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속의 군자란과 제라늄

 

 

 

아직은 화려하게 피어 있지만

하나 둘 군자란 꽃이 지기 시작이다.

주말,뒷산에 갈까 했는데 봄바람이 거세고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아

그냥 집에 눌러 앉았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녀석들 물주고 스프레이 해주기..

그렇게 베란다 화단에 들어갔다가 화분을 몇 개 옮기고 제라늄 삽목을 하나 했다.

 

군자란 화분은 20여개

올해 꽃대는 30여개가 넘게 올라왔다.

 

 

 

아마릴리스와 카라의 꽃대가 점점 올라오고 있다.

곧 녀석들의 세상이 될 듯 하다.

 

 

군자란 옆에서 동백도 하나 둘 피어 나더니 11송이나 피었다.

그리곤 투덕 투덕 한 송이씩 지고 있고 있다.

봄날이 화려한 것은 녀석들이 있기 때문이다.

낙화하며 아름답고 화려한 꽃이다.

 

 

 

 

 

벤자민을 가운데로 나누어 왼쪽과 오른쪽이 다른 세상이다.

그래도 녀석들이 피어 있기에 나의 봄날은 화려하다.

 

 

 

 

 

 

 

 

군자란의 꽃말은 [고귀] [우아함] 이란다.

정말 꽃에 어울리는 말이다. 잎만 있는 철에도 군자란은 정말 고귀하다.

'란'이란 말이 이름에 붙어 있어서 난과가 아니라 '수선과' 이면서

남아프리카가 원산지이고 야생에서 자란다는데

울집에서도 물론 잘 자란다. 꽃도 해마다 피고 씨도 잘 맺는 군자란...

녀석들과 함께 한지 20년,키우면 키울수록 빠려든다.

이웃들에게 나누어주지 않았다면 이런 화단이 또 하나 있을 터이다.

여기저기 분양을 하고 나만큼 재미를 가지고 키우지 못하지만

그래도 녀석들이 울집에서는 잘 자라고 있다는...

올해도 이렇게 30여개가 넘는 꽃대가 올라와 피웠으니 정말 대단하고 화려하고

너무 너무 이쁜 녀석들 덕분에 화려한 봄을 맞았다.

꽃이 지고나면 분갈이를 몇 개 해야할 듯 하다.

 

 

 

 

삽목한 제라늄

 

제라늄

 

 

 군자란 옆에서 제라늄은 자신만의 세상을 만드냐고 점점 꽃대를 많이 올리고 있다.

꽃 또한 일찍 핀 것은 지고 있고 꽃망울마다 활짝 피어 점점 화려하다.

워낙에 이곳엔 2개의 제라늄이 있었다. 핑크빛이 이뻐 사다 놓고 보니 다른 색상도 키울까 하여

살구빛을 사다 놓았는데 녀석들 줄기에서 하나 둘 나오는 것을 잘라 삽목을 하여

지금은 13개 정도의 화분으로 늘렸다.

오늘 화분정리하다보니 하나를 더 삽목해도 될 듯 하여 잘라서 삽목을 했다.

 

점점 햇살이 강해지고 있으니 삽목을 해도 금방 자랄 것이다.

그리고 녀석들이 햇살을 좀더 잘 받게 하기 위하여

오늘은 화분 배치도 약간 바꾸어 주었더니 더욱 보기 좋다.

 

오늘은 날이 좋으면 마트에 나가 '씨앗'을 하다가 패트병에 흙을 담아

[패트병채소키우기]를 해보려고 했다.

어느 책을 보니 패트병을 이용하여 갖은 채소를 심어 먹는 방법이 나왔고

나 또한 올해부터는 채소를 조금 키워볼까 하고 있던 참이라

많은 수확을 바라는 것이 아닌 키우는 재미를 느껴보기 위하여

흔히 접할 수 있는 패트병을 이용하여 올해 한번 채소가꾸기를 해볼까 한다.

그런데 울집은 그리 공간이 여유롭지 못하다.

안방베란다는 물론 거실베란다에도 모두 화분이고 실외기베란다에도 화분이다.

어느 공간에 놓고 키워야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한두개 키우다보면 재밌을 듯..

얼른 씨앗을 사러 가야하는데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그래도 울집은 초록이들이 화려하게 피어 봄을 가득 안고 있어 다행이다.

군자란,동백꽃,목베고니아,제라늄,아젤리아,사랑초,부겐베리아,

시클라멘,바이올렛,무늬조팝..이 피었고 말발도리도 이제 서서히 꽃몽오리가 나오고 있다.

새싹들도 나오는 것이 있지만 무엇보다 씨를 심어 발아하여 커가는 것을 보면

더욱 봄을 느낄 수 있고 재미도 있으니 얼른 달려가야할 듯...

 

20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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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정찬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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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생을 살고 있는 난,전생은 무엇이었고 미래에는 어떤 생을 살아갈까? 삶과 죽음을 너머 그 다음 세계를 우린 환생이라 한다. 과연 '환생'이라는 세상은 있을까? 존재할까. 그렇다면 예수의 부활은 어떤 생이라 할 수 있을까. 난 딱히 정해진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기독교적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신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 마음 밑바닥엔 불교의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고 있는 자신을 본다. 다른 어느 곳보다 다른 종교보다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곳은 절이고 불교이다. 그렇다고 불교에 대하여 무척 깊게 빠져 든다거나 불자라고 할 수는 없는 그저 옆에서 구경하는 수준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신을 믿지 않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을 아우르고 조금씩 섭렵하는 그런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종교에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은 '환생'에 대하여,자신의 전생을 보았다는 죽음 직전의 이브라힘을 객관적 사실을 다루는 기자인 케이가 그를 만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자신을 다섯 살 때 버렸다고 생각되는 어머니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두 이야기는 하나의 실로 꼬여 나간다. 이브라힘은 그를 보자마자 알아본다. 전생에서 케이가 그를 죽였다는 것이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에서 병원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이다. 다른 사람의 환생 속에서 내가 나왔다.그렇게 자신의 전생을 알게 된다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십자군 전쟁과 예수의 부활에 이르기 까지 이야기들이 전개되면서 신의 존재와 환생 그렇다면 현생의 나는 어떤 생을 살고 있는 것일까 하는 물음에 답을 하듯 그는 자신의 생모이며 무당인 '어머니'의 생과 만나면서 풀어 나간다.

 

객관적 사실을 좇는 기자인 그가 전생의 이야기와 환생에 대한 이야기를 믿어야 할까. 이브라힘이 말하는 전생과 환생의 이야기는 그가 죽음직전에 경험한 꿈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그가 본 전생일까. 그렇다면 자신을 버린 무당인 어머니의 존재와 무용을 하던 어머니가 신을 모시게 된 사연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그가 병원복도에서 이브라힘을 알 칸디 병원에서 만나던 순간은 '내 안으로 수많은 생명들이 흘러들어오고 있을 때였지요.' 그가 이브라힘을 만나던 그 순간은 전생과 현생의 수많은 생명들이 이브라힘에게 접신한다고 할까 그런 순간이었다는 것이다.그러니 그가 전생에서 이브라힘을 죽였다는 것을 알았고 그렇게 그들은 환생하여 현생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것이다. 그들이 만나게 된 것은 '예수' 때문이었다. '젊은 목수였습니다. 초라한 여인의 아들이었고,남루한 유랑자였습니다.' 예수 또한 삶의 유랑자였던 것이다. 그가 전생을 삶을 마감하고 부활하여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였다고 표현해야 하나 그런 존재로 알고 있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이라고 이브라힘은 말한다. 하지만 그 역시나 삶의 유랑자였고 우리의 삶은 내가 알지 못하는 그 순간에도 연결되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말이다.

 

우리의 삶은 죽음이 끝일까? 라는 물음을 갖게 만든다. 죽음이 정말 끝일까? 자신을 버려야했던 생모는 왜 무당이 되었고 다시 죽음의 그 시간속으로 간 어머니는 그럼 생이 끝이 난 것일까? 한국전쟁으로 인한 과거 때문에 어머니가 어쩔 수 없이 신을 받아 들여야 했고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를 버려야 했지만 기필코 그를 버리지 않았음을,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머니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던 그는 이브라힘의 이야기를 들어가며 전생과 환생을 오가던 그 시간 속에서 어머니를 이해하고 받아 들이게 된다. 어머니를 이해하는 데에는 '강희'라는 아픔을 간직한 신딸이 존재한다. 그녀는 어머니가 돌아가 가시고 굿을 하면서 어머니의 말을 그에게 전한다. 어머니도 아니고 그녀도 아닌 굿을 하는 순간의 말들,나 또한 친정아버지를 보내 드리고 뜻하지 않게 길닦이를 하자는 친정엄마의 말씀에 어쩔 수 없이 그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그 순간을 나 또한 생생이 느껴서일까,섬득함이 느껴질 정도로 그때가 또렷하게 기억났다. 아버지가 아니면서 아버지의 말을 전하는 무녀,그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그 순간 비로소 난 아버지가 이승을 떠나 아버지의 세상으로 돌아가셨다고 믿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환생이라고 해야할까.

 

'우리의 삶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리우어져요. 시간과 공간은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쌍생아지요. 인간의 수명에는 한계가 있어요.길어야 백년이죠.조금씩 늘어나긴 하겠지만, 그러니까 인간은 시간에 갇혀 있는 존재예요. 그 말은,공간에 갇혀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그러니까 죽음 이후에 이무것도 없다면 인간은 영원히 갇힌 존재가 되는 거예요. 여기에서 염원이 생기는 거예요.  닫힌 곳에서 나가고 싶어하는.' 염원,누구를 위한 염원일까? 현생에 살고 있는 나 자신을 위한 염원일까 아님 현생을 떠나 환생의 길을 가고 있는 영혼을 위한 염원일까. '나의 기도는 당신을 용서하는 행위이기도 하지만,동시에 내마음에 새겨진 상처를 씻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자신안에 있는 상처를 씻기 위한 것일까.삶과 죽음은 연장선상에 있지만 우리는 죽음이라고 하면 생의 끝으로 아는데 정말 전생과 현생 그리고 환생이라는 생의 중첩으로 연결되어 있을까.

 

죽음을 앞에 두면 수많은 질문 앞에 서게 된다.그것이 타인의 죽음이라고 해도. 흔히 죽음은 추억만 님긴다고 한다. 사람의 빈자리는 사람이 채우듯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는 무언가의 '줄'에 연결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생도 또한 그렇다는 것을 전생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환생을 믿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는 '염원'이라는 기도를 통하여 누군가 어떤 존재에게 무수히 빌고는 한다. 무엇을 위해 빌까. 은연중에 모든 생을 다 받아 들이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내 앞에 갑자기 다가온다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받아 들이질 못한다. 케이에게 어머니의 존재는 그랬다. 하지만 전생을 보았다는 남자를 만나게 되고 수많은 죽음을 직면하게 되고 '씻김굿' 및 샤머니즘과 당면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모든 것을 보듬어 안게 되면서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비로소 자신의 현생인 삶을 사랑하게 되는 유랑자가 된다. 삶이란 것도 생각해보면 힘들지만 죽음이란 뒤돌아보면 더욱 큰 문제로 다가온다.현생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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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메뉴는 비빔국수

 

 

 

 

 

 

 

그런 날이 있다. 친구들의 전화가 자꾸 오는 날 말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정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날이었다. 어젯밤에 잠이 오지 않아 온 밤을

하얗게 새듯 보내고 아침녁에서 겨우 잠들었는데 그것마져 친구들의 전화로 깨고 말았다.

큰딸은 학원에 들어갔다는 문자가 찍혀서 그런가보다 했더니 점심녁에 전화 온 딸,

그제서 일어났다나.. 감기에 걸려서 약을 먹고 잤다더니 그래서 늦잠을 잤는지..

그렇담 아침에 찍힌 문자는 무엇이었을까? 정신없어서 대충 읽고 지웠는데..

암튼 정말 정신없는 아침을 맞고 말았다. 친구는 기분이 이상하다며 만나자고 했지만

나 또한 정신없는 밤과 아침을 맞았으니 나갈 형편이 도저히 안되어 미안하다고..

그렇게 약속을 포기하고 말았는데 큰딸의 일은 어떻게 된 것일까..

 

기분도 꿀꿀하고 정신도 차릴 수가 없는데다 머리까지 무지근하다.

그래서 내가 내 머리를 커트했다. 벌써 두해 다 되어가는 혼자서 머리 짜르기...

십여분 만에 짧은 단발머리로 자르고 한 번 묶을 정도로 간단하게 짜르고 나니 기분이 좋다.

새로움, 손톱을 잘랐다든가 하는데도 오는 시원함은 머리를 짤랐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가벼움으로 오후를 맞고 있는데 바람 부는 날에 외출했다가

완벽하게 바람을 맞은 친구의 전화 수다로 오후시간을 몽땅 보내고 말았다.

부모님이 점점 연로하시니 괜히 하루하루가 점점 목을 조여오는 것 같다는 친구..

난 친정아버지 일을 한 번 겪어서일까 이젠 조금 느슨해졌는데

친구는 부모님이 연로하시니 하루하루가 정말 걱정이라는,거기에 꿈자리까지 뒤숭숭하니...

그 맘을 나도 안다. 나도 아버지가 가시기 얼마전까지 아버지와 이별하는 꿈을 늘 꾸었기에..

 

친구와 전화수다를 나누는 통에 옆지기의 전화,'저녁 먹고 올게.'

그러다 바로 다시 전화,' 저녁 메뉴가 비빔국수가 아니라네..집에 가서 먹을게.'

아고 그렇담 비빔국수를 해 달라는 이야긴데 요즘 바람이 하도 불어서 국수를 사다놓지 않았다는,

마트에 나가지 않아서 없는 것들이 많은데 어쩐담..'국수나 사오세요...'

했더니 알았단다.그가 올 시간까지 도마위에 '남편'들을 올려 놓고 신나게 요리를 하다가

여자들의 공통점, '그럼 2부는 내일 이야기 하자..' 그렇게 끝을 내고는

옆지기를 기다리며 [오이부추김치]를 담았다. 집에 들어온 옆지기 왈,

-넌 취미가 김치담기냐... 맨날 김치담아..

그 말에 나도 가시가 돋혀서 한마디 했더니 비빔국수를 해도 먹지 않겠다고 삐졌다.

'진짜 안먹으려나 봐야지..' 하면서 2인분을 하여 오이부추김치와 얼갈이물김치와

동치미무침과 함께 저녁 식탁을 가볍게 차렸다. 얼른 자리에 앉아 비빔국수 맛을 보면서

맛있다고 하는 옆지기, 웃음이 나왔다. 맛있게 먹을거면서 별거 아닌거 가지고 삐지는것을 보면

그도 나이를 먹긴 먹었다..그가 비빔국수를 좋아하니 난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어도,

먹긴 먹어도 속에서 받질 않으니 조금만 먹는다. 그런데 맛있다.

마침 열무김치도 알맞게 익었고 얼갈이물김치도 알맞게 익었다. 김장김치는 물론이고..

비빔국수를 해 먹기엔 정말 좋은 계절이 온 것이다. 그가 제일 큰 국수뭉치를 사 들고 온 것을 보면.

둘은 비빔국수 하나로도 행복한 저녁을 보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산다는 것을 별거 아니다. 이렇게 먹고 싶은 것을 금방 뚝딱 만들어

맛있게 배불리 먹으면 그게 바로 행복이기도 하다.

 

20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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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드 1 - 가난한 성자들 조드 1
김형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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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드', 그 뜻이 무얼까 했는데 대충 생각했던 뜻이 맞았다는 것을 책의 앞부분에서 읽게 되었다.'괴팍한 날씨 때문에 초지가 피폐해져서 가축들이 지쳐 주는 걸 조드라 한다. 조드는 근본적으로 고원에서 물이 없어서 생기는 것인데 피해의 양상은 크게 네 가지로 드러난다. 하나는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두번째는 초지가 말라서...세번째는 극심한 눈보라 때문에...네번째는 일찍 내린 눈이 따듯해지는 바람에 철철 녹아서 흐라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강추위에 아주 두꺼운 얼음이 되는 것, 그래서 눈에 번히 보이는 풀뿌리에 입도 대지 못한 채 굶어 죽는 것이 거울조드이다.' 조드가 아닌 계절이 없다. 광활한 몽골 평원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얼마나 어려운가를 나타내 주는 듯 하다. 그러니 내가 살기 위해서는 생존경쟁이 얼마나 치열하겠는가.

 

지금까지 읽어왔던 아니 내가 알고 있었던 '칭기즈칸'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척박한 몽골 평원에서 모진 바람과 그리고 수컷들의 싸움에서 이겨내는 그야말로 생존경쟁의 드라마틱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척박한 그 땅에서 바람과 먹이와의 싸움에서 누가 어떻게 살아 남느냐 하는 유목민의 삶을 세세히 보여준 소설이지 않나싶다. 몽골민의 삶을 다룬 영화 '투야의 결혼'이나 그외 많은 다큐에서 만난 유목민의 삶이 그대로 잘 드러나 있어 현실감 있고 사실감 있어 몽골의 자연과 바람을 바로 눈 앞에서 겪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아버지 예수게이의 죽음 이후 어머니와 이복형제들과 함께 숨어 다니듯 하며 사는 테무진,그가 자무카를 만나는 장면은 정말 드라마틱하다. 늑대들 속에서 살아 남아야 하는, 그들의 야성을 알고 있던 테무진은 그야말로 지휘자라도 된 듯 말과 자무카 일행을 구해낸다. 영웅은 영웅을 알아 본다고 자무카 또한 테무진이 인물임을 알아 보았고 테무진 역시나 그를 훗날 다시 만나게 됨을 알게 된다. 광활한 평원에서 유목민으로 물과 바람과 먹이와 그리고 서로간에 영역다툼을 하듯 흰 뼈와 검은 뼈로 살아가는 사람들,하지만 테무진은 그에게 피와 살이 되는 지혜를 주는 이는 아래가 되어도 존대를 해주는 남과 다른 마음과 눈을 가지고 있다. '모두에게는 없는 눈이 테무진에게는 있으니, 다들 그 마음의 눈이 곧 길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적들에게 쫒기면서 궁핍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는 자신과 모두에게 진실했고 자신이 지켜야 하는 것과 사람을 잃지 않고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넓은 마음과 남다른 눈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점점 그의 사람 됨됨이를 알고 그를 찾는 사람들, 무엇보다 안정을 찾기 위하여는 아내를 얻는 것이라 생각하고 어린시절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말이 오가던 집안의 여인을 다시 찾아가 결혼을 하게 되지만 아내를 인질로 빼앗기듯 싸움의 계기가 되게 만든 결혼. 하지만 그 싸움으로 인해 그는 더 많은 것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그가 칸으로 나아가는 방향 제시가 되지 않았나 한다.

 

척박한 유목민의 삶에서는 남자들 또한 그 삶을 지탱하기 위하여서는 자연은 물론 자신의 것을 빼앗기지 않고 지키는 용맹함이 있어야 하지만 여자들 삶 또한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 예수게이 죽음 이후 이복자식과 함께 살아가는 후엘룬의 삶이나 테무진과 결혼하여 겨우 신혼의 재미를 보다가 적의 수중에 들어가 갖은 모욕을 당하며 살아야 했던 버르테의 삶은 다른 듯 하면서도 닮아 있기도 하며 남자 못지 않은 지혜와 용맹을 지녔다. 이야기는 전설과 같은 '늑대 서사'와 '고운님 사랑'인 알랑 고아의 이야기를 먼저 풀어내서일까 신비하면서도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온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서사'적이면서 전설적인 느낌을 주면서 몽골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소설을 써서일까 무척이나 현실적이며 사실감을 준다. 유목민의 삶을 다큐를 보듯 현장감이 있으면서 테무진이 여러 인물들과 어울러 비로소 움직이게 되었으니 2권은 더 흥미진진할 듯 하다.

 

'삶이란 그렇게 몽롱한 것이다. 아름답고 참혹하다. 먹이사슬의 꼭대기로 갈수록 생존경쟁은 더욱 사납고 무섭고 치열했으니, 사방이 터진 벌판에서 서로를 지켜주는 울타리는 동료의 육신밖에는 없었다.' 처음 시작이 늑대와 말과 사람의 싸움을 그려서일까 이야기가 펼쳐질 평원이 늘 평화로운 곳이 아닌 정말 생존경쟁이 얼마나 치열한 곳인가를, 그곳에서 살아 남는다는 것은 참혹한 일이며 '죽으면 죽고 살면 살리라'라는 말처럼 죽음 아니면 삶을 선택해야만 하는 척박한 곳임을 말해준다.하나의 조드를 이겨내면 또 다른 조드가 바람처럼 달려오고 그 조드를 이겨내면 또 다른 조드가 그리고 퇴로를 준비해 놓지 않은 적의 공격에서 살아 남아야 하는 싸움이 이어지는 평원에서의 유목민의 삶이란 그야말로 척박함 그 자체임을 먼지 바람이 일 듯 생생함을 담아 내어 더 빠져들게 한다. '테무진은 한동안 '세상'을 인내의 실험장으로 알았다.' 테무진이 인내의 시간을 감내했다면 보르칸에서 이제 세상은 테무진에게 어떤 세상이 되어 그에게 돌아올까,2권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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