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아가는 절집기행 - 서울
임연태 지음, 이승현 사진 / 클리어마인드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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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닥거리는 시내의 길이 끝나고 산길이 시작되는 곳에 절이 있다. 절은 그렇게 자연과 사람 사이에서 자연과 사람을 소통시켜 준다. 그것만으로도 절이 있는 의미를 다하는 것 같다. 사람과 산의 경계에 있는 절은 세속의 고통과 오만을 어루만지는 것이다. 절과 세속의 경계는 일주문이다.' 20여년간 불교기자를 한 그가 서울에 있는 절집을 찾아 나팔수와 지혜장이라는 가상의 부부가 절집여행을 하듯 소개를 한다. 절집에 대하여 별 관심이 없는 나팔수씨에 비해 절집과 불교에 관심이 많은 지혜장은 남편을 점점 절집에 스며들듯 하게 한다. 처음은 어색하던 이야기도 그들의 뒤를 따라 나서듯 한 곳 한 곳 소개되는 절집을 여행하듯 하다보니 문득 우리네 부부와도 닮은 듯 하여 친근감이 있으며 그들과 함께 여행기분이랄까 알지 못하던 부분에 대하여 좀더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국의 그리 많은 절집을 여행한 것은 아니지만 절집을 다니다보면 그 곳만이 독특함이라든가 조금씩 다른 절집에 대하여 알게 된다. 내가 자주 가는 안성의 청룡사는 대웅전의 양 처마밑에는 금강역사가 그려져 있다. 일주문이 있고 바로 대웅전이라 금강문이 따로 없으니 금강역사를 대웅전에 놓은 듯 하다. 그런 절집의 매력이나 역사에 대하여 한가지씩 알아가다보면 절집기행에 재미를 붙일 수도 있다. 나 또한 처음부터 절에 대하여 아니 불교에 대하여 모든 것을 알고 절집을 찾아나선 것은 아니다. 나팔수씨처럼 무에서 유를 한가지씩 첨가하다 보니 지금은 산을 찾으며 절집에 꼭 들러 한가지씩 얻어 오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알게 되고 가게 된 절집이 그래도 여러 군데이니 이 책에서 보여주는 곳을 더하면 더 많은 절집이 저장되는 샘이다. 

우리나라는 유명산에는 꼭 유명한 절이 한 두 곳은 있다. 혹여 그곳이 큰 절이거나 작은 암자에 불과해도 절이 있어 산을 찾으면 볼거리를 더 안겨 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절에 대하여 세세하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절에 대하여 많이 아는 듯 하면서 그 속을 들여다 본다면 모르는 것이 더 많다. 그렇다고 세세하게 모든 것을 파고 들기 보다는 겉모습을 들여다봐도 큰 것을 몇 가지 알고 본다면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것들은 나팔수씨와 지혜장은 알려준다. 아무것도 모르고 보는 것보다 한두 가지 알고 본다면 더 많은 것이 보이리라.

진관사 - 칠성각에서 발견된 백초월 소님의 1919년 당시 항일운동을 대변해 주는 태극기와 귀중한 독립운동 사료들이 발견되었다. 독립신문,신대한신문을 비롯한 독립운동 사료들이 태극기에 싸여 있는 상태로 불단 안쪽 기둥 사이에 90년 동안 비앙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가 있는 절이라면 진관사의 칠성각을 더 찾고 싶은 타당한 이유가 될 것이다. 

화계사 - '그러니까 이 절이 조선시대에 두 명의 왕을 배출했단 말이지? 거 참 묘하다. 선조나 고종이나 앞의 임금이 아들이 없어서 졸지에 왕이 된 분들인데, 그 배경에 아버지가 있고 그 아버지에겐 부처님 백이 있었다는 게 공통점이네.' 부처님이 덕으로 두 명의 임금이 배출되었다면 그 또한 대단한 절이다. 현판 글씨 또한 대원군의 글씨라고 하니 보고 싶다. 절에 가면 눈에 들어오는 현판의 글씨들, 그것이 다름 아닌 공덕주였던 대원군이 추사에게 배운 솜씨로 쓴 글씨라 하니 언젠가 가서 보고 싶다.

'사' 와 '암' 의 차이는 혹은 '전' 과 '각' 은 무엇이 다른 것일까 등 쉽게 풀어 놓아 이해를 도우면서 나아가는 이야기 방식이 쉽게 다가온다. 작은 암자의 경우 간단하게 불상만 모신 대웅전과 산신각 정도만 갖추어 놓은 곳도 있고 '사' 이면서도 대웅전과 명부전 산신각등과 심검당과 요사채등 왠만한 것을 모두 갖춘 경우도 있다. 모두를 세세하게 잘 알지는 못하지만 깊게 알려고 하기 보다는 나팔수씨처럼 지혜장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서울 도심의 '절' 에 있게 되는 절집기행이다. 

절에 가면 제일 먼저 안내판을 찾아 절의 역사나 그외 문화재등에 대하여 먼저 읽어 내려간 후 대웅전부터 하여 하나 하나 찾아가며 그 절에 대하여 공부하는 방식이 맘에 든다. 나 또한 절집 구경을 할때는 안내표지판이 있다면 그것을 먼저 읽어보고 그 절에서 꼭 보아야 하는것이라든지 알아야 하는 것등은 체크한다. 자주 가는 절이라 해도 내가 모르던 것을 나중에 알거나 보게 되는 경우도 많다. 꼭 자주 간다고 하여 모든 것을 한번에 알기란 힘들다. 그런 면에서 안내판부터 찾아 읽어 보던가 요즘은 문화해설사가 있는 곳도 있으니 부탁하여 해설을 듣는다면 절집구경에 좀더 보탬이 될 수 있다. 아이들과 절집을 찾은 경우엔 몇 번 문화해설사를 찾아가 부탁을 한적도 있다. 그렇게 하여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좀더 자세하게 듣게 되면 그곳에 대하여 좀더 잘 기억하게 된다. 지혜장은 절집을 찾기 전에 미리 인터넷에서 공부를 해 가서인지 설명이 줄줄 나온다. 그런 해박한 지식이 없다고 해도 몇 번 찾다 보면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곳이 절집이다. 

얼마전 서산개심사를 찾은 적이 있다. 그곳을 여행하고 다른 곳에 들르기 위해 가던 길에 있던 '정순왕후 생가' 를 들르지 못함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는데 왕후도 공주도 삭발하고 다시 태어나는 곳 '청룡사' 를 읽다보니 더욱 아쉬움이 크다. '정순왕후는 청계천 열리교에서 단종과 가슴 찢어지는 이별을 하고 청룡사에서 스님이 되어 평생을 살았다. 한 많은 목숨은 길기도 길어서 머리 깍고도 65년을 살았다. 절에 사는 동안 매일 앞산 언덕에 올라 동쪽을 바라보며 지아비를 그리워하고 안녕을 빌었다.' 라는 글을 보니 더욱 아쉬움과 함께 언젠가는 '정순왕후 생가' 및 '청룡사' 를 가고 싶어졌다. 내가 찾는 안성의 청룡사와는 어떻게 다르며 왕후나 공주가 삭발을 하였던 절에서 여인네들의 한과 그리움을 잠시 느껴보고 싶어졌다. 

다른 절보다 유난히 눈에 뛴 절은 '보문사' '세계 유일의 비구니종단. 대한불교 보문종이다. 1972년 창종된 보문종의 총본산은 성북구 보문동에 있는 보문사이다. 60대 이상 어른들에게는 '탑골승방' 이란 이름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절이 비구들만이 아니라 비구니들도 많다. 진천의 '보탑사' 는 비구니들이 절을 얼마나 아기자기 하면서도 야생화로 이쁘게 가꾸어 놓았는지 모른다. 그런 비구니들의 총본산이 서울의 보문사란 것을 알게 처음 알았다. 

길상사와 법정스님에 관한 이야기는 법정스님의 '무소유' 나 '소설 무소유' 를 통해 익히 알고 있어서일까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인데 많이 갔던 곳처럼 익숙하게 다가왔다. 그외 많이 오르내리는 봉은사도 그렇고 승가사등은 자주 오르내리는 절등은 익숙함에 반갑기도 했지만 역시나 절이면서 세속과 너무 가깝게 있으면 소음이 들리는 것 같다. 요즘 어느 절이나 조금 알려지면 거창해진다. 예전의 고즈넉함 보다는 세상의 때가 묻어가듯 살림이 불어나는 곳들이 많은데 눈에 거슬린다. 자비의 상징인 포대화상, 그의 배가 자비가 아닌 기름진 것으로 채워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보게 하는데 절은 절 다워야 절에 가고 싶어진다. 

나팔수씨와 지혜장이 서울의 절집을 돌아보며 절구경을 시켜 주었듯 남편의 손을 잡고 고즈넉한 절집에 가고 싶어졌다. 세속의 때가 많이 묻어 있다고 해도 그곳에 가면 마음이 청정해지고 여유로워진다. 어깨에 무겁게 눌려 있던 삶의 무게를 모두 벗어버릴 수 있는 그곳, 내가 돌아본 곳은 한곳도 없지만 간접적이지만 지혜장처럼 좀더 적극적으로 절집을 찾기 전에 역사나 문화를 좀더 공부를 하고 간다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가져본다. 그리고 한 번 휘 둘러보고 그냥 일주문을 나서기 보다는 안내표지판을 한번이라고 꼼꼼하게 읽어 역사와 문화재에 대한 것을 한가지라도 얻어 올 수 있다면 금상첨화라는 것. 워낙에 절집을 좋아하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면 읽는 것만으로도 절집기행이 될 듯 하다. 너무 많은 것을 얻으려 하기 보다는 '아하.. 이런것도 있었구나' 하는 역사 이야기 한토막이라도 알고 간다면 더욱 뜻 깊은 절집기행이 될 것이다. 부부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나팔수씨와 지혜장처럼 한겨울 눈이 소복이 쌓인 절집여행을 가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이다. '안가고 생각했던 것들 앞에서 내가 모르는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가장 큰 행복입니다. 그 깨달음이 있을 때 절집의 가르침과 풍경과 역사가 더욱 감동적으로 내 몸속으로 용해되는 것입니다.' 라는 말처럼 좀더 절집의 '의미' 를 찾는데 도움이 된 절집기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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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거래사 - 산골에서 부르는 행복의 노래
박찬득.배동분 지음 / 라이프맵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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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십 가까운 노모에게 자식의 귀농은 '절대로 가서는 안 되는 길' 이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 길을 가느냐, 못 가느냐의 차이란 곧 용기의 문제였다. 내 삶의 바다에서 배의 키를 내가 잡느냐, 다른 이들에게 편안하게 배의 키를 맡기느냐의 차이였다. 이 산중에 사는한 효도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되었지만, 나는 그동안 쥐지 못했던 내 인생의 방향키를 손에 넣었다..... '나는 사람이 적게 다닌 길을 택했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게 달라졌다.'  잘다니던 회사생활, 그것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갑자기 귀농을 하겠다고 한다면 열에 아홉은 모두가 팔을 걷어 붙이고 막을 것이다. 그만큼 삽자루 한 번 손에 쥐어보지 않았기에 농사에는 까막눈이라 다름없어 가족들마져 말리고 나서는데 그 길이 옳은 길이라 할 수도 없는 것이 성공을 하기에, 아니 농사를 왠만큼 잘 하기에는 세월과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농사를 지은다고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요즘은 정말 철저한 지식이 없이는 건벙덤벙 뛰어 들었다가는 몸이 고달파지기 마련이다. 

아이들도 어리고 그것도 서울토박이가 산골로 들어가겠다고 한다면 정말 당사자도 그렇지만 옆에서 보기에도 막막해 보인다. 농사가 결코 쉽지 않음은 오랜시간 옆에서 농부셨던 아버지를 보면서 자랐기에 알고 있다. 그렇다고 큰 소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한해 농사 잘 지었다고 생각하면 꼭 자연은 반으로 줄여놓기 일쑤다. 농사는 정말 반은 하늘이 진다. 사람이 정성에 하늘의 정성이 반은 보탬이 되어야 그해 농사가 판가름난다. 그런 농사에 아무 경험없이 뛰어 든다는 것은 정말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일부러 택하여 가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그 길이 성공을 보장하는 길도 아니니 아내의 마음 또한 헤아릴 수 있을것 같은데 옆에서 남편을 믿으며 든든한 힘이 되어준 듯 하여 대단하다고 밖에 말이 나오지 않는다. 과연 나의 남편이 갑자기 귀농을 하자고 한다면 선뜻 그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서울생활에 익숙한, 아니 문명생활에 익숙한 우리에겐 산골에서의 아나로그식 생활은 낯설고 힘들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몸이 고생하겠다는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런 불모지와 같은 일에 뛰어 들어 밭을 갈고 남들이 잘 모르는 야콘을 심고 한해 농사를 다 망치면서도 꿋꿋하게 서로가 힘이 되어 가족이 되어가는 이야기들이 마음이 따듯해진다. 그 속에는 결코 돈으로 환산하지 못하는 어마어마한 것들이 분명 있다. 조금은 더 힘들고 조금은 더 익숙하지 않지만 분명 서울생활에서 느껴보지 못한 깊은 산골생활만의 '멋과 맛' 이 숨어 있다. 시간에 쫓기며 가족들 얼굴 한 번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가장이 아이들 눈을 맞추며 놀이를 하듯 산골생활을 해 나가는 잔잔함이 어릴적 시골에서의 내 생활을 들여다보듯 하여 어쩌면 그게 진정 사람사는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땅을 밟고 흙을 밟으며 추억을 쌓고 자신이 뿌리를 내리고 우뚝 설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는 아이로 자랄 수 있는 방법을 그들은 자연에서 스스로 배우고 있는 듯 하다. 엄마와 아빠의 일을 스스로 도우며 학원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가족의 정을 느끼고 자립의 힘을 키우는 것이 어쩌면 진정한 교육인지도 모른다. 조금은 모자라고 부족한 듯 해도 그 속에서는 돈으로 정말 환산할 수 없는 값진 추억을 아이들은 충전하고 있는 것이다. 훗날 그 충전된 에너지는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비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될 듯 하다.

산골에서는 만나는 모두가 거울이다.
사람이나 자연이나 모두가 스승이고 거울이다. 모르면 배우고 힘이 부족하면 함께 하는 산골생활에서 모르면 가르쳐 주는 농사의 선배들이 있고 힘을 합쳐 주는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이웃들이 있어 더욱 힘이 솟는 듯 하다. 내일처럼 발 벗고 나서서 신경을 써 주시는 고마운 분들이 있어 살만한 곳, 아직은 젊은 혈기가 필요한 곳이 우리가 자라난 고향이지만 그곳을 바라보기 보다는 남의 줄에 매달려 남의 힘에 의해 조종을 당하며 위만 바라보고 사는 것에 익숙한 우리에겐 오래전 어머니의 자궁처럼 아늑한 그곳을 너무 힘들게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곳 또한 살아가는 방법이 있고 그곳 또한 사람이 살만한 곳이란 것을 우린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만다. 그러다 남이 어쩌다 성공을 거두면 이사람 저사람 남의 방법을 따라하기 좋아한다. 나만의 방법을, 나만의 길을 찾기 보다는 남이 미리 닦아 놓은 길인 쉬운 길을 가기를 자처한다. 어떤 길이든 남이 가지 않은 가시덤불 길을 헤치고 나가는 처음의 사람은 힘든 법이다. 그런 삶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잘 이겨내는 생활이 너무 이쁘게 보여지는 것은 아이들이 느꼈을 그 감성이 너무 마음에 와 닿기 때문일까.

산골생활이나 귀농은 혼자만 좋아서도 안될터인데 모두가 하나가 되어 움직이듯 산골생활에 적응하여 힘을 합하여 나가는 모습이 소나무처럼 싱싱하게 푸르른 그늘을 드리워 가는 듯 하여 눈물겹지만 뿌듯해졌다. 우리네 고향에 가 보아도 지금은 젊은 사람보다는 칠순의 팔순이 할아버지 혹은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다. 간혹 젊다고 해도 지긋한 분들 뿐이니 농사는 그만큼 힘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남이 하지 않는 농사를 스스로 자처하여 힘이 덜 든다는 논농사도 아닌 밭농사를 하고 있으니 얼마나 주위 분들에게는 뿌듯하였을까. 그곳에서 혼자 살기 보다는 모두와 스스럼없이 어울림 또한 큰 힘이 되었주는 모습이 너무 좋다. 아이들 또한 자연과 벗하며 건강하게 내일의 희망을 키워 나가는 모습이 좋다. 내 아이들에게도 그런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지만 어쩌면 용기가 부족하여 남이 하는 것만 바라보며 좋아하는게 현실이다. 부부 또한 옥신각신 하기 보다는 살면서 서로에게 더 애틋해지듯 잔소리마져 행복으로 보인다. '한시간 정도 잔소리를 들으리라 예상했으나 의외로 말이 없다. 아마도 잔소리를 해봤자 자기 입만 아프리라는 걸 예상했나 보다. 이럴 때는 나도 아무 말 안 하고 그냥 열심히 포크레인으로 일하는 척하는 것이 수다. 사고를 많이 치다 보면 거의 심리학자 수준이 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고 계속 사고를 칠 수가 있다.' 재밌고도 귀여운 초보농사꾼님 말씀이다. 중고 포크레인을 사서 하루만에 고장나서 집앞에 세워 두고 있다가 다시 또 중고 포크레인을 사게 되는 초보농사꾼님, 그런 남편의 심정을 알기에 잔소리도 못하는 아내의 심정 또한 애잔하다. 농사에 기계가 필수이지만 그 또한 다루거나 볼 줄 아는 안목이 없어 기계 때문에 상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기계를 속여 파는 사람에게 마음 상함이 더 가슴 아픈 아내의 심정을 백분 이해한다. 

그래도 그 모두가 지나고 나면 추억이고 노하우가 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는 힘이 될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나 둘 자신들의 귀농생활을 졸졸 흐르는 시냇물처럼 풀어 놓아 발이라도 담그고 부부의 혹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듯 하면 어느새 산골생활은 아기자기 하게 들린다. 나도 혹시 귀농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누구나 삶의 여유가 날때 한번은 귀농을 꿈 꾸기에 산골생활의 여유로움은 더 감미로운 시냇물소리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 애환이야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낯선 것을 익숙하게 만들기란 많은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이겨내며 그래도 행복을 가꾸며 살아가는 모습이 정말 꿈처럼 들여온다. '천국이나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 깨어 있는 사람의 자리가 천국이고 깨어 있지 못한 사람의 자리가 지옥이다.' 라는 말처럼 어떻게 지금의 자신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행복이고 불행이듯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일을 감수하기에 비록 몸은 힘들지만 부수적으로 얻는 것들이 더 행복하다고 느끼는 그들의 산골생활이 '내가 가장 복에 겨워하는 것이 뭔지 아는지요? 우리 네 식구가 진정한 가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서로의 눈동자를 보며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아차리게 되었고, 입술이 오물거리는 모습만 보아도 어떤 말이 튀어나올지 감 잡고 사는 삶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꿈을 가지게 된 것이며 하루하루가 심장 뛰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라는 초보농사꾼님의 말처럼 행복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며 그들의 눈을 맞추며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음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너무 거창한 것을 늘 쫓으며 살고 있고 위만 바라보고 있기에 밑에 있는 행복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산골생활이 힘든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나약한 콩나물과 같기에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귀농을 하기 보다는 무엇보다 철저한 계획이 필요할 것이다. 그들이 지금과 같은 삶을 이루기 위해 많은 세월 모진 비바람을 이겨냈듯 그런 시련을 견딜만한 마음가짐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귀농에 대한 지침서라고 본다면 좋은 이야기들과 그들의 삶의 아기자기함이 전원생활을 꿈 꾸게 한다.날마다 새소리가 아침 잠을 깨우는 그런 맑은 삶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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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 Just Stories
박칼린 지음 / 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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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KBS예능 프로인 <남자의 자격> 을 보기전엔 박칼린, 그녀는 낯선 이름이었다. 하지만 남자의 자격중 '하모니' 편을 보면서 그녀의 이름은 너무도 친근하면서 잘 알려진 뮤지컬들의 '음악감독' 이었슴이 '아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음악이 정말 좋았다는 그 이름만 들어도 귀에 쟁쟁쟁 뮤지컬들이 그녀의 작품이라니 정말 대단하다는 소리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름에서도 알려주듯 그녀가 다문화가정의 어딘지 모르게 치즈와 된장이 섞여 있을것만 같은데 '전라도 촌년' 이란 별명까지 있다니 정말 웃기면서 감동을 물씬 물씬, 서해바다의 바닷물이 밀려오듯 풍겨 주었다.

'남자의 자격' 에서 그녀는 누구보다도 '한 카리스마' 를 했다. 웃을 땐 천진한 아이같으면서도 다그칠 땐 누구보다 매서운 눈빛이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그녀 '마녀' 라는 별명에 어울리게 정말 한 칼을 품은듯 오합지졸과 같은 이들을 단번에 자신이 군단으로 만들어가며 그들에게서 '하모니' 는 이끌어냈다. 영화 <하모니>에서도 보면 그녀들이 처음에 음악을 전공한 이들도 아니고 평범한 이들도 아닌 여죄수들이었다.그녀들에게서 그런 놀라운 '목소리' 가 나올줄은 누구도 예상을 못하였듯 '남자의 자격' 에서 또한 그들이 뭉쳐 그런 큰 감동의 물결을 온 나라에 뿌릴 줄 누가 알았을까. 대본도 없이 시작한 프로라는데 그 모든  지휘를 누구도 아닌 '그녀, 박칼린' 이 해냈다는 것이다. 그들처럼 나 또한 눈물을 머금기도 하고 그것을 보기 위하여 다른 일을 얼른 마무리 하기도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무엇보다 그들이 두달동안 흘려 준 땀방울만큼의 노력이라는 것이다. 노력해서 안되는 것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그녀와 삼십여명이 함께 해 낸 그 놀라운 하모니는 그야말로 그녀 자신을 잘 드러내는 한편의 감동의 뮤지컬이 아니었나 싶다.

교육은 밥상에서 이루어지다.
그녀가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나 방황하지 않고 내면에 충실하며 넓은 세상을 흡수 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구보다도 '엄마' 의 힘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밥상에서 모든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나싶다. 베개밑교육도 중요하지만 밥상머리 교육도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ESL영어 선생님 이셨던 그녀의 어머니는 세계의 여러 나라 사람들을 홈스테이를 하면서 그들과 자유롭게 어울리면서 그나라의 문화와 역사등 폭 넓은 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한국과 미국생활을 한 그녀기에 어머니가 차려주신 세계여러문화가 함께 어우러진 원탁의 밥상은 그야말로 그녀에게 고스란히 흡수되어 오늘날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지 않아싶다. 편식이 아닌 골고루 모든 것을 섭취하고 보양할 수 있는 기회를 그야말로 다른곳이 아닌 집안에 이루어지게 한 어머니의 교육방식은 대단하다. 그런 그녀였기에 지금 또한 그녀의 군단을 무리없이 기회균등하게 잘 이끌고 있는 듯도 하다.

인생은 여행이다.
그녀의 자유여행 '구름투어' 정말 맘에 든다. 청소년기부터 기차를 타고 무작정 종착역까지 가며 보아둔 산을 산행후에 다시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여행을 해 보았던 그녀는 하나의 막을 내리듯 한가지 일을 마치고 나면 자신 안을 깨끗하게 비우듯 '자유여행' 인 '구름투어' 를 떠난다고 한다. 몇 시간을 달려도 배추밭이 나오는 미국이 아닌 지나는 매순간마다 다 다른, 바다와 산 그 모두를 볼 수 있는 아기자기한 우리나라이기에 멋진 여행은 가능하리라. 그녀와 동행인 삽살개들도 정말 복이 터졌다. 그녀와 함께 주인장 몰래 방에서 함께 자는 행운도 누릴 수 있고. 하지만 무엇보다 정한 곳에서 자유를 맘껏 누린다는 것이다. 먹고 쉬고 비우고... ' 아무튼, 만 원짜리 밥 먹고 안 먹을 감자칩 몇 봉 더 샀다고 사치고 럭셔리인, 한국이기에 가능한 구름투어다. 그래도 끝까지 럭셔리다. 떠나는 거 자체가 럭셔리인 거다. 그리고 부러우면 지는 거다. 그러니 모두들 떠나시라.' 그녀의 말처럼 부러우면 지는 거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하여 부러워하지만 말고 나도 남처럼 떠날 수 있는 용기가 한때는 필요하다.무조건적으로 일에 매달린다고 그게 능사는 아니다. 한때 자신안을 비우고나면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음은 그녀는 지금까지 잘 실천하고 있기에 일과 쉼이 그녀안에서 리듬을 타기에 그녀가 언제나 열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말: 아무리 작은 여행일지라도 그 소에서 엄청난 것을 배우고, 느끼고, 자랄 수 있다.'

100번 노력해 보았는가.
김연아 선수가 우리에게 멋진 한번의 성공을 보여주기 위하여 천 번 만 번 실패를 한다고 한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번의 성공 뒤에는 천만번의 아픔이 있기에 한번이 성공이 더 빛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이룩해내는 한편의 뮤지컬을 위해 그녀는 각기 다른 배우를 어떻게 연습시킬까. 아니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녀는 말한다. ' 딱, 100번만 해봐. 한 번, 한 번을 진지하게 말이야. 주변 사람 시선 의식하지 말고 너만 깊숙이 들여다보며 거울 앞에서 진지하게 해보란 말이야. 그렇게 100번만 해봐. 100번 해서 안 되면, 1000번을 진지하게 해보란 말야.' 한 번 하고 아니 열 번 하고 '안돼' 포기하는 것보다 100번을 해 보고 안된다고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사람이 얼마나 그 일에 노력을 기울였냐가 실패와 성공을 가늠해준다. 노래와 춤만 그럴까, 아니다 인생에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성공을 거두러면 백 번 아니 천 번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에 절대공감이다. 요즘 내가 딸들에게도 늘 말하고 있는 말이다. 수학이 어렵다고 몇 번 풀다가 '엄마가 점수가 오르지 않아. 힘들어. 난 안돼.' 힘든 시기인줄 아는데 그렇게 말하기 쉽다. 그렇다면 난 '지금을 보지 말고 먼 미래를 보라고 말해준다. 지금은 노력하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지만 먼 미래에는 눈뭉치가 눈사태가 될 수도 있다.' 말하면서 늘 노력을 기울이라 말한다.그런 노력없이 성공을 거두려 한다는 것은 자신이 땀이 없는 성공을 얻으려는 뜬구름을 잡는 일과 같다. 그렇게 해서 그녀가 자신의 군단으로 이 끈 노력형 인물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자신안에 있는 능력은 자신도 모른다. 얼마를 퍼 내고 살지도 모르고 잘 가꾸면 얼마의 능력이 무긍무진 나올지 모르기에 '노력' 이란 말에 절대공감이다.

끼를 알아봐 주는 스승이 필요하다.
자신안에 아무리 많은 능력이 담겨 있다고 해도 자신은 잘 보지 못한다. 자신이 가진 '끼나 능력' 을 정말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능력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능력을 알아봐주는 스승도 필요하다. 인생은 혼자가 아닌 '조력자' 가 있다면 더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다. 그녀의 다분한 끼를 스승들이 일찍이 알아봐 주었기에 능력이 더욱 커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스승들에 의해 자신의 능력을 키웠다면 지금 그녀는 자신이 스승이 되어 또 다른 제자들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날카롭게 번득이는 그녀의 눈빛에 내면에 무한한 능력을 가진 아마츄어 들이 쏙 쏙 뽑혀 나와 진흙 속에서 '진주' 를 찾아 내는 그녀, 그리고 그 진주를 빛나게 닦고 또 닦아 주는 그녀야말로 진정한 스승이다. 그런 그들이 그녀의 군단이 되어 하나의 잘 굴러가는 동그라미가 되니 그녀의 일이 더욱 빛날 수 밖에 없다. 

인생은 열정적인 한 편의 뮤지컬이다
그녀가 하는 일에 열정이 없는 일은 없는 듯 하다. 사람을 만나는 일에도 여행을 다니는 것에도 무엇을 하든 자신안에 감추어진 열정을 다하여 자신을 분출하기에 그녀는 어디에 있든 빛이 난다. 외면이 아닌 내면이 꽉 차있기에 더욱 빛이나는 그녀는 그녀의 인생을 한 편의 뮤지컬을 만들듯 어느 작품에서나 최선을 다하여 최고를 만들어 내는 듯 하다. 짧은 뮤지컬역사 속에서 그녀가 이룩해 낸 빛나는 업적은 정말 대단한 듯 하다. 우리의 작품인 <명성황후> 가 쏟아냈던 그 많은 이슈들, 그 속에 그녀가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열정이 숨겨져 있기에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 미국에서도 빛이 났던 작품인듯 하다. 그녀의 모든 이야기들을 읽으며 그녀 인생 자체가 뮤지컬이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것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교육을 받은 것등 어려서부터 세계인들과 어울려 평등을 배우고 폭넓은 교육을 받고 첼로 뿐만이 아니라 외국인 외모에 국악과를 나왔으니 그녀 인생 자체가 모든 것이 어우러진 뮤지컬화 되어 가고 있었던듯 싶다. '세상에... 운명에게 그냥이란 없다. 곧 죽는다 하여도 그냥으로는 살지 말지어다.' 라는 말처럼 어느 면에서나 어느 곳에서나 '열정' 을 모두 쏟았기에 오늘날의 그녀가 있고 그녀가 탄생시킨 뮤지컬들이 더 빛이 나지 않는가 한다.

한사람의 인생을 모두 들여다 보기엔 책 한 권으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그녀가 토해낸 어머니 고향인 리투아니아에 대한 이야기며 여행이야기, 음악이야기, 가족이야기, 스승에 대한 이야기, 제자 이야기, 파티 이야기, 병수집 이야기 등 너무도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박칼린' 그녀는 감동이었다는 것이다. 웃음과 감동을 준 '운동화 한 짝 파실래요?' 라는 이야기는 웃으면서도 기발하면서도 감동을 주었다. 그녀의 인생2막은 어쩌면 지금부터 시작일지 모른다. 음악감독으로 살았다면 이젠 표면으로 떠 올라 많은 이들 속에서 주목 받으면서 그녀가 보여주고 감추어 두었던 또 다른 열정이 어느 곳에서 빛을 발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남자의 자격 이후에 방송광고에서 그녀를 만나게 되어 더욱 친근감이 드는 그녀, 그녀가 보여준 것은 거짓이 아닌 진실이며 열정이었다. 그리고 누구도 흔들 수 있는 감동이었다. 그녀가 다문화가정의 아이라고 주저 앉았다면 늘 노력하지 않고 성공만을 바라보았다면 지금의 그녀는 없을 것이다. 늘 노력하고 내면을 채우듯 이루고 나면 비울줄도 아는 그녀를 보며 '인생은 이렇게 사는 거야' 라는 것을 배운것 같다. 제목처럼 '그냥' 아닌 그녀는 그냥살지 말고 노력하며 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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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의 악당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내겐 귀여운 이층의 악당과 팔색조 집주인 김혜수의 이층의 악당 



 

감독/ 손재곤
출연/ 한석규(창인), 김혜수(연주), 지우, 동호, 이장우(오순경),윗집아줌마(이용녀),하대표(엄기준)...

내겐 귀여운 이층의 악당 한석규, 그리고 팔색조 집주인 김혜수가 펼치는 좌충우돌 달콤 살벌한 동거기.

이 영화를 놓쳤다면 후회했을 뻔했다. 영화를 개봉후에 보려 하다가 집안에 일이 있어 미루다 겨우 막차를 타듯 보러 갔더니만 우리 부부 외에 한커플, 그나마 그들은 앞자리로 자리를 옮기고 우린 맨 뒷자리에 앉아 보았으니 극장을 통째로 전세낸듯 편하게 보게 되었다. 저녁 시간 맘껏 웃고 영화와 하나가 된 듯 편하게 보기도 했지만 둘만의 좌충우돌 동거이야기가 너무도 웃기면서 둘의 애드립이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앳지녀라 할 수 있던 그녀가 중학생 딸을 둔 엄마로 나온 역할이 이젠 그녀에게도 어색하지 않음이 그녀도 세월을 빗겨가지 않는구나 생각하며 모티비의 드라마에서도 그녀가 아들을 둔 엄마로 나온다는 것이 이제 그녀가 싱글보다는 가정주부로도 손색이 없게 잘 어울린다는 것이 어쩌면 더 편안함을 주었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그럴것 같지 않으면서 능청스럽게 '우울증환자' 역을 너무도 잘 소화해 냈기도 하지만 남편을 잃은 과부가 이층에 싱글 남자를 두면서 가질 수 있는 충분한 사건과 사고가 웃음을 주게 만들었다.

영화는 연주의 남편이 창인에게 건네주려던 '청화용문찻잔' 을 집 어딘가에 감추어 두고 그를 속였다는 것이다. 둘이 찻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창인은 갑자기 닥친 경찰에 끌려가고 잘 피했다고 창문 밖으로 나온 연주남편은 그만 낡은 실외기를 밟고 서 있다가 떨어져 죽고 만다.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여 자신의 젊음도 펴보지 못한 연주는 이층단독주택에서 자신의 외모에 강한 컴플렉스를 가진 사춘기 딸과 함께 살고 있지만 그들의 사이는 물과 불처럼 만나면 늘 불꽃이 인다.그런 사이에 창인은 연주 남편이 집안 어딘가에 숨겨 놓은 20억이 나가는 '청화용문찻잔' 찾으러 소설가라 자신을 숨기고 이층에 단기세입자가 된다. 남편이 죽으면서 연주에게 남기고 간 것은 사춘기 딸과 대출이 아직도 많이 남은 단독주택과 그리고 엔틱가게 하나 뿐이다. 그녀는 우울증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술에 의존하기도 하고 약에 의존하기도 한다. 이층에 세를 준것도 돈이 급했기 때문이다. 창인은 찻잔을 찾는 일이 금방 마무리 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일은 이상하게 꼬이기 시작한다.

그들의 집 뒤의 빌라 윗층엔 이상한 아줌마가 살고 있다. 늘 베란다에서 그들의 집을 훔쳐본다. 세입자가 된 창인은 늘 연주가 살고 있는 아래층을 염탐하는데  그 이상한 아줌마는 그들을 염탐하는 것이 일상이다. 이 영화는 어쩌면 서로를 멀리서 지켜보듯 하기도 한다. 연주를 어리버리 연하인 오순경이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기도 하지만 윗층의 아줌마는 연주네를 상아는 잘생긴 현철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모두 '꿈' 이 있다. 연주는 돈벼락과 같은 돈을 갈망하고 하대표는 찻잔에 목을 메고 창인 또한 20억의 찾잔을 찾으려 하는 것은 '돈' 때문이다. 오순경은 연주씨와 어떻게 이루지길 바라고 윗층의 이상한 아줌마는 '할머니' 가 아닌 젊음이 영원하길 바라듯 '아줌마' 이길 바라며 상아는 자신의 외모를 고칠 수 있는 성형수술에 대한 비용이 있기를 바란다. 어쩌면 현대인들은 자신들이 바라는 '이루어질 수 있거나 혹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 에 대한 환상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망치기도 한다는 그런 이야기 일 수도 있다. 재벌2세인 하대표는 아버지의 돈에 손을 대었다가 덜미가 잡히듯 하게 생겨서 눈가림 할 수 있는 '청화용문찻잔' 이 필요하다. 청화용문찻잔이라고 하니 용이 들어갔으니 역사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렇다면 '임금' 이 사용한 찻잔이라는 말이 된다. 그래서 그렇게 어마어마한 액수가 나온지도 모른다. 그 찻잔이 나타나기만 하면 벌써 몇 명의 '꿈' 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결코 찻잔은 쉽게 그들의 눈에 나타나지 않는다. 우울증이 심한 연주는 정신과의사를 찾아가지만 그의 눈빛조차 맘에 들지 않아 속사포로 그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쏟아낸다. 남자의사였던 그는 여자의사의 전화번호를 건네준다. 그런 그녀의 우울증은 이층의 남자와 육체적 교감을 나누게 되고 그러므로 일층에 자주 나타나는 창인이 맘에 안드는 성아는 학교에서 왕따로 수업을 거부하고 집에 온다. 그런 성아를 학교로 돌려보내기 위한 창인의 절규, 그에겐 일터인 일층이 비어 있어야만 연주도 출근을 해야만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는것. 하지만 그녀들은 그의 속도 모르고 그런 그를 속타고 애타게 만든다. 급기야 죽으려는 맘까지 가지게 되는 성아를 살려내지만 강간범으로 오해나 받는 창인은 급기야 이 집의 비밀에 대하여 그녀들에게 털어 놓는다. 하지만 그녀들은 그런 찻잔이 있는 줄도 모른다. 그럼 어디에 숨겨 놓았단 말이야.....

하대표의 눈을 돌리기 위해 술수를 쓰는 창인, 하지만 연주는 그를 따돌려야만 혼자서 찻잔을 독식할 수 있다. 그가 길을 가다 우연히 검문에 잡힌 것처럼 그를 경찰에 넘긴다.그리고 이제부터 모녀는 집을 쑥대밭을 만들면서 찻잔을 찾기 시작한다. 성아는 그 찻잔만 찾는다면 성형으로 얼굴을 수정할 수 있고 연주는 지긋지긋한 단독이 아닌 멋진 아파트로 이사를 갈 수 있다. 영차 영차..여기저기 집을 부수며 찾잔을 찾는 그녀들 '청화용문찻잔'을 찾을 수 있을까. 어찌되었든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무엇이 잘되고 잘못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연주는 우울증이 치료가 되고 성아는 이쁜 얼굴로 거듭날 수 있기 보다는 이제는 자신의 외모를 받아 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창인은... 그는 그녀들이 새로 이사한 멋진 아파트에 들어오지만 그녀가 걸렸던 불면증, 찻잔을 가지지 못한 것에서 오는 불면증이 그에게 덮친 것이다. 하지만 이젠 그남자를 거뜬히 요리할 수 있는 연주가 되어 있다. 예전이 이층집주인이 아닌 멋진 여성으로 거듭나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 눈여겨 볼 만한 것은 역시나 한석규와 김혜수의 연기다. 그 둘의 감칠맛 나는 연기에 웃음폭발이다. 영화는 밀실트릭이기 때문에 더 탄탄하다. 추리소설이나 그외 밀실소설들을 보면 범위가 넓은 것보다는 더 탄탄한데 이 영화 또한 그렇다. 밀실에서 벌어지는 그들의 달콤 살벌한 연애아닌 연애도 그렇고 찻잔을 놓고 벌이는 추격전이나 뭔가 크진 않지만 꽉 찬 듯한 느낌을 준다. 달콤하게 제비처럼 집주인을 녹이려는 창인의 꾀에 넘어가는 듯 하다가 안 넘어가는 살벌한 우울증을 앓는 집주인 연주는 이층 계단을 통하여 둘의 사이가 연결 되는 듯 하다가 남편이 남겨준 유품이나 마찬가지인 물건들이 가득한 '지하실' 에서 부딪히면 그녀에게 기죽고 만다.그래서 꼭 그 곳에서만 갇히고 마는 창인은 불쌍하기 이를데 없다. 창인이 쏟아내는 말들도 재밌지만 연주가 쏟아내는 말들과 연기는 반짝반짝이다. '한국 남자들은 나이 처 먹으면 함부로 조언하고 충고해도 된다는 무슨 자격증 같은게 발급되나봐. 뭘봐 아줌마가 담배 피는것 처음보니..' 하며 거침없이 쏟아내는 그녀의 아줌마끼와 깡은 정말 매력만점이다. 거기에 그녀만이 찻잔을 찾을 수 있고 그녀의 손에 찻잔이 주어져 있다면 그녀를 가만히 놔두겠는가. 어떻게 해서든 구어삶아 놓으면 다시금 원점처럼, '선생인 어제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해 주세요.' 정말 엇갈리면서 교묘하게 얽혀들어가는 그들의 말과 연기는 웃음이 나오지 않을 듯 하면서 웃음이 나오게 만든다. 너무 무겁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으면서 밀실에서의 재미를 톡톡히 누릴 수 있게 하는 재미 있는 영화이다. 타짜의 장마담도 잘 어울렸지만 어쩌면 이 영화에서의 연주역이 김혜수 그녀에게 더욱 잘 들어맞는 역은 아니었나 싶다. 세월과 함께 그녀를 읽을 수 있고 세월에 편승한 듯한 그녀의 물오른 연기가 좋았던 이층의 악당, 어쩌면 현대 우리네 가정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듯 하기도 하고 '꿈' 을 향해 자신을 버리며 마구 달려드는 현대인들 같기도 하며서 해피엔딩으로 처리한 것을 보면 희망의 끈을 놓치 않으면 언젠가는 '해뜰날' 이 온다는 희망적인 메세지가 담겨 있는 듯 해 기분 좋게 볼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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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 대하여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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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람이 태어나서 한 번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죽음’ 이다. 그 죽음조차 자신의 인생을 정리할 수 있는 유예기간이 주어진다면 행운이겠지만 그런 예고도없이 길을 가다가 혹은 산행을 하다가 천재지변이나 그외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인하여 뜻하지 않게 죽음을 맞이한다면 가는 이도 황당하겠지만 보내는 사람도 황당하다. 남아 있는 자로 죽음에 대한 상처가 치유되기란 정말 오랜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이 가까운 사람이었다면 더할 것이다. 올해는 그런 뜻하지 않은 일을 두번이나 겪게 되었다. 올해 초에 작년에 폐암 판정을 받은 아버지를 뵈러 오시다가 작은아버지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 하시게 되었다. 결코 준비되지 않은 죽음앞에서 우린 그저 ’가는 길은 순서가 없단다. 고생않고 가신것을 다행으로 여겨야지.’ 하며 좋게 보내드렸다. 그런데 아직 한 달이 되지 않았는데 폐암으로 그래도 건강하게 사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주무시다 돌아가셨다. 그 또한 모든 일들이 복을 받았다며 좋게 보내드리자고 했다. 아버지 당신은 죽음이 바로 눈앞에 있었으니 당신은 두렵고 무서우셨겠지만 어쩌면 주변인들은 아버지를 정리할 시간적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하여 슬픔을 줄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작은아버지에 비해. 그렇다고 어느 죽음인들 서럽지 않은 죽음이 있으랴. 가고 나면 흔적조차없니 모두가 사라지는데. 지금도 어디선가 날 바라보고 계실것만 같은 아버지가 문득 문득 생각날땐 그저 눈물만 나온다.

요시모토의 소설은 몇 편이 있지만 처음이다. 그녀의 글에 대한 생각없이 읽어서일까, 아님 내가 요즘 겪은 죽음에 대한 생각 때문일까 무척 내 맘에 와 닿았다. 만약에 내 꿈에라도 아버지가 다시 한 번만 나타나 주신다면 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무엇이다 딱히 정해진것없이 그저 아버지와의 시간을 좀더 연장하고 싶은 생각이다. 영혼을 좀더 편안하게 해 주어 가볍게 다른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여기 그런 소설이 있다. 쌍둥이 자매로 할머니가 마녀라 쌍둥이 딸들 또한 마법학교를 나와서 다른사람과는 다른 세상에서 살았다고 해야 할까 그런 소녀들이 할머니의 잘못으로 인해 정신적 피해를 입고는 있는자들을 위한 병원이나 마찬가지인 곳에 사춘기때 가게 된다. 그곳에서 원장과 사귀었던 동생은 그후 결혼을 하여 외동딸을 낳고 가게를 운영하며 부유한 삶을 산다. 외국산식료품가게를 하였기에 무엇이 좀더 잘 팔릴까 하는 것에도 그녀는 주술을 이용하기도 하여 어린 딸은 그런 엄마가 맘에 들지 않았다. 쌍둥이 언니도 결혼을 하여 외동 아들을 두고 비슷한 가게를 운영하며 살고 있었지만 그녀들은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서로 연을 끊고 살았다시피 한다. 그러다 동생의 외동딸인 유미코가 열살이 겨우 넘은 나이에 사단이 일어나고 만다. 강령회를 하던 중에 유미코의 엄마가 아빠를 찔러 죽인 것이다. 그곳엔 외삼촌 내외와 그녀의 엄마를 만나러온 여자가 있었지만 그녀 또한 목을 찔리고 만다. 그렇게 엄마와 아빠를 잃게 된 유미코는 혼자 떠돌게 된다.’어두컴컴한 현관홀에서 쇼이치가 말했다. 마치 동굴 안에 있는 것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 답답함. 이 눅눅함. 집 안은 어느 정도 치워져 있어서 그때 그대로는 아니었지만 황량했다.’

그런 그녀 앞에 이모의 아들인 쇼이치가 나타나 그녀를 데리고 그의 집으로 데리고 간다. 이모가 살아생전 그녀를 거두고 싶어했다는 말에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하다며 그녀는 처음으로 와 보는 이모의 집에서 평온함을 느끼며 쇼이치와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과거와 재회를 하게 된다. 쇼이치는 그녀를 데리고 과거 그녀가 부모와 한때는 단란하고 부유하게 살았전 집이며 가게등을 그리고 과거의 삶에 관계된 사람들을 만나보러 다닌다. 이모와 함께 엄마가 오래전에 머물렀던 병원에 들러 그곳에서 그녀들의 삶에 대하여 듣고는 평소 그녀가 생각하는 엄마와 이모의 성격이 병원에서는 그녀가 알고 있는 것과 정반대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병원에서 그렇게 얌전하듯 한 엄마가 왜 세상에 나와서는 그토록 돌변한 삶을 살았는지 궁금해한다. 그리고 자신이 살던 집에 그러니까 사건이 일어나던 날까지 살던 집에 들어가서야 엄마와 아빠가 몹시 그립다는것을 알게 된다. 비록 아빠를 죽인 엄마이지만 그녀에게는 하나 뿐인 엄마였던 것이다. 그리고 아빠의 무덤에 가면서 그녀는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익히 그 모든 일을 알고 있고 사건이 일어나던 날 다음부터는 애매모호함이 자신이 이미 죽은 영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 그녀는 쇼이치의 꿈 속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모가 그녀를 데리러 오지 못했던 것이다.

쇼이치의 꿈 속에서 이모를 만나 모두를 용서하게 되는 그녀, ’ 이제야 겨우 이해가 된다. 구마 씨가 했던 말..... 자신이 이곳에 겨우겨우 있다는 것. 이모가 나를 데리러오지 않았던 이유를 지금은 말할 수 없다고 했던 것. 그야 그럴 수 밖에, 죽었으니 데려갈 방법이 없잖아. 내가 쇼이치와 재미나게 지내고 있어 가만히 놔둔 것이리라.’ 그녀는 자신이 오래전, 그러니까 엄마가 아빠를 죽이던 날 자신 또한 엄마의 칼에 목숨을 잃고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떠도는 영혼이 되어 있었던 것이란것을. 그녀는 엄마도 이해를 못했지만 이모도 이해를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젠 쌍둥이자매를 모두 이행하고 비록 엄마의 손에 죽음에 이르렀지만 아빠 또한 행복했음을 알아차린다. 쇼이치의 꿈 속에서 모든 것을 치유하게 되는 그녀는 그렇다면 이제 편안한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자신을 위해 기꺼이 자신이 꿈 속에서 자신과 과거로의 동행 뿐 아니라 아픈 상처를 치유해준 쇼이치를 위해 자신이 간직하고 있던 갓파를 놓고 행복하게 떠나는 그녀, 유미코의 영혼을 위한 레퀴엠이었던 것이다. '책상 위에 딱 하나 덩그러니 남은 촛ㄷ에 종종 촛불을 밝히던 엄마가 떠올랐다. 나는 살며시 그것을 만져 보았다. 엄마의 통통하고 하얀 손이 닿았던 곳이다. 엄마, 하고 생각했더니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엄마를 만나고 싶어, 목소리를 듣고 싶어, 걷는 모습을 보고 싶어, 꼭 안기고 싶어, 그 손으로 내 이마를 쓰다듬어 주었으면 좋겠어.'

이 소설은 독특하다. 죽은 이가 화자가 된 것이다.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등장하여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해결한다. 이렇게 죽은 자가 소설속에서 화자가 되는 경우는 특이한데 올해 읽은 책 중에 <딩씨 마을의 꿈> 이라는 책 또한 죽은 아이가 화자로 등장을 한다. 죽은 자가 화자가 된 경우는 자신들이 왜 죽게 되었는지 추리소설처럼 사건을 파헤쳐 들어간다. 그리곤 그 죽음과의 치유를 통해 좀더 편안하게 이승을 떠난다. 하지만 소설은 그녀가 죽은 것이 아닌것처럼 모두가 생생하게 이어 나간다. 자신이 왜 억울한 영혼이 되어 자신의 죽음과 작별도 하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영혼 유미코는 쇼이치의 꿈 속에서 비로소 엄마와 이모를 알게 되고 그녀와의 죽음과도 마주치게 된다. 하지만 그 죽음을 기꺼이 받아 들이고 자신이 세계로 돌아가려는 그녀, 더이상 억울하게 떠돌 필요가 없어졌다. 우리것으로 표현을 한다면 죽은 자에 대한 살풀이라고 해야 할 듯 하다. 더이상 이승의 끈을 잡지 말고 더 좋은 곳을 찾아 떠나길 바라는 치유의 소설, ’그녀에 대하여’ 소설을 덮고 나니 표지의 소녀가 너무 애처롭다. 피어나지도 못하고 시들어버린 꽃처럼 그녀의 빨간 치마가 자꾸만 눈 앞에 아른 거린다. 아버지를 보내고 난 후라 그럴까 죽음을 좀더 너그럽게 바라보는 눈이 생긴듯 하다. 너무 붙잡고 있어도 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듯 하다. 나에겐 여기 이 자리가 있다면 이승을 떠난 아버지에겐 아버지만의 편안한 자리가 있는 것이다. 좋게 정말 좋게 보내주는 것이 남은 자의 도리인듯 하다. 이 소설 또한 그런 의미로 받아 들이고 읽는 다면 소녀의 아픔을 토닥토닥 두드려 줄 수 있는 마음이 생긴다. 그녀가 부디 다른 생에서 행복하길 바래보며 나 또한 소설로 치유를 받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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