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블플랜 - 당신의 가치를 높이는 40가지 발칙한 계획
휴 매클라우드 지음, 김미희 옮김 / 호미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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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명품을 만들어라.

자신의 가치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다면,그것도 다른 방법이 아닌 현대인이라면 하나쯤은 운영하는 '블로그'를 통해서 말이다. 요즘은 아마추어 블로거들이 '전문가' 못지 않게 전문적으로 이용하거나 전문화되어 평범한 블로거에서 저자로 혹은 강사로 자신이 운영하던 방향의 전문가 아닌 전문가로 변신하는 그런 장이 되기도 하고 있다. 그저 소통의 장이 아닌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의 지적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는,자신의 가치를 나타낼 수 있는 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

나 또한 홈페이지와 블로거로 산 시간이 뒤돌아 보니 십여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처음엔 욕심도 부리고 의욕도 여러모로 많았지만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의욕은 점점 줄어들고 방문자나 그외 수치에 둔감해지고 진정한 '나'를 찾거나 진정한 '나'의 모습을 담을 수 있는 그런 블로거로 거듭나야겠다고 다짐하며 모든 것에 초월하듯 블로거 생활을 하고 있다. '남' 아닌 '나'가 주가 되는 블로거가 되면서 그 속에서 뭔가 내 삶에 '영양가' 있는 부분을 찾아내기 위하여 아니 그런 삶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한다고 하지만 여러 블로그를 방문하다 보면 늘 뒤쳐진다. 하지만 그래도 내그릇이 이정도라는 것을 알기에 욕심을 부리지 않으려 한다. 블로거생활을 하다보면 유혹에 손길도 가끔 있고 나 또한 어느 경계선을 넘어가 생활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만큼 부대껴야 함을,아니 노력없이 손에 얻을 수 없음을 알기에 그런 욕심보다는 내 개인적인 만족으로 채우려고 한다.

'이블 플랜,발칙한 계획.'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을 하면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런 방법이 있다면 현대인이라면 그렇게 살고 싶어할 것이다. 자신이 원하거나 가슴이 시키면서 자기만족을 하면서 성공도 하고 돈도 벌 수 있다면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그렇게 되기에는 '끊임없는 노력' 이 필요하다. 첫술에 배부르려고 한다면 포기또한 빠를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정상을 오를 수 없듯이 한 발 한 발 정상을 향해 나아가듯 끊임없는 노력을 하다보면 자신의 '기대치' 에 다가갈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 놓으니 모두가 성공할 수 있다고 보이겠지만 중도에 포기한 낙오자도 분명 많은 것이다. 끊임없는 노력을 하지 않은 자들 말이다.

휴 매클라우드, 그 또한 여러 일을 전전했다. 광고 카피라이터로 성공했지만 불황으로 해고되었고 막막한 현실을 이겨내고자 매일 밤 바에 앉아 명함 뒷면에 카툰 그리기를 시작했다. 그것이 블로그로 이어지고 일과 사랑을 모두 거머쥐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행운이 모두에게 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그런 성공을 그는 <지속성> 이라고 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좋은 카툰을 그릴 수 있지만 매일 좋은 카툰을 그리는 사람은 드물어요. 그 경지에 비슷하게 도달하기 위해서는 수년 동안 매일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속성' 아닌 '인생한방' 아니 그 한방으로 '인생역전' 을 하고 싶어한다. 끊임없는 노력이 아닌 한번의 노력으로 모든것을 거머쥐려고 하니 포기도 쉽고 나약해지기도 쉽다. 그가 매일 바에서 명함뒤에 카툰을 그리며 좋은 카툰을 그리려고 했을까,누군가의 말처럼 홈런은 무수한 안타속에서 나온 것처럼 무수히 많이 그린 명함 뒤의 카툰 속에서 대중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카툰들이 나오기도 했지만 빛을 본 것보다는 보지 못한 카툰이 더 많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블로거로서의 기본적인 자세를 말하기도 한다. '지속성' 한번의 홈런으로 많은 사람들이 조회를 하고 폭발적 반응을 얻는 다고 그의 능력이 대단한 것은 아니다. 지속적으로 무언가의 매력이 있어야 많은 이들이 사랑을 해준다. 후속타를 날리지 못하면 잊혀지는 것이 아니 물갈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 책에는 그의 블로깅 중에 독자로 하여금 그의 '발칙한 계획' 에 한발 다가설 수 있는 내용을 간추려 놓아서인지 아님 많이 느끼고 있는 부분들이 포함되어서인지 내겐 큰 반향은 일으키지 못했다. 하지만 공감하는 부분은 많다. 자기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높이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그것도 늘 이용하는 블로그를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과 더불어 블로그를 통하여 아니 그런 운영체계를 통하여 좀더 적극적이며 공격젹으로 자신안에 내재되어 있는 '표현이나 능력' 을 끄집어 내라는 것에 공감한다. 부러우면 지는게 아니라 '세상이 자신을 부럽게 만들어라' 라는 말인데 그중에 31번 '표현 자산을 창조하라' 넘 맘에 든다. 갈수록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양해지 있다. 그 속에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발칙한 계획을 자신을 변화시키고 성공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올해도 이제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무언가 거창하게 계획을 세웠을터인데 시간에 편승하다보니 무슨 계획을 세웠는지 모르게 연말이다. 끝은 어찌보면 시작이다.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이라는 출발점으로 생각하고 무언가 발칙한 계획을 세워봐야 할 듯 하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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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콤달콤 오이달래무침

 



 



  
 



 



*준비물/ 오이2개,달래,파프리카 빨강,파프리카 노란색,자주양파1개,청양고추1개,당근..그외 양념

 

*마트에 갔더니 달래가 있다. 큰딸이 오이달래무침을 잘 먹어서 달래를 보니 한팩에 '2490원'

오이2개와 함께 색색의 파프리카와 함께 자주양파도 사왔다.

오이는 납작하게 썰어주고 파프리카와 그외 양채는 채썰듯 썰어서 넣어주고 달래는 잘 씻어

먹기 좋을 정도로 잘라 넣어 준 후에 식초,물엿,설탕,매실액,통깨,다진마늘,들기름,고추가루

양념고추장등을 넣고 매콤새콤하게 무쳐주면 끝. 우린 새콤한것을 좋아하니 식초를 좀더 넉넉

하게 넣어주었다.파프리카도 넉넉하게 넣어주면 파프리카의 특유의 향이나면서 더욱 맛있다.

 

이런 무침은 바로 무쳐서 얼른 먹어야 맛있다.아침에 무쳐서 바로 먹기 좋게 새콤하게 했더니만

다들 좋아한다. 달래를 좋아하는 큰딸은 달래를 오이를 좋아하는 막내는 오이를 옆지기는 파프리카며

그외 야채를 골고루 먹어주니 남은 것이 없다.도라지를 넣고 해도 맛있는데 도라지가 없으니

갖은 야채를 넣고 했어도 김치뿐인 밥상에 새콤달콤하면서 싱싱한 맛을 준다.

 

2011.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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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품] 앵그리버드 핸드폰줄 - 레드버드
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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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가 빨간색 앵그리버드 가지고 있던데 다른것도 귀엽네..옐로우버드와 그린버드 맘에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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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1-11-26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저게 앵그리버드로군요. 고딩1학년짜리 남자애들이 갖고 놀길래 뭔가 했더니만.

서란 2011-11-29 20:14   좋아요 0 | URL
저도 막내 때문에 알었어요...ㅋㅋ
녀석이 다른것도 사달라고 해서 넣어 봤어요~~
 

햇살이 좋은 날,초록이들

 



 

햇살이 좋은 날,초록이들이 반짝반짝이다.
아침 일찍 물을 넉넉하게 주고 스프레이도 모두 한바퀴 돌면서 해 주었더니
녀석들 더욱 기분 좋은 풍경이다.
 



 

티테이블 위의 바이올렛들은 이제 햇살이 잘 들어오니 꽃대를 꼬물꼬물 올리고 있다.
하지만 미니고무나무가 문제이다. 어디로 옮겨야 할텐데 옮길곳이 마땅하지 않다.
녀석은 이천원에 작은 포트로 시작했는데 이렇게 컸다.
이젠 티테이블을 반은 덮고 있듯 바이올렛을 위협하듯 그늘을 드리우고
바이올렛을 가렸다..문제다 문제..어디로 옮겨줘야 하는데..
녀석 그리고 너무 잘 큰다.

 

 
 

창가의 커다란 율마를 안방베란다 벽쪽으로 옮기고 그보다 작은 율마를 옮겨 놓았더니
티테이블에도 소파뒤에도 더 많은 햇살이 들어와 많은 초록이들이
햇살을 은혜로이 나누어 받고 있다.그래도 죽는 놈은 죽고 사는 놈은 살고...
아침에 딸들방 창가 장미허브 화분에 하나 남았던 바이올렛을 티테이블에 있는 바이올렛 화분에
옮겨 심었다.삽목한것이 잎이 나오지 않고 있어 그것은 다른 화분으로 옮기고 잎이 많이 나온
삽목한 바이올렛을 옮겨주고 스프레이를 넉넉하게 해 주었다.
녀석들이 하나 둘 꽃대를 꼬물꼬물 올리는 것을 보니 이쁘다.
색색의 바이올렛이 앙증맞게 피면 참 이쁜데 올해는 그 이쁜 바이올렛을 많이 즐기지 못했다.
죽기도 하고 새로 삽목한 것들이 이제 크고 있기도 해서 꽃대를 그리 많이 보지 못했는데
다시금 꽃대가 올라오니 반갑다.이제 다시 좀더 바이올렛에 신경을 써주어야 할 듯..
 

 

올 11월을 행복하게 해 주었던 행운목꽃이 이젠 다 졌다.
아침에 베란다를 나가보니 진 꽃들이 행운목 밑에 조금 떨어져 있다.
행운목꽃대를 마구 흔들어 진 꽃들을 떨구어 내고는
'꽃을 보여주어 고맙다고 고생했다고 꼭 행운을 가져다 달라고..'
그렇게 녀석에게 말했다.
그리고 이 녀석 또한 꽃을 피우느라 고생을 해서 스프레이도 해주고 물도 주고...
조만간 영양제를 사다가 올려 놔줘야 할 듯.
 



 
바이올렛은 뿌리가 위로 자라고 뿌리가 참 약하다.그래서 겨울에 많이 죽기도 하고
잎이 물러져서 죽기도 한다. 올해 새로 잎꽂이 하여 삽목한 것들이 그래도 잎이 많이 나왔다.
이곳에도 바이올렛이 무성하여 이쁜 꽃들을 많이 보여주었는데 새로 삽목하여 올핸 꽃을 못 봤다.
아쉽지만 내년이 있으니 좀더 신경을 써야하는데 게으름이다.
화원에 가서 분갈이용토를 사다가 화분 위에 조금씩 모자란 흙들을 넣어 주어야
영양도 보충하고 위로 올라간 뿌리들이 흙에 덮이는데...
다른 화분에 남은 흙을 조금씩 모자란 곳에 넣어 주었지만 한참 분갈이용토가 모자라다.
녀석들과 함께 하다보니 오전이 홀딱 지나가 버렸다.
 

 

 

 

행운목꽃이 지고나니 발렌타인 자스민이 더 이쁘다.
녀석도 하나 둘 지고 있지만 그대로 꽃이 참 오래간다. 향은 코 가까이 대야
초콜릿향이 나는데 그래도 꽃이 이쁘니 참 좋다.
 
시클라멘도 하나 둘 꽃이 피고 있다. 발렌타인 자스민과 시클라멘이
이제 꽃대를 올리고 있는 바이올렛과 함께 피면 화사할 듯 하다.
햇살이 좋은 추운 날에도 초록이들이 있어 좋다.
 

2011.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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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1-11-25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집안이 온통 초록빛입니다 ㅠㅠ 저라면 엄두도 못내겠어요 ㅠ
저 보라색 꽃이 바이올렛인가요. 다섯개의 보라색 꽃잎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ㅠ

서란 2011-11-26 15:38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이건 거실베란다만 담은 거에요..
안방베란다도 가득~~ 온집안이 초록이에요..
보라색은 듀란타(발렌타인 자스민)이라고 초콜릿향이 나는 꽃이에요..
 
흑산 - 김훈 장편소설
김훈 지음 / 학고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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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작가의 이번 작품 <흑산>은 읽기에 조금 망설여졌다. 아니 좀더 시간을 두고 있다가 읽고 싶었다. <칼의노래>나 <현의 노래><남한산성>의 역사소설 느낌이 너무 좋았는데 <내 젊은날의 숲>을 비롯한 다른 작품에서는 왠지 그에게 맞지 않는 옷처럼 낯선느낌이 들어 다시 역사소설을 썼으면 했는데 이번작품 '흑산' 은 타작품에서도 많이 다루어진 부분이라 어떻게 그가 표현해낼까 걱정이 되면서도 그동안 읽은 작품들의 여운이 남아 있어 작가의 작품은 조금 시간을 두고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이 책을 읽기전에 <서찰을 전하는 아이>에서 또한 '천주교박해' 에 대하여 언급해 놓았지만 그 책은 아이가 본 역사였기에 물론 이 작품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한승원님의 <흑산도 하늘길>은 이작품과 뜻을 함께 한다고 볼 수 있다.한승원님의 <흑산도 하늘길>은 바다로 둘러쌓인 흑산에 갇혀 뭍으로 나가지 못하는 약전의 가족과 뭍에 대한 그리움 애틋함이 시간이 지날수록 어쩔 수 없이 흑산에 길들여지듯 그곳과 하나가 되는 포기하는 삶처럼 흑산인이 되어가는 이야기였다면 <홍어장수 문순득,조선을 깨우다> 에서는 일개 홍어장수로 인해 자칫 흑산에서의 약전의 삶이 일개 범부의 삶으로 관철될 수 있었던 삶에 돌을 던지듯 그곳에서 새로운 '실학' 에 눈을 뜰 수 있게 해주었고 새로운 삶을 제시해 주게 되었다.그런가하면 강진에 유배되어 내려온 약용에게까지 그 파문이 전해질 수 있던 계기를 만들어주게 되었다. 그렇다면 작가가 들여다보고 그를 움직이게 한 것은 무엇일까? 김훈 노련한 작가가 담아 내려던 것은 지금까지 다루어졌던 흑산에서의 정약전의 삶이나 그의 가족에 대한 천주교박해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그 이야기를 축으로 하되 무수히 이름도 없이 죽어간 '민초'들의 끈질긴 삶을 그만의 살풀이,아님 넋두리식 진혼곡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을 이끌어냈다는 것이다.자산어보를 쓴 약전이 주인공이 아니라 그와 함께 하며 이름없이 죽어나간 '민초'들에게 이름을 찾아주고 그들의 삶을 찾아주는 모두가 주인공이고 모두가 함께 하는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내가 살던 고향의 옆동네는 천주교박해를 받던 시절에 천주교인들이 숨어 들어와 옹기를 구우며 마을을 이룬 곳이 있다. 그곳은 모두가 천주교인이다. 그렇게 하여 친구들도 물론 태아때부터 그들이 선택하지 않아도 영세를 받아 천주교인인것이 너무도 신기했다. 난 지금도 그렇지만 믿음이란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라고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놓아버릴 수 있는 것이 '믿음이고 종교' 라고 보는데 그동네 친구들과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엄마의 자궁안에서부터 받아 들이고 몸 속 아니 뼛속까지 밴 '천주교'라는 믿음은 감히 일반인인 우리가 가까이 범접하지 못하는 그런 경지였던 것이다. 그런 친구들과 어울리며 배우게된 역사속 천주교박해는 좀더 친구들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보게 되었고 언젠가 가서보게된 백여년이 넘은 '공세리성당'은 그시대를 그나마 밑그림이라도 그려보게 만들어 주었던 곳이다. 우리나라에 서학하면 그 큰 줄기에 '황사영과 정약종과 그의 형제들' 있듯이 그들과 관계한 많은 민초들이 분명히 있을 터인데 지금까지 그들의 삶이 수면으로 떠오르지 않았다면 작가는 그들의 삶을 부활시켰다는 것이다. 아니 황사영이나 정약전이나 그의 형제들과 똑같은 평행선위에 민초들을 놓고 그들을 어루만지고 토닥이고 그들의 발바닥에 낀 더깨처럼 그들을 따라 어디로든 따라가며 그들과 함께 했다는 것이다.


어찌 인간이 살아가는데 고난과 아픔 슬픔이 배제된 삶이 있을까? 사람살아가는데 한줄기 곡절은 누구나 있는 것이다. 양반이라고 소년등과를 했다고 그 삶이 평탄대로가 되란 법은 없는 것이다. 소년등과를 한 황사영,그의 처 또한 잘나가는 정씨네였기에 그의 삶은 그야말로 반석과 같을줄 알았는데 누가 그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줄 알았을까. 어찌보면 작가는 배교를 할 것인가 아님 맞써서 싸울것인가? 라며 작가의 물음속에 '황사영과 정약전' 을 놓은 것일수도 있다.서학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받아들인 민초들은 그들을 옮가매려는 올가미에 맞써 싸웠다고 본다면 황사영은 어찌보면 그저 순순히 자신의 최후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가 좀더 적극적으로 민초들처럼 맞써 싸웠다면 역사와 그의 삶은 달려졌을 것이다. 소년등과를 하여 미래가 밝던 그가 '서학'으로 인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능력 한번 제대로 발휘해보지 못하고,그야말로 빛도 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 것이 어찌보면 안타깝다고 작가는 풀어내고 있다.그런가 하면 정약전의 삶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했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함을,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며 술로써 그런 자신을 감추며 현실을 어느정도 품어 안으려 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에 반하여 그들의 밑에서 자유인이 아니었던 민초들이 그들로 인해 '자유'의 몸이 되어서 북경이며 그외 꼬불꼬불한 산길을 몇십리를 들어가 살아도 그들은 그들나름 좀더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믿음과 죽음 그리고 올가미에 맞서지 않았을까,그런 민초들의 아픔과 슬픔 질곡의 삶을 작가는 토닥토닥 아니 목울대를 울컥하게 하는 통한의 슬픔을 다 쏟아내고 있다.그래서일까 문장이 가끔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다. 버겁다. 좀더 매끄럽다면 하는 바람을 가지며 읽다보니 눈이 버걱버걱한다. 하지만 작가를 이해한다. 황사영과 정약전이 씨실이라면 그들 밑에서 함께 한 민초들을 날실로 하여 작가는 지금 거칠면서도 튼튼한 옷감을 짜고 있는 것이다. 작가 또한 얼마나 고통의 시간을 보냈을까.이름없이 죽어간 민초들은 때론 젓빛 도라지꽃으로 피었다가 말보다 더 억세고 질긴 생명력으로 표현되었다가 새우젓보다 더 곰삭은 삶으로 점철되기 위하여는 작가가 먼저 곰삭어야했을 것이다.


작가의 문장은 몇 번이고 되새김질하여 입안에서 가슴안에서 곰삭여야 함을, 좀더 문장안에서 머물러야 함을 이 책을 읽으며 느낀다.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갈 곳이 없었는데, 돌아가려는 마음이 여전히 남아서 복받쳤다.'황사영의 붓 끝에서 깨알 같은 글자들이 살아나서 반짝였다. 글자들은 저마다 절규하면서 다투어 쏟아져 나왔다.' 문장이 아니라 글자 한 자 한 자가 갈고 잘 다듬어진 후에 그자리에 박힌것처럼 문장안에서 빠져나올줄을 모르고 빛을 발한다. 온 몸으로 글을 쓰는 그의 고통과 무게감이 함께 실려 너무 무겁게 가라앉는다. 그런 그도 가끔 그만의 살인적인 미소를 실어 놓듯 잠시 쉼터를 제공한다. '이 돈이면 공명첩을 사서 역참에 매인 마부 신세를 면하고도 그래도 남아서 목 좋은 자리에 주막을 차릴 수도 있겠구나.그런데 주교는 한사코 마부질을 하라시는구나......' 어찌해야할까 우리의 마노리, 먼지 풀풀나고 북경을 걸어서 다녀오자면 그 길에서 죽어 나자빠지는 생명도 부지기수인데 거금이 생겼다. 그 돈이면 자신의 삶을 바꿀 기회인데 마부에서 벗어나 좀더 번듯한 삶을 살 수 있을 듯 한데 주교는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마부질을 평생하라고 한다. 받아 들일 수 있을까. 어찌보면 욕심부리지 않고 사는게 민초의 삶이라 그가 말한다. 과한 욕심을 부렸기에 그는 화를 자초하듯 죽음에 이르기도 하니 말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정약전은 그를 가로막고 있는 '바다' 를 보며 한마리 '날치'가 되고 싶은 생각도 가져본다. '날치가 왜 날아오르는 것이냐? 무슨 좋은 일이 있는 건가?' 그는 자신의 삶에 희망을 가지듯 날치에게도 희망을 실어본다,아니 품어본다.하지만 흑산도에 매인 삶인 창대라는 녀석은 그와 다른 세상을 본다. '그것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물 밑에 잡아먹으려 덤비는 놈들이 있을 것입니다. 허나,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는 날치가 아닌 다음에야......' 그랬다 날치가 되어봐야 날치를 알고 날치가 왜 날아오르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정약전이 왜 흑산도로 유배를 하고 그와 함께 하던 민초들이 왜 자신의 목숨까지 버려가며 죽어가며 믿으려했던 서학, 그것은 민초가 되어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그런면에서 작가는 스스로 이름없이 죽어간 민초가 되어 그들의 한많은 삶을 풀어내고 있다. 때론 마노리가 되어 북경에 다녀오는가 하면 때론 배교를 하면서 그들을 엄탐하는 새우젓 장사가 되어 떠돌기도 하는가하면 자신의 여동생을 자신이 살기 위하여 죽이기도 하고 때론 옹기를 구워가며 자신의 주인을 숨겨주며 자신의 목숨도 부지하기 어렵게 살기도 하지만 그것은 다 그들의 끈질긴 삶을 연명하기 위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태어나 이유없는 '삶'은 없듯이 모두가 그 빛이 다를뿐 세상에 온 이유는 분명히 있을 것인데 그것이 자신의 인생과 맞부딪혀 싸우느냐 아니면 그냥 순순히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짐을 작가는 역설하며 그라면 맞써 싸우는 편을 택하고자함을 간접적으로 들어낸 듯 하다.'나는 다만 인간의 고통과 슬픔과 소망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나는,겨우,조금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작가가 정약전을 통해 본 흑산은 희망을 간직한 '자산' 이 되었듯이 아니 벗어날 수 없어 바다를 품었듯이 비록 아픔을 간직한 민초들의 삶이 박해를 받아 이름없이 스러져 갔어도 역사는 희망을 간직하고 굳건하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그런 이름은 없지만 걷건하고 밑바탕이 되었던 우리 삶의 희망과 같은 민초들의 삶을 그의 곰삭은 손맛으로 재탄생한 '흑산'은 그래서 더 힘들게 붙잡았던 것일까.내게 다시 시간이 주어진다면 다시금 무게감과 힘을 빼고 읽어보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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