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돌보며 - 딸의 기나긴 작별 인사
버지니아 스템 오언스 지음, 유자화 옮김 / 부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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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시력을 잃었지만 어머니는 자기 자신 전부를 잃어 가고 있다. 
우리의 신체 중에는 다른 부분에 비해 더 손상되어도 괜찮은 부분도 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큰 일이 일어나거나 겪게 되면 '왜, 나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일이 유독 내게만 일어나지는 않는다. 다른 누군가도 겪었거나 겪게 될 일인데 유독 내가 닥치게 되면 큰 일처럼 보여지고 생각되어진다. 나 또한 부모님이 연세가 있다 보니 부모님을 찾아 뵙든가 전화를 하다가 아프다는 말씀을 하시면 '가슴이 철렁' 한다.그때를 준비해야 하는걸까 하면서 담담하게 생각해 보기도 하는데 그런 일이 지금 내게도 일어나고 있다. 아버지가 아프시니 이 책은 그런 부모님의 고통을 미리 겪어보는 것처럼 간접경험이 될 것 같다.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어머니가 알츠하이머에 치매가지 겹치셨다면 과연 난 그 어머니를 저자처럼 돌볼 수 있을까..아버지가 아프셔서 병원에 입원하셔서 검사를 받던 며칠동안도 집안일과 아이들을 돌보며 하다 보니 퇴원하신 후에 내가 병이 났다.처음 그런 일을 겪어서 아직 경험이 미숙하기에 그러하기도 하겠지만 병원에서 연세가 드신 환자들을 보면서 그분들을 돌보는 도우미들을 보니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가족보다는 돈으로 도우미를 쓰고 전문적으로 돌보게 하는 경우도 있고 가족이 붙어 있는 경우도 있지만 환자에게는 가족보다는 도우미들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부모가 이런 경우를 당했다고 해도 받아 들이기기가 쉽지 않았을것 같다. 거기에 저자 자신이 녹내장까지 앓아가며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으니 그 고통은 배가 되었을것 같다. 하지만 끝까지 어머니를 포기하지 않고 돌보며 하루 하루 기억하고 글을 써 나갔다는 것은 대단하다. 이런 큰 일이 닥치면 환자 자신보다도 가족이 더 먼저 마음에 상처를 입어 자포자기 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꿋꿋하게 어머니 옆에서 힘이 되어준 저자는 의지도 있고 현실을 바라보는 냉철함도 보인다. 제일 힘든 것이 치매 노인들을 돌보는 것 같다. 친정부모님의 동네에도 엄마와 연세가 같으신 분이 치매가 걸려 동네를 헤매고 다니시는 분이 있다. 날마다 가족들의 울타리에 있지 않는 노모를 찾아 동네를 헤매기도 하는 가족들과 노모의 행방을 알려주는 동네분들이 있어 아직 별일은 없지만 유독 피해를 입고 있는 우리 엄마의 밭 농작물들, 그 할머니는 유독 친정엄마의 밭에서 열매가 익으면 다 따가신다. 그렇다고 변상을 요구할 수도 없고 그저 씁쓸하게 바라보시는 친정엄마는 당신이 그렇게 되지 않은것을 다행으로 여길뿐이다. 끝도 없는 기나긴 싸움을 저자는 어머니의 편에서 나름 현명하게 헤쳐나간듯 하다. 나 또한 그런 위치에 처한다면 그런 현명한 답을 할 수 있을까. 긴 병에 효자 없듯이 어느 정도 지켜나가다 보면 겉으로 포기하듯 하게 되는데 나 또한 그렇게 하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이런 일들이 남일 같지 않은것 또한 나도 부모님도 점점 나이를 먹어감일터인데 그런 부모님을 지킬 용기가 내겐 있을지 묻게 하는 책이다. 

'정도야 다르겠지만 어머니의 두려움은 나의 두려움과 다르지 않다. 우리 둘 모두 그 암흑이 두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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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빗질하는 소리 - 안데스 음악을 찾아서
저문강 지음 / 천권의책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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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렇게 뽀또시는 또 하나의 숨어 있던 보석을 넌지시 꺼내 보였다.
가난한 봉우리일지는 모르지만 음악만큼은 풍요로운 땅...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인생을 바꾸어준 그런 음악이 있었을까.. 지나오면서 마디 마디 기억나는 음악이 있어도 음악때문에 음악에 미쳐 내 삶을 바꾼 그런 기회가 없어서일까 처음엔 설마하면 읽어내려갔는데 저자의 열정이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없다. 안데스 음악을 좋아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 있는 가장인데 몇 개월씩 안데스에 머무르며 악기까지 배우며 음악에 심취한다는 것은 그도 그렇지만 그 아내되는 사람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안데스 음악이 좋아하는 것을 떠나 이젠 직업이 되고 그의 온전한 삶이 되었지만 그런 과정을 지켜 본 가족들은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은 하나에 심취한 사람 옆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은 결코 그와 똑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은 정말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한곳이다. 그곳에 비가 내리면 하늘이 소금사막에 담겨 있어 그 위를 차를 타고 가는 기분은 선계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여행프로의 영상을 보고는 그곳에 빠졌던 적이 있다. 여행프로에서 보았던 안데스는 순박한 그들의 표정만큼이나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뻬루의 마추비추,잉카 유적지는 정말 가보고 싶으면서도 그곳에서 들려주던 영혼을 울리는 듯한 피리소리는 정말 좋았던 기억이 있는데 저자만큼은 아닐것이다. 갈대로 된 띠띠까까호수의 섬도 사진으로 다시 보니 반갑고 그가 전해주려던 안데스의 음악이 생각만큼 많이 들어나지 않은것 같은 아쉬움도 있었지만 책의 마지막 부분에 안데스의 음악에 쓰이는 악기와 리듬을 소개해 놓아서 그의 여행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어 그 부분은 좋았다.

안데스의 음악을 내가 들었던 것은 02년 홈페이지를 만들고 글을 올리면서 우연하게 들으며 너무 좋아서 자주 올려 놓았던 기억이 있다.쿠스코의 음악은 정말 영혼 저 밑바닥을 울려 주는 듯한 듣고 있으면 저 밑바닥이 울리는 듯한 느낌에 내 글에 자주 올려 놓았는데 그러다 잊고 있었다. 여행프로에서 남미가 나오면 언젠가는 가고 싶은 곳이란 로망으로 남겨 놓으며 그런 음악이 있었지 하며 추억해 보곤 했는데 저자는 여행의 목적이 '음악' 이었다니 정말 열정이 대단하다. 그들의 역사나 문화나 그외 목적이 아닌 <안데스 음악>이 목적인 여행도 나름 괜찮을 듯 하다. 그들이 직접 연주해 주는 폴클로베를 찾아 저녁마다 나들이를 하는 것도 괜찮을것 같다. 여독을 음악과 춤으로 풀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여행의 목적이 참으로 많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인가 한가지에 미친다는 것을 자신도 자신을 알지 못하게 발전 시킬 수 있고 변화되게 하여 또 다른 나를 창조해 낼 수 있는것 같다. 

스페인의 영향으로 된 발음이 많아서일까 낯선 언어가 순박하게 들리기도 하고 나이를 따지지 않고 음악적 능력만으로 함께 하며 그들이 보여주는 전문적이지 않으면서도 전문적인 음악냄새는 언제 한번 우연하게 만나고 싶기도 하다. 언젠가 다큐에서 안데스 음악때문에 결혼까지 하게 된 부부의 이야기 때문일까 낯설지 않으면서 조금은 멀게 있던 안데스 음악이 그로 인하여 가깝게 다가오는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여행지 소개가 좀더 곁들여졌다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뜨렌사 곱게 따고 모두 같은 복장으로 걸어가던 그들의 뒷모습이 아른 거린다. 한사람이 다재다능하게 모든 악기들을 다르며 연주하던 안데스 음악을 찾아서 듣고 싶게 만드는 이국적인 내용이 눈길을 끄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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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포머 : 패자의 역습 - Transformers: Revenge of the Falle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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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트랜스 포머:패자의 역습 2009

 

스틸이미지

 

감독/ 마이클 베이

출연/ 샤이아 라보프(샘 윗윅키), 메간 폴스(미카엘라 바니스),휴고 위빙..

 

 

소문난 잔치에 스토리가 없다...

 

대단한 광고에 극장이 점령된듯 멀리플렉스 몇 개 관이 트랜스 포머를 하는 것인지 다른 영화는 들러리처럼 된 것 같아 조금 씁씁했다. 이달까지 써야 하는 영화관의 예매권과 할인권이 있어 직접 멀티플렉스로 갔더니만 평일 저녁시간인데 매진이나 다름이 없다. 늘 느긋하게 볼 수 있는 뒷자리를 지정하여 보던 때와는 다르게 앞자석 두번째 사이드밖에 없다하여 볼까 말까 하다가 보게 되었다. 어짜피 써야 하는 예매권이고 영화라면 그냥 온김에 봐야 할 것 같았는데 극장안에 들어가서 놀랬다. 정말 꽉찼다. 우리 영화가 이렇다며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는 전편을 보지 않았기에 내용을 모른다. 워낙에 이런 종류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기에 그냥 휩쓸려 보 듯 하였는데 내 평은 글쎄 이런 영화에 이렇게 열광할 필요가 있을까였다. 영화를 한참 보다가 생각하니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 그래픽에 열광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했다. 이야기는 중간 중간 이어지지도 않고 내용이 없다. 로봇이나 이런 류를 좋아하는 아이들이라면 열광하고 보겠지만 성인들이 꽉찬것은 조금 이해가 안간다. 영화의 한계를 넘었다는 문구보다는 CG의 최고치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화려한 화면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영화, 갑자기 우리의 '디워' 가 생각났다. 이 영화와 디워를 비교 한다면 어떨까. 난 '디워'를 보았던 느낌이 더 좋았다.

 

이 영화의 내용은 허무맹랑하다고 할 수 있어서인지 더 다가오지 않기도 하지만 내용이 이어지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서 그냥 지나쳐야 하는 관객무시가 자주 있는 것 같아 한시간여 집중하여 보다가 씁쓸함에 보니 잔잔한 우리 영화가 더 낫다는 기분이 들어서일까 내 돈을 모두 주고 봤다면 아까웠을 영화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가 아니어서도 이지만 우월감에 빠진 듯한 화면은 다음편이 나오면 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만 가져다 주었다. 전편을 본 사람들의 느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패자의 역습'이란 무엇인가.

 

영화가 끝나고 밀려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과연 그들은 모두 이 영화에 만족하고 나올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밀려 오고 밀려 갔는데 그만큼 영화의 완성도가 관객을 만족시켰는지 궁금하다. 나 한 개인은 만족하지 못하고 '내용이 뭐야' 하게 만들었던 트랜스 포머, 전편의 인기가 대단했기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왔겠지만 형만한 아우없듯 그런 영화가 되지 않았나싶다. 눈이 즐겁긴 하지만 오감을 만족시켜주지는 않았던 영화이며 단절되었던 부분들도 그렇고 영화를 보고 난 후 권하고 싶지는 않다.

 

스틸이미지

스틸이미지

이 장면은 어떤 그림은 연상케 한다...ㅜ

스틸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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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트렉 - 희망봉에서 킬리만자로까지 걸으며 만난 아프리카와 아프리카 사람들
알렉상드르 푸생 & 소냐 푸생 지음, 백선희 옮김 / 푸르메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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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다는 건 기다리는 것이며 인내심을 기르는 일이다..


아프리카를 종단하는 걷기여행, 희망봉에서 킬리만자로까지 3년 3개월에 걸친 푸생 부부의 여행담은 560에 달하는 페이지의 압박이 있지만 그들의 신혼여행으로 선택한 7kg의 가방을 메고 잠잘곳과 먹을 것을 미리 정해 놓지 않고 길에서 만나는 <만남>으로 그 긴 시간을 행하였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 <인류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14,000km> 의 아프리카 종단여행을 과연 몇 명이나 성공하였을지... 옛 인류의 조상들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들에게는 어떻게 보면 짧은 시간동안 인류의 발자취를 쫓아 여행할 수 있었지만 그때는 생각지도 못한 <만남에서 도움까지> 정말 행운의 여신은 그들의 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프리카 보다는 걸으면서 그들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아프리카는 더 심각한 인종문제가 얽혀 있기도 했지만 다행히 큰 사고없이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도와 주는 것을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아직은 살만한 곳임을 말해주고 있다. 땅은 있어도 씨가 없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곳, 농장주는 있어도 일꾼이 없이 비어 있는 농장들, 가슴 아픈 일들이 많기도 했지만 그래도 어김없이 천사가 숨어 있다 나타난 것처럼 그들이 어려움에 처했을때 그들을 부르는 희망의 소리가 아프리카 트렉을 꿈꾸는 다음 이에게 희망을 가져다 준다.

3년3개월동안 걷기여행을 하라고 한다면 나 그리고 나를 제외한 사람중에 이를 혼쾌히 받아 들이며 실천할 자가 몇 명이나 있을까. 한달만이라도 이런 걷기여행을 추천한다면 한참을 망설였을터인데 한달도 아니고 일년도 아닌 3년3개월이란 어마어마한 시간동안 오로지 두 다리에 의해 아프리카를 종단했는 것은 많고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 쓰여지지 않고 보여지지 않은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겠지만 긴 시간동안을 단축한 이야기 속에서도 그들의 길 위에 노출된 위험이나 어려운 고비들은 구멍난 운동화처럼 속이 다 들여다 보인다. 

'곧 보시게 되겠지만 아프리카는 기쁘면서 슬픈 땅입니다.' 
처음 백인을 보는 아이들도 있고 자신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백인들이 아프리카를 차를 타거나 말을 타는 것이 아닌 오직 걸어서 여행을 한다는 것에 깊이 공감을 하며 자신들이 간직한 슬픔도 거리낌없이 토해내는 순박한 사람들. '왜 여행을 하시죠?' '두 분을 만나려고요!' 걸어서 여행하지 않았다면 진솔한 사람들을 만나지도 진솔한 삶을 만나지도 진정으로 아프리카를 깊숙히 보지 못했을 것이다. 진정한 여행의 참 맛은 걷기여행인것 같다. 걷으며서 세상과 함께 할때 오롯이 들어오는 진실된 것들. 희망봉을 출발한 것은 푸생부부 둘이었지만 함께 것은 아프리카 였고 아프리카인었으면 아프리카속의 모두였다. 

'길은 반드시 어딘가로 통하게 되어 있다는 것과,인간은 노력을 적게 하려고 애쓴다는 원칙이다.' '모든 길은 인류로 통한다.'
길을 잃었거나 광활한 곳에서 물이 떨어지고 오아시스를 만나지 못했을때 길을 따라 달리는 차를 세우면 그들에게 반드시 물이나 음료를 보충해주면서 응원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 다음 종착지의 잠자리와 먹거리까지 제공하며 다음의 길까지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실어준 사람들이 있어 아프리카 트렉의 희망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 아프리카. 둘이서 취재와 촬영 글쓰기까지 모두 하면서 이 여행을 하였다는 것이 정말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그것도 소냐 푸생은 오직 치마로 아프리카와 맞서 있는 듯 하다. 

'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이다.'
광활함속에 오아시스처럼 인생의, 삶의 의미를 전해주던 사람들도 많다. '집은 살 수 있지만 가정은 사지 못하잖아요.' 처럼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던 사람도 있는가 하면 자신이 농장을 다 빼앗기듯 했어도 자신의 농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저버리지 못해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일도 하지 않는 그들에게 월급을 주는 사람, 자신이 떠나면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당장 머무를 곳도 먹을 것도 없는 것을 알기에 그 많은 사람들을 이유없이 책임지는 사람도 있다. 그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걷기 여행의 맛인듯 하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나아갔다. 물론, 깊은 하나뿐이기에 문제는 해결되었다. 하지만 서스펜스는 우리가 누구의 집으로 갈지 알지 못하는 데 있었다. 이 만남들이 우리의 유일한 생존 방식이며, 우리의 유일한 존재 이유였다. 소냐는 활짝 피어났다. 그녀와 함께 매일매일이 결혼기념일이었고, 그녀의 심장이 나의 나침반이었다.'  정말 맘에 드는 구절이다. 알렉상드로가 힘들다고 느낄 때 소냐를 보면 그녀는 강하게 잘 버티고 있다. 그래서 이 여행이 더 버틸 수 있었던 것처럼 소냐에게서 알렉상드로는 에너지를 더 얻은것 같다. 서로에게 든든한 등대같은 빛을 발해 아프리카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자신들이 나아가고자 한 길을 갈 수 있었던 아프리카 트렉, 정말 대단한 책을 만났다. 아프리카를 담은 생생한 사진들이 좀더 보충되었다면 그들의 여정이 담긴 지도가 더 많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오로지 그들의 생생함을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것으로 더 맛이 나는 여행서였던 것 같다. 

걷는다는 것은 제일 쉬운 방법중이면서 제일 실천이 어려운 것이다. 막상 내게 진정으로 필요한 옷 두어가지와 함께 짊어져야할 키로그램을 정해 놓고 가방을 싸는 것 자체부터가 문제일것 같다. 그렇게 해서 한달이고 두어달이고 떠나라 하면 떠날 수 있을까. 내 일상을 접고 두다리에만 의지해 지구위에 서서 모든 것을 해결하라면 힘들것이다. 발에 생겨나는 물집만큼이나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얼마나 많이 일어날까. 줄줄 흐르는 땀방울만큼이나 후회스럽기도 하고 주저 앉고 싶을 터인데 아무것도 길 위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간직하며 희망을 발견하는 푸생부부의 에너지가 읽는동안은 내 자신에게로 전해진것 같은 생각이 들어 하루에 한시간 뒷산 산행이라도 날마다 하리라 생각했지만 생각만큼 실천은 되지 않고 있다. 걷기를 실천한다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느끼며 그들이 지나간 아프리카의 종단 길을 한번 더 훑어 보았다. 정말 대단하다. 까마득한 그 길, 희망이 점점이 찍혀 길이 된듯한 아프리카 트렉은 내 삶이 지쳤을때 나약하다 느낄 때 한번 읽어보면 좋을 책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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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소가 끄는 수레 - 창비소설집
박범신 지음 / 창비 / 199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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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암산 궁벽진 환경이 홀로 사는 내게 가르쳐준 것이 작가라는 이름의 우상에 갇혀 산 나를 풀어노라 하는 것이지만, 풀어져 자유롭게 흘러갈 그리운 그곳이 어디냐 하는 점은 오리무중이었다...


어째서 나는 쓰고 있던 소설을 칼로 무 자르듯 중단하고, 당분간 절대 소설을 쓰지 않겠다는 작가로서의 임종사를 써던지고, 그리고 그 죽음 뒤에, 절을 떠올렸을까. 절이란 욕망이 들끓는 세상보다 오히려 더 시간으로의 침식과 사멸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각들의 장소.해답은 요령부득이다 ... 이십여년의 작가로 신문에 소설을 연재하던 그가 <절필선언>을 하고 굴암산 자락에서 텃밭을 일구며 자신을 되돌아 보며 자신과의 대화를 나누는 이야기 형식으로 내 놓은 삼년만의 작품집 '흰소가 끄는 수레' 는 작가가 가지고 있는 고뇌나 과거와 현재를 다시 되돌아보며 다시 글을 쓸 수 밖에 없음을 들어낸다. 

'연필을 들고 원고지와 마주해 앉으면, 천지창조의 마지막날 아침처럼, 휘황한 광휘의 어둠을 뚫는 섬광이 되어, 모든 감각의 촉수를 열고, 그 촉수들의 활홀한 운행으로 하나씩 열씩  차고 나는 어휘의 나비떼를, 고통이 있다면 동시다발적으로 떠오르는 그 수많은 나비 중에서 어떤 나비를 어떤 표충망에 담아백씩.. 지표면을 원고지 네모난 우물에 가두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의 창작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토록 휘황찬란한 나비떼들의 난무로 이어지던 창작력이 일순간 절필을 선언하게 까지 한것은 한국문학에 커다란 사건이기도 했지만 가족과 자신에게는 얼마나 큰일이었을까. 평범한 우리로 비유하자면 20여년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선택하여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는데 요즘처럼 명퇴가 난무하는 시대에는 어쩔 수 없이 밀려나 다른 일을 접하게도 되지만 작가란 타고난 재주이기도 한데 자신의 능력이 바닥이 났다고 펜을 들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며 주머니에 면도칼을 준비하고 다녔다면 그때의 상황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느껴진다.

자신안에서 어휘의 나비떼들이 난무하던 때는 지나고 나비떼가 사라진 다음의 허무함과 작가생활을 하며 멀리했던 <가족>을 새삼스럽게 다시 보게 되었을때 자신은 어떤 이였는지 묻는 자신은 누구였는지 묻는 질문이 가슴이 찡하기만 하다. 지금의 내가 겪고 있는 기분, 자식들이 크고 나면 여자들이 공황장애를 겪듯이 작가로 산 그에게 작품이외에 그무엇이 그를 대신해 줄 수 있을까. 옆에서 보는 아내마져 위기를 느끼고 절필을 하라고 할 정도였다면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런 힘든 시간을 잘 이겨내고 다시 답을 얻은 것은 역시 <글쓰기> 였던 듯 싶다. 

'때때로 소설쓰기는 나를 행복하게도 했고, 또 많은 시시때때, 소설쓰기는 천형이었다.' 
앞만 보며 달려온 지난 시절, 정신만큼 육체는 따라가지 못하고 뒤쳐져 휘청거리며 흔들렸을까, 옆에서 보는 사람들이 위기를 느낄 정도였다면 정말 위기일발이었으리라. 하지만 작가로의 다짐도 가족의 가장으로도 그의 휴식은 더 나은 충전의 시간을 준것 같다. 가수들이 은퇴를 선언한 후에 노래가 더 하고 싶었다는 말을 하면서 다시는 은퇴라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처럼 휴식의 시간은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는 발판이었을 듯 하다. 그래서일까 작가의 고뇌가 담겨 있어서 그를 직접적으로 만나는 느낌이 든다. 솔직한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글들이 절실히 느껴져 가슴이 절절하다. 

누구나 힘든 시간은 있다. 무엇을 하며 살던 갑자기 내가 달려온 길이 내가 맞게 가고 있는가 하고 터닝포인트 같은 점을 찍는 순간, 과거가 불현듯 다시 밀려오며 발목을 잡고 내 자신을 평가해 현재의 삶이 진정한 삶일까 라는 물음을 던질때 그 길만이 내 길이라는 확신을 주는, 더 깊은 믿음을 준다면 다행이지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인다면 나머지 삶은 흔들리며 살게 될 것이다. 그의 삼년여 휴식기가 가져다 준 작품들과 신간 <고산자>를 구매해 놓았다. 작가의 깊은 속을 들여다 본 것 같아서 다른 작품을 만나기가 더 수월할 듯 하다. 잘 나갈것만 같았던, 잘 나가는 줄만 알았던 그에게 이렇게 힘든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작품의 빼곡한 나비떼 같은 언어들의 난무가 말해주고 있다. 좀더 작가의 내면을 들여다 보아서 좋았던 작품이며 그가 딸에게 쓴 편지의 끝말인 '야 류블류 쩨뱌!(나는 너를 사랑한다) 처럼 그의 영혼을 더 사랑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깊은 암흑, 골방을 나와 밝은 햇빛으로 걸어 나온 그의 다른 작품들을 얼른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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