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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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그래서 그래. 발을 아주 조금만 잘못 디뎌도 비극적인 결과가 생길 수 있으니까.' 자신의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알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이 그린 밑그림처럼 되어간다면 그 누가 후회를 하고 반성을 하며 살겠는가. 연습이 없는 인생의 무대에서 하루하루가 '전진' 뿐인 삶에서 우린 때론 '만약에 그 시간으로 되돌아 간다면..' '만약에 그 일을 하지 않았다면..' 하며 '만약에..' 를 찾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만약의 시간으로 되돌아 간다고, 시계 바늘을 되돌려 놓는다고 해도 앞으로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문득 <벤저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생각이 나지만 거꾸로 가는 시간이라고 후회가 없지는 않다.언젠가 인간은 실수를 하게 되고 그렇게 하면서 진보하고 그릇이 더 커져 가는 것이지 처음부터 완성된 그릇의 인간이란 없다. 

이 소설은 특이하게 그러니까 죽은이가 엮어가는 소설이다.화자가 죽은 자의 소설로는 <딩씨마을의 꿈> 에서는 이미 죽은 어린아이가 화자였고 <그녀에 대하여>에서도 아직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이십대의 숙녀가 자신이 죽었던 나이의 어린 아이에서 시간이 흐른 후의 시간을 자연스럽게 이해해간다고 해야 하나 그런 기법으로 쓰였는데 이 소설은 그가 왜 죽게 되었는지 아니 그의 인생이 왜 무엇과 함께 꼬여 나가게 되었는지 도입부분에 나타내준다. 이 소설 또한 이미 죽은 자인 혈기왕성한 나이에 미쳐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죽게 된 마커스가 화자이다. 그의 인생은 절묘하게 한반도 전쟁과 함께 엮여 들어가게 되고 그로 인해 그는 한반도에서 꽃처럼 죽어가야만 했다. 그렇다면 그가 왜 역사의 현장에 오게 되었는지 무엇때문에 죽음을 당하게 되었는지 그 속으로 들어가본다.

이 소설을 읽으며 '만약에..' 라는 가장을 참 많이 해 보게 된다. '만약에..' 마커스의 인생에서 만약에 한반도 전쟁도 없었다면 그가 죽었을까.아니 그가 만약에 와인스버그 대학으로 옮기지 않고 그냥 시골 대학에 남아 있었다면 그가 죽게 되었을까. 아니 코틀러와 사귀지만 않았더라면, 채플시간에 지글러에게 대리출석을 하지 않고 그가 꾹 '울분' 을 참고 참석했더라면 그는 죽음에 이르렀을까.그의 가족의 비극은 일어났을까. 인생에 만약이란 단어를 뺀다면 우린 모두 희극속에서 자신이 그리는 그림대로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연습이 없는 삶이기에 길고 짧은 인생에 희극과 비극을 오가며 사는 것 아닐까.길고 짧은 것은 어찌보면 운일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어찌 사람의 맘처럼 의지대로 될 수 있는 문제인가.

원리원칙대로 살아가는 마커스의 아버지, 그는 유대인 대대로 가업처럼 해 온 정육점을 운영한다. 하지만 세상밖은 한참 시끄러워 그의 조카들이 하나 둘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게 되고 혹시나 그도 하나뿐인 자랑거리인 마커스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은 아닌가 하고 늘 노심초사한다. 자신의 곁에서 하기 싫은 닭똥구멍으로 손가락을 집어 넣어 내장을 빼내는 일도 서슴치 않고 잘해내는 아들이 자신의 곁을 떠나면 무언가 일이 벌어질것 같아 안절부절 노심초사하는 그의 아버지는 그를 집안에 가두어 두듯 하려고 한다. 하지만 혈기왕성한 십팔세 청년이 갇혀 지내기엔 세상은 너무 호기심이 많고 그 또한 피가 끓는다. 아버지의 정육점에서 가업을 이어받아 닭내장이 빼내면 살고 싶지는 않다. 아버지의 관심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살고 싶지만 그의 가슴 속에서는 부모님에 대한 생각으로 늘 복잡하다. 아버지 곁에서 함께 일을 하며 돈을 벌던 시간이 무척 행복했던 시간이었음을 그는 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부모님에게도 행복했던 때었음을 안다.하지만 이제 그는 세상밖 소식에 민감하고 그도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 가며 살고 싶지만 자신이 고집하여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기 위하여 집에서 멀리 떨어져 왔기에 부모님을 돕기 위하여 아르바이트를 힘들게 해야 하고 공부 또한 열심히 해야만 한다. 하지만 룸메이트들나 학장은 그런 자신의 맘을 몰라주고 그를 괴롭히듯 한다. 그렇다면 그가 참을 수 없는 '울분' 으로 가슴의 피가 들끓게 된 것은 무엇일까.

'울분' , 먼저 아버지의 관심이다. 너무 지나친 관심은 자식의 길을 다른 길로 가게 만들기도 한다. 그냥 지켜보고만 있으면 바라보고만 있으면 바른길로 잘 갈텐데 너무 관심을 기울이다보니 '울분' 에 삐딱하게 가고 싶어진다. 그게 사람맘인것 같다. 아버지의 관심이 그렇다면 학교에서는 룸메이트들이다. 잠잘 시간도 부족하게 열심히 뛰고 있는데 그런 자신의 잠잘 시간을 빼앗는 룸메이트에게서 벗어나기 위하여 방을 바꾸어 보지만 역시나 그곳에도 자신의 맘과 통하지 않는 사람 뿐이다. 그렇다면 그가 갈 수 있는 곳은 남들이 가지 않는 지저분하고 불편한 혼자쓸 수 있는 방이다.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누구에게 방해받지 않고 그만의 공간에서 그만의 방식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번에는 학생과장이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곱지 않은 시선으로 그의 방바꿈에 대하여 발을 거는 그를 향해 거침없이 구토를 해주는 마커스, 하지만 그것조차 그의 몸이 아픈 상황이었다. 충수제거수술을 하고 그의 음경을 빨아준 손목을 그어 자살 시도를 했던 올리비아를 만남으로 인하여 그는 또다른 세계를 맛보려 하고 있는 순간, 어머니는 이혼을 들먹이며 그의 그런 연애를 막으려 한다. 그렇다면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인생이란 무엇이란 말인가.보잘것 없는 정육점집 아들이지만 그래도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여 전과목 A의 성적에 누구보다 모든 일에 열성적이고 거기에 아르바이트까지 하여 학비보충을 하고 있다면 최고라고 할터인데 그의 생각만큼 세상은 그의 편이 아니다. 조력자가 되지는 못할망정 그의 발목을 자꾸만 거는, 가슴속에서 밀어 올라오는 '울분' 을 참지 못하게 하는 일들이 자꾸만 족쇄처럼 발목을 잡는다. 

'나는 그애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그애가 두려웠다. 나는 아버지만큼이나 나빴다. 내가 바로 아버지였다. 나는 아버지를 뉴저지에 두고 온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불안에 나도 둘러싸이고, 불길한 예감에 나도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오하이오에서 나는 아버지가 된 것이다.' 아버지에게서 벗아나려고 하면 할수록 불안감에 휩싸인 아버지처럼 되어가는 자신을 깨닫게 되는 마커스, 어찌보면 뭉크의 <절규>를 보는 것 같다. 뭉크는 자신의 가족이 한 명씩 죽게 되는 불안에 자신 또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에 늘 시달려 정신질환을 알았다고 하는데 이 소설은 어쩌면 그와 흡사하다. 아니라고 부정하면서 점점 불안에 빠져드는 아버지와 아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의 불안감은 비극을 예고하듯 '모르핀을 맞고' 라며 과거를 회상하면서 소설이 시작된다는 것은 뭔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일을 되집어 보는 것이다. 만약에 그는 어느 한순간, 그의 인생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한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니 어느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의 인생은 바뀌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가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에 그 모든 시간들을 잘 이겨냈다면 그는 학업을 마치고 변호사가 되어 있을 수도 있고 결혼을 하고 잘 살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인생에는 스무살 그 후의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아버지의 불안처럼 아버지 또한 아들의 비극적 죽음으로안해 자신 또한 비극적 최후를 맞게 되고 어머니는 문을 걸어 잠그고 열어주지 않았던 자신의 남편을 이겨내지 못하여 모든 것이 비극적으로 끝났다고 자책하며 살게 된다. 혼자서.그렇다면 그들의 인생에서 무엇이 그토록 꼬이게 만든 것이고 무엇이 그토록 참기 힘든 '울분' 이었을까.

채플시간에 참을 수 없는 중국의 국사를 몇 번씩 반복하여 부르듯이 그가 좀더 한반짝 뒤로 물러나 자신의 삶을 관조하였다면, 정말 가슴에 참을 인을 세번 정도 생각하며 행동하고 말을 했다면 그는 울분을 참지 못하여 짧은 생을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네 삶에 만약에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연습없는 단막극이기에, 어느 순간 삶은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라도 그런 순간은 있다. 그렇다고 모두 '울분' 의 시간을 참고 군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비극적인 삶은 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커스가 울분을 참지 못하고 격한 시간은 바로 '청춘' 의 시간이다 한참 청춘의 피가 끓는 시간이니 무엇인들 참을 수가 있었을까. 격정과 분노속에 자신이 세상의 중심으로 보이는 그런 시간이다. 그 시간을 어떻게 헤쳐나가느냐에 따라 인생이 희극이 될 수도 비극이 될 수도 있다는 선택의 갈릴길을 잘 표현해 냈다. 그 또한 그 시기에 쓴 소설이라니 얼마나 잘 표현해냈겠는가.격정적인 시간을 비극으로 갈무리하여 안타깝지만 청춘의 그 길목을 다시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런것을 보면 참을 인을 세 번은 아니어도 한 번을 새기며 한번 참아보는 것도 어찌보면 삶의 한 방법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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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게 날개 달아주기 - 이외수의 감성산책
이외수 지음, 박경진 그림 / 해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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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만나기전에 먼저 읽은 황경신의 단편소설중에 ’스케이트를 타고 싶은 코끼리 소원들어주기’ 라는 그런 소설이 있었다.작은 동물도 아닌 거대한 코끼리가 다른 것도 아닌 스케이트를 타려면 스케이트장은 얼마나 커야 하고 코끼리에게 맞는 스케이트는 대체 어디에서 구한단 말인가. 하지만 숲 속 동물친구들은 코끼리가 낙심하지 않게 한가지 한가지 방법을 찾아내어 그 소원에 근접해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 스케이트장은 그렇다면 남극 아니면 북극, 거대한 얼음을 힘들여 얼리지 않아도 그 자체가 스케이트장이다. 그리고 거기까지 코끼리와 그외 다른 동물들이 갈 수 있는 것은 뱃길이 제일 편할것이라는...이렇게 한가지씩 의견을 내고 제일 타당성이 있는 것들을 찾아가다보니 정말 코끼리라고 스케이트를 타지 말라는 법이 없다. 하지만 코끼리에게 날개를 달아준다는 것은 어떨까, 가당치 않은 일지만 누군가 내게 날개를 달아주길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그 날개를 찾아 달 방법을 찾아보라는 이야기다.

<아불류 시불류>에서는 그가 트위터에 올린 짧은 글에서 촌철살인을 느낄 수 있었듯이 이 책에도 그의 그런 글들이 나오긴 하지만 ’아불류 시불류’는 좀더 감성적인 이야기였다면 이 책은 제목처럼 좀더 진리적이고 무언가 이성적인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잠언,명언, 그외 깨달음을 주는 이야기들과 함께 그의 허를 찌르는 날카로움이 담긴 글이 담겨 있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듯 장의 마지막에는 그이 감성적인 ’시’ 가 마지막 입가심을 하듯 담겨 있어 한 장을 끝내고 나면 감성충전을 할 수 있으니 다음 장으로 넘어갈때는 다시 이성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고양이그림처럼 제목을 바라보고 있는 고양이의 몸에는 밤하늘의 달과 별이 함께 담겨 있다. 느릿느릿 고양이걸음으로 읽으며 감성충전까지 하라는 그림으로 해석을 해 본다. 너무 빨리 읽다보면 체할것 같아 짧은 글은 한번더 읽어보기도 하면 쉼표를 찍는것처럼 좋다.

’뛰어난 미모는 나이 들면 시들어 버리지만 뛰어난 매력은  나이 들어도 시들지 않습니다. 미모는 외면에서 형성된 것이어서 시간의 제약을 받지만 매력은 내면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매력은 어떤 경우에도 성형불가입니다.’ 

당신은 외면의 미로를 가꾸고 있나요 아님 성형이 자유자재로 마음대로 되는 내면의 매력을 가꾸고 있나요.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멀리 볼 것도 없이 가까이 있는 친구들만 봐도 외면에 치중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내면에 치중하는 향기나는 친구가 있다. 외면에 치중하는 친구는 늘 힘들다. 나보다 더 잘나고 더 많이 가진 사람을 따라가기 위하여 늘 허덕인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보지 못하여 자신은 늘 가난하고 못생기고 부족한듯 하여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 하지만 내면을 가꾸는 친구들은 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난다. 비록 많이 가지지 못했어도 아무도 훔쳐가지 않는 내면이 가득차 있기에 늘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며 어디에서도 자신으로 우뚝 설 수 있다. 그에겐 삶이란 희망이고 날마다 새로운 일상이다. 타인이 도둑질해가지 못하는 내면이 가득차 있어 퍼내고 퍼내며 다른 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기도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무슨 치기 정도로 본다. 하지만 그 사람은 정말 삶이 희망이다. 스스로 자신에게 날개를 달았기 때문이다. 남이 자신에게 날개를 달아줄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날개를 다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내면이 아닌 ’외모지상주의’ 를 만들어가서인지 그런 사람들의 날개를 타의에 의해 부러뜨리고 있다. 그럴때 꼭 필요한 말들이 담겨져 있다. 무언가 쉼표와 같은 여유와 깨우침 진리와 번득이는 재치가 필요할 때 한꼭지씩 챙겨 읽어본다면 삶의 지침서가 될 그런 글들이 담겨져 있어 윤활유가 될 수 있다.

’보편적 슬픔’ 이란 이야기도 익기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지난 겨울엔 그런 ’보편적 슬픔’ 의 일을 당했다. 남에게 일어난 일은 그리 슬퍼보이지 않지만 내가 당하면 슬픔은 정말 크다. 나와 너의 차이에서 그렇게 슬픔도 기쁨도 차이가 나는 것이다. ’슬픔이 없는 집에서 겨자씨를 구해오거라’ 한다면 정말 슬픔이 없는 집이 있을까.전국을 돌아도 아니 세계를 돌아도 과연 슬픔이 없고 그런 곡절 한가지 없는 집이 존재는 할까.아무리 날마다 웃는 삐에로에게도 말 못할 슬픔이 있고 고민이 있는 것이다. 그가 날마다 웃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그에게 기쁨만 있으란 법은 없듯이 슬픔 한꼭지 간직하지 않고 살아가기란 힘든 것이다. ’ 슬픔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을’ 당연한 것이다. 슬픔도 기쁨도 누구에게나 있는데 그것이 ’나’ 냐 아님 ’너’ 인가 하는데도 그 크기가 다를 뿐이다. 그것을 보편적으로 받아 들이라는 이야기 친정아버지를 보내 드리고 깊게 느꼈다. 아버지를 보내 드리기 전에는 그런 슬픔이 닥쳐 온다면 어떻게 해야할지 아님 그런 슬픔이 내게도 올까 라고 막연하게 생각을 했는데 내게 닥치니 정말 하늘이 무너진듯한 너무 큰 슬픔이란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도 또한 지나고 나면 망각의 동물이라 서서히 빛이 바래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다른 이가 그와 같은 슬픔을 당하면 슬픔을 더 깊게 나눌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 뿐이다. 

그의 글들에게는 경험이 담겨 있어 더 마음이 간다. ' 진실로 글을 쓰고 싶다면 놀부처럼 살지 말고 흥부처럼 살아라. 다리가 부러진 제비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껴라. 글을 쓰는 일이 도를 닦는 일과 무엇이 다르랴. 내 마음 밖에 있는 것들을 모두 내 마음 안으로 불러들여 같이 슬퍼하고 같이 기뻐하라.' 글을 쓴다는 것은 어느 순간에는 술술 실타래가 풀리듯 잘 풀리는 날이 있는가 하면 엉킨 실타래처럼 절대로 풀리지 않을 것처럼 잘 안되는 날이 있다. 그런 속을 들여다 보면 그 글에 내가 얼마나 공감하고 있는가에 따라 느낌에서 오는 차이가 그렇게 크게 나타난다는 것을 느낄때가 있는데 같이 슬퍼하고 같이 기뻐한 작품은 좀더 쉽게 풀어 쓸 수 있었는데 읽으면서 겉돌기를 한 책들은 리뷰를 쓸때도 무척이나 힘들었던 것을 느낀다. 억지로 날개를 달아보려 했다가는 큰 탈만 나게 된다.그럴때는 과감하게 안되면 안되는 방향으로 그냥 밀고 나가는 것이다.'아이야 뽑지 않아도 된다/ 내 인생도 때로는/ 눈물이었노라고/ 반짝이며 자라나는/ 은빛 실뿌리//' - 새치의 시 전문이다. 그냥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는 것이 어찌보면 제일 편할때가 있다. 일부러 물길을 만들기 보다는 물이 흘러가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순리이고 스스로 길을 찾는 방법이 될 때가 있다. 한페이지 한페이지 읽어나갈수록 공감하는 부분들이 많다. 한꺼번에 몽땅 털어 넣어 버리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있다. 지치고 내 실타래가 엉켰다고 생각될때 꺼내어 어느 페이지를 펴고 읽어도 마음의 매듭을 풀 수 있는 글들이 있어 좋다.

얼마전에 읽은 <기계공 시모다> 라는 책에 보면 시모다가 읽었다는 '메시아 핸드북'이라는 책이 소설속에 나온다. 그 책에는 짧은 글들이 있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펼쳐진 부분을 읽다보면 스스로 메시아에 이를 수 있는 '메시아 핸드북' 그 책은 다름아닌 <갈매기의 꿈>으로 유명했던 리터드 바크의 소설이다. 이 책은 그 책을 읽는 느낌이다. 어느 페이지를 펼치고 읽어도 길을 찾을 수 있다. 지금 당장 내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서두를 필요는 없다. 내가 길을 정하기 전에는 모든 곳이 길이었다는 말처럼 길이라고 정의해 놓기 전에는 어디에나 길이 있었다. 보다 나은 지름길을 찾다보니 시행착오도 거치고 코끼리에게 꼭 필요한 코가 아닌 날개를 찾고 있지만 한박자 물러서서 있다보면 길이 보이고 길은 내 앞에 있다. 잠시 바라보지 못하고 찾지 못했을 뿐이지 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 잠깐의 여유를 찾아 주는 책이다. 맘에 드는 부분들은 윗부분을 살짝 접어 놓고 다음에 다시 펼쳐볼때 기억하기 좋게 해 놓는데 이 책에도 접어 놓은 부분들이 정말 많다. 그만큼 공감하는 부분들이 많다. 그의 글에서 좋은 부분들도 많지만 동서고금의 이야기만 따로 보아도 좋은 이야들이 많다. 알고 있었지만 다시 읽어본다고 내 날개의 깃털에 흠이 되지 않는다. 더욱 빛나고 화려하게 펼치고 비상할 수 있게 만들지 결코 방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들은 읽는 것만으로도 숲 속을 천천히 걸어 피톤치드로 맑고 깨끗하게 샤워한 기분이 들게 한다. 그 감성충전을 봄이 되기 전에 한번 해보면 어떨지,코끼리가 아닌 내게 날개가 돋아 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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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페이터 - The Counterfe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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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속여도 양심을 속일 수 없었던,카운터페이터 2007



감독/ 스테판 루조비츠키
출연/ 카알 마르코빅스, 오거스트 디엘...

세상은 속여도 자신들의 양심은 속일 수 없었던 사람들, 그들의 양면을 보다

<타인의 삶>이란 영화를 정말 재밌고 감동적이게 보았는데 그 제작진들이 다시 한번 뭉친 영화라고 한다. 2008년 아카데이상 외국어 영화상 수상작인 이 영화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위조지폐 작전,베른하트 작전을 그리고 있는 영화다.실제사건을 영화화 해서인지 감동적이다. 독일에서 위조지폐의 제왕으로 불리던 살로몬 소로비치는 화려한 생활을 하다가 경찰에 붙들렸다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로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그가 지금까지 누렸던 생활과는 너무도 다른 바닥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런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뭔가 해야 했던 그는 나치 친위대 간부들의 눈에 띄어 친위대 간부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다가 더 나은 곳으로 가게 된다. 그와 함게 인쇄공이며 몇 몇 뽑힌 사람들이 가야했던 곳은 ’위조지폐’ 를 만드는 곳.

그들은 살아남기 위하여 ’파운드’ 를 만들어 내야만 했다. 인쇄공이며 전직 은행직원등,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명’ 을 담보로 나치의 줄에 매달려 목숨을 구걸하듯 하며 위조지폐를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살로몬은 남들과는 다른 천부적인 위조지폐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의 손에서는 영국지폐를 만들어내야만 하는데 일을 하기 위하여 모인 사람들의 양심은 이를 받아 들일 수 없지만 살로몬은 살기 위해서는 해야만 한다고 한다. 삶이나 무엇인가. 가스실에서 죽느니 위조지폐라도 만드려 남들보다 배불리 먹고 편하게 생활하며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총구앞에 서는 날까지 목숨을 부지 하기 위해선 선택이 길이 없다. 그들의 명령에 따를뿐.

우여곡절끝에 드디어 찍어 낸 파운드, 위조지폐를 가지고 당당하게 은행에 가서 위조지폐인지 물어보지만 ’위조지폐가 확실히 아니다’ 라는 진짜라는 판명이 난다. 이런일이 있을수가 있을까. 그들의 목숨은 이제 유호기간이 정해진 것이다. 그렇게 영국지폐를 만들어 내고 좀더 편한 생활을 누리게 된다. 좋은 음악에 수용소안에 탁구대까지 남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생활을 보장받으며 파운드에서 이제 달러를 만들어 내야만 했던 살마들, 하지만 전직 인쇄공은 그를 받아 들일 수가 없다. 자신의 양심을 속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살로몬과 그외 사람들과 인쇄공은 대립을 하게 되고 친위대 간부는 점점 그들의 목을 조여온다. 

위조달러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시간을 보내던 중 전쟁은 그야말로 판도가 바뀌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취해야 하는 태도는... 날마다 목숨을 노리고 있는 총구앞에서 단일분 일초도 편하게 숨을 쉴 수 없었던 사람들과 달리 음악은 너무도 아름다운 곡들이 흐른다. 그런 음악과 그들의 생활이 대조를 이루며 그들의 생명은 점점 풍전등화가 되어 가고 살로몬은 그가 살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날카로운 그의 얼굴과 눈빛이 더욱 영화의 맛을 살려 준 듯한 영화이며 음악과 달리 위태위태하던 그들의 하루하루, 전쟁은 바야흐로 끝나게 되고 나치도 어디론가 흩어지고 아무도 없는 수용소에 갑자기 들이닥친 이들, 다른 곳에 수용되었던 사람들에 눈에 비친 부르조아적인 위조지폐팀은 그야말로 다시 목숨이 위태롭게 되고 자신들 또한 같은 수용소인들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는 했지만 결코 양심적이지 않은 끝. 전쟁은 끝나고 많은 위조지폐로 도박과 화려한 삶을 살고 있는 살로몬, 하지만 그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바닷가에 앉아 있는 그의 뒷모습은 다른 누구의 모습보다도 쓸쓸하다. 그에게 삶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타인의 삶>이란 영화에서는 타인의 삶을 엿보면서 비로소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찾게 되었다면 이 영화는 누구보다도 화려한 삶을 사는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큰 아픔과 쓸쓸함이 있다는, 그것이 무엇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음악이 대조를 이루며 보여준다. 남들이 보면 정말 행복하고 돈이 많아 행복할듯 한데,현대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돈이 많은 남자, 하지만 그에게 돈이란 땀을 흘려 노력하여 얻는 것이 아닌 ’만들어 내는 것’ 이다. 없으면 만들어 내면 된다. 그렇다면 그에게 삶이나 그외 행복이나 모든 것들이 돈으로 얻을 수 있을까.아무리 많은 돈이 있어도 돈으로 얻을 수 없는 것에 쓸쓸해 하는 남자, 전쟁이 끝나고 세상은 변했다고 하지만 그의 삶은 더욱 가난하고 보잘것 없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 남았지만 그 삶은 그에게 삶은 결코 값지지 않다.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것인가. 그가 찍어내는,만들어 내는 위조지폐처럼 모든 것을 그의 맘대로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삶은 변할까. 한남자의 쓸쓸한 삶을 통해 돈의 의미를 한번 다시 되새겨 볼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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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러브 - G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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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소리없는 아우성을 보고 싶은가. 그 속에 사랑과 감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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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속에 숨은 ’사랑’을 보다,글러브 2011
 



 감독/ 강우석
출연/ 정재영(김상남), 유선(나주원), 강신일(교감선생님), ...

청각장애를 가졌다고 야구를 못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라, 그들이 주는 감동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야구배트를 운동장에서 휘둘러야 하는데 술을 먹고 휘둘렀다면, 그런 일을 저지르고 지금 파출소에 가 있는 야구선수가 있다. 그는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닌듯 하다. 그것도 전혀 반성의 자세가 없다는 것. 그와 함께 야구를 한 친구인 매니저인 철수는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해결하려고 애를 써 보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만든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딘가 좌천하듯 내려가서 반성의 자세를 취하고 있어야만 겨우 여기저기 눈치를 볼 수 있는데 그렇게 그들에게 온 자리는 충주성심학교인 청각장애자 야구부의 코치로 내려가는 것이다. 잘나가던 김상남선수, 그 일을 달갑게 받아 들이기엔 아직 그릇이 작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얼마간 구겨져 있어야 하는데... 하지만 청각장애야구부는 지금 절박한 상황이다. 그들에겐 전국대회에서 꼭 1승을 거두고 싶은데 자신들을 이끌어준 사람이 없다. 그런 사람이 필요한데 거기에 김상남 선수가 내려온 것이다.그들에게는 행운이지만 그도 그럴까.

청각장애아들이 모인 야구부,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불쌍하다고 본다. 그리고 그들을 정식으로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기에 아직 실력은 그리 좋지 못하지만 그래도 야구에 대한 생각만큼은 남들 못지 않다. 그리고 한사람, 후천적 청각장애를 가지게 된 전국중학야구 최고 유망주였던 차명재라는 친구는 후천적 장애를 가져서 겉돌고 있는데 그러다 아이들과 마찰을 빗게 되고 처음 부임한 김상남과 파출소에서 만나게 되고 그의 유명세로 잘 빠져 나오게 되었지만 그는 야구부에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다 예선전을 치루듯 나간 경기에서 야구부의 투수가 다치게 되고 그는 야구부를 나가게 되어 명재에게 투수가 되어 달라고 한다. 명재는 그들의 경기를 몰래 바라보다가 야구부에 들어오게 되고 혼자의 실력으로도 야구를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가기도 있다. 그 생각을 여지없이 뒤집어 주는 김코치, 야구부와 그외 사람들과 삐걱거리면서 그곳에서 뭔가 다른 감동을 찾아내고 자신이 고교시절 그렇게 좋아하던 야구를 다시금 보게 되는 김코치.

한편 매니저 철수는 그의 구원을 위해 여기저기 뛰어 다니다 물의를 일으키게 되고 그가 다시 복귀한다는 것은 이제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김코치와 어긋나면서도 그가 하는 일에 더욱 빠져 들어가는 야구부아이들과 교감선생님 그리고 나선생님은 그가 하는 방법이 아이들을 다치게 할 수 있다고도 생각을 하게 되지만 그가 하는 방법에 점점 적응을 해 가고 학교 또한 야구부로 인하여 활기를 되찾고 아이들도 활기를 찾게 된다. 그렇다면 야구부를 전국대회에도 나가게 하고 야구부를 그대로 두어야만 할까.어른들은 어른들의 잣대로 아이들의 의지가 아닌 자신들의 관념에 아이들을 의지를 결정지으려 한다. 어른들의 생각이 옳을까.야구를 원하는 아이들의 생각이 옳을까. 또한 김코치는 계속 이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을까.

생각도 할 수 없는 점수로 예선전을 치루었던 충주성심학교 야구부는 전국대회에서 예선전에서 맞붙었던 군산상고와 붙어 재경기를 하게된다. 하지만 예전의 그들이 아니다. 김코치와 함께 그의 눈빛과 격한 언어에 단련되고 그와 함께 힘든 체력단련을 이겨낸 아이들이다. 자신들이 비록 남들보다 뒤쳐지기는 해도 자신들도 야구를 할 수 있다.GLOVE속에 숨은 LOVE를 보여주었던 김코치와 함께 그들은 하나가 될 수 있다. 아니 하나가 되어 왔다. 비록 그들에겐 ’소리’ 는 없지만 그들은 가슴으로 느끼고 가슴으로 말을 할 수 있고 전할 수 있다. 모든 일들의 생각을 뒤엎듯 충주성심학교 야구부는 정말 눈부신 발전을 하여 놀라운 경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마지막 포수와 투수의 작은 실수로 인해 연장전 지고 만다. 너무 서럽게 가슴으로 우는 아이들, 하지만 우린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비장애인보다 더한 감동과 그들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 아이들의 감동은 가슴을 모든이의 가슴을 울린다.

성심학교 야구부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었던 김상남, 그는 예전과는 다른 무언가를 얻게 되고 깊은 울림을 받아 이젠 낮은 자세로 무엇이든 받아 들일 자세가 되었다. 2군이라도 오케이라는 그의 말처럼 그는 이젠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감동도 있고 유머도 있고 정말 꼭 봐야 할 휴먼영화라 딸들에게도 보여줘야겠다. 사람이란 언제나 정상의 자리에 있으란 법은 없다. 정상에 올라갔으면 내려오는 날도 있는 것이다. 그것을 담담히 받아 들일줄도 알아야 하는데 언제나 정상에 있는것처럼 고자세를 취하다 보면 자신에게 마이너스가 난다. 그런 자신의 내리막길을 믿지 못하고 아무곳에서나 방망이를 휘둘렀던 예전의 김상남은 이제 잊어라. 그는 청각장애야구부를 통하여 새로운 야구를 보게 되었고 그들에게는 희망을 심어준 사람이 되었다.비록 그들이 사회에서 받아줄 실업팀은 없을지라도 그들에게는 지금 야구는 인생의 전부이고 자신감이다. 그리고 이곳에 내려올때는 여자도 가리는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겉모습이 아닌 내면을 볼 줄 알게 된 것이다. 겉모습에 현혹되고 자신의 내리막길을 믿지 못하던 그였지만 이젠 완전히 작은것도 감사히 받아 들이며 자신에게 맞출 자세가 된 김상남, 그에게 성심야구부란 인생의 터닝포인트 같은 것이었다. 

정재영의 카리스마 있는 연기가 있다면 그들과 함께 해 준 야구부의 감동어린 연기가 있었고 그외 감초처럼 작은 감동을 옆에서 도와준 조력자인 나선생님과 교감선생님 그리고 원장수녀님외 아이들이 있어 더욱 잔잔하면서도 큰 파문을 이는 감동을 던져 줄 수 있었던 영화다. 갑자기 유치환의 시 '깃발' 중에 '그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이라는 글귀가 생각나는 영화다. 그들은 정말 소리없는 감동의 아우성을 내고 있다. 모두가 자신들을 부족한 청각장애인으로 보지만 그런 고정관념을 깨뜨려주는 야구부, 그런 야구부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심어 준 김상남선수의 멋진 콤비플레이가 빚어낸 감동의 하모니이다. 감독의 말처럼 ' 영화 <글러브>는 나에게도 또 다른 도전이어다. 내가 만든 어떤 영화보다 큰 울림을 전할 영화가 될 것이다.' 그렇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가슴에 울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감동으로 '쿵쾅쿵쾅' 울부짖는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 영화관 문을 나설때는 모두가 미소를 지으며 눈이 벌겋게 충혈이 되어 있다.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우리에게 큰 감동의 울림을 준 성심학교 야구부, 그들에게 누가 장애인이라고 비웃을 것인가. 나선생의 '우리 애들 실력 한번 보실래요?' 처럼 제대로 성심야구부의 실력을 보여준 영화다. 그만큼 자신있게 말해서일까 모두를 울리 수 있다는 말에 울지 않으려다 눈물을 자꾸 훔치고 말았다. 이끼에서 강한 카리스마를 보여 주었던 정재영은 또다시 <글러브>에서 진한 감동으로 2011년을 흔들어 놓은 듯 하다. 모두가 함께 흔들었지만 말이다. 그들이 서로를 향하여 '쾅쾅' 하며 두드렸던 가슴이 내게도 울려온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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