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방 모중석 스릴러 클럽 29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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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 아들의 방>이라는 영화를 좋아하고, 할런 코벤도 그닥 싫어하지 않은 까닭에 집어든 책이다. 두꺼운 것도 마음에 들었고, 페이지를 열어 읽어보니 가독성도 높고, 빠르게 읽히는데다, 걸리적대는 문장도 별로 없어서 역시 잘 집어왔다 싶었다. 할런 코벤은 역시 기본은 하시는 작가였군 하면서 열심히 읽어 내려 갔는데...


이건 뭐, 반전의 반전의 반전의 반전의 연속이다. 하도 골때리는 사건 사고가 많고, 여차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지는데다, 그 강도 역시 만만찮게 높기 때문에 중반을 넘어서니 읽는 것이 고역이었다. 그래도 결론을 알아야 겠다면 마지막 페이지를 펼치는데, 드는 감정 한가지는 오직, 아~~~ 지겹다! 였으니...이 책의 구성에 맞춰 라임을 넣어보면 지겨워, 지겨~~워, 정말 지겨워, 놀랍도록 지려워...등등이 되겠다. 하~~~ 요즘 왠만한 추리 소설에 강도가 워낙 세지다 보니, 왠만한 것으로는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없다는 강박이 팍팍 느껴지는 그런 소설이었다. 이렇게 과잉일 필요가 있나?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인 아들의 방에 아들역 아담, 그렇게 모범적이도 머리도 좋고 부모와 사이도 좋았다는 녀석이 다른 사람의 실수때문에 그렇게 망가진다는 것이 과연 그럴 듯한 전개일까? 결론을 보고 나니 싱거워도 그렇게 싱거울 수가 없었다. 아니, 그렇담, 아버지랑 엄마랑, 대부랑 그많은 사람들이 난리 부르스를 친게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자식을 사랑한다면 이렇게 난리 부르스에 과잉 행동에 소동을 부려야 진정한 부모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적어도 부모라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고 그래야 독자들이 감동을 받을 거라고 작가는 그렇게 생각한 것일까, 조금 유치했다. 심하게 자연스럽지도 않았고, 감동을 짜내는 것 같아서 보기 민망했으며, 무엇보다 아들을 살려 보겠다고 난리 부르스를 춘 부모들에 무척 가여워 보였다. 이상하지? 그들은 정말로 아들을 사랑한다고 하던데, 왜 아들이 문제가 생겼을때 찾아가서 의논할 정도의 상대는 되지 못한 것일까? 자신에게 가장 위기가 닥쳤을때 , 더군다나 미성년일때 말이다. 실수를 하기 마련인 그 나이에, 그리고 그 실수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는 그 나이에 어른답게 행동한다는 것을 하나도 모르는 그 나이에, 당황하게 되면 가장 먼저 찾아가야 하는 것이 부모 아닌가? 그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거잖아. 본능적으로 말이다. 이 책에서 주인공 아담은 문제가 생겼음에도 가장 마지막에 부모에게 알린다. 부모에게 알렸다면 별 일 아니었을 그런 문제가 커지고 커지고 커지다 못해서 기괴하게 될때까지 두고서 말이다 . 다 해결이 되고 나서야 마지 못해 털어놓는 자식이 무슨 대단한 아들이라고, 아니, 그보다 먼저  아들에게 그런 거리감밖엔 두지 못하는 부모였으면서도 자긴은 굉장히 좋은 부모였다고 생각하는건 또 뭐람? 과연 그게 가능할까? 의문이다. 우린 청소년 시기 아이들에 대서 전혀 알고 있지 못한게 아닐까 싶다. 어른들 모두다 말이다. 이런 글을 쓰는 작가도 포함해서...


줄거리는 이렇다. 모범생에서 갑자기 불량생으로 거듭난 아들 아담 때문에 고민인 마이크는 아내의 성화로 아들의 방에 감시 장치를 설치한다. 아들이 인터넷으로 하는 모든 것을 스캔하는 것이었다. 아들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느냐, 아니면 막 나가는 아들을 보호하느냐로 갈등하다 지금은 보호에 치중해야 한다는 결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1 인 아들은 자신이 다 컸다고 생각하고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도무지 모범생이던 아들이 그렇게 좌절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마이크와 아내는 이해가 가지 않고, 다만 몇 달 전 자살한 친구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그러던 중 마약 파티가 있는 친구의 집에 놀러간다는 아들의 문자를 스캔한 마이크는 식겁해서 말리려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도 모른채 집을 나가고 만다. 어떻게해서든 집을 나간 아들을 데리고 오고 싶은 마이크는 GPS를 이용 아들의 뒤를 쫓는다. 하지만 아들을 잡기도 전에 일단의 아이들에게 잡혀 실컷 두둘겨 맞고 마는데...한편 자기 멋대로 삶을 살아온 덕분에 인생이 한없이 망가져버린 매리엔은 의문의 두 사람에게 납치된 후 살해된다. 그녀를 창녀처럼 꾸며 창녀촌에 버린 두 사람은 곧이어 매리엔의 친구를 잡아 역시 죽여 버린다. 과연 둘은 어떤 이유로 연쇄 살인을 벌이는 것일까? 두 여자의 실종을 수사하던 경찰들은 두 여자의 주변을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해 나가는데... 과연 둘은 어떤 이유로 살해된 것일까? 그리고 두 여인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두 사람의 정체는?


이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해 어떤 인간은 보기보다 잔인한 면모를 숨기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과, 또 어떤 인간은 보기보다 인간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줄기차게 보여주고 있던 소설이었다. 한마디로 이 책을 보고나면 우리가 추측하면서 살아가는 것들이 얼마나 단순하고 멍청한 것인지를 알게 해준다. 한마디로 우리는 멍청하게 살고 있으며, 대부분은 거짓으로 살고 있기에 믿으면 안된다는 생각마저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삶이 꼭 그렇게 뒤틀려야만 하는 것일까? 정말로 우린 그렇게 살까? 우리의 본마음을 숨기고, 다른 인생을 만들면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런 사람들이 득실득실한 곳이 바로 인간세상일까? 글쎄...가끔가다 경계성 인격 장애자 같은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종종 정신 분열증 환자나, 심하면 싸이코 패스를 만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는 자체가 이렇게 심하게 뒤틀리기는 힘들지 않을까 한다. 그렇게 뒤틀려 있으면서도 자신은 전혀 잘못한게 없다고 믿는다는 것도 이상하고...하여간 독자에게 숨돌릴 틈없이 충격을 줘야 한다는 강박이 심하게 두드러진 책이 아니었나 한다. 우린 이런 끝도 한도 없는 충격 요법 좋아하지 않는다. 지나치면 모자란만 못하다고 하지 않는가? 충격 요법도 한두번이지, 끝까지 충격 요법으로 나가면 식상해진다는 것이지. 작가 자체를 믿게 되지 않으니 말이다. 왜냐고? 자연스럽게 떠오른 이야기가 아니라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생각이 짙어지기 때문이다. 그것도 만들어진 태가 너무도 뚜렷하게 나는...너무도 뻔한 트릭에 감동받는 독자가 어디 있겠는가. 하니,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 못하겠거들랑, 그냥 조용히 침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않는가 한다. 하여간 이 책은 여러모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보여주는 작가의 통찰력 있는 문장들을 생각하면 더욱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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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은 바에 있다 스스키노 탐정 시리즈 1
아즈마 나오미 지음, 현정수 옮김 / 포레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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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이 왜 < 탐정은 바에 있다.>일까 궁금했었는데, 알고보니 별로 어려운게 아니었다. 스물 여덟먹은 탐정인 나는 사무소를 설치할 돈을 마련하지 못해 단골 술집 "켈러 오하타"에서 고객들의 전화를 기다린다. 샷뽀르 토박이 출신인 나는 고향이라면 모르는 것이 없다고 설쳐대는 인물, 머리가 그닥 좋지는 않지만 어디 탐정일을 머리로만 하겠는가? 아무리 얻어 터져도 그럭저럭 회복의 길을 걷는 건강한 육신에, 아무데다 머리를 들이미는 무대뽀 정신, 그리고 종종 위기에 상황에 몰리면 빠르게도 나불대는 설득력까지...일본 최고의 탐정은 아니지언정, 그래도 탐정이란 이름을 내걸 정도의 밥값은 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나에게 일이 들어온다. 고객은 단지 나의 대학교 후배라는 이유로 나에게 상담을 의뢰한 멍청이 , 그는 동거하고 있던 여자친구가 갑자기 사라졌다면서 그녀를 꼭 찾아 달라고 부탁한다. 도망친 여자를 내가 왜 찾아주냐고 속으로 되묻던 나는 후배의 글썽이는 눈물앞에 지고 만다. 그냥 한번 알아나 봐주자라고 해서 나선 실종 여대생 찾기는 그녀가 매춘부였다는 사실서부터 꼬이기 시작한다. 남자친구 모르게 매춘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녀가 며칠 전 발생한 모델 남자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도 놀랄만한 일이었다. 그는 그녀가 살인사건때문에 잠적한 것이라고 짐작하고,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캐보기 시작하는데...


나라를 탐정의 캐릭터를 맛깔나게 그려낸 점을 높이 사고 싶다. 이책을 필두로 12개의 시리즈가 나왔다고 하던데 놀랍지도 않았다. 그만큼 재밌었으니 말이다. 탐정의 개성도 그렇지만, 그걸 풀어가는 문장들에 묘미가 있기 때문에 읽는 재미가 쏠쏠하던 그런 책이 아닌가 한다. 폼은 있는대로 잡는 하드보일드를 지향하는 탐정이긴 하지만, 실상은 그것과 거리가 먼 탐정이라...하지만 그럼에도 그에게 인정이 있고, 사리 판단이 출중하고, 더불어 맞고 다니면서도 지지 않는 매집이 있어서 볼만한 책이 아니었는가 한다. 나머지 시리즈의 책들도 출간되어 주길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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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더(새를 쫓아다니면서 관찰하는 사람들, 새들의 광팬쯤으로 생각하심 되겠다. )들의 꿈의 경기인 빅이어 우승자 중, 전대미문의 732 라는 숫자로 우승한  케니 보스틱은 새해가 시작되자 마자 다시 경기에 돌입한다. 한 해 동안 전미를 돌면서 얼마나 많은 새를 보았는가로 우승을 가리는 빅 이어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돈도 엄청 깨지는 소모성(?) 스포츠다.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곤 달랑 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버더들이 알아준다는 것뿐, 트로피도, 상금도, 명예의 전당도 없는 그 일을 그들은 꼬박 1년동안 매달린다. 이젠 가족수를 늘릴때라는 아내의 잔소리를 적당히 귓등으로 흘려버린 채 오늘도 새를 찾아  길을 나서는 보스틱, 그가 세운 기록에 놀란 사람은 그의 능력에 또 한번 놀라곤 만다. 풍부한 경험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열정, 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물론, 규칙이나 예의는 아무렇지 않게 깨버리는 순발력에, 느물대며 능글맞은 성격에다, 경쟁이 시작되면 지기 싫어하는 도박사기질까지...그가 세계 기록 보유자가 된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었다. 명성을 가능케 했던 보스틱의 카리스마와 난공불락같은 기록에 도전장을 내미는 신참 둘이 있었으니, 그 둘이 바로 브래드와 스튜다. 


37살인 브래드 해리스는 이혼남에 뚱보에 싫어하는 직장에 다니면서 생계를 이어가는 가난한 프로그래머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루저라고 할 수 있는 그는 새에 관한 열정에 있어서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울음소리만으로 새를 식별하는 귀를 가진 그는 돈을 탈탈 털어 빅 이어에 참가하기로 결심한다. 이론은 쌓을만큼 쌓았으니 이제 실전에 나서고 싶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결심에 다들 어이없어 한다. 인생을 낭비하는 듯 보이는 아들이 아버지는 못내 못마땅하고, 늘상 사라지는 부하의 시간 조정요구에 직장 상사는 넌덜머리를 낸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단지 주위 사람들의 지지와 이해만이 아니었다. 턱없이 모자라는 돈과 시간 역시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시작하면 어떻게든 끝까지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그는 점차 자신이 안이하고 순진했음을 깨닫게 된다. 


한편 은퇴한 CEO인 스튜는 오랜 망서림 끝에 빅 이어에 참가한다. 어린 시절부터의 꿈이라는걸 알고 있던 아내의 성화에 힘입은 것이었다. 뭔가 희귀한 것을 보고 오라는 아내의 지지에다 시간과 돈은 부족하지 않았지만, 문제는 이미 그가 나이가 들었다는 것! 해서 희귀한 새가 떴다는 말에 헐레벌떡 찾아가보면 이미 발 빠른 보스틱이 다녀간 뒤였다. 빅 이어에 참가한다는 사실을 비밀로 하고 있던 그는 자꾸 마주치는 브래드와 친해지게 된다. 후에 서로가  빅 이어에 참가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둘은 눈에 가시처럼 알짱대는 보스틱이 얄미워 죽을 지경이다. 처음엔 순수한 열정으로 참가했지만, 중반을 넘어서자 우승외엔 관심이 없어진  둘에게 공통의 적이 나타난 것이다.결국  누군가는 보스틱의 기를 확실하게 죽여놔야 한다는 대화끝에 둘은 의기투합하기에 이른다. 함께 팀을 꾸린 둘은 보다 안정적으로 새사냥(새를 죽이는게 아니라, 새를 보기 위해 쫓아 다니는 것을 일컬음)에 나서게 된다. 과연 열정과 자본이라는 둘의 시너지 효과가 보스틱의 경험을 이길 수 있을까? 그해에 있었던 폭풍에 의한 봄 낙진( 새들이 맞바람에 갖혀 한 곳에 내려 앉는 현상)으로 새로운 기록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과연 누가 최종 우승자가 될지에 대한 흥분으로 경기는 점차 흥미로워져 가는데...


                                         <폭풍에 의한 새들의 봄 낙진 현상을 보기 위해 떼거리로 달려든 버더들>


 얼마전에 재밌게 본 책인 <빅 이어>를 원작으로 한데다,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코미디 배우들 셋까지 출연했으니, 안 볼래야 안 볼 수 없는 그런 영화였다. 기대한만큼 실망하면 어쩌나 조금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걸작까지는 아니라도 원작의 장점들을 잘 살려내고 있었다. 우선 세 배우들의 능청스런 연기가 좋았다. 너무 과장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지나치게 딱딱하지도 않게 괴짜들임이 분명한 버더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원작속 세 남자의 캐릭터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있던데, 캐스팅이 적절했지 싶다. 특히 우승을 위해서라면 어떤 규칙도 다 깨뜨리는 보스틱 역의 오웬 윌슨은 마치 본인이 출연한 것 같았다. 어찌나 실감이 나던지 느물대기 한량없는 의뭉스러운 지붕업자가 어떻게 빅 이어의 우승자가 될 수 있었는지 감이 팍팍 왔다. 원작에서 보다 훨씬 더 실감이 났다는 점에서 캐릭터를 제대로 살려냈지 싶다.맡은 역에 생명력을 불어넣는걸 보니 오웬 윌슨은 아마도 보기보단 영리한 배우이거나 , 아니면 극중 캐릭터가 본인의 성격과 비슷한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간 그렇게 얄미운 캐릭터도 그가 연기하면 정이 간다니까. 심지어는 귀엽기까지 하니 연기는 잘하고 볼 일이다.


그외에 1년동안 빅이어에 참가하는 버더들을 쫓아다니면서 그들이 어떻게 새를 관찰하는지 보여준다는 점도 좋았다. 그들은 갖은 운행 수단을 이용, 철따라 새들이 몰려드는 곳을 찾아 전국을 해매던데, 단지 새를 보기 위해 갖은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그들이 부러웠다. 인생을 재밌게 사는 것 같아 보여서 말이다. 더군다나 이 영화는 빅 이어 사상 최고의 경쟁으로 인해 전설로 남겨졌다는 1998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미 전설이 되어 있는 건설업자와 그를 쫓는 아마추어, 이렇게 세 사람의 실제 대결을 그린 것이다 보니,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갖가지 잔꾀와 기지로 우승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누가 이길지 궁금하게 만드는 긴장감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고생고생해서 도착한 곳에서 만나게 되는 새들은 환호성을 지르기에 충분했다. 화면상으로의 만남이었음에도 말이다. 더불어, 미국엔 버더들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가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얄미운 보스틱을 꺽기 위해 명절도 반납하던 배주인 애나와의 실갱이도 재밌었다. 원작에 있던 이야기를 잘 살려냈지 싶다.


하지만 그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최고 공로자를 꼽자면 당연히 <새들>이었다. 왜 버더들이 돈과 시간을 내버린 채 불편함을 무릅쓰고 거리로 나서는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들의 아름다움을 본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당연히 거기서 벗어나기 힘들지 않을런지...참, 이 해에 누가 우승했는지 궁금하시죠? 궁금하시면 영화를 보시길...덤으로 영화속에 나온 새들을 올려 드립니다.



 
                                                                  <유령처럼 밤 하늘을 배회하는 흰 올빼미>
 <자기 머리로 나무를 쪼아대는 딱따구리>
 
 
 
                                    < 다시 흰 올빼미,영어명 Snowy Owl로 보스틱을 끝까지 애먹이는 새로 등장한다.>
 
                                                                                  < 왕관을 쓴 듯한 표정이 인상적인 회색 부엉이>
 
                                               < 예쁜 신발을 신고 파티에 참석한 듯한 분홍발 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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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보이 - 약물 중독에 빠진 아들을 구하려는 한 가족의 끝없는 사랑 이야기
데이비드 셰프 지음, 서소울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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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찍힌 세상이 환해지도록 아름다운 소년의 모습이 안스럽게 보인다. 왜냐면 이 소년이 조만간 약물에 쩌들어 길거리에서 노숙자처럼 살아가게 될 거이라는걸 알기 때문이다. 부모의 자랑이자 기쁨이었던 소년이 한순간에 약에 쩌들어 개 망나니가 된다. 아들을 위해 이런 저런 미래를 계획하던 아버지는 미래는 고사하고 아들을 어떻게 치유해야 할지 그걸 고민하느라 머리가 빠개진다. 하지만 문제는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그를 돕기 위해 애를 써도 정작 당사자는 그럴 생각이 없다는 것, 해서 모든 돈을 털어가면서 요양원에 별별 정신과 치료까지 해가면서 아들을 구하려 애쓰던 아버지는 고민에 빠진다. 언제까지 이런 끝없는 구덩이에 돈 박는 짓을 해야 하는 것일까? 언제쯤이면 나는 아무런 걱정 없이 잠이 들고, 잠에서 깰 수 있는 것일까? 언제쯤이면 아무 걱정없이 아들을 생각하고 바라볼 수 있을까? 라고...그런 아버지의 처절한 7년을 그린 책이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라서 마약 중독의 심각성이 올곧이 전달된다는게 특징, 하지만 이 책이 과연 얼마만큼 아이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줄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마약 중독자인 자식을 둔 부모들이 동병상련삼아 읽지 않을지...정말 이런 심정이야, 라고 공감하면서 말이다.


미국의 마약 중독 실태가 얼마나 대단한지 몰랐는데, 이 책을 보면서 깨달았다. 미국은 그대로 두면 마약 중독으로 망할 나라라고 말이다. 이 작가도 그랬지만 60~~70년대를 산 베이비 붐 세대들은 마약에 관대했다. 일생에 한번 해볼만한 것으로, 한때 마약 안 피운 사람이 어딨어 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 말이다. 자신들이 부모들의 반대와 경악에도 불구하고 마약을 했던 세대였기 때문에 그들은 마약에 관대할 수 밖엔 없었다. 솔직하게 자신들이 마약을 했던 과거를 실토하면서, --거짓말은 아니니까,--어쩌면 그걸 미화하지 않았던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마약에 관대한 부모를 둔 자식들은 학교에서 마약을 배워 중학교 시절부터 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부모 모르게,하지만 조만간 그 누구도 모를 수 없는 그런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쯤이 되어서야 부모는 알아차리고 경기를 하게 된다. 부모세대가 몰랐던 것은, 그들이 하던 마약과 자식들이 하는 마약은 강도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들 세대에서도 물론 마약 중독으로 죽긴 했지만 , 중독에 이르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고, 중독으로 신세를 망치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들이 산 증인 아닌가. 마약을 했지만 멀쩡하게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건사하고 직장에 다니고, 돈을 벌고 은퇴후를 걱정하는 어른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들은 아마도 자기 자식들 역시 그 정도에서 끝날 것이라고 생각한 듯 하다. 하지만 그들은 틀렸다. 그리고 자신들이 틀렸다는걸 알아차리고, 이제 사태를 바로 잡을려 하는 순간 그들은 다시금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된다. 자식 세대의 마약 중독을 끊는 것은 정말로 힘들다는 것을. 내가 부모로써, 걱정이 되니 이제 네 미래를 위해서 끊어라는 말로 하루아침에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걸 알게 되는 것이다.


그냥 어느정도 힘들다 였다면 아마도 이런 책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정말 징글징글 하게도 죽지 않았다.별별 수단을 다 쓰고, 종종 어릴적 그 아름답던 소년으로 되돌아와 마약을 끊겠다고 다짐을 하던 아들은 조만간 다시 마약에 손을 대고는 길거리로 나가 연락을 끊었다. 그리곤 몇 달 동안 부모의 애를 태우다 결국 병원에 실려 가서야 아들을 찾게 되는 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끊임없이 묻는다. 과연 부모로써 어디까지 아들을 인내해야 하는 것일까? 거기에 한계란 없는 것일까? 그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데는 정말로 마약 중독이 지긋지긋했기때문이다. 아들이 망가지는 꼴을 봐야 하는 것은 물론--보통 부모로써는 그것도 감당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상처일지 자식들이 모른다는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돈도 화수분처럼 들어가고, 그래도 아들 한번 살려 보겠다고 별별 수단을 다 써봤는데, 이번에는 괜찮겠지 했건만 다시 되돌이 마약 중독으로 돌아가니 말이다. 아들의 거짓말과 나약함에 질려 하다가도, 아들이 망가져 돌아오면 안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모습에서 아들에겐 한없이 작아질 수 밖에 없는 부성을 느낄 수 있었다. 과연 정말로 부모란 어디까지 자식을 인내해야 하는 것일까? 부모라는 이유로 자식의 모든 허물을 그냥 뒤집어 써야 하는 것일까?  그래도 자식이기에, 마지막 희망을 놓치 않고, 반복되는 중독사에 하염없이 함께 휘말려야 하는 것일까? 


저자 역시 정답을 알지 못하는 듯하다. 아마 누구도 정답을 알 수 없을 것이다. 한없이 사랑했다는 아들 닉이 왜 그렇게 한순간에 마약 중독자 정키가 되어서 인생을 종치게 되었는지 그것 역시 알 길이 없다. 그럼에도 한가지, 이 책을 보면서 마약 중독의 심각성에 대해 확실하게 알았다.  우린 마약 중독자 하면 패배자에 멍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여기 작가의 아들 닉은 우등생에 전도 유망한 학생이었다. 그가 왜 한순간에 마약 외엔 아무것도 필요없다면서 거칠고 난폭하고 거짓말 장이가 되었는지 생각을 해보시라. 청소년 시절에 손에 댄 마약은 , 그것이 우연이었건 자신의 의지였건 간에 회복할 길 없는 흔적을 남긴다고 한다. 즉, 뇌가 마약이 가져다 주는 쾌감에 절어 버리는 것이다. 어른이 중독이 되었다 해도 벗어나기 힘든데, 아직  성장중인 뇌에 마약 맛을 보았으니 어떻게 됐겠는가? 일단 거기에 맛을 들이게 되면 벗어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 책을 보니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게 아닐까 싶었다. 부모들은 다들 행여나 그래도 자식이 제 정신을 차릴까 해서 모든 것을 다 해보지만 말이다.


하여간 이 책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그래도 아이를 키우는데 있어선 미국보단 낫지 싶었다. 적어도 학교에서 마약을 배워 오진 않으니 말이다. 작가가 아들이 마약 중독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학교에 찾아가자, 교장이 하는 말이, 요즘 모든 학교에서 비상이라고 하더란다. 아이고, 부모가 아이를 맡기는 최고의 보루인 학교에서 마약을 배워 온다면 과연 어느곳이 안전할 수 있겠는가. 마약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미국 학생들이 갑자기 무섭게 느껴진다. 그게 아무렇지도 않은 거라는 것을 이런 부모들의 절규를 보면서 한번은 생각해보면 어떨런지...


미국의 실정에서는 이런 책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뭐, 아직까진 고등학생들이 마약을 하러 몰려 다니진 않으니 말이다. 다행이다 싶다. 제발이지, 다른건 몰라도, 그것만을 배우지 않았으면 한다. 자식들을 위해 무엇이든 하려는 부모들을 위해서 라도 말이다. 인생을 살아보기도 전에 마약에 빠져 인생을 버려 버리는 것만큼 낭비가 있겠는가? 우리나라엔 제발 마약 문제가 미국처럼 크게 번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우리 어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하겠지 싶다. 다른 어떤 것보다 이런 비극은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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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첨단 마을 스니드 빌에선 인간을 제외한 모든 것이 인공이다. 공기도, 나무도, 풀도,바람도,먹는 것도...길거리는 한톨의 먼지도 없이 깨끗하고, 사람들은 음료수를 사 먹듯 공기를 사서 들이마신다. 마을 주민들 모두 걱정이나 욕망 없이 단지 행복해만 보이는 그곳에 소년 테드가 산다. 옆집 누나 오드리를 짝사랑하던 그는 그녀가 진짜로 살아있는 나무를 보고 싶다고 하자 나무를 찾아 나서기로 한다. 스니드 빌도 한때는 나무가 무성한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과거를 짐작도 할 수 없는 상태, 테드는 나무가 멸종하게 된 경위를 알고 있다는 윈슬로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묻는다. 마을 외곽에 괴짜 은둔자로 살아가는 윈슬로는 아직도 나무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있냐면서 깜짝 놀란다. 나무가 사라진 것은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화를 내면서도 그는 나무를 사라지게 한 장본인은 자신이라고 실토를 한다. 돈을 벌 욕심에 나무 요정인 로렉스와의 약속도 져 버리고 마지막 한그루까지 베어 버린 것이 그였으니 말이다. 나무가 울창하던 풍성한 숲, 물고기가 뛰어 다니고, 오리가 활개를 치며, 곰들이 사고를 치던 아름다운 스니드빌은 나무가 사라짐으로써 황량한 들판이 되었다. 더불어 윈슬로의 사업 역시 망해 버렸고, 그는 후회와 자책감에 은둔자가 되어 버렸다. 나무를 살게 하고 싶다는 테드의 말에 윈슬로는 마지막 남은 씨앗을 그에게 맡긴다. 마을에 공기를 독점판매하고 있던 오헤어 사장은 테드가 나무를 심는다는 말에 펄쩍 뛴다. 공짜로 공기를 배출하는 나무를 마을에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 말이다. 오헤어 사장의 방해 공작에, 마을 사람들 역시 지저분한 나무가 왜 필요하다는 것인지 이해를 못한다. 과연 테드는 윈슬로의 희망을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인가?





  < 깜찍해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하는 짓은 귀여운 나무 요정 로렉스, 주인공으로써는 드물게 별다른 활약상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내용이 요즘 만화영화 같지 않게 고루하고 교훈적이라 했더니, 유명한 동화 작가 닥터 수스가 원작자라고 한다. 아마도 각색자들이 원작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를 쓴 모양이다. 요즘 나오는 영화 치고는, 특히 <슈퍼 배드>를 만든 제작진의 작품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착했으니 말이다. 슈퍼 배드의 특징이 뭔가, 괴짜라고 할만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시종 냉소적인 톤을 유지하면서도 공감이 가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 않았던가. 괴짜들을 가지고도 그렇게 사랑스런 영화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기발한 발상들에 박수를 쳐주었어는데...  캐릭터의 승리라고 할만한 특이한 등장인물에 기괴한 상상력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전작의 기억에 힘입어 대충 그런 영화를 기대하고 갔건만, 이 영화에는 공감 가는 사랑스런 괴짜는 없었다. 인간성은 딱 두가지로 나뉘는데, 좋은 사람 아니면 나쁜 사람이고, 나쁜 사람들은 다 돈을 밝히는 사람들이다. 인공적이지만 아름답기 그지없는 스니드빌의 모습에 대비해 공해로 쩌들은 외곽을 보여주는데, 주민들의 안락을 위해 그들이 외면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강조해준다. 지나친 단순화, 흑백 논리, 착해야 한다는 사명의식이 어찌나 뻔하게 드러나던지, 종종 지루함을 감출 길이 없었다. 휘향찬란한 3D 효과와 귀여운 동물들, 투덜쟁이 할아버지 같은 나무 요정 로렉스등 반할만한 요소가 많았음에도 말이다. 만약 그들마저 없었다면 공익광고인줄 착각했을 것이다. 미국에서도 이렇게 노골적인 공익 영화를 찍다니, 놀랠 노자다. 그들에겐 이거 너무 뻔해 보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을까? 여기 저기를 조금 손보면 보다 세련된 영화가 되지 않을까 고민해본 적은 없었는지 묻고 싶었다. 왜냐면 너무도 뚜렷한(?) 주제 의식이---환경을 훼손하지 말자, 나무를 자라게 하자는-- 이야기의 재미를 반감시키고 있었으니 말이다. 잘 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갑다를 실감나게 해줬고, 종종 웃기긴 했지만 그게 이야기와 연결됐다기 보단 산발적인 이벤트에 그치다 보니 산만하게 여겨졌으며, 3D 효과에 탄성을 지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그게 이야기를 더 재밌게 만들지는 못했다. 그렇다보니, 가장 재밌게 본 장면이 본 영화 상영전 틀어 준< 슈퍼배드 2>의 티저 영상이었다. 영화를 보고 났더니 기억나는 것이라곤 다른 영화 예고편이라니, 할 말이 없다. 역시 영화의 완성도는 이야기가 얼마나 탄탄한가에 달렸지 싶다. 아무리 영상에 공을 들였다고 해도 이야기가 진부하거나 캐릭터가 유치할 시 치유할 길이 없으니 말이다. 조잡하기 이를데 없던 < 아더 크리스마스>가 작년에 상영되었다는 것이 그나마 이들에겐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적어도 우린 그렇게 망하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추신 1--오! 최양락 아저씨잖아? 오헤어 사장을 보는 순간 자동적으로 들었던 생각...

추신 2--아이들에게는 이 영화가 재밌을까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함께 영화를 본 아이들 반응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조카에게 보여주고픈 영화는 아니었거든요. 대신 내년 수퍼배드 2를 기약하려구요.

추신3--굳이 보신다면 3D로. 다른 영화에 비해서 3D 효과가 일취월장한 느낌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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