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 The Man from Nowher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팔방액션맨 옆집 아저씨라 불러다오, 아저씨 2010




감독/ 이정범
출연/ 원빈(차태식), 정소미(김새론), ...


그를 누가 평범한 옆집 아저씨라 할 수 있을까?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라 보고싶다는 딸들을 뒤로 하고 남편과 둘이 보러 가게 되었다. 잔인하면 얼마나 잔인하길래 하면서 보게 된 영화이며 '얼마면 돼..' 를 하던 외치던 순수한 꽃미남 원빈이 액션맨으로 거듭난다고 하니 또 한편 보고 싶기도 했다. 영화 <마더>에서 보여 주었던 연약함에서는 액션이 나오지 않을것 같았는데 그가 거진 액션을 소화해 냈다고 하니 더 보고 싶었다. 엄마의 치마폭에 숨어 있던 '마더' 의 원빈이 정의의 액션맨이 되고 꽃미남에서 '아저씨' 로 거듭나 좀더 폭 넓은 연기로의 바탕을 마련하는 터닝 포인트 같은 영화가 되리라.

쓰레기통과 전당포귀신
옆집 꼬마소녀 소미의 별명은 '쓰레기통' ,하지만 소녀는 '네일아트' 가 꿈이다. 술집에서 춤을 추며 근근히 먹고 살던 소미의 엄마에게 임신이란 폭탄과도 같은 것이었다. 임신이란 사실을 알고는 쓰레기통을 발로 차서 뱃속에 있던 소미의 별명이 되었다며 옆집 아저씨 태식에게 자신의 별명을 말하며 꿋꿋함을 보이는 소녀. 반면 소녀가 전당포에서 벗어나지 않는 옆집 아저씨를 부르는 별명은 '전당포귀신' , 엄마가 일을 하러 나가거나 집에 와서도 그녀를 멀리 하려고 나가 놀라고 하면 소녀는 전당포를 찾는다. 알게 모르게 그들은 '친구' 가 되어 가고 서로 의지하게 된다. 그런 어느 날, 소미의 엄마가 일하던 나이트에서 거래되어지던 '마약' 을 훔치면서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샘플로 보내진 '마약' 이지만 팔면 큰 돈을 만질 수 있어 슬쩍 했던 그녀는 놈들의 표적이 되고 소미마져도 그들의 인질이 되어 붙잡혀 가게 된다.

나 옆집 전당포 아저씨, 전직 특수요원이야.
할 일 없이 전당포에서 빈둥빈둥 대던 나약함의 옆집 아저씨는 유일한 친구로 지내던 소미가 붙잡혀 감으로 하여 그가 감추고 있던 가면을 벗어버리게 된다. 특수요원을 하면서 아내와 알콩달콩 살아가던 그는  만삭의 아내를 잃고 세상을 등지고 살고 있었던 것. 전당포 아저씨처럼 세상에 버림을 받은 소미, 소녀를 어디서 찾아 구해낼 것인가? 옆집에 왔다가 소미의 엄마가 그에게 마약샘플을 맡긴것을 알게 된 일당들, 그를 단번에 제압하려 해 보았지만 오히려 태식에게 보기 좋게 당하고 만다. 경찰에 신고를 하려던 그는 직접 그들을 찾아 나선다.

아저씨까지 미워하면 이 세상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 한개도 없어...
아내와 태내에 있던 아이까지 잃은 그는 소미의 말을 곱씹으며 그녀의 행방을 찾던 중, 소미의 엄마가 무자비하게 난도질 당하고 장기가 모두 제거된 상태로 죽임을 당한것을 알게 된다. 정의롭게 맞서려던 그는 일당들이 거대조직이며 소미의 행방이 묘연해져 날카롭게 변신을 꽤하며 예전 '특수요원' 의 시대로 돌아가듯 '복수' 를 위하여 칼을 든다. 소시지반찬도 나누어 먹고 그의 손톱에 이쁜 '네일아트' 를 해 주었던 꼬마친구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소녀의 생명 또한 위험에 처한 것인가?

다가오지마..피 묻어....모른척해서 미안해...
옆집 아저씨보다 더 잔인한 일당들, 하지만 아저씨의 날카로운 액션에 모두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내리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마무리처럼 자신 또한 자살을 결심하는 순간 꼬마 소녀가 나타나 그를 구한다. '다가오지마...피 묻어...' 그래도 옆집 아저씨에게 다가오는 소미, '모른척해서 미안해...' 그들은 다시 친구가 되지만 옆집 아저씨는 죄값을 치루어야 할 형편. 어디 이렇게 정의롭고 팔방액션을 할 줄 아는 옆집 아저씨 없나요를 외치고 싶게 만드는 영화. 

원빈, 그의 이름을 다시 만들어준 영화
순수하고 여릴것만 같던 원빈을 다시 서게 하는 영화인듯 하다. 길게 커트된 머리칼 속에서 날카롭게 빛나는 눈빛과 낮은 저음이 너무도 매력적이게 잘 어울리면서 영화를 살려냈다. 그와 짝을 이룬 어린 소녀 역시 정말 당차게 연기를 잘 한듯 하다. 엄마의 치마폭도 벗어나고 아내의 치마폭도 벗아나 정의의 액션맨이 되어 화면 곳곳을 누비며 잔인하지만 나쁜 무리를 하나하나 제거해 나가는 그의 '몰이식 복수' 는 정말 대단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원빈 팬' 이 아니었던 이들도 그의 연기에 빠져들듯 하다. 로맨스에서 이제 '액션' 으로 거듭난 원빈, 그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게 만드는 영화이다. 한편으로는 너무 잔인하여 '너무 심하다'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그 모든 것을 해소해 준 영화다. 잔인하지만 정말 좋았던 영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솔트 - Salt
영화
평점 :
상영종료


007도 부럽지 않은 졸리의 시원한 액션, 솔트 2010
 

감독/ 필립 노이스
출연/ 안젤리나 졸리(솔트), ...

솔트, 그녀가 선택한 정의는 누구편인가?... 졸리가 보여주는 시원하고 통쾌한 액션.


하기휴가를 맞아 모처럼 가족이 모두 모이게 되었다. 방학동안 기숙사에 있던 딸들이 와서 휴가를 겸하여 영화관 나들이를 하려고 의견일치를 본 영화는 <솔트> 였다. <아저씨> 나 <악마를 보았다>는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라서 안되고 이 영화는 볼 수 있기도 했지만 더위를 물러가게 할 시원하고 통쾌한 액션영화를 보고 싶다고 하여 고른 영화였다. 다음 영화에서 무료예매권을 받은 것이 있어 미리 예매를 하고 가기로 하고는 느긋하게 예매를 하였다. 딸들이 저녁시간에 보자고 하여 저녁을 먹고 동네에 있는 멀티플렉스에 가려고 시간도 딱 맞추어 예매를 했는데 영화관에 가서 무인발급기를 네번이나 하면서도 몰랐다. 14일 토요일인데 딸들과 함께 하면서 요일감각을 잃어버린것인지 일요일인줄 알고 15일 저녁시간으로 예매를 해 놓은 것이다. 그것도 무인발급기를 네번이나 하면서 '아차~~' 하고 말았으니 시간은 십여분 남았는데 표나 있으려는지 급히 순번표를 뽑아 들고 데스크로 달려가 표가 있는지 확인하고는 영화관에서 받은 무료예매권이며 다른 예매권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과 함께 하여 겨우겨우 앞자리로 예매를 하였다. 영화표를 받아 들고 나니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옆지기는 무료 팝콘과 음료수를 들고는 아직 어떤 상황인지 알지 못하고 있던 상태여서 올라가며 말해 주었더니 웃는다.

007 본드걸이 아닌 단독 액션, 나 혼자서도 잘해요.
본드걸을 제의 받았지만 자신만의 영화를 고집한 졸리, 역시 그녀 답다. 그녀의 액션을 <툼레이더> 에서 확인을 하였으니 '액션은 남자다' 라는 금기를 깨기라도 하듯 시작부터 시원하면서 통쾌한, 아니 여자만이 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더해져 영화는 여름더위를 물러가게 하기에 딱이었다. 에블린 솔트, 도대체 그녀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CIA요원 인줄 알았는데 갑자기 나타난 전향한 러시아 첩보원을 취조중 그녀가 러시아 스파이라니... 자신의 남편을 찾기 위하여 집으로 가야 하는 그녀, 동료요원들의 추격을 받아 가며 집에 무사히 가게 되지만 남편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가 남긴 '거미' 를 챙겨 집을 나서는 그녀, 그녀에게 가시밭길이 시작되었다.

액션 여전사, 안젤리나 졸리
과연 그녀가 러시아 스파이일까? 러시아에서 스파이로 키우기 위해 갓 태어난 아기들을 모아 십여세를 넘길 나이까지 키우는 양성소가 있다. 그곳에서 자랐던 그녀, 그들의 임무는 러시아 대통령을 암살하는 것, 미국의 부통령 장례식에 참석한 러시아 대통령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소화하기 위하여 CIA요원 이었던 그녀는 러시아 스파이로의 길에 접어 든다. 부통령 장례식이 치뤄지는 성당의 지하에 침투하여 자신의 임무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솔트, 거미독에 죽음을 당한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로 돌아가고 임무를 수행한 솔트는 그녀를 찾아 왔던 러시아 정보원을 찾아 가 그들의 소굴로 들어가지만 그곳에 그녀의 인질로 잡혀 있던 남편이 그들의 총에 맞아 죽임을 당하자 그녀, 강한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소굴을 완전 그녀의 손에 넣으며 모두를 죽인다.

솔트, 그녀의 정체는 무엇인가?
죽은 줄 알았던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에 돌아가 살아났다. 잠깐 거미독에 중독이 되었던 것이지 총에 맞아 죽었던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를 죽였다고 알고 있는 솔트, 그녀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녀가 속했던 조직내에서도 그녀의 정체를 놓고 갈팡질팡한다. 러시아 스파이인가 아님 이중첩자인가? 의심을 받던 그녀는 조직속에 그녀가 모르던 '러시아 스파이' 로 함께 자라나고 교육을 받았던 인물이 있음을 알고 그의 정체와 그가 하려는 음모에 맞서 싸운다. 하지만 이미 그녀는 이중첩자로 몰리고 있는 중이라 모두가 그녀를 쫒고 있다. 마지막까지 실망감을 주지 않고 자신의 임무를 완전하게 소화해 내는 솔트, 통쾌한 그녀만의 자신의 정체를 찾아가는 퍼즐맞추기가 재미와 통쾌하고 시원한 액션 덕에 흥미진진하다.

액션 여전사 졸리, 그녀만의 영화.
역시나 졸리다. 어느 한 곳 느슨한 구석이 없다. 통쾌하면서도 시원한 액션과 함께 육감적인 그녀의 매력이 더없이 잘 발휘된 영화인듯 하다. <툼 레이더>에서 그녀를 만난 것이 어제인듯 한데 어느새 그녀는 더욱 성장하고 어느 남자도 부럽지 않은 액션 여전사가 되었다. 착한 일을 많이 하여 그녀의 감추어졌던 선행과 함께 맞물려서 일까 더없이 이뻐 보이는 그녀, 여름더위를 잠재우기에 딱인 영화이다. 그녀의 거침없는 카리스마는 화면 가득 채워져 007시리즈보다도 더 재미를 준다. 그녀의 어디에 이런 카리스마가 감추어져 있던 것일까? 백발백중, 너무한것 아냐 할 수 있는 시시함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녀의 눈빛을 보면 그녀안에서는 이루지 못할 일이 없는 듯 하다. 솔트, 안젤리나 졸리라는 이름에 또 하나 걸출한 액션을 만들어준 영화임에 틀림이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버지에게 가는 길
케니 켐프 지음, 이은선 옮김 / 이콘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자신의 진가를 몰랐던 내 아버지 O.C. 켐프에게 바친다.'
루게릭병으로 자신의 삶을 다 살지 못하고 가신 아버지, 그 아버지가 떠난 후에 비로소 아버지의 존재가치를 알아가는 아들의 진솔한 이야기다. 케니 뿐만이 아니라 우린 사물이건 사람이건 바로 곁에 있을 때는 그 존재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거나 의미를 잘 알지 못한다.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떠나고 난 후에 정말 필요했던, 그사람의 존재가치가 드러나게 된다. 사물도 마찬가지겠지만... 부모님은 또 어떠실까? 옆에 있을 때는 그저 '잔소리꾼' 으로 알다가 내가 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아보면 비로소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고 잘해드려야겠다고 생각을 하면 이미 떠나고 안계시다. 

그의 아버지는 목수였을까?
버러진 물건으로 뚝딱뚝딱 다시 새로운 것을 잘도 만들어 내었던 아버지, 아버지의 보물창고인 차고는 그야말로 없는것이 없을 정도이고 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듯 하다. 고막을 다쳐 한쪽 청각을 상실한 아버지가 가고 싶던 공군이 아닌 육군에 보병으로 가게 되었지만 꿈을 포기 하지 않고 전속 신청을 하여 비행기 조종을 하게 된 이야기 '어이, 켐프, 이 운 좋은 자식. 너 땡잡았다! 전속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나중에 아버지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500명의 대대원 중에서 전속 신청한 사람은 단 두 명뿐이었고, 성공한 사람은 아버지 혼자였다고 한다.'  아버지에겐 한쪽 고막의 이상도 꿈 앞에선 문제될게 없었다. 노력만 한다면 꿈을 이룰 수 있고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은 모두 모아 놓기도 하고 남이 자신을 욕을 먹여도 자신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왔던 분, 그런 분의 빈자리가 얼마나 클까? 

아버지는 가장 귀한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교통사고를 내어 차가 고장이 났을 때 폐차장에 함께 가서 필요한 부품을 구하고 그 부품들로 자신이 고장내어 놓은 차를 혼자서 수리하게 한 아버지, ' 비록 내 솜씨가 형편없고 두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차를 못슨다 해도 직접 고치면서 더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버지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물고기를 그냥 주는 것과 미끼 꿰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차이를.' 탈무드에 자주 나오는 글을 이 글에서도 보는 듯 하다. 물고기를 선뜻 입에 물려 주기 보다는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려 했던 앞날을 내다 보는 아버지는 손수 몸으로 아들에게 보여주신듯 하다. 그의 교육 방법이 요즘 무엇이든 자식들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서 앞장서는 부모들과는 큰 차이를 보여주기도 하며 큰 가르침을 준다. 

남들처럼 배움이 큰것도 아니요 남들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직업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지만 자식들과 함께 경험하고 느끼고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주었던 것 같다. 거기에 쓸모없다고 버려지는 것들로 새로운 물건을 재탄생 시키면서 무엇이든 '의미' 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갑자기 루게릭이라는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육체를 어쩌지 못하는 병에 걸리고 나서 얼마나 힘든 시간들을 보내셨을까. '죽기전에' 하번 자신이 비행했던 비행기를 한번 보는 것을 꿈으로 여겨 아들에게 폐물처럼 버려진거아 같은 비행기에 앉아 보여지는 것들을 말해보라 하는 아버지의 꿈과 삶이 상실해가는 것을 보며 눈물이 글썽였다.난 내 아버지에게 잘하고 살고 있는 것일까. 이다음에 후회할 일을 지금 저지르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버지는 세상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강하다고 여기고 무엇이든 못 만드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 아버지가 루게릭병으로 짧은 여생을 마루리 하고 몇 개월이 지난 후 아버지의 빈자리를 비로소 느낀 그가 아버지의 물건을 치우려 집에 갔다가 아버지가 늘 머문 '아버지의 장소' 인 차고에 들어가 보고서야 비로소 그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추억과 존재가치' 를 들여다 보게 된다. '내가 입버릇처럼 말했다시피 뭘 만드는 것에 관한 한 최고였고, 재료만 있으면 핵폭탄이라도 만들 수 있는 분이었다. 아버지가 궁리해 고치면 재활용하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재활용을 뛰어나게 잘하셨던 아버지는 처음 인생의 난관이었던 청력상실은 이겨냈지만 두번재 얻은 '루게릭병' 은 이겨내지 못하고 굴복을 하고 말은 아쉽고 안타까운 아버지의 인생을 뒤돌아 보며 아버지에게 보내는 연서처럼 쓴 짧은 글이지만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안겨 주기도 하며 눈물 흘리게 한다. 이시대의 아버지는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뒤로 밀려나 찬밥신세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한데 늘 자식들과 함께 하고 그들에게 추억이 되었던 아버지의 존재를 되새기를 글을 읽으며 내 아버지에게도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보며 내 옆을 지금 함께 해주고 있는 그에게도 잘해야 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너무 놀랍고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라 나도 눈물을 흘렸다. 나는 아버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꼭 잡았다. 아버지의 손은 힘이없고 차가웠다. 아버지의 몸은 점점 기능을 멈추어가고 있었고, 눈물이 맺힌 채 반짝이는 눈만 심장 속에서 이글거리는 불꽃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 너희들 그거 아니? 이제 아버지가 드디어 양쪽 귀로 들을 수 있게 됐구나!'  아버자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의 한 말씀이 가슴 뭉클하게 했다. 평생 한이 되었던 한쪽 귀의 청각상실이 얼마나 그를 힘들게 했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어머님의 말씀처럼 죽음으로 인해 양쪽 귀의 청각을 가지게 되었다. 

문득 이 책을 읽다보니 작년 여름에 아버지가 처음으로 큰병원에 입원하게 되시고 이것저것 검사결과 폐암2기라는 판정이 나고 우리 가족 모두가 지옥에 떨어진듯 하던 그 힘들었던 때가 생각이 났다. 난 처음으로 아버지의 나약한 모습을 보았고 팔십평생 자식들을 위해 농사를 지으시며 자식들 먹거리를 책임지셨던 강인한 분으로 생각했는데 아버지의 몸은 그야말로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장작개비 같았다. 아버지의 팔 다리를 주무르며 눈물짓던 그때, 남은 시간동안 좀더 잘해드려야 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그도 잠시. 내 삶에 저 집중하게 되고 점점 아버지의 아픔을 잊게 되는 현실이 가슴 아프지만 어쩌지도 못하는 그 마음을 가끔 전화로 위로하는 못난 딸, 그래도 큰소리로 '허허' 웃으시며 한곳도 아프지 않으시다며 나와 내 아이들을 먼저 챙기시는 아버지, 아프지 말고 좀더 오래사시길 바래보며 이 책을 읽었다. 짧지만 느낌이 강한 이야기이며 지금 '나' 를 뒤돌아 보게 하는 책이다. 무언가 후회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지금이 실천할 때임을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환각의 나비 - 우리가 꼭 읽어야 할 박완서의 문학상 수상작
박완서 지음 / 푸르메 / 200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작가가 문학상을 받은 5개의 작품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여자들의 이야기, 여자의 시선에서 바라 본 이야기들이라 그런지 가슴에 와 닿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의 작품을 그리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 문단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노작가의 힘은 작품에서도 다분히 들어나는 듯 하다. 이 책은 오래전에 구매를 해 놓고 읽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신작이 나온것을 보니 작가의 책을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가져보며 읽게 되었는데 여자들의 이야기라 그런지 더욱 술술 읽어나가게 된 것 같다.

그 가을의 사흘 동안, 성폭행을 당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임신을 하게 되고 그런 아이를 선배의 병원에 가서 소파수술을 한 후 그녀 또한 '소파수술' 전문 의사가 되는 그녀에겐 자신의 일을 그만두게 되기 전 딱 한가지 소원이 있다. 아이를 죽이는 일이 아닌 살아 있는 생명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받고 싶은 소원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지. 처음 그녀가 병원을 개원하게 된 곳은 사진관 이었던 곳으로 사람들이 앉아서 사진을 찍던 '의자' 가 하나 있다. 그 의자는 어디로 치우지도 못하고 있다가 첫 손님으로 아버지가 그 의자에 앉게 되는데 의자의 주인은 아버지였던 것처럼 너무도 잘 어울린다. 그 후로도 치우지 못하고 병원을 지키고 있는 의자, 병원은 생각보다는 잘 되어 첫날부터 병원비보다 더 많은 돈을 받아가며 건물주인의 미혼인 딸의 아이를 받게 된다. 그것이 그녀가 받은 처음이자 마지막 '살아 있는 아기' 가 되는 셈이기도 하고 그 아이는 미혼모의 아이가 아닌 건물주의 업둥이로 되는 비밀을 간직한 채 그곳으로 일을 그만두는 30여년의 세월동안 그곳을 지킨다. 하루하루 일을 그만두어야 할 즈음,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남의 아이가 아닌 자신의 아이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빠져 들고 마지막 날 찾아온 처녀의 아이를 살려보려 노력을 하지만 받는 순간 살아 있던 아이는 그녀의 품에서 마지막 죽음을 맞이한다. 

엄마의 말뚝2, 자신이 집을 비우기만 하면 무언가 일이 일어난다. 왜 그런일이 벌어지는지 자신도 모르지만 어느 날, 친구의 집에서 앵두주를 마시고 취해 돌아온 그녀에게 또 하나의 사건이 전해진다. 무언가 일이 일어났다는 것. 하지만 자신의 가족은 모두 무사하다. 그런데 사건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친정엄마, 눈길에 넘어져 골반을 심하게 다치신 것. 자신의 식구가 아니라 다행이라 해보았지만 엄마도 가족이나 마찬가지. 잠깐 잠을 취한 후에 병원에 도착하여 상황을 듣게 되는데 생각보다 중상이다. 연세도 있으신데 수술을 해야 한다. 그런 엄마가 수술후에 이상한 증상을 보이신다. 아들을 잃고 꿋꿋하게 살아오신 어머니는 힘든 수술후에도 희망이 얼마없다.그런 어머니 앞에서 장례에 대하여 말하던 친구들의 말을 전해 들은 어머니의 유언은 자신의 아들을 보냈던 것처럼 자신도 그렇게 보내달라는 것, 어머니의 투병은 끝나지 않았지만 가슴이 아픈 이야기다.

꿈꾸는 인큐베이터, 늘 학교선생님인 동생의 뒤치닥거리를 하는 언니, 그런 동생에게 멀리 떨어져 있기보다는 가까이 자신의 아파트로 이사를 오면 어떻겠느냐는 말은 떨어지기가 무섭게 동생이 이사를 오면서 그녀는 동생의 아들을 보게 된다. 그런 조카가 유치원에서 재롱잔치를 하는 날, 비디오로 남기려 하지만 그녀의 서툰 솜씨로는 켜는것 조차 힘들다. 그런데 마침 옆에서 저음의 멋진 남자가 대신 찍어주겠다고 나서고 그가 찍은 비디오는 동생의 맘에 든다. 우연하게 만난 그 남자와 딸과 아들의 차이에 대하여 말하던 중, 그녀는 집요하게 그가 아들이 없는 것에 대하여 물고 늘어지다 자신 또한 시어머니와 시누이 덕에 양수검사를 하고 아들을 낳은 것을 상기한다. 과연 아들이란 존재가 무엇인지. 아들이 아닌 딸이어서 태어나지 못하고 죽어간 생명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으로 한번 더 여자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던져준다. 

환각의 나비,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에 가정을 혼자 힘으로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는 하숙집을 운영하며 자식들의 생계를 책임진다. 그런 어머니 곁에서 늘 손발처럼 움직였던 딸, 남동생이 있지만 그녀는 치매기가 있는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그런 어머니가 갑자기 없어지셨다. 다른 때 같으면 남동생네 집으로 향하는 의왕터널 근처에서 발견되는데 어머니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근처 도시와 그들이 살았던 곳까지 포스터와 그외 방법을 동원하여 찾아 보지만 어머니의 그림자조차 찾을 수가 없다. 도대체 어머니는 어디로 사라지신 것일까. 한편 무당집이었다가 현재는 절집으로 거듭난 마금이라는 처녀가 사는 절에 낯선 할머니 한 분이 자신의 집인양 들어와 아욱을 다듬는 것에서부터 아욱국을 맛난게 끓이기도 하여 그녀와 오랜동안 함께 살았던 사람처럼 살게 된 할머니가 있다. 그녀는 오래전 하숙집을 경영하며 하던 솜씨로 절살림을 하며 마금이와 함께 오손도손 살고 있다. 우연히 이곳 근처를 지나던 딸은 빨래줄에 걸린 어머니의 옷을 보고는 대웅전으로 향하다가 너무도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를 두 승복 입은 여인을 보게 된다. ' 더할 나위 없이 화해로운 분위기가 아지랑이처럼 두 여인 둘레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몸집에 비해 큰 승복 때문에 그런지 어머니의 조그만 몸은 날개를 접고 쉬고 있는 큰 나비처럼 보였다. 아니아니 헐렁한 승복 때문만이 아니었다. 살아온 무게나 잔재를 완전히 털어버린그 가벼움, 그 자유로움 때문이었다. 여지껏 누가 어머니를 그렇게 자유롭고 행복하게 해드린 적이 있었을까.' 현실이 아닌 환상을 보는 것 같은 신비함으로 끝을 맺은 소설은 만약에 내 부모가 치매에 걸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던져주는 듯 하다.

소설들은 모두가 여자의 시선으로 여성의 이야기를 쓴 소설들이라 할 수 있다. 비단 여자만의 문제이겠는가. 소파수술을 해야만 하는 여자들, 그것은 그녀들 혼자만의 문제는 아닐것이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듯 누군가 원하는 상대가 있었기에 그런 문제가 발생을 하였고 그것을 여자의 눈으로 들여다 보았기에 아니 건물주 황씨처럼 '아들' 이라면 또 얘기가 달라지는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남자' 를 바라보는 눈과 '여자' 를 바라보는 눈은 태어날 때 부터 다르다는 것을, 그 간극으로 인해 여자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는지에 대하여는 '꿈꾸는 인큐베이터' 편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는 듯 하다.  아들이면 세상에 나올 수 있지만 ' 딸' 이라고 하면 세상에 태어나기 보다는 미리 '죽음' 으로 생을 마감해야 하는 태아, 그런 아이들을 키워내는 인큐베이터와 같은 여자들의 자궁, 그 자궁에서 함께 태어난 남자는 아내의 눈치를 보며 어머니를 모시기를 꺼려 하기도 한다. 아니 자신이 모시는 것이 아닌 여자가 모시는 것, 아내가 모시는 것이라며 전적으로 아내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그런 아내에게서 어머니는 집에 갇혀지게 되기도 하고 자신의 방에 갇혀지게 되면서 사납게 변하고 거울속의 자신조차 알아 보지 못하지만 그 세상을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갔을때는 그런 자신이 살던 세상의 고치에서 탈피하여 나비가 된듯 편안하고 자유로움에 젖어 지내게 된다. 소설들은 가만히 보면 보이지 않는 끈에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작가의 속 중에서 여자의 깊은 속을 들여다 보고 나온 것처럼 소설을 읽고 나면 친구와 많은 수다를 떨어 가슴에 묻어 두었던 '화' 를 털어낸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여자이기에 사회로부터 받는 알 수 없는 규제가 소설로 승화된 느낌이랄까.여자들이 읽는 다면 많은 부분 공감을 할 수 있는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의 탈 - 개정판
조정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꼭 살아서 돌아갈 거야. 군대에 갔다 오면 틀림없이 면 서기 시켜준다고 했거든.' 
스무 살, 한참 꽃다운 나이에 남들은 일찍 장가를 가서 애 둘씩은 두고 있었지만 신길만은 그러지 못했다. 그런 그가 일본군에 징집되어 관동군 고바야기 부대의 일원으로 국경 전투에 임하게 된다. 너무도 가난하여 소작농으로 근근히 살아가던 그들에게 '면 서기' 라기 허울 좋은 사탕발림은 그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열쇠처럼 일본군에 징집되어 가는 데 한몫을 한다. '총알을 피해다려나.' '관세음보살을 되뇌어보라.' 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전장에서 늘 되새겨 보지만 고향은 멀기만 하고 죽음은 너무도 가깝게 늘 곁에서 일어나고 있다.

전쟁만 끝나면 배부르게 먹고 가난에서 벗어날 것만 같았던 청사진의 미래가 고향과 함께 점점 멀어져만 간다. 금방 끝나고 돌아가겠지라고 생각했던 전쟁에서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포탄의 밥이 되어 죽어 가기도 하고 얼어가는 것도 모르고 동사되기도 하고 그 생지옥과 같은 곳에서 탈출하여 어딘지 모르지만 '그곳' 으로 떠나려고 발버둥치다 총알밥이 되기도 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처량하고 고달픈 일본군으로의 일상에서 살아남는 수보다는 점점 죽어가는 수가 많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만나는 '한국말과 고향같은 사람들' 로 인하여 향수를 달래던 그들은 누가 거둬들여야 하는 불쌍한 민족이란 말인가.


'그들은 이제 한 덩어리로 뭉친 일본군이 아니라 하나, 하나 외따로 떨어져 있는 섬이었다.'
전세가 역전되어 일본군이 아닌 소련군이 우세하여 그들은 어쩌다 보니 소련군이 되어 있다.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선택으로 국적을 달리 하게 된 그들은 배고픔을 이겨내기 위하여 소련군을 택했지만 그들의 의사가 어디에서 통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본군이든 소련군이든 늘 배고픔과 굶주림에 허덕이고 전장에서 힘든 일을 소화해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 그대로 고향에 돌아간다면 면 서기를 할 수 있는 것인지. 어느 날, 소련군이었던 그들은 다시 독일군이 된다. 더 나은 현실을 택하기 위하여 자신의 국적이 중요하지 않았던 그들에게 고향은 점점 멀어져 가고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좀더 자신의 배를 채울 수 있다면 마다하지 않고 '명령에 복종' 해야만 하는 자신들이 선택하지 않은 삶 속에서 그들이 선택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어느사이 '2차대전' 의 속에 우뚝 서 있다. 

'그들의 국적은 어디이고 누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인가?'
노르망디의 해변에서 힘든 일을 하며 고향을 꿈 꾸던 그들은 미군포로가 되었지만 자신의 국적을 찾을 수 없었던 사람들. 미국이 어디에 붙어 있는 곳이고 고향이 어디쯤일지 모르면서 미국으로 향했던 그들이 마지막 발버둥처럼 자신의 국적을 찾으려 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국제포로' 가 된 신세. 좀더 그들이 무능하지 않아 그곳에서 탈출을 했더라면 고향 근처는 아니어도 고향과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그들의 또 다른 삶은 일구었다면 비참하지 않았을 터인데 마지막 처참하게 자신들이 선택하지 죽음에 이르러야 했던 그들의 질곡의 삶, 기구한 삶이 한국전쟁 60년을 맞이 하여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 이 남자는 일본군으로 징집되었다. 1939년 만주 국경 분쟁 당시 소련군에 붙잡혀 붉은 군대에 편입되었다. 그는 다시 독일군 포로가 되어 대서양 방어선을 건설하는데 강제 투입되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다시 미군의 포로가 되었다. 포로로 붙잡혔을 당시 아무도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한국인으로 밝혀졌으며, 미 정보부대에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했다.' 이 소설은 '노르망디 조선인(한국인)' 이라는 한장의 사진에서 출발을 했다. 일본군으로 징집되었지만 소련군으로 독일군으로 또 다시 미군의 포로가 되어 세계사의 한복판에 내던져졌지만 강대국들의 배타적인 자국주의에 인간이기 보다는 물건으로 취급받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그의 파란만장한 삶이 우리의 지난날의 질곡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하다. 전장에서의 생생함이 사실대로 묘사되고 신길만이 고향과 부모님을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자꾸만 멀어져 가는 꿈이 조화를 이루어 더욱 비참함을 극대화 시켜준 듯 하다. 비단 작품속 인물이 한 둘은 아닐터 지금도 이승을 떠돌고 있는 원한의 영혼들의 들어나지 않은 '진실' 은 무척이나 많을 듯 하다. 역사 속에 감추어진 진실이 밝혀지기도 해야지만 잘못을 저지른자 들은 사과를 해야한다. 자신들의 잘못을 언제까지 정정당당하다고 주장하기 보다는 역사 앞에서 옳고 그름은 후세를 위해서도 인정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며 빼앗아 간것은 돌려줘야 하고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에 대한 '보상' 을 역사의 저울추가 기울지 않게 지불해야 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중국의 묘기중에 얼굴이 바뀌는 신통한 묘기가 생각난 것은 무엇 때문일지. 소설속 이야기가 허구가 아닌 '사실' 이기에 더 가슴이 아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