 그리스와 이 책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구원받게 된 중세 시절을 탐구하게 하기에 이르는데..저자가 가진 의문과 호기심에 답하고 있던 책이 바로 이 것이 되겠다. 과연 저자는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결국 저자가 궁극적으로 묻고 있던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과연 우리보다 더 먼저 살았던 사람들은 우리보다 멍청했을까? 아니면 우리보다 더 똑똑했을까? 과연 똑똑했다면 그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우리보다 배운 것도 적고, 이런 저런 미신에 시달렸으며, 과학적인 사고는 전무한데다, 이성이라고 할만한 싹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인데 말이다. 그것에 대한 해답이 바로 이 책 안에 있다. 뭐라 할까? 인간이 언제나 대단한 존재들이었고, 결국 시대를 넘나들면서 남겨지는 것들은 진실밖엔 없구나라는걸 깨달았다고나 할까. 진실만이 시간을 견디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다만 인간이 그걸 자각할 수 없는 이유는 그 누구도 2천년을 살지 못하기에, 그걸 볼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일테지만서도..아무리 똑똑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천년의 시야를 가질 수는 없는 법이니 말이다.


인간의 무지와 대비해 꺼지지 않는 불꽃인 이성, 그리고 중세를 바라보는 탁월한 내지는 통찰력있는 시선이 압권인 책이다. 다만 걸리는 점이라면 중세의 암흑기를 끝낸 시점으로, 그리고 근대를 탄생하게 한 시점으로 저자가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가 포조에 의해 발견된 1417년으로 본다는 것은 물론 조금 비약한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 책이 후대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세익스피어, 몽테뉴, 그외 다른 과학자들까지...--근대의 합리적인 정신을 함양하고 확신을 얻게 해주었다는 저자의 주장이 맞다고 한들, 책 한 권으로 인해 역사의 방향이 바뀌었다고 주장하는건 좀 너무 오바한 게 아닌가 싶다. 물론 그거야 적당히 가려 들으면 되는 것이니 신경 쓸 부분은 아니고, 그보다 더 관심을 갖고 지켜 봐야 하는 것들이 바로 근대의 사상을 형성하게 했다는 그 유명한 책에 대한 것이다.


듣고보니 정말로 그 책은 대단하더라. 2 천년전에 쓰여진 것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통찰력이 넘쳤으니 말이다. 이런 내용이 2천년 전에도 쓰여졌다는걸 생각하면 우리는 양적인 면에서는 문화적 진보가 이뤄졌다고 자부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질적인 면에서는 과거보다 낫다는 말을 하기 힘들겠다 싶었다. 우리가 한 생각들은 과거 우리 선조들도 다 한 생각들이라는 것은 도무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2천년전 사람들이 다 이미 알았던 것들을 아직도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은 부끄럽기만 하다. 물론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들이 어떻게 그런 생각들을 해냈는지 놀라울 따름이고, 또 그런 놀라운 사상들이 이단이나 불온하다고 박해받고 처단되었다는 사실에는 어이가 없을 뿐이다. 개개인인 인간은 천재일 수 있을지 모르나, 대중인 인간은 우매할 가능성이 더 높은 것 같으니...어쩜 가장 무서운 것은 대중이라는 이름의 무지와 무관심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보자면, 우리 인간은 정신적인 면에서는 전혀 발전을 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지 싶다. 아무리 최고를 갖다 줘도 알아보지 못하며, 그것을 배우지 조차 못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인간이라는 종은 이러니 저러니 잘난 척을 해도 결국 성장을 하지 못한 채 한 자리만 맴돌면서 어제 배운 것을 오늘 잊어 버리는 존재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우리가 여전히 옳다 그르다를 반복하고 있는 주제들에 대해 2천년 저자가 이미 명쾌한 해답을 내놓았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다. 우린 어쩜 답을 모르는게 아니라, 답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답을 알려 줘도 망각 속으로 밀어넣은 채 다시 어리석음과 무지의 향연을 벌이면서 인생을 낭비하고 있겠지. 우리는 무지를 피해 열심히 달리고는 있지만, 그것이 이성이 아닌 또 다른 무지를 향해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늘 생각해 봐야 겠다. 다소의 비약스러운 점은 무시 못하지만, 그럼에도 <사물의 본성>이란 책을 알아본 저자의 안목에서 보듯, 간간히 통찰력이 번득인다. 그것이 그가 그렇게도 받들어마지 않는 <사물의 본성>처럼 이 책의 생명을 길게 만들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서...여러면에서 읽을만하다. 재밌는 것은 얼마전에 몽테뉴를 다룬 <내가 고양이를...>를 읽으면서 오히려 그를 잘 모르겠다고 투덜댔는데, 이 책속의 몽테뉴는 그보다 선명하게 조명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고양이>가 책 한 권 속에서도 보여주지 못한 몽테뉴의 진가를 이 책속 단 몇 줄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되는 것일까? 그만큼 이 저자의 통찰력이 대단했다는 뜻이겠지. 흥미로운 책 사냥꾼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시는 분들은 어쩜 실망하실지도...책 사냥꾼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아닐 수 있으니 말이다. 그보단 암흑의 시기에도 진보적인 자신을 외면하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는게 맞지 싶다. 인간의 정신력의 위대함을 보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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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 그래닛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8
스튜어트 맥브라이드 지음, 박산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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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버딘은 여기 나온 것처럼 정말 그렇게 나쁜 곳은 아닙니다.


                제 말을 믿으세요.' --------------이 책의 저자 스튜어트 맥브라이드



이건 말이 안 되지. 한 구역을 관할하는 경찰서를 중심으로, 이렇게 강도높은 끔찍한 사건이 이렇게 적은 시간안에 연타적으로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만약 그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애버딘이란 곳 정말 사람 살 곳이 못 되는구만...라는 생각이 들즈음,  마지막 페이지에 적혀 있는 저자의 저 말에 실소하고 말았다. 아마 저자 역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애버딘에 대해 혐오에 가까운 감정을 가질 것이라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저런 말을 뒤꽁무니에 매단 것을 보니 말이다. 만들어 낸 이야기고, 픽션이기 때문에 현실과 혼동하지 말아 주셨음 좋겠다고, 특별히 저자가 저런 말을 한 것은 이 책의 배경이 애버딘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쉴새없이 사건 사고가 터져주는...


보통 스릴러 소설의 예를 들어보자. 그런 소설에서는 멋쟁이 형사가 나와 한 가지 사건을 주구장천 풀어가거나,내진 연쇄 살인범 하나를 쫓는다거나, 활극을 벌이는게 대부분이다. 이 소설이 다른 소설과 다른 점이라면 이 책은 주인공인 형사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것보단 경찰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돌아간다는 인상이 짙다. 한마디로 사건 사고가 너무 많이 나서, 주인공 형사는 그걸 쫓아다니기도 벅찰 지경이다. 사건에 인간이 치이는 대표적인 경우랄까.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시체들이 꾸준이 양산되는 관계로, 주인공 형사가 하는 일은 시체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듣고, 검시관이 오기전에 찾아가서 구토를 하고, 그리고 시체를 이렇게 만든 놈을 반스시 처단하겠노라 열정을 불사르고, 유가족이 있다면 가서 가족의 죽음을 알려주고, 사건을 수사한다고 이리저리 추리하고, 그러다 다시 시체 발견했다는 소식을 듣고....의 무한 반복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중 간간히 때려쳐 맞고, 때리기도 하고, 신문 기자에게 난도질도 당하고,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도 당하고, 전 애인에게 눈흘김도 당하고, 까칠한 상사에게 종종 까이고...이렇게 하면 대충 이 책의 윤곽이 나오지 않았는가 한다.


단점이라면 지나치게 사건이 많다. 정신없이 돌아치는데, 과연 이렇게 작은 도시에서 이렇게 끔찍한 사건이 줄줄이 이어진다는게 가능할까 싶었다. 이런 사건이 우리 마을에서 하나라도 벌여졌다고 하면 족히 30년 정도는 그 이야기 만으로 주민들의 수다 꺼리를 확보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들이 --그러니까, 내가 살아온 우리 동네에서는 아직까지 그런 사건들이 한 건도 보고 된 적이 없다는 뜻. 만약 그렇다면 다들 그 이야기로 거품을 물었을 것이다.--마치 짰다는 듯이 연이어 텨진다는 것이 아무래도 현실감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마도 이 책의 저자는 독자들의 관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사건들이 줄줄이 터져야--그것도 가능하면 끔찍한 걸로.--된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사실 그건 이야기를 재밌게 꾸미지 못하는 작가들이 흔히 하는 실수다. 이렇게 될때 물론 주목이야 쉽게 받을 수 있을까 모르겠으나, 정작 자연스러운 이야기에서 주로 발생하는 흔연스러운 공감이나 연대가 생겨나지 않으니 말이다. 해서 부자연스럽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단점이 아닐까 한다. 둘째는 좀 횡설수설한다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사건이 많고, 자꾸 벌어져야 하고, 이 사람 저 사람 나와서 자기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산만해지는 것 같던데, 그러다보니 이야기를 따라 잡기가 무척 힘들었다. 이야기가 알아듣기 어려워서 힘들다는게 아니라, 산만해서 힘들다는건 별로 좋은 작법이 아니다. 그나마 뒤로 가면서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같던데, 초반의 경우는 이걸 다 읽어야 하나 마나 고민하게 만들 정도로 몰입도가 떨어진다. 세째는 천편일률적으로 시각이다. 기사 몇 줄에 형사들이 오해를 받고, 또 기자들은 하이에나처럼 형사들을 물고 늘어지고, 거기에 형사들을 꼼짝없이 당하고 말이다. 어디서 본 듯한 익숙한 장면들이 클리세처럼 반복되는데, 솔직히 이건 좀 심하다 싶었다. 이야기의 발목을 잡는 면에서는 좋았지만, 극약 처방으로 사건을 이렇게 많이 배정해 준 마당에 기자건 변호사건 다 쓰레기 같은 인간이고, 그걸 읽고 흔들리는 시민들은 허수아비다...라는 뉘앙스를 굳이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결론적으로 형사들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데, 그외 다른 사람들은 다 방해만 한다, 이런 식이었는데 심하게 균형이 맞지 않은 관계로 공감이 가는게 아니라 눈살이 찌프려 지더라. 형사 외에 모든 다른 인간들이 그렇게 형편없다는건 믿을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속도감 있는 전개, 몇 몇 캐릭터의 독창성, 인물들간의 캐미스터리 정도는 괜찮았지 싶다. 적어도 이 책으로 합격점을 받지는 못하겠지만, 다른 편을 기대하게는 만들지 않았는가 한다. 맨 윗 줄에 쓴 말에서 보듯, 적어도 이 양반에게서 균형 잡힌 시선을 있는거 같아 보이니 말이다. 어쨌거나 이 책을 읽고 나서, 영국 애버딘이라는 곳이 싫어졌다. 한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앞으로도 가볼 생각이 들지 않을 것 같다. 고마워요~~맥브라이드님! 비행기 값을 절약하도록 해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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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즈 보르코시건 : 명예의 조각들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 1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 지음, 김창규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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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의 <마일즈의 전쟁>과 <보르 게임>을 재밌게 읽었던 던 독자로써 오랫동안 번역되기를 기다려 온 작품. 두 책속에서 간간히 언급되는 보르코시건 경과 그의 아내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탓이다. 그건 일단 그들이 낳은 아들인 마일즈가 워낙 특출한 인물이서도 그렇지만, 도대체 어떤 부모길래 아들내미를 이렇게 잘 키우셨을까 궁금해서 말이다.  마일즈 시리즈를 보다보면 그가 탄생하기전부터의 이야기가 간간히 언급되고 있는 탓에 진짜로 어떻게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싶기도 했다. 물론 미리 이 책들을 읽어본 리뷰어들이 그들의 역사가 길고도 지난하며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가득찼더라는 말에도 솔깃한게 사실이고. 도대체 언제쯤 나오시나요~~오매불망 기다리다 지쳐 아예 기억속에서 완전히 사라져 가고 있었던 즈음...난데없이 <명예의 조각들>이라는 제목으로 떡하니 출간되어 나온걸 보곤 얼마나 흥분했던지...드디어 내 이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 읽어볼 수 있겠구나 쾌재를 불렀었더랬다. 그렇게 크나큰 기대를 안고 부푼 가슴을 부여 잡으며 읽게 된 이 책은, 결론적으로만 말하자면, 역시 기대를 너무 하면 안되는구나 라는걸 깨닫게 해주었다.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게 전개가 되어서 말이다. 


일단 줄거리는 이렇다. 베타 행성 출신인 코델리아 네이스미스는 과학 조사 목적으로 내린 별에서 바라야 제국군 장교인 아랄 보르코시건을 만난다. 바랴야 행성이라고 하면 계급 차별이 극심한 제국국가로 몇 몇의 황족들의 손에 의해 나라를 굴러가고 있는 곳이라 비교적 민주적인 성향이 강한 베타 행성의 기준에서 보자면 무식하고 기괴하며 비인간적이고 사악한 집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그런 행성의 군인 장교를 그것도 아무도 구해줄 사람 없는 미지의 행성에 맞닥뜨리게 된 코델리아는 자신의 목숨이 어찌될지 걱정이 태산이다. 포로로 잡혔다고는 하나, 그다지 포로 대접은 하지 않을 생각인 아랄을 보면서 코델리아는 그를 믿어도 되는지 아니면 불신해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한다. 아랄의 말로는 자신 역시 가신들에게 배신을 당한 것이라면서 전함을 되찾기 위해 코델리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과연 미지의 행성에 뚝 떨어진 두 남녀의 운명은? 코델리아는 처음 무섭게만 여겨졌던 아랄이 실은 무척 자상하고 인간미 넘치는 원칙의 사내라는 사실에 감명을 받는다. 하지만 갑작스런 그의 청혼에 코델리아는 당황하고 마는데...


왜 마일즈가 그렇게 태어날 수밖엔 없었는지를 알게 해주는 <보르시코건> 시리즈의 첫 편이다. 마일즈를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을 드리자면 그는 바라야 행성의 황족 가문인 보르시코건경과 베라 행성 출신의 코델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로, 그를 임신했을때 엄마인 코델리아가 독가스에 누출되는 사고를 겪으면서 장애아로 태어나게 된다. 왜소한 키에 후딱하면 부러지는 뼈, 하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돌아가는 머리와 끊임없이 솟아나는 열정과 낙천성은 그를 장애를 가진 바라야 인으로 머물게 하지 않도록 한다. 아버지처럼 군인이 되고 싶어하는 그의 마음과는 달리 따라주지 않는 신체 조건 때문에 사관학교 시험에서 떨어졌던 마일즈는 결국 재치와 순발력 그리고 순전한 운으로 결국 제국의 멋진 군인으로 성장해 나간다는 것이 <마일즈 전쟁>의 골자다.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탁월한 인물로,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는 낙천성의 대가로 어린 나이임에도 우주를 종횡무진 누비는 그를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은 독자들은 없을 듯 싶다. 그럴 정도로 개성 넘치는 캐릭터로 사랑받는 마일즈의 부모로 그들이 만나는 순간부터 사랑에 빠져서 결혼에 이르는 과정까지 서술되어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마일즈의 전쟁부터 먼저 읽은 나로써는 이 책이 sf표 로맨스 소설이라는 것이 심히 당황하고야 말았다. 그래도 명색히 sf인데 무뉘만 sf물일뿐 내용물은 로맨스 소설일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물론 남자 주인공에 해당하는 아랄이 다른 여타 로맨스 소설에 나오는 인물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고--특히 신체적인 면에서--여주인공인 코델리아 역시 보통 로맨스 소설에 나오는 여주와는 거리가 있긴 하지만서도, 그럼에도 기본적인 틀은 로맨스 소설의 전형을 따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해서 마일즈의 전쟁처럼 허허실실 웃을 수 있는 sf물을 기대했던 나로써는 심히 마음이 들지 않더라. 거기에 마일즈의 부모가 만나는 장면이나 둘이 사랑에 빠지는 것들이 어찌나 눈에 빤히 보이던지...이 책이 나올 당시만 해도 좀 신선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다지 신선하다는 말을 못 듣겠지 싶다. 그간 워낙 우리의 로맨스 대한 기대가 높아져셔 말이다. 빤한 전개로는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지 못한다는 뜻...로맨스 소설이라는 것이 두 주인공이 침대에 들어가기 전까지 절대 침대에 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관건이라고 하던데, 그런 점에서도 이 책은 기본을 충실히 따르고 있지 않는가 한다.

 결국 특별한 마일즈의 특별한 부모를 만나고 싶었던 나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마일즈의 부모에 실망하게 된 책이 되겠다. 전개가 좀 억지스럽고 극단적인 방법들이 줄곧 등장한다는 것에 눈에 거슬린다는 것도 단점. 바라야 행성의 무자비함에 비해 아랄의 공평 무사한 태도는 왠지 주인공을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인 듯 보여서 그것도 어색하게 느껴졌고 말이다. 이 책을 보고 나서야 왜 부졸드 여사의 책이 연대순이 아닌 중구난방식으로 우리나라에 출간이 되었는지 이해가 가더라. 아마도 연대순 대신 작품성 위주로 출간시킨 모양으로, 이 책보다는 마일즈의 전쟁이 훨씬 더 재밌었다는게 내 생각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반전이 있으니...그렇게 재미없다고 툴툴대면서 봤음에도, 이 책의 후속작이 나왔다는 뒷면 표지 문구에 반색하는 나는 또 뭐란 말인가. 파블로프의 개도 아니고 말이야. 일단 부졸드 여사의 책이다라는 말만 들으면 우선 헥헥대면서 반갑기 먼저 한 모양이다. 이런 나를 나도 말릴 수 없으니...불평을 해대면서도 다시 기대하게 만드는 부졸드 여사의 책들이 어서 빨리 완간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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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사슬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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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예정에 없이 네브라스카 황량한 마을에 떨어진 잭 리처는 하는 수 없이 마을의 유일한 모텔에 하루 밤 묵어 가기로 한다. 그곳에서 술주정뱅이 의사를 만난 잭은 그를 찾는 환자의 요구를 물리치는 의사에게 대리 운전을 자청한다. 그것이 어떤 연결 고리의 시발점이 될지 알지도 못 한 채...코피가 멎지 않는다는 말에 그녀의 집에 찾아간 잭과 의사는 그녀가 남편에게 맞았으며, 그것을 숨긴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이에 열 받은 잭은 그길로 그녀의 남편을 찾아가 코를 부러뜨려 놓는다. 자신이 벌집을 들쑤셔 놓았다는 것도 모른 채 모텔에 온 잭은 모텔 주인이 벌벌 떠는 모습에 의구심을 갖는다. 잭이 때린 사람이 바로 그 마음을 주름잡고 있는 던컨 일가의 아들로, 그들이 30년간 포악을 떨고 있음에도 아무도 저항하지 못한다는 말에 잭은 분노는 느낀다. 마을 전체가 그 던컨 일가의 독재속에 벌벌 떨면서 살아간다는 말에 무언가 해야 겠다고 느낀 잭은 더군다나 그들이 25년전 8살짜리 소녀의 실종에 모종의 관련이 있다는 말에 더욱더 분기탱천한다. 문제는 그들의 공포정치가 오래 된 만큼 아무도 잭을 도와주러 나서는 사람이 없다는 것. 그리고 네브라스카의 황량한 마을에서 그가 숨을 곳이 마땅치 않다는 점. 그럼에도 이미 그곳에 도전장을 내민 잭은 30년간의 독재에 대한 응징에 나서기 위해 앞으로 나선다. 과연 잭을 멈추게 할 자 그 누가이겠는가. 잭 혼자 나선다는 말에 던컨 일가는 그가 아무리 육군 출신에 총을 좀 다룰 줄 안다 한들 자신들을 물리칠 수는 없을 거라 장담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위험성이 있는 물건은 사전에 제거하는게 옳다는 것에 동의를 하는데....

 

예전 서부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던 소설이다. 이 책의 저자는 분명 영국 태생이라고 들었는데, 글을 쓰는 폼은 과거 미국 서부 총잡이들의 전설을 따르고 있는 듯하다.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수상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들쑤시고 다니면서 정의를 실현하고 있는 잭 리처, 그의 활약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것은 그가 절대 법에 의지하는 나약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언제나 속전속결, 나쁜 놈들은 그자리에서 처단하는 그를 보면서 묘한 속시원함을 느끼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악한 짓을 하는 사람이 늘 나쁜 것은 아니었으며, 알고보면 그들이 잘못된 것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이고, 그렇기에 그들에게 역시 우리는 동정심을 느끼고 벌보다는 교정이 더 필요한 것이라는 말을 일거에 허튼 소리로 만들어 버리는 박력에 반하게 된다고나 할까. 너무도 무르고, 너무도 이성적이며, 너무도 동정심이 많아서 문제인 우리들에게 잭 리처 같은 사람이야말로 꼭 필요한 사람이 아닐까 한다. 아마도 그래서 그의 시리즈가 그렇게 인기가 있는 것이겠지. 진짜 세상에서는 가질 수 없는 환상임에도 말이다. 하여간 정의가 구현되는 모습에 속이 시원하던 작품, 잭의 활약에 다소 질리는 면이 있기는 했지만서도, 그럼에도 페이지 투너로써 이보다 더 잘 기능하는 책은 없지 싶다. 한마디로 책이 술술 읽힌다. 남는 것이 없다고 해도, 잘 읽힌다는 점은 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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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페어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미국 전역을 이리저리 발 가는대로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생뚱맞게도 정의 구현에 온 몸 불살라 마지 않는 잭 리처가 헌병대 장교에서 어쩌다 그런 신세가 되었는지, 그 연결과정을 보여주던 스릴러 소설이다.

 

헌병장교로 싸움에 관한한 져 본 적이 없다는 전설의 사나이 잭 리처는 상사로부터 명령을 하달받게 된다. 미시시피의 인구 3천의 한적한 마음에 젊은 여성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범인을 잡는데 도움을 주라는 것이었다. 무자비하게 살해되었다고는 하나 민간인의 죽음에 군대가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그녀가 살해된 곳이 미군의 기지가 주둔한 곳이기 때문이고, 여러 정황상 미군이 범인일 가능성에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곳은 은밀하게 외국 파병을 준비시키는 곳이기에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은 군사기지였다. 범인 때문에 그곳의 정체가 탄로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군 수뇌부는 잭 리처로 하면서 마을 동향을 주시하면서 정보를 캐내라고 명령을 한다. 명령이 내려진 길로 민간인으로 변장을 해서 마을로 내려간 잭은 가자마자 마을 보안관에게 정체가 탄로나는 위기에 처하고 만다. 마침 그녀 역시 전직 해병대였던 탓에 잭의 변장을 쉽게 눈치챈 탓이다.즉시 떠나라는 보안관의 말에 밍기적대면서 정보를 캐내던 잭은 그곳에 오기전에 알지 못했던 연쇄 살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섬찟한다. 몇 년 간 그 마음에는 똑같은 수법의 연쇄 살인이 있었는데, 피해자가 젊은 나이의 아름다운 여성이었다는 점이 공통이었다. 잭은 즉시 동일범의 소행이라고 직감을 하곤 더욱 더 범인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다. 보안관은 잭이 걸림돌이 아니라 믿어도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그에게 의지하기 시작한다. 같이 사건을 수사하러 다니던 둘은 정분이 나고, 함께 범인을 잡자며 의기투합한다. 점차 그들의 눈 앞에 범인이 드러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잭은 군대에서 입수한 보안관의 과거 파일을 받아 들고는 망연자실 하는데...

 

잭 리처 시리즈의 시발점이라고 해야 하나? 그가 그렇게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 초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단지 명령 하나를 받았을 뿐인데, 인생 하나 심하게 꼬여 버린 잭이 모든 것을 툴툴 털고 미지의 세계로 나서는 모습이 의연해 보였다고 할까? 페이지는 휙휙 쉽게도 넘어가고, 눈에 거슬릴만한 어려운 문장이 없다는 것이 장점. 그냥 머리 식힐 생각으로 아무 생각없이 읽기에 딱이다. 심각하지도, 그렇다고 아무 재미가 없지도 않아, 시간 때우기 용으로는 안성맞춤이지 않는가 한다. 다만, 범인으로 몰아가는 것이 너무 작위적으로 느껴진다고 할까? 뭐, 이런 소설을 읽으면서 개연성까지 딱딱 맞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잘 앎으로 ,그냥 재밌게 읽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잭 리처의 매력을 여실히 볼 수 있던 작품. 어페어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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