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들 펭귄클래식 109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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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은 얼마나 될까? 이 소설을 읽다가 갑자기 내 집과 주변을 생각해보니 사물들에 둘러 쌓여 있으면서 늘 가지려고만 했지 좀더 비우려고 노력했던 적은 손에 꼽을만하다는 것을 느꼈다. 비우기는 어려워도 채우는 것은 금방이라는 것을 우리집 책장을 보아도 느낄 수 있다. 무언가를 가지려고 한다는 것은 그것을 취하면서 얻게 되는 '행복,만족감'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을, 하지만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또 하나를 버려야 하는 단순한 이치를 모르고 있기도 하다.

20세기 프랑스 문단의 악동이라 불리는 '조르주 페렉' 의 책은 처음 접하는 것이다. '사물들' 로 어떻게 소설을 이어갈까 궁금했는데 제롬과 실비는 함께 생활하게 된다. 잡지에서 보던 그런 풍유롭고 넉넉한 삶을,모든 것을 가지고 살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살다보니 갖추고 산다는 것이 정말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설문조사를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그들은 필요한 것들을 벼룩시장에서 얻기도 하면서 자신들의 집을 채우지만 언제나 '행복' 으로 다가가기에는 부족하다. 언제쯤이면 넉넉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앞으로 자신들의 운명과 존재 이유, 행동을 결정지을 유치한 맹목적 추구 앞에서 이를 감히 제대로 응시하지도 못한 채,자신들의 욕망의 크기에 압도당해,눈앞에 펼져진 부와 주어진 풍요로움에 질식해 갔다.' 쉽게 이루어지고 쉽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1960년대, 당시의 사회상을 압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는 제롬과 실비의 삶, 설문조사를 하며 자신들의 꿈을 키워 보지만 늘 제자리에서 쳇바퀴를 돌 듯 하는 삶, 벗어나고 싶다. '덫에 걸린 취처럼 사방이 막힌 듯했다. 그들은 단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전히 많은 기회가 있으리라 믿었다. 정해진 근무시간,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을 하나의 족쇄처럼 여기고,이를 지옥이라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이라도 기본적인 생계를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일에 매진하며 일에 이끌려 갈 때가 있다. 벗어나고 싶지만 발버둥치면 칠수록 점점 깊이 빠져 드는 늪처럼 더 깊은 골로 들어가 헤어나오지 못하고 버둥거릴 때, 과감하게 그 곳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느끼지만 현실은 자신의 발목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아 현실에 안주하는 경우가 있다.아니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추구하거나 찾아 떠나는 용기 있는 자가 얼마나 될까? 자신들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사물들에 의해 점점 지배를 받듯 올가미가 조여드는 느낌,벗어나고 싶다,제롬과 실비는 설문조사가 아닌 다른 일을 찾아 다른 곳으로 떠난다.

'하나둘씩 차례로 거의 모든 친구들이 항복해 갔다.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던 삶에서 안정을 찾아 떠났다.'우린 이제 더이상 이렇게 못 살겠어.' 라고 말했다. '이렇게' 라는 말은 모호한 동시에 계획성 없는 삶,너무 짧은 밤,얼간이,낡아빠진 재킷,지켜운 일,지하철과 같은 말들을 담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자신들이 원하던 곳은 그들이 살던 곳과 비슷한 곳이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잘 되었다고 자랑도 하고 싶었지만 그들이 가게 된 곳은 도시가 아닌 변두리나 마찬가지이고 '사물들' 이 그리 필요하지 않은 곳이다. 설문조사를 하며 사물들에 파묻혀 지내던 삶은 점점 잊혀져 가고 이 삶이 또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제롬과 실비,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보지만 사물들에 지배를 받듯 그렇게 살았던 것들이 이젠 필요 없는 물건처럼 보여진다. 모든 것을 다 뒤로 하고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자유' 및 그외 그이상의 것들을 포기하기도 해야한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손 놓아야 하는데 우린 그러지 못하고 모두를 가지려고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린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 삶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그럴때는 늦다.얼마만큼 많이 왔다고 생각이 들 때 가끔 뒤돌아 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극한 상황에 처해보거나 어디 정말 멀리 여행을 가게 되면 필요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다는 것을 알게 된다.필요할 것이라고 꼭꼭 챙겨 온 것들은 무게 때문에 버려야 하는 경우가 오기도 하고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가져가지 않아도 되는 것들, 쓰지 않은 물건들이 대부분임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에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현재의 삶은 사물들을 가지며 갖는 행복감을 추구하기 위하여 자유며 여유등을 포기하고 살게 되지만 그것들이 진정으로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먼 길을 돌아오고 나서야 깨닫게 되고는 미래는 '~것이다.' 라고 추측이나 희망적인 문구로 끝낸 것을 보면 현재는 가지지 못한 것을 이들의 삶이 미래는 좀더 밝고 여유롭고 행복해지고 자유와 여유를 가지고 살 것이라는,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시사해 주어 기분 좋게 내려 놓을 수 있게 한다.

사물들에 대한 글이라 다소 뻑뻑하고 밋밋하고 딱딱할 줄 알았는데 읽다보니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나의 예전 삶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며 앞만 보며 달여 왔던가,하지만 가지고 나면 필요 없어도 된다는 것을,아니 허무함이 들 때가 있다. 없어도 살 수 있고 있어도 살 수 있는 것이 물질만능시대다. 누군가는 모든 것을 가지며 누리고 살지만 누군가는 최소한의 것만 가지고 산다. 인간은 자신의 얼굴에 자신감이 있기에 그리고 미래가 희망적이라 생각하기에 현재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저 사물들을 가지는 것이 행복인줄 알았다면 이젠 '있고 없는 시간' 을 살아 보았기에 그들의 삶은 더욱 희망적일 것이다. '마침내 돌아온 것이다. 이전보다 상황은 더 나쁠 것이다. 그들이 다시 찾은 것은 카트르파주와 아름다운 나무,그들의 사랑스러운 아담한 아파트와 초록 커튼이 쳐진 창문, 오래된 정겨운 책들과 산더미같이 쌓인 신문, 좁은 침대와 비좁은 부엌,그 뒤죽박죽인 상태일 것이다.' 떠나고 보니 처음의 자신의 것들이 소중하고 정겹다. 그리고 미래는 희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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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9-18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정말 필요한것과 그렇지 않은것들의 구별해내는 능력이 아주 조금씩은 늘어나는것 같습니다^^;

서란 2011-09-22 22:51   좋아요 0 | URL
맞아요~~여행을 가보면 필요없는 것들이 정말 많죠.
사물에 집착, 나이 들고 집을 떠나보면 더욱 느끼게 되죠..
 
모나리자 도난사건 키다리 그림책 24
존 패트릭 루이스 글, 개리 켈리 그림, 천미나 옮김, 노성두 감수 / 키다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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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문학 속에서도 많이 등장을 한다. 정말 알 듯 모를 듯한 그 미소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걸작중의 걸작이리라. 하지만 그 모나리자 그림의 수난시대가 있었으니 1911년 8월 22일 루브로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모나리자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로 인해 루브르 박물관은 휴관을 하고 모나리자 찾기에 나선다. 기욤 아폴리네르가 범인으로 조사를 받는가 하면 파블로 피카소가 조사를 받기도 했지만 모나리자는 찾지 못하고 사은 종결되고 만다. 그렇다면 모나리자는 어디로 사라졌던 것일까? 이 책은 어쩌면 모나리자를 훔친 범인의 입장에서 쓰여졌다고 볼 수 도 있다. 그의 죄가 무죄인가 유죄인가? 왜 많은 사람들이 그가 갖혀 있는 감옥에 꽃다발을 보낼까? 그가 어떤 일을 했고 나라에 어떤 의미를 던졌기에.그렇다면 모나리자의 소유국은 그림을 그린 이가 레오나르도 즉 이탈리아 사람이니 이탈리아일까 아님 루브르 박물관에 백여년 동안 소장되어 있었으니 프랑스일까?



 

'나, 빈첸초 페루자는 이탈리아의 제알가는 애국자! 나는,범인인가,희생자인가? 승리자인가? 패배자인가? 영웅인가? 악당인가?' 첫 페이지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무얼 의미할까. 모나지라를 훔친 범인 빈첸초는 왜 모나리자를 훔쳤을까? 일단 그는 레오나르도가 그림을 그렸으니 모나리자는 이탈리아의 것이라 생각을 한다. 그림속 여인도 그렇고 그린 이도 그렇고 모두가 이탈리아인데 왜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는 말인가? 그는 아무도 모르게 감쪽같이 유리를 뜯어내고 '모나리자' 를 뜯어내어 숨겨 놓는다. 발칵 뒤집혀 공황까지 폐쇄를 하고 그림이 해외로 나가는 길을 모두 막고는 그림을 찾아 나섰지만 흔적은 아무곳에도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모나라자의 사라짐보다 더 큰 사건들이 줄줄이 일어난다. 타이타닉호의 침몰과 세계대전발발등 사람들은 모나리자가 없어졌다는 것을 점점 잊어가고 범인은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하고는 그림을 이탈리아로 가져가 팔려고 한다. 하지만 그 그림을 본 사람들은 어떻게 판단했을까? 진품이 맞지만 '모나리자' 는 이탈리아가 아닌 프랑스의 것이란다.왜...왜... 프랑스의 것인가? 레오나르도가 프랑스에 돈을 받고 팔았기 때문에 이탈리아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다시금 루브르에 돌려주게 된다. 그렇게 모나리자는 3년여의 시간 후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세인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던 그림은 '도난사건' 으로 인해 일약 스타처럼 주목을 받게 된다.



 

모나리자 도난사건을 좇아 가면서 그림에 대하여 좀더 가까이 '흥미'를 가지게 한다. 명화라기 보다는 '그림' 으로 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도난까지 당하며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왔는지,그리고 그림을 그린 사람은 누구이며 그림에는 어떤 기법이 쓰여졌는지등 설명을 깃들여 더욱 그림에 '스푸마토' 기법처럼 서서히 스며들듯 다가가게 한다. 명화에 대한 거리감을 좁혀다고 할까,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흥미 뿐만이 아니라 어떻게 문화재를 지켜야 하고 어떤 자세로 문화재를 보아야 하는지 '눈과 자세' 까지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잘못된 문화 애국주의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 것이다. 우리것을 지키려는 의지는 좋았지만 분명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가 프랑스에 팔았기에 이탈리아인들이 아무리 자신들의 것이라 우길 수가 없는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그의 행동에 꽃다발을 보낸다. 잘한 일일까 잘못한 일일까.



 

우리의 문화재도 일제 강점기및 그외 크고 작은 역사속 외세의 침입에서 많은 것들을 빼앗기거나 우리의 의지하고는 상관없이 가져간 것들이 무척이나 많다. 우리것이란 것을 알면서도 그들이 강제적으로 빼앗아가거나 밀반출 한 것을 알고 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제자리로 찾아오지 못하는 것들이 정말 많다. 그런면에서 본다면 빈첸츠의 행동은 애국일까 아닐까? 우리 또한 우리곁을 벗어난 문화재들을 찾기 위하여 정부보다는 민간인이 더 많은 힘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가간에 이루어져야 할 일들이 민간인들의 노력으로 겨우 돌아오는 것들도 있지만 어찌보면 되돌려 주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자신들의 것도 아니면서 자신의 것이라 우기거나 자리하는 것들이 있으니 정말 가슴아픈 일이다.우리것이면서 우리것이라 당당히 되돌려 달라고 하지 못하고 '영구임대' 라는 명목으로 돌아 오기도 하는 문화재,모나리자 도난사건을 읽으며 씁쓸함을 되새겨본다. 남의 것을 자기네 것이라 우기기 보다는 되돌려 달라고 하기 전에 먼저 되돌려 줄 줄아는 그런 문화국의 면모를 보여줌도 이제는 역사와 후손을 위하여 해야할 마땅한 행동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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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키
존 윈덤 지음, 정소연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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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쓰여진 연도가 1968년이다. 정말 나이가 대단한 소설인데 우리에겐 처음인가보다. 나 또한 작가도 처음이다. 하지만 SF계에서는 '대단한 인물' 로 평가되고 이 작품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재평가를 받으며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화 하고 있다니 기대치가 컸다. 지금이야 우리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접하고 '아바타'까지 영화로 보았기에 이 소설은 읽고나면 다소 '약하다' 라고 할 수 있지만 쓰여진 시대를 본다면 대단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시대를 앞선 작가라 볼 수 있는 존 윈덤이다.

열한살 소년이 마당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상대는 없고 혼자서 말을 주고 받듯이 하지만 그 내용은 상당히 논쟁에 가깝다. 그렇다면 '누구와' 이런 '논쟁' 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 아들이 귀신들린 것일까 아님 다른 정신병에 걸린 것일까? 갑자기 그런 아들을 발견하게 된 데이비드는 아내 메리에게 아들 매튜가 최근에 이런 적이 있었는지 묻는다. 아내 메리 또한 아들 매튜가 요즘 혼자서 이상한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며 이야기 끝에 그들은 아들은 더 관찰하고 지켜 보기로 한다.

데이비드와 메리에게 매튜는 배가 아파 낳은 자식이 아닌 가슴으로 낳은 입양을 한 아이다.그런 아이의 부모를 알 수 없기에 더욱 '병' 에 대하여도 알 수 없고 짐작도 가지 않기에 좀더 기다려 보다가 그들은 아들 매튜로 부터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초키' 라는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성을 알 수 없는 우주생명체가 자신에겐 보인다는 것,그리고 대화를 하고 자꾸 자기와 놀자고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초키를 만나면서 매튜는 남들보다 우수한 능력을 여러모로 갖게 된다. 물리 과학 수학 그림 수영등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부분이나 관심이 없던 분야게 천재적인 능력을 보여주거나 발휘하는 매튜,그렇다면 그 모든 능력이 매튜 자신의 능력이 아닌 '초키' 의 능력이라는 것일까.

믿을 수 없으면서도 믿어야 하는 현실을 부모는 어떻게 받아 들어야 하는지. 그들은 의사를 수소문 하여 현 상황을 설명하고 아들에게서 초키를 떼어 놓으려 하다가 큰 사건이 발생하여 동생인 폴리와 매튜가 죽을 고비를 맞게 되고 매튜는 그동안 하지도 못하던 수영을 하여 폴리를 구해내는 큰 사건을 거치며 일약 스타가 되 듯 떠오르는 매튜,그리고 그가 그린 그림은 대단한 평가를 받게 되면서 예술에서도 그의 능력이 드러나게 되는데 이 모든 것이 초키의 능력일까 아님 매튜의 잠재된 능력으로 보아야 할까? 처음 초키의 존재와 부딪히게 된 매튜는 그를 떼어 놓으려 하였지만 그와 계속되는 시간 속에 애정을 갖게 되어 이별을 마음 아파 하기도 하고 초키는 다시금 매튜에게 이별인사를 하러와서 그가 이곳에 온,매튜에게 온 목적을 매튜를 통해 데이비드에게 털어 놓는다. 초키는 정찰병의 역으로 이 곳에 와서 매튜를 숙주로 하여 하려고 하였지만 애정을 갖게 되고 쓸모없고 볼품없다 보았던 이곳에 애정을 갖게 되어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겠다는 초키,그가 떠난다면 매튜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매튜에게 초키란 어떤 존재였을까?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초키라는 존재,그를 통하여 자신안에 잠재된 능력을 키우게 된 매튜, 그가 과학분야가 아닌 그림에 더 많은 소질을 개발하면 미래는 밝을 것이라는 초키의 말,수호천사가 아닌 미래의 존재를 만나게 되었다면 그것을 나쁘게 이용할 사람들에게 매튜는 늘 표적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가 과학분야에 특별한 재능을 보이면 안되지만 그림에 대한 소질은 어떻게 수면으로 떠 올라도 괜찮다는 것,그리고 매튜는 그동안의 모든 공은 자신이 아닌 '초키' 의 것이라며 진실을 내다보는 '아이 진실 된 눈' 을 보여준다.

소설이 더 많은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 소년과 미래의 준재와의 만남에 받은 능력에 대하여지만 '행복한 상상' 은 거기까지이다. 더 많은 상상이나 이야기로 번지지 않고 아이가 미래존재를 어떻게 받아 들이지는지 그리고 어른들은 또 어떻게 받아 들이지는지,그러면서 미래 존재는 또한 이 지구를  아니 지구소년을 어떻게 받아 들이는지까지다. 미래 존재가 나뿐 존재였다면 지구소년인 매튜를 자신의 숙주로 이용하여 나쁘게 움직였을텐데 초키는 때로는 친구처럼 때론 수호천사처럼 그런 존재로 매튜 곁에 존재하다가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떠난다.아니 임무도 이루지 못하고 떠난다는 그런 어찌보면 동화같은 이야기이도 하다. 가슴 속에서 '행복한 상상' 을 한 번 해 본 듯한,아니 '행복한 인물이나 존재' 를 하나 만들어 보았다는,만약에 그런 존재를 만나면 어떻게 달라질까 하는 행복한 상상을 해 본 듯하다. 어찌보면 소년이 '성장통' 처럼 겪는 아픔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상상' 같은 이야기 같기도 하다. '나는 성장이라는 과정이 주는 충격, 환상이 깨어질 때의 고독한 상처가 남기는 가슴에 사무치는 기억들을 떠올렸다. 정당하지 않은 상을 주기도 하는 세상에 자신이 살고 있다는 자각도 그중 하나였다. 가치가 흔들리고, 믿은직스럽던 것들이 갑자기 보잘것 없게 느껴지고, 확고하던 것이 공허해지고, 금이 놋괴가 되고,어디를 보아도 일관성이란는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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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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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간서치는 어찌 보면 좋은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왜 책만 보아야 했을까? 적자와 서자의 차이가 분명했던 시대,능력이 있어도 '출생'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모계의 반보다는 아버지로 부터 물려받은 쓸모 없는 자존심 강한 '반의 양반' 핏줄이 더 드세어서 글 읽는 것을 제외 하고는 달리 무엇을 해보지도 못한 사람들.그에 비하면 지금의 시대는 얼마나 좋다고 봐야 하겠는가,하지만 지금 또한 줄과 연으로 이어지는 보이지 않는 길이 있음을 무시 못하는 세상이기도 하다.'내 몸에는 임금님과 성이 같은 왕실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런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서자의 집안, 반쪽의 핏줄이다. 본가의 적자가 아니니 물려 받을 재산도 없고,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하니 살림을 꾸려 갈 녹봉도 받지 못했다.그렇다고 시장에 나가 좌판을 벌여 놓고 장사를 할 수도 없었다. 온전한 양반들만의 세계에 끼워 주지도 않으면서, 또 다른 반쪽의 핏줄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는 것도 비웃으며 허락하지 않았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바로 <조선의 협객,백동수>라는 책을 읽어서인가 내용이 많이 겹친다. 그 책을 읽어가며 이 책을 빨리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비슷한 내용들이 많으니 백동수라는 책은 그가 '주'가 되었다면 책만 보는 바보라는 책은 '이덕무' 라는 인물을 중심에 놓고 그 주변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썼다고 볼 수 있다. 서얼이었지만 꾸준히 글 읽기를 놓지 않았던 그이기에 임금도 알아주는 검서관이 되었지만 그가 만약에 서얼이라는 이유로 글 읽기를 포기하고 시장의 왈짜나 그외 인물로 살았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와 어울렸던 인물들은 대부분 서얼들이 많다. 스승으로 모신 연암 박지원과 같은 사람도 있었지만 그의 처남인 '백동수' 도 무인집안이었지만 서얼출신이요 박제가 또한 서얼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더욱 실학에 눈을 뜨지 않았을까 한다. 양반이었다면 보이지 않았을 실제 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을 청에 가서도 더 세세히 남보다 더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것이고 그들이 관직에 나아가기 전에 어려운 생활을 했기에 실생활에 더 눈을 뜨지 않았을까.하지만 그들이 서자이면서 재능을 인정 받아 관직에 나갈 수 있었던것은 참으로 오랜시간이 걸렸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능력을 쌓아 능력을 인정받은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지만 그 시간을 인내하기란 참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그 힘든 시간을 지탱해 준것은 '책' 이었다. 배고픔도 굶주림도 추위도 모두 책이 막아 주었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늘 책을 읽으며 지식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능력을 알아 봐 주는 스승도 인생에는 꼭 필요하며 그런 재능뿐만이 누군가와 어울리는가 또한 친구들이 중요함을 그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서로 이끌어 주고 밀어주고 그렇게 힘든 세상 힘든 시간을 서로 얽혀 이겨내었던 사람들 이덕무와 그의 친구들은 아픔을 속으로 삭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운명이란 게 어디 별것인가요? 저는 나를 마음대로 하려 드는데, 나라고 저를 마음대로 못하겠습니까? 단단히 얽어매어 놓은 사슬 한 겹이라도 내 반드시 풀고 말 것입니다.' 라고 말하는 박제가 같은 인물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운명에 두려움과 무기력감을 느끼었다면 박제가 같은 인물은 부딪혀 이겨내려고 했던것 같다.그런 반면에 처남인 백동수는 서얼이기 때문에 관직에 나아가지 못하여 당하는 가난에서 벗어나 보려고 기린협에 가서 십여년 동안 목장을 하기도 한다. 그곳에서 그는 무술도 함께 연마하고 목장일도 남다들게 하기도 하였지만 자신의 운명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 드디어 정조의 부름을 받고 관직에 나아가 <무예도보통지>라는 무술서를 간행하기도 했다.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이겨내고 인내한다면 반드시 인고의 결실을 거두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것을 그와 그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한번 더 깨닫게 된다.무엇보다 제일 컸던 장애물이었던 '서자' 라는 출생에 갇혀 지냈다면 그들의 인생이 역사에 남을 수 있었을까. 그시대에 제일 허물기 힘든 벽이란 것을 알면서도 끝없이 지식 탐구를 누리고 인고의 시간을 견디어 냈기에 주머니속에 감추어진 송곳이었지만 밖으로 들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또한 그런 인재를 알아 보았던 정조 또한 인물임을.. 이덕무를 통해 그의 주변 인물들이 모두 실학과 그외 방면에서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백탑시사' 의 시간이 가져다 준 것인지도 모른다는, 그 속에는 책으로 서로 교류를 했던 힘들지만 행복했던 시간들이 있었음을 들여다본다.책이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소중하게 엮어주는 매개체인지 그리고 책을 통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들여다 볼 수 있으며 나 또한 늘 책을 읽고 있고 책을 통해 소중한 인연을 맺기도 하지만 '책이란 기록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 한 번 더 깨닫게 해준다. 우리의 역사이지만 남의 것에 의지하던 지난 역사와 잃어버린 역사등 우리가 좀더 기록의 소중함을 알았더라면 하는 안타까움, 지금이라도 우리의 진실된 기록으로 남겨야 함을 다시한번 더 되새겨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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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누구냐? 가을 군자란 꽃






다른 것들은 봄에 다 피고 지고...지금은 씨로 맺혀 있건만
이녀석은 봄에도 피었는데 가을에 또 꽃을 피우고 있다.
봄에 핀 녀석들은 색이 무척이나 진하고 고운데
제철에 피지 않아서일가 색이 연하다. 그래도 기특하다.
볼 것 없는 지금 이렇게 꽃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군자란 꽃만 필소냐 '나도 있다' 라며 피려고 준비하는 '아젤리아'
이 꽃 말고 몇 송이 피었다 지고 지금 피어 있는 녀석도 있는데 그리 좋지 못하다.
그래도 얼마나 기특한지 하나 지면 또 하나 몽오리가 올라오고..
이녀석들 봄에는 무엇하고 이제서 피고 있는것인지..
아닌가 봄에 피는 녀석보다 먼저 피고 있는 것인가~~



삽목한 제라늄

며칠전에 세개 가지를 잘라 삽목한 제라늄이다.
작은 것이라 어찌살까? 했는데 잎이 나오고 있다. 가을볕이 좋긴 좋은가보다.
이 화분들은 바이올렛이 있던 안방베란다의 화분받침대에 있는 작은 화분들인데
여름 우기에 베란다문을 열어 놓았더니 빗물에 바이올렛이 다 죽었다.
거실베란다에는 바이올렛이 많지만 이곳엔 바이올렛이 오랜시간 피어 있었으니 이젠 제라늄으로
물갈이를 해 보려고 삽목을 몇 군데 했는데 역시나 제라늄은 생명이 강하다.
벌써 뿌리를 내리고 잎을 올리고 있나보다.




바이올렛 화분에서 동거를 하고 있는 '달래' 다
이녀석은 산에서 데려온 것이 무척 오래 되었는데 뽑아내도 흙 속에 생명을 감추고 있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는데 이 녀석 또한 가을에 올라오니 뜯어서 달래간장이나 해먹을까..ㅋㅋ

간만에 초록이들과 시간을 나누어본다. 오늘은 기분도 꿀꿀하고 해서
어제 하려다 못한 베란다의 8년생 천장에 닿고 있는 '율마' 이발을 했다.
그냥 재봉가위로 쑥덕쑥덕 삐죽삐죽 나온 것들을 밑에 신문지를 깔고는 잘라내고 버리고
잘라내고는 버리고... 그렇게 내 마음의 잔가지를 치듯 이발을 했다.

율마녀석들은 잘 자라다가도 여름 장마철에 꼭 곰팡이가 생겨 한쪽면이 죽고는 한다.
어느 정도 햇볕을 보면 화분을 돌려주고 돌려주며 키워야 제대로 된 모양으로 키울 수 있는게
율마다. 하지만 가끔 이렇게 이발도 해 주어야 하는데 자연스런게 좋다고
지금까지 한번도 가위를 대지 않고 키웠더니 더이상 자라지도 않고 자꾸 못난 모습만 보여줘
큰맘 먹고 잘라내 주었더니 맘이 시원하다.
식물도 생가지를 잘라내니 '건드리지 마세요~~' 하는 것처럼 향을 품어내는 녀석..
덕분에 향기로운 향을 맡아가며 이발을 했다.

201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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