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4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인환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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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얼마나 슬펐던가.내가 아주 꼬마였을 때 찍은 사진에서도 나는 그런 슬픔을 알아볼 수 있다. 오늘의 이 슬픔도 내가 항상 지니고 있던 것과 같은 것임을 느꼈기 때문에, 너무나도 나와 닮아 있기 때문에 나는 슬픔이바로 내 이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나는 그에게 말한다. 이 슬픔이 내 연인이라고, 어머니가 사막과도 같은 그녀의 삶 속에서 울부짖을 때부터 그녀가 항상 나에게 예고해 준 그 불행속에 떨어지고 마는 내 연인이라고, 나는 그에게 말한다.' 

작가의 다른 작품인 <모데라토 칸타빌레> 에서도 여인은 절대적인 사랑을 찾아 헤매인다.십년 동안 공장주의 아내로 살면서 정원의 너도밤나무 한그루 자신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고 남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고 살았지만 봄마다 목련꽃이 필때면 사랑의 몸살을 앓는다. 그런 그녀가 카페에서의 살인현장을 목격하면서 그녀의 삶은 변화를 겪게 되는데 이 작픔에서도 소녀는 이제 겨우 열다섯 살 반을 지났는데 성숙한 미를 풍긴다. 그런 그녀의 가정을 보면 아버지는 돌아가신 후 혼자의 힘으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어머니 그리고 그 밑으로 그토록 그녀가 믿고 최고라고 생각하는 장남은 마약과 노름에 찌들어 재산을 탕진하기도 하는가 하면 가족의 주머니까지 턴다. 그런 형 밑에서 눌 억눌려 있는 남동생인 작은오빠와 소녀, 어머니도 그녀가 모르는 사이 거의 미쳐가고 있었다. 큰오빠와 가정도 도는 알고 있는 어머니의 광기를 어느날 소녀도 목격하게 된다. 그런 불안전한 일상에서 탈출을 하려는 '사춘기' 의 소녀는 방학을 마치고 메콩강을 건너 오는 배 안에서 부유한 중국인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탈출구를 찾은 것이다.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어쩌면 중국인 남자도 사춘기 소녀도 서로의 일상에서 탈출할 상대로 서로에게 빠져 들었는지 모른다. 비참하고 비정상적인 가족에게서 벗어나고자 했던 그녀가 중국인 남자에게 모든 것을 걸듯 빠져든다. 절대적 사랑을 갈구하는 그들앞에 미쳐가는 어머니도 마약과 노름에 찌들어 병들어 가는 큰오빠도 그런 식구들 밑에서 늘 귀죽어 있는 작은오빠도 그녀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 중국인 여자와 결혼을 해야만 재산을 물려주겠다는 중국인 남자의 아버지와 연인이 의견마찰을 일으켜 부딪혀도 그녀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듯 그녀만의 비상구에서 머무르다 떠나면 그만이다.

그녀가 간직한 '슬픔' 을 그녀의 연인인 중국인 남자 또한 가슴에 품고 있어 그들은 열정으로 사랑에 빠져든다.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는다면 더 좋겠어요. 날 사랑한다 해도, 당신이 습관적으로 다른 여자들에게 하는 것처럼 대해 주세요.' 라는 말을 하며 그와의 관계를 허락하는 그녀, 그가 자신을 사랑해 주기보다는 그저 다른 여자를 돈으로 살 때처럼 습관적으로 대해주기를 그런 여자로 취급받기를 원했던 그녀, 사랑을 부정하고 있지만 둘의 밑바탕엔 사랑이 진하게 스며든다. 열다섯의 소녀가 하기엔 인생의 질곡이 담긴 말인데 무척이나 여운을 남긴다. 1929년 프랑스령 베트남에서 프랑스인인 그들은 어딜가나 주목을 받았을 듯 하다. 그런 속에서 어린 소녀가 중국인을 상대로 '매춘' 을 한다는 소문이 났다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떠했을까.

'작은오빠가 죽은 후에야 그의 불멸을 기억해 냈듯이.'
하지만 그런 시선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는 어리면서도 당돌했던 소녀, 어쩌면 사랑은 이런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듯 그들의 애정은 깊어가기만 한다. ' 우리는 독신자 아파트로 돌아온다. 우리는 연인이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식민지령에서의 서로의 혼란과 사랑의 혼란이 적절하게 잘 어우러진 소설이다.그녀가 떠나는 마지막 모습마져 항구의 한 켠에서 숨죽여 지켜 보고 있는 중국인 남자,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지 못하고 중국인 여자와 결혼을 하지만 전쟁도 끝나고 세월이 흐른 후에 아내와 파리를 찾은 그는 그녀를 잊지 못하고 그녀에게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 는 것을 밝힌다. 작은오빠가 죽은 후에야 그가 죽지 않고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해 냈듯이 사춘기시절 불같은 사랑의 행위를 하면서도 사랑이라 하지 않았던 '사랑' 은 그 시각으로 멀어지고 나서야 '사랑' 이었다는 것이 더 확실하게 들어난다. 모든것은 그 존재가 없어진 후에 그 가치가 들어나는 것처럼 그들의 사랑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여 불멸의 사랑임이 들어나 더욱 애잔하면서도 아쉬움이 남게 만든다.

이 소설은 그 시대 영화로 먼저 보게 되었다. 막 이십대를 지나서 보게 된 가슴 아린 영화인 '연인' 은 소녀의 모습도 중국인 남자역을 했던 '양가휘' 의 말끔하면서도 소녀를 어쩌지 못하는 안절부절과 마지막 장면에서의 가슴을 울리는 여운이 정말 세월이 흘러도 가슴에 깊이 남는 영화로 원작을 읽어볼 생각을 하지 못하게 했다. 소설을 읽다보니 영화의 장면이 언뜻 언뜻 생각나기도 하는데 무언가 몽롱함에 얼켜 있는 속에서도 사랑의 묘사나 심리묘사가 뛰어 나다. 여자의 마음을 참 잘 묘사하는 작가이다. 영화에서도 처음에 배의 난간에 기댄 소녀의 모습과 배를 타고 떠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녀를 바라보는 남자의 심리 또한 잘 표현이 되었다.  ' 출발, 언제나 똑같은 출발이었다. 언제나 바다를 향한 첫 번째 출발이었다. 육지와의 이별은 늘 고통과 절망 속에서 이루어졌다.'  고통과 절말을 뒤로 하며 파라로 돌아간 그녀는 자신의 절대적 사랑에 대한 소설을 쓴다. 자전적인 소설이라 하는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모르지만 광기 어린 사랑의 묘사가 생생하게 묘사되어 언제 읽어도 가슴이 아린다. 영화를 다시 보고 싶게 만드는 소설이며 '탈출구' 를 원하는 사람이 무언가 새로운 탈출구를 만나면 '집착' 을 하게 되는데 이루어 지지 못할 사랑에 대한 집착과 열정이라 더 아련하면서도 애잔한 듯 하다.풋풋한 사춘기의 첫사랑이라 더 가슴이 아프게 기억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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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처럼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비밀을 파헤치다, 이끼 2010



감독/ 강우석
출연/ 정재영(천용덕), 박해일(유해국), 허준호(유목현), 유준상(박민욱검사), 유해진(김덕천), 
김상호(전석만), 김준배(하성규), 이영지(유선)...

이끼처럼 살아야 하는 그들이 만들어 놓은 공화국, 진정한 이끼로 살아가고 있는자 누군인가?


조용한 시골마을에 한 노인이 죽었다, 오래동안 아버지와 연락을 끊고 살던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에 늦은 발걸음을 한다. 겉으로 보기엔 정말 한적하고 공기 좋고 별 일 없을 것 같은 조용한 시골마을, 그곳에서 아버지 '유목현' 은 어떤 삶은 살았을까? 그의 죽음은 진정 노환으로 인한 자연사가 확실할까? 갑자기 해국은 아버지의 죽음을 놓고 그 마을의 이장이며 아버지의 죽음에 달려온 젊은 경찰의 처사에 마음에 안든다. 사망사유도 밝히지 않고 사망진단을 내리는것 같아 걸고 넘어지자 바로 태클을 걸듯 깐깐하게 나오는 그 마을 이장이라 하는 전직 경찰이었다는 칠십세의 노인 천용덕, 그의 한마디에 모두 굽신굽신 하는 마을사람들. 조용하던 마을엔 서울 젊은이인 유목현의 아들 유해국이 들어오면서 그야말로 살벌하게 변한다.호시탐탐 그를 노리듯 모든 눈은 그를 향해 있다.

마을을 내려다 보는 곳에 아방궁과 같은 멋진 집에서 살고 있는 이장인 천용덕, 그리고 마을의 유일한 여자 영지, 해국은 영지의 집에 머물면서 석만이며 상규 그리고 덕천까지 마을의 단하나인 슈퍼인 영지의 가게를 이장까지 뻔질나게 드나드는 것을 수상히 여기게 되고 아버지가 살던 집의 지하실도 이상하게 여기게 된다. 과연 이 마을에는 무슨 비밀이 있기에 그가 며칠간 머문다는 말에도 그들은 가시방석에 앉듯 안절부절하는 반응을 보이고 '여기서 살게' 라는 이장의 한마디에 모두가 복종하는 것인가? 유해국, 그로 말할것 같으면 잘나가는 검사 하나는 물 먹인 장본인이다. 그가 물먹인 검사는 박민욱으로 그는 유해국 때문에 지방으로 내려와 있다.

아버지가 살았던 집의 지하실에서 '지하비밀통로' 를 발견하게 되고 그것이 마을의 한 집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들이 모두 해국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는 그들의 비밀, 아니 아버지의 죽음에 관련한 것들을 하나하나 캐기 시작한다. 그의 움직임에 불안해 하던 석만이 그를 죽이려 하다 벼랑에서 떨어져 그가 죽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그들의 촉수는 더욱 그를 감겨 들고 해국 또한 이 마을의 비밀이 무엇인가 대단한것이 숨겨져 있음을 감지하고 박검사에게 SOS를 한다. 좌천되어 있던 박검사는 '천용덕' 이란 인물을 조사하다 예전 기도원생들의 죽음과 부동산에 대한 것등 무언가 대단한 배후가 숨겨져 있는 전직경찰 천용덕의 실체를 파헤쳐 나가고 해국 또한 스스로 마을의 비밀을 풀어 나가려 하지만 그가 움직일 때마다 사람이 죽어 나가고 경찰은 그 혐의를 그에게 뒤집어 씌우기도 하고 그가 설 자리는 점점 좁혀진다.

구원과 복수 그리고 심판.
고구마 줄기 하나를 잡았을 뿐인데 거대한 무언가가 줄줄이 딸려 나온 듯 한 이야기, 그들에게는 과거의 악행이 숨겨져 있었던 것, 마을의 유일한 여자인 영지는 해국의 아버지인 목현으로 부터 자신이 당한 성폭행을 구원받았지만 전직경찰인 천용덕은 그녀의 아픔에 대한 복수를 해준다. 그리고 모두를 심판하려고 이끼들의 공화국을 세우고 그곳의 우두머리로 군림하면서 주변의 부동산을 부당하게 모으기 시작하고 그 하수인 노릇을 오른팔 겪이고 백지상태나 마찬가지인 덕천이 맡아서 한다. 밤마다 짐승같은 그들의 노리개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영지, 그곳을 벗어나려 해도 천용덕의 손아귀에서 한치도 발을 뺄 수가 없다. 

죽음을 넘나들며 점점 비밀의 장막을 거두어 나가는 해국, 그가 좁혀 오는 것을 알아챈 천용덕은 해국을 찾아가 모든 것을 빙의가 된듯 죄를 불어버린 덕천을 죽이고 마지막 해국을 맞는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뻔뻔함은 하늘을 뚫고 그는 그의 배후에 거대한 거물이 있음을 암시하며 자신을 과시한다. 하지만 진실의 심판앞에서 너무도 초라한 천용덕, 스스로 죽음으로서 자신과 자신이 만든 공화국과 함께 무너져 내린다. 모든것이 끝난 것일까? 스릴러 추리물은 꼭 끝에 우리가 놓쳤던 어이없는 반전을 놓는다. 이 영화에도 우리가 그동안 천용덕의 만행 때문에 가려진 '정말 이끼처럼 살아가고 있는 자' 를 놓치고 만다. 죄를 범하고 목현으로부터 죄를 사한 것처럼 평범하고 보통사람들처럼 살아가던 그들, 그들 속에서 '진정한 이끼' 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딱 한사람 있다. 그들 모두는 '이끼인척 살았던 자' 들 뿐이었다. 이끼가 이끼의 피를 빨아 먹으며 거머리처럼 살아가고 있던 그 마을에서 심판의 날을 기다려온 사람, 그가 마지막에 알듯 말듯한 미소를 짓는다. 

쟁쟁한 연기파들이 모인 영화.
천용덕 역할의 정재영이며 감초로 잘 나가는 김상호와 특별출연을 한 '허준호'  박검사역의 유준상등 모두가 연기파 배우였다. 그들의 연기속에서 정말 돋보인 연기가 있다. '배우 유해진' 그의 능글맞으면서도 웃음을 자아내는 감초연기에 유해국과 박검사 앞에서 신들린듯 자신들의 지난날을 쏟아내는 정말 '신들린 연기' 와 영화의 긴장을 풀어가는 간간이 웃음을 자아내는 연기가 이 영화를 더욱 살려냈다.이 영화를 보며 그의 전작 <이장과 군수> 가 왜 그리 떠 오르는지. 천용덕의 긴장감을 주는 연기에 맞서 김덕천역인 유해진의 연기는 영화를 맛깔스럽게 변화 시켰다. 다른 영화보다 긴 시간인 2시간 43분이란 시간이 지루할 때 쯤이면 기어코 한방씩 터트려주는 그의 센스가 영화를 살려내기도 하고 이 영화를 조율하는 역할을 단단히 했다.

원작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영화화 되고나면 워낙에 원작과 비교를 하여 말이 많은 법, 하지만 영화는 영화로 봐야 하는것 아닌가. 만화와는 다른 영화의 세계가 있는데 난 무척 재밌게 봤다. 정재영의 카리스마 있는 연기도 그렇고 감칠맛 나는 연기파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고 살벌하긴 했지만 그곳의 경치도 좋았다.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라서 보고 싶다던 애들과 함께 하지 않고 막판에 남편과 둘이서 보게 되었지만 안보면 후회할 영화였던 것 같다. 이런 영화는 극장에서 보면서 스릴감을 느껴야 하는데 그리 무섭지는 않았지만 여름밤 볼만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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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처럼 살아가는 그들의 평범하지 않은 삶 속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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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박물관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27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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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말, 그를 눈 멀게 한 18살의 퓌순
오르한 파묵의 소설들을 읽다보면 무척이나 섬세하고 세세하다. 전작 <내 이름은 빨강>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세밀화를 보듯 그가 '언어' 로 그려내는 세세함은 어찌보면 지루하기도 하지만 한번 그의 맛에 빠져 들면 헤어나올 수 없는 '깊은 맛' 을 전해 주기도 한다. 1975년, 부와 명예 어느것 하나 부족하지 않은 터키의 상류층에 속하는 케말에게는 정말 잘 어울리는 짝인 '시벨' 이 있다. 그들은 곧 있을 약혼식을 앞두고 모두의 관심을 받고 있는 정말 남들이 부러워하는 환상의 커플이다. 어느날 시벨이 어느 부티끄 앞을 지나다 걸려 있는 가방을 보고 이쁘다고 한다. 케말은 그 가방을 사서 약혼녀에게 줄 생각을 하며 그 가방을 기억해 두었다가 그녀와 헤어진 후 그곳에 가게 되고 상점에서 뜻하지 않게 외가쪽 친척뻘인 갖 18세 생일이 지났고 미인대회에도 나갔을 정도로 아름다운 '퓌순' 을 만난다. 첫 눈에 케말을 사랑에 눈 멀게 한 그녀 퓌순, 그들은 남들의 눈을 피해 어머니가 사 놓고 돌보지 않는 멜하메트의 아파트에서 퓌순의 수학공부를 봐준다며 꿈 같은 44일간의 사랑을 나눈다. 

약혼식 날, 모두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그들은 성대한 약혼식을 하지만 케말은 온통 퓌순만 찾고 퓌순에게 집중되어 있다. 그의 고민을 친구에게 털어 놓으며 벗어나려 했지만 그 또한 여의치 못하고 시벨과 점점 거리가 생기게 되고 아버지 또한 결혼과는 다른 사랑을 나누었던 여인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부자지간에 비밀을 나누게 되지만 그도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게 되리라곤 생각을 못했다. 시벨과 약혼식 이후에 관계가 발전되어 잘 되리라 생각했던 케말. 하지만 약혼식 이후 퓌순의 행방이 묘연해지면서 그는 퓌순과 함께 했던 그 모든 '추억' 이 담긴 것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녀가 머물렀던 흔적이 담긴 것들을 모으고 그녀의 체취를 맡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 한다. 그런 그를 뒤에서 수근거리지만 약혼녀를 그를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지만 케말의 병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점점 더 깊어지기만 한다. 

퓌순이라는 커다란 사랑의 그림자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점점 깊은 늪에 빠져 들 듯 헤어나오지 못하는 케말,시벨과 해안별장에서 동거를 하며 지내 보아도 정신병원에 치료를 다녀도 병은 차도를 보이지 않자 시벨은 파리로 떠나고 그들의 관계는 소원해진다.친구들을 통해 겨우 소식을 전해 듣던 그들은 시벨이 친구를 통해 약혼반지를 전해줌으로서 사실상 파혼에 들어가고 그는 퓌순을 찾는 것에 열정을 쏟는다. 그녀와 미인대회에 함께 참가를 했던 친구를 통해 편지를 보내가 어느날, 퓌순에게서 온 짧막한 편지를 발견하고 부푼 마음에 그녀가 잃어버렸던 '귀걸이 한 쪽' 과 어린시절 추억이 있는 '자전거' 를 들고 그들이 이사를 해 간 가난한 동네로 그들을 찾아 가지만 그녀는 어린 시나리오 작가와 결혼한 상태, 자신을 가누지 못하고 그녀와 스치는 그 한순간 마쳐 행복으로 여기며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퓌순의 남편이 계획하는 그녀를 여주인공으로 내세울 터키영화제작에 참여를 하겠다며 함께 영화를 보러 다니는 케말, 그에겐 온통 먼 미래의 생각만 늘 가득하다.

'이 담뱃갑, 진열장에서 꺼내 침실로 가져왔던 퀴타흐야산 재떨이, 찻잔과 유리컵, 퓌순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손에 들고 신경질적으로 만지작거리곤 했던 조개껍질, 당시 그 방의 무겁고, 지치고 답답한 분위기를 떠올릴 수 있도록, 그리고 퓌순의 아이같은 머리핀을, 이 이야기를 어떤 아이가 경험했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진열한다.'
'이 이스탄불 힐튼 호텔 엽서는, 내가 지금 서술하고 있는 시절에서 이십 년 정도 지난 후, 순수 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이스탄불의 유명한 수집가들을 찾아다니고. 이스탄불과 유럽의 벼룩시장을 돌아다닐 때 손에 넣었다.'

퓌순이 떠난 후, ' 이제 퓌순은 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받아 들인 후 겪었던 고통이 날이 갈수록 사그라들자, 그녀의 부재에 서서히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절대,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나는 단지 물건들이 주는 행복으로 시간을 때우고 있었던 것이다.' '퓌순 없이 보낸 날들에 했던 모든 것은 속되고 평범하고 무의미하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이 조잡함의 원인이 된 모든 사물과 사람에게 분노를 느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집에 들어가 어머니와 함께 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의 퓌순을 찾는 방황은 끝나지 않고 이어져 그녀를 찾긴 찾았지만 이제 영원히 그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사랑이 되었으니 그가 행복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은 언제인가?' 라는 물음을 던져주는 케말의 '순수 박물관' 은 케말조차 '사실 그 누구도,경험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는 자신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라고 하고 그 사랑으로 인해 '특별한 우울증' 을 앓고 '사랑 때문에, 질투 때문에,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이제 모든 일에 대해 제대로 평가를 내리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다.' 점점 모든 일에 자신을 잃어가는 케말, 아버지가 날이 갈수록 삶을 포기하는 것 같고 시벨의 어머니는 강박적으로 오래된 옷과 무건을 보관하고 있고 케말의 어머니는 반대로 오래된 물건은 모두 다른 집으로 유배를 보내는 것을 보며 나이들어가면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것을 놓치며 사는 것은 아닌가 생각을 하는 그, 그가 꿈 꾸는 '순수 박물관' 에 놓여질 퓌순과의 사랑과 추억이 어린 물건들을 수집하는 그는 혹은 이상스럽게도 비취기도 한다. 정신분열증, 혹은 강박증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하지만 '순수한 사랑을 간직하고 싶은 남자' 로 생각을 달리하면 정말 지고지순한 '순애보' 적인 케말이다.

'꿈속에서 해바라기 밭에 있었어. 해바라기들이 가변운 바람에 이상한 모양으로 물결쳤어. 어쩐지 아주 무서웠어. 소리치고 싶었는데 소리를 칠 수가 없었어.' 그녀의 꿈으로 인해 미래가 결코 밝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파묵은 소설에 이런 복선을 잘 깔아 놓는다. 케말의 약혼식 이후 퓌순이 그를 떠났던 일년여 시간 동안 케말의 방황은 아날로그적이면서 슬로모션으로 모든 것을 표현해 놓듯 세세하게 담겨져 있어 조금 지루함을 거치는가 싶다가 중반을 넘어서부터 태엽이 감기면 감길수록 탄탄함에 점점 힘들어지는 것처럼 소설은 스피드를 찾기 시작하고 시나리오 작가의 아내가 된 퓌순의 말처럼 '사실 인생은 영화처럼 단순하지 않아' 이 이야기가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미리 말해준다. 이 소설을 읽다가 문득 기형도의 '빈집' 이란 시의 싯귀를 생각했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사랑을 잃으면 무언가 행동을 하지 않으면 죽을것만 같은 그 공허함, 케말은 퓌순이 떠난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하여 아님 자신이 가장 행복하고 가장 순수한 사랑을 했던 그 여인의 모든 것을 간직하고 싶어 그들이 44일간 사랑을 나누었던 멜하메트의 어머니의 낡은 아파트를 보고는 박물관을 생각해 내지 않았을까. 어찌보면 사랑을 기억하고 추억을 기억한다는 것은 한사람에 국한된 것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한 영혼' 을 아는 모두가 함께 나눌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내 이름은 빨강> 에서는 세말화가들을 통해 터키의 문화를 소개했다면 이 소설은 '케말의 사랑' 을 통해 터키의 상류층및 젊은이들이 누렸던 문화를 소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터키의 작가이며 이스탄불의 작가로 알려진 '오르한 파묵' 은 소설속의 작가 또한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써서 장난스럽기도 하고 좀더 독자에게 친밀감을 주기도 한다. 터키의 특색이 잘 들어난 그의 소설은 한번 읽으면 정말 빠져 나올 수 없는 늪같아 그의 다른 책인 <하얀 성> <검은 책> <이스탄불> <눈1,2> 권을 소장하고 있고 읽어보려 하지만 기회가 오질 않았는데 <순수 박물관> 으로 그의 첫사랑 이야기인듯 하면서도 아닌듯함을 교묘하게 꾸며 놓은 사랑 이야기의 매력에 한동안 빠질 듯 하다. 44일간 사랑을 했던 한 여인을 잊지 못해 평생을 그 사랑의 그늘에서 살아가는 남자가 있다면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만남과 헤어짐이 너무도 쉬운 요즘, 디지털적인 사랑에 경종을 울리듯 케말의 아닐로그적 사랑은 가슴 깊이 간직해 두었던 낡고 바랜 '첫사랑' 을 끄집어 내어 하루쯤 추억해 보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은 언제일까? 2권이 기다려지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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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쪼가리 자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1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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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다르도의 사악한 반쪽이 돌아왔어.오늘 재판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구나.'
전쟁에 대해서도 세상물정도 모르는 투르크인과의 종교전쟁에 참여를 하게 된다. 대포한번 보지 못했던 그가 출신이 불분명한 조카겸 하인인 쿠르치오를 데리고 전장에 나가지만 그는 아무런 경험도 없이 마음만 앞서는 자작일 뿐이다. 그런 그가 전장에서 중위라는 직책을 맡아 앞에 서게 되었는데 처음보는 대포의 앞에서서 진두지휘를 하다가가 그만 대호에 맞게 되었다. 어찌 되었을까? 그의 몸은 정확하게 반쪽으로 나뉘어 오른쪽만 남았는데 그래도 아무런 이상이 없어 살아남게 되었다. 하지만 그 반쪽은 '악' 밖으로 악을 분출하는 인간의 악한 면을 가진 반쪽이었던 것.

고향에서는 모두가 그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가 그가 망토에 가려진 왼쪽과 함께 절뚝이며 오는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하지만 자작이기에 그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복종하듯 해야 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런 아들의 악행을 보고는 숨을 거두고 말아 성을 다스리는 그의 몫으로 돌아가고 그는 자신의 반쪽에 대한 분풀이처럼 죽음 혹은 그처럼 반으로 모든 것을 쪼개 놓으려 한다. 그런 그에게는 어릴적부터 그를 키워주어 그의 손발과 같은 유모가 있었는데 그 유모의 침실에 까지 불을 질러 화상을 입게 만든다. 유모의 얼굴에 난 화상의 상처를 문둥병이라며 쫒아내려는 그에게 ' 네 죄의 흔적이다... 너는 아직 잘못을 느끼지 못하지만 지옥에서 네가 겪을 고통에 비하면 이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란다. 내 아들아.' 유모는 그의 선을 기억하고 있기에 그를 감싼다. 하지만 반쪼가리 자작은 유모를 문둥병 마을로 쫒아 버리고 만다. 

그의 악행은 성의 모든 사물과 사람, 심지어 식물들 까지 공포에 떨게 만든다. 그가 지나간 자리의 모든 것들은 반쪽이 나 있기에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기도 하고 그의 그런 횡포를 보고 도망치게 된다. 그런 그의 눈에 가난하지만 당당한 양치기 목동 소녀가 눈에 들어온다. 그에게도 사랑이 남아 있었던 것인지. 소녀의 부모님은 자신의 딸과 결혼하겠다는 자작이기에 그가 다시 선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그러던차에 그의 남은 반쪽인 왼쪽, 선한면이 고향에 돌아온다. 갈갈이 흩어져 죽었다고 알았던 남은 반쪽이 다행히 살아 돌아오지만 악한 그의 반쪽과 맞부딪히게 된다. 어느쪽이 그의 진실일까? 왼쪽의 자작도 양치기 소녀인 파멜라와 결혼을 하겠다고 한다. 악한 쪽과 결혼을 해야 할까? 아님 선한 반쪽과 결혼을 해야 할까? 악한 쪽도 자작인 메다르도요 선한 쪽도 자작임에 틀림이 없다.

'온전한 것들은 모두 이렇게 반쪽을 내 버릴 수 있지... 넌 온전한 두뇌들이 아는 일반적인 지식 외의 사실들을 알게 될 거야. 너는 너 자신과 세계의 반쪽을 잃어버리겠지만 나머지 반쪽은 더욱 깊고 값어치 있는 수천 가지 모습이 될 수 있지. 그리고 너는 모든 것을 반쪽으로 만들고 너의 이미지에 맞춰 파괴해 버리고 실을 거야. 아름다움과 지혜와 정당성은 바로 조각난 것들 속에만 있으니까.'

선함만을 가지고 할 수 있을까? 아님 악함만을 가지고 할 수 있을까? 선한 면의 왼쪽을 메다르도 자작이라 할 수 없고 악한 면의 오른쪽만을 가지고 메다르도 자작이라 할 수 없듯이 세상을 사는데는 선과 악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야 할 수 있는 것 같다. '비인간적인 사악함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비인간적인 덕성사이에서 우리 자신을 상실한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무엇이 진짜인지 난해한 문제에 빠질 때가 있다. 그들도 어느쪽의 자작을 믿고 따라야할지 벽에 부딪혔지만 다행이랄까 반쪽의 자작들은 결투를 하던 과정에서 합체를 하게 되고 다시금 원래상태의 자작으로 돌아지만 서로 반쪽으로 나뉘어 고난의 시기를 거쳤기에 예전의 메다르도 자작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 소설은 전설같은 이야기로 현실감은 조금 떨어지지만 만약에 인간의 몸이 두 부분으로 분리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물음표를 던져준다. 선함만으로 살아도 선함속에는 악함이 도사리고 있다고 보고 악함만으로 살아도 악 속에 선이 깃들어 있다고 보는 '인간이 내면' 을 다룬 소설로 짧지만 깊은 의미를 준다. 처음 접하는 작가이지만 독특함이 오래도록 기억될 소설로 무엇이 정답이라고 콕 집어 낼 수 없는 '인간의 내면' 을 잘 다룬 소설인듯 하다. 어른을 위한 동화처럼 읽고 나면 한줌의 여운이 가슴 깊이 남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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