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싸라비아 - 힘을 복돋아주는 주문
박광수 글.사진 / 예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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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수, 그의 웹툰을 본 것이 언제였던가.난 참 무심하게 그동안 그를 잊고 살았다. 그가 어떤 만화를 그렸는지 어떤 말들을 쏟아 냈는지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동안 세월은 참 많이 흐르고 그도 나이를 먹었고 나도 나이를 먹었다. 이제 반환점이나 마찬자기인 이 지점에서 무언가 남은 인생을 위한 주문이 필요하다, '앗싸라비아'. 책의 겉표지의 도형들을 보고 있으면 어디론가 알 수 없는 '이상한 나라' 나 아님 어느 곳인지 모를 '블랙홀' 에 빨려 드는 요지경속 도형같다. 그냥 보면 반짝반짝 은빛인데 이렇게 들어보니 '무지개빛'이다. 그렇다면 내 인생도 그의 인생도 지금 무지개빛...

나도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사진의 단점은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내가 보고 싶은 곳' '내가 볼 수 있는 곳' 그 한부분만의 세상을 '똑 떼어내어 볼 수 있다' 는 장점이 있다. 그외 세상에서는 무엇이 일어나든 상관하지 않고 아름답게 보고 싶다면 좀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좀더 넓게 보고 싶다면 원거리 촬영을 하여 찍어 보면 된다. 그렇게 뷰파인더 속 세상을 들여다보다 보면 내가 보지 못했던 세상도 발견하게 된다. 좀더 세상에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삶에도 물음표를 던지며... 그의 '앗싸라비아' 에서는 왠지 모르게 지금 그가 서 있는 인생의 현재점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를 들여다보는 청사진처럼 내게 다가왔다.

과거, 그 속에서 만난 것은 어머니다. 어머니의 레시피대로 파 양파 고추 고춧가루 참기름 약간, 잘 익은 김치를 넣고 김치볶음을 하지만 그것은 결코 어머니가 해 주신 그 '맛' 아니다. 어머니의 손맛을 따라 할 수 있는 것은 어머니의 레시피엔 없다. 그것은 정성이고 마음이고 세월이다. 하지만 지금의 어머니는 과거의 모든 기억들을 하나씩 소거해 나가고 계시다. 아니 전부를 소거했는지도 모른다. 치매라는 어머니의 인생 마지막 친구 속에는 '어머니의 김치볶음' 맛이 들어있지 않다.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는 부분에서는 '울컥' 눈물이 솟았다. 나 또한 아버지를 지난해에 보내 드렸지만 그때는 아버지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벌써 가물가물하다.아버지의 목소리, 아버지의 다정한 웃음소리, 그리고 아버지의 그 모든 행동과 언어들... 하지만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모래알처럼 세월이 흐르고 시간이 흘러가듯 아버지의 기억도 하나 둘 내 곁을 떠나가 버렸다. 그가 담으려 했던 것은 어쩌면 어머니와의 마지막 '이별 연습' 인 것처럼 불쑥 불쑥 글과 사진들에서 느껴지는 어머니에 대한 정성과 사랑 속에서 난 내 아버지를 만났다.

추억의 책장을 넘기듯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기며 만나는 사진과 공감이 가는 글 속에서 삶에 지쳐 갖지 못했던 '여유와 휴식' 을 잠시 느껴본다. 그러다 돌아서는 길목에서 우연히 마주치듯 읽게 되는 가슴 뭉쿨한 글, 짧은 글에서도 눈물이 난다.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어쩌면 '눈물샘' 을 터트리는 것처럼 점점 늘어나는 눈물을 감당 못 할 때도 있다. 눈이 안 보이는 소년이 연을 날리고 있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서 소년은 왜 연을 날릴까, 다른 일들이 자신의 연을 보고 '기쁨과 즐거움' 을 느끼니 자신을 위해 날리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날리는 소년, 우린 너무 자신만을 위해 살고 점점 이기적이 되어 가고 있는데 문득 그 짧은 글과 사진 속에서 떠나지 못하는 것은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살아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며 내 지난날을 뒤돌아 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책을 다 읽기전 전날 늦은 밤에서 기숙사에 있는 큰딸과 전화통화를 하다가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서로 별것도 아닌 일로 목소리를 높이고 그렇게 서로의 감정을 상하다 전화를끊고 어젯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게 보내고 아침을 맞아 바로 딸에게 전화, ' 니가 웃어야 모두가 웃는 것 알지,니가 웃어야 우리 가족 모두에게 힘이 나는 거야. 웃자.' 하며 좀더 여유를 가진 말들을 해 주었더니 봄 눈 녹듯 내 마음도 딸의 마음도 풀어졌다. 산다는 것은 별거 아닌데 왜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 하고 얻으려 하는지. '오래 엎드려 있던 새는 높이 날 수 없고, 먼저 핀 꽃은 일찍 지니, 이를 알면 발을 헛디딜 염려와 초조한 마음은 사라질 것이다.' 그의 사진과 잔잔한 글 속에서 잠시 내 잃어버린 여유를 찾는다. 그리고 마음의 휴식의 시간을 가져본다. 현재에 필요한 것은 돈도 아니고 욕심도 아니고 어쩌면 한템포 늦출 수 있는 '여유' 는 아닐까.

그의 다른 책들을 보았다면 다른 느낌을 가졌을텐데 만화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포토에세이' 라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사진 또한 넘 좋다. 남이 발견하지 못한 부분을 먼저 잡아 내기도 하고 순간 스러지는 아름다움을 담아 내기도 하고 그래서 사진은 참 좋기도 하고 다시 꺼내어 보면 '물기' 를 머금고 있기도 하다. 지난 것은 어느 것이나 되돌아오지 않는다. 아니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이 시간 뿐만이 아니라 인생도 그렇고 모든 것들이 다 그렇다. 지금 이 순간 '현재'를 잡아 내고 기억하고 기록하지만 그것은 바로 순간에 '과거'가 되고 만다. 그 속에서 한 대학에서 존경을 받는 노교수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늘 학생들에게 반말을 쓴지 않는 교수님 그가 왜 학생들에게 반말을 쓰지 않을까, ' 나는 현재의 자네들에게 경어를 쓰는 것이 아니라네. 나는 자네들의 위대한 미래에 대해서 존경과 경의의 뜻으로 경어를 쓰는 것이라네.' 얼마나 가슴 뭉클한 말인지. 새삼 반토막 등록금에 않좋은 교육제도들에 흔들리는 교육이야기들에 가슴에 멍이 들었는데 제자들의 '위대한 미래에 대하여' 라는 말에 가슴이 울컥했다. 참교육자의 모습을 본 듯도 하고 밝은 미래를 본 듯도 하고.

그렇다면 그의 사진과 글들이 내게 지금 '수리 수리 마수리' 하면서 '앗싸라비아'라고 주문을 걸어 준 것이 맞는 듯 하다. 잠시 어둡게 내 머리 위에 걸쳐 있던 먹구름을 거두고 밝은 하늘과 무지개를 내려 걸어 주었다. 한 장 한 장 내가 보지 못하고 내가 알지 못하던 뷰 파인더 속의 세상과 행간을 읽게 해 준 '앗싸라비아' 사진과 글이 참 좋다. 마음의 여유가 날 때마다 다시금 어느 페이지든지 펴서 차 한 잔과 함께 읽어봐도 좋을 듯 하다. 너무 깊숙히 모셔두기 보다는 가까이 손 닿는 공간에 놓아 두고 한동안 '오랜 지기' 처럼 두고 싶은 책이다. 한참 고3이라 힘들어 하는 딸에게 한페이지를 펼치고 읽어 주었다. 아니 그 글을 이야기 해 주었더니 좋단다. 서로에게 드리워져 있던 먹구름이 잠시나마 걷혀서 다행이다. 내일 다시 먹구름이 몰려 온다해도 오늘은 오늘의 주문대로 '앗싸라비아' 하게 지나갈 수 있는 하루가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 또한 딸들에게 엄마의 이런 '포토에세이' 집을 만들어 주고 싶은 생각을 가져본다. 늘 녀석들의 일상을 담고 사진으로 남겨 두던 지난 날, 어리고 힘들고 미래가 불확실하다 해도 다 묶어 놓으면 추억이고 행복이다. 행복속에는 불행도 기생한다.공생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기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가 불행한 날이 있다고 불행하다고 생각이 들기에 행복이 더 간절하고 배로 느껴진다면. '철수엄마' 라는 글에서 청각장애자인 엄마와 아들이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 하지만 그것은 말로 안해도 느낌이로 알 수 있는 것처럼 왠지 모를 '사랑' 을 표현하지는 못하겠지만 한아름 선물 받은 것 같다. '공간은 중요하지 않아. 공간을 채우는 것은 사람들일뿐. 그 사람들과 그곳에서 사연을 만드는 것지.' 정말 사연이 가득한 책이다. 보고 읽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따듯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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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제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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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도 '2010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 을 읽었는데 올해 만난 작품들은 왠지 모를 낯설음, 소설을 그래도 조금은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젊은 작가' 들의 작품을 등한시했나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작가의 이름도 내용도 나와는 동떨어진 느낌을 가져 평론을 읽지 않고 읽어보려다 조금 참고를 하며 읽었다. 좋은 취지에서 시작한 상이고 작품집이기에 나 또한 작년에 이어 올해도 그리고 그다음에도 쭉 이어 책들을 만나고 싶은데 장편만 읽다가 단편을 읽어서일까 낯설다. 하지만 작품들마다 왠지 모르게 '외로움,고독,절망' 속에서도 나름 희망을 찾고자 하는 몸부림 같은 그들의 바닥을 짚고 일어서는 '패기' 를 느껴 희망적으로 책을 놓으며 그들의 또 다른 작품들을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물속 골리앗 - 김애란
그녀의 첫 장편소설인 <두근두근 내인생> 요즘 주목하고 있는 작품인데 이 작품을 먼저 만나게 되었다. 물속 골리앗은 정말 재난 소설이다. 일본의 대지진을 뉴스를 통해서 보았기에 이 소설이 낯설지 않았을까, 우리의 재개발과 일본의 대지진이 함께 어우러져 생각나는 것은 왜 일까. 평생 용접을 하며 겨우 장만한 아파트, 대출금을 겨우 값고 '내집이다' 라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그것도 모두가 떠나버린 빈 아파트에 어머니와 둘이 남아 있는데 거대한 장마가 닥쳤다. 그들은 상중이기에 그곳을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재개발시위에서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평생 불을 가지고 일을 하셨던 아버지는 축축하게 물에 적어 있었다. 타워에서 떨어지셨다는데 이유가 뭘까. 아버지의 사유도 재개발이 된다니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려해도 그들에겐 더이상 물러설 곳도 아무것도 없다. 오직 이 집이 그들이 가질 수 있고 버틸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인 것처럼 그들은 집에 갇히고 줄기차게 내리는 장마로 인해 거대한 물이 모든 것을 휩쓸고 간다. 아버지의 묘도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머니마져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시신을 겨우 문짝배를 만들어 거대한 물살에 띄워 보지만 황톳물은 아버지를 데려 간것처럼 어머니도 데려가 버렸다. 그런 속에서 골리앗을 만나고 아버지의 영혼의 도움으로 먹을 것을 구하게 되어 겨우 살아난 그 앞에 비는 그치고 하늘에 뜬 '반달' 을 보게 된다. 아버지도 잃고 어머니도 잃었지만 그 자신만은 재난 끝에서 겨우 살아 남아 반달을 보고 있다.희망적이라고 해야 할까,목숨을 건졌으니. 실감나게 그려지는 일들이 영화 속 장면들처럼 뇌리에 남는다. 표현을 잘한듯 하여 그녀의 다음 작품들이 아니 앞으로의 행보가 기다려진다.

물속 골리앗이 재난소설이라면 김유진의 <여름> 은 무언가 감각적이면서도 쓸쓸함이 느껴진다.개수대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된 벌레와 인터뷰에서 느껴지는 '쓸쓸함' 알 수 없는 여름의 뙤약볕을 방금 지나쳐 온 듯한 순간의 현기증이 느껴진다. 그런가하면 이장욱의 <이반 멘슈코프의 춤추는 방> 은 몽롱하다.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안가는 그런 현실속에서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분간이 안가는 자전적 느낌까지 '먼 공간을 건너온 것이 아니라 먼 시간을 건너온 것 같은 기분이 되곤 한다.' 라는 소설속 문장처럼 그런 느낌이다. 현실이면서 현실적이라기 보다는 '생각' 속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었다면 김사과의 소설은 현실적인 '분노' 를 보지만 왜 분노해야 하는지 사무실에서는 꾹 꾹 눌러 참던 그가 왜 밖에서는 살인을 저지르며 알 수 없는 슬픈 분노로 인하여 타인처럼 변해가는지 약간은 판타지적이며 점점 분노의 끝을 알 수 없는 블랙홀에 빨려 들 듯 따라가게 한다. 그녀의 다른 책 <영이 02>를 가지고 있는데 그녀를 좀더 들여다 보고 싶게 만든다.

단편 소설 한 편으로 작가들을 이해하기란 힘들다. <허공의 아이들>은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 도시>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모두가 증발해 버리고 소년이 소녀를 만나 마트에서 가져온 것들로 연명하며 서로의 성장을 지켜 보는 시간 속에 소녀 또한 증발하고 소년만 남겨지게 된다. 하지만 세상은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섬 처럼 허공중에 있다. 아, 난감하다.외롭다.쓸쓸하다. 그런 세상이 올까,갑자기 궁금해진다. 물로 모든 것이 휩쓸려 가는 중에도 '물속 골리앗' 에서도 한사람이 살아 남았고 '허공의 아이들' 에서도 소년이 살아 남았다. 아담과 이브처럼 있던 그들 중에서 한사람이 사라진 순간에 '뼈가 자라는 소리' 를 듣게 되는 소년, 난 이 소설을 어떻게 내려 놓아야 할까. 내가 다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도 나와 동떨어진 이야기라 해도 난 그저 '희망' 을 보았다는 이유로 작품을 접는다. 그렇다면 <너의 변신>은 어떤가, 성형이 만연한 사회,예전에는 일부 연애인이나 그외 자신에게 콤플렉스가 있다고 생각하는 몇 몇이 하는 그런 '변신' 인줄 알았는데 이제 성형은 '일반적' 인 일이 되었다. 누구나 할 수 있고 어느 부위이든 맘에 들지 않으면 고치는 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그렇기도 하거니와 성을 바꾸는 일도 놀랍지 않다. 세상이 변해가고 환경이 변해가니 이해할만 한데 그 끝이 어디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완벽함' 을 추구하여 무엇이 될까. 외모에 그리 욕심을 부리지 않는 내겐 거리가 먼 이야기지만 요즘 세태를 나태내고 있는 듯 하여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소통의 부재를 보다'
그리고 <떠떠떠,떠> 말을 하고 싶지만 그가 내 뱉는 언어는 '떠떠떠..' 남들은 그의 말을 기다리는 순간에 다른 세계에 빠져 있다. 그의 언어는 말이 되지 못하고 가슴 안에 맺히고 만다. 그런 속에서 한 소녀가 쓰러지고 전학을 가게 되고 사회인이 되어 사자탈을 쓴 청년과 팬더곰탈을 쓴 아가씨가 되어 만났다. 아직도 그의 언어는 말이 되지 못하고 있다. 서로의 아픔도 충분히 알고 감싸줄 줄도 알지만 사랑을 이야기하고 사랑이 되려는 순간에 마찰음을 일으키듯 그녀는 발작을 그남자는 '떠떠떠' 말더듬이가 된다. 사랑에도 '소통' 이 되어야 하는데 서로의 장애로 인하여 '단절' 된다. 어찌보면 단편들은 현대인들이 겪는 '외로움' '고독' '소통의 부재' 를 나타내기도 한다. 물속 골리앗에서는 빈 아파트에 어머니와 그만 외로이 '고립' 된다. 그러다 혼자 남겨지게 되는, 그 순간에 세상과 통할 수 있는 무언가 수단이 있었다면 어떻게 소설은 변했을까, 소통이 안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겪는 외로움과의 싸움은 처절하다. '이반 멘슈코프의 춤추는 방' 또한 혼자 겪는 외로움이 더 큰 혼란을 가져오지 않았을까,멀리 이국땅에서. 그렇다면 김사과의 소설은 또 어떠한가. 자신의 슬픈 분노를 남에게 털어 놓았다면,회사에서 억눌린 감정을 옆 동료에게 털어 놓았다면 줄줄이 이어지던 피비린내 나는 사건들이 발생했을까. '허공의 아이들' 또한 고립이고 외로움이다. 어느 누구도 없다. 세상에 단 둘만 버려진 상황에서 그들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지만 언제 증발하게 될지 모른다. 다른 세상과 소통할 무엇이 없다. 그런 속에서도 자신은 자라고 있다. 아이러니다. 외롭고 고독함 속에서도 시간은 간다는 것이다. 삶은 계속되고 시간은 흘러가고 물은 낮은 곳을 찾아 흘러간다. 그들이 장애를 가지고 있어 사랑의 소통이 안되는 순간에도.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스마트시대라고 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개인화와 고립화' 로 이어지는 것 같다. 모두와 소통할 수 있는 미디어시대라고 하지만 언제나 난 혼자인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당당하게 홀로 남겨지는 사람들, 하늘에 뜬 반달을 보듯, 젊은 작가들에게서 나 또한 희망을 본다. 작품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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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 - 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 개정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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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마애블이며 구례연곡사 바로 앞까지 갔다가 못 갔던 곳들이 나와 더 와 닿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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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시봉 시대 - 쎄시봉 친구들의 음악과 우정 이야기
조영남.이나리 지음 / 민음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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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와에 나와 입담을 자랑하던 쎄시봉 친구들이 이야기를 책으로 만날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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