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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불류 시불류 - 이외수의 비상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0년 4월
평점 :
이 책은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읽고 그리고 코로 향기를 맡는 책이다. 트위터의 열풍,난 아직 그런 유행에 속해보지 않았지만 대단한가 보다. 이렇게 짧은 글들이 책이 되어 나오고... 이 책은 작가가 트위터에 올린 글들 중에서 좋은 글들을, 그냥 버려지기엔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던 글들을 모아서 책으로 펴낸 듯 하다. 전작인 <하악 하악>을 읽지 않았지만 그의 전작을 읽은 분들은 그의 '감성' 에 녹아나 이 책 또한 무척이나 선호하는 듯 했다. 나 또한 '감성마을' 은 아니어도 그의 '감성' 에 잠시 편승하고파 이 책을 들게 되었다.
현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의 평범하지 못한 점은 일반인들이 따라하기엔 좀 거리감이 있다싶은데 방송에서 가끔 접하는 그의 '너무도 인간적인,그러면서 만년 소년같은 감수성' 은 정말 그 누가 따라하지 못할 듯 하다. 그가 기거하는 곳의 이름이 '감성마을' 이라 그럴까 이 책에 녹아난 짧은 글들속에서 난 유독 작가의 감성이 너무 부러웠다. 그 나이가 아닌 연세인데도 '소나기에 등장할 듯한 소년의 감성' 을 여기저기에서 접하고는 깜짝 깜짝 놀라곤 했다. 재치가 넘치는 글들도 많았지만 그의 감성이 백프로 녹아난 글들은 그의 삶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 너무 좋았다. 출판사측에서 글에서 아니 책에서 향기가 나도록 끼워둔 책갈피에서 향기가 나서일까 너무 인위적인 향기를 넣지 않았어도 책은 글과 그림에서 너무도 좋은 향기가 났을터인데 너무 조미료 같은 인공향기가 약간은 거북하게 느껴졌다.
'그대가 그대 시간의 주인이다' 라는 말처럼 그의 글들을 읽고 있으면 감성마을의 자연을 담은 창가에 앉아 그 자연을 고스란히 누리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기도 했다. '47.감성마을 몽요담에 해의 비늘 흩어져 반짝거리고 있다. 사랑아, 오늘은 저 비늘로 목걸이를 만들어 그대 목에 걸어주리니,행여 흐린 세상이 오더라도 울지 말고 살아라.' 170. 첫사랑 떠난 날처럼 눈 시린 하늘 언저리, 사태 지는 단풍에 가슴만 설레는데.' '204. 달밤에 홀로 숲 속을 거닐면 여기저기 흩어져 빛나고 있는 달의 파편들. 몇 조각만 주워다 불면에 시달리는 그대 방 창틀에 매달아주고 싶었네.' 자연을 그대로 들여다 놓은 듯한 식물과 곤충들의 사진과 함께 하는 그의 그리움들은 읽는 이에게 그대로 전해져 가슴이 시리다.
'내가 흐르지 않으면 시간도 흐르지 않는다.' 짧지만 글속에 자연이 담겨 있고 그리움이 담겨 있고 시간이 담겨 있고 인생과 그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져 내 앞에서 초록빛 숨을 내뱉어 내고 있다. 자연은 바라보는 자에게만 보이듯이 늘 보고 있음 그때가 그때인듯 하면서도 시나브로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그리고 겨울로 이어지며 우리에게 나무의 나이테보다 더 단단한 삶의 껍질을 한겹 만들어준다. 단단한 껍질 속에는 말랑말랑한 그의 감성이 살아 숨쉬듯 하기도 하며 가끔은 웃음을 '허어' 하고 터트리게끔 하는 위트가 넘치게도 한다. 똑같은 사물과 자연을 바라보고 있는데 생각의 깊이가 다르다. 그는 그만큼 시간의 흐름을 알고 느끼고 시간과 함께 흐른 것이다.
난 시간이 날때마다 아니 나의 하루중에 한시간 정도를 내게 허락하듯 뒷산을 흩듯이 산책하며 자연과 함께 하길 좋아한다. 그러면서 정말 몰랐던 자연을 좀더 내안에 들여 놓게 되었다. 흔히 보고 지나는 풀이며 꽃이지만 그의 이름을 몰랐을때는 그냥 잡초, 또는 야생화라 불렀지만 언젠가부터 그것들에 대한 궁금증이 나를 자극하여 한가지 한가지 사진을 찍어오고 찾아오고,몇 날 며칠이 걸리는 것도 있었지만 그러다 영영 이름을 모르고 지나는 것도 있지만 그렇게 하나하나 내안에 들여놓은 '자연' 은 내것이 되고 말았다. 계절마다 다른 꽃과 식물들, 달마다 다른 나무와 꽃과 곤충들, 그것들을 한시도 보지 않으면 궁금하여 무서움을 감수하면서 뒷산으로 향하기도 했는데 그런 자연을 이 책에서 만나니 더욱 기뻤고 친근감이 생겨서일까 글들이 더 가슴에 들어온듯 하다. 나이가 들수록 자연에 동화되어 살아가는 삶이 돈으로 따질 수 없는 행복인듯 하다. '며느리배꼽,맨드라미,깽깽이풀,칡꽃,나팔꽃,해당화, 산부추, 자주달개비,남색초원하늘소,산비장이,타래난초,오미자,여뀌, 무당벌레,새팥,마타리,왕고들빼기,두메양귀비,구름패랭이,용담,강아지풀, 엉겅퀴,능소화,붓꽃,노린재,겨우벌레,원추리,누리장나무,작살나무,범부채,산수유,함박꽃나무,제비나비..등 우리가 흔히 보고 지났던 것들의 소중함이 고스란히 담겨진듯 하다.
글에도 연륜이 묻어 나는 것 같다. '먹은 검다. 하지만 검은 먹에도 맑음과 탁함이 있으니 육안으로 구분되는 경계를 넘어서야 비로소 식별이 가능하다. 그래서 먹은 곧 수행이다.' 많은 글에서 그의 연륜을 볼 수 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몇 번의 강산이 변해서일까 향기가 묻어나는 글들은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 싶을때, 잠시 차 한 잔 하고 싶을때, 자연이 그리울때, 떠난 이의 안부가 궁금할때...언제고 핑계를 대고 이유를 만들어서 붙잡고 싶을때 읽으면 좋을 책이다. 우연히 펼친 페이지에서 가슴 따듯한 글귀를 발견하면 하루가 행복하듯이 마음이 편안해지는 식물의 그림과 함께 하는 그의 진실과 연륜이 담긴 글귀는 오래도록 함께 할 듯 하다. 자연과 함께 흐른 그의 내공이 다음에 다른 편에서 또 다시 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며 잠시 마음이 여유를 준 '아불류 시불류' 오월을 맑게 해 준 책으로 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