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만나 다행이야 작은 곰자리 20
콜린 톰슨 글.그림, 박수현 옮김 / 책읽는곰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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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책을 읽었을때는 소리없이 꿋꿋하게 감동을 받았었다. 부모 없이 할머니와 함께 사는 외로운 아이 조지, 그가 유일하게 외로움을 달래는 곳은 동물 보호소다. 주인이 버린 동물을 임시로 맡아주는 그곳에, 자신보다 더 가엾은 동물들을 바라보면서 동병상련을 느끼고 있던 조지는 어느날, 자신을 똑닮은 듯한 강아지를 만나게 된다.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맨 마지막 칸에, 감옥에 갇힌 듯 창살에 둘러쌓여 있는 세 발 달린 개를 보는 순간 말이다.그 개가 마치 다가오는 죽음을 의연하게 맞이하겠다는 듯 희망없는 눈길로 조지를 바라보았을때 조지는 마음을 굳혔다. 이 개는 절대로 내가 데리고 가겠다고. 동물 보호소 직원 아줌마에게 뛸듯이 달려간 조지는 그 개를 데려 가고 싶다고 말한다. 아줌마는 조지가 말하는 개가 "그 개" 가 맞냐면서 의아해 한다. 태어날때부터 세 발뿐인, 아무도 원한적이 없는 개가 정말로 네가 원하는 그 개냐고, 어차피 그 개는 오늘이 여기 마지막이라고 하면서, 잘 생각해 보라고 한다. 오늘이 마지막 이라는 말에 조지는 한걸음에 다다다다~~~ 할머니에게 달려간다. 그리곤 외친다. 개를 데리고 와야 한다고, 빨리 빨리 가야 한다고.


손자의 마음을 알아챈 할머니는 토를 달지 않고 조지를 앞세워 동물 보호소로 달려간다. 문을 닫으려는 아줌마를 간신히 말린 다음 그 둘은 세 발 달린 개 제레미를 입양하게 된다. 과연 그 셋에겐 어떤 미래가 펼쳐지게 될까.
그러니까 , 어른인 내가 보기엔 더할 나위 없이 감동적인 동화책이었다. 그림도 아름답고, 내용도 아름답고, 마지막 결론은 훈훈하기 까지 했으니 말이다. 마음으로 통하는 강아지와 소년의 우정이 , 아무런 조건 없이 단지 우리가 닮았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베푸는 사랑이 아름다웠다. 그런 미담에 흔치 않다는 것을 알기에, 그리고 그런 미담이 있다면 그 가치에 대해 논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읽어가면서 홀로 그렇게 감동을 받았었다. 조카도 분명 좋아할거야, 라면서 읽어줄때까지 기다리기가 심히 힘들었었다.

그런데 막상 읽어주자니, 걸리는 것이었다. 과연 이렇게 어린 나이에 이런 일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나는 조카에게 환경이나 기타 그밖에 어른들이 걱정해야 하는 일들을 알려주지 않는다. 아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은 아이에게 들려줄 필요가 없다는 생각때문이다. 조카가 4살때인가? 어느날 전화를 걸어 와서는 흥분된 목소리로 북극의 곰이 살 집이 없어진다면서, 에어컨을 켜지 말라고 하는 바람에 놀란 적이 있다. 유아원에서 선생님에게 배운 모양이던데, 덕분에 그 여름에 한동안은 선풍기를 켠다거나 에어컨을 켤때마다 조카의 눈치를 봐야 했다. 얼음이 녹는 대요!!! 라면서 걱정하는 조카를 달래야 했으니 말이다. 그런 일도 있긴 했지만 그런 사정이 아니었다고 해도 아이들에게 걱정 해야 할만만 일들을 알려 줘야 하는가의 문제에 대해 난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걱정 많은 아이로 자라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고, 무엇보다 무능력한 아이들에게 자신이 책임질 일도 아닌 것에 죄책감을 갖게 하고 싶지는 않아서다. 현실을 알려 주는 것이 과연 7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일까? 싶은 것이다. 과연 그게 필요한 것일까?

그래서인가, 기다리던 조카에게 읽어주는 시간이 되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괜히 쓸데없는 책을 읽어주는건 아닌가 싶어서...역시나 내 우려가 맞았다. 조카는 나만큼 감동을 받지 않았다. 단지 슬퍼하는 듯했다. 세 발 달린 개가 있다는 것과, 외로움에 절절 매는 아이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둘이 서로가 닮았다고 생각할 정도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죽음을 담담하게 기다리는 개가 나올때나 아이를 사랑하긴 하지만 아이가 뭘 원하는지 알길이 없는 할머니를 설명할 때도 난 조금 뜨끔했다. 과연 이런 것들을 아이가 알 필요가 있을까? 과연 이 녀석이 이걸 공포감없이 받아줄까 싶은 생각이 모략모략 들었다. 난 도무지 왜 이 책을 조카에게 읽어주려 한 것이냐? 조카에게 착하게 살라고, 약자를 돌보라고, 그런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인가 싶어서 식겁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어른이 자신은 별로 착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착하게 살라고 다그치는 사람이었으니까. 난 조카에게 착하지 않아도 좋으니, 네가 살고 싶은 삶을 살라고 늘 마음으로 기원한다. 단, 남에게 페를 끼치지 않은 선에서..."노블레스 오블리주" 라면서 요즘 부모들은 아이가 부자이고 똑똑하면서 착하기까지 바라는 모양이지만, 내가 조카에게 바라는 것은 그렇게까지 무거운 삶이 아니다. 그저 자신을 잘 돌 볼 수 있는 그런 어른으로 성장해주었음 하는게 전부다. 그렇다보니, 착함을 은근히 강조하는 이 책이 조카에게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천국이 뭐냐고 묻는 조카의 질문에 대충 대답을 해주면서, 결국 결론을 내릴 수 밖엔 없었다. 7살짜리 아이에겐 이 책은 무리라고.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고 해도 그가 이런 내용들을 읽으면서 감동을 받을 필요는 없다고 말이다.

역시 조카의 표정을 보니 나보다 이 책이 더 의미있게 다가오진 않은 듯했다. 조지와 제레미가 서로의 짝을 찾아서 덜 외로워졌다는 것에 안도를 하긴 했지만 ,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렇게 살아야지 다짐을 하진 않는 듯했다. 다행이다 싶었다. 내심으론 이런 책을 읽으면서 버려진 개를 다 자기가 키우겠다고 나서면 어쩌나 싶었는데 말이다. 그렇다. 나는 조카가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 오지랖의 세계에 먼저 빠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건 어른인 나도 마찬가지니 말이다.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그건 조카가 성장하고 나날들을 보내면서 자신의 인생에 자신이 써넣어야 할 일일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 옆에서 조카가 차곡차곡 자신의 삶을 채워 나가는 것을 지켜보는게 다일 것이고. 남의 일이 아름다워 보인다고 그게 쉽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라며, 단순히 불쌍하다는 감정만으로 쉽게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 되기도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을 다른 책과 별다르지 않게 받아들이는 조카가 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카가 나보다 감동을 덜 받는다는 건, 동화책을 사준 입장에선 서운한 일일 수도 있지만서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조카의 태도는 오히려 나를 안심하게 했다. 제대로 크고 있구나, 녀석! 조카의 부모와 그를 보살피는 우리들이 그를 우리 식대로, 우리 입맛대로 변형시키고 있지 않다는 생각에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원래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전혀 다른 면에서 내게 안도감을 준 책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아이들에게 적합한 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아직도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유는 너무 슬퍼서다. 결말이 아름답다고 해서 슬픔이 가시는건 아니다.  조지와 같은 현실속에 사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도, 제레미와 같이 버림을 받은 유기견들이 많다는 것도, 물론 안다. 현실을 왜곡하거나 외면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책 속에 나오는 것과 같은 결말이 흔치 않다는 것 역시 사실 아니던가. 내가 결국 이 책속에서 슬픔을 읽을 수밖엔 없게 되는 것도 그때문일 것이다. 아이의 외로움은 가시기 힘들다. 늙은 나이에 육아를 담당하고 있는 할머니는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기 어려울 것이다. 세 발 달린 강아지는 끝내 안락사를 당한 가능성이 높다. 바로 그것이 현실이다. 그 모든 현실을 적당히 아름답게 포장하고 있는 이 책은 바로 그래서 동화책인지도 모른다. 결국 내가 보게 되는것은 이 책 안에 쓰여지지 못한 현실인 것이고,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조카에게 이 책을 읽어주면서도 캥겼는지 모르겠다. 언젠가는 조카 역시 이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싸구려 감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받아들일 어른이 될 터이니 말이다. 과연, 미래에 이 현실이 그다지 낭만적이지도, 동화책속과 같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기정 사실이라면, 미리 이런 책을 읽으면서 슬퍼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거짓을 배운 다음, 그것에 감동을 하고, 가까운 미래에 그 감동이 거짓에 기반을 둔 것이라는걸 알게 되는 것이 순서라면 , 거짓을 일단 배우지 않는다고 해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해서, 아이들에게 꼭 읽어줘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각자 부모님들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겠는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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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SE (2disc)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 마츠다 류헤이 외 출연 / 와이드미디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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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기에도 어리버리, 착해 보이는 시나는 대학 입학을 위해 동경에서 센다이 시로 이사를 온다. 이사온 첫날 이삿짐 정리를 하면서 밥 딜런의 를 흥얼거리던 그는 오른쪽 옆 방에서 달려나온 사내와 마주치게 된다. 딜런 ! 이라면서 노래를 따라부르는 사내, 그는 자신을 가와사키라고 소개하면서 마치 어린 시절 소꼽친구라도 만난 듯 그를 반긴다. 만나는 순간부터 너무도 친근하게 구는 가와사키, 왼쪽 옆 방 사내의 무뚝뚝함에 상처를 받았던 시나는 반대로 낯선 이에 대한 경계가 전혀 없는 가와사키 역시 이해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가와사키, 그는 만나자 마자 그간 도와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면서 서점을 습격할 건데 도와주지 않겠냐고 부탁해온다. 시나이의 옆 방에 부탄인인 도르지가 사는데, 실의에 빠진 그가 2년 전부터 방에 틀어박혀 안 나온다는 것이었다. 평소 도르지는 일본 대사전을 갖고 싶어했다면서 서점을 습격해서 선물로 주고 싶다는 가와사키, 마치 오늘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시나에게 모형총을 건네자, 시나는 식겁해서 그대로 방을 빠져나오고 만다.


   --신이 나서 총을 꺼내든 사와사키, 제 정신이라고 보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있지 싶다. ---


일본에 왔으면 일본어를 배워야 한다고, 일본어에 어눌한 외국인에 대해 보이지 않은 벽을 쌓고 사는 일본인들을 목격한 시나는 옆 방 부탄인이 신경 쓰인다. 그가 은둔자가 된 것이 일본인 애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며, 그녀가 죽은 것이 애완동물 살해범을 저지하려다 그렇게 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시나는 얼떨결에 가와사키의 서점 습격에 따라가게 된다. 돈을 모아 사주면 되지 않냐고 미약하게나마 항변하는 시나에게 돈으로 사주는 건 결코 도르지가 원하는 그 일본 사전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가와사키, 결국 둘은 무사히 (?) 사전을 훔쳐 오기에 이른다.



   --서점을 향해 달려라! 고작 책 하나 훔치겠다고 총들고 나서는 두 사내의 뒷모습, 뭐,포스 하나만은 은행강도 못지 않다. ---


다만 문제는 훔쳐온 그 사전이 일본 대사전이 아니라는 것, 더군다나 처음 시나를 만난 날 조심하라고, 그녀의 말은 절대 믿어선 안 된다고 가오사키가 친히 조언을 해준 애완동물 가게 점장 레나를 만난 시나는 오히려 그녀가 가와사키를 믿지 말라고 경고하자 어리둥절해진다. 도르지를 실의에 빠지게 한 고토미가 자신의 가게에서 일하던 점원이었다고 털어놓은 레나는 가와사키와 도르지가 만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실은 가와사키는 고토미의 전 애인으로, 여자는 많을수록 좋다고 호언하고 다니는 바람둥이었다. 가와사키의 바람끼에 질려서 헤어진 고토미는 그가 현재 자신의 애인인 도르지의 일본어를 가르치겠다고 나서자 의아해한다. 바람끼 옮으면 안 된다고 질색을 하는 고토미와 달리 엄격한 일본어 선생이 생겨서 마냥 좋은 도르지는 가와사키의 일거수 일투족을 따라한다. 우연히 가와사키가 에이즈에 걸렸다는걸 알게 된 도르지와 고토미는 그를 위해 모른척 해주기로 한다. 데이트를 하다 당시 모두를 경악하게 하던 애완동물 학대범을 목격하게 된 고토미는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대든다. 고토미의 전화번호와 주소를 알게 된 학대범들은 적반하장식으로 오히려 고토미를 해코치 하려 한다. 일본 말이 서툰 도르지는 무모하게 나서는 고토미가 불안하기만 하지만, 정의감에 불탄 고토미는 괜찮을 거라며 그를 다독인다....


가와사키의 수상쩍은 행동이 아무래도 미심쩍은 시나는 레니를 불러 그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드디어 발견한 그의 비밀, 시나는 그간 이상하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짜맞춰 사건을 전말을 알아낸다. 추궁하기 위해 사와사키를 만난 시나는 다시 한번 그의 사연을 듣게 된다. 그리곤 그동안 자신이 생각해왔던 것들이 일면 진실이긴 했으나 다른 한편으론 미묘하게 진실과 어긋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  진실이 드러나고 나서야 비로서 등장하는 이 사내, 과연 그는 누구일까? 그가 등장하고서 나서 부터 잔잔하게 흐르던 이야기에 극적인 긴장감이 생기고, 진실은 전혀 다른 톤으로 다가오게 되는데...--


오래전에 원작을 읽긴 했지만 영화화 된다는 말에도 별 감흥이 없다가,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에이타와 마츠다 류헤이라는 말에 허겁지겁 찾아보게된 영화가 되겠다. 아마도 모르고 봤다면 분명 재미가 덜했을텐데, 이미 익숙한 배우인 두 남자가 주연으로 나오자 확실히 영화를 보는 맛이 배가되는 느낌이었다. 특히나 미츠다 류헤이,  왜 사람들이 이 남자를 멋지다고 하나 이해가 되질 않더니만, 확실히 이 영화를 보니 이해가 간다. 치명적인 매력을 지녔다고 할 수밖엔 없는 , 그래서 미워할래야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바람둥이 역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해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그가 딱 등장하는데, 아무 말 하지 않고 서있기만 해도 역의 느낌이 설명이 되더라. 아, 여자들이 반할만 하구나, 라는 그런 느낌. 해서 그를 좋아한 나머지 그의 복사판이 되어버린 에이타가  정말 복사판으로 보이게 만드는 착시효과를 가져오고 있었다. 세상에, 에이타를 복사판으로 만들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매력이란 말이냐, 놀라고 말았다. 에이나가 연기를 워낙 잘한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도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두 배우의 연기는 상황을 이해하는데 지극히 적절하지 않았나 싶다. 원본의 자연스런 매력을 만나기 전까지는 복사판의 매력도 충분했지만, 원본을 만나게 되면 복사판이 왜 복사판인지 금세 이해하게 된다는걸 말이다. 아마도 이건 영화를 보신 분들만이 이해 하실 듯...


타인에 불과한 다섯 사람들이 이런 저런 사건들을 겪으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또 영향을 주고받는 이야기를 하고 있던 영화로, 인간에 대해 생각을 하게 해준다는 점이 좋았다. 집오리와 들오리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가 궁금해하던 도르지가 결국 그 답을 시나에게 들려주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인상적인 장면은 오히려 찍히지 않은 시간들에 대한 것이었다. 이 영화의 여백으로 남은 2년이란 시간, 그 속에서 한 인간이 고통과 좌절과 연민과 그리움 속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을지 상상하게 만든다는 것, 그것이 대단하지 않았는가 싶다. 그 시간들이 이해되자 맨 첫 장면에서 시나를 반기던 가와사키의 표정이 얼마나 다르게 느껴지던지,아니 얼마나 절실하게 느껴지던지...그들의 사연을 알지 못하는한 우리는 타인을 그렇게 오해하기 마련이지 싶다.


집오리와 들오리, 밥 딜런에 대해 이야기하던 영화... 그렇다. 우리는 우리가 그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망각한 채, 그저 자국인이냐 아니냐고 사람을 인위적으로 구분하고 차별하곤 한다.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이런 영화를 보면서 잠시나마 생각해볼 수 있다면 아마도 이 원작자나 영화를 만든 사람들에게 보람이 되지 않을런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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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도 아니고 시골도 아닌, 산도 아니고 바다도 아닌 어중띤 장소의 표본 같은 곳이지만, 한번 살기 시작하면 벗어나기 힘든 중독성을 가졌다는 마을 마호로, 그 마을 역 앞에서 심부름집을 하고 있는 다다는 <무엇이든 다 해드립니다. 살인만 빼고...> 라는 모토로 살고 있는 사람이다. 심부름집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사정에 끼여 드는걸 천성적으로 싫어하는 그는 의뢰인이 치와와를 며칠 돌봐달라고 하자 난감해 한다. 마지못해 치와와를 맡으면서도 뜨악한 마음 금할길 없던 다다는 일을 마치고 나와 보니 개가 사라져 있자 당황한다. 개를 찾아 사방을 둘러보던 그는 개를 안고 있는 남자를 보게 된다. 개를 찾았다는 안도도 잠깐, 다다는 남자가 중학교 동창인 교텐이라는 것을 알아본다. 실은 다다에겐 교텐이 미안함으로 남아있는 존재였다. 워낙 말이 없던 그에게 말을 해보려 했던 것이 그만 사고로 이어져 교텐의 새끼 손가락을 다치게 했던 것, 다다는 몰골이 말이 아닌 그를 보면서 혹시 그때의 실수가 이런 미래로 연결이 된 것이 아닌가 싶어 마음이 안 좋다. 마지막 버스를 놓쳤다는  교텐의 말에 역까지 데려다 주기로 한 다다는 하룻밤만 재워 달라고 교텐의 청을 거절하지 못한다. 그것이 하룻밤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은 짐작도 하지 못한 채...


----  < 버스 정거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동창, 다다와 교텐>


다음날 아침, 알아서 나가줄 거라 생각한 교텐이 알아서 트럭 옆자리를 꿰차고 앉자 다다는 살짝 위화감을 느낀다. 알아서 나가주지 않는다면야 나가달라고 말하면 되지 라고 안이하게 생각했던 그는 치와와 주인 야반 도주 사건을 해결하다가 말할 기회를 놓치고 만다. 이제 진짜로 치와와의 주인이 된 다다는 교텐마저 어물쩍 심부름집에 눌러앉자 자신의 팔자를 한탄하기 시작한다. 내가 왜? 라면서 불평을 하던 그는 그럼에도 둘을 내쫓지 못한다. 치와와에게 좋은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광고를 낸 두 사람은 개를 준다는 말에 쏟살같이 찾아온 창녀를 보고는 거절할 말을 찾느라 곤혹을 치른다. 그들이 자신들을 좋게 봐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쿨하게 이해한 창녀는 반대로 그들에게 일감을 맡긴다. 문짝을 고치러 창녀의 집에 들른 다다는 그를 오해한 창녀의 남친으로부터 된통 당할 처지에 놓인다. 그때 평소에 제대로 하는 일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길이 없던 교텐이 나서서 일을 해결한다. 더불어 교텐은 창녀에게 그 남자와 헤어진다면 치와와를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난색을 표하는 다다와는 달리 교텐은 치와와가 필요한 곳은 그곳이라면서 친구의 불안감을 날려 버린다.


한편 초등학생인 유라의 하교를 맡게 된 다다와 교텐은 도무지 귀염성이라고는 없는 아이가 이해되질 않는다. 처음 유라의 행동과 말본새에 반발을 하던 다다는 아이의 사정을 알게 되고는 점차 그에게도 관여를 하게 된다.  아이에게 관심이 없는 부모밑에서 사랑없는 양육을 당하고 있던 유라는 방치된 아이 특유의 사건을 일으키고 다니고 있었다. 자신의 아이를 잃어본 적이 있는 다다와 자신의 아이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는 교텐은 아이을 지키기 위해 나서기로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마주해야 하는 상대가 조폭이라는 것, 과연 그들이 고작 심부름집 두 남자에게 당해줄만큼 만만할 수 있을 것인가.


--- <플란다스의 개>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울고 있는 두 남자. 이 둘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장면이다. --




한편, 우연히 교텐의 전처를 만난 타다는 반듯하고 아름다운 그녀에게 놀라고 만다. 지금의 교텐을 생각하면 도무지 가능하지 않는 조합이었기 때문이다. 교텐이 본 적도 없다는 아이까지 보게 된 타다는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사는 친구가 더욱 더 이해되질 않는다. 전처의 입을 통해 수수께끼 투성이던 교텐의 과거를 듣게 된 다다는 그때서야 조금 친구를 이해하게 된다. 왜 그가 과거에 그런 행동을 했으며, 왜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라는 것에 대해. 교텐이 언제나 진실을 말했으며, 자신의 고통을 삭이면서도 남을 도와주고 있었다는걸 알게 된 다다는 본격적으로 그렇게 살아가는 친구가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남을 위해서만 산다는 것은  즉, 자신은 언제든 죽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산다는 걸 뜻했으니 말이다. 다다가 교텐에 대해 이해를 높이고 있는 사이, 교텐은 창녀를 쫓아 다니는 악질 스토커에 맞서 도발을 시작한다. 숨기만 해서는 스토커를 물리칠 수 없다고 판단한 교텐은 일부러 스토커의 칼에 맞는데...


실제로도 친한 친구 사이라는 두 미남 배우의 앙상블이 멋졌던 영화다. 사회의 낙오자가 되어 만난 두 동창생이 이런 저런 사건들을 맡으면서 서로를 구원하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허름한 배경에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가진 등장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해서 만든 영화였지만, 그럼에도 마음을 울리는 뭔가가 있어 본 보람이 있었다. 이야기가 가진 힘은 잔잔한 전개에도 졸지 않게 해주었고,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두 남자가 쌓아가는 우정은 멋졌던 데다, 그 둘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웃음이 실실 나오게 했으며, 그들과 엮이게 되는 사람들의 사연도 공감이 가고 자연스러웠으니 그럴 만도 하다. 물론 교텐으로 나오는 배우가 조금 힘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서도...상상하던 원작의 이미지와 조금 달라 보여서 말이다. 


하여간 원작을 재밌게 봤던 터라 영화화 한다는 말에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원작의 분위기를 100% 재현하지는 못했지만 망칠 정도는 아니었지 않나 싶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원작에서는 교텐의 엉뚱함이 도를 넘고, 이를 수습하러 다니던 다다의 일상이 거의 재난 수준으로 중계가 되던 통에 거의 만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면, 영화는 원작보다 현실적으로 그려내서 차분해 보였다는 것?  재미만 따지자면야 원작이 낫다고 하겠지만서도, 일본 영화의 제작 특성상 충분히 코미디스럽게 과장해서 찍을 수 있었을텐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좋게 느껴졌다. 어른스럽다고나 할까. 진지해 보였다고나 할까. 뭐, 그런 것들, 적어도 원작에서 하려던 말을 우스갯 거리고 만들지는 않겠다는 결심이 느껴져서 말이다. 요즘 일본 드라마나 영화를 보게되면,  일본인들이 사람들의 관계에 대해, 관습적이지 않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뜨이는데, 이 영화서도 그런 것들이 느껴져서 흥미로웠다. 남들이 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들이 생각해서 답을 쓰고 있다는 느낌인데, 놀라운  것은 그들이 내놓은 답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다. 신선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날카로운 시선들에서 늘 한 수 배우는 느낌이다. 이런 점들은 우리나라 작가들도 배워줬으면 하는 바람이고, 또 그게 발전 방향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한다. 인간의 관계 대한 고찰은 끊임없이 계속되야 하고, 진정성이란 관습적인 것에서 벗어나야 비로서 보이는 법이니 말이다.


더불어 다양한 드라마에서 발군의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에이타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면 섭하겠다. 지난 1분기 일본 드라마중에서 가장 히트를 쳤다는 <럭키 세븐>을 보면서 느낀건데, 에이타는 같은 얼굴을 하고도,  단지 연기만으로 충분히 다른 사람을 표현해 내더라. 연기에 물이 올랐다는 표현이 진부하달 정도로 경이로운 변신들인데, 진심으로 연기에 반하고 말았다. 맡는 배역에 따라 표정이고 동작이고 전혀 다른 인간으로 등장하는데 그 변신이 놀랍도록 설득력있다. 진짜로 영리하던지, 아니면 피나게 연구하는 연기자인듯 싶다. 단지 재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연기다. 비교적 짦은 시간 안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발전하는 그를 보자니, 과연 그에게 질릴 날이 오겠나 싶었다.  하여간 앞으로 에이타란 배우를 주목해서 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과연 그가 어디서 멈출지, 멈출 날이 오기는 하려는지 궁금해진다. 물론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잔잔하지만 지루하지 않는 영화를 보고 싶으시다면 보셔도 좋을 듯.


가장 마음을 울린 장면을 하나만 꼽자면...

입이 거친 아이 답지 않게 플란다스의 개를 좋아하는 유라, 자신에게 무관심한 엄마에게 마음을 다칠데로 다친 그는 이렇게 말한다. " 부모가 계속 안 계시는 거랑, 부모에게 계속 무시당하는 거랑,  어느게 더 나은지 플란다스의 개는 알고 있었다고 봐 " 보통 어른 같았으면 아이의 말에 반박 하면서 절대 너희 부모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을테지만서도, 다다는 그러지 않는다. 그는 말한다. " 아무리 기대를 해도 너희 엄마가 네가 바라는 모습대로 사랑해주는 일은 없을 거라고 봐. 하지만 그럼에도 너는 사랑할 수 있어... 살아있는 한..." 아마도 그것이 인생의 정답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언젠가 우리들은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 수 있으리니, 어린 시절에 좌절하지 말라고. 거기에 희망을 걸어봐도 좋다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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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에 걸려온 전화 스스키노 탐정 시리즈 2
아즈마 나오미 지음, 현정수 옮김 / 포레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1편이 재밌길래 내침김에 보게 된 책인데, 의외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재밌었다. 이 시리즈의 다음 작품이 기대될 만큼 말이다. 이야기는 삿포르의 유흥가 스스키노 거리에서 탐정 사업(?)을 벌이고 있는 나는  바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자신을 곤도 쿄쿄 라고 밝힌 여성은 자신이 시키는 일을 해달라고 요구한다. 느낌이 이상한 일에 말려 들지 않겠노라 다짐을 한 나는 조금 망서리지만, 쿄쿄라는 여성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반해서 응낙해 버린다. 그리고 그녀가 맡긴 일을 했다가 죽을 뻔한 고비를 당한다.


이에 격렬하게 항의를 해보지만 정작 쿄쿄는 그렇게 흥분하지 않는다. 죽지 않았으니 된 거 아니냐는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그렇게 하찮게 여긴다면서 불평하면서도 어느새 그녀의 말을 따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역시 미인에 약한 나는 폼을 있는대로 잡으면서, 폼나게 살지 않느니 죽는게 낫다고 외쳐 보지만, 그건 살아있을때 이야기고,... 간신히 이번에도 목숨을 건진 나는 그녀가 흘려 놓은 단서들을 조금씩 따라가게 된다. 그리고 곤도 쿄쿄가 1년여 전에 살해되었으며, 그녀를 살해했다고 여겨지는 범인 역시 살해 되었고, 그 사건을 추척하던 쿄쿄의 아버지 역시 길거리에서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세 건의 살인이 벌어졌지만 아무도 범인으로 잡히지 않은 상태, 그제서야 나는 쿄쿄가 의뢰한 것이 심각한 사건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영화로도 만들어 졌다고 하는데, 영화로 만들어질만큼 재밌었다. 영화도 봤는데, 꽤나 재밌게 편집된 편이라서 이야기를 알고 봤는데도 재밌었다. 이 작가의 다음 작품도 출간되어 나오긴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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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다 히토미 11세, 댄스 때때로 탐정 마이다 히토미 시리즈 1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마이다 토시미는 하마쿠라 경찰서의 형사다. 그에겐 외딸을 홀로 키우고 있는 형이 하나 있는데, 조카를 예뻐하는 토시미는 일주일에 한번 형네 집에 들러서 그녀와 놀아준다. 그녀와 놀아주면서 조카가 내어놓은 말과 행동에서 사건의 단서를 찾아 해결한다는 코지 미스테리 소설물, 심심할때 가볍게 읽기 좋은 그런 소설이라고 보심 되겠다. 제목만 보고는 조카인 11살짜리가 사건을 해결하는 것인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고 ,전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건 형사인 토시미였다는게 흥미로웠다. 대개 이런 추리 소설물에선 형사는 무능하고, 그외 주변 사람들이 오히려 유능한 것으로 나오는게 정석이니 말이다. 집사를 비롯한 사람 만이 아니라, 고양이 개를 비롯해서 형사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추리를 더 잘 한다는걸 더 좋아하는게 아닐까 싶었는데, 다행히도 이 책에선 형사가 추리를 잘 한다. 비롯 조카에게서 단서를 얻긴 하지만서도, 흘려 들어도 좋을만한 단서들을 모아 사건을 해결하는건 형사라는 점에서 주인공은 형사지 싶다. 우타노 쇼고의 작품중에선 비교적 완성도가 높지 않을까 한다. 하긴 많은 작품을 읽지 않아서 비교한다는 자체가 그렇긴 하지만서도, 적어도 < 시체를 사는 남자>나 <해피엔드...>보단 낫지 않았나 한다. 그러고보니 몇 권 읽지도 않았구만 그래. 이 작가의 대표작이라는 <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 하네>를 한번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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