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 - 되돌아보고 나를 찾다
김용택.박완서.이순원 외 지음 / 더숲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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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뒤돌아보면 후회되거나 반성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있을까. 우린 모두가 크거나 작거나 혹은 계속되는 일이라도 한가지는 가지고 산다.나 또한 지난해 연말에 아버지를 보내 드리며 아버지 살아생전에 너무 못해드리고 안해드린 것들이 많아 후회되어 엄마께는 잘해드려야지 했던 것이 어제일 같은데 전화도 자주 않하고 찾아뵙지도 못하고 살고 있다. 반성은 그때뿐이고 그것을 실천하면서 산다는 것이 힘들다. 날마다 새로운 일과 새로운 것에 적응하며 살다보면 날마다 후회와 반성으로 점철되는 하루가 되다보니 지난 반성거리는 잊기마련이다.

여기 그런 이야기들이 모여 있다. 부모님에 대한 반성이라든가 친구에 대한 반성이라든다 혹은 이웃에 대한 혹은 내 행동에 대한 한가지 문제에 대하여 들려주는 이야기마다 '그래,맞아..' 하고 공감을 한다는것은 누구나 그렇게 살고 있고 고치려고 하지만 고쳐보겠다고 하지만 잠간뿐이라는 것이다. 다른 것에 대한 반성보다 부모님에 대한 반성이 유독 가슴을 울린다. 눈물이 난다. 나 또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고 나와 비슷한 공감을 자아내어 내가 못한 부분을 후회하듯 울컥했다. 산다는게 어찌보면 다 비슷비슷 한듯 하다.

어찌보면 '반성' 하고 산다는게 참 다행한 일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도 분간을 못하며 살고 있는것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잘하고만 사는 줄 알지만 주위의 이야기를 들어보다보면 내가 못하고 사는구나 느낄때가 있고 나이가 들어가다 보면 그땐 정말 잘못했다는 것을 느낄때가 있다. 그런다고 그 모두를 고쳐 앞으로 아무 잘못없이 후회없이 산다는 보장은 없다. 반성문은 반성문일 뿐이다. 어제 잠깐 티비를 보다보니 각서와 반성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오락프로였지만 각서를 쓰라는 그말이 좋다는, 그것은 일이 종결되었다는 말이라는 것에서 웃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초등시절 선생님들은 반성문을 쓰라는 말을 참 많이 하셨다. 그런데 반성문을 쓰는 사람은 정해져있다. 반성문을 썼다고 하여 그의 행동에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고쳐진것도 아니고 늘 단골 반성문 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성은 반성으로 끝난다는 것일까.그렇게 반성을 한다는 것 자체를 높이 사야 하나.

어머니의 문안전화,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가 아침 정해진 시간에 딸에게 한번씩 전화를 해오다가 안하면 그날은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이틀 전화가 없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생긴 것인데 작가는 전화를 선뜻 먼저 하지 못하고 기다린다. 그러다 받게 된 전화,어머님이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는.. 왜 기다리고만 있었던 것일까. 먼저 어머니의 안부를 물었다면, 자신밖에 없는 혼자인데 왜 망설였을까. 아마도 무서웠을 것이다. 그러면서 보게된 어머니의 통화내역엔 온통 딸의 이름뿐이지만 자신의 핸펀은 그렇지가 않다. 어머니와 나의 핸드폰의 무게가 다른것처럼 느껴진다,다행히 어머님은 차도를 보여 퇴원하시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셨지만 가슴이 먹먹해지던 순간이다. 돌이켜보면 이런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잘해야지 하면서도 안되는 것이 부모님이고 자식에게 이다. 내 주위에 있기에 더 안되고 맘뿐인것이 피붙이인듯 하다. 나 또한 친정엄마께 전화라도 적적하지 않게 자주 해야지 하던 것이 이젠 수화기도 잘 들지 않는다. 엄마가 잘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님 집에 안계실거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다보니 계절이 바뀌고 있다.부모님은 결코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 늘 곁에서 영원할거라 생각하는 부모님은 하루가 다르게 에너지가 빠져나가고 있다. 젊을때하고는 다르게 하루가 정말 빠른 속도로 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하지만 내 일상이 바쁘다고 뒤로 미루어 두게 되는 우선순위가 부모님이다. 아쉽다. 

반성이 부모님께 혹은 자식에게만 있을까 김용택의 '태환이 형,진짜 미안해' 을 읽으니 뭉클하다. 돌보지 못했던 분들이 아쉽게 떠나고 나니 그의 삶의 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지나고 이제 와서 그의 속살을 들여다보듯 한다고 죽은자가 살아 돌아올리 없고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자식과 아내와 떨어져 홀로 외롭게 술로 살아간 사람, 그가 큰소리로 외치며 동네를 떠들썩 하게 했는데 그가 없으니 동네가 조용하다. 그의 메아리는 어디선가 울리고 있겠지만 그게 이승이 아니란것이 슬프다. 무언가 소중한 것은 곁에 있을때는 모른다. 그것이 옆에서 사라지고 나면 그때서야 비로소 그 값어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때늦은 후회만 남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듯 하다.잘해주고 싶었지만 잘해주어야 했어지만 그때는 몰랐던 형, 그곳에서나 행복하길 바랄뿐.

남에게 자신의 치부를 내보이는 것 같아 소설을 쓰지 못하는 글쟁이, 그것을 바쁘다는 핑계속에 묻어 놓으며 자꾸만 뒤로 미루고 있다. 그러다 듣게 되는 한마디 '너 왜 책 안내냐?' '잘 써지지 않고...... 마음에 안 드는데 그대로 내면 욕먹을 것 같아서요.' '그럼 욕먹어. 욕먹고 나면 더 잘 쓰게 돼.' 그렇다. 욕을 먹기 싫다고 자신을 핑계속에 묻어두고 포장하고 했지만 그렇게 하면 자신의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 못은 망치로 자꾸 두둘겨 맞아야 들어가듯 자신의 잘못된 곳을 자꾸 독자에게 지적을 받고 욕을 먹어야 고쳐지고 발전이 있지 쓰지도 않고 출판도 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능력이 어느정도인지 어떤 상태인지 모르니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욕을 먹기 싫어서 망치질 당하기 싫다면 왜 못이고 글쟁이겠는가. 두드려 맞을수록 단단해질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따끔한 충고를 해주면 우린 그런 사람을 몹시 경계하거나 싫어한다. 자신에게 나뿐말을 해준다는 것으로, 하지만 난 다르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그 자신을 제대로 보고 평가를 내린 사람이다. 그런 말은 가슴에 잘 새겨두어야 자신이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나 또한 딸에게 따끔한 충고를 잘한다. 엄마만큼 딸을 잘 아는 사람이 또 있을까,그러면 딸은 늘 하는 말이 '엄마만 내게 그런 말을 해.남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데.엄마도 좋은 말좀 해봐.' 그런데 어쩌랴 딸의 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 엄마인데. 딸의 발전을 위해서는 엄마가 나서야지 남이 결코 나서주는 것은 아니다. 친구나 그외 사람들은 적일수도 있다. 적에게 충고를 하는 법은 없다. 길지 않은 삶이지만 돌아보면 정말 반성할 일과 행동이 많다. 그렇다고 그 일들을 모두 고친다고 삶이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모두 고칠수도 없지만.. 삶은 인생은 어쩌면 반성과 후회로 그렇게 흘러가는 듯 하다. 그게 삶이고 인생이지 완벽한 사람은 없다. 좀더 예전보다 좋게 고쳐질 수는 있지만.그런 의미로 친정엄마께 전화좀 해야겠다. 잘 계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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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시키는 일 - 꿈과 행복을 완성시켜주는 마음의 명령 가슴이 시키는 일 1
김이율 지음 / 판테온하우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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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거리가 먼 것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라는 말이 있다. 가슴은 시키지만 머리가 받아 들이지 않는 일이나 머리는 하자고 하는데 가슴에서는 우러나지 않는 일, 정말 가까우면서도 거리가 제일 먼 것 같다. 그런데 '가슴이 시키는 일' 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자신의 열정을 다 바치며 사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 과연 몇 %나 될까? 그렇게 사는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 많은 것이다.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려고 한다면 그만큼의 그 일을 위해 '포기' 해야 하는 것들이 있을 듯 하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슴이 시키는 일' 을 하지 못하고 살기에 그런 말도 나오지 않았을까. 평범한 사람들은 가슴이 시키는 일이 아닌 자신이 해야만 되는 일, 어쩔 수 없어서 해야만 되는 일을 하며 사는 경우가 더 많을 듯 하다. 꼭 하고 싶은데 딸린 식구가 있어서, 꼭 하고 싶은데 나이 때문에.. 하며 후회하거나 아쉬워 하는 경우가 더 많고 그냥 꿈으로 간직하거나 예전에는 나도 하며 한번쯤 간직했던 일로 가슴에 묻어 두고 사는 경우가 더 많다. 나 또한 하고 싶었지만 나이 때문에 혹은 애들 때문에 접어 두거나 묻어 두고 사는 일들이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런 일을 실행한다는 것은 더 큰 위험이고 많은 것을 포기할 것을 감수해야만 하다는 것을 알기에 그냥 그렇게 살고 있다.몰라서가 아닌 어쩔 수 없으니 지금 그대로 살고 있는 것이다.

책의 내용은 참 좋다. '가슴이 시키는 일' 을 하며 산 사람들, 그들이라고 포기하지 않고 얻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가슴 뛰는 삶을 우해 故 이태석 신부는 어머님이 원하던 의사의 길이 아닌 신부가 되어 아무도 돌보지 않았던 수단의 톤즈에 가서 버려지듯 했던 행려자들인 한센인들을 돌보기도 하고 내전으로 황폐해진 그곳사람들과 함께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꿈을 이루기도 전에 그는 자신이 싸워야 하는 암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이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행복의 완성' 이란 플서스 메시지의 글에 이런 글이 있다. '행복이란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이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누구나 도움이 필요한 법이죠. 누군가는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주면 됩니다.' 행복이란 나를 필요한 하는 곳에 도움이 되면 된다는 것이다. 얼마나 간단한 것인가. 하지만 우린 세잎클로버 속에 숨은 '네잎의 행운' 을 찾기 위하여 무수히 많은 행복을 저버린다. 단 하나의 행운만 잡으려고. 세잎클러버의 말은 '행복' 이다. 행복은 널려 있는데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네잎클로버의 행운이 아닌 지금부터는 세잎클로버의 행복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요즘 여행기로 우리에게 다가온 K본부의 전 아나 '손미나' 씨. 그녀의 여행기 <태양의 여행자> <스페인 너는 자유다>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 책들은 그녀가 아나운서로 머물러 있었다면 나오지 못했을 책들이다. 과감하게 아나운서는 '지금 아니면 안되기 때문이에요. 언젠가는 해야지 수십 번 다짐하고 또 다짐하거늘 늘 그 자리에요. 그리고 지금 제 가슴이 그 일을 하라고 해요.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또 제자리가 될 것 같아요.' 라는 말과 함께 사표를 던지고 떠났기에 이런 책들을 쓸 수 있었고 새로운 세상과 만날 수 있었다. 모두가 부러워 하는 아나운서라고 하여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런 가슴 뜨거운 일도 그리고 책도 쓰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과감하게 지금 사표를 던질 수 잇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면 몇이나 될까? 취업도 어려운데 사표를 과연 던질 수 있을까.

내가 원하는 진짜 삶이란 플러스 메세지에 '커다란 가짜보다 작지만 진짜 삶을 키워나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머무를 필요는 없다. 망설임과 두려움과 손익분기점은 모두 불살라 버려라. 바로 가슴만이 답을 줄 것이다.' 모두가 그런 삶을 한번쯤은 살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가슴에서 밖으로 머리까지 전달되어 행동에 옮기며 실천하며 사는 사람이 있을까. 있기야 하겠지만 '작지만 진짜 삶' 을 위하여 과감하게 고인물에서 뛰쳐 나가 새로운 오아시스를 찾아 떠날 자가, 그가 부러운 세상이고 현실이다. 꼭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고 있어야 하는 세상이지만 우린 우리도 모르는새 남의 눈치를 보며 살고 있다. 남편은 아내의 눈치를 부부는 아이들의 눈치를 자식은 부모의 눈치를 그렇다보니 고인물에서 새로운 오아시스를 찾아 떠난다는 것은 언제 실행될지 모르는 미래지향적 꿈인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나도 한번쯤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그것 또한 그 사람들의 인생 전체를 놓고 보았기에 그렇게 판단할수 있는 것이고 또 '가슴이 시키는 일' 을 하고 살고 있구나 하고 생각이 들겠지만 그들에게도 위기와 실패가 왜 없겠는가. 사람인데.. 사람이란 시행착오를 거쳐 비로소 현재에 이르는 오류의 학습의 달인들이다. 잘못되고 있는 것을 알고 느끼고 있지만 생각만큼 잘 고쳐지지 않고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기 보다는 남의 삶이나 인생을 들여다보고는 간접적으로 판단을 하기도 한다. 나에게 비추어서 말이다. 김연아가 피겨의 여왕이 되었다고 하여 모두가 김연아가 될 수는 없다. 김연아 한명이기에 '김연아' 가 될 수 있는 것이지 여러명이라면 김연아가 될 수 없다. 가슴이 시키는 일도 모두 다르겠고 자신에게 가슴 뛰는 일도 다 다르겠지만 왜 자꾸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약해져 가는지. 본의 아니게 두루두루 눈치를 보면서 낑겨 살아야 하는 삶, 비단 나 혼자 느끼는 삶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개중에는 정말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면서 가슴 뛰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가 가끔 가슴을 울리기도 하고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한다. 한번쯤 나도 도전을 해보고 싶기도 하다. 나이 가족 가정 모든것을 뒤로하고 말이다.'습관의 고리는 너무 작아서 깨닫지 못하다가 그것을 깨뜨려 버리기에는 너무 강해진 후에야 발견됩니다. 처음에는 거미줄이지만 결국에는 강철줄이 되는 것이 습관입니다.' 

내가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지 못하고 가슴 뛰는 삶을 살지 못해도 그런 이야기들을 읽는 것만으로 가슴이 뛰는 것으로 족하다. 무언가 잔잔한 가슴에 돌이 하나 떨어져 멀리 파문을 일으킨것처럼 그 여운이 가시지 않고 가슴에 깊게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만족에서 벗어나 실행에 옮기길 바란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꼭 있으리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세계 최고령 마라톤 완주자 '파우자 싱' 할아버지 이야기도 가슴이 뜨거웠고 그외 많은 이야기들이 정말 감동적이었다. 타인의 삶이고 타인의 이야기라 더 대리만족을 주는 가슴이 시키는 일, 하지만 얻는 것도 있다. 목표가 없는 삶과 있는 삶은 완전히 다르며 노력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생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 크지만 않지만 난 내 나름대로 작지만 가슴 뛰는 삶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해봐야겠다. 봄, 시작과 출발의 계절에 맞추어 안성맞춤이었던 책이다. 지금 무언가 망설이고 있다면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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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1 - 미천왕, 도망자 을불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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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가졌던 나라지만 고구려의 역사에 대하여는 잘 알지 못한다. 드라마나 소설에서도 주로 다루어지는 것이 조선의 역사와 왕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고 고구려는 많이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라 더 관심이 간다. 작가의 역사소설은 손에 잡으면 스피드하면서도 재밌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생각을 하기 이전에 소설에 빠져 들어 읽다보면 금받 다음 권을 잡아야 할 정도로 흡입력이 있다. 그의 전작들인 <천년의 금서> 도 그랬고 <1026> 도 재밌게 읽었는데 이 <고구려>는 연작으로 13권까지인가 나온다고 하니 그때까지 기다려볼 수 밖에. 

요즘은 드라마에서도 그렇고 소설에서도 그렇고 역사가 많이 등장을 한다. 이 소설에 나온 부분도 드라마에서 본 듯도 한데 겹쳐 생각하며 읽으니 재밌다. 소설은 고구려 주변정세와 더불어 도망자 신분이 되어야만 했던 을불, 미천왕에 대한 이야기다. 고구려 주변정세도 시끄럽지만 안에서도 무척 혼돈의 시대인듯 하다. 조카 을불을 지키기 위하여 안국군은 사약을 마시고 죽는가 하면 을불의 아버지는 형인 상부에게서 을불을 지키기 위하여 바보와 같은 낮은 자세로 임한다. 하지만 을불의 가슴속에는 안국군과 함께 하던 어린시절이 남아 있어 그런 아버지도 못마땅하고 자신의 소리를 내지 못하는 자신도 못마땅하기만 하다. 

고구려는 위로는 오랑캐들이 넘보는 나라였지만 밑에서는 또 치고 올라오려는 그런 중간적 입장에서 내정 또한 이렇게 시끄러웠으니 백성들의 원성 또한 자자했을 듯 하다. 소설은 미천왕은 왕이 운명을 타고 났지만 시대가 아니기에 잠시 피해있어야 할 운명임을 설화적인 기법으로 풀어낸다. 상부의 눈을 피해 아들을 살리기 위해 피신을 시킨 을불의 아버지는 형이 내린 죽음을 피할 수 없었지만 을불은 겨우 죽음의 손아귀를 벗어나 떠돌아야만 했다. 이곳저곳 떠돌며 소금장수를 하며 주변정세를 읽은 을불, 그러다 낙랑에 도착하여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고 큰소리를 쳤으나 직접적인 칼싸움을 해보지 않아 몰리게 된 그를 구해낸 양운거와 소청에 의해 무술을 배우게 되는 그지만 그곳에서 적은 있었다. 소청을 좋아했던 방정균 때문에 그곳을 떠나야 했던 을불,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씀씀이가 남과  달라던 그다. 

그러다 저가의 밑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잡입을 하며 기회를 보다가 시월 동맹제에 무술대회에 참가를 하게 되면서 마지막 경합까지 남게 된, 하지만 그 자리에서 뜻하지 않게 상부를 만나게 되면서 다시 도망자가 되지만 이제 힘은 그의 편이 된다. 한사람 한사람 친구를 얻게 되고 힘을 얻게 되고, 저가의 도움으로 낙랑에 들어가 힘의 원천인 '철' 을 구할 방도를 찾아 떠나는 그들, 과연 그들은 철을 구할 수 있을까. 철을 구한다면 그 철을 무기로 하여 상부에게서 힘을 빼앗아 고구려의 왕이 될 수 있을까. 왕손이었지만 미천한 소금장수로 전락하여 주변국을 떠돌아야 했던 그에겐 오히려 떠돌이 생활이 그에게 힘이 되었고 주변정세를 더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그에게서 안국군을 보았던 이들은 그에게 하나 둘 돌아오게 되고 그에게 힘을 실어준다.

천운은 어찌할 수 없나보다. 피할 수 없는 천운덕에 어디를 가도 지혜를 발휘하여 멀리 그리고 더 넓게 보았던 그, 이제 고구려는 서서히 그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권력은 아무리 굳건해 보여도 언제나 넘보는 자가 있기 마련이고, 그 장본인은 항상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을 그는 금과옥조처럼 가슴에 새기게 되었다.' 상부가 안국군에게 빼앗은 자리라면 상부 또한 누군가에게 그렇게 빼앗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 앉아 백성을 얼마나 편안하게 다스리느냐가 중요할 터, 미천한 소금장수로 떠돌이 생활을 해 보았고 최고의 무술지도자에게 무술도 연마했고 주변을 떠돌며 상단에도 휩쓸려 보았으니 주변정세를 남보다 더 세세하게 알게 되었으니 을불은 어쩌면 준비된 왕인지도 모른다. 낙랑이며 위로 오랑캐들이 주변이 시끄런운 속에 고구려가 있었으니 나라는 힘있고 지혜로운 왕을 원했을 것이다. 

'친구란 신분으로 맺어지는 것이 아닐터, 마음이 통하면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있으면 목숨처럼 소중한 친구가 되는 게 아니겠는가.' 을불, 비록 미천하게 떠돌고 있지만 그가 만나는 인연마다 소중하게 여기고 믿음을 중요시 했기에 그의 힘의 바탕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 소설은 대화체로 빨리 읽을 수 있으면서 현실과 허구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 재밌다. 역사소설을 읽다보면 허구가 실제인줄 알고 오류에 빠질 수 있는데 이렇게라도 고구려를 좀더 가깝게 느낄 수 있고 알게 된다면 그것으로 족한것 아닐까. 오래전 역사시간에 배운 역사지식이 전부다이니 미천왕이 있었던가 하는 물음표를 가지게 되는데 을불 그가 미천왕이었구나 하는 것을 하나 알게 된 소설이다. 정조 드라마 덕에 그의 이름이 '이산' 임을 알게 되는것처럼 말이다. 1권을 후다닥 읽었는데 2권이 궁금하다. 이렇게 어떻게 끝까지 기다릴지 모르겠다. 국운이 을불에게 어떻게 쏠릴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가 소청을 택할지 아영을 택할지도 궁금하다. 일제가 만든 한반도에 갇힌 역사에서 더 넓게 밖으로 나가 마음껏 만주벌판을 호령하듯 했던 소설속 그들을 만나니 기분 좋다. 이제 시작이지만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더 넓은 벌판을 향해 나아갔던 그들의 기상을 빨리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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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이 화알짝 봄, 봄은 봄이다





하루만에 나의 안방 베란다 화단은 바뀌었다.
군자란이 어제보다 더 활짝 피어난 것이다. 마지막 힘을 발하고 있는 동백도 피고 지고
아젤리아는 끊임없이 피고 새 순을 올리고 있으며
꽃대만 삐죽삐죽이던 군자란은 하나 둘 그 화려한 모습을 드러냈다.










군자란


녀석의 군무는 이제 시작인데 정말 화려하다. 혼자보기 정말 아까운 춤사위,
나 혼자가 아닌 울집 아지들이 함께 한다. 디카를 들고 베란다에 나가면 
녀석들이 내 호위무사라도 되는양 졸졸 따라 다닌다. 베란다는 녀석들의 집이기도 하다.

어제만 해도 이렇게 피지 않았는데 하루가 다르게 봄이 더 바짝 다가오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봄바람이 거센것도 봄을 더 빨리 데려오기 위한 봄의 작전인듯 하다.









유리창 속에도 온통 군자란 화단이다. 주황빛 화관을 곱게 쓴 삼월의 신부처럼
그저 내게 다가온 봄이 곱기만 하다.
신부의 부케를 연상케하는 군자란 꽃다발, 정말 이쁘다.




그곁에서 올해 마지막이지 싶은 동백이 곱게 피었다.
삼월 햇살에 그 모습이 더욱 곱다. 올해 많은 꽃을 피워주었니 새 가지도 많이 나오고
내년에는 더 많은 꽃을 기약하리라.





거실베란다에도 하나 둘 꽃이 피고 있다 
바이올렛은 이제 지는 시기이고 말발도리와 무늬조팝 부겐베리아 시클라멘 아젤리아
목베고니아 꽃치자 그리고 게발선인장에서 꽃봉오리가 나오고 있다.

올해 한번 대청소를 해야하는 곳이기도 한데 손을 대면 겁잡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하고
그게 화분이기도 하다. 작은것에서 큰것에 이르기짜기 한차례 만지고 나면 허리가 무척 아프다.
이쁜 꽃을 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 


  
말발도리 무늬조팝 브론페시아 꽃몽오리들

  
뿌리나누기를 한 사랑초에서 잎이 나오고 게발선인장에서 꽃망우리 아젤리아가 피려한다.





20여년이 다된 행운목은 천장에 닿았다.
두번이나 향기로운 꽃을 피워 주었던 행운목, 올해도 피려는지 모르겠다.
꽃을 피우고 나면 영양분을 많이 빼았겨 누렁잎이 진다.
인고의 세월을 이겨낸 흔적처럼 기다란 일자몸을 지녔지만 
그래도 내겐 이쁜 녀석이다.올해 꽃이 피고 행운을 가져다 준다면 더할나위 없겠다.







며칠전 업어온 아젤리아가 넘 이쁘게 피고 있다.
그래서 어제 하나 더 업어다 심었다.
봄엔 역시나 화려한 꽃이 피어야 생기가 돈다. 
녀석들을 보고 있는것만으로도 행복이다.




부겐베리아


꽃은 대부분 꽃속에 또 하나의 꽃을 숨기고 있다.
부겐베리아 속에도 이렇게 꽃이 하나 더 숨어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찾을 수 있는 꽃속의 꽃,
이 봄엔 그런 숨은 행복을 찾아보는 것이다.

  


꽃을 보고 싶은데 잎만 나오고 있는 천라향
잎을 뜯어 김치를 담아 먹고 있는 미나리
푸른 잎이 멋지나게 나온 무늬조팝인듯..




울 호야는 팔손이 그림자에 숨어 봄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베란다에 햇살이 따듯하게 들면 이불을 깔아 달라고 하며 나가 있는 녀석들,
오늘도 한차례 꽃속에서 낮잠을 즐기다 들어왔다.

꽃이 화알짝 정말 봄이다 아지들마져 햇살을 즐기게 하는 봄,
그대의 봄은 어디쯤 와 있나요...

하루가 다르게 아니 시간이 다르게 마구마구 곁으로 다가오고 있는 봄,
내 화단에서 사알짝 봄을 느껴 보세요.


201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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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찾아서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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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에게 권력이란 무엇일까, 아니 권좌에 오르려는 욕심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인지. 이 책은 1996년도 나왔다가 절판된 것을 재판한 것이다.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라 그런지 전개에서 약간 매끄럽지 않은 면도 보이지만 남성들의 약육강식의 세계를 잘표현해 놓은 것 같아 한편으로는 씁쓸하면서 재있게 읽었다. 모두가 오르려는 힘을 가진 최고의 자리, 그곳에 오르면 무엇이 좋을까, 그것도 자그마한 도시에서. 다른 곳과는 구별되듯 항아리처럼 생긴 지형인 그 작은 곳에서 모두의 부러움의 대상인 자리 ’왕’ 이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어찌보면 참 무모한 것이 ’힘겨루기’ 일 것이다. 그런 것을 싫어해서이기도 하지만 권력을 가졌다고 권좌에 올랐다고 그 힘을 남용하는 이들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인지 그런 자리를 싫어한다. 우린 꼭 남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그 자리를 잘 지키는 것이 아닌 제멋대로 남용을 하기에 어찌보면 아름다운 자리이기 이전에 피로 얼룩지고 뇌물로 얼룩진 자리가 그런 자리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꼭 그런 자리에 올라야만 할까.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기 보다는 벼가 익을수록 더욱 고개가 빳빴하게 서는 자리, 그런 자리는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어느 누군가 아랫사람이 또 노리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권력은 그런 것이다. 그 자리에 오르고 나면 세상을 다 가진것처럼 호령하고 싶은 것이다.

이 소설에서처럼 ’마사오’ 란 인물은 그의 다른 이름보다도 ’마사오’라는 이름이 그냥 굳어진 명사처럼 쓰인다. 누구에게나 마사오인 것이다. 그는 부모의 뒷배경이나 그외 다른 배경은 가지지 못했지만 남성이 가져야 하는 ’외적인 힘’ 을 어린시절부터 가지게 된다. 그런 그가 어렵게 지역의 왕의 자리에 앉아서 지역을 통치하듯 하고 호령을 하다가 너무 어이없고 힘없게 죽었다는 부고를 듣게 된다. 삶은 모두가 힘이 그의 것이었지만 죽음은 그에게서 힘을 빼앗아 버렸다. 아니 정상의 자리에서 물러서야 할 순간이 왔을 때, 다른 사람에게 그 자리를 내주어야 했을 때 그는 이빨빠진 호랑이처럼 모든 힘을 잃었다. 힘이란 살아 있는 동안 그가 누릴 수 있던 최고의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젠 누가 그를 기억해줄까.

어린시절 그의 힘이 부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던 수컷들, 재천과 원두는 그가 심부름을 시킨 것만으로도 그와 친구가 된 것처럼 전설을 만들어냈다. 그는 그런 인물이었다. 사실이 아니어도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전설처럼 혹은 신화처럼 소문은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 그를 부풀렸다. 그러지 않아도 나이가 들수록 점점 단단해지는 팔근육만큼이나 그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고 지역에서 그를 따라올자가 없었다. 경찰도 누구도 그 앞에서는 맥을 못추었다. 그의 아우라는 대단했듯이 그를 따르고자 했던 이들도 있었다. 그야말로 그의 이름 하나로 지역을 평정하고 수컷들의 위계질서를 확립해주던 이름 마사오, 그런 그가 죽었다. 그렇다면 그 지역에 왕의 자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마사오의 대를 이어 왕이 될만한 인물이 있을까.

원두가 졸음운전을 하는 버스기사의 곡예운전을 보면서 지난 시절을 추억하는  그 속에 마사오는 그의 왕이기도 했다. 모두의 왕이었고 그이 왕이었던 마사오, 그의 죽음으로 인해 들여다보게 된 지난날과 현실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원두와 재천은 한날 한시에 태어난 쌍둥이 같은 친구였지만 그와 원두는 너무 달랐다. 재천은 경찰인 아버지와는 다르게 늘 자신의 이익에 대하여, 권력을 빼앗기 위한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 또한 그 자리를 원했지만 힘이 없거나 능력이 없으면 자연도태가 되듯 강한 자 앞에서 스러져 버리는 그런 삶을 산다. 강한 자만 살아 남을 수 있는 야생수컷의 세계, 그리고 한사람만 차지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 그 자리를 향한 피튀기는 싸움을 해도 늘 마사오란 인물이 늘 지키고 앉아 있었는데 어느날 그도 또한 세월과 함께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죽음이 그를 혼자만 비껴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자리를 놓고 이인자들끼리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보다 한수위엔 다른 인물이 있다.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인물, 세계는 남자가 지배하지만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자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누구일까.

’그러면 그 소문 알아요? 마사오가 자살했다는 거요. 병원 의사 입에서 나온 말인데 맞는가봐요. 마사오가 몇 년을 앓았잖아요. 그때 누굽니까.거 다리에서 사고로 떨어져 죽은, 그 악독한 깡패 놈한테 당해서 폐인이 됐잖아요. 그다음부터는 그 사람이 전혀 힘을 못 썼지요. 그러다가 비관해서 자살을 했다 이거지요.’ 왕이 죽는 순간 그가 가졌던 힘도 죽어야만 했다. 새로운 왕을 위한 왕에 의해 이젠 세상이 돌아가야 했다. 힘이란 그런것이다. 영원한 자리도 영원한 힘도 영원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늘 그자리는 피튀기는 싸움을 하게 한다. 오직 한자리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희생이 뒤따르는가. 위만 쳐다보며 자리에 오르려고 한 사람들에겐 친구도 그 누구도 수평의 것이 보이지 않는다. 오직 수직의 그 높이만 보이기에 그것을 깨달았을때는 모든것이 늦는다. 뒤돌아보면 잠깐인것 같은 시간들이 인생을 모두 허비하고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고인물처럼 한 지역에서 서로를 밟고 올라가야만 사는 사람들,하지만 그들보다 더 높은 곳에서 그들을 손아귀에 쥐고 좌지우지 흔들어 놓았던 여자,누가 진정한 왕일까.

’그는 오래전에 내 마음의 지평선 너머로 떠났다.영원한 왕으로서 위엄과 광채에 들러싸여, 그가 떠난 자리는 흉터처럼, 말 발자국처럼 자국만 남아 있다.’ 원두 그는 이제 그 세계에서 떠났지만 아직도 그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그곳에서 맴을 돌고 있다. 마사오가 누렸던 왕의 아우라를 얻기 위하여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한 사람들, ’누구도 나를 보고 웃을 수 없게 하겠어. 나를 존경하게 만들고 내 말에 복종하게 만들고 나를 다시 대통령으로 뽑게 하겠어.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겠어.’ 오랜시간이 흐르고 마사오란 왕도 죽음에 이르러 힘을 잃고 말았듯이 세상은 변했지만 사람의 권력에 대한 욕심이란 변하지 않는 법이다. 예나지금이나 그 한자리를 차지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사건과 사고가 범람을 하는가. 이 소설 또한 그런 의미에서 재판되지 않았을까.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권력에 대한 자리다툼으로 인한 눈살을 찡그리게 하는 일과 사람들, 사람의 욕심이란 죽어야 비로소 욕심도 죽는다. 

등잔밑이 어둡듯이 자리에 앉아 있기에 자신의 자리 밑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 자리를 노리는 많은 사람들의 싸움이 보였다면 잠시 앉아 있다 순순히 물러나 다음 사람에게 인계를 하여 무리를 빚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사람이란 자리에 앉으면 더욱 욕심을 부리기 마련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있듯이 한번 자리에 눌러 앉게 되면 자신의 힘을 부려보고 싶고 자신의 힘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그 범위를 가늠해보고 싶은 것이 인간이다. 그 자리에서 내려 온 자신의 뒷모습을 생각하지 못한다. 마사오, 그는 풍문은 많았지만 그래도 정의를 실천한 왕이었다. 강도를 만났거나 다친사람을 보면 병원에도 데려가고 치료를 받게 해주는 선행을 베풀기도 하여 엄청난 병원빚이 있다. 하지만 그의 아우라만 보았던 이들은 마사오란 인물의 힘을 빌어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싶어한다. 자신의 힘의 위용처럼 번듯한 호텔을 짓고 싶어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사오에겐 번듯한 것이 없었다. 그의 이름 하나만으로도 그게 힘이었고 세계였다. 전망대의 망원경처럼 한쪽에만 설치하여 한쪽만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닌, 망원경만이라도 밝고 어두운 세상 모두를 공평하게 설치해주어야 하듯 힘이란 어쩌면 수직이 아닌 수평이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면서 혼자만의 자리가 아닌 함께 누리는 자리여야 함을 말하고 있다. 마사오란 인물이 죽음에 이르고나서야 비로소 그가 재평가되듯 자리에 있을 때 잘해야 하기도 하지만 자리보다는 밑에 있는 것이 더 편안하고 평화이다. 소설을 통해 새삼 현실을 들여다보게 하기도 하고 남성들의 세계를 살짝 엿볼 수도 있었던 작품이며 작가의 다른 소설로 만나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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