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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삶다운 삶을 사는 것이 한때 보람 있는 일이었다면 지금은 대학 강단에 서는 것이 그렇단 말인가?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단지 심오한 사색을 한다거나 어떤 학파를 세우는 일이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고 그것의 가르침에 따라 소박하고 독립적인 삶, 너그럽고 신뢰하는 삶을 살아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삶다운 삶을 사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삶다운 것인지 그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최소한의 것으로 얼마나 많은,값진 것들을 더 많이 누릴 수 있는지 월든에서 몸소 체험을 하듯 이년여간의 오두막 생활로 모두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으로 말하면 누군가에는 ’로망’ 이고 누군가에게는 ’꿈에 그리는 전원생활’ 이 될지 모른다. 도시에 길들여진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언젠가는 땅을 밟고 땅을 일구며 자연의 일부처럼 살아가기를 원한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은 모두 도시에 있는듯 하면서도 요즘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종종 들려주는 도시에서 얻지 못하는 여유나 자연은 내겐 늘 부러움의 대상이다. 아직은 아이들을 핑계로 도시에서 아파트 생활을 하고 있지만 시간이 나면 늘 자연과 함께 하려 뒷산이라도 오르는 생활을 하려 하지만 한시간여 하루에 내게 여유를 부린다는 것도 어찌보면 사치로 보여질때가 있다. 자연이란 것이 눈을 낮추고 마음을 낮추고 가만히 귀 기울여야 비로소 내게 온다.
눈을 낮추어야 보이는 꽃들,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뒷산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내겐 그냥 뒷산이던 것이 눈을 낮추고 자연을 들여다 보면서 ’새로운 세상’ 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자연의 소리뿐만이 아니라 철마다 피는 야생화와 나무에 눈을 뜨게 되었고 그들이 보고 싶어 시간이 나면 혼자서라도 뒷산을 오르거나 들길을 걷는 버릇이 생겼다. 그것들을 모두 고스란히 사진에 담아 감상하다 보면 자연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그동안 보고 자란 삭막한 시간들은 모두 덧없이 느껴져 자연과 함께 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현실은 그런 나를 ’가지 않는 길’ 로 인도하기엔 아직 멀었다.
이 소설은 프루스트의 ’가지 않는 길’ 처럼 누구나 그런 생활을 하기엔 어렵다. 하지만 정말 인생에서 한번 정도는 도전하고 체험해 보고 싶은 아주 값지고 멋진 생활을 누리지 않았나 싶다. 나무와 야생화가 무성하고 새들이 많은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손수 짓고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문명과 경작으로도 그는 누구보다 더 행복하고 값진 것들을 누리며 자연을 즐겼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밤마다 들려오는 부엉이소리 개구리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동물들과 야생적인 생활이지만 그 어느때보다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자연이 준 혜택이 아니지 않을까 싶다. 철마다 변하는 오두막 주변의 풍경과 동물 식물들에 대한 표현도 정말 세세하면서도 풍성한 감성이 녹아 있어 대단하다. 많은 독서량과 풍부한 자연이 준 혜택이 아닐까 하면서 마치 월든의 호숫가 오두막에 함께 생활하고 있는 것처럼 문명과는 떨어져 조금은 불편할지 모르지만 한달이라도 그렇게 살아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며 한자리 낀듯한 느낌을 받으며 읽다보니 봄비가 내린 후 초록이 짙어진 숲으로 들어가 봄비를 머금은 후 피어난 야생화와 나무들 그리고 바람과 새소리를 듣고 싶어졌다.
자연과 함께 산다는 것은 자연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부자가 된 듯한 느낌일 터, ’내가 2년 동안의 경험에서 배운 것은, 첫째로는 이처럼 높은 위도에서도 사람이 필요한 식량을 얻는 데에만 믿을 수 없을 만큼 적은 노력밖에 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둘째로는 사람이 동물처럼 단순한 식사를 하더라도 체력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속에서 더 많은 것을 바란다면 그것은 이기심일지도 모르겠다. 자연속에 있는 것만으로 정신과 육체가 건강해진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요즘은 암등 큰 병을 가진 사람들이 산으로 들어가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듣고 매체를 통해 보았다. 숲은 자연치유를 자신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넉넉하게 나누어 주어 더불어 사는 것을 가르쳐 주는 듯 하다. 뒷산이라도 산행을 다녀온날은 맑은 공기에 샤워를 하고 나온것처럼 개운하다. 야생화나 들꽃 이름모를 버섯하나를 발견하고 나온날은 정말 기분이 좋다. 소로우만큼은 아니어도. 그가 21세기적 삶과 생각을 가지고 살지 않았나싶다. 그는 로빈후드적 삶을 살면서 월든의 자연을 세세하게 묘사한 것은 에세이라기 보다는 환경다큐를 연상케 하면서도 독서와 자신의 철학에 대한 생각들이 깃들어져 있어 사색적이면서도 자연친화적이다. ’내 모든 살림도구가 풀밭 위에 나와 집시의 봇짐처럼 한 무더기로 쌓이고, 내 삼각 탁자가 책과 펜과 잉크가 그냥 놓인 채로 소나무와 호두나무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유쾌한 일이었다.’ 마루 청소를 하기 위해 얼마안되는 가재도구를 햇빛을 쏘이기 위해 밖에 내 놓은 것을 보며 미소가 절로 나왔다. 참 여유로운 풍경이다. 어느 누가 자신이 모든것을 버리고 이런 생활에 당당히 발을 벗고 나설 수 있겠는가.
숲과 자연 야생화와 나무 호수 새소리 바람소리등을 좋아하는 난 언제일지 모르지만 먼 미래의 삶을 19세기 소로우의 삶에서 찾듯 대리만족을 하며 읽었다. ’ 나의 집은 언덕의 중턱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커다란 숲이 바로 거기에서 끝나고 있었으며, 집 주위에는 한창때의 리기다소나무와 호두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호수까지의 거리는 30미터쯤 되었으며 집에서 호수로 가는 길은 언덕을 내려가는 작은 오솔길로 되어 있었다. 집 앞의 뜰에는 딸기와 검은딸기, 보릿대국화, 물레나물,미역취, 떡갈나무의 관목, 샌드벚나무,월귤나무와 감자콩등이 자라고 있었다.’ 정말 그가 그려 놓은 대로 보면 ’그림 속 언덕위의 집’ 이다. 자연을 내 안에 들여 놓기 위해서는 자주 자연과 함께 하며 그 속에 머물러야 한다. 그런 시간이 늘어나다보면 자연은 내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온다. 무엇으로도 얻지 못하는 값진 것을 얻은것처럼 행복감을 그 속에 느낄 수도 있고 그런 생활이 삶이 될 수도 있다. 돈이 많아서 부자보다는 자연을 더 많이 누리고 더 많이 담은 사람이 정말 부럽다. 그 속에 있으면 사람은 모두가 평등해지고 자연앞에 평범해진다. 그가 누린 ’혼자만의 세상’ 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나무들처럼 빽빽한 글자들과 표현, 그리고 그의 생각들이 말해준다. 19세기에 21세기적 철학을 지닌 그의 2년여간의 콩코드의 월든 호숫가의 삶은 환경과 자연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겐 큰 공감을 줄 책이며 내겐 감동이었다. 그로인해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내 꿈의 로망이 ’월든’ 에 고스란히 담겨진듯 내 안에 담겨지게 되어 기쁘다. 지금보다 십여년 더 내 삶이 깊어지고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빽빽한 글자와 딱딱해서 조금 읽다 지칠 수 있는데 참고 읽다보면 많은 것을 가져다 준다. 어찌보면 잇속을 따지는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리기도 한다. 자연은 개발보다는 자연과 더불어 누릴때 비로소 우리것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