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귀환 - 희망을 부르면, 희망은 내게 온다
차동엽 지음 / 위즈앤비즈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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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상자에서 '희망'이 먼저 나왔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낭떠러지에 가 닿는 순간 맞이하듯 '희망' 이란 절망의 끝에서 발견하는 것이기에 더욱 값지지 않을까. 요즘은 식구들이 병원신세로 바쁜 날이 이어지고 있다.나도 팔이 아파 병원에 오래도록 다니고 있고 그런 시기에 갑자기 언니가 허리수술을 하게 되었다. 조카가 보호자노릇을 하고 있으니 가까이서 가만히 보고 있을 수도 없고 잠깐 가서 있는 것도 정말 힘든 시간인데 큰딸까지 체육대회연습을 하다 손가락이 골절되어 깁스를 했다해서 주말엔 녀석에게 올라갔다 왔다.힘든 일은 한꺼번에 밀려오듯 힘겹게 이 파도를 넘으면 좀더 잔잔한 바다를 만날 수 있을 것인지,아니 웃는 날이 올 것이란 것을 알고 있기에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수술당일 언니의 상태가 갑자기 안좋아져 중환자실로 옮긴다고 해서 늦은 저녁을 먹다 밥숟갈을 급하게 놓고 병원으로 뛰어갔다.잘못되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좀더 안정된 환경에서 지켜보기 위하여 옮기는 것,좋아지기 위하여 옮기는 것이라 희망을 가졌고 올라가서 언니의 상태는 매우 안정적이 되어 마음을 놓고 귀가 할 수 있었다.

 

저자의 <무지개원리>는 읽어보지 않았지만 <잊혀진 질문>은 한번 접해 보아서 낯설지 않다. 거기에 '희망'이라는 '긍정에너지'가 가득 담겨 있어 요즘 내 기분을 이해해주며 더욱 긍정에너지를 충전하는 것 같아 기분 좋게 읽을 수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다른 어떤 때보다 '절망'을 더 빠르게 느끼고 그 늪에서 빠져 나오는 것 또한 쉽지 않다고 여긴다. 남과 비교하여 조금만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금방 절망을 하기도 하고 너무 주위에서 '절망'으로 부추기는 것들이 많은 듯 하다. 그저 내려놓고 내 아래를 본다면 살아갈 힘,희망을 얻을텐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바라기처럼 자신의 위의 태양을 향해 있기 때문에 절망과 마주하는 기회도 더 자주 오는 듯 하다. 그렇다고 절망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으면 안된다. 절망 속에 분명 우리가 내려 놓은 '희망'이 있다. '희망의 귀환' 잊고 있거나 잃어버렸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다시 찾을 수 있는 방법들이,이야기가 가득하다.

 

상황이 매우 고약할 때는 희망놀이가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언제나 긍정적인 태도를 반복적으로 선택하여 '경영의 신' 으로 불린 일본의 전설적 기업인 마쓰시타 고노스케, 그는 숱한 역경을 헤치고 94세까지 살면서 수많은 성공신화를 이룩했던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인생승리 비결을 한마디로 '덕분에'라고 고백했다. "저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덕분에' 어릴 때부터 갖자기 힘든 일을 하며 세상살이에 필요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를 대표하는 수식어로 '희망 멘토'라는 말이 있다니 정말 누구보다 뿌듯할 듯 하다. 그만큼 남보다 더 많은 긍정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듯 보이고 '희망' 이라는 긍정을 더 많이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 책을 읽는 순간 긍정을 바로 충전해야 할 것만 같다. 우린 말을 할 때 '~~ 때문에' 라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니 이젠 '~~덕분에'로 고쳐야 할 것 같다. 내가 잘못하던가 자식들이 잘못하면 '~~ 때문에' 하며 책임을 회피하듯 잘못을 남에게 넘기려고 했는데 그것을 이젠 '~~덕분에' 라는 긍정의 말로 고쳐야겠다. 가난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소중한 경험이 없는 사람이다. 뭐 가난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만큼 소중한 밑천이 없다는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다.가난이란 부끄러움이 아니라 그것을 딛고 이겨낼 소중한 자원이 됨을 말해주고 있는데 요즘 아이들은 풍부함 속에서 살아서인지 하나만 모자라도 아니 어느 것 하나만 남에게 뒤쳐져도 이겨내질 못하는 부분이 있다. 모든 것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그가 '덕분에'로 귀한 것을 얻을 수 있었을까.

 

사람의 뇌는 동시에 두 가지 반대 감정을 가질 수 없다. 곧 사람의 머리에는 오직 한 의자만 놓여 있어서 여기에 절망이 먼저 앉아버리면 희망이 함께 앉을 수 없고, 반대로 희망이 먼저 앉아 버리면 절망이 함께 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뇌에 의자가 하나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의자에 어떤 것을 앉게 하고 싶은가? 희망, 혹은 절망 중에서.누구나 자신에겐 '희망'만 가득차길 바랄 것이다. 절망과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희망을 찾아 오늘 하루도 모두가 열심히 달리고 있다. 그러다 희망이 너무 멀리 도망가는 것 아닌가 때론 절망하기도 하는데 너무 긴 시간동안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 분명 희망은 파랑새처럼 우리 바로 곁에 있다.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절망이라는 것을 의자에 늘 앉혀 놓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봐야 한다. 저자가 들려주는 다양한 '희망' 이야기를 좇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희망이 쌓여감을,아니 희망 속에서 긍정의 에너지로 완충된 느낌을 받는다. 빅토르 위고의 ' 젊은 아름답지만 노년은 찬란하다. 젊은이는 불을 보지만,나이든 사람은 그 불길 속에서 빛을 본다.' 어느 나이나 절망을 느끼고 또 희망을 본다. 요즘은 누구나 힘든 시간을 살아 가고 있다고 한다. 20대는 20대 대로 힘들다고 하고 30대는 40대는 그리고 그 후의 50대도 마찬가지로 모두 힘든 시간 절망뿐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희망' 있기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아직 판도라의 상자안에 남아 있는 '희망' 이 내것으로 빛날 그 순간을 있다고 믿기에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시련이란 진리로 통하는 으뜸가는 길이다.'

그러므로 지금 혹시 자신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바로 이 시기가 지혜가 성장하는 시기,곧 생존의 내공을 쌓는 시기라고 희망적으로 생각할 일이다.

 

나도 큰 수술을 몇 번 경험하여 힘든 시간을 알고 있지만 언니가 힘든 수술을 끝내고 회복하여 나오는 순간에 나 혼자했다. '엄마'를 부르며 아픈 곳을 말하는 언니를 보며 어떻게 말을 이어야할지,목울대가 뜨거운 것으로 콱 막혀 아무말도 못하다가 한마디 했다. '언니,언니가 이렇게 깨어났으니 됐어.이제 밝게 웃을 희망의 시간만 남았어.' 언니는 제대로 듣지 못한 것처럼 울부짖었다.아프다고. 지금 순간에 다른 누구도 그 고통을 함께 하지 못하는 '절망'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분명 수술도 잘 되고 이제 새로운 '희망' 이 다가오고 있다는 부르짖음으로 들었다.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하루하루 희망은 더 가까이 오고 있다. 그렇게 아픔에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던 언니에게 '두 발을 움직여봐.움직일 수 있는 만큼'그랬더니 수술전에는 한다리가 마비가 와 움직이지 못하다더니 힘차게 두 발을 움직이며 좋아했다.하지 말라고 해도 계속 두 발을 움직였다.그리곤 비로소 웃었다. 앞으로 힘든 시간이 와도 두 발로 힘차게 걸을 생각에 열심히 회복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절망이란 시련을 이겨내려면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꿈을 현실화 하여 말하다보면 더 가까이 이룰 수 있고 현실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배를 만드게 하려면,그들에게 바다를 보여주라!" 바다를 보지 못하고 그 앞에서 절망에 허우적 거리지 말고 '나도 희망할테니 너도 희망해라'라고 한다. 무엇이든 먼저 해야할 일은 '인정하기'이다. 자신의 현재를 인정하고 받아 들이며 포옹하고 그리고 춤추라고 한다.오기든 호기든 강기를 부리든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도약하라고 한다. 천재를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했다.그렇다면 이제 희망을 찾아 도약했다면 '즐겨라' 목표를 향하여 좀더 구체화시키도록 꿈을 향하여 희망을 향해 '우보만리'의 기분으로 즐겨라. 희망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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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지나간 주말

 

낙지닭볶음탕

 

 치즈닭볶음탕

 

주말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시간을 보냈다. 큰딸이 손깁스를 해서 녀석이 어떻게 되었나

궁금하기도 하고 아무것도 못 하고 있을 듯 해서 전자렌지를 사고 다른 필요한 것들을 챙겨 올라

가게 되었다.그런데 녀석이 그 전에 어린이날 알바를 신청해 놓아서 알바를 가야한단다. 손깁스를

하고 괜찮은지 물었더니 어린이날이라 '목소리'만 있으면 된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데 엄마가

올라가는데 열쇠를 가지고 가는 것도 그렇고 녀석이 알바 끝나는 시간이 늦기에 거기에 맞추어

가야하니 그도 또한 문제,암튼 열쇠를 근처 어디 가게에 맡기고 가라고 일렀다.

 

그런데 녀석 바쁘게 준비하고 나가며 열쇠를 맡기지 못했단다.주인집이 바로 윗층에 있고 여벌

열쇠가 있으니 괜찮겠지 하면서 조금 늦다 싶은 오후에 올라갔다.가기 전에 녀석이 햇반이라도

사다 데워 먹으라고 전자렌지를 구매하느라 시간이 조금 지체 되었다.그래도 녀석은 알바를 갔

기에 서두르지 않고 갔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주인집이 집에 없고 아무리 전화와 문자연락을

해도 받지를 않는다는 것,그래서 이른 저녁겸 해서 점심도 먹지 않아 밥을 일찍 먹기로 했다.

녀석이 맛있다며 지난번 올라왔을 때 갔다가 문을 받아 먹지 못한 집으로 갔다. 녀석은 그곳의

음식이 다 맛있다고 해서 무얼 먹을까 하닥 옆지기는 [치즈닭볶음탕] 난 [낙지닭볶음탕]을 시켜서

먹었다. 대학가라 아이들 주머니사정에 맞추느라 대부분 알맞은 양에 알맞은 가격이다. 그런데

맛도 애들 입맛이다. 어쩐지 맛있다고 하더라. 깊은 맛은 덜했지만 그런대로 그릇을 싹싹 비우고

커피까지 마시고 나와서는 학교 앞 거리를 한바퀴 걸었다. 술집 음식점 PC방 포장마차등 정말

먹거리 일색이고 교양 있는 청춘들이 갈 만한 '문화적 지식적인 공간'은 어디에서 없다는 것.

서점이나 그외 교양 있는 곳보다 학생들 주머니나 털 그런 곳들이 즐비하니.모두 부모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들인데. 그런 것을 알까.

 

쥔집과 연락이 안되 산책도 끝나고 집 앞 차 안에서 DMB를 보며 두어 시간을 넘게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쥔집에 불이 켜져 있다.옆지기와 올라가는데 전화가 왔다.그러지 않아도 불빛을 보고 올라

가고 있다고 하여 겨우 녀석의 방에 들어가니 그야말로 난장판.설거지도 청소도 빨래도 모두 못하여

옆지기와 둘이서 바쁘게 움직이며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그리곤 떨어진 것들 마트에 가서

구매해 채워 넣고 오렌지를 까서 먹고 홍차도 마시며 여유 시간을 즐기고 있는데 큰따님이 늦은

저녁을 먹고 들어왔다. 손깁스에 늦은 시간까지 알바를 하여 피곤함이 역력하다.그래도 꿋꿋하게

한 주를 살았으니.번쩍번쩍 하는 방을 보고 좋아하는 녀석,엄마와 아빠가 구원군처럼 와 주었으니.

오렌지도 까서 지퍼백에 넣어 두고 먹으라 하고 녀석과 잠깐 여유를 즐기다 늦은 시간이 되어서

내려올 수 있었다.

 

그렇게 종일 다녔어니 오늘 몹시 피곤핟.옆지기도 피곤할텐데. 언니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가봐야

하는데 도저히 움직이질 못하겠다.은행볼 일도 있는데 미루어 두고 그냥 앉아서책을 읽다가 단잠을

잤다.그런적이 없는데.녀석은 어제 밖에서 도시락을 먹었다더니 속도 안좋다고.그래도 어제 보고와서인지

조금은 맘이 놓이는데 시간이 약인데 그 시간을 잘 이겨내줄지.언니도 입원해 있고 큰놈도 손가락

골절이라 손깁스를 해서 이래저래 맘이 불안하고 맘이 쓰이고.옆지기가회사에서 헌혈증을 가져다

준다니 언니에게 조금 도움을 줄 듯 하기도 해서 내일은 또 병원에 가봐야 하는데 에효 피곤하네.

하루하루 푸르름으로 자연이 변화하고 있으니 모두들 이 시간 잘 견디어내고 건강해지겠지.

 

20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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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분홍 화단 초록의 싱그러움이 좋다

 

 

 

 

 

 

아침 일찍 병원에 입원 중인 언니에게 전화,오빠가 엄마가 병문안 오셨다며 올 수 있나 묻는다.

언니는 허리 수술을 하고 중환자실에 있다가 어제 일반실로 내려왔는데 다행히 좋아졌다. 이제

죽도 먹고 기운을 차리고 있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가게 되어 있다. 앞으로는 희망만 올 것이다.

병원에 올 수 있냐는데 글쎄,옆지기가 출근하며 병원에 가서 자신의 약 좀 타다 달란다. 어쩔 수

없는 상태라 가서 말은 해 보겠는데... 날이 워낙에 좋으니 뒷산에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에효 모든 것 다 내려놓고 쉬기로 했다. 큰놈이 체육대회 연습을 하다가 손가락이 골절되어 깁스를

하고 혼자 견디고 있으니 주말에 가봐야 한다.

 

병원에 가서 약을 타고 마트에 들러 햇반을 넉넉하게 샀다.녀석에게 가져다 주기 위하여 밥도

못하고 설거지를 못하고 있으니..며칠은 견디겠으나 언제까지일지.그래도 혼자 씩씩하게 견디고

있어 대견한데 일요일엔 어린이날에 알바를 한단다. 손에 깁스를 하고 무슨 알바,했더니 어린이날

이나 괜찮다며 약속해 놓은 것이니 한단다.올라가도 만날 수 있을지.. 그래도 올라가봐야 한다.

에효 두 손으로도 제대로 살고 있는지 의문인데 한손에 깁스까지,오른손이라 더 불편할 듯 하다.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은데 얼마나 불편할까.언니에게도 가봐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하고.맘이

혼자서 뒤숭숭하다.날이 좋으니 더욱 뒤숭숭.

 

 

 

 

 

 

 

마트에 걸어 갔다 왔더니 덥다. 그러고보니 반팔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보이고 나무들은 이제

완연하게 초록이다. 아파트 화단도 온통 꽃분홍 영산홍에 초록빛으로 옷을 바꾸어 입었다. 진동

으로 놓고 다녔더니 전화에 톡에 문자에 아무것도 못 챙겼다. 택배가 있어 전화가 오고 문자가 오고

그걸 모르고 그냥 다녔다. 집에 들어와 확인하니 경비실에 택배가 있다고 하고 혼자 나갔다 왔더니

여시가 난리다.저도 나가고 싶어서.그래서 다시 분리수거 챙겨 여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들어

오는 길에 택배를 챙겨 오고 위하여. 그렇게 아파트 산책길을 한바퀴 도는데 황매도 피고 명자꽃도

피고 영산홍도 피어 이쁘다. 아파트만 걸어도 오월을 잘 느끼겠다.여시가 싱그러운 바람을 쐬니

좋으니 난리가 났다. 사람 소리만 나면 마구 짖어 대고..예전에는 안그랬는데 나이 들더니 더욱

짖어댄다. 쬐끄만게 겁도 없이.아파트를 한바퀴 산책하고 경비실에 들렀어니 책이다.

 

 

 

 

뒷산의 푸르름을 놓고 바로 아파트 화단만 도는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여시가 콧바람을 쐬고

나도 택배도 찾고 분리수거도 버리고 오월의 햇살도 즐겼다. 주말의 오후를 잠깐 즐긴 것으로

뒤숭숭 하던 맘도 조금은 가라앉았다.어제 조금 안좋은 일이 있었다. 막내가 학교에서 구매한

책이 반품이 안된다고,방판이나 마찬가지인 책을 애들에게 강제적으로 대금결제를 하게 하는

업체와 하루종일 싸우다보니 머리가 깨질 듯. 업체직원의 전화를 녹음해 놓고 막내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니 막내가 하는 말과 너무 틀리다. 톡으로 나눈 증거자료도 있는데. 바로 조치를 취했다.

반송신청을 해 놓고 증거자료를 보내고는 일을 마무리 할 것을. 지금도 이런 방판에 강매에 불법적

책판매가 있으니. 전날 구리구리 했던 맘을 오늘 꽃들을 보며 다 날려 버렸다. 막내에게도 상품을

보내고 더이상 신경쓰지 말자고 했다.그쪽에서 뭐라 나오든 그건 자신들 잘못도 분명 있으니.

막내에겐 그것도 세상공부이고 인생공부라고 했다. 살며서 내가 원하지 않은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오늘도 같은 햇살도 흐린 날에는 귀하게 여기게 될 것이다. 어젠 먹구름이었지만

그 먹구름 속에 오늘의 햇살을 위한 희망이 숨어 있었나보다.

 

20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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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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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지 전에는 쉽게 읽어낼 줄 알았는데 한 장 넘기면서 '이건 뭐지' 무언가 묵지근하게 가슴에 안에 들숨이 가득 고이면서 날숨으로 토해내지 못하고 고여 있는, 무언가 내 가슴을 내리 누르고 있거나 밟고 있는 것과 같은 무게감이 느껴진다. 이 소설을 읽다보니 예전에 보았던 영화 <인셉션>이 생각났다.꿈속에서 꿈은 또 다른 꿈으로 파생되고 파생되고 꿈속에 갇혀서 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야말로 꿈이 꿈으로 끝나는 이야기.아니 끝이 없을것만 자꾸만 계속적으로 연결되는 거울속의 거울 또 거울처럼 딱 알맞게 짜여진 틀 속에서 계속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꿈' '몽상' 이면서 모든 이야기와 인물들은 작가가 짜 놓은 촘촘한 그물처럼 서로 연결이 되어 있는가 하면 뫼비우스의 띠처럼 다시 처음으로 이어진다. 힘겹다. 읽으면 읽으수록 힘겨움에 푹푹 빠져 든다. 이해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그냥 작가가 그려놓은 몽상속에 갇혀 허우적 거리는게 나을 듯 하다.

 

'전직 여배우 아야미는 손에 방명록을 든 채 오디오 공연장의 두번째 계단에 앉아 있었다.' 전직 여배우였고 등장 인물이 분명 '아야미'다. 그녀는 흔하지 않은 마지막을 달리는 '오디오 공연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전직 여배우였지만 그녀가 오디오 공연장에서 하는 일은 허드렛일이다. 오디오 공연장의 극장장 또한 그녀처럼 뒤로 내몰린 사람과 같다. 그런가 하면 아야미가 찾아가는 독일어 선생님 여니또한 다양함으로 그려지는 인물이고 그녀에게 '약'을 가져다 주는 부하라는 인물 또한 다양함으로 그려진다. 아야미 또한 오디오 공연장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인물로도 등장을 한다. 뭘까 이 정체모를 인물의 변형과 이야기의 변형은.

 

총 4장으로 나뉘는 이야기는 하나의 꿈에서 또 다른 꿈으로 파생된 괴생명체처럼 모습을 드러내는가 하면 마지막 장의 이야기는 처음의 생명체의 꼬리를 물듯 이어진다. 이 느낌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그런대로 빠져들다보니 제대로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책표지의 그림처럼 금방 누군가 '쨍그랑' 깨뜨리고 간 거울처럼 조각조각 흩어진 꿈들이 언제 하나로 연결이 될지 모르겠지만 조각난 꿈들 속에 갇혀 유영하다 보니 작가 '배수아'라는 인물을 잊지 않을 듯 하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그 시작과 끝을 알려고 하면 알 수 없음이라는 물음표로 돌아가듯 그녀의 소설은 그렇게 돌고 돌고 또 돌아간다.

 

"그럼 어떤 글인데요?"

"난 추리소설을 씁니다."

"미안해요.여니가 시인이라고 말을 하는 바람에......"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하지만 여니라는 사람이 날 뭐라고 표현했는지 갑자기 조금 궁금해지는군요."

"시인이 올거야"

"뭐라고?"

"여니는 똑똑하게 말했어요. '시인이 올 거야' 하고"

 

그녀의 소설은 어떻게 보면 시 같기도 하고 위의 글처럼 '추리소설'같기도 하다. 난해한 산문시인가 하며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추리'를 해야할 것만 같은 이야기들 속에서 또한 헤매는 한마리 잠자리와 같기도 하다. 아무리 눈을 삼백육십도로 돌려봐도 도무지 그 속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토하고 싶으면 이대로 내 몸에다 토해도 돼요.'...'그게 더 편하다면 말이죠...' 이 마지막 부분은 뭘까? 독자에게 하는 말처럼 들리는 의미는."당신이 편지에 쓴 것처럼..." "이제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줘요." 확실하게 작가는 독자를 다른 세계로 인도했다. 꿈 속인가 했더니 완전히 꿈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꿈속에 갇혀서 안에 고인 모든 것을 개워내고도 그 의미를 모르듯 작가의 세계에 완전히 갇히게 만든다. 주술적이라고 해야 하나.마지막 문장처럼 '마치그것이 점점 희박해져가는 두 인간이 동시에 한 장소에 있기 위한 유일한 주술의 몸짓이라고 믿는 것처럼' 읽은 그대로 간직한다.언젠가 그녀의 세계를 아주 조금 이해하게 된다면 다시 펼쳐 들고 읽어봐야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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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 제4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이수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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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일까? 아니 나부터 나와 다름을 인정해주며 살아 가고 있을까? 나와 다름을 인정하기 보다는 나와 똑같아지기를 강요하며 살아가고 있고 그런 사회인듯 하다. 그런 반면에 요즘은 '동호회' 가 인터넷을 활성으로 인해 무척 다양해지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산악회만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지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겹치기로 몇 곳의 산악회를 드는가 하면 애견인들이나 애묘인들은 또한 그 나름으로 뭉치기도 하고 취향이란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어쩌면 세분화 되어 단위가 커지고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 보게 되었다.

 

네가 떠나고 난 후 빨다 버린 사탕이 된 나는 인턴은 진작 끝났고,인턴이 끝나니까 이제 직장이라고 대답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됐고,그래서 나는 씹다버린 껌처럼 바닥에 들러붙어서 그저 빚 갚을 일만 남았는데 돈도 없고,그러니 이제 문서제단기에서 들어간 영수증처럼 잘게 썰려 벌져지는 일만 남았는데 너는 이미 내 곁에 없는 거였다.

 

소설에서는'애묘'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애견을 키우고 있어서 그런가 나 또한 나와 취향이 같은 사람을 만나면 소통이 잘 되어 할 이야기가 많지만 애견에 대하여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는 한마디도 안통한다. 그들은 '반려동물'에 대한 생각이 없다.동물은 동물이다. 동물에게 하는 사랑을 부모나 그외 사람들에게 하라는 식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마이너스인 부분도 있지만 삶에 반려동물로 인한 플러스 부분도 많다. 동전의 양면과 같이 음과 양이 있게 마련이 것이 '취향'인듯 하다. 애묘인들, 아니 애묘가였던 여자친구가 갑자기 달랑 문자 한마디로 헤어지자고 하고는 행방불명이 되듯 행방이 묘연해졌다. 나의 어디가 맘에 들지 않아서,라고 생각을 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애묘인 '쿠치'를 잃어버리고는 완전히 딴사람이 되었다.오드아이였던 쿠치, 쿠치는 어디에 있길래 그녀와 그의 사이를 갈라 놓은 것인가.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에서 고양이 애호가가 아닌 애호 무리가 지나치게 늘어난 것은 특수한 경우에요.이런 식으로 대거 몰려 다니게 된 것은 최근 몇 년간의 일이거든요.저희는 그것을 특별함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정말 '쿠치'라고 생각되는 그녀의 애묘를 만났다. 우여곡절 끝에 쿠치를 잡을 수 있었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애묘카페동호회에 나가지만 망신아닌 망신을 당하게 되고 그곳에서 뜻하지 않은 인물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애묘가가 아닌 '안티 버틀러'였던 것이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반대파나 마찬가지인 '안티'가 있었던 것,그와 통하는 바가 있다. 그렇게 한은 김B를 만나 '안티 버틀러' 가 되어 행동에 나서게 되는게 그게 정말 대단하다. 모인사람들이 고양이에 의해 피해를 입거나 더 나아가 대선까지 연관이 된다. 단순하게 생각했던 '취향'이 한나라의 우두머리를 뽑고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수도 있음까지 나아갔다. 취향이 무섭게 작용을 한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정말 무섭게 흘러간다.아니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자신들의 '취향'만을 인정하는 세계,나와 다른 취향을 공격적으로 공격을 한다.물론 현실에서는 이렇지 않겠지만 소설에서는 '공격적'으로 발전해 나간다. 소수의 인원이 모이지만 그 힘은 섬짓하다. 그런 이야기가 맛깔나면서 '천명관'의 <고래>를 읽는 느낌의 스토리텔링에 빠져들게 된다. 소설을 읽으면 <고래>가 자꾸 생각나는 것은 뭘까? 끝나지 않을것만 같은 이야기들의 이야기 속에서 '내 취향은?' 하며 반문해 보게 되었다.내 취향은 타인에게 강요하며 살아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저자의 글은 어쩌면 소설속 '남궁 아버지'의 글과 같다고 표현하는 것 같다. 진밥이 아닌 고두밥이 아니어도 분명 고두밥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그런 글을 만난 기분이다. 꼭꼭 씹어서 삼켜야 할 것만 같은 저자의 소설을 오래 기억하게 될 듯 하다.나와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받아 들이고 인정하는 일이 평생에 걸쳐서도 못하는 사람도 있다.그 힘든 일을 고두밥과 같은 독특한 글로 풀어내고 있다.꼭꼭 씹어 삼키라고,그런 글을 만난 것은 행운이기도 하다.

 

거기 실린 글들은 진밥이다. 씹고 삼키기 좋다는 뜻이지.사람들은 그런 글을 좋아한다.읽고 섬기기 좋기 때문이지. 아버지의 글은 고두밥이다. 씹기도 삼키기도 쉽지 않다는 의미다.남들과 다른 것,알기 힘든 것,그런 것은 튀어나온 돌부리와도 같다. 시선을 두다가도 비켜가거나 피하고 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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