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은 모든 길이 시작되는 곳이고 모든 선이 모여드는 곳... 정상엔 허공뿐이다...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서남서 17Km, 남체 바자르 북동북 14Km 지점에 위치한 6440미터 봉우리 <촐라체>, 상민과 영교가 현실을 도피하여 만난 새로운 벽. 이 책을 읽기전에 작가의 <나마스테>를 읽었다. 나마스테는 히말라야 네팔에서 온 청년 카밀과 사비나 그리고 선우가 등장하여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문제에 대하여 쓴 소설이라하면 이 소설은 그들의 고향 네팔 히말라야를 바탕으로 하여 현실에서도 삶의 벽에 부딫힌 이들이 '촐라체'라는 빙벽과 그들 자신이 싸워서 이겨내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제일 높은 산에 오른 것은 '속리산문장대' 였다. 뒷동산도 제대로 오르지 못하였던 난 아파트 뒷산을 시작으로 하여 주위의 낮은 산들을 한걸음부터 시작하다보니 500m에서 700m 그리고 천미터를 오르게 되었다. 무엇이든 한걸음부터 시작이라는 맘으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시작을 하니 내 건강은 물론 산에서 얻은것들이 너무 많아 주말이면 남편과 함께 산으로 향하게 되었다. 계절마다 만나는 산의 다른 모습에 반하고 철마다 피는 야생화에 반하고 자연이 주는 혜택을 잊지 못해 늘 마음속에 산을 그리고 있었는데 한번이 실수로 사고를 당하고는 조금은 무서운 생각도 들었지만 곧 다시 산을 찾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클라이밍소설이라 더 재미를 느끼며 읽을 수 있었다.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했던 정선생과 상민,영교 형제는 촐라체에서 '만나자마자 우리는 서로의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그늘을 먼저 보았던 셈이었다.' 라고 표현되었듯 서로에게 드리워진 '그늘'을 보았기에 캠프지기를 했던 정선생 또한 상민과 영교형제를 자신의 모습처럼 받아 들이며 그곳을 지키지 않았나싶다. 이혼을 했지만 그녀를 잊지 못해 그녀가 처음으로 준 '차랑고'를 들고 촐라체를 찾은 남자 상민,그와 영교는 어머니로 인하여 형제가 된다.하지만 영교도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지인을 칼부림하고는 도망치듯 상민과 촐라체로 달려왔기에 그속에는 늘 자신의 칼에 찔린 남자가 도사리고 있다. 정선생 또한 자신의 아들인 현우가 모든것을 버리고 산으로 향하며 '...그리워서' 라며 떠났기에 현실에서 방황을 하다 상민형제를 만나며 촐라체를 오르는 그들을 지켜본다. 자신들을 하루이틀 지탱해줄 장비만 챙겨 떠난 촐라체빙벽 클라이밍, 형제이지만 그들 사이의 벽은 쉽게 허물어지지 않고 정상을 쉽게 오를 수 있으리란 생각과는 다르게 만나는 난관속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하면서도 형제임을 확인하며 정상에 오르지만 정상엔 '허공' 뿐이다. 쉽게 좁혀지지 않던 둘 사이의 벽은 동생 영교가 크레바스에 추락하면서 벽은 허물어지고 만다. 자신이 살기 위하여 줄을 끊었다고 생각했던 형때문에 이를 악물고 살아나오려 했던 영교는 '열반에 든 자' 의 피켈로 크레바스를 빠져 나올 수 있었고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지만 둘이 함께 내려가기엔 너무도 험난 길. 형을 위해 미리 하산길을 떠나는 영교, 하지만 상민은 자신의 숙제처럼 여겨졌던 자신에게 산을 가르쳐준 형을 찾아 나서듯 떠난 길에서 영교가 만나 크레바스속 열반에 든 자의 양식으로 힘을 얻고는 하산을 하며 영교를 만나지만 그들의 몸은 벌써 만신창이가 된 상태. 그들을 죽음 직전에 발견한 캠프지기 정선생의 도움으로 살아 나올 수 있었지만 신체의 일부를 촐라체에 남기듯 잘라내야 했던 그들과 아직 그곳을 벗어날 수 없었던 정선생의 여행은 곧 히말라야로 달려가 빙벽 촐라체와 함께 하고프게 만든다. 이 소설이 인터넷에 연재될 때 그냥 지나치기만 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그때 관심을 조금만 더 가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갖게 만들었다. 모든 이들에게는 현실에서 넘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촐라체'를 하나 정도 가지고 있을터인데 막상 그 앞에 서서 한걸음부터 시작을 하면 허물지 못하는 벽이 없을 듯 하다. 오르지 않은 정상엔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을것이라 생각을 하겠지만 영교의 말처럼 '허공' 만 존재할뿐 그 이상 무엇도 없다. 정상을 밟는다는 것보다 그 정상을 밟기 위하여 기울인 노력이나 땀의 의미가 더욱 깊게 새겨지는 촐라체, 형제이면서 서로를 받아 들이지 않았던 그들이 그들사이에 존재했던 크레바스가 없어지고 촐라체에서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모든것을 버리고 비우고 '자신'으로 서로를 대했기 때문인듯 하다. 조금 거리감이 있다 싶은 사람끼리 산에 가보라 그러면 그들의 시작과 끝은 정말 차이가 난다. 산을 오라다 보면 서로 손을 잡아 주어야 하는 상황도 발생을 하고 조분조분 이야기를 할 기회도 많이 생기기에 사이에 존재하던 거리감은 하산길엔 볼 수가 없다. 그래서일까 '사랑의 증표인 차랑고' 마져 촐라체로 인하여 다시 연결고리가 되고 영교를 위해 탄원서를 써주도록 용서의 힘을 발휘하게 만든 촐라체의 여운은 책을 읽고 난 후 눈사태처럼 더 커져버려 놓고 싶지 않게 만들었다. 작가의 다른 책 <나마스테>와 함께 <촐라체>를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페임 Fame, 2009 감독/ 케빈 탄차로엔 출연/ 애셔 북(마르코), 케이 파너베이커(제니), 케링튼 페이(엘리스), 폴 맥길(케빈) 나투리 노튼(데니스).. 자신의 재능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내 앞에 가로놓인 벽을 허물고 받아 들여야 해, 네 자신을! 상위 1%가 되기 위해 노래,연기,춤,악기등을 가르치는 뉴욕예술학교를 찾아 온 아이들, 그들이 모두 상위 1%가 될 수는 없다. 자신의 꿈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하며 땀을 흘려야만 자신의 재능을 나타낼 수 있다는 뮤지컬 영화. 오래전 알란 파커 감독의 영화로 아이린 카라가 주연을 맡았던 동명 히트작 <페임>은 당시 내겐 커다란 충격이었고 그 영화 또한 대단한 화제작이었다. 여고시절 학교에서 단체관람 영화로 다른 영화를 보러 갔는데 친구 몇 명과 함께 우린 <페임>을 몰래 보러 갔다. 아이린 카라에 대한 이야기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난 후 그 영화를 꼭 보고 싶은 생각에 몰래 찾아든 영화관에서 우리는 흥분이 도가니에 빠져서 그영화를 보았다. 이 작품은 동명작과는 약간 다른 아이들이 꿈을 이루기위해 노력하는 것을 담았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기 위해서일까 가끔 끊어지는 느낌도 들고 전작과는 약간 다른 쳐지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보면 좋을듯한 느낌을 받았다.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꿈을 위해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 보다는 자신의 노력이 뒷받침돼야 함을 아이들에게 전해 줄 수도 있을듯 하다. 하지만 전작의 커다란 흥분보다는 약간 못미쳤던것 같다. 다른 뮤지컬 영화 <맘마미아>의 큰 감동을 기대해서일까 조금 기대를 벗어나긴 했어도 흥겹게 그들이 함께 하는 연주와 춤 노래에 빠져서 잠시 인생이란 무언가 생각해볼 시간을 안겨준다. 그들의 졸업식장면에서 개개인이 느꼈던 단맛쓴맛을 표현한 말들이 참 좋았던것 같다. ’성공이란.. 아침에 일어나 오늘 할일에 대해 설레이면서 즐겁게 집을 나서는 것..’ 으로 시작되는 표현들이 넘 좋았다. 너무 많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믹싱해 놓아 분산되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런대로 즐기고 가슴에 남는 명대사 하나 건져 나올만한 영화이긴 하다. 다양하게 보여진 노래 춤 끼들이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데니스’의 노래가 압권이었다. 시원하게 가슴을 울려주는 그녀의 노래가 기억에 남는다. 이미지:네이버
세상이 화안해요....... 그녀의 삶을 화안하게 만들어준 한마디의 인연. 산벚꽃나무 그늘아래에 쓰러져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그사람이 한 말은 '세상이 화안...해요..' 였다. 그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 그녀에게. 미국에 이민을 가서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죽음과 막내동생을 죽음을 맞이하고 한국에 돌아와 마지막 비상구처럼 찾아 들었던 결혼마져 실패를 하고 오빠의 일을 도와가며 늦은 시간 출근하여 아침이면 집에 돌아오는 그녀, 얼마전까지 함께 했던 엄마마져 신부전으로 미국의 오빠에게 들어가고 팔린 집에서 혼자 생활하는 그녀에게 어느날 산벚꽃바람처럼 찾아온 그남자의 한마디에 닫혀 있던 그녀의 삶이 비로소 열리는 듯 했다. 그런 인연으로 그녀의 집에 애인인 사비나와 함께 기거를 하게된 네팔 청년 카밀, 애인을 찾아 안정적이던 네팔의 카펫공장일마져 팽개치고 코리안드림을 위해 가족의 생계를 떠맏아 한국에 온 애인 사비나를 찾기 위해 그녀를 목숨처럼 여기던 청년은 그녀의 집마당을 청소해주기도 하고 널부러져 있던 나무들로 의자도 만들고 테이블도 만들고 부엌을 정리하기도 음식을 만들기도 하며 그녀의 삶에 차츰차츰 발을 들여 놓기 시작했다. 일찍 엄마를 잃었던 카밀에게 모성본능처럼 자신이 지웠던 아이를 다루듯 카밀을 모성으로 받아 들인 그녀, 사비나가 떠나고 난 빈자리를 그녀가 차지했지만 그녀에겐 사랑이 카밀에게도 사랑이었을지... 외국인노동자로 늘 쫓기듯 하면서 옮겨다니며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신체의 일부분이나 목숨을 잃어도 사람취급받지 못하는 그들, 카밀은 점점 그들의 대변인처럼 그들편에 서게 되고 그녀는 그의 아이인 애린을 낳게 되지만 그들에게는 커다란 벽이 가로 놓이게 되고 외국인노동자이 살아 남기 위하여 처절한 몸부림은 시작되어 그는 아내곁에 있기 보다는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데 그런 그를 바라보던 선우는 그를 도와 그들의 편에 서게 되며 오빠마져 그들을 돕게 되지만 그들의 마지막은 카밀의 마지막 불꽃처럼 타오름으로 인해 선우마져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나마스테, 히말라야를 한번도 가지 않은 그녀가 그의 어머니의 환생처럼 꿈속에서 히말라야를 느끼며 그를 보듬고 그와 하나가 되어 외국인노동자들을 위해 하나가 되어 뜻을 함께 한다는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화두를 던지는 작가. 우리가 기피하는 3D업종을 그들이 차지하고 있기에 어쩌면 우리 경제가 무탈하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그들을 대하는 것은 어떤가. 단일민족이라 하여 유색인종에 유독 옹색한 우리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작가의 불꽃같은 화두에 카밀의 맑은 영혼이 깃든 깊은 눈이 보일듯 하다. 세상이 화안해요, 선우의 세상을 환하게 밝혀 주었던 카밀의 한마디처럼 그녀와 그의 마지막삶 또한 환하게 밝히듯 분신으로 마감을 한다. 그 길만이 그가 살길이었고 모두가 살길이었음을 시사하듯 마지막 비상구처럼 그가 찾아든 죽음은 세상을 환하게 밝혀주었는지.때묻지 않은 네팔 그리고 히말라야 그곳에서 희망을 안고 찾아온 코리안드림을 꿈꾸는 사람들이 과연 그들이 쫓던 꿈을 찾아 떠날수 있었는지 그들이 꿈을 찾을 수 있게 그들을 받아 들였는지, 한남자로 인하여 더 넓은 세상을 안고 받아 들였던 그녀를 놓지 못하고 작가의 다른 작품 <촐라체>를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사랑에 얽힌 외국인노동자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만들어 준 작품 <나마스테> 그 말이 이뻐 몇 번을 불러보며 작품을 내려 놓는다.
마음을 다 털어놓고 나니 알 수 있었다.세상과 나를 움직이는 게 무엇인지 보였다....그건,사랑이었네... 한비야의 그녀에게 반하고 그녀의 책에 반해 <중국견문록>만 읽지 못하고 다 읽었다. 칠년여에 걸친 세계오지여행과 그 여행을 바탕으로 하여 월드비젼에서 긴급구호일을 하면서 그녀가 나누고 베풀었던 자신안의 사랑을 감동깊게 읽었는데 구년여 몸담아 왔던 월드비젼 일을 떠나 새로운 공부에 전념하여 보다 더 넓은 그녀로 거듭나기 위한 움츠림에 들어간다니 그녀에게 힘찬 응원을 보내고 싶다. 그녀를 통해 알게 된 지구촌 곳곳의 소식과 정말 적은 돈으로도 그들을 살릴 수 있다는 ’나눔의 쓰나미’에 동참하게 만들었던 그녀, 그녀의 힘에 비하면 너무 보잘것 없지만 얼마 안되는 포인트를 모아 필요한 곳에 기부를 하게 되었다. 난 내가 맘에 들어, 화장기 없는 얼굴에 언제나 밝은 웃음의 그녀. 화려한 옷이 아닌 여행하기에 딱 좋은 옷이지만 다른사람과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늘 자신의 도전에 굴하지 않고 뭔가 그녀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그녀식 도전이 가끔 안이한 일상속에서 닮고 싶다는 맘마져 들게 하며 아이들에게는 멘토로 삼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하지만 그녀에게도 늘 도전 성공뒤에 감추어진 실패의 쓴 맛도 있으리라. 하지만 어떤 벽과 마주쳐도 포기하지 않았던 그녀의 패기에 벽을 허물 수 있었던 같다. 힘들게 달려온 그녀, 잠시 무거운 짐을 내려 놓고 여유를 부리며 다리쉼을 하듯 <그건,사랑이었네> 란 에세이는 그간 그녀가 살아왔던 삶을 되돌아보듯 그녀를 들여다 볼 수 있어 그녀의 책들을 모두 읽은 뒤의 읽는 맛은 종합선물처럼 미소 지으며 읽을 수 있었다. 나 자신의 안이보다는 내가 필요한 곳을 찾아 내가 힘이 될 수 있는 일을 찾아 늘 도전하는 그녀에게서 삶은 한번쯤 자신과의 싸움에 도전해 볼만 하다는 것을 느꼈다. 내 안에 어떤 능력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르기에 마중물을 넣고 퍼내고 퍼내면 언젠가는 나도 모르는 새로운 에너지를 만날 것만 같은 에너지를 전해 받은 가을에 멋진 책을 만난것 같아 기분이 좋다. 책 속에 부록처럼 그녀가 추천한 24개의 책들과 일년에 백권읽기를 삼십여년간 실천하고 있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제 겨우 일년에 백권읽기를 몇년째 하면서 책의 맛에 빠져 들고 있는데 새삼 그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지여행을 하면서도 그녀가 찾았던 것은 늘 책인듯 하다. 어디에서건 장소에 굴하지 않고 책을 찾아 읽고 다른 이에게 나누어 주었던 그녀의 이야기들이 떠오르며 그녀가 추천한 책들을 한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그녀의 새로운 도전이 정말 잘 되어 보다 더 멋진 그녀의 뒷이야기를 만나고 싶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늦깎이라는 말은 없다. 아무도 국화를 보고 늦깎이 꽃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뒤졌다고 생각되는 것은 우리의 속도와 시간표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이고, 내공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직 우리 차례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철에 피는 꽃을 보라! 개나리는 봄에 피고 국화는 가을에 피지 않는가.' 그녀가 추천한 책..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이덕일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포리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듯했던 날들> 안소영이 엮은 <책만 보는 바보> 버트런트 러셀의 <행복의 정복> 루츠 판 다이크의 <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무하마드 유누스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 오래된 미래>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니코스 카잔타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루쉰의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박지원의 <열하일기 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