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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이방인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호세 무뇨스 그림 / 책세상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올해가 까뮈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고 '이방인' 출간 7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내가 이방인을 읽은 것은 학창시절에 물론 읽었고 그 후에 나이가 들고 다시 이방인을 구입하여 읽어 보았다. 하지만 이 책은 특별하다.70주년과 100주년을 기념한 <특별판>으로 그래픽노블으 거장 호세 무뇨스의 흑백으로 탄생한 새로운 '이방인'이 함께 접목 되어서인가보다.어느 화가의 화보집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도 하며 까뮈의 <이방인>을 색다르게 좀더 내용에 집중하며 읽게 만든 듯 하다.호세 무툐스의 '뫼르소'는 '까뮈'를 닮은 듯도 하고. 어찌되었든 그림과 함께 읽는 특별한 맛의 '이방인'은 좀더 머리에 속속 들어오며 '뫼르소'를 그 법정에서 구해내야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게 했다.그가 왜 부조리와 싸우지 않고 자신의 죽음을 순수히 받아 들인 것인가. 어느 구석에도 자신은 없다. 실존하면서 실존하지 않는 인물처럼 뫼로소는 그렇게 죽음앞에 서게 된다.
선박회사 일하는 뫼로소는 피곤한 가운데 어머니의 부고를 받았다. 셀레스트네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겨우 차를 타고 어머니가 계시던 양로원에 가는 길에 길에도 차 안에서 몹시 지친듯 잠에 빠져 들었었다.그런 그에게 어머니의 죽음은 남의 일처럼 받아 들여졌고 그는 어머니의 시신도 보지 않고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않은채 장례를 치르고 만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모두가 이상하게 생각한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고 해도 어떻게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까지 보지 않을수 있단 말인가.양로원에서 사귄 어머니의 애인인 페레스 영감은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도 그 먼길을 와 애도했건만 그는 남의 일처럼 담담하고 방관자의 입장이 된다. 그리곤 그의 집에 돌아와 뜨거운 태양이 시위라도 하듯 바닷가를 나가게 되고 그곳에서 전에 함께 일하던 마리를 만나게 되고 둘은 정사를 나누게 된다. 그의 어머니의 장례를 어제 치뤘다는 믿겨지지 않을만큼 그는 무감각하다.

그가 어머니를 보내 드리고 그 빈자리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이웃에 사는 살리마노 영감은 악연처럼 그렇게 구박하던 개를 잃어 버리고 개의 빈자리가 컸던지 울부짖는다. 그런가하면 이웃에 사는 레몽은 그에게 함께 살던 여자문제를 그에게 털어 놓으며 그와 친구가 되자고 한다. 레몽의 정부였던 여자를 떼어 놓기 위하여 뫼르소에게 편지를 부탁하고 그는 혼쾌히 편지를 써 준다. 그들의 작전은 바로 이어졌고 레몽은 그녀를 마구 때리다 경찰이 들이닥치고 뫼르소는 증인으로 경찰에 불려가게 된다. 분명 그는 이웃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를 표시하며 일을 해주었는가 하면 회사에서는 착실하다는 것을 인정 받아 파리발령을 제의 받기도 했다. 그런 그가 왜 '살인'을 해야 했을까. 어머니의 죽음부터 이어진 일련의 일들이 그를 어느 죽음의 그물 안으로 몰아 넣듯 그동안 그가 보여주었던 일들이 그에게는 마이너스르 작용을 한다. 왜 어머니의 시신을 한번도 보지 않았을까? 눈물 한 방울이라도 흘렸다면..아니 그 다음날에 마리와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았다면 폐륜으로 낙인이 찍히지 않았을까.
'레몽이 권총을 주었을 때, 그 위로 햇빛이 번쩍 반사되어 미끄러졌다.'
어머니의 죽음과 아랍인을 바닷가에서 권총으로 쏴 죽게 만든 그 순간까지 죽음은 이어지고 있고 마지막 그의 죽음까지 무척이나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인데 소설 속은 온통 뜨거운 햇빛과 파란 하늘 그리고 바다가 펼쳐진다. 음산함이 펼쳐지는 가운데 죽음이 나열되는 것이 아니라 눈 돌릴만한 큰 사건이 없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가운데 일어난 살인사건, 한 발을 쏘아 죽었다는 것을 알았으면서 배에 네 발을 '탕탕탕탕' 꽂아 넣는다.운명 교향곡의 네 번의 쾅쾅쾅쾅처럼 그는 네 발을 처음 한 발과 시간차를 두어 쏜다.왜 그랬을까? 아랍인이 칼을 빼 들었고 그가 권총을 한 발 쏘았다면 정당방위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네 발을 연이어 쏘았으니 이것은 명백한 살인이다. 그렇다고 그가 아랍인을 죽일만한 명명백백한 이유도 없다. 그저 레몽의 정부를 혼내 주었다는 이유로 그와는 우연히 만나게 된 사람들이었는데.
뫼르소의 단조로운 일상은 감옥에 가서도 이어진다. 도무지 자신이 갇혀 있는 것에 대하여 별 생각이 없는 듯한 그,자신이 저지른 살인에 대하여 반론을 하던가 분노를 하던가 자신 안에 숨죽이고 있는 '진실'을 끄집어 내야 하는데 그는 방관하고 있다. 법정 어디에서도 감옥 어디에서도 그는 없다. 그저 '사형'은 당연히 자신의 것인양 남의 일인것처럼 법정에서 방관하는 뫼르소, 그들이 말하는 어머니의 장례부터 하여 이어진 일들에 대하여 좀더 자신을 드러내고 확실하게 말을 했다면 어떻게 변했을까? 그 사회가 그의 진실을 받아 들이지 않을 것을 알면서 미리 포기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사회는 진실한 한사람의 시민을 죽였다는 것인가. 다수가 한사람을 죽이는 일은 간단하지만 개인이 다수를 이기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힘든 일이다.하지만 뫼르소는 자신의 변호하거나 분노하지도 않았다는 것,남의 일처럼 달관하여 방관만 했다는,이방인과 같은 시선으로 삶과 죽음을 그렇게 받아 들였다는 것이 분노하게 만든다.
뫼르소와 함께 했던 이들은 그가 살인과는 무관한 삶을 살아 온 진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만 개개인이 법과 싸우기에는 너무 힘이 작다. 아니 그들의 힘은 법 앞에서 무참히 짖밟히듯 무너지고 만다. 한마디 제대로 말을 해 보지 못하고 거짓의 손을 들어야만 하는 소수의 힘은 뫼르소를 '죽음'으로 이끌고 가게 만든다. 진실을 위해 단두대에 머리를 맡긴 뫼르소, 현실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고립당한 채 그가 형장으로 걸어가며 간직한 진실은 누구를 위한 진실인가? '호세 무뇨스'의 흑백의 그림이 주는 무거움과 흡인력 때문에 더욱 작품에 빠져 들며 읽었던 특별판 <이방인>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책이며 소장해야할 책인듯 하다. 태양, 모든 것을 소생하게 하기도 하지만 죽게도 만드는,진실도 단숨에 뒤엎어 죽음으로 치닫게 만드는 태양의 힘을 강렬히 느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