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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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는 가둠으로써 제일 큰 것을 얻은 거예요. .. 세상의 작은 것들을 버리고 제일 큰 것을 얻었으니 더 바랄 게 없지요. 처음 불란서에 와서 이 수도원 저 수도원을 다녀보다가 이곳에 오게 됐어요... 제가 소개를 받아 이곳에 도착하지 전날 한 수녀님이 돌아겼는가 봐요. 장례미사를 드리는데 참석했다가 돌아가신 그 분의 얼굴을 뵙게 되었죠. 관 속에 들어가 계신 그 늙은 수녀님의 얼굴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바로 원장수녀님께 면회를 신청했어요. 그러고는 말씀 드렸죠. 제발 여기서 죽게 해주세요.. 그때 원장수녀님이 웃으시며 말씀하셨어요. 그래요 좋아요. 하지만 지금 당장 죽는 건 안 돼요.' 이 부분을 읽으며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지난 달에 소풍을 떠나신 아버지가 생각나 한참을 울었다. 편않게 주무시듯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이 글과 오버랩 되어 책을 덮고 한참을 울었다. 창살로 막힌 곳에서 갇혀 지내면서도 아이처럼 행복한 미소를 짓는 노수녀님들의 얼굴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었던 아르정탱 수녀원 이야기는 여고시절 기억도 떠오르게 했다.

꿈 많은 여고시절, 내가 다니던 학교는 천주교학교였다. 원장수녀님이 연세가 있으신데 정말 꽃처럼 고아서 모두의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종교담당을 하는 도서관 수녀님은 얼마나 해박하신지 걸어다니는 '백과사전' 이었고 미술수녀님은 또 얼마나 유머있고 재밌으셨는지 모른다. 내가 알던 종교와 수녀님에 대한 생각은 그 시절에 모두 바뀌고 말았다. 그렇다고 내가 천주교 신자도 아니었고 종교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종교를 부정하지도 않았고 수녀님이라는 거리감 보다는 그들도 '여자이고 인간' 으로 보게 되었다. 그시절에 수녀님들을 통해 갇힌 생활에 대하여 남들보다 좀더 많이 듣게 되고 '믿음' 에 대하여 다른 눈을 가지게 된 듯 하다. 좀더 폭 넓게 모든 것을 아우르게 된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수도원 기행' 은 좀더 그 시절을 떠오르게 하여 잔잔한 감동으로 읽게 되었다.
유럽의 수도원은 중세 건물들로 그림과 같기도 하고 무척 아름다웠다. 그렇다고 그속에 갇혀 있다고 하여 결코 그들이 불행한 삶은 사는 것은 아니기에, 그들이 선택한 오롯한 삶을 살고 있기에 더 경건하게 읽을 수 있었다.

수도원이나 성당을 가면 괜히 경건해지고 숙연해진다. 여고시절에도 종교시간에 성당에 가면 죄를 짓지 않았는데 괜히 무겁게 무언가 고해성사를 해야 할것만 같은 불안함이 엄습해 오기도 했다. 그곳이 다른 곳이 아닌 신을 모시고 신앙생활을 하는 곳이라 좀더 다르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런 곳을 여행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을 비우고 다른 모습의 자신으로 채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자신안에 채증처럼 쌓여 있던 것들을 18년 만에 놓아 버리듯 하면서 새로운 자신으로 채워 나가는 모습이 잔잔하니 '나도 그런 여행 하고 싶다' 라는 여운을 남겨 주었다. 세상과는 어느정도 거리가 있는 곳이라 더 들여다 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자신 안에 발견되지 않은 믿음을 발견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본게 한다.

여행은 어쩌면 '다른 사람과의 만남' 이다. 익숙한 것을 떠나서 낯선 것과의 만남이 여행이라지만 익숙한 사람들을 떠나 낯선 사람에게서 새로운 '따듯함' 을 얻을 수 있는, 얻고 오는 것이 여행이 아닌가 한다. 수도원 기행이지만 수도원에 있는 그와 관계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새로운 삶을 통해 나 자신의 현재를 다시 들여다 볼 수 있음이 아니었나 한다. 여행에 많은 도움을 주신분들, 생각지도 못했던 아님 그에게 가졌던 고정관념이 여행으로 인해 무너져 내리고 새로운 인물을 담을 수 있음도 여행인듯 하다. 한 분 한 분 수도원에서 만난 분들은 비록 갇힌 인생을 선택했지만 자신들의 '최고의 안식처' 를 찾은 듯 행복해 보였다. 욕심을 부리며 현대 문명속에서 산다고 모두가 행복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자신을 비우며 자신을 낮출때 비로소 여유의 미소를 지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꽃은 곧 시들어 버릴 것이라 언제나 마음속에서 아름답고 사람은 짧게 스쳐갈수록 오래도록 기억이 나는 것인지... 아름다운 풍경과 거기서 만난 사람들 때문에 다시 꼭 찾아가고 싶은 곳, 프리부... 그러고 보니 이제껏 세 번의 유럽 여행이 헛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을 여행하면서 나는 한 번도 '사람들' 을 만난 일이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본 것은 사람 없는 풍경과 역무원들과 장사꾼들뿐, 사람은 없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비로소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진정한 이야기에 귀 기울였기에 그 속에서 '나' 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중세의 아름답거나 고풍스러운 수도원과 진솔한 수도자들의 이야기가 있었기에 그리고 자신의 속내를 숨김없이 글 속에 담아 냈기에 그녀와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다친 달팽이를 도와주지 말고 그냥 놔두라는 말처럼 타인에 의해서가 아닌 자신 스스로 단단해 지고 있는 노수녀님들이 이야기는 뭉클하면서도 처연해진다.하지만 그 길이 다른 길이 아닌 '믿음' 을 향한 길이기에 아름다워 보인다. 그들을 통해 자신과 타협하듯 하는 작가, 어쩌면 독자에게도 자신을 좀더 비울 기회를 주는 여행서인지도 모른다. 갑자기 이 책을 읽으면서 여고시절 친구들과 수녀님들과 함께 했던 그 성당에 가고 싶어졌다. 추억은 빛 바래서 가물가물 하지만 그 곳에 가서 앉아 있으면 지난날의 내 자신과 조우할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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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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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작가는 내게는 처음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구매해 놓고 읽지 않아 뒤로 쳐져 있어 잊기전에 읽어야지 해야한 것이 벌써 한 해가 다 가고 있다.그러다 만나게 된 그의 단편소설집 <더블>은 '동전의 양면을 보듯 작가의 깊은 속 헤엄쳐가기' 라고 해야 하나 좀더 작가의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작품인듯 하다. 단편소설은 장편과는 다르게 그 작가의 글쓰기 저력을 볼 수 있어 에세이와 더불어 많이 읽어보려고 노력한다. 장편보다 어찌보면 글쓰기 저력 뿐만이 아니라 그 속내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어 좋다. 그런면에서 그를 장편이 아닌 단편으로 먼저 만난 것을 어쩌면 행운이라 여긴다.

더블 A에서 처음 만난 <근처>는 40세 말기암 환자가 고향으로 내려가 자신의 지난날과 그리고 친구들과 마주치면서 자신은 삶이 혹은 생이 절박한데 비해 친구들은 그의 생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고 남에겐 자신의 삶이 다르게 이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내가 어려움에 처한것을 남에게 말하지 않으면 타인은 내 어려움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현대인의 삶은 성냥갑처럼 네모로 나뉘어진 아파트의 현관문만 닫으면 타인과 단절이다. 그런 삶에서 자신이 비로소 절실할때만 타인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있다. 어린시절 동심을 간직한 삶도 세월의 때가 묻어가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현재의 모습에서 어린시절의 그사람을 읽는 다는 것은 어렵다. 타임머신을 타고 들어가면 겨우 때묻지 않은 자신들을 발견할 수 있지만 결국 삶은 홀로 가는 길이다. '누군가 무단횡단을 하고, 멈칫 중앙선에 서 있던 낯선 얼굴이 다가왔다 사라진다. 나도 사라진다, 사라질 것이다.정말 다 온 것인가. 나는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정말 다 왔다니까, 아직 모북의 푯말을 보지도 못했는데 아픈 육신이 서둘러 대꾸를 한다.달그락, 흔들리는 상자 속에서 30년 전의 소년 하나가 소릴 죽여 울고 있다. 나를 넣어둔 것은 누구였을까. 나를 꺼내려는 것은 또 누구일까. 나는 왜 이곳에 무단으로 놓여 있었던가. 스스럼없이, 하여 스스럼없이.' 결국 죽음앞에서 모든 것을 체념하듯 '<나>의 근처를 배회할 인간일 뿐이다.' 라는 말처럼 자신의 근처만 서성이다 갈 인생인데 우린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지. 아픈 자신을 위하여 병간호를 하듯 정성을 다 하듯 아이들마져 떼어 놓고 왔던 순임이마져 '나 돈 좀 빌려줘' 자신이 살길을 헤쳐나가기 위하여 죽어가는 자신을 발판으로 삼는 현실, 인생의 깊은 속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언저리만 배회하다 가는 삶은 아닌지.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에서는 읽고 한참 머물러 생각하게 한다. 과연 삶은, 인생은 어떤것일까? 어떻게 나 잘살고 있나요? 누군가에게 물어야 될 것만 같다. 더블B의 <낮잠> 또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자신의 아내에게 많은 것을 해주지 못했는데 그가 먼저 가고 자신은 열심히 살았다고 했는데 자식들은 자신의 모든것을 갉아 먹고 또 다른 객체로 나오는 우렁이처럼 자신이 모든것을 다 파먹으려 한다. 자기가 가진 재산을 모두 처분하여 요양원에 갈 돈만 남겨 놓고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고 요양원에 들어간 남자, 그곳에서 첫사랑 여인을 만난다. 그시절에 그녀는 문학소녀이었고 모두가 그녀를 갈망했다. 하지만 그녀의 지금 모습은 치매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초라한 모습이다. 그 모습에서 오래전 소녀시절의 그녀를 연상한다는 것은 그가 가진 추억뿐이다. 그 요양원에서 만날 줄도 몰랐지만 그녀가 행복한 삶이 아닌 질곡의 삶을 살아 왔음을 알고는 연민의 마음을 가지는 그, 그리고 그녀를 사모했던 동창생이 또 한 명 있다. 그와 라이벌이 되어 그녀를 놓고 쟁탈전을 벌이듯 하여 그에게는 친구가 아닌 웬수가 될 판에 그가 그만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고 만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뜻하지 않게 다른 길을 걸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타난 그녀의 아들이 쏟아 내는 비루한 삶, 그는 그녀와 결혼을 하기로 결심하고 그녀를 아들에게서 인수인계를 받는 것처럼 혼인신고를 한다. 먼저 간 아내에게 못한 것들을 이제 잘 해보려는, 하지만 그들에게 내일은 없다. 언제 어떤 삶이 그들에게 닥칠지 모른다. 인생은 어쩌면 낮잠 한 번 잘못 자고 일어나면 변하듯 할 수 있다. 아님 자신의 간절하게 원하던 것을 가졌을때 자신도 모르게 비로소 낮잠에, 단잠에 빠질 수도 있다. 

인생이 무언지 생각해 보게 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이런 단편도 좋았지만 단편집엔 SF도 있다. 다양한 장르의 단편들이 하나의 이야기를 읽고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마구마구 부딪혀 오는 눈보라처럼 달려온다. 그의 소설들에서는 다양한 욕들도 참 많이 나온다. 리얼하다. 한국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망설임없이 쏟아내는 욕들이 '통쾌한 배설' 처럼 속 시원하게 변기물을 내리듯 흘러 내려간다. 그렇다고 깊이가 없는 것이 아니다. <누런 강 배 한 척>에서는 노년의 삶이 또한 깊게 생각하게 만든다. '화단에선가, 가로수에선가 꽃잎 몇 장 떨어진다, 떨어졌다. 왜 인생에선 낙법이 통하지 않는 것인가.' 한때 잘나가던 선배, 하지만 그는 밀려나고 사회에서는 그야말로 바닥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그에게 가시오가피를 팔러 왔지만 그 또한 여의치 않으면서 선배가 안되 보여서 할 수 없이 자신이 생활비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는 줄 알면서 가시오가피를 받아 들고 오지만 치매에 걸린 아내를 낮시간 돌보아준 맘도 없는 며느리에게 던지듯 주고 만다. 그리곤 자신의 알맹이를 빼먹으려는 딸에게 자신의 전재산을 정리하여 주듯 하고는 그들은 동반자살을 하려고 결심하고는 떠난다. '아내의 손을 잡고 백화점을 찾은 것은 처음이었다. 무작정 아내는 기뻐했고, 분별없이 일곱 벌의 옷을 닥치는 대로 골랐다. 모두가, 강렬한 원색의 옷이었다. 피처럼 빨간 원피스가 있었는데, 예전의 아내라면 공짜로 줘도 입지 못할 옷이었다. 그 옷을 입고, 아내는 소녀처럼 기뻐했다. 소년처럼, 나는 눈물이 나왔다.' 인생은 정말 무얼까? 자식을 위해 마지막까지 속을 다 파내어 주고는 빈껍데기로 돌아서 죽음을 준비하면서 비로소 치매에 걸려 아무것도 자각할 수 없는 아내가 눈에 들어오고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보는 남자의 눈에 어린 눈물, 하지만 꽃이 지고 있다. 

그의 소설들을 읽다보니 어쩌면 그의 소설의 그 깊은 속은 '소통' 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자식과 소통을 하지 못하거나 혹은 아내와 소통을 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과거와 소통을 못하거나 혹은 친구와 사회와 소통을 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이 모두 담겨 있다. 그들이 만약에 소통을 했다면 삶은 인생은 어떻게 변하였을까. <굿바이,제플린> 에서 처럼 우린 에드벌룬과 같은 '공기 비행기' 와 같은 큰 꿈을 간직하고 있지만 그 것은 한낱 허상일 수도 있다. 늘 쳐다만 보고 달려 간다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가 결혼을 결심한 미려에게 단한마디 언질이라도 주었더라면 아님 자신의 가슴에만 품고 있지 말고 그녀와 '소통' 이 되었다면 총에 맞고 땅에 떨어진 공기가 빠진 비행기처럼 되진 않을 것이다. 자신의 꿈을 쫓아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가기 보다는 가끔 앉아서 다리쉼을 하듯 '인생' 을 들여다 보는 눈을 가지라는 것처럼 무언가와의 '소통' 을 말해준다. 책 표지처럼 가면을 벗고 가면 속에 숨어 있는 자신과 만나듯 소통을 한다면 현재의 오늘은 어떻게 달라질까. 그 오늘과 만나는 연습을 할 수 있는 '더블' 의 단편들은 한번에 모두를 읽고 덮었지만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 편씩 다시 꺼내어 읽어 보고 싶은 소설들이다. 추억의 서랍을 열고 한개씩 추억의 물건들의 그 속을 들여다보듯 단편들의 속을 다시금 되새김질 하고 싶은 소설들이다. 이 단편집을 계기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프로필의 이상스런 모습으로 그가 내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 하다. '소설 어떠셨어요.' 하면서 말이다. 한사람의 인생을 한마디로 정의 하기도 어렵지만 지구의 미래를 정의하기도 어렵듯이 여기저기서 서로 다른 언어로 쌓아 올리는 바벨탑과 같은 그의 울림은 잠시, 나의 오늘을 들여다보게 한다. '오늘은 내일이 남아 있는 유일한 오늘이군요. 이제 곧 모든 어제도 사라지겠죠.' 라면서 말이다.소통을 하지 못하고 막혀 있는 누군에게 비타민처럼 지금 바로 상처 치료가 되는 '치유제' 와 같은 기회를 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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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이 꽁꽁 고드름이 꽁꽁




 



어제 그렇게 줄기차게 내리던 눈은
간밤에 다 내렸는지 말끔한 하늘이다.
눈이 내려서일까 하늘이 무척이나 맑고 깨끗하다.

어제 저녁 회식이 있어 늦는 옆지기가 걱정이 되어
먼 거리인데 집에 걸어 오고 있다 하여 계속 전화하게 되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눈이 무척 많이 내리고 있었다.

아침이 걱정되어 창밖을 보니 다행이다 싶은 햇빛,
그래도 세상은 하얀 눈에 덮여 있는 것이 겨울다운 겨울임을 말해주고
베란다 난간에는 고드름이 달렸다.
문을 열려고 방충망을 열으려 하니 얼어서 열지지 않는다.
겨우 하나 간신히 열어 고드름을 찍고 눈의 세상을 둘러 보는데 춥다.
집 안에서도 이렇게 추워 달달인데 밖에서 일하는 옆지기는...
집안에서도 춥다고 꽁꽁 싸매고 있는데 미안함이...

어제는 여름에 받은 건강검진 결과표를 가지고 
병원에 가서 약을 받을까 했는데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포기,
바로 집앞인데도 나가기 싫어 패스 해 버렸는데
오늘, 창문을 열고 밖의 추운 기운을 감지하고 나니
또 나기기 싫어졌다. 하지만 더 미룬다면...
늦은 점심 먹고 얼른 다녀와야 할 듯 하다.
다시 검사를 하고 약을 받아야 할지 
결과표로도 괜찮을지 모르지만 겨울이라 그런지 자꾸 피곤..
움츠리고 있어서 더한가.

아침 일찍부터 안방문을 긇어가며 잠을 깨우던
울집 아지 두녀석들은 이불속에서 쿨쿨...
겨우 아침 간식먹고 잠에 빠졌다.
그렇게 졸리면서도 새벽부터 우리들 잠을 깨우는 것은 무슨 일인지...
추우니까 저희들 본래의 집엔 들어갈 생각도 안하고
나의 거실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녀석들...
덕분에 내게 청소를 기회를 더 많이 주기도 하는데
녀석들도 나도 겨울은 추워서 싫다. 그래도 눈이 있어 다행이지만
요며칠처럼 그렇게 쉼없이 내리는 눈은 또 싫다.
추위에 내 손은 글쓰기를 조금만 해도 꽁꽁...
얼음처럼 차가워져 호호 불어야 한다. 
이제 겨울맛이 나는데 벌써 봄이 기다려진다.


2010.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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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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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에서 인간적인 이야기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박민규의 단편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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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내게로 왔다 3 - 내가 사랑하는 젊은 시 시가 내게로 왔다 3
김용택 지음 / 마음산책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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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읽은 젊은 시와 그 느낌, 그리고 인간적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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