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화 속으로> 영화 리뷰가 

이주의 우수리뷰로 뽑혔다. 

세번째 우수리뷰~~  

한국전쟁 60년을 맞이하여 본 영화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영화였는데 이런 행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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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포차 버들골 이야기 - 7평 허름한 가게에 ‘정성’이 가져온 기적
문준용 지음 / 글로세움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절대 밀릴 수는 없다. 그게 절대 밀려날 수 없다는 내 의지였다. 안 되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하늘이 야속하기도 했다. 정초부터 불난리라니 액땜치곤 너무 과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간사한 건지, 내가 엄청 긍정적인건지, '불난 집은 부자가 된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 서글프기도 햇지만 속맘엔 은근히 정초에 불까지 났으니 ' 아, 얼마나 잘되려고 그러나' 기대도 있었다.'  바닥까지 밀려 났기에 그가 더이상 밀려 날곳이 없었던 것인가, 아님 가게를 열고 얼만 안되는 수입이던 때 정초에 불난리를 겪어서 그야말로 '버들골' 에 난리가 난것일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았다. 모든것 체져 놓고 손님의 말에 기울일줄 아는 주인이 있고 손님의 마음에 그야말로 <정성>으로 대한 그가 있어 가게가 대박이 나지 않았나싶다.

'장사는 요령이 아니고 정성임을 깨달았다.'
조금 잘되면 위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가난하던 시절을,진정 자신이 바닥이던 시절을 잊을 때가 있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을 못하고 척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손님의 말에 귀 기울이며 손님의 의견을 자신의 음식에 반영하니 잘되지 말란 법이 없을 듯 하다. 그가 잘 나가던 시절, 여기저기에서 돈을 끌어다 신발공장을 차리고 IMF로 정말 가족을 버리듯 바닥으로 밀려난 그가 택할 수 있는 삶은 무엇이었을까? 노숙자를 많이 배출했던 IMF, 아직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그렇게 보면 그는 정말 성공한 사람이다. 지금 그의 위치를 본다고 해도 성공의 반열에 그를 올려 놓아도 누가 뭐라 할 수 없을 듯함이 오롯이 담겨진 '버들골 이야기' 그곳엔 정이 있고 사람냄새가 있고 맛있는 음식이 있고 낭만이 있어 더 좋은 곳인듯 하다. 

'손님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고마운 스승님이까.'
언제까지 포장마차 주인으로 남아 내가 힘들 때 가게를 찾아 주었던 손님들을 맞고 싶다는 주인장의 철학이 넘 맘에 든다. 이제는 물러나 뒤에서 지켜봐도 되는 위치가 되었지만 그가 '희망' 을 찾은 일터이고 '정' 으로 이룩한 세월이 녹녹히 녹아난 '버들골' 은 읽는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 났다. 일년여 동안 집앞의 분식집에서 알바를 한적이 있다. 나중에 좀더 나이를 먹으면 내 이름의 북카페를 해 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몸으로 경험을 쌓아 보려고 시간도 벌겸 알바를 했는데 남의 돈을 받기란 정말 힘들었다. 더구나 식당일이라는 것이 좀처럼 짬이 나지 않았다. 몸도 힘들고 맘도 힘들었지만 내 삶에 좀더 자신감을 심어준 시간들이었고 무엇이든 하면 할 수 있다는 '희망' 을 발견하기도 했으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도 했다.그때 손님들과 부딪히며 얼마나 힘들었는지,그들의 마음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었지만 어느정도 귀 기울여 준다는 것이 보통 힘든일이 아님을 알았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솔직 담백한 경험의 세월은 가슴을 훈훈하게 해 주었다.

'주전자에서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들리면 따듯한 커피 한 잔이 생각난다. 종이컵에 안전하게 물을 따른다. 욕심을 부리면 커피 맛이 달라진다. 가슴이 차지도록 상대방이 내 마음을 몰라줘서 화가 났던 기억설탕처럼 달콤하게 녹는다. 돌아보면 견딜 수 있는 고통 앞에 서 괜한 엄살을 떨었다. 주전자가 제 몸을 먼저 데워서 쏟아내는 뜨거운 물이 비록 한 잔 커피를 위한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본다.'

'장사하는 사람에게 생기는 문제의 답은 손님 테이블에 있다.'
손님 테이블에 작은 고추가루 하나 허투루 넘겨 보지 않고 남긴 반찬 하나하나 조밀조밀 따져 보아 좀더 나은 내일의 설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그 작은 곳에서 발견하여 들려준다. 식당에 음식을 먹으러 가면 테이블이 지저분한 곳이 많다. 손님이 오면 테이블을 한 번 닦아 주는 것이 아니라 반찬이나 그외 물컵등을 먼저 내오기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기가 꺼려 질 때가 있다. 그럴때는 냅킨을 꺼내어 올려 놓기도 하는데 미리 한번 깨끗하게 닦아주는 센쓰를 발휘하여 손님이 찡그리는 일이 없도록 하는 '작은 배려' 애서 부터 손님의 마음을 읽으니 손님과의 거리를 좀더 좁히고 손님의 마음을 읽어주어 십년지기 단골손님들을 많이 확보하지 않았나 한다.그렇게 하여 '손님 감동' 으로 이어졌으니 그간의 세월동안 감동과 정에 얽힌 사연과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싶다. '돈은 열심히 일하면 벌린다. 그러나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먼저 스스로 감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늘 발전하고 생각하고 좀더 '사람속을 파고드는' 그런 주인장이 되려 하는 그의 철학이 참 맘에 든다. 음식을 담아 내기전에 미리 그림으로 그려보기도 하고 손님들에게 시식을 선보여 손님의 입에 맞는 음식을 내 놓으려 하는 주인의 자세가 있으니 그곳을 찾는 손님이라면 얼굴을 찡그리는 일은 드물듯 하다. 누구에게나 맘에 맞을 수는 없겠지만 손님의 맘에 근사치 다가가려는 자세가 중요한듯 하다. 자신의 돈벌이를 위하여가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려는 자세가 더 중요한듯 하다.그런 그의 철학이 있어 빚쟁이들에게 밀려 바닥으로 나 앉은 그를 현재로 만들어 준 듯 하다. '나는 똑똑한 사람보다 따듯한 사람이 더 좋다.' 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정말 낭만포차인듯 하다. 그곳에 가면 사람의 정이 있고 따듯함이 묻어나 가슴안에 묻어 두었던 지난 이야기들도 모두 꺼내 놓아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 지금 삶이 힘들다고 생각하거나 무언가 나만의 '희망' 을 꿈꾸고 있는 마음이 부자인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주머니가 넉넉해서 부자가 아니라 마음이 따듯해서 부자인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잠시 행복한 낭만을 꿈 꿀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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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그네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배고픈 천사는 입 안에, 내 입천장에 오롯이 매달린다. 그건 배고픈 천사의 저울이다. 배고픈 천사가 내 눈을 제 안경처럼 덧쓰고, 심장삽은 현기증을 일으키고, 석탄은 흐릿하게 보인다. 배고픈 천사가 내 뺨을 그의 턱 위에 끼워 맞춘다. 그리고 내 숨결을 그네 뛰게 한다. 숨그네는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심한 착란 상태이다.' 축음기 상자였던 돼지가죽 트렁크에 아버지의 외투와 우단 깃이 달린 도회풍의 할아버지의 외트, 삼촌의 니터보커 바지를 넣고 이웃 타르프 씨가 준 가죽각반을 넣고 피니 고모가 준 초록색 양모장갑을 넣고 지난 크리스마스에 선물 받은 붉은 포도주색 실크스카프와 세면도구를 넣어 길을 떠날때 소년은 '배고픔' 이 그렇게 큰 적이 될지 몰랐다.

17세 소년 레오, 그는 강제수용소에서 5년여 동안 수감생활을 하며 '삶과 죽음의 숨그네' 사이를 오가며 배고픔과 향수 그리고 죽음과 시체에 두려워 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 ' 우리는 수용소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시체를 치우는 법을 배웠다. 사후경직이 시작되기 전에 죽은 이들의 옷을 벗긴다. 얼어 죽지 않으려면 그들의 옷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들이 아껴둔 빵을 먹는다. 그들이 마지막 숨을 거두면 죽음은 우리에게 횡재다.' 다른이의 죽음을 통해 남겨진 사람들은 '삶의 연장' 되는 처절한 수용소의 생활에 그는 집으로 향하는탈출보다도 강제수용소로 돌아가는 길이 더 익숙하기만 하다.

소설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강제수용소의 체험기와 같이 건조한 문체이지만 사실적으로 쓰여졌다. 독일계 소수민족에서 태어난 그녀, 어머니가 강제수용소에서 오년을 보냈고 아버지 나치 무장친위대로 징집되었다고 돌아왔고 할아버지 또한 루마니아에 독재정권이 들어서고 재산을 모두 몰수 당했다고 하니 그녀의 삶이 닮긴 소설이라 할 수 있을 듯 하다. 루마니아에 살던 17세에서 45세 사이의 독일인은 남녀를 불문하고 소련의 강제수용소로 유형을 갔다하니 그녀와 루마니아의 소수민족의 삶이 오롯이 담긴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동료 '오크사 파스티오르' 와 함게 이야기를 강제추방을 당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 나가다가 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나서 쓰게된 소설 <숨그네>는 그녀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 주었지만 독자들에겐 참흑한 강제수용소 생활을 좀더 세세히 전해주는 계기가 된 듯 하다.

'너는 돌아올거야.' 라는 할머니의 말이 레오를 집으로 돌아오게 만들었을까? 죽음보다 더한 배고픔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강한 에너지를 안겨주는 말이 되었을까? 가족들은 자신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무관심하다고 생각하게 된 레오,적십자를 통해 온 한장의 엽서에 담긴 자신을 대신할 새로운 동생의 탄생에 적개심을 품었던 그가 강제수용소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서서히 적응해 나가며 자신이 가졌던 생각들을 고쳐나갈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니의 말' 이나 할어버지의 죽음이후에 이웃이 들려준 자신에 대한 사랑이 담긴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삽질 1회 = 빵 1그램처럼 처절하게 '생' 으로 달려가기 위한 그의 노력이 수용소에서 그가 배고픔을 이기게 해 주기도 하였겠지만 죽음보다 무서운 배고픔을 이겨내는 것에는 방법이 없었을 듯 하다. '절대영도에는 세칙이 없다. 배고픈 천사가 뇌를 훔치는 도둑이라면 절대영도는 법 자체다. 빵의 정당성에는 현재만 있을 뿐, 전후 과정이 없다. 완벽하게 투명하거나 완벽하게 비밀에 휩싸여 있다. 빵의 정당성은 배고픔이 뒤따르지 않는 폭력과는 다른 폭력이다. 빵의 법정에는 일반적인 도덕이 들어설 수 없다.' 법도 없고 먹을것도 부족했던 곳에서 그들은 좀더 배고픔을 이겨내보기 위한 방법으로 '빵바꾸기'도 하고 자신이 가진것을 하나하나 팔아 먹을것 대용으로 없애기도 했지만 '아마포 손수건' 만은 트렁크 밑에 남겨 두었다. 그 손수건이 자신과 같다고 느낀 레오,손수건마져 없애버리면 영영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신세가 될 것같아 '너는 돌아올 거야.' 라는 할머니의 말과 함께 했던 손수건을 고이 간직했던 그의 질곡의 수용소의 생활은 비참 그 자체이다. 

죽은 시체의 머리카락마져 추위를 막기 위한 양탄자로 쓰이는 그곳에서 그가 마주한 시체는 자신이 직접적으로 겪는 '배고픔' 보다는 무서움이 덜 했다. 하지만 자신들이 철처한 배고픔에 노출되도록 한것이 관리자들이 뒤로 빼돌린 것 때문에 더한 고통을 겪었다는 것을 알고는 그들이 느낀 '배신감' 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강제수용소에서 그들이 그토록 이겨내지 못한 추위와 배고픔을 나 몰라라 한 관리자들, 그들의 최후 또한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처참 그 자체였다. 자신은 수용소에서 그토록 힘든 시간을 이겨내는 동안 고향집에는 여전히 예전과 별다르지 않은 삶이 이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안 레오, 자신의 현실과 가족이 누리고 있는 현실사이의 간극을 그가 이겨낼 수 있었다는 것이 다행이다. '고향에서는 내가 아직 살아 있음을 아무도 모른다. 지금쯤 할아버지는 고향 집 베란다에서 차가운 오이샐러드를 먹으며 생각할 것이다. 내가 죽었다고. 할머니는 헛간 옆 방바닥만한 그늘에서 닭 울음소리를 내며 암탉들을 불러 모은 후,모이를 뿌려주며 생각할 것이다. 내가 죽었다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마 벤히에 있을 것이다. 어머니는 손수 만든 세일러복을 입고 산골 풀밭 한가운데 누워 생각할 것이다. 나는 이미 하늘에 있다고. 나는 어머니를 흔들며 말할 수 없다. 어머니, 나를 사랑해요. 나 아직 살아 있어요.' 

6월,우리에겐 한국전쟁 60년을 맞는 해라 그런가 더 가슴이 아팠다. 얼마전에 본 영화 <포화 속으로> 의 학도병도 생각나고 그 학도병과 오버랩되는 17세 소년 레오가 살기 위해 옷의 모든 부분에 감자를 넣어 수용소로 돌아오는 부분을 읽으며 가슴이 아렸다. 고향을 향하여,자유를 향하여 도망칠 수도 있는데 먹을것을 택하여 수용소로 돌아가는 그의 무거운 발걸음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나는 눈을 감고도 막사로 가는 길을 찾는다. 나는 외출이 필요 없다. 내게는 수용소가 있고, 수용소에는 내가 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침대 하나와 펜야의 빵과 양철그릇 뿐이다. '  한참 먹을 것에 예민할 나이이고 자신만을 찾을 이기적인 나이에 그가 배우고 겪은 '삶과 죽음' 이라는 명제가 그의 일생을 어떻게 바꾸었을지, 작가가 창작의 자유를 찾아 고향을 버리고 망명을 택하여 삶이 박탈당한 강제수용소 이야기를 진솔하게 우리에게 들려주기 까지 얼마나 긴 터널을 걸어왔을지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나에게 주어진 '오늘' 을 더 값지게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소설이다.진실은 언젠가는 수면으로 떠 오르기 마련이다. 감추려 하면 할수록 터져 나오려 하는 압력은 더 커지는 듯 하다.처참이 너무 세세하고 무미함이 자리하여 조금은 읽는데 힘이 들수도 있지만 인내를 가지고 읽다보면 '삶의 희망' 이 나타나듯 '진실' 을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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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씨마을의 꿈>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딩씨 마을의 꿈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딩씨 마을로 통하는 길은, 십 년 전에 딩씨 마을 사람들이 피를 팔아 닦은 시멘트 길이었다.' 
피를 팔아 나 뿐만이 아니라 마을을 잘살게 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했다,왠지 섬뜩하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딩씨 마을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의 피를 팔는 것이었다.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샘물처럼 퐁퐁 솟아나는 ' 자신들의 피를 처음엔 한달에 한 번 팔던 것이 이십일 십오일 그렇게 모두가 안이하게 꿈에 부풀어 있을 즈음 그들은 그들이 선택하지 않은 죽음에 이르는 병 '열병이라 하는 에이즈' 에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피를 팔았던,피를 팔지 않았던 걸려 들고 말았다.

'피를 파실 분,피 사실 분 안계세요?'
어찌보면 그들의 치부를 들어내는 소설이라 '창작의 날개를 꺾인 소설' 이 되었던 것인지,아님 옮긴이의 말차럼 '침회 의식의 결여'로 인한 비극에 둔감한 중국인들에게 너무도 비극적이라 받아 들여지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딩후이' 를 놓고 보면 끝 없는 인간의 욕망의 끝이 얼마나 무서운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학교에서 종을 치는 일을 하며 선생님들을 대신하여 아이들에게 공부도 가르치는 인생이 한방향을 바라보고 가는 것처럼 언제나 늘 올곧은 딩후이의 아버지인 할어버지와는 다르게 그의 아들들은 큰아들 딩후이도 욕심이 끝이 없었지만 딩 량 또한 열병에 걸린 이후 아내가 아닌 사촌의 아내인 링링과의 불륜을 저지른다. 할아버지의 아들들은 딩씨 마을에서는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이며 딩후이는 딩씨 마을의 사람들이 '열병' 에 걸리게 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화자는 열두살의 딩후이의 아들이면서 그는 독이 들어 있는 과일을 먹고 죽었다. 할아버지가 있는 학교의 담장에 묻혀 있는데 그가 이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화자이다. 이야기의 주를 이루는 인물로는 할아버지와 그의 아들인 딩후이가 평행선처럼 이야기 끝까지 나란히 간다. 어느 쪽으로 치우침없이 늘 변함없고 반듯한 할어버지와는 다르게 그의 아들인 딩후이는 그야말로 변신술이 남다른 인간이다. 언제든 자신에게 유리하면 무엇이든 남을 속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부를 축적하려 한다. 가난하던 마을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매혈' 을 누구보다 잘 이용하여 큰 부자가 된 딩후이,그는 남들과 다르게 삼층집에서 살지만 그의 욕심은 끝이없다. 그가 피를 뽑을 때 솜과 주사기를 여러번 사용하여 열병이 더 번졌다는 것을 모두가 알기에 그를 죽도록 미워한다. 할아버지는 그런 사실들을 알고 또 그 사실때문에 손자가 죽게 되었다는 것을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개두' 를 하게 하지만 그는 자신이 지난일을 당연하게 받아 들인다. 그런 아들의 목을 조르고 그를 죽음직전까지 가게 하지만 아들은 그후에도 달라짐이 없다. 오히려 어려움을 악이용하여 자신의 부를 더 축적한다.

'모두 오늘은 있지만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오직 우리 할아버지의 몸에만 열병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몸에 열병이 전염되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아주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관리자가 되었다.' '새월이 시신 같았다.'  오늘은 있지만 내일이 없는 사람들은 죽음직전까지 자신들의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학교에 모여 공동생활을 하면서도 도둑질을 하는가 하면 자신이 죽고나면 관에 까지 '관인' 을 넣어 달라는 둥, 그들이 평생 집착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새삼 느껴본다. 딩씨 마을의 '고통과 절망' 을 끝내는 동시에 아들인 딩후이의 욕망을 잠재우는 길은 아들인 딩후이를 그의 손으로 죽이는 일 뿐이다. 과연 자신의 손으로 아들을 죽일 수 있을까?

'온 하늘과 땅을 뒤덮은 꽃의 바다가 평원 위로 끝없이 펼쳐진 것을 보았다. 딩씨 마을과 딩씨 마을 어귀로, 논밭과 황허 고도 위로 끝없이 펼쳐진 것을 보았다. 온갖 색깔의 빛을 뿜어내면서 황금 벽돌과 황금 기와,황금 가지,금괴와 금구슬을 연결 시키고 있었다... 땅위에는 신선한 곷들이 만발하고 땅 밑에서는 황금 열매가 맺히는 광경' 할아버지가 꿈 속에서 보았던 딩씨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 할아버지의 꿈이며 딩씨 마을이 이루고자 한 꿈일터지만 '매혈' 로 인하여 딩씨 마을은 사람이 죽어나가고 가축들이 죽고 관을 짜기 위하여 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그야말로 죽음의 땅이 되어가고 말았다.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잔인한 것이란 말인가? 쉽게 돈을 쥘 수 있을 때는 피를 한 번 뽑고 설탕물을 먹고 한나절 누워 있으면 부를 쥘 수 있을것만 같았는데 그게 바로 자신들이 자신을 스스로 죽이는 길이었던 것이다. 

처절한 '고통과 절망' 을 피 비린내를 풍기며 너무도 세세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작가의 말에서 '이십만 자에 달아하는 이 작품을 쓰면서 내가 소모한 것은 체력이 아니라 생명이었다는 사실이다.' 매혈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죽음에 이르렀는가. 끝이 없는 인간의 욕망이 부른 '고통과 절망 죽음 그리고 폐허와 몰락' 의 세상에서 그야말로 '하늘이 바뀌고 땅이 변한 마을' 이 되어 버린 딩씨 마을은 미래가 없다. 학교에서 공동생활을 하던 그들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삶이야. 하루를 살면 하루의 의미가 생겨날 뿐이지.' 라는 삼촌의 말처럼 당장 오늘 하루의 의미로 살던 그들이 학교의 칠판까지 모두 떼어내어 가져가 버린 텅빈 학교처럼 미래를 위해 나무 한 그루,칠판 하나 남겨 두었다면 그들의 미래는 어찌 되었을까? 스피노자의 말처럼 '지구가 내일 멸망한다고 해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라고 생각을 달리한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열병이라고 하는 '에이즈' 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이와 비슷한 소설로 알고 있는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읽어보려 하다 기회를 잃었는데 이참에 한번 읽어봐야 겠다. 독특하면서도 삶의 자세에 대한 생각을 갖게 했던 소설로 여운이 길게 남을 듯 하다. 초판이라 '오자' 가 넘 많아 약간 먹구름이 끼게 하였지만 재판에서는 수정되리라 본다. 좋은 소설을 만난 기쁨은 오래도록 남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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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제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중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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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목표한 것이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 것이며 지금도 그들의 책에 주목하고 있다. 내가 주로 읽는 것은 문학이고 소설인데 우리 문학을 짊어지고 나갈 젊은 작가들에는 인색했던것 같기도 하고 풋풋한 그들의 '창의력' 이 조금은 등한시된 듯 하여 좀더 '젊은작가' 에 관심을 기울이기로 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작가가 '천명관' '편혜영' '안보윤' '천운영' '김숨' 등 둘러보니 읽어야 할 작가들의 작품이 너무도 많았다. 어찌보면 출판사의 전략도 있는데 일본소설은 쉽고 더 많이 접할 수 있는 반면에 우리젊은 작가들은 한발 뒤로 물러나 아직 햇빛을 기다리고 있는 작가들이 많은듯 하다. 그들을 만난다는 것은 우리 문학의 미래를 만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책에는 7인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실려 있다. 김중혁,편혜영,이장욱,배명훈,김미월,정소현,김성중.그중에 내가 알고 있는 작가로는 편혜영과 배명훈이다. 편혜영은 <재와 빨강>을 구매를 해 놓고 아직 읽지를 못했다. 반면에 배명훈은 그의 작품 <타워>를 알고 있는데 아직 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니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모두다 생소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풋풋한 새싹과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무언가 때가 덜 묻은 세상을 만나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고 <문학동네>에서 좋은 취지에서 마련한 상인듯 하여 나름 뿌듯하기도 했다.누군가는 그들을 '양지' 로 나오게 하여 좀더 밝은 빛을 보게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미래인 것이다.

대상 김중혁의 <1F/B1>은 정말 기발한 상상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찌 그런 생각을 했을까.역시 젊은작가답다고 해야 하나, 계단 층계참에 쓰인 표지판을 보고 그런 생각을 가졌다는 것이 참신하다. 그리고 그 글씨로 유추해낸 것이 너무도 기막혀서 한참 웃었다. 그의 창작노트를 살짝 들여다 보니 '장편용' 과 '단편용' 노트 두권을 쓴다고 하는데 '단편을 쓸땐 즐겁게 쓰려고 한다. 즐겁지 않으면 모든 것들이 무슨 소용인가 싶다.' 라는 말이 있었다. 공감이다. 우선적으로 글쓰기는 자신에게 즐거움이거나 남이 읽어서 즐거움을 준다면 더없이 좋은듯 하다.읽을 것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읽어서 스트레스를 주는 글보다는 즐거움을 준다면 독서의 즐거움에 하나를 더 추가해 주는 것이다. '표지판 속에서 'FBI' 라는 단어가 보였다. 그럼 이 모든 사건이 FBI의 음모였단 말인가' 라는 말에 그만 참고 있던 웃음이 한방에 터져 버렸다. 홈세이프빌딩을 비롯하여 주변에 불이 모두 나간것은 '거대한 음모' 가 숨어 있기는 하나 계단참의 표지판을 보고 FBI의 음모나 층과 층 사이,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무언가 우리가 발견하지 못하는 틈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 하여 마지막에는 조금 씁쓸하기도 했지만 그가 그려낸 사건은 재미있었다.생각의 반전을 가져다주는 그의 기발함이 빛을 발했던 작품이다.

편혜영의 <저녁의 구애> 아직 그녀를 사랑하는지 아님 헤어져야 하는지 구분을 하지 못한 남자,그런 그가 친구에게 사회에서 은혜를 입은 이의 죽음이 입박하다며 꽃집을 하는 그에게 '화한' 을 부탁한다. 하지만 그날 저녁엔 그녀와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는데 화한을 가져갔지만 그는 아직 세상을 하직하고 않았고 김은 어쩔 줄 몰라 그가 죽기를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에 그녀와의 통화를 한다. 그녀와 헤어져야 겠다고 생각을 굳히는 그가 죽음앞에서의 긴 기다림에 지쳐갈 즈음 자신의 앞에서 교통사고로 인하여 차에 불이나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구애의 전화' 를 하고 만다. 자신의 진심이었을까.낯선 곳의 장례식장에서 죽음을 맞닥뜨리고 이별을 선고하려던 그가 갑자기 선택해야 했던 살고자 하는 욕망의 구애, 자신의 앞에서 자신의 머뭇거림의 분신처럼 타오르는던 '조등' 을 보고 그가 느낀 진심은 어쩌면 좀더 안늑한 일상에 안주하려는 우리 본심인지도 모른다. 이 작품을 계기로 그녀의 <재와 빨강>이 더 읽고 싶어졌다.

이장욱의 <변희봉> 이혼을 하고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그가 선택한 것은 새삼스럽게 '연기' 였다. 그의 눈에 요즘 들어 자주 보이는 배우 '변희봉' 하지만 다른 이들에겐 그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그가 출연한 영화조차 다른 이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또렷하게 배우 변희봉이 보인다. 지하철 계단에서 시장바닥에서 생선을 파는 이로 그리곤 결혼식의 주례사로 보이기도 한다. 무언이 진실일까. 죽어가던 아버지의 마지막 말조차 '만기야... 니 밴....희봉이라고....아나?' 라는 말이었다. '인생은 왜 빛이며 죽음은 왜 어둠인가. 삶은 오히려 어둠의 편에서 오는 것은 아닌가.' 라는 <인형의 집>에 나오는 대사처럼 그의 희망은 어둠에서 나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드는 작품이며 고작 그가 계속 그려냈던 인물인 '변희봉' 이 거짓으로 드러나며 그의 환상과 빚에 떠밀려 나는 삶인 현실이 극을 이루고 있다. 환상과 현실의 사이에 낸 작은 구멍인 변희봉, 삶은 오히려 어둠의 편에서 오는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검은 빛속에 밝음을 표현한 렘브란트를 연상케 하는 작품이었다. 

배명훈의 <안녕,인공존재> 라는 작품은 참 독특하다. 세상에 없는 독특한 물건을 만들어 내는 신우정 박사가 이경수에게 남긴 '존재' 라는 물건을 의미를 풀 열쇠를 누구도 찾지 못한다. 잘나가던 그녀가 스스로 자살을 선택한 것 또한 의문인데 그녀가 남긴 유작 또한 '의문의 돌덩어리' 이다. 아무리 해도 그녀가 남긴 '존재' 의 의미를 풀지 못하는 그는 우주비행중에 '존재' 를 우주로 보낼 결심을 하고는 그 존재를 우주로 보내는 의식을 생중계한다. 그 존재는 우주로 나아가 비로소 '존재의 의미' 가 풀리며 우주폭발을 하고 만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도 존재가 존재하며 단어와 단어사이에도 존재가 존재한다는 의미를 전해준 작품인 '인공존재' 는 존재를 깨뜨려야만 새로운 존재를 탄생 시킬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한 작품이기도 한 것 같다.

김미월의 <중국어 수업>, 이 작품은 천운영의 <잘가라,서커스>를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었다. 불법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취업비자를 얻어 취업을 하려는 그들이 어학원엔 이름만 올려 놓듯 하고 생계를 위하여 불법취업도 하고 혹은 돈을 위해 몸을 팔듯 우리나라에 시집을 온 애인을 찾아 오기도 하면서 빚어 지는 이야기. 우리의 주위에서도 보면 제일 힘든 3D업종은 우리나라 사람들 보다는 해외사람들이 많이 종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그들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을 받고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우리도 한때는 가난하여 해외취업을 나갔던 나라이고 그렇게 하여 부강해진 나라이거늘 배가 불러서일까 그때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그들을 학대하고 그들의 목숨을 담보로 삼기도 하고 월급을 갈취하기도 한다. 그들도 똑같은 인간인데 말이다. 애인을 찾아 인천에 온 '쓰엉' 하지만 그녀는 이미 다른이의 아내가 되어 임신을 하고 있다. 그래도 그의 사랑은 변함이 없이 그녀만 향하고 있다. 그런 그가 일을 저질러 종국엔 강제출국을 당하게 되고 그런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할아버지는 그를 위한 '두툼한 외투' 하나를 선물하지만 그에게 전달할 길이 없다. 세계화를 부르짖고 있지만 나보다 못한 그들에게 우린 언제 세계화를 할지, 우리의 가슴아픈 현실의 단면을 들여다 본듯 하여 마음이 아팠던 작품이다.

그외 정소현의 <돌아오다> 김성중의 <개그맨> 도 좋은 작품이었다. 7인의 7색을 들여다 볼 수 있기도 하고 우리 일상속 한 단면을 젊은 그들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새로 들여다 본 듯 하여 신선했다.김중혁이 보여준 우리가 놓친 일상의 '사이' 처럼 삶과 죽음 혹은 환상과 현실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작품들인듯 하다. 표지부터 작가들의 캐리커쳐로 독틈함과 새싹처럼 연두빛 제목에서 보여준 싱싱함이 앞으로 계속될 '젊은작가상'을 주목하게 만들어주었다.원석으로 빛을 발하기 보다는 다듬고 닦아 아름다운 '보석' 으로 거듭나는 가교 역할을 문학동네가 해주지 않았나싶다. 녹음이 짙은 여름에 초록빛처럼 싱그런 젊은작가들의 풋풋한 작품들을 막힘없이 읽을 수 있던 것도 기쁨이다. 1회를 지나 2회를 기대하고 더 많은 젊은작가와 작품들을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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